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6은 문자적으로 해석하여도 베리칩이 될 수 없다.

  • 6월 17, 2016

계시록의 666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도 베리칩이 될 수 없습니다.

 

                                                                                                            평이협 이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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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3:15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1)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 다 죽이게 하더라”라는 구절이 지금 현실과 전혀 맞지 않습니다. 666은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은 사람들이 다 죽은 사건 이후에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짐승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아직 나타나지도 않았으며, 그 우상을 강제로 경배하라는 사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다고 하여 몇명이든지 모든 사람을 죽인 사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계 13:16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2) “모든 자에게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라는 구절이 지금 현실과 전혀 맞지 않습니다. 지금 모든 사람들에게 이마와 오른 손에 표를 받게 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그럴 가능성조차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어느 국가이고 어느 법률이고 베리칩을 강제로 오른손과 이마에 받게한 곳은 없습니다. 자신들의 엉터리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는 불확실한 장래를 단정하는 일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더욱이 현재 개발단계에 있는 치료나 진단용으로 몸 안에 삽입하는 생체 의료기기는 물건을 구매하는 베리칩이 전혀 아니며, 모든 사람에게 주입하는 것도 아닙니다.

 

계 13: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3) 우선 “오른 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아야만 매매를 할 수 있다”는 구절이 지금 현실과 전혀 맞지 않습니다. 십수년전에 바코드나 은행카드가 666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현재도 카드가 아닌 현금으로 물건을 살 수 있으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현금을 더 좋아합니다. 바코드는 물건에 찍는 매우 편리한 장치로서 사람의 오른 손이나 이마에 받지 않습니다. 십수년전 은행카드와 바코드, 컴퓨터가 666이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은 현재 은행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으며, 바코드가 없는 물건을 구입하는지요?

 

(4) “이 표는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는 구절이 베리칩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베리칩은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666은 “이름의 숫자”라는 것이 성경적인 기록이며, 그당시 유대인들은 이름을 숫자로 표시하는 “게마트리아”라는 방법을 사용하였다는 것이 이미 밝혀졌으며, 계시록 본문은 이름의 수를 게마트리아 숫자로 표현한다는 해석이 가장 적절합니다.  무엇보다도 요한계시록은 일곱교회에 보내진 서신문으로서, 이 글을 쓴 사도요한과 그 서신을 받은 일곱교회는 그 당시에 이 짐승의 이름과 그 이름의 수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시대적인 상황을 무시하는 성경해석은 명백한 오류입니다. 2000년 소아시아 일곱교회에서 사도요한은 편지를 받고 666이 베리칩을 뜻하다는 것을 과연 알았을까요?

 

계 13: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륙이니라”

 

(5) 666은 짐승의 수이며, 곧 사람의 수를 말합니다. 즉 666은 물건이나 표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숫자(수)를 말합니다. 그 짐승의 수와 사람의 수를 셀 수 없으면 지혜가 없거나 총명한 사람이 아닙니다.

 

(6) 666을 베리칩이라고 해석하면, 그동안 베리칩이 없었던 교회사 2000년 동안 666을 어떻게 해석하여야 합니까? 베리칩이 없었던 교회사 2000년 동안 계시록의 666은 한번도 적용되지 않았다는 결론이 되며, 지금도 전혀 적용될 수 없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아무 것도 현실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없으며, 성경의 해석과도 전혀 다를 뿐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사도요한이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 보내는 서신입니다. 보내는 사도요한과 받는 일곱교회는 모두 666에 대해서 베리칩이라는 것을 듣지도 보지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7) 성경 66권이 말하고 있는 구원과 멸망의 기준은 예수를 믿느냐 안믿느냐는 믿음과 불신에 따르는 것입니다. 다른 구원과 멸망의 조건을 주장하는 것은 다른 복음입니다. 특히 예수를 믿고 거듭난 사람이 어떤 표를 받았다고 하여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성경에 단 한마디도 없는 다른 복음입니다. 이런 엉터리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 대해서 사도요한은 계시록에서 무엇이라고 경고하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