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혜사(파라클레토스)

   

                                                                                                          이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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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혜사

  

1) 보혜사란 무슨 뜻인가?

  

보혜사파라클레토스라는 헬라어로서 파라”(옆에)클레오”(부르다)의 합성어로서, 보혜사라는 단어는 헬라어를 한문으로 음역한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초대교회의 사도들조차 자신을 보혜사라고 말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보혜사라는 단어 자체가 성도들의 옆에서 함께하는 신적인 존재를 의미하며, 종말론적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고를 돕는 변호사를 뜻하는 헬라의 법적용어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보혜사에 대해서 언급한 구절을 살펴보자. “보혜사”(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는 요한복음에서 4번 나타나며, 요한일서에서 한번 나타난다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보혜사는 성령을 말한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께서는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에 만인에게 오심으로 성취되었다.

   

그런데 보혜사라는 단어가 성령 외에 예수님 자신에게 적용된 적이 있다는데, 바로 위의 요한복음 1416절이다. 예수님이 또다른 보혜사를 보내준다고 하신 성경구절 때문에 오늘날 자신을 보혜사라고 하는 이단 교주가 47명이 된다. 예수님이 성령을 또 다른 보혜사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예수님이 보혜사이기 때문이다.

요한일서 21절에는 예수님이 파라클레토스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그 단어의 뜻이 바로 핼라의 법정용어인 피고측 변호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요일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파라클레토스)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라

   

다른 성경은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공동번역] 나는 믿음의 자녀인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고 여러분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그러나 혹 누가 죄를 짓더라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표준새번역] 나의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쓰는 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누가 죄를 짓더라도, 아버지 앞에서 변호해 주시는 분이 우리에게 계시는데,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현대인의성경] 나의 믿음의 자녀들이여,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고 나는 이 편지를 씁니다. 그러나 만일 누가 죄를 짓더라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KJV] My little children, these things write I unto you, that ye sin not. And if any man sin, we have an advocate with the Father, Jesus Christ the righteous:

  

[NIV] My dear children, I write this to you so that you will not sin. But if anybody does sin, we have one who speaks to the Father in our defense--Jesus Christ, the Righteous One.

  

대언자는 누구의 대언자인가? 하나님의 대언자인가? 성도들의 대언자인가?

성경에 의하면, 보혜사는 오직 예수와 성령이며 그 누구도 사람이 보혜사라고 불리운 적이 없다.

    

2) 신천지의 주장

  

이만희가 자신을 보혜사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자.

 

- 예수님의 말씀을 대언한 본문의 천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대언하기로 약속한 진리의 성령 보혜사의 입장에 있다(14:26). 진리의 성령이라 함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17:17)을 가지고 오는 자(1:1)라는 말이며 보혜사는 은혜로 보호하는 스승이라는 뜻이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5:43)’으로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14:24) ‘보혜사 예수님(요일2:1 난하주)’이 하나님께 구하여 보낸 대언자이므로 다른 보혜사라 한다(14:16). 승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대언자로 삼으신 것처럼 보혜사 성령을 자신의 대언자로 삼아 말씀을 전하시며 직접 우리에게 나타나 말씀을 가르쳐 주시지 않는다.(요한계시록의 실상, 417)

 

(1) 이만희는 진리의 성령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오는 자이며,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온 천사나 선지자나 사도를 "성령"이라고 불렀던 적이 있는가? 단 한번도 없다.

아래 요14:16-17에서 말하는 진리의 영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말한다.

신천지에서는 이만희가 교인들의 속에 거한다고 가르치는가? 세상은 진리의 성령인 보혜사를 보지도 알지도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세상은 이만희를 보지도 못하는가?  

 

(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2) 이만희는 보혜사은혜로 보호하는 스승이라는 뜻이라고 말한다.

이만희는 보혜사를 한문풀이를 하여 保惠師, 은혜로 보호하는 스승이라고 해석을 한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를 한문으로 음역하여 기독(基督)이라고 하는데, 이만희는 그리스도를 기독이라는 한문으로 해석하는 것과 같으며, 예수를 야소(耶蘇)라고 하는데 그것도 한문으로 해석할 것인가? 베드로는 한문으로 음역할 때에 피득(彼得)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한문으로 해석할 것인가?

保惠師가 스승 이므로 스승인 이만희를 말한다는 해석은 웃을 수도 없는 코메디에 가깝다. 그렇다면 醫師는 의학을 전하는 스승이고, 按摩師는 안마를 전하여 주는 스승인가? 이만희는 牧師를 가축을 치는 일을 가르쳐주는 스승으로 해석하는가?

 

그는 보혜사가 헬라어 "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를 음역한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한문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것을 다시 반복하면, "파라"라는 헬라어는 "옆에"라는 뜻이고 "클레토스""클레오"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는데 "부르다"라는 의미로서 파라클레토스는 헬라의 법정용어로서 피고측 변호인이라는 뜻을 갖는다. 이만희는 대언자가 하나님을 대언하는 자라고 주장하는데, 파라클레토스가 성도를 의미하는 피고측 변호인을 뜻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런 주장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언자”(파라클레토스)는 하나님을 대언하는 것이 아니라 피고, 즉 성도를 대언하여주는 직분을 뜻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라고 기록되어있는 것을 보면 누구든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파라클레토스)가 있으니

   

3) 이만희는 천사가 쓰는 사람이 보혜사이므로 사도요한이 보혜사이고, 그래서 이만희가 보혜사가 된다고 주장하는 비논리적이고 비성경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보혜사의 입장에 있었던 천사는 성경에 단 한번도 존재하지 않는다.

  

- 보혜사 성령은 요한복음 1614절 말씀대로 예수님의 것을 가지고 와서 장래일을 알린다. 계시록 11~3절과 10장에 본 바 보혜사의 입장에 있는 천사가 택하여 쓰는 사람은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전해 받는 사도 요한이다. 그러므로 요한은 성령의 대언자로서 보혜사의 입장에 놓인다. 그는 진리의 성령은 아니지만 그와 함께 하는 영(14:17)으로 말미암아 보혜사의 위치에서 대언하게 된다. 계시록 성취 때가 되면 보혜사 성령이 함께 하는 대언자 곧 사도 요한의 입장으로 오는 목자가 출현하여 밤과 같이 어두운 심령을 밝힌다. 성경에 무지한 사람들은 그를 핍박할 것이나 그것은 보혜사 성령을 보내신 예수님을 찌르는 행위가 된다.(요한계시록의 실상, 418)

 

즉 보혜사라는 단어는 보혜사의 입장이라는 이상한 표현과 함께, 천사 - 사도요한 - 이만희로 이동되어지는데, 이만희는 사도요한이 입장이 되어진다고 말한다.

이만희는 비논리적이며 비상식적인 말도 안되는 황당하고 무지한 논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정리하여 보자

첫째, 이만희는 천사가 보혜사 입장이라고 주장하는데.... 천사를 보혜사라고 부른 성경은 단 한 구절도 없다.

  

둘째, 이만희는 사도요한이 대언자이므로 보혜사 입장에 놓인다는 주장도 황당한 주장이며, 대언자라는 성경구절은 파라클레토스로서 다른 번역성경은 변호자로 번역하였다, 더욱이 본문은 천사나 사도요한이 대언자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대언자라는 내용이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파라클레토스)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2:1)

 

즉 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는 헬라의 법정용어로서 "피고측 변호사"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장차 심판에서 우리를 변호하여 준다는 뜻이다.

예수가 대언자(변호자)가 되어주신다는 성경구절을 천사라고 해석하며, 사도요한이라고 해석하는 이만희는 도대체 성경을 어떻게 보는 것인지 묻고 싶다. "은혜로 보호해주는 스승"이라는 한문풀이가 보혜사의 뜻인가?

과연 예수가 우리의 변호자가 되신다는 본문구절이 보혜사 성령이 함께 하는 대언자 곧 사도 요한의 입장으로 오는 목자가 출현한다는 뜻인가?

  

[공동번역] 나는 믿음의 자녀인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고 여러분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그러나 혹 누가 죄를 짓더라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의로우신 예수 그리수도이십니다.

 

[표준새번역] 나의 자녀 여러분,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고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씁니다. 누가 죄를 지을지라도 아버지 앞에서 변호해 주시는 분이 우리에게 계시는데,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현대인의성경] 나의 믿음의 자녀들이여,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고 나는 이 편지를 씁니다. 그러나 만일 누가 죄를 짓더라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KJV] My little children, these things write I unto you, that ye sin not. And if any man sin, we have an advocate with the Father, Jesus Christ the righteous:

 

[NIV] My dear children, I write this to you so that you will not sin. But if anybody does sin, we have one who speaks to the Father in our defense--Jesus Christ, the Righteous One.

 

셋째, 이만희가 어떻게 사도요한의 입장이 되며, 사도요한이 어떻게 보혜사의 입장이 되는가? 이러한 주장을 하는 자체가 부끄러운 생각이 들지 않는지 묻고 싶다.

이만희는 천사가 보혜사의 입장이므로 사도요한도 보혜사이고, 사도요한이 보혜사의 입장이므로 이만희가 보혜사가 된다는 전혀 말이 되지 않는 해괴망칙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신천지는 처음에는 이만희가 보혜사라고 주장하다가, 나중에는 진리의 영도 보혜사이고 육체도 보혜사라는 주장을 한다.

 

넷째, 헬라어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이만희가 헬라어 파라클레토스가 음역된 보혜사라는 단어를 한문으로 풀이하여 자신이 은혜로 보호하는 스승이므로 보혜사라고 주장하는 웃을 수 없는 코메디가 연출되었던 것인데, 헬라어를 확인하거나 영어성경, 다른 한글번역성경을 확인하면 그의 거짓말이 그대로 폭로되므로 이만희는 이렇게 웃지 못할 주장을 하고 있다.

 

- 성경이 히브리어나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할지라도 기록된 바 그 예언이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질 말씀이라면, 한국어로 번역된 성경의 말씀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대한민국 사람을 들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로 정확하게 기록했을 터이고, 또한 하나님이 기록된 말씀대로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성령의 역사를 믿는 성도라면 아멘으로 화답할 것이다.(성도와 천국, 9)

 

헬라어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이만희는 실제로 한문풀이를 하고 있다.

그는 삼위일체를 몸이 하나이며(一體) 보좌가 셋(三位)인 사람으로 해석하여 이만희 자신이 삼위일체라고 주장한다. 삼위일체에서 삼위는 위격(인격, person)을 말하며, 일체는 본질(본체, nature)을 뜻한다는 기본적인 용어조차도 모르는 것이다.

히브리서 1:3에서 휘포스타시스”(confidence essence, nature, person)라는 단어가 나타나는데 이 단어의 뜻이 본질, 본체, 실체, 실상이라는 뜻을 갖는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휘포스타시스)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1:3)

 

즉 예수도 하나님과 동일한 휘포스타시스를 갖는다는 성경말씀에서 삼위일체라는 용어가 발전된 것이며, 삼위일체란 한 본질을 가진 세분(three persons in one nature)”으로서 가장 성경적인 정통적인 기독교 신관의 정의가 되어왔다세분은 하나의 본질(nature)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됨(일체)을 유지하는 한편, 각자의 독특한 특성(property)에 의해서 위격으로 상호구별(삼위)된다는 뜻이다.

이 교리가 16세기 중국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한자로 三位一體라고 번역되었는데, 선교사들이 한문 그대로 우리나라에 이 중국식의 용어를 들여온 것이다

 

그는 무지한 사이비집단의 교주답게 삼위일체를 몸이 하나이고, 보좌가 셋으로 해석하여 자기가 삼위일체라고 주장을 하여 웃을 수도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 본문 21절의 말씀은 위()가 셋이요 육체는 하나이니 삼위일체라 할 수 있고 312절에는 이긴 자에게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을 기록하였으니 일체(一體)에 위()가 셋이니 이것이 말하자면 삼위일체이다.(천국비밀계시)

   

3) 성령과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의 영

 

- 성령은 일반 성령이 있고 진리의 성령 보혜사가 있다. 목자도 일반목자가 있고 약속의 목자(대언의 목자)가 있으며, 교회도 일반교회가 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성경에 약속한 성전이 있다. (이만희, 성도와 천국, 명심할 사항, 227)

 

신천지에서는 이만희가 예수의 영을 받았으며, 진리의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는데, 예수를 믿고 거듭난 성도들은 모두 성령을 받는다. 신천지 교주 이만희는 오직 그만이 예수의 영을 받았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성도들이 받는 일반 성령과 예수의 영은 다르다고 주장할 수 밖에 없다.

처음 단추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마지막 단추는 맞출 구멍이 없어진다. 결론적으로 성경적으로 볼 때에는 그리스도의 영과 하나님의 영, 성령은 모두 동일한 것이라고 말씀 드리며, 단지 명칭적인 차이가 있을 뿐이다.

 

381년 콘스탄티노플회의에서 325년의 니케야회의에 만들어진 니케야신조에 또한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 성부에게서 나오시며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예배받고 영광 받으시며 예언자를 통해서 말씀하신.....”이라는 구절이 추가되었다.이 추가된 문구의 해석에 대해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에서 심각한 대립이 발생하였다. 동방교회에서는 성령이 성자를 통해서 성부에게서 좇아나심으로 해석했고 서방교회에서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좇아나심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 단어가 바로 유명한 필리오케(Filioque)’라는 라틴어인데 그 뜻은 “...와 성자에게서라는 의미이다. 동방교회에서는 콘스탄티노플회의에서 추가된 신조를 변조되었다고 주장하였고, 서방교회에서는 확대해석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성령은 하나님의 영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영인가?성령은 성자에 의하여 성부에게서 방출되는가? 아니면 성부와 성자에게서 방출되어지는가?

 

보혜사,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He)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14:26)

 

위 성경본문은 성부께서 예수의 이름으로 보내신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아래 성경본문은 예수께서 성령을 보낸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him) 너희에게 보내리니”(16:7)

 

왜 이러한 상이한 부분이 있을까?

그리스도가 보내는 영이 별도로 있고, 하나님이 보내는 영이 별도로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 성경본문에서 삼위일체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정통삼위일체에서 분명히 삼위의 하나님은 인격적(위격적)으로 구별되어진다. 성부는 성자가 아니고 성자는 성령이 아니며, 성령은 성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서는 삼위는 모두 동일하며, 오직 하나의 신적본질을 공유하고 있다. 즉 성부하나님의 본질은 성자예수의 본질과 동일하다. 그래서 예수는 하나님의 본체이시며, 하나님의 형상인 것이다.

 

우리는 어떤 신학적인 주장을 하기 위해서 단지 추측적이고 인위적인 논리로 성경을 판단할 수는 없으며, 반드시 그 증거를 제시하여야만 한다. 이러한 성경적인 증거가 정통교리의 첫 번째 조건이 된다. 성경에서 성령은 간혹 아들의 영이라고 불리워지며 그 아들의 영, 즉 예수의 영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에게 보내진다.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4:6)

 

누가 보아도 위 갈라디아서 본문에서 하나님이 보내는 아들의 영은 성령이 분명하다. 또한 다음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영그리스도의 영”, 그리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은 모두 동일하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8:9-10)

 

성경 본문에서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 그리고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 즉 하나님의 영이며,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영, 즉 성령의 근본적인 구별은 없는 것이 분명하다. 믿는 성도의 안에 거하는 성령은 오직 하나이며, 오직 한분의 성부와 한분의 성자가 있는 것과 같이 오직 한 분의 성령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이중방출(Double Procession)의 개념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그래서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방출된다고 선포되었던 것이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상호연합과 교통하심으로 본질적인 공통의 개념을 갖는다. 하나님의 영이시며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사도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일1:3)

 

그리스도와 성령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신자들의 마음 속에 성령과 그리스도께서 같이 거하신다고 말할 수 있다. (2:20, 8:9-10). 또한 성령과 성부하나님도 본질적인 동일성을 표현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성령이 거하는 성도들의 몸은 하나님이 거하는 성전이라고 불리워진다.(고전3:16)

 

이만희가 재림예수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하여, 예수의 영과 일반 성령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신천지가 과연 성경적인 곳이라고 생각되는가? 그들의 교리는 성경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교리에 성경을 부분적으로 짜맞추는 것뿐이다.

성경은 성령이 곧 아들의 영이며, 예수의 영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영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성령은 한분이시지만 그분의 여러가지 역사를 나타내는 명칭을 많은 것이다. 성령은 하나님의(여호와의) , 하나님의(여호와의) , 보혜사, 그리스도의 영, 진리의 영, 아들의 영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려진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16:6-7)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4:6)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 2:10-11)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에게 그 뜻을 보이신다. 하나님의 영이 곧 하나님을 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명칭은 비록 다르지만 성도들에게 거하며 역사하는 성령은 오직 하나인 것이다.

이만희는 예수의 영을 받았고, 교인들은 일반 성령을 받았다?  참으로 웃을 수도 없는 주장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1:6-8).

   

또한 사도바울은 기록한 말씀을 진리의 기준으로 제시하였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고전4:6).

   

또한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도 자의적으로 말하지 않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말씀을 증거한다. 즉 기록된 성경과 다른 복음을 전하거나, 다른 가르침을 전하는 사람들은 모두 거짓선생이며 거짓 선지자이다.

   

4) 예수님이 약속하신 그 보혜사는 오순절에 성령으로 오셨다.

   

본문은 예수가 제자들에게 직접 말하는 화법이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라” (16:12-14)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파라클레토스)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4:16-17)

  

위 본문에서 너희가 누구를 말하는가? 기본적인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너희예수의 제자들을 말하는 복수대명사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신천지에서는 이 진리의 영이 이만희에게 왔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인칭대명사는 왜 너희라고 복수대명사를 사용하였는가? 이 보혜사 성령은 이만희가 아니라 바로 오순절에 오신 성령으로 성취되었다. 그 증거가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24:49)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보혜사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여러번을 약속하시면서 예루살렘 성에 머물라고 하셨다. 이 약속은 누가복음뿐 아니라 사도행전에도 나타난다. 특히 요한복음에서는 내가 가면 보혜사 그를 보내주시겠다고 여러번을 약속하셨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1:4-5)

   

그리고 제자들은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 그 성령이 바로 예수님의 약속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11:15-16)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2:38-29)

   

이 약속이 곧 요엘서에서 예언한 그 성령이었고, 베드로는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요엘서를 인용하며 그 성령이 성취되었음을 말한다.

   

5) 성령의 회상사역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할 것”(15: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14:26)

    

물론 성령께서 개인적이며 일상생활적인 것까지 일일이 직접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은 아니다. 정말 그렇게 가르쳐 주셨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또 자기 자신에게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모두 성령의 감동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신비주의라고 단언하여도 좋다. 오순절에 오신 성령은 예수가 가르치는 말씀을 증거하였다. 이것을 성령의 회상사역이라고 하는데, 예수님이 가르쳤던 말씀을 제자들에게 기억하게 해주었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요일 4:6).

 

진리의 영은 이만희만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는 누구나 말씀으로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다

 

도요한이 요한일서에 말한 우리의 말은 사도들의 말이며, 곧 기록된 성경을 뜻한다. 즉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은 사도들의 말을 받아들이는 기준으로 구별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성경말씀으로 영을 구별한다는 뜻이다. 성령은 개인의 장래를 점을 쳐주거나 예언을 하여주거나, 일상생활의 일거수 일투족과 세상의 지식까지 모두 일일이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다.

신천지는 기독교에서 성령을 받았다고 가르치는데, 그러면 성령을 받으면 모든 것을 아는가? 라고 질문을 한다.

예수님은 오실 성령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세상을 책망하시리라”(16:8).

  

성령께서는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책망을 하여 주실 것이다. 곧 우리는 성령의 조명과 감동으로 죄와 의와 심판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며, 예수가 가르치셨던 말씀이 무엇인지 성경을 통하여 알려 주신다.

  

성령이 모든 것을 가르쳐 주므로 공부나 학습이 전혀 불필요하다는 주장은 잘못된 주장이다. 주관적인 신비주의자들은 인간교사를 부정하고 오직 성령으로만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아야만 한다고 주장하거나, 직접계시만을 주장하기도 한다성경에서 보면, 초대교회는 성령의 은사로써 교사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고전 12:28, 14:19; 12:7, 4:11)

  

즉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진리를 가르치기 위하여 교사를 도구로 사용하셨다. 이러한 성령의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이신 교회에 덕을 세우도록 주어지는 것이다(고전 14:12).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에서도 가르쳐 지키게 하라”(28:20)는 말씀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다른 사람을 가르치며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인도하는 교사들은 기도하며 최선을 다하여 공부하고 미리 준비하여야 한다. 성령의 가르침이란 인간의 노력을 전혀 배제하여도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의 노력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며,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도 잊으면 안된다. 시편의 기자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119:18).

  

아볼로는 학문이 많고 일찍 주의 도를 배운 사람이었으나 그는 요한의 세례만 알던 사람이었다.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18:24-25).

   

그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성경을 자세히 풀어 배움을 받고 나서부터, 공중 앞에서 성경으로 유대인들을 이기게 되었고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증거하게 되었던 것이다(18:26-28). 아볼로는 초대교회의 성경교사였으며 지도자였다. 훗날 바울은 아볼로에게 고린도교회를 다시 방문해달라고 권유하기도 한다(고전 16:12).

바울은 성경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고전3:6).

   

즉 하나님께서 자라나도록 역사하시지만, 인간 교사의 노력과 가르침을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즉 인간 교사의 노력과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함께 동참되는 동역을 말하는 것이다. 바울은 아볼로나 자신의 노력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아볼로와 자신이 모두 하나님의 동역자임을 말하였다(고전 3:9).

   

아볼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성경의 가르침을 자세히 배운 후에야 그도 역시 성경 교사가 되었던 것이다(18:24-28). 또한 몸 되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 각각 지체가 되는 우리들이 서로 연합함으로서 각각의 은사가 공동체를 위하여 활용되어져야만 한다.

   

디모데는 저희가 또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 2:2)라고 말했으며, 히브리서 기자는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5:12)라고 기록하였다.

   

안디옥 교회에서는 스데반의 순교로 흩어진 무명의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복음이 전파되어 교회가 세워졌는데, 바나바와 바울이 일년간을 교회에 머물면서 가르쳤을 때에야 비로소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11:26).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11:25-26)

 

6) 하나님의 교회가 말하는 보혜사

   

우리나라에 자칭 보혜사는 47명이다.

특히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88년에 면 종류를 먹다가 죽은 안상홍이 보혜사 성령이라고 주장한다. 더욱이 안상홍을 하나님, 초림예수, 재림예수, 보혜사 성령, 멜기세덱, 이삭이라고 주장하며, 강림하실 예수라고 주장한다.

그동안 박태선과 같이 교주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는 이단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하나님의교회는 15역이며 양태론적인 삼위일체이다. 재림과 강림은 다르다고 주장하며, 안상홍이 재림예수였으며 장차 강림할 예수도 안상홍이라고 주장하므로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17역으로 가르치고 있는 사이비단체이다.

  

박태선(전도관) 출신인 이영수, 김풍일, 조희성등 하나같이 자신을 보혜사이며 이긴자라고 주장하는데, 모두 박태선에게서 그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이만희 역시 전도관 출신으로서 보혜사, 이긴자, 감람나무, 두 증인등 모두 배워온 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뿐이다

 

결론적으로 교주나 지도자를 보혜사라고 가르치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이단이라고 보면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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