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헌원목사와 정이철목사에게 고하는 글

  • 8월 06, 2017

                                임헌원목사와 정이철목사에게 고하는 글

   

                                                                                                                                 이인규

 


필자는 가능한 은혜롭지 못한 일로 생각되어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비판하는 일을 하지 않았지만, 다만 신학적이며 성경적인 비판은 그 잘못을 지적하여야 하기 때문에 계속하여 왔다. 이들의 잘못은 상관하고 싶지 않지만, 이들에게 미혹되는 성도들이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헌원목사와 정이철목사의 행동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점점 심해져 가고 있다. 각교단의 이대위원장과 이대위원, 상담소장과 교수들이 포함된 기이협을 이단옹호단체, 사단의 회, 회색분자라고 부르며, 목사로서 삼가야할 비인격적인 욕설까지 서슴치 않고 있다.

필자에게 댓가를 받고 이단을 옹호한다”, 교활하다”… 이런 말까지 서슴치 않는다. “신학을 하지 않은 평신도가…”라는 비난은 필자를 격하시키기 위한 이단들의 주장과 동일하다. 이것은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말해주는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주장이 많은 이단연구가들의 지적과 비판을 받게되며, 성경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잘못된 주장임을 알게 되자, 욕설과 비인격적인 추한 작태를 스스로 보이고 있는데 결국 누워 침뱉기가 될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명백한 증거와 근거가 전혀 없는 경솔하고 허술한 추측과 단정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에는 정이철목사가 미주의 목사들에게 메일을 보내어, 김성로목사의 컬럼을 이인규가 대신 써준 것이라고 하였는데, 필자는 김성로목사의 컬럼을 써준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이런 거짓 모략에 대해서 일일이 상대할 가치를 못느낀다.

 

그들이 얼마나 성경도 부정하고, 조직신학적인 지식도 부정하는 사람들인지 살펴보자

  

 

1. 십자가 죽음만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자들

 

아무리 무지한 목사라고 할지라도 아주 알기 쉽게 설명을 하여 보려고 한다. 십자가 죽음만을 믿고 부활, 승천, 재림, 심판을 믿지 않거나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자. 우리는 그들은 이단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이철목사와 임헌원목사와 그를 따르는 자들이 십자가 죽음까지만을 믿으면 부활을 믿지 않나도 충분히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을 한다. 오히려 그것을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1) 성경적인 관점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믿음도 헛것이며, 우리가 여전히 죄가운데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구속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고전 15: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고전 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정이철목사와 임헌원목사는 로마서를 쓴 사도바울도 이단이라고 말할 것인가?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했던 것은 그에게 부활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11:17-19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부활은 우리의 칭의와 중생, 그리고 거듭남의 소망을 증거하고 보장하여 준다.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벧전 1:3-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예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을 보증하여준다

 

고전 15: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고전 15:21-22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도가 되는 조건

 

사도가 되는 조건은 부활을 증언할 사람이 되어야 했다. 또 사도바울이 그 사도성을 의심받았을 때에 부활하신 주를 목격하였다는 조건을 증거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22-23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고전 9:1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고전 15:7-9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무엇을 전하였는가?

 

초대교회 성도들은 부활을 전하였다.

 

고전 15:3-4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4: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17: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4:1-4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부활은 예수가 메시야이며, 구주 되심을 증거한다

 

14: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2: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2:12-15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다시 말하여, 성경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성경은 부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부활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헛것이라는 놀라운 주장을 강조하고 있다. 더욱이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동전의 양면성이라고 말하며 모두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김성로목사를 이단적인 주장이라고 비난하는 목사들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로 놀랍다. 부활이 필요없다는 주장을 하는 목사들이 누구인가? 누가 복음을 가리우고 있으며 누가 이단인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조직신학적인 견해를 살펴보자. (지면상 간추렸다)

 

2) 조직신학적 견해

 

캘빈의 기독교강요

 

부활이 필요없다고 주장하는 목사들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한심하다. 그렇다면 캘빈의 기독교강요를 살펴보자.

 

2 16장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및 하늘에 정좌하심

13.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다음은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이다. 이것이 없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논한 모든 체계는 불완전하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음과 장사에서는 연약함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신앙은 그 완전한 힘을 얻기 위하여 이 모든 사실들을 뛰어넘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죽음을 통해 구원의 완성을 이룬다. 그것은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했고, 그의 공의로우신 심판이 충족되었으며, 저주는 제거되고, 형벌은 완전히 치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심은 그의 죽음을 통해서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벧전 1:3). 그가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죽음을 이긴 승리자로 등장한 것처럼, 죽음을 이긴 우리 신앙의 승리 역시 그의 부활에만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의 다음 말이 그리스도 부활의 성격을 잘 표시해 준다.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4:25). 이 말은 마치 그가 죽으심으로 죄는 제거됐고 그의 부활로서 의는 다시 살아나 회복되었다고 말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가 만약 죽음에 굴복했다면, 그가 죽었다고 해서 우리를 죽음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겠는가? 또 만약 그가 이 싸움에서 졌다면, 어떻게 그가 우리를 위하여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의 요소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써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그의 죽음을 통해서는 죄가 제거되고 죽음이 소멸되었으며, 그의 부활을 통해서는 의가 회복되고 생명이 되살아나 그의 죽음이 우리 안에서 능력과 효력을 나타내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의 부활의 덕분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느니라“( 1:4)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그의 죽음만을 언급할 때에는 항상 그의 부활에 속한 것을 포함하고 있음을 동시에 기억해야 한다. 이와 동일한 제유법이 부활이란 말에도 적용되는데, 그의 죽음과는 별도로 말하게 될 때에는 언제든지, 특히 죽음에 관계된 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다시 살아났기 때문에 그는 승리자의 상급을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가 부활이요 생명이 되기 위함이었고, 따라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속임수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고전 15:17).

 

임헌원목사와 정이철목사는 캘빈도 이단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구속사적과 구속이 다르다고 변명을 하는 글을 보고 웃음이 터졌다. 어느 조직신학자들이 십자가는 구속이고 부활은 구속사적이라고 하였는가?

성경을 보여주고, 조직신학자들의 주장을 보여주어도, 끝까지 아니라고 우겨야 하는 그 심정이 이해는 가지만, 삼류 이단들과의 토론 수준에도 못미치는 변명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자체가 참으로 불쌍하기 그지 없다.

 

마틴로이드존스

 

구원은 몸의 부활이 없이는 완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그 사실이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을 쓴 이유입니다. 돌아다니면서 몸의 부활이 없고 영적인 부활만 존재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 당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15:17) – 구원이 없습니다. 바울은 실제로 여러분에게 처음 왔을 때 전파한 이 믿음에 굳게 서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전혀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구원 받지 못하며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입니다” (마틴로이드존스, 교회와 종말에 일어날 일, 기독교문서선교회, 282)

 

임헌원목사와 정이철목사는 부활이 없이는 구원이 완성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마틴로이드존스 목사도 이단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루이스벌콥

 

– (3)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시 그들의 칭의와 중생 그리고 마지막 부활과 도구적으로 연관되어 있다.(4:25, 5:10, 1:20, 3:10, 벧전1:3) (벌콥조직신학 하권, 71)

 

오히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활이 구성요소로서 구속사역의 본질, 따라서 복음사역의 본질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의 가장 큰 기초석 중 하나이다. 그리스도의 속죄적 사역은 만일 그것이 전적으로 유효적이었다면, 죽음이 아닌 생명에서 종결되어야만 하였다. 더 나아가 부활은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에 대한 성부의 인치심이었으며 그것은 수납(acceptance)에 대한 공식적인 선언이었다.마지막으로 부활은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셔서 놓여지신 교회의 머리와 보편적 주님으로서 새로운 생활에 들어가신 것이었다. 이것은 그로 하여금 구의 구속사적 사역의 열매들을 사용케 하셨다. (벌콥조직신학 하권, 74)

 

루이스 벌콥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칭의와 중생, 부활과 도구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부활이 구속사역의 본질, 복음사역의 본질에 관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속죄사역은 죽음이 아닌 생명에서 종결된다고 말한다. 임헌원목사와 정이철목사는 루이스 벌콥도 이단이라고 생각하는가?

 

웨인 그루뎀

 

웨인그루뎀은 미국 일리노이즈의 Trinity Evangelical School의 조직신학교수로서, 그의 저서가 우리나라에 여러권 발행되었다. 웨인그루뎀도 루이스벌콥과 마찬가지로 부활이 우리의 중생과 칭의를 보장하여 주며, 우리의 부활을 보장하여 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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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교리의 중요성

a.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중생을 보장해 준다: 벧전 1:3

b.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칭의를 보장한다: 4:25

c.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도 완전한 부활의 육신을 받게될 것을 보장한다. 고전 6:14, 고후 4:14, 고전 15:20 (웨인그루뎀 조직신학 중권, 167-170)

 

마크 드리스콜, 게리 브레셔츠

 

게리 브레셔츠는 웨스턴신학대학의 신학교수이며 신학 연구 학과장이다. 또한 마크 드리스콜은 시애틀의 마스힐교회를 세운 목사로서 사도행전29장 교회개혁네트워크 대표이고 부활선교 신학협회를 설립한 목사이다. 그는 예수님이 죽으셨다면 기독교도 죽은 것이고, 예수님이 살아계시면 기독교도 살아 있다고 말한다. 또한 부활이 없으면 구주도 없고, 구원도 없고, 죄용서도 없고, 영생도 없다고 말한다.

 

예수님이 지금도 죽어 계신다면 기독교도 죽은 것이다. 예수님이 살아계신다면 기독교도 살아있다. 바울 자신이 고린도전서 1517절에서 그렇게 선언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구주도 없고 구원도 없고 죄 용서도 없으며 영생의 부활에 대한 소망도 없다.부활이 없으면 예수님은 또다른 선하지만 죽은 인간에 불과하게 되고, 따라서 이 세상에서나 죽음의 순간에 우리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쉽게 말해서 부활이 없으면 오늘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예배하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은 쉽게 속는 사람들이다. 내세의 부활 생명에 대한 그들의 소망은 그들에게 생명을 주겠다는 한 죽은 사람을 신뢰하는 어리석은 바보들의 소망이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교리는 의문의 여지없이 매우 의미심장하며 극히 세심한 숙고와 고찰이 필요한 교리이다.(기독교 교리, 마크 드리스볼, 게리 브레셔스 공저, 부흥과개혁사, 371-372)

 

성경은 종종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며 그리스도를 일으키신 바로 그 권능의 성령을 누리는 것에 대해 말한다.그렇게 하면서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 때문에 신자들에게 전달된 수많은 복과 유익을 강조하고 있다. 바울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우리가 죄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그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단번에 영원히 용서 받았다는 것을 아는 큰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의 성화 속에서 밖으로 표출되므로 우리는 더욱 거룩해지며 죄를 이기며 사는 법을 배워 가다가 언젠가 우리 자신이 부활할 때 모든 죄의 존재와 권능과 습관에서 해방되어 영원히 살게될 것이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예수님의 부활이, 그 때문에 우리가 비록 죄인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다고 선언될 수 있는 칭의의 원천으로 일컬어진다. 바울은 예수님이 우리를 의롭다하시기 위하여 살아났다고 명백히 진술한다. (기독교 교리, 마크 드리스볼, 게리 브레셔스 공저, 부흥과개혁사, 400-401)

 

박형용 박사

 

– 2. 구속사역의 구성분 :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속사역의 본질의 구성분이며 따라서 복음의 구성분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나눌 수 없는 사건으로 성경에서 항상 함께 언급된 것은 부활은 구의 죽음과 함께 구속사업의 기조가 되는 때문이다.

1) 속죄 사업의 수행에 필요 :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속죄사업을 수행할 수 없는 것이었다.

2) 구속의 본질에 광명 :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속의 본질을 가르쳐주는 큰 광명이다.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서 자아의 인격 완성을 기대함에는 부활의 광명에 의하여서만 그 본격적 지위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즉 인생은 영과 육의 합성체이므로 완전한 구속을 얻음에는 바울의 말과 같이 몸을 속량하는 것이 그 요결의 하나다.(8:23) 22:32의 예수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이 산 자의 하나님이시면 영뿐만 아니라 육까지 살게 하여 주실 것이 당연한 것이다. (교의신학, 기독론, 박형룡, 보수신학서적간행회, 201-202)

   

 

박윤선 박사

 

박윤선목사의 다음 주장은 충격적이며 참신한 선포와 같은 내용이다.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지 못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사탄이 승리하였다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부활신앙이 아니라면 기독교회 자체가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바빙크는 말하기를 만일 그리스도께서 몸으로 살지 못하셨다고 말한다면 죄악의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가 정복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승자가 그리스도가 아니고 사탄이라는 말이 성립된다. 하였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으셨다는 부활신앙이 아니었다면 기독교회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무엇보다도 성경의 증거에 의하여 확실하다. (개혁주의 교리학, 박윤선, 279-280)

 

김준삼교수

 

만약 그리스도의 실제적 부활이 없었고 다른 인간들과 같이 죽은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가 죄인들을 대신해서 구속사역을 주장하는 근거가 없어진다.그리스도가 십자가로서 악마를 격멸하셨다고 말해도, 실제 이 부활이 없었다고 한다면 즉 죽음의 세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그 죽음의 세력이 놓여져 있다고 한다면, 승리하였다는 증명이 없는 것이 된다. 그렇지만 승리하신 그리스도가 부활하시므로서 죽음을 격멸하신 사실에 있어서 증거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의 구속의 완성이 필연적 결과임과 함께 부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증명하는 증거적 의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교의신학, 기독론과 구원론, 김준삼, 도서출판 총신, 94)

  

김준삼교수는 로마서 4:24-25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인 구원론에 의하면 칭의는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획득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만일 예수가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그 믿는 근거가 없어진다고 결론을 말한다

  

셋째, 신자의 칭의, 중생, 부활의 수단으로 연결되어진다. (4:24-25,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이것은 단순하게 문자대로 읽는다면 칭의는 부활에 의해서 일어났다고 생각되어진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의해서 우리들이 의롭게 되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죽으심에 의해서 칭의가 일어나지 않고 부활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성경의 명확한 가르침에 의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칭의는 어디까지나 십자가의 죽으심에 있어서 획득되어진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 만약 그리스도가 부활하시지 않았고 부활이란 사실이 우리들에게 제시되지 않았다면 우리들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믿는 근거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의롭게 되어지지 않는다.하나님은 우리들이 믿어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부활하시어, 그리고 부활한 사실을 우리들에게 풍부하게 제시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의롭게 되기 위해서 부활되어졌다는 표현은 가능하겠다고 보겠다. 이 경우에 있어서 부활이란 성도의 칭의의 수단으로 연결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교의신학, 기독론과 구원론, 김준삼, 도서출판 총신, 95-96)

 

이 외에도 수많은 조직신학자들은 부활이 구속의 완성이며, 구원의 성취라고 말한다. 부활이 없으면 복음과 믿음, 죄사함, 중생, 칭의가 모두 헛것이 되고 만다. 필자는 별도로 13명의 조직신학자와 캘빈의 기독교강요를 이미 올렸으며, 지면 관계로 몇가지만 간추려서 다시 올렸다. 볼만한 눈이 있다면, 들을만한 귀가 있다면, 복음을 이단이라고 말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만 할 것이며, 지금이라도 회개하여야 할 것이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임헌원목사와 정이철목사는 위 조직신학자들이 모두 이단으로 보이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아직도 부활을 믿지 않아도 십자가 죽음만으로 충분히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가? 반드시 입장을 밝히기 바란다.

지금도 부활은 구속사적이고, 십자가 죽음은 구속적이라는 이상한 용어 장난을 계속할 것인가? 임헌원목사와 정이철목사는 분명히 자기 입장을 다시 재확인하여 주기 바라며, 성경의 기자와 조직신학자들이 모두 이단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해서 답변을 하여주기 바란다.

 

2. 하늘성소에 대한 조작

 

필자는 김성로목사의 책, 양육교재 3, 김성로목사의 컬럼, 동영상 설교들을 모두 검토하여 보았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김성로목사가 예수의 피 제사를 두 번 드려야 한다고 말한 것을 발견한 적이 없다. 심지어 정이철목사와 임헌원목사가 올린 김성로목사의 동영상을 보아도 두 번 제사를 드린다는 내용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양육교재와 책에는 단번에 드려진 제사라고 말하고 있으며, 십자가와 하늘성소는 분리된 사건이 아니라고 반복하여 설명하고 있다.

물론 김성로목사는 하늘성소를 강조하며, 부활을 강조한다. 그러나 두 번의 제사를 드린다고 말한 적이 없다. 김성로목사는 동영상에서 짐승의 피를 드리는 구약의 성소와 예수의 피를 드리는 하늘의 성소를 비교하여 히브리서 9장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지만, 십자가와 하늘성소를 비교하지 않는다.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하늘성소에 대제사장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는 관점에서, 김성로목사는 하늘성소를 이루어진 제사의 성취로 강조한다. 다시 말하여 십자가 죽음부터 하늘성소에 들어가신 것까지를 단번의 제사로서의 성취라고 말하는 것이며, 이러한 주장은 과거의 김성로목사의 컬럼, , 양육교재, 설교 동영상 여러편에서 계속 반복하여 나타난다. 정이철목사와 임헌원목사는 많은 자료를 살펴본 것이 아니라 한 두개의 불확실한 자료만을 근거로 하여 자신들이 추측하고 단정을 하였기 때문에 이런 엉터리 주장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적지 않은 주석들이 이러한 견해를 지지하고 있다.(하늘성소에 대한 주석적 관점을 이미 올렸다) 그리고 히브리서 9장에 대해서는 신학자들마다 다양한 신학적 견해가 나타난다. 하늘성소는 실제적인 곳으로 절대로 상징적인 장소가 아니며, 구약의 성소가 오히려 예표적이었다. 하늘성소에 단번에 들어간 것이 완전한 속죄제사를 이룬 성취라고 보는 주석적인 견해는 너무나 많이 있다.

 

옛 언약의 성막은 하나님에 대한 제한적 접근과 제한 속죄의 불완전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새 언약의 완전한 접근과 완전한 속죄로 개혁될 필요가 있었는데, 예수그리스도께서 드디어 새 언약의 중보로 단번에 하늘 지성소로 들어가셔서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다는 것이다(히브리서, 권성수, 총신대학교출판부, 263)

 

9:11-14에서 저자는 15절에서 형성된 결론을 위한 근거를 발전시킨다: 그리스도가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서 종말론적인 구속을 이루었기 때문에,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신다.(WBC 히브리서, p.106)

 

마지막으로 일년 일차씩 지성소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는 레위 대제사장과의 대조에서(9:7), 저자는 그리스도의 하늘 성소로의 입성을 단번에라는 에파팍스(ἐφπαξ)라는 단어로 수식한다. 그 용어는 반복의 필연성과 가능성을 배제한다(Stαhlin, TDNT 1:383-84).문맥에서 그리스도의 죽음, 승천, 그리고 하늘 성소로의 입성은 단일한 것으로 회고된다. 그러나 그 강조는 하늘 성소로의 도달과 영원한 구속의 성취에 있다.(WBC 히브리서, p.110)

 

그는 지상의 장막에서 제사장적 직무를 수행한 것이 아니라(참조 9:1,7), 하늘의 성소에서(9:11-12,24) 그리한 것이다(9:11-12,24).결과적으로 그는 하나님께 무제한적인 접근을 제공할 수 있었다(9:14; 참조 10:19-20). 천상 성소에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희생과 사역의 효능이 8:1-4에서 주제적으로 먼저 도입된다.(WBC 히브리서, p.105)

 

휴스(F.E. Hughes)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하심을 얻었으나 루터의 그 유명한 표현처럼, 그리스도인은 의인인 동시에 죄인이다. 그 까닭에 그리스도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하늘에 출현하셔서 모든 죄를 씻는 언약의 피를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적용시킬 필요가 있었다. 다시 말해서 구속적 죽음의 효력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최세창교수, 신약주석 히브리서)

 

심지어 마틴로이드존스는 하늘성소에서도 정결의 제사를 드렸다고 주장을 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김성로목사의 주장이 아니다. 필자는 마틴로이드존스의 신학을 매우 존중하지만, 이 견해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의 논증은 이렇게 표현될 수 있습니다. 모형은 수소와 염소의 피로 정결케 되었지만, 이것만으로는 하늘의 성막자체를 정결케 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하늘의 성막은 더 나은 것으로 정결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더 나은 것으로 정결케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자의 피로 정결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피를 드렸습니다.히브리서 9장을 읽고 8장도 함께 읽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논증을 파악하기 위해 히브리서 전체를 읽길 바랍니다. 이것은 성경전체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신비로운 진술에 속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천상적 장소 자체도 정결케 되어야 하며 예수그리스도 바로 자신의 피로 정결케 되어 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배우게 됩니다. (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기독교문서선교회, 마틴로이드존스, 463)

 

내 생각에는 이것이 성경의 다양한 진술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골로새서 1:20이 그 한 예입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땅뿐만 아니라 하늘의 모든 것을 당신과 화목시키려 하십니다. 물론 이것이 유일한 설명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은 그저 여러 설명 중 하나일 뿐입니다. 우리 앞에서 주님께서 말하자면, 자신의 피를 취하여 사탄의 타락으로 남겨진 얼룩을 제거하기 위해 하늘 자체도 정결케 하셔야 했다는 참으로 놀라운 진술이 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마침내 하늘은 완전히 정결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악과 그 모든 영향은 땅에서뿐만 아니라 하늘 모든 곳에서 제거되었습니다.(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기독교문서선교회, 마틴로이드존스, 464-465)

 

이단연구가는 가능한 많은 정확한 증거를 근거로 연구를 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기만이 알고있는 좁은 신학 또는 신학적인 무지에 근거하여 무조건 추측하고 단정하여 상대방을 정죄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임헌원목사와 정이철목사는 김성로목사가 십자가와 하늘에서 두 번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말했다는 구체적이고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여야만 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두 사람은 자기 주장을 짜맞추기 위하여 조작과 매도를 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정이철목사가 미주 엠넷이라는 신문에 기사를 쓴 내용을 그대로 올린다

 

이처럼 부활신앙을 매우 강조하는 춘천 한마음교회 김성로 목사는 예수님이 십자가로 우리를 완전하게 구원하지 못했고, 부활하여 하늘나라에서 다시 완전한 제사를 드림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비성경적인 부활구원론 이단 사상을 전파하였다. 위 강의 영상에서 이런 심각한 내용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김성로 목사는 예수님의 부활 목적과 의미가 십자가의 피로 다 이루어진 구원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김성로 목사는 분명히 이렇게 가르쳤다.” (미주 엠넷, 정이철)

 

아직도 정이철목사는 부활을 배제한 십자가만으로 구원이 완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김성로목사는 부활까지를 대속의 성취라고 보며, 이러한 주장은 성경적이며 정통신학적인 견해이다. 그리고 정이철목사는 김성로목사가 두 번 제사(다시 완전한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처럼 말했다. 결국 그는 부활을 부정하는 잘못된 구속관을 갖고 있으며, 김성로목사가 두 번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거짓으로 조작을 한 것이다.

 

한마음교회 양육교재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즉 죽으심과 부활을 모두 구속사역의 성취로 보며, 이것을 단번에 드려진 제사라고 말한다. 아래 글들이 두 번 제사로 보여지는가?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성경의 예언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속사역을 이루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짐승의 피가 아닌 흠없는 자기의 피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심으로거룩하게 된 우리를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양육교재 2 8-9)

 

즉 십자가의 피는 단번에 드려진 영원한 속죄제사이며, 그것을 하늘성소에서 완전하게 이루셨다는 것이다. 김성로목사의 책에도 이것이 기록되어 있다.

 

구약시대에는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렸지만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해 흠없는 자신의 피로 하늘나라 참 성막에서 영원한 제사(10:12)를 드리심으로 영원한 속죄를 단번에 이루셨다.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는 영원한 제사, 즉 이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영원히 죄를 사하는 효력과 능력이 있다. 따라서 이천년 전,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죽었다는 것을 고백할 수 있는 것이며 오늘도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주인으로 믿으면 예수의 보혈로 죄사함의 감격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능력과 죄사함에 대한 고민을 예수님의 부활로 종지부 찍게 되었다.” (하나님의 승부수 부활, 26)

 

춘천한마음교회 김성로목사의 컬럼(국민일보)에도 이것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의 예언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속사역을 이루셨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십자가뿐만 아니라 부활을 모두 포함한 사건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하늘나라 참 성막에서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실 뿐 아니라 반드시 부활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히브리서는 구약의 제사와 그리스도의 제사를 대조하여 그리스도가 이루신 구속의 영원성과 절대성을 선언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가 구약의 제사와 다른 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제물이고, 또 하나는 장소이다.

히브리서는 영원한 제사를 말할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분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하나의 사건으로 이해하고 그 한 사건 속에 담긴 영원한 구속의 효력을 선포하고 있다. 이처럼 하늘 성소의 제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와 다른 또 다른 제사가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을 모두 포함한 단 한 번의 영원한 제사인 것이다.구약의 대속죄일에 제물의 피 흘림과 대제사장이 제물의 피를 들고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의 제사이지 두 번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자신의 피로 이 땅의 성소가 아닌 하늘나라의 참 성소에서 드리신 단 한 번의 제사이다.“(국민일보 컬럼)

 

더 쉽게 말하자면, 십자가와 부활을 각각 다른 두 번의 제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을 모두 하나의 사건이며 하나의 제사로 보는 것이다. 만약에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하늘 성소에 대제사장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는 뜻으로서 하늘성소에서 완전히 이루셨다는 뜻이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신학적인 견해는 많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어린양으로 돌아가셨고, 대제사장으로 하늘성소에 들어가셨다. 이것은 단번에 드려진 제사로서 두번의 제사를 말하지 않는다. 김성로목사의 다른 동영상을 확인하면 이것이 정확하게 표현된다. 다른 견해를 무조건 이단이라고 하는 이 사람들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3. 그 밖의 어처구니가 없는 주장

 

임헌원목사와 정이철목사의 조작은 계속된다. 임헌원목사는 우리가 아담의 죄를 지었다는 평범한 양육교재의 글을 실재설이라고 조작을 하다가 필자에게 반격을 당하자 침묵을 하고 있다. 임헌원목사는 언약적대표설이 간접전가설이 아니라는 기본적인 신학지식을 몰랐기 때문이다. 안토니후크마는 개혁주의 인간론 268-269쪽에서 언약적대표설이 직접설이며, 실재설과 구분을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그의 확신이라고 주장을 한다. 캘빈과 루이스 벌콥도 우리가 아담의 죄를 지은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김성로목사는 우리의 영혼이 아담의 영혼과 함께 죄를 지었다는 선재설을 주장한 적이 없다.

임헌원목사는 우리가 아담의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는 펠라기우스의 주장을 지지하는지 오히려 묻고 싶으며, 캘빈과 루이스벌콥과 안토니후크마도 실재설인지 답변을 하여야 할 것이다.

 

또 이들은 김성로목사가 성령의 역사를 부활로 대체시켰다고 모함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십자가 죽음만을 제한하는 그들은 십자가 죽음이 성령의 역사를 대체하였다고 보는가? 무슨 유치한 말 장난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들은 점점 더 심해져서 많은 이단연구가들의 손가락질을 받기 시작하며 그들과 멀리 하게 된다. 더욱이 기이협의 모목사가 자기들의 주장을 지지한다는 웃지도 못할 주장을 이곳 저곳에 올리고 있다. 막상 그 목사님은 혀를 차고 있는데도 말이다.

  

 

임헌원목사는 김성로목사가 롬 1:4을 인용하자, 김성로목사가 부활 전에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부정했다는 주장까지 하다가 자신의 잘못된 해석으로 드러나자 곧 꼬리를 내렸다. 아마 이들은 글자 하나와 쉼표 하나가 이상하다면 그것도 짜맞추기를 하여 이단으로 조작할 것으로 보인다. 마치 아무 말이나 뱉어놓고 아니면 말고라는 식인 것 같다.

 

그렇다면 이들이 도대체 왜 이렇게 집요하게 이런 조작을 할까?

첫째, 신학적인 지식과 성경적인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둘째, 개인적인 감정 때문이다.

 

임헌원목사는 기이협 상임회장으로 잠깐 있다가 김성로목사의 이단성을 발표하여야 한다고 주장을 하다가 모든 사람들이 이단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반대를 하자, 스스로 사퇴를 하였다. 그리고 기진협이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그 단체가 이단연구단체인 것처럼 행세를 하고 있다. 그는 관상기도를 잠깐 연구한 적이 있을 뿐, 이단에 대해서는 전혀 지식이나 경험이 없다. 심지어 신천지의 기초적인 교리조차 모르는 사람으로서 이단연구가라고 말할 수 없다. 더욱이 그의 주장을 보아서는 기초적인 신학적인 지식도 정립되어 있지 않는 것 같다. 그의 집요한 행동은 오직 기이협에 개인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이철목사는 김성로목사나 춘천 한마음교회에 대해서 단 한번도 들어본 적도 없고, 책을 읽어 본 적도 없으며, 아무 지식조차 없는데, 한국에 와서 임헌원목사의 교회에서 세미나를 하였다가 우연히 춘천 한마음교회에 대해서 듣게 되었는데, 임헌원목사를 돕기 위하여 춘천 한마음교회에 대한 비판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일방적인 정보만을 듣고 비판을 시작한 것이다.

 

춘천 한마음교회에 대해서 여러 곳에 비판과 제보를 하는 사람이 2명 있었는데, 한명은 여자(혹은 남편)이고, 한명은 모 교단에서 제명된 목사이다. 그 여자는 춘천 한마음교회 목사님의 아들이 외제차를 타고 다닌다고 소문을 냈는데, 실제로 알아본 결과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더욱이 거짓제보를 이곳 저곳에 보내고 있었으며 필자에게도 제보를 하였는데, 모두 잘못된 정보였다. 그리고 모 교단에서 제명된 한 목사가 춘천 한마음교회에 대해서 나쁜 제보를 하고 다니는데, 그 딸과 사위는 아버지의 교회를 외면하고 춘천 한마음교회에 다니고 있다. 최소한 이단연구가라면 확인할 수 없는 제보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싣는 이런 자세를 가지면 안된다는 것은 절대적인 상식이다. 임헌원목사는 그 내막을 잘 알면서 그 목사의 피해사례를 실제인 것처럼 인용하였던 적이 있었다.

정작 정이철목사는 한국에 온 항공료를 벌기 위하여 에스라하우스에 가서 세미나를 하였는데, 에스라하우스는 666과 베리칩, 프리메이슨 음모론을 가르치는 곳이며, 구약의 음식물 규례를 제2의 복음으로서 지켜야 한다는 혼합율법주의를 가르치는 곳이다. 노우호목사는 음식물 규례를 지키는 안식교와 엘리야선교회도 이단이 아니며,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구원의 방법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에 대해서는 모든 증거자료를 확보하고 있다)

노우후목사와 정이철목사의 공통점이 있다면 방언을 사탄이라고 하는 주장이 동일하다. 특히 정이철목사는 자신을 반대하면 적으로 간주하는 독단성과 배타성으로 인하여 미주 세이연을 탈퇴하였고, 진목연이 해체되었다. 미주의 많은 목회자들은 정이철목사에 대해서 나쁜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현실을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최근에는 정이철목사가 미주의 목사들에게 메일을 보냈는데, 그 제목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기이협 이단연구가들이었다. 기이협은 어느 누구도 이번 사건에 대해서 공식적인 견해를 말한 적이 없었다. 얼마 전에 기이협에서 몇 명이 춘천 한마음교회의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하여 몇 개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목적은 직접 들어보고 싶다는 조사의 목적이었으며, 기이협에서는 최근에 부활에 대한 세미나와 공개토론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상당히 신중한 토론이 있었으며, 춘천 한마음교회에서도 직접 참여하였다.

 

더욱이 정이철목사와 임헌원목사는 이단연구단체와 개인을 향하여 사단의 회”, “회색분자”, “이단옹호단체”, “교활한 자라는 욕설을 남발하였는데 반드시 그 책임을 지어야만 할 것이다. 그들은 자기 주장과 다르면 모두 이단이라고 말한다.

 

4. 문제점

 

앞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임헌원목사는 우리가 아담의 죄를 짓지 않았다는 펠라기우스의 주장을 하였고, 계속 김성로목사의 주장에 대해서 추측과 단정으로 조작과 모함을 하여왔다. 또한 웨슬레교단의 만인속죄설을 이단이라고 주장하는 비판도 하였으며, 그 비판이 거의 개인적인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몇 년 전에도 임헌원목사가 이단연구가 한 사람과 격한 논쟁을 하며 이곳 저곳에 전화를 걸며 비난을 했던 기억을 필자는 하고 있다. 결국 자기 자신이 용어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신학적 무지이었음을 지금은 혹시 깨닫고 있는지 모르겠다.

 

또 정이철목사는 한국에 와서 감리교는 카톨릭과 같은 행위구원론이라고 무지한 주장을 하다가 지적을 당한 적이 있으며, 최근에도 감리교는 이단이라는 글을 다른 사람의 글이라고 추천을 하며 홈페이지에 올렸다. 필자를 고의적으로 노리고 글을 쓴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러한 자세가 졸렬한 고의적인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정이철목사가 어떤 사람의 글이라고 추천하며 홈페이지에 스스로 올렸던 글에는 엄청난 이단사상이 들어있었다. 그 글에는 예수그리스도도 자신의 피로 속죄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있었다. 죄없는 예수님이 자기 피로 속죄를 먼저 받아야 한다는 이단적인 주장을 정이철목사 자신이 다른 사람의 견해라고 하면서 적극 추천을 하면서 올렸던 것이다. 이런 주장조차 분별하지 못하고 오히려 추천을 하며 자신이 직접 올리는 정이철목사는 이단을 연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 글은 다음과 같다.

   

 

구약 구속사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준비하심이었고, 신약 구속사의 핵심은 구속의 근거가 되는 십자가 제사의 효력을 성령께서 부르심 받은 각 사람에게 적용하심이다. 십자가의 피가 구속사의 핵심이라는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 그 자신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부활의 첫 열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자신의 십자가의 피의 완전한 속죄의 혜택을 가장 먼저 적용받으심이다.”(정이철 홈페이지)

 

또한 부활과 십자가가 동전양면이며 모두 중요하다고 말하는 김성로목사의 주장을 이단적인 주장이라고 반박하고 있음으로 그의 견해가 어떤 것인지 잘 파악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복음은 부활을 부정하는 것인가?

 

성경에 무식하여 부활을 모르면 구원받지 못할까? 아니다 십자가를 믿으면 구원받는다. 설령 의심이 많아 부활을 믿지 못한다 해도 십자가의 죄사함을 확실히 믿으면 구원받는다.[중략] 김성로는 십자가와 부활을 동전의 양면 같다라고 말한다. 그가 복음의 개념을 모르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은 우리에게 죄 사함과 구원을 주는 복음이나, 부활을 믿는다고 구원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부활을 십자가 위에 두려는 김성로 목사의 무지와 억지이고, 기독교 복음을 왜곡하는 거짓된 논리다.“ (정이철 홈페이지)

 

더욱이 예수님의 몸이 부패하여 썩었는데 하나님이 다시 지으셨다고 주장하며, 부활은 삼위일체 모두의 사역임에도 불구하고 성부하나님만의 사역이라고 주장한다. 더욱이 예수의 부활이 재창조의 Sample이라는 통일교 계열의 이단 재창조교회의 주장을 싣고 있다. 과연 부활이 자기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재창조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예수님도 부활로 죄로 죽었다가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던 샘플인가?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정이철목사는 반드시 책임을 지어야 할 것이다.

 

“… 죽어 무덤에서 삼일 동안 부패가 진행된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다시 생명과 생기를 주시어 살게하신 분은 예수님 자신이 아니고 하나님이시다. 죽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다시 사셨다는 것은 곧 그의 몸이 다시 지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이미 삼일 동안 부패가 진행되었으니 온 몸의 모든 세포들이 다 붕괴되고 해체되는 과정이 깊이 진행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몸을 다시 조성하시어 살게하시므로 부활한 것이다. 단지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하고, 허파가 호흡하게 만드는 치료 수준이 아니었다. 죽었고 삼일 동안 그 몸이 부패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재 창조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미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자기 백성을 다시 새롭게 조성하여 하나님 백성되게 하시는 재 창조의 sample이었다...(중략)…” (정이철 바른 믿음 사이트, 김성로는 십자가 깨닫지 못한 이단스러운 목사 글 중에서)

 

몇 명의 이단연구가가 있는 자리에서 공개적인 토론을 하자고 하는 제안도 거부하고, 비인격적인 욕설을 지우라는 제안도 거부하였으며, 필자의 IP를 차단하여 홈페이지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더니, 결국은 이단적인 주장과 복음을 혼동하는 분별력을 보이고 말았다. 이제는 이곳 저곳에 거짓말 메일을 보내어 중상모략을 하는 일까지 하고 있다. 자신이 반대를 하여서 목회자 세미나에서 2000명의 참가자가 680명으로 줄었다고 자화자찬하는 정이철목사의 주장을 보고 참으로 웃음만 나온다. 국민일보 김성로목사 컬럼을 이인규가 써주었다고 메일을 보내고 있으며, 두번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모함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들이 백명의 서명을 받아서 각 교단 이대위에 진정을 하겠다고 한다. 어떤 교단이든지 진실하게 규명을 한다면 이상이 없다는 것을 발표할 것이라고 의심치 않는다. 공정하게 규명을 한다면 결국 자신들의 문제점들이 공개될 것이며 그것은 오히려 바라는 바이다.

물론 필자는 수천명의 서명을 받아 동일하게 각 교단 이대위에 진정을 할 용의가 있음을 말하고 싶다. 그들은 백명의 서명을 받기가 매우 어렵겠지만, 회원이 47,000명이 확보된 필자의 카페에서는 천명 정도의 서명은 아주 쉽기 때문이다.

 

과연 누가 이단성이 심각하고 문제가 많은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판단할 것이다.

과거 친교가 있었던 사람으로서, 인생을 조금 더 살았던 나이가 많은 선배의 입장에서 충고를 하는데, 지금이라도 임헌원목사와 정이철목사는 자신의 신학적인 무지와 성경적인 무지를 깨닫고, 공개사과를 하고 회개하여 참된 목자가 되기를 바란다. 물론 이 사건으로 치명적인 명예를 잃게 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