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속죄설과 제한속죄설

  • 9월 27, 2018

만인속죄설과 제한속죄설


 

이인규


 

 

캘빈주의는 예정설을 그 교리로 채택하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예정 안에서 제한속죄설을 주장하며, 웨슬레안은 믿음을 강조하므로, 속죄의 대상을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다는 조건으로 확대하여 만인속죄설을 그 교리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다른 점일까요?

간단히 요약하자면,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가신 대속의 대상범위가 만인을 위한 것(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사람)인가 혹은 제한적인 사람(즉 예정적인 선택을 받은 사람)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 결과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만인속죄설이나 제한속죄설이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곧 하나님의 예정 안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제한적 속죄설을 근거하는 대표적인 성경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17:9)

 


물론 제한속죄설을 뜻하는 성경구절도 성경에는 있으며(: 내 양, 자기 백성), 그러나 만인속죄설을 뜻하는 성경구절도 분명히 있는데(: 누구든지, 모든),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2:2)

 


아래 성경구절을 보면 동일한 구절에서 39절은 제한된 대상을 말하고, 40절은 모든 믿는 자의 넓은 대상을 말합니다.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제한적 속죄설이나 만인 속죄설이 구원이라는 결과적 개념으로 볼 때에는, 동일할 수도 있습니다. 만인 속죄설도 모든 인류가 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속죄라는 대상적인 개념으로 볼 때에는 달라집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15:22)

 


죽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즉 아담 안의 모든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죽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누구든지 죽기 때문에, 이 단어의 개념은 제한된 사람을 뜻하지 않으며, 병행구조로 본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모든 사람이 삶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하여야만 할 것이며, 그러나 이 단어의 개념은 제한적이 아니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본문에서 모든 사람이라는 보편적인 개념은 그리스도 안이라는 전제조건이 붙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였지만, 그 개념은 언제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즉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제한없이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는 아담 안에서라는 범주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의미는 모든 인류의 범주를 뜻하지만,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라는 가능성의 범주를 포함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인속죄설에 대한 성경구절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5:1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아래 성경구절은 분명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구원이 있으리라는 뜻입니다. 아래 구절은 주의 이름을 불러도 예정된 자와 선택된 자만이 구원을 얻는다는 뜻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여집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2:21, 10:13)

 


그러나 우리가 주의하여야 할 것은, 이와 같은 속죄의 범위가 곧 구원의 실제적인 범위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혹간 이러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만인속죄라는 것은 장로교회(제한속죄)와 다른 감리교회의 교리이기도 하지만, 성경적인 기록에서 보면 우리는 아래 사항에 동의하여야만 합니다.

 


(1)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모두 다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2)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주어졌으며 이를 불평할 수는 없다.

(3) 그리스도의 피의 값은 무한한 공로가 되어진다.

(4) 복음의 선교와 전도는 만인속죄설, 보편속죄설을 근거로 한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신 것은 맞지만, 그리스도께서 이미 모든 사람을 구원하셨다는 것은 틀립니다. 이러한 결과적인 관점에서 속죄의 대상을 생각한다면 그리스도의 속죄는 제한적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불신자들에게 예수님은 당신의 죄값을 위해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예수님은 당신을 구원하셨습니다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님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광야로 불러내셨지만. 뱀에게 물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살았던 것이 아니라, 장대에 달린 놋뱀을 쳐다본 이스라엘 백성만이 살았던 것입니다.

 

다른 예를 들면, 출애굽을 앞둔 유월절 밤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하나님의 진노를 피한 것은 아닙니다.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이스라엘 집만 하나님이 Pass-Over 하셨던 것입니다.

 


특히 다원주의 사상이 만인속죄설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만인속죄를 곧 타종교 구원의 개념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스도 밖의 구원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만인구원론은 만인속죄설과 다르다는 것을 명심하여야만 합니다.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웨슬레조직신학(한영태)에서 발췌한 글로서, 만인구속설을 받아들이는 감리교회의 입장이 어떠한지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웨슬레에게 나타나는 구속의 우주적인 의미는 만인구속설이지 만인구원설이 아님에 주의하여야 한다. 만인구속설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속죄사업 때문에 자동적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아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총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지만, 누구든지 믿는 자만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웨슬레의 구속론은 소시너스파나 일위론자들이 주장하는 만인구원설과는 아주 다르다. (웨슬레 조직신학 156)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구원을 받기로 선택된 사람들은 이미 예정되어있으며, 제한적입니다. 그러나 피구원자의 입장에서는 예수를 믿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으며, 그 대상은 누구든지가 될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정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며, 믿음의 주체는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피구원자인 사람이 예정하는 것이 아니며, 물론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예수를 믿는 주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구원을 받지 못하고 멸망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에 예정 밖에 있다고 말할 수도 있고, 그가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에 하나님은 미리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의롭다하시고, 영화롭게 하십니다.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8:30)

      

그러나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어야 할 것입니다. 즉 예정하시는 하나님과 믿음을 갖는 인간의 주체적인 차이라고 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