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길자는 어머니하나님이 아니다
이인규
안상홍은 1964년에 안식교에서 제명되어 부산에서 “새언약 유월절언악교회”를 세웠다. 당시에 서울 동대문에도 그 교회가 있었는데, 그 동대문 교회의 목사가 김주철(현 하나님의교회 총회장)이고, 전도사가 장길자(현 어머니하나님)였다.
안상홍이 1985년에 죽고난 후, 김주철이 만든 하나님의교회에서 장길자가 임시 총회에서 어머니하나님으로 임명되었다. 즉 하나님의교회는 부산에 있는 새언약 유월절언약교회에서 분파되어 만들어진 종파이다. 대부분 이단들은 교주가 사망 후에 그 교세가 쇠퇴하는데, 하나님의교회는 안상홍이 죽은 후에 더 교세가 확장이 되었다. 그 이유가 바로 여자하나님, 장길자가 구심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여자하나님, 어머니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말하지 않는디. 그러나 하나님의교회에서는 성경에 어머니하나님, 여자하나님이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그들이 주장하는 여자하나님 교리는 성경을 짜맞추는 수법에 불과하다.
하나님의교회가 주장하는 어머니하나님 교리는 크게 4가지가 있다.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고 반증을 하여 보자
1) 하나님의 형상이 남자와 여자인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더욱이 창1:27 본문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남자와 여자라고 주장하는데, 그러나 본문은 하나님의 형상이 남자와 여자라는 뜻이 아니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는 뜻으로서, 그 사람이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는 뜻이다.
즉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것은 “사람”이며 (주절), 그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는 것이다 (종속절).
또한 ‘하나님의 형상’은 보이지 않는 영이기 때문에, 가시적이며 신체적인 형상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성, 무죄성, 창조성과 같은 영적인 의미를 포함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는데, 사람이 타락하고 범죄하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의 교회는 삼위일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지와 함께 “인격적 복수”에 대해서 동문서답을 하고 있다. 우리는 “삼위” 즉 인격적인 복수를 말하는데, 하나님의 교회는 “일체”가 한 몸이므로 복수로 표현될 수 없다는 웃을 수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성삼위일체에서 일체의 뜻이 무엇인가? 한 몸 즉 같은 한 분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복수로 표현될 수 없다”(모세와 지팡이, 12쪽)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이므로 복수라는 주장을 하는데, 문법적으로도 ‘하나님의 형상’은 남자와 여자가 될 수가 없다.
‘엘로힘’은 남성복수명사이고, 히브리어 원문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His image”이며, 3인칭 단수이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의 형상이 남자와 여자의 부부를 뜻한다면 “Their image“라고 표현되었어야만 하므로 성경적인 모순이 생기게 된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골1:15, 고후4:4)이라고 기록되어있는데, 하나님의 교회와 같이 성경을 해석하면 예수님이 남자와 여자의 형상이라고 해석하여야 한다. 또 장차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고전15:49, 빌3:21))고 성경은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이 우리가 장차 남자와 여자가 된다는 것을 뜻하는가?
성경은 오히려 정반대가 되는 성경구절이 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고전11:7)
2) 신부가 장길자인가?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2)
본문은 새 예루살렘 성이 신부라는 것이 아니라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처럼 아름답다는 비유적인 표현일 뿐이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계 21:9-10)
하나님의교회는 어린 양의 아내를 보여준다고 하고 성령이 사도요한을 데리고 갔는데, 하늘에서 내려오는 예루살렘 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이 장길자라고 주장한다.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계 21:24-27)
그러나 성령께서 보여준 것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예루살렘이라는 장소였으며, 그 장소에 있는 성도들이 바로 신부라는 것을 말하여 준다. 하늘의 예루살렘은 우리나라 전체 면적의 약 3배 정도로 큰 도성이며, 정금과 아름다운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계 21: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계 21: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계 21: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계 21:13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계 21:14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계 21:15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 자를 가졌더라
계 21: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계 21:17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계 21: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계 21: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계 21:20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계 21: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그 성을 측량하니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은데 만 이천 스다디온이라고 성경은 말하며, 그 성곽은 백사십사 규빗이라고 말하고 있다.
1 스타디온은 170-190m(189-215 야드)이고, 1 규빗은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의 길이로서 약 44.4cm(19.5 인치)의 길이이다. 즉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 도성이 말하는 만이천 스타디온은 2,160Km이고, 그 성곽 벽의 높이인지 두께인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지만 약 65m가 된다. 다시 말하면 실로 엄청난 크기로서 우리나라 면적의 약 3배가 넘는다고 한다. 이것은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거할 새 예루살렘 도성으로서, 그 크기가 대단히 크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 성이 장길자라고 주장한다. 장길자가 이렇게 크고 뚱뚱한가? 장길자의 길이와 넓이와 높이가 모두 같은가? 성령께서 어린양의 신부를 보여주겠다고 사도요한을 데리고 간 것은 이 성이 어린양이거나 이 성이 장길자라는 것이 아니라, 이 성 안에 있는 성도들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계 21:26에는 이 도성에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 성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통일교 문선명은 자기 부인을 어린양의 신부라고 했고, 기독교복음선교회의 정명석은 자기 첩을 어린양의 신부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교회는 이것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부’ 또는 ‘어린양의 아내’는 성경에서 ‘구원받은 성도’ 혹은 ‘교회’를 상징한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엡 5:22-25)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1)
또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성도들을 처녀로, 남편을 그리스도라고 비유한 적이 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 11:2)
또한 구약에서도 하나님을 남편, 이스라엘을 신부로 비유하는 예는 많이 있다.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사54:5)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사 62:5)
계시록은 어린양의 신부가 입은 세마포를 성도들의 옳은 행실로 비유하고 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to him)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to her)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계 19:7-8)
3) 성령과 신부
안상홍의 생존 시에 안상홍은 “신부가 144,000 성도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하나님의 교회는 책에서 이 부분을 삭제하였다.
하나님의교회는 성령과 신부가 안상홍과 장길자라고 주장한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2인칭 명령문)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2인칭 명령문)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3인칭)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3인칭) 하시더라” (계 22:17)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성령이 성도(교회)라면 성도가 생명수를 줄 수 있느냐?”(모세와지팡이, 멜기세덱출판사, 2009년, 8쪽)라고 반문을 한다. 생명수를 준다고 초청하는 성령과 신부가 안상홍과 장길자라고 주장을 한다.
이러한 주장은 첫째, 성령이 안상홍이 아니며, 둘째, 신부는 장길자가 아니라 구원을 받은 성도들, 즉 교회를 말한다. 셋째, 생명수를 거저 마시라는 초청은 성령과 신부의 직접 화법이 아니라, 사도요한의 초청이다.
세 번째 주장은 다른 번역성경과 영어성경을 보면 따옴표가 표시되어 있으므로 쉽게 알 수 있다.
[공동번역] 성령과 신부가 “오소서!”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는 사람도 “오소서!” 하고 외치십시오. 목마른 사람도 오십시오. 생명의 물을 원하는 사람은 거저 마시십시오.
[표준새번역] 성령과 신부가 “오십시오!”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듣는 사람도 또한 “오십시오!” 하고 외치십시오. 목이 마른 사람도 오십시오. 생명의 물을 원하는 사람은 거저 마시십시오.
[현대인의성경] 성령님과 신부가 “오소서!”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도 “오소서!” 하고 말하십시오. 그리고 목마른 사람도 오십시오. 누구든지 생명의 물을 마시고 싶은 사람은 와서 마음껏 마시십시오.
[KJV] And the Spirit and the bride say, Come. And let him that heareth say, Come. And let him that is athirst come. And whosoever will, let him take the water of life freely.
[NIV] The Spirit and the bride say, “Come!” And let him who hears say, “Come!” Whoever is thirsty, let him come; and whoever wishes, let him take the free gift of the water of life.
“Let him take”라는 영어 구절은 “그에게 (생명수를) 마시게 하라”는 뜻이며, 신부가 생명수를 주는 것이 아니다. 본문은 4번의 초청이 있다. 앞의 두 개의 초청이고 2인칭동사로서 직접화법이며, 뒤의 두개의 초청은 3인칭 동사로서 간접화법이다.
즉 초청한 성령과 신부가 생명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첫 번째의 “오시요”라고 초청한 것이며, 그 초청을 듣는 사람들이 두 번째의 “오시요”를 화답하라는 것이며, 세 번째와 네 번째의 초청은 사도요한 자신이 말한 것이다. (온 사람 중에서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마시고 싶은 사람이 마시도록 하라는 것이다.(Let him take)
물론 그리스도에게로 오라는 것이며, 당연히 생명수는 그리스도가 주신다.(21:6)
그러나 신부와 성령은 생명수를 주는 주체가 아니라, 첫 번째의 “오라”고 초청을 한 것이다.
사도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주님에게 직접 들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계 7: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계 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 마른 자에게 값 없이 주리니
4) 갈라디아서의 ‘어머니’가 장길자인가?
안증회는 갈라디아서 4장26절에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고 한 구절에서 ‘어머니’가 바로 ‘장길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갈라디아서가 말하는 하늘의 예루살렘이라는 용어는 계시록의 새 예루살렘 도성과 전혀 다르다.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 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갈 4:24-31)
갈라디아서 4장24절은 ‘비유’라고 말하고 있다. 즉 바울은 이 두 여자를 두 언약(율법과 복음)으로 상징적인 비유를 한 것이다. 즉 하갈은 (율법)이고 사라는 (복음)으로 비유하였다.
갈라디아교회는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이 많았다. 그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음 외에도 할례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날과 달과 절기를 지켜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하여 ‘율법과 복음’에 대하여 알기 쉽게 비유적으로 하갈과 사라를 비유함으로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하가(하갈)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갈4:25-26)
|
하 갈 |
사 라 |
단어의 뜻 |
방황하는, 도피하는 |
왕비, 고상한 여인 |
언약의 비유 |
율법 |
복음 |
어머니의 비유 |
종의 어머니 |
자유자의 어머니 |
출생의 비유 |
육체를 따라 난 자 |
성령을 따라 난 자 |
성도와의 관계 비유 |
계집 종의 자녀 |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 |
예루살렘의 비유 |
땅의 예루살렘 |
하늘의 예루살렘 |
유업의 비유 |
유업을 얻지 못함 |
유업을 얻음 |
결론적인 비유 |
구원을 받지 못하는 율법의 언약에 묶여 있는 자녀 |
구원을 받는 복음의 약속을 받은 자녀 |
안증회에서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우리 어머니니라”(4:26)을 장길자로 비유하는 것은 그야말로 상대할만한 가치조차 없는 주장이다. 본문을 정리하자면, 하갈(율법)은 육체의 어머니, 종의 어머니, 지상의 예루살렘을 상징하며, 사라(복음)는 약속의 어머니, 자유자의 어머니, 하늘의 예루살렘을 상징한다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라고 불렸다. 그것을 비유하여 바울은 사라를 복음을 따르는 ‘자유자의 어머니’라고 비유했고, 하갈을 율법을 따르는 ‘종의 어머니’로 비유한 것이다.
이런 주장은 안상홍 생존시에 엄모라는 여자가 자신이 하늘의 새 예루살렘이며, 자신이 사라라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안상홍은 이것을 비판하기 위하여 새 예루살렘과 신부라는 책을 쓴 적이 있었는데, 그 책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었다. 부산유월절새언약교회에서 안상홍의 이름으로 출간한 책에는 아래 부분이 기록되어 있지만, 하나님의교회에서 발간한 책에는 그 내용이 삭제되어 있디.
– 그 예루살렘이 엄XX이 되었다면 엄XX은 자기 아들하고 결혼한 셈이 된다. 왜냐하면 사라의 아들이 이삭이요 이삭은 또한 그리스도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엄XX은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삭의 어머니)도 되고 그리스도의 신부(안상홍의 아내)도 된 셈이다. 엄XX은 나를 눈 먼 이삭이라고 하면서 자기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 즉 사라라고 하니 결국 이삭, 아들하고 살겠다고 하니 이런 해괴망칙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새예루살렘과 신부, 안상홍, 18쪽)
엄모 여인은 부산에서 전도사였는데, 안상홍과 동거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엄 XX 전도사가 자신이 사라라고 하면 이삭이었던 안상홍이 아들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안상홍은 그 책에서 “엄XX는 그리스도의 어머니도 되고, 그리스도의 신부도 되는가?”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교회는 안상홍을 하나님, 예수, 보혜사, 이삭, 멜기세덱이라고 주장하였으니 결국 죽었다. 어머니하나님 장길자도 결국 죽을 것이다. 불사의 하나님을 사칭하는 하나님들이 결국 모두 죽었고, 또 장차 죽게 된다는 것은 모두 가짜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