행함과 믿음, 그리고 의인과 죄인 

 

                                                                                                                                                      이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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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고보서

바울은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받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한다. 과연 이 두 가지의 주장이 서로 다른 주장일까?

야고보서는 반바울적인 내용으로 오해되어 오리겐 이전 3세기까지 정경으로 인정받지 못하였던 때가 있었다. 또 마틴 루터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그의 초판에서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재판의 발행에는 이러한 말을 스스로 삭제하였다. 반면에 칼빈은 이 서신서를 배척할 만한 정당하고 충분한 이유를 결코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서신서의 내용을 온전히 안심하고 받아들인다라고 말하였다.

 

성경을 해석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에 하나는 그 성경이 기록된 배경과 상황, 그리고 문학적 장르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다. 야고보서는 그 수신자가 흩어진 열두지파 유대인들이다(1:1). 즉 디아스포라로 이방지역에 흩어진 유대인들을 그 대상으로 기록된 서신문이다. 원래 유대인들은 행위를 중요시하는 율법주의자인데, 이방지역에 흩어진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의 혼합된 삶을 통하여 본연의 율법주의적인 자세를 잃어 버렸던 것이다.

야고보가 122절에서 도를 듣기만 하지 말고 행하는 자가 되라고 권면하고 있음을 보건대, 야고보서는 소위 믿는다고 하지만 행함이 없는 유대인들을 비판하는 내용이라고 보아야 한다. 특히 2:14-18에서의 내용은 야고보가 바울의 서신에서 언급되는 이신칭의적인 교리를 미리 알고 있었으며 또 그 내용을 염두에 두고 고의적으로 행함을 강조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러한 내용으로 볼 때에, 야고보는 믿음을 비판한다기보다는 오히려 행함을 믿음의 조건으로 보완하는 내용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어느 고등학교에 열등반과 우등반이 있다고 가정하자. 한 선생님이 우등반에 가서, 공부하는 시간 틈틈이 적당한 휴식과 운동을 함께 하여야 한다고 얘기하였고, 열등반에서는 오직 공부만을 열심히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고 예를 들어보자. 그 선생님은 우등반이나 열등반 모두, 학생들이 공부를 하여야 한다는 본질적인 멧세지는 부정한 적이 없다. 열등반이나 우등반이나 동일하게 학생들은 공부를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다만 너무 공부에 치중하는 우등반의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에만 집중하라고 가르치기 보다는 적당한 운동과 휴식의 필요성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다.

즉 메시지를 전하는 대상이 누구이며, 무엇을 강조하는가에 따라서 그 내용이 조금 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부를 하여야 한다는 원칙적인 주장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야고보서는 율법의 행함을 잃어버린 흩어진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이 그 수신자이며, 반대로 갈라디아서는 할례를 지켜야 하며, 구약의 명절과 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독교로 개종한 율법주의 유대인들이 그 수신자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여야 한다.

 

바울은 복음의 본질로서 믿음을 기록하고 있다. 야고보 역시 믿음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러나 도덕과 윤리를 소홀히 여기는 유대인들에게 실천적인 행함을 강조하는 글을 강조한 것이다. 즉 야고보는 일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 중에서 행함을 부정하는 도덕폐기론자와 같은 사람들을 비판하면서 믿음의 조건으로서 실천적인 믿음의 열매를 강조한 것이다.

 

간음이나 도둑질이나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는가? 십계명은 유대인들도 지킨다. 그렇다면 불신자나 타종교인들도 가난한 사람을 돕거나 선행을 하거나 도덕적인 가르침을 지키면 모두 구원을 받는가? 이 세상 어느 종교도 사이비집단이 아니라면 누구나 죄를 짓지 않도록 가르치며, 선행을 하여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것은 불신자도 마찬가지이며, 초등학교 도덕책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믿음이 없어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러한 질문에 단연코 아니오라는 답변을 하여야만 한다. 믿음이 없이는 절대로 구원을 받지 못한다. 행함은 믿음의 조건이 될 수는 있지만, 구원의 조건이 될 수는 없다.

2) 구원의 조건은 무엇인가?

 

오직 믿음이며 오직 은혜이다. 행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다. 야고보 역시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믿음의 조건으로 행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믿는 자가 간음을 하고, 도둑질을 하며, 거짓말을 계속 한다고 가정하자. 오히려 불신자보다 더 악한 죄를 반복적으로 짓고 있다고 가정하면, 그는 과연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하여 그는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으며 그는 거짓 믿음을 가진 자일 것이다.

 

다시 말하여 믿음으로 거듭난 구원을 받는 하나님의 참된 자녀들은 그 믿음의 결과로서 행함이 따르는 것이다. 행함이 구원의 조건이 될 수는 없지만, 믿는 자의 결과로서 그 행함이 있는 것이다. 믿는 자는 간음을 하거나 도둑질을 하지 않아야만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닌가? 구원을 받기 위하여 그러한 행함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그러한 행함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실천적인 산 믿음이다. 그러나 행함이 없다고 하여 그가 믿음이 없다고 하든지 구원을 못받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십자가의 회개한 강도는 어떤 행함으로 예수님에게 낙원을 약속받았는가? 또 질병이나 사고로 인하여 몸을 거동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은 행함이 없으므로 구원을 받지 못하는가? 가난하여 구제나 선행을 할 수 없었던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가?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3:5)

 

행함을 구원의 조건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펠라기우스와 같은 행위구원자가 된다. 또한 믿음 외에 행함도 동일한 구원의 조건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사람은 가톨릭과 같은 세미 펠라기우스가 된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도 행함이 필요하다고 하거나 믿는 자는 행함으로 그 열매를 알 수 있다고 해석하면 올바른 해석이 된다. 우리는 이 차이점을 정확하게 이해하여야만 한다. 야고보서는 구원의 조건으로서의 행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의 도리로서 행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물론 믿는 자도 알게 모르게 죄를 범할 수 있다. 거듭난 자도 죄성을 갖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 바울과 같은 이도 죄가 있음을 고백하지 않았던가?(7:21-25)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롭다하여 주시므로 구원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가 된다. 다만 거듭난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책을 면제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8:1).

 

3) 극단적인 구원관을 주의하라

최근에 구원론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극단적이며 이단적인 주장 두가지가 거론되고 있는데, 첫째는 소위 구원파로 불리는 단체의 구원론으로서 소위 도덕폐기론적인 구원론으로 더 이상 죄문제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견해이며, 둘째는 행위구원론자의 구원론으로서 믿는 자들도 행함이 없으면 지옥에 간다고 주장을 한다.

특히 교회들이 타락하고 범죄할 때에 행위구원론을 주장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동의와 공감을 얻게 된다. 그러나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면 이 세상에서 구원을 받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과 예수의 십자가 공로가 부정되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잊으면 안된다. 이 두가지 구원론은 서로 극단적이며, 동시에 우리 정통교회에서 반드시 주의하여야만 하는 잘못된 두가지의 이단적인 구원론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2:8-9).

 

우리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서 도덕폐기론에 빠지면 안 되지만, 그렇다고 행위구원을 주장하게 되면 그것은 기독교의 본질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거듭난 사람에게도 인간의 책임적인 측면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인간의 의지와 행함이 구원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된다.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3:10-12)

의인은 하나도 없고,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으며, 아담 이래 인류 역사상 행함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주장을 하면 과연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3:23-27)

자력으로 의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가 오셔서 십자가에서 그 피를 흘리심으로 인류의 죄를 대속을 하셨는데, 왜 사람들은 아직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미혹하고 있는가?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11:6)

4) 이신칭의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믿는 자를 의롭다고 하시는 것에 대해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3:9).

그리스도인들은 자력으로 의인이 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의로운 존재로 간주하시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의는 내면적이며 실제적인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의 변화이며 신분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다이스만(A. Deissmann)그리스도 안에서 고소를 당한 인간에 대한 법정고소가 취하된다. 그는 정죄가 아니라 자유로 판정된다. 이러한 무죄석방이 바울의 이신칭의이다라고 말한다.

또 렌스키(R. C. H. Lenski)그의 인격의 변화가 아니라 오히려 그와 하나님의 관계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그가 비록 의롭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의로운 존재로 간주하신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 칭의라는 용어가 헬라어로 사용된 것은 디카이오오(의롭다하다), 디카이오마(의로움, 심판)인데, 그 중에서 디카이오시스라는 단어는 헬라의 법정용어로서 무죄선언을 뜻한다고 한다.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은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4:6-8).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다윗의 말을 인용하여,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고, 그 죄를 인정치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칭의란 죄가 없기 때문에 무죄선언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죄선언을 내려주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에 기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칭의란 죄가 없는 자의 무죄석방이 아니라, 죄가 있지만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의롭다고 인정을 하여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교통사고를 내서 감옥에 갇혔는데, 그 피해자에게 모든 배상을 해주고 합의를 하여, 내가 석방되어 풀려났다는 것이 바로 무죄선언이다. 즉 죄책이 면제된 것이며, 그렇다고 하여 죄성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 마틴루터는 기독교인이란 의인이며 동시에 죄인이다라고 말하였다. 다이스만은 우리는 칭의에 관한 바울의 사상에서 현재적 소유의 의식과 미래의 충분한 소유의 기대 사이에 역동적 긴장을 본다라고 말하였는데, 의롭다는 무죄선언은 현재적이지만, 그 궁극적인 칭의에 대한 판정은 미래의 연장선에 놓여진다는 것이다.

마틴로이드존스는 거듭난 자의 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데, 위에서 언급한 두가지의 극단적인 견해를 모두 배제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사실 저는 아직도 이 삶과 이 세상에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이 몸 안에 있는 죄와 싸우고 있습니다. 따라서 요한은 다음과 같이 진술합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 소망을 가진 자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고전 9:27)이라고 바울이 말한 것처럼, 다시 소망을 가진 자는 수동적으로 주님만을 바라보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저는 저의 땅에 있는 지혜를’(3:5) 죽입니다. 이것이 바로 논제입니다. 이 모든 진리는 주어졌고, 성령의 능력은 제 안에서 역사하시며, 저는 그것을 하도록 격려를 받으며, 그것을 행하기를 원하는, 이것이 바로 성화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죄를 완전히 제거했다거나 죄로부터 완전히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모든 것들을 반드시 거절해야만 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동일하게 반동의 원리 또한 거절해야만 합니다”(로이드존스, 성령하나님, 기독교문서선교회, 330).

마틴 루터는 로마서 117절 본문을 읽고 훗날 그의 일기에서 나는 그 때에 나에게 천국 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고 기록한다. 마틴 루터는 무릎으로 성당계단을 오르는 고행을 통하여서도 죄의식을 버리지 못했으며, 하루에도 몇 번씩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여도 아직도 죄가 남아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신비주의적인 명상을 통해서도 죄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올더 스케이트 집회에서 롬 1:17을 들으며 회심을 깨달았던 요한 웨슬레가 과연 도덕폐기론을 주장하였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의 성화적인 과정을 남들보다 더욱 강조하던 사람이었다.

또한 요한 웨슬레는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고 강조하던 사람이었다.

요한 웨슬레 목사와 이 연회의 회집자들은··· 행위로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을 가장 위험하고 가증스러운 도리로 생각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엄숙히 선언한다. 즉 우리가 현세에서나 심판시에 칭의나 구원에 있어서 우리의 구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이외의 다른 것을 믿는 일은 없다. 그리하여 시간과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행을 하지않는 자는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을 지라도(따라서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선행은 어디까지나 혹은 부분적으로나 또는 전체적으로나 우리가 구원을 얻는 데 있어서 우리의 공로가 된다거나 그 보상이 될 수는 없다”(웨슬레신학, 송흥국, 109).

! 없다. 내가 바로 이 순간부터 하늘나라로 갈 때까지 의를 행하고 순종하는 생활을 한다하여도 이것이 내 지난 죄를 보상할 수는 없다. 이 땅 위에 사는 모든 인간들과 하늘 위에 있는 모든 천사들의 완전하고 철저한 순종도 우리가 범한 단 한가지 죄를 대속할 수가 없다. 인간의 행위로 용서받을 생각을 하다니, 이 얼마나 허망한 생각인가?”(웨슬레, 믿음에 위한 구원, 웨슬레의 조직신학, 한영태,148)

성경은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말할까? 성경은 우리가 죄가 없다고 하면 스스로 속이고 진리가 그 안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성경은 죄가 없다고 하는 자들은 진리가 그 안에 없다고 말한다. 즉 우리는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서 의롭다고 칭함을 받게 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8-10).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항에 동의하여야만 한다.

- 우리는 오직 믿음을 말미암아(through)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by) 구원을 받는다(2:8).

- 우리는 이미(already) 구원을 받았지만, 그러나 아직(but not yet) 최종적인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니다. 우리의 구원은 나 자신의 주관적인 단정이 아니라 믿음의 객관적인 확증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고후 13:5).

-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하여 죄사함을 받았지만, 죄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have no part with me)이 결코 아니다(13:8).

바울은 로마서 117절에서 믿음에서 믿음으로라는 중복적인 표현으로 오직 믿음을 강조하면서 기록된 바라는 말을 인용하는데, 그것은 구약의 하박국을 인용한 것이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는 정직하지 못하도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2:4).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구약의 하박국 구절은 바울을 통하여 로마서 117절에 인용되어지며, 3:11과 히 10:38에도 인용되어진다. 사람의 마음은 교만하며 정직하지 못하다. 의인은 없으며 하나도 없다는 말씀과 같은 의미이다.

바울은 시대적이며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하박국 예언자를 통하여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그와 함께 하였던 성령의 감동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하박국 선지자를 통하여 성령께서 주셨던 그 감동이 바울의 영적지각을 통하여 로마서117절을 기록하게 하였고, 그 성령께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마틴 루터뿐 아니라 요한 웨슬레에게도 뜨거운 회심과 감동을 주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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