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석의 30개론에 대한 비판4 (고급1)

  • 7월 15, 2015

                                     정명석의 30개론에 대한 비판4 (고급1)


                                                                                                           이인규



4. 고급

1) 예수님과 엘리야의 승천 재림 실상 비교 2) 세례요한과 예수님과의 관계 사명 3)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 4) 한 때, 두 때, 반 때 5) 창조목적 6) 타락론 7) 죄론 8) 구원론 9) 재림론 10) 역사 유대교와 기독교의 교리비교 11) 우주의 역사와 인류의 기원

마지막 고급편은 11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 엘리야, 예수님의 승천.재림.실상 비교 2)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관계사명, 3) 두감람나무 두증인, 4) 한때 두때 반때, 5) 창조 목적, 6) 타락론, 7) 죄 론, 8) 구원론, 9) 재림론, 10) 유대교와 기독교 교리비교, 11) 우주의 역사와 인류의 기원의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다.

1) 엘리야, 예수님의 승천 재림실상 비교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왕하 2:11)

정명석집단의 30개론은 엘리야와 예수님을 비교한다. 그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엘리야는 영으로 갔으니 영으로 온다고 주장한다. 엘리야가 다시 온다고 하는 성경구절이 세례요한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엘리야의 육은 이미 죽어서 땅에 묻혀 있다고 주장한다. 엘리야가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승천했다는 것은 싱징적인 의미로서 엘리야 하나님의 역사를 하다가 죽었다는 것이다. 이런 비성경적인 주장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엘리야가 온다는 예언이 세례요한으로 나타난 것처럼 예수님도 영으로 오신다는 것이다. 엘리야는 죽어서 땅에 묻혀 있는 것이 아니며, 영으로 승천한 것도 아니고, 성경 그대로 의하면 회리바람으로 승천했다. 정명석집단은 오신다는 예수 대신에 다른 인물이 온다는 결론을 말하기 위하여 성경을 비유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 11: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엘리야가 엘리사가 보는 가운데 불병거를 타고 승천했다. 예수님이 오시기 400년 전에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가 나타나서 크고 두려운 날에 하나님이 강림하시기 전에 선지자 엘리야를 먼저 보내준다며 엘리야가 다시 온다고 예언을 했다. 그리하여 유대종교인들은 엘리야가 메시야 강림 전에 하늘로부터 승천한 모습 그대로 올 줄로 믿었다. 그런데 예수님 오시기 900년 전의 사람인 엘리야가 신약에서 어떻게 다시 왔는가? 마태복음 17 1-13절을 보면 엘라야가 영으로 나타났다. 오늘날 기독교 신학은 엘리야가 육신으로 승천했다고 한다. 고로 구약에서 육으로 올라갔으면 육으로 내려오고, 영으로 올라갔으면 영으로 내려와야 이치에 맞다. 엘리야가 육으로 올라갔다고 했는데 재림 때 영으로 나타났으니 모순이 있지 않는가? 진리는 모순이 없어야 한다. 어떻게 된 것인가? 엘리야가 영으로 갔으니 영으로 다시금 온 것이다. 승천이란 표현은 죽았다는 것이다. 하늘나라는 육신 쓰고 입신할 수 없는 나라요 또한 하늘나라에 육신을 가지고 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승천하는 자는 육으로 승찬한 것이 아니고 영으로 승천한 것이다. 엘리야가 불병거를 타고 승천했다는 말은 엘리야가 하나님의 역사를 타고서 일을 하다가 죽었다는 것이다. 엘리야가 역사를 펼 때에 불병거를 타고 다닌 모습을 본 사람은 엘리사 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못보았다“ (고급, 엘리야…, 8)

30개론에서 엘리야와 예수님을 비교하는 것도 비성경적이며 비논리적이다.

30개론은 18쪽에서 엘리야가 비를 오지 않는다고 예언한 기간이 3년반이고 예수님의 사역도 3년반이라고 비교하는데, 예수님의 사역이 3년반이라는 근거도 없지만, 엘리야가 비를 내리지 않는다고 예언한 기간과 예수님의 공생애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30개론은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고 들자 엘리야가 죽기를 간구하며 로뎀나무 아래서 자포자기하고 누워있었는데 그 기간이 3일반이었다고 하며, 예수님이 무덤 속에 3일반을 계셨다고 비교하는데 예수님의 시신은 3일반 동안 무덤에 계시지 않았다. 예수님의 시신은 금요일 오후 3시경에 돌아가셔서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이런 억지 숫자 맞추기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정명석집단의 이러한 주장의 목적은 구약에서 엘리야가 다시 온다는 예언도 세례요한으로 왔기 때문에, 재림하신다는 예수님도 다른 사람으로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결론은 오신다는 재림예수가 정명석으로 온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도 엘리야 승천같이 육신이 승천한 것으로 보고 올라갈 때 모습 그대로 다시 올 것으로 믿고 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오셔서 이루고자 했던 이상세계 곧 악을 멸하고 선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 다시 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 강림이 영이듯이 예수님의 강림도 영이다. 영계는 육신을 쓰고 갈 수 없는 나라이다. 어떻게 영만이 갈 수 있는 영계에 육신을 쓰고 갈 수 있었겠는가? 예수님 승천 때 천사들이 분명히 본 그대로 온다고 말했다. 본 그대로는 과거사를 말한다. 예수님의 과거사는 어린아이로 태어나서 십자가 고난을 받고 육신이 죽고서 영으로 승천했다. 이러므로 재림 때 가심을 본 그대로 예수님이 영으로 다시 온다는 것이다.”(고급, 엘리야….19)

정명석집단은 사실과 전혀 다른 왜곡과 조작에 능하다. 기독교는 엘리야가 올라갈 때 모습 그대로 다시 올 것으로 믿은 적이 없다. 예수님은 마 11:14에서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라고 말씀하셨을 뿐이다.

또한 본 그대로 오신다는 말이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로 태어나서 육신이 죽고서 영으로 승천한 모든 과거사인가? “본 그대로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과거사가 아니라, “바로 전의 승천하신 모습 그대로를 말하며, 영어성경은 in the same way로 번역하고 있다.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1:11)

[공동번역] 이렇게 말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너희는 여기에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너희 곁을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시던 그 모양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

[표준새번역]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면서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실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현대인의성경] “갈릴리 사람들아, 왜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워 가신 이 예수님은 너희가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2)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관계사명

정명석 집단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이단들이 세례요한을 실패자라고 주장한다. 그러한 주장은 세례요한으로 인하여 예수가 실패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함이다.

엘리야 사명으로 온 것을 몰랐다

세례요한이 예수님과 하나가 되지 않았다

세례요한이 잘못된 신앙철학관을 갖고 있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례요한의 예수님에 대한 의심

세례요한의 실족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 (고급, 세례요한과…, 31-40)

엘리야 사명으로 온 것을 몰랐다

정명석집단은 <세례요한 = 엘리야>라는 인격의 등식으로 간주하려고 하거나 혹은 엘리야의 영이 세례요한의 육체로 왔다고 간주하는 것 같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 11:1에서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세례요한은 엘리야의 사명으로 온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엘리야로 온 것이다. 세례요한은 사명은 길을 예비하는 것이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과 하나가 되지 않았다

세례요한이 잘못된 신앙철학관을 갖고 있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주장들은 황당한 주장으로 비판할만한 가치도 없다고 본다

세례요한의 예수님에 대한 의심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오실 메시야인지 확인하기 위하여 제자들을 예수에게 보냈다. 세례요한은 이미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알고 있었지만, 유대인들의 메시야관은 로마의 압제 하에서 유대인들을 구하여 줄 혁명적이며 정치적인 투사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세례요한이 예수의 메시야를 의심하거나 부정하였다는 성경구절은 없다. 예수님은 유대인을 구하러 온 정치적인 메시야가 아니라, 천국복음을 전하는 메시야로서 오신 것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 11:4-5)

예수님의 말씀은 구약의 이사야서를 인용하며, 예수께서 구약성경이 예언하는 그 메시야라는 것을 확인 시켜준 것이다. 아마 세례요한은 예수의 답변을 통하여 메시야임을 확증하였을 것이다.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 35:5-6)

세례요한의 실족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11:6)

과연 본문이 세례요한이 실족하였다는 뜻인가? 본문은 그렇게 해석될 수 없다.

오히려 본문 다음에는 예수님이 세례요한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나타난다

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1:7-15)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11:11)

이단들은 위 구절을 통하여 세례요한이 천국에 가지 못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잘못된 해석이다.

첫째, 예수님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난 적이 없다고 하셨다. 다시 말하여 신구약의 모든 사람들은 여자가 낳았으며, 그렇다면 세례요한은 가장 큰 인물이 된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인물이 천국에 가지 못한다면 누가 천국에 갈 수 있는가?
둘째, 119절을 보면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선지자보다 나은 자라고 말하고 있다. 만약 세례요한이 천국에 가지 못하였다면 구약의 선지자들도 모두 천국에 가지 못하였다는 결론이 된다.
셋째, 본문은 천국의 가치성을 강조하는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해석이 옳다. “천국에 있는 자 중에서 극히 작은 자라도 (현재 지상에서 사역하는) 세례요한보다 더 크다.”
넷째, 본문은 더 나아가서 복음의 중요성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여야만 한다.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라는 말은 세례요한이 구약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며, 이제 천국은 율법의 시대가 아니라 새로운 복음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1:12)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16:16)

마태복음 본문을 문자적인 의미로 해석한다면, 예수와 세례요한은 폭력이나 노력같은 힘으로 천국을 얻은 사람들이 된다고 해석될 수도 있지만, 실제적인 폭력과 같은 힘으로 하나님나라를 세우려고 했던 자들은 열성당원(Zealots)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다. 실제로 하나님나라는 인간의 폭력으로 실천되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으며, 성경은 그러한 폭력을 조장하지 않는다. 물론 예수님의 말씀 또한 실제적인 폭력을 의미하지는 않았으므로, 우리는 그 폭력을 힘으로 번역할 수 없으며, ‘적극적이며 역동적인 열심으로 번역할 수 있다.
어느 학자들은 누가복음의 평행구절과 비교하여, 마태복음의 비아조를 수동태가 아닌 중간태로 해석하여, ‘침입을 당하다가 아니라, ‘전진하다, 나아가다로 해석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본문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여야 한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일하게 구원을 받는 하나님의 선민이었으며 천국이 보장된 선민이었다. 그러나 세례요한 이후 천국은 침노하는 자, 즉 적극적인 열심의 신앙을 가진 자, 유대인들의 유전과 전통과 같은 형식주의를 깨트리는 자, 하나님의 복음으로 돌아오는 회개한 자, 자발적인 믿음을 소유하는 자만이 천국을 취할 수 있으며, 천국으로 들어가게 된다.
천국은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유가 아니다. 천국은 능동적이며 역동적인 믿음으로 고난과 핍박을 이겨가는 자들의 것이다. 이스라엘이 차지하고 있던 수동적인 천국은 이제 세례요한으로부터 시작되어, 예수님으로 인하여 이 땅위에 세워졌고, 하나님의 나라는 앞으로 전진하고 있으며, 자발적인 믿음으로 선택을 받아 이끌어지는 사람들이 참가하게 된다.

특히 정명석집단은 세례요한의 죽음을 비극, 실패로 추론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열두사도와 제자들은 거의 모두 순교를 당하였는데 모두 실패를 하고 비극을 맞이한 것인가?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었는데, 그도 실패한 자인가? 정명석집단은 결국 세례요한으로 말미암아 예수의 사역이 실패하였다는 것을 유도하기 위함이다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하나되지 않음으로 구약과 신약이 하나 안되고 갈라졌다….. 한편 예수님의 가정도 요한의 가정도 증거의 힘이 너무 약했다”(고급, 세례요한, 45)

세례요한은 성령으로 시작해서 육체로 마친 불행한 선지자였다. 그 이유는 초림 때 세례요한이 예수님과 절대적으로 하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일 먼저 실족함으로 인하여 증거의 사명을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가 깨어지니 결국 예수님의 증거자로 온 세례요한은 옥에서 죽게되고 나아가서는 험악한 섭리역사가 진행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고급, 세례요한, 47)

이단들이 세례요한을 실패자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세례요한이 실패했다고 말함으로서, 세례요한 때문에 예수도 실패했다는 것을 유도하기 위함이다.

대부분 어느 이단에서 빠져나온 교주들이 세례요한을 실패자라고 비판하는데, 자신들이 처음에 몸 담고 있었던 곳을 이단이라고 비난하게 되면, 자기 자신도 역시 이단이 되기 때문에, 자신들이 빠져나온 이단 교주를 길을 예비하는 자이며 사명자인 세례요한으로 비유하면, 자신을 메시야라고 할 수 있거나 혹은 신격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의심을 하였다가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강조하여 가르치면, 동일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교주가 메시야임을 의심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하는 위협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두 감람나무 두 증인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11:1-14)

계시록 본문에서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라는 구절은 모세를 대적하던 자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던 불에 타죽었던 사건(16:35)과 엘리야의 대적자들인 아하시아왕의 부하 51명인 군사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에 타죽은 사건(왕하1:10, 12)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는 구절은 선지자 엘리야가 기도로 비를 오지 못하게 한 사실을 반영하며(왕상 17:1),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는 구절은 모세가 애굽에서 행한 열 가지 재앙을 반영한다( 7:20, 8:12). 즉 계시록 본문에서 두 감람나무와 촛대는 모세와 엘리야를 상징하는 것이 분명하다.

내가 그에게 물어 이르되 등잔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고 다시 그에게 물어 이르되 금 기름을 흘리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니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하는지라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이르되 이는 기름 부음 받은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는 자니라 하더라”( 4:11-14)

계시록 본문은 스라갸 4:11-14를 인용한 것인데, 스가랴 본문에서 두 감람나무와 두 등대는 제사장인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을 뜻한다(3:1, 4:6, 7, 14). 이 두 증인과 두 감람나무가 스가랴와 계시록이 서로 다른 것은 그 의미가 상징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계시록 본문에서 두 증인은 두사람이 증언하는 진실성(17:6, 19:15, 8:17-18)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감람나무와 촛대는 감람나무(올리브나무, : 뒤오 엘라이아이)의 기름으로 촛불을 밝힌다는 점에서 서로 상호관계를 갖고 있다. 즉 감람나무의 기름을 통해서 어두움을 밝히는 빛을 말하는데, 이러한 교회와 그 증인들은 세상의 빛으로서( 5:14-16) 세상의 참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단들이 자신들의 교주를 두 감람나무, 두 증인이라고 비유하였음에 유의하여야 한다.

정명석 집단은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는 하나님이 요한에게 묵시를 주셔서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법칙을 풀어 놓으신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구절들을 나름대로 풀어 보곤했다. 그러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이 계시하신 말씀으로 아무나 푸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고 배워야만 풀 수 있는 것이다. 역사적 계시의 비밀은 더욱 천주적인 명령이 있어야만 풀 수 있는 말씀이다. 왜 그런고 하니 성경은 아무나 쓴 글이 아니라 적어도 선지자, 사도, 메시야급의 사명자들이 계시를 받아서 쓴 글이기 때문이다.” (고급, 두 감람나무 두 증인, 52)

30개론은 시대마다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이 나타났다고 주장을 한다. 그리고 계시록 1110장의 본문에서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은 세례요한과 예수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계시록 1110절의 본문은 신약의 두 감람나무였던 육적인 세례요한과 영적이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최고로 축소시켜 말씀하신 것이다. 세례요한은 육적인 지도자였고 예수님은 영적인 지도자였다. (고급, 두 감람나무 두 증인, 57)

이는 기름 발리운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섰는자니라.”

정명석집단이 말하는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은 누구인가? 30개론은 노골적으로 지칭하지 않는다. 다만 65페이지 도표에 주를 하나님이라고 기록하였고, 두 감람나무를 초림주와 재림주로 기록한 내용이 있다. 그러나 69페이지에서 언급하는 내용으로 볼 때에는 예수님이 아니다.

두 감람나무가 나타나는 것도 한꺼번에 같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한 사람이 가야만 다음 주자가 선상에 나타난다….. 이렇게 시간 차를 두고 짝을 맞추어서 나가는데, 보통 40년의 기간을 두고 출발시킨다. 그러니까 앞에 있는 사람이 사명을 하면 뒤의 사람은 보통 그 때 태어난다. 앞의 사람이 연단을 다 받고 나타나서 일을 할 때, 뒷사람이 그 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고급, 두 감람나무 두 증인, 69)


필자는 두 증인 중에 하나를 문선명이라고 본다. 위키백과를 참고하면, 통일교의 문선명이 1946 4월까지 김백문의 이스라엘 수도원에 참여하였고 1946 8월에 평양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사회질서문란으로 구속되고, 1954년에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총재가 되었다고 한다. 기독교복음선교회의 홈페이지 약력을 보면, 정명석은 1970년도에 노방전도를 시작하였으며 1982년에 MS선교회를 창립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시작의 관점에서 보면 거의 40년의 차이가 난다. 또한 정명석의 30개론은 거의 통일교의 원리강론을 모방한 것이며 교리와 사상뿐 아니라 거의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정명석은 과거에 통일교에서 교사 사역을 했기 때문이다.

짝으로 만든 이유

정명석 집단의 30개론은 다른 이단들과 똑같이, “에 대해서 이사야서 3416절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 짝은 짐승의 짝을 말한다는 것은 이제 상식화 되었으므로 설명을 생략한다.

4) 한때 두때 반때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그러나 심판이 시작된즉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끝까지 멸망할 것이요” ( 7:24-26)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자가 그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생하시는 자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 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가로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삽나이까, 그가 가로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 이백 구십일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일천 삼백 삼십 오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 12:7-13)

한때 두때 반때는 3년반을 말하며, 1260, 42달과 같고, 다니엘서와 계시록에서 나타난다. 그런데 30개론 77쪽의 정명석의 간증예화에서는 정명석이 남한산성에 있는 성결교회에서 70일 금식기도를 하던 중에, 영하 17.8가 되는 아침에 눈을 쓸다가 한때 두때 반때에 대해서 깨달았다고 한다.

그 때 330분경부터 달달달 떨면서 눈을 쑤기 시작하였는데, 머리 속에는 온통 <한때 두때 반때>의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새벽 430분 경 갑자기 영감이 청천 하늘에 샛별처럼 초롱하게 왔다. 1, 2, 0.5원을 1달러, 2달러, 반달러로 계산하면 될 것이 아닌가? 하는 한국 돈을 달러로 환산하라는 영감이 스쳐갔던 것이다. 한때=1달러, 두때=2달러, 반때=반달러, 그러면서 <한때 두때 반때>를 깨닫게 되었다.” (고급, 한때 두때 반때, 77)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 9:27)

정명석 집단은 ‘3년 반 1260일이므로 1260년으로 해석을 하여야 하고, 회교성전이 688년에 세워졌기 때문에 688 + 1260 = 1948년에 이스라엘이 독립하였다고 계산을 한다.

그러나 바위돔은 688년에 착공한 것으로서 돔이 완성된 것은 691년이고, 만약 강포하여 미운 것이 설 것이며라는 구절이 바위돔을 뜻한다면, 아직 세워지지 않은 688년이 아니라 완공되어 세워진 691년으로 적용하여야 한다.

또한 691년에 회교성전이 세워진 것이 아니라 바위돔(황금돔)이 세워진 것이다. 회교성전은 그 이후 709년에 착공되어 715년에 세워졌다가 746년과 780년에 지진으로 파괴되어 다시 재건축을 하였으며 1033년에 다시 지진으로 파손되어 재건하였다.

그리고 회교의 바위돔 착공 년도에 왜 1260년을 더하는가?

더욱이 이스라엘이 1948년 독립한 것은 맞지만, 예루살렘은 요르단의 영토였으며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탈환한 것은 1967 6일전쟁으로 탈환한 것이다.

게다가 정명석집단은 단 12:11-13을 인용하여 688년에 1335년을 더하면 2023년이 되고 그 년도에 영적부활의 역사의 장이 마무리되고 완성된다고 주장한다.

정명석 집단은 다니엘서를 기록한 다니엘도 풀 수가 없었다고 주장하며, 결과적으로 정명석이 깨우쳤다고 주장하는데, 그의 주장은 아무 근거도 이유도 없는 공상만화와 같은 주장일 뿐이다.

다니엘서가 기록한 포악하여 가증한 것은 회교의 바위돔이 아니라, BC 168,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가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하고 돼지피로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혔던 사건을 말한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2415절에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이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유대인들은 에피파네스와 같은 사건이 앞으로 한세대 안에 다시 일어난다는 예언적인 의미로 이해하였으며, 실제로 AD70년에 로마 티투스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멸망되었다.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 12:11-13)

게다가 정명석집단은 688년에 1290일을 더하면 1978년이 되는데, 2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으로서, 정명석이 섭리의 말씀을 선포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30개론과 달리 기독교복음선교회 홈페이지는 1982년도에 MS 선교회를 창설하였다고 올려져 있다.

또 단 12:11-13을 인용하여 688년에 1335년을 더하면 2023년이 되고 그 년도에 영적부활의 역사의 장이 마무리되고 완성된다고 주장한다.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우는 때가 688년이라고 주장하였으니 기다려서 천삼백삼십오일 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라는 구절은 다니엘 당시의 사람들에게 2023년까지 사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한 뜻인가? 이 성경본문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5) 창조 목적

정명석집단은 하나님의 신성에 대해서 하나님의 이성성상과 상대 이성성상으로 구별하는데 통일교와 동일한 주장이다. 이 내용을 하나님의 교회와 같이 하나님어머니를 주장하는 이단들도 그대로 모방하였다.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했다. 하나님이 남성성품과 여성성품의 두가지 요소의 성품을 갖고 있다는 말씀이다. 이를 우리는 이성 성상이라 한다” (고급, 창조목적, 99)

정명석 집단은 상대 이성성상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 34:16)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통일교는 하나님을 자체 이성성상으로 말한다. 그러나 모든 존재들은 반드시 이성성상이 있어서 짝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법칙이다. 반드시 상대이상성상과 함께 주체와 대상의 수수관계를 가지므로 일체를 이루고 생존 번식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과 성상을 닮아 창조하신 법칙에 그 주인이 예외일 수 있겠는가? 고로 하나님도 자체 이성성상만이 아니라 상대 이성성상으로 존재하고 계신다.” (고급, 창조목적, 101)

이사야 34:16은 모든 존재는 짝이 있다는 내용이 아니다. 본문에서 나오는 짐승은 레위기의 부정한 짐승으로서 에돔땅이 타락하고 범죄하여 사람이 살 수 없게 되며, 부정한 짐승들만이 짝을 짓고 살게 된다는 저주의 말씀이다. 결과적으로 아무 관련이 없는 성경을 인용하여 하나님도 짝이 있다는 결론으로 유도하고 있다.

하나님의 상대 이상성상이 바로 성신(성령)이다. 성신은 하나님의 사랑의 신적 대상체이다.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성부, 성자, 성신을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나님이 문법을 알지 못해서 상징적으로 우리라고 복수형을 썼겠는가? 히브리서 85절에 모형과 그림자라고 했다. 이 땅 가정에서와 같이 하나님(성부)이 아버지의 입장이고, 성신은 어머니의 입장, 성자는 아들의 입장으로 삼위는 서로 일체가 아니라 각 위로 존재하는 것이다. 육신의 부모가 육계 가정의 부모이듯이 하나님과 성신은 영혼의 부모이다”(고급, 창조목적, 101)

삼위일체가 무엇인지 정명석집단은 모르고 있다. 더욱이 성부 성자 성령은 하나님의 위격적인 관계로서 가족관계가 아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신(루아흐)은 양성명사이고 헬라어의 성령(프뉴마)은 중성명사이다. 더욱이 성령이 하나님의 짝이고 어머니의 입장이라면 그리스도의 영(8:9, 벧전1:11), 예수의 영(16:7, 8:9), 아들의 영(4:6)은 무엇인가?

게다가 히브리서 85절의 모형과 그림자는 성소에 있는 장막을 말하는 것으로 삼위일체와 아무 상관이 없다.

특히 정명석집단은 통일교의 집단결혼을 지지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이와 같이 결혼은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뜻을 이루면서 하는 것이다. 결혼은 자기 한사람을 위하여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보면서 자손만대를 보면서 해야 한다. 적어도 천운과 운세권을 타고 천만인의 아비, 어미가 될 수 있는 사람과 만나서 결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지구촌에 그 짝에 대해 잘 아는 자는 드물다. 결혼에 대해서 부모도 함부러 책임을 못진다. 오직 하나님께서 때와 시기를 따라 보시면서 중매자가 되시고 주례자가 되어 주셔야 한다.(고급, 창조목적, 113)

성경이 말하는 창조의 목적이 무엇인가?

세상과 피조물을 정복하고 다스리게 함(1:26-28, 9:2-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으심(43:7, 4:11)
주의 뜻대로 쓰시려고 지으심(16:4)

6) 타락론

생명나무

예수님을 후아담이라고 했다. 예수님이 신약의 생명나무로 오셔서 아담이 하지 못했던 일을 다시 하러 신약에 오셨던 것이다. 그리고 로마서 514절을 보면 사도바울이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고 했는데 예수님이 아담을 표상체로 오셨다는 말이다. 실상 예수님은 아담이 하지 못한 일을 하러 오신 분이다”(고급, 타락론, 135)

예수님을 생명나무로 해석하는 것까지는 옳다고 보자그러나 예수님을 후아담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더욱이 예수님이 아담의 표상체라는 성경구절은 없다. 거꾸로 아담이 예수의 표상(모형)”이 된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5:14)

정명석집단은 시대급 생명나무라는 제목으로 정명석을 생명나무로 해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생명나무는 문자 그대로 실제 나무가 아니라 타락한 사람의 소망인 하나님의 뜻을 이룰 완성된 사람을 상징하는 것이다. 곧 생명나무는 그 시대의 섭리사의 주인이 생명나무라는 것이다. 회개함으로 그 앞에 나가게 된다. 깨끗함과 온전함을 받아야 그 앞에 인도됨을 받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이상세계를 이룰 수가 있다. 구약시대에는 에덴동산의 첫 아담이, 신약시대에는 후아담이신 예수님이, 성약시대에는 재아담인 재림주님이 생명나무이다.(고급, 타락론, 136)

성경은 후아담, 재아담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 성경은 예수님이 마지막 아담이며, 둘째 사람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여 예수님 이후에 아담을 대표할 사람은 없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고전 15:45-4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그렇다면 아담을 생명나무로 비유하였을진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누구를 비유하여 가르킨 것일까? 아담 앞에 하와 밖에 없었으니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상대기준이 되는 하와를 두고 말한 것이 틀림없다. 남자를 생명나무라 칭하였고 하와를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로 칭하였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하와가 생명나무인 아담보다 먼저 타락하자 선악나무라고 표현한 것이다” (고급, 타락론, 137)

정명석 집단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하와라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통일교 교리를 그대로 모방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담만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배필로서 해와를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동산 가운데에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을 비유하는 나무가 있었다면 그러한 여성을 비유하는 또 하나의 나무가 있었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원리강론, 1995, 75)

에덴동산

하나님이 볼 때, 우주 속에서의 동방에 있는 지구가 하나님의 이상세계 곧 에덴동산이다. 축소 확대로 볼 때, 우주의 에덴은 지구이고 지구의 에덴은 사람이며 사람의 에덴은 아담과 하와이다. 지역적으로는 지구의 중앙, 위도 적도 중앙선이 지나가는 가장 중심지 곧 4대강이 흐르고 아라랏산이 있는 메소포타미야 평원이 에덴이다. 동산 중앙에 생명나무와 선악 나무를 두었다는 말씀은 무엇인가? 동산 중앙이란 중심을 말한다. 확대하면 대우주의 중심인 지구를 말한다. 지구에서 생명체의 역사가 시작되고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지구 에덴의 중심에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있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에덴을 볼 때 그 중앙에 아담 화와가 있어서 생명체의 역사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에덴동산도 무엇인가 미완성의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고급, 타락론, 138)

우주의 동방에 지구가 있다는 주장도 웃지 못할 주장이지만,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이라는 주장은 도대체 무엇인가? 에덴동산은 어느 지역이라는 말하는 주장도 참으로 황당하지만, 아라랏산은 위도가 적도가 아니며, 서울보다 높은 북위 40도이다.

갈빗대

여기서 갈빗대란 무엇을 말하는가? 남자의 수억개 정자 중 오직 하나가 여자의 난자에 착상하므로 수태되어 생명이 시작되니 남성의 정자 하나를 갈빗대로 비유한 것이다. 어찌하여 하나님은 갈빗대로 비유했는가? 여성의 난자는 단백질이 95%로 구성되어 있고, 살의 성분과 같지만 남성의 정자는 95%가 칼슘성분이고 뼈의 주성분과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명적으로 난자는 살을 만드는 근본 요소가 되지만, 정자는 뼈를 주로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정자의 수가 수억이 되듯이 갈빗대가 사람뼈 증 제일 수가 많고 형태(모양)이 정자와 비슷하다. 고로 갈빗대로 표현한 것이다.”(고급, 타락론, 141)

정명석이 21년 동안 깨달았다는 비밀은 거의 모두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의 난자는 세포막과 형질섬유로 구성된 세포질로서 세포성분과 같다. 물론 단백질도 있지만, 핵산, 탄수회물, 지질, 여러 가지 무기물과 유기물의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더욱이 남성의 정액은 90%가 수분이며, 염기성 단백질, 효소등이 주성분으로서 칼슘은 미량이 있을 뿐이다. 또한 갈비뼈가 사람뼈 중에서 제일 수가 많다는 것도 황당하며, 갈비뼈는 양쪽에 12개씩 24개이지만, 척추뼈는 26개이며, 손의 뼈는 한손만 27개이다.

정명석 집단이 왜 이런 황당한 거짓말을 하면서 갈빗대가 정자라고 주장할까? 그들은 선악과 과실을 하와와 사탄의 섹스로 해석하는데, 이러한 주장 역시 통일교에서 모방한 것으로서, 이러한 성범죄로 인한 타락론이 정명석 집단의 교리에서 중요한 내용이 되고 있으며, 실제로 교주 정명석은 여성을 간음한 혐의로 징역 10년을 받았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선악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잉태의 고통이 왔다고 했다. 즉 하와가 따먹지 말라는 과일을 따먹고 나니 수태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세상에 어떤 과일이기에 따먹으면 잉태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비유하였단 말인가? 그것은 바로 하와의 사랑이 금단의 열매, 곧 선악과로 비유되었던 것이다. 현실 결과세계에서 잉태는 일단 남녀간에 금단의 열매를 따먹는 이성() 관계를 가져야 잉태가 된다. 옛날에 따먹어서 잉태되는 과일이라면 지금도 따먹으면 잉태되는 과일이어야 이치가 맞다. 예나 지금이나 따먹으면 잉태되는 치마속의 금단의 사랑의 과일밖에 천하에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고급, 타락론, 144-145)

어느 성경에도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잉태의 고통이 왔다고 기록하지 않는다. 잉태의 고통은 타락 후에 하나님이 심판을 내리신 것이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3:16)

통일교의 원리강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린믄 위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왕성할 해와를 비유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그러면 또 선악과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것은 해와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다. 과목이 과실에 의하여 번식되는 것과 같이, 해와는 하나님을 중심한 그의 사랑으로써 선의 자녀를 번식해야 할 것이었는데, 사탄을 중심한 그의 사랑으로써 악의 자녀를 번식하였다…. 따라서 해와가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하는 것은 그가 사탄을 중심한 사랑에 의하여 서로 혈연관계를 맺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원리강론, 1995, 81-82)

우리는 성서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여 죄의 뿌리는 인간 시조가 과실을 따먹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뱀으로 표시된 천사와 불륜한 혈연관계를 맺은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선의 혈통을 번식하지 못하고 사탄의 악의 혈통을 번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원리강론, 1995, 82)

이러한 주장은 엉터리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선악과의 과실을 먹은 것은 뱀이 아니라 하와와 아담이기 때문이다. 또 성경은 통일교의 원리강론이나 정명석집단의 30개론과 달리,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은 것에 대해서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아담이 그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4:1)

정명석 집단은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만들어 놓고 아담과 하와에게 따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는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아담과 하와가 미성년이었다는 이러한 답변은 전혀 성경과 관계가 없으며, 역시 통일교의 주장을 그대로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아담 하와가 어떻게 성장기간 중에 타락하게 되었는가? 여자는 대상체 입장에서 완전수 7을 따라 소생기 7, 완성기 7년이 있다. 나이로 치면 7살때까지 소생급이요, 14살때까지가 장성급이요 21살 때 까지가 완성기가 되는 것이다. 남자는 주체적 입장에서 재창조수 8을 따라 소생기 8, 장성기 8, 완성기 8년 도합 24년이라는 성장기에 필요한 기간을 거쳐야 완성된다. 그런데 하와가 완전수 7의 성장중 소생급 14살 때 타락한 것이다. 아담도 성장중에 타락을 했는데 남자는 재창조수 8의 성장중에 타락했던 것이다. 고로 아담이 16세때, 하와가 14세때 이성의 관계를 가진 것이다.”(고급, 타락론, 150페이지)

통일교에서 통일교의 섹스 타락 교리를 그대로 모방한 정명석은 이와 같은 타락론을 세우는데 20년이 걸렸다고 말하는데, 이러한 정명석의 간증을 읽어보면 정명석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 드러나게 된다.

타락론의 체계를 세우는데 20년 걸렸다. 그렇게 오랜만에 말씀이 나온다. 1970 2월에 바로 사람의 타락의 근본세계를 깨닫게 되었다. 1970 2월 아직 얼음이 안풀렸던 날씨 가운데 아침 태양이 뜰 무렵, 다릿골 골짜기의 기도굴에서 기도하다가 에덴동산과 생명나무 및 선악과를 깨닫게 되었다. 굴에서 깨닫고 나오면서 좋아 마칠 것만 같았다. 아마 여러분들 중에는 본 사람은 없었지만 내 마음의 기쁨을 형용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땅을 치면서 통곡하고 감격적으로 흐느꼈다. 그리고 선생님은 맞어! 맞어! 틀림없어, 맞어, 딴 것이 아녀! 맞어 틀림없어, 갈 데가 없어! 누가 무슨 말을 한 대도 안돼! 그것은 맞어 틀림없어!’하며 한시간 두시간을 중얼거리며 손바닥을 치고 손에 피가 흘러도 주먹으로 바위 덩어리를 치면서 맞다고 했다. 그 때 누가 뭘 맞다고 그러냐고 선생님에게 물었는데 둘러보니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예수님이셨다.”(고급, 타락론, 147)

정명석 집단은 30개론 고급, 153쪽에서 제사장들이 하나님 앞에 나설 때 누구든지 하체를 드러내는 것을 금하였는데, 이것은 아담 하와가 하체로 범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하며, 또 유대인들은 8일만에 할례를 하는 이유도 모르면서 받는데, 유대인이 할례를 하는 이유가 성적 타락으로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통일교와 정명석집단은 천사가 섹스를 하였다는 근거로 유다서 1 6-7절 성경을 인용한다,.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에서 그들이 에덴동산에서 하와와 간음을 한 천사, 루시퍼라는 것이며, 타락한 천사와 같이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1:6-7)

그러나 본문에서 그들 소돔과 고모라를 뜻한다고 보며, 캘빈과 Barnes등은 그렇게 해석하였다. 즉 이웃도시들도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행동, 즉 간음과 남색을 하였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만약 통일교와 정명석 집단과 같이 그들이 창세기 에덴동산의 뱀, 타락한 천사를 뜻한다면, 왜 그들(them)이라는 복수명사를 사용하였는가?

다른 번역 성경을 보면, 대부분이 그대로 그들이라고 직역을 하였으나, 현대인의 성경과 NIV 영어성경은 그와 같은 해석을 하였다.

[현대인의성경]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와 그 주위 도시들도 온갖 음란한 짓을 일삼다가 영원한 불로 심판을 받아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KJV] Even as Sodom and Gomorrha, and the cities about them in like manner, giving themselves over to fornication, and going after strange flesh, are set forth for an example, suffering the vengeance of eternal fire.

7) 죄 론

정명석 집단의 30개론은 죄가 원죄, 유전죄, 연대죄, 자범죄 이렇게 4대 죄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 역시 통일교 원리강론에서 모방한 것이다.(참고, 원리강론, 1995, 98)

특히 죄의 종류를 나무에 비유한다면 원죄는 뿌리, 유전죄는 줄기에, 연대죄는 가지에, 자범죄는 그 잎에 비유할 수 있다”(고급, 타락론, 176)는 내용은 원리강론 98-99쪽에 있는 내용과 같다. 원죄와 자범죄는 옳지만, 연대죄와 유전죄는 성경적인 내용이 아니다. 특히 연대죄는 언약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며, 유전죄에 대해서는 죄가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죄책(죄에 대한 책임)이 전가되는 것이다.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20:5-6)

소위 가계저주론, 혈통유전설을 주장하는 자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성경구절이 출애굽기 20 5절이다. 만약 죄가 3-4대까지 유전된다면, 본문을 그대로 적용하여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 그 후손 천대까지 은혜가 유전되는가? 출애굽기 본문은 우상에 대한 내용으로서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를 가장 싫어하신다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이다.

성경적인 예를 들어 열왕기하를 보면, 하나님이 15년 동안이나 수명을 연장하여 준 히스기야왕은 여호와에게 순종한 선왕이었으나(왕하20:6), 1대의 아들 므낫세는 우상을 숭배한 사악한 왕이었다. 2대 후손인 므낫세의 아들 아몬도 악을 행하였으나(왕하21:20), 3대인 아들 요시야는 여호와께 순종하는 왕이었다(왕하22:2). 과연 저주의 3-4대와 은혜의 천대를 문자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가?

여호와 하나님에게 순종한 히스기야왕의 후손은 왜 1대와 2대에서 여호와를 거절하는 사악한 왕들이 나타났는가? 왜 히스기야의 후손은 천대까지 은혜를 받지 못하였는가?

그리고 므낫세는 왜 3-4대까지 저주를 받지 않았으며, 므낫세 2대의 요시야는 여호와께 순종하여 칭찬을 받는 왕이 나타났는가? 혹시 가계저주론자들은 므낫세와 요시야를 포함하여 히스기야 때문에 그 천대의 후손들이 모두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것인가?

성경은 가계저주론과 혈통유전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때에 그들이 다시는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 이가 심 같이 각기 자기 죄악으로만 죽으리라(31:29-30)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18:2-4)

죄는 물질이 아니라 당사자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한다. 성경은 당사자의 죄가 자식에게 물려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24:16)

저희 자녀는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 율법 책에 기록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인하여 아비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비로 인하여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각 사람은 자기의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대하25:4)

손을 금하여 가난한 자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변이나 이식을 취하지 아니하여 내 규례를 지키며 내 율례를 행할진대 이 사람은 그 아비의 죄악으로 인하여 죽지 아니하고 정녕 살겠고 그 아비는 심히 포학하여 그 동족을 억탈하고 민간에 불선을 행하였으므로 그는 그 죄악으로 인하여 죽으리라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찌 아비의 죄를 담당치 않겠느뇨 하는도다 아들이 법과 의를 행하며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정녕 살려니와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 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 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18:17-19)

정명석 집단은 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는 자는 오직 메시야라고 주장하며 메시야는 아무 때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때가 되어야 나타나는데 메시야에게 죄사하는 권세가 있다. 메시야는 근본 원죄부터 사대죄를 회개시키고 없앤다고 주장한다. (고급 , 죄론, 179-181)

또 용서를 받지 못하는 불가사죄가 있다고 하는데 메시야 믿지 않는 죄가 가장 크다 성령훼방하는 죄는 사하심을 못받는다 심정의 죄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정명석을 재림주로 믿지 않으면 용서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급, 죄론, 181-182)

그러나 성경은 다시 오시는 예수는 죄문제와 상관없이 심판을 위하여 오신다고 말한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9:27-28)

다시 오시는 분은 예수이며, 재림예수는 심판을 위하여 오신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25:31-33)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