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도운동의 비판 (임파테이션, Impartation)

  • 5월 23, 2015

                                   신사도운동의 비판 (임파테이션, Impartation)


                                                                                                                                          이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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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의 사진으로서 본문 기사의 내용과 관계가 없습니다)


최근에 신사도운동과 그 유사한 단체에서는 안수를 통하여 성령과 그 은사, 능력을 전이시킬 수 있다고 주장을 한다. 물론 성경에는 사도들이 안수를 하는 것과 동시에 성령을 받는 내용이 일부 기록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성령과 은사를 어떤 사람 혹은 물질적인 매개를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이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아주 위험한 견해다. 왜냐하면 성령과 성령의 은사는 사람이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교회라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각 지체에게 나누어 주는 것으로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은사란 사람이 나누어 주는 선물이 아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 12:4-12)

성경을 보면, 성령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임재하시며 온 세상에 충만하신 분으로서, 그분의 뜻하시는 대로 임하실 수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성령께서 사람의 안수라는 방법을 통하여 전이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안수는 하나의 기도로서 상징적이며 의식적인 방법으로 보아야 한다.

안수를 통하여 성령님의 능력, 은사를 전이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인용하는 대표적인 성경구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로마서 1 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신사도운동의 주장은 사도바울이 신령한 은사를 성도들에게 나누어준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나누어준다는 단어가 영어로 impart 이기 때문에 Impartation 이라는 용어가 나타난 것이다. 과연 사도바울은 신령한 은사를 성도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고 해석하여야 하는가? 좀더 정확한 해석을 위해 사도 바울이 로마서 111절에서 말한 어떤 신령한 은사’(some spiritual gift)라는 표현에 대해서 다른 번역성경을 비교하여 보자.

[공동번역] 내가 여러분을 애타게 만나보려는 것은 여러분과 함께 영적인 축복을 나눔으로써 여러분에게 힘을 북돋아주려는 것입니다.
[표준새번역] 내가 여러분을 간절히 보고 싶어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신령한 은사를 좀 나누어주어, 여러분을 굳세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현대인의성경] 이처럼 내가 여러분을 간절히 만나려고 하는 것은 영적인 축복을 나눔으로써 여러분의 믿음을 강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KJV] For I long to see you, that I may impart unto you some spiritual gift, to the end ye may be established;
[NIV] I long to see you so that I may impart to you some spiritual gift to make you strong–

임파테이션을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은사’(카리스마)라는 단어를 영적은사로만 해석하는 것이다. 공동번역과 현대인의성경은 축복으로 번역하였으며, 영어성경은 ‘gift’로 번역하였다. 성경에서 은사’(카리스마)라는 단어는 언제나 고린도전서 12~14장에서 언급되는 방언이나 예언과 같은 영적 은사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원래 문자적으로는 선물, 증여를 뜻하는 단어이며, 은혜와 축복을 뜻하거나, 심지어 영생과 구원도 카리스마라는 단어가 사용된 적이 있다. 같은 로마서를 살펴보면, 은사(카리스마)라는 단어는 영적은사가 아니라, ‘은혜, 축복, 선물, 자비의 뜻으로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은사(카리스마)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카리스마)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5:15-16)

위 본문에서 은사(카리스마)는 영적은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뜻하며, 구체적으로는 십자가 대속에 의한 죄사함의 은혜를 뜻한다. 다른 번역성경은 은총, 은혜로 번역하고 있는데, 본문에서 카리스마는 영적은사라는 뜻이 아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카리스마)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6:23)

다른 번역성경은 선물로 번역하고 있으며, 본문 역시 고린도전서와 같은 영적은사로 해석할 수 없다. 영생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은사(카리스마)라는 단어는 항상 방언이나 예언등과 같은 영적은사만을 뜻하지 않는다. 특히 롬 1:11의 다른 번역성경은 축복, 선물로 번역하고 있다. 즉 사도바울은 영적인 축복이나 선물을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었던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실제로 롬 15:29에서 사도바울은 축복을 가지고 간다고 기록하고 있음을 확인하기 바란다.

내가 너희에게 나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15:29).

실제로 어떤 목사들은 외국의 아이합이나 또는 유사한 신사도운동 단체를 찾아가서 그 목사에게 안수 즉 임파테이션을 받고 와서, 성도들에게 안수를 하니 성도들이 쓰러지더라고 자랑을 하는 것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

2) 사도행전 1911~12

또 신사도운동과 그와 유사단체를 하는 사람들은 다음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사도들이 성령을 전이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일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9:11-12)

과연 본문이 어떤 물질을 통하여 신유의 능력이 전이되는 것을 말하고 있을까? 신사도운동가들은 본문의 앞 구절에 있는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일을 행하게 하시니라는 내용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사도바울 자신이 성령과 능력을 바울의 손으로 전이시킨 것이 아니며, 또 바울의 능력이 손수건과 앞치마를 통하여 전이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울을 통하여 행하신 것이라고 성경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지 않는가? 성경은 그 자체가 희한한 일이라는 것을 말함으로서, 그러한 경우가 보편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다른 번역성경을 보자.

[공동번역] 하느님께서는 바울로를 시켜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셨는데
[표준새번역]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을 빌어서 비상한 기적들을 행하셨다.
[현대인의성경]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희한한 기적들을 행하셨다.
[KJV] And God wrought special miracles by the hands of Paul:
[NIV] God did extraordinary miracles through Paul,

바울은 단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물질을 통하여 성령과 능력이 전이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손을 빌어서, 즉 바울을 통하여 역사하신 것이다.

이러한 경우가 실제로 구로동에 있는 M교회에서 행하여지고 있다. L목사가 축복기도를 한 손수건을 환자에게 얹으면 병이 치료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 L목사의 고향에 있는 우물의 물을 안수했더니 물이 단물로 변하여, 그 물을 뿌리면 병이 치료가 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어느 교인은 냉장고가 고장나서 그 물을 뿌렸더니 냉장고가 수리되었다고 주장하며, 그 물을 교회에서 판매하고 있다.

3) 안수

안수라는 단어는 구약이나 신약 모두 손을 얹는 행위(lay hand upon)를 말한다. (특히 하나님의) ‘능력, , 보호를 상징하는 의식이다. 비록 안수가 사람들의 손을 얹는 형식이지만, 그 의미는 하나님의 능력과 힘을 상징하는 하나의 의식인 것이다. 안수를 하는 그 은 신인동형어적인 표현으로서 하나님의 손을 상징한다. 그 안수 자체가 어떤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수라는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간구하고 기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아래와 같이 많은 성경은 안수를 하면서 동시에 기도를 한다는 언급을 하고 있다.

19:13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6: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13: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보내니라
28:8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낫게 하매

물론 안수를 할 때에 성령이 임하고 방언과 예언의 은사도 하게 된 성경적인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것을 잘못 오해하여 어느 개인이 안수라는 방법을 통하여 성령을 전이시키는 능력이 있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19:6)

성경을 자세히 보면, 안수라는 방법을 통하여 성령이 전이된 것이 아니며, 안수를 하매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셨다(came on)는 것이다.


[공동번역] 바울로가 그들에게 손을 얹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리셨다. 그러자 그들은 이상한 언어로 말을 하고 예언을 하기 시작하였다.

[표준새번역] 그리고 바울이 그들에게 손을 얹으니, 성령이 그들에게 내리셨다. 그래서 그들은 방언으로 말하고 예언을 했는데,

[현대인의성경] 바울이 그들에게 손을 얹자, 성령이 내려 그들은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는데

[KJV] And when Paul had laid [his] hands upon them, the Holy Ghost came on them; and they spake with tongues, and prophesied.

[NIV] When Paul placed his hands on them, the Holy Spirit came on them, and they spoke in tongues and prophesied.


즉 성령은 바울의 손을 통한 것이 아니라, “내려오셨다”(came on)는 것이다. 즉 안수는 하나의 의식이며 기도의 방법이었다. 성경은 구체적으로 안수를 하는 손을 통하여 성령이 전이되었다는 구절이 없다. 더욱이 안수를 통하여 성령이 전이되고 그 힘으로 쓰러졌다는 성경적인 근거는 전혀 없다.

그렇다면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은 사람의 안수를 통하여 이루어졌을까? 아무도 안수를 한 적이 없었으며, 오순절의 성령은 각 사람의 위에 불의 혀와 같이 임하셨다고 성경은 말한다( 2:1-4 참고). 다음 성경에서도 안수가 없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성령이 내려오셨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10:44-46)

안수에 대해서 신구약 성경전체를 살펴보면 안수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첫째, 구약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데 대부분 희생제물에게 죄를 전가시키는 의식으로 사용된다.
둘째, 임직이나 임명에 관련된 의식으로 사용된다( 8:9-11, 27:18-23, 34:9, 6:5-6, 13:2-3).
셋째, 주로 신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데, 예수와 사도들이 병을 치료하거나 축복을 하여주는 의식으로 사용된다,
넷째, 성령을 받게 되는 안수는 한 두번 언급되어지는데( 8:17, 19:6), 그것은 안수자체가 성령을 전이시키는 방법이나 수단이 아니라, 의식적이며 상징적인 방법으로서 기도와 함께 행하여짐으로서 하나님이 직접 역사하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

특히 신사도운동의 원조격인 늦은비운동에서는 안수를 통하여 어떤 사람의 죄를 축출하거나 전이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 적도 있다. 이것은 아주 위험한 주장으로서, 구약의 희생제사를 통한 대속적인 행위를 신약시대의 일상적인 안수로 적용시킨 것이다. 이러한 임파테이션으로 미국의 오순절교단은 1949년에 늦은비운동을 이단으로 공식발표하였다. 미국의 오순절교단은 세이무어라고 불리는 사람을 통하여 아주사 부흥이라고 불리는 방언 집회로부터 유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파테이션을 가르치는 늦은비 운동에 대해서 이단으로 규정했던 것이다.

성경은 희생제물이 되는 짐승에게 제사장이 안수를 하므로서 죄의 전가를 하고 있다. 과연 안수라는 의식이 죄를 이동시킬 수 있어서, 사람의 죄를 짐승에게 전가시켰을까? 사람의 죄는 물질이 아니며 이동되거나 전가되지 않는다.

죄사함은 죄성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죄책(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다. 즉 죄가 있지만, 정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짐승으로 제사를 드리면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죄성이 없어져서 실제로 온전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죄책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속죄를 뜻하는 카파르 푸림이라는 단어는 죄를 덮는다는 뜻이다. 그 짐승에게 사람의 죄가 실제로 이동하여서 그 사람이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대신 죽음으로서 모든 사람의 죄책이 면제된 것을 의미한다. 죄는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뜻하며 곧 대표성을 뜻한다.

신약에서도 그 사상이 나타나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 5:14)

                                             

신사도운동의 자칭 사도들이 안수를 함으로서 성령과 능력, 영적 은사를 전이한다는 견해는 바로 시몬이라는 자의 견해였다. 그는 사도들의 능력으로 안수를 통해 성령을 전이시킬 수 있는 것으로 알고 돈을 주고 그것을 사려고 하였다( 8:17~20). 오히려 사도들은 성령을 주는 것을 하나님의 선물’( 8:20)이라는 것을 주지시키며, 그것을 돈을 주고 사려고 하는 의도에 대해서 시몬을 비판한다.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8:20)

4) 기름부음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크리스마, anointing)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 2:20)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

구약에서 기름 부음은 왕과 선지자, 제사장 특별히 하나님이 임명하시거나 하나님의 사용하시는 제한된 사람에게 해당되었다. 그러나 신약에서 기름 부음은 곧 성령을 받은 것을 뜻하며, 하나님께서는 공동체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고 그 성령을 통해서 자기 백성들을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셔서 자신 안에 거하게 하셨다는 의미이다. 본문에서 요일 2:20에서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받고 요일 2:27에서는 주께 받은 바라고 언급하고 있다.

즉 자칭 사도나 목사의 임파테이션을 통하여 성령을 전이시킬 수 있다는 신사도운동은 성경에서 기름 부음은 안수나 임파테이션과 같은 어떤 행위 자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은 거듭남의 상태를 뜻한다는 것이다.

즉 사도요한은 요한서신을 통하여 영지주의자들의 성유식과 같은 인위적인 형식이나 의식으로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기름 부음이 곧 성령의 내주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아래 성경구절은 기름부음이 곧 성령의 내주라는 것을 말하여 준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후 1:21-22)

성령이나 능력은 안수나 매개체적인 물질을 통하여 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직접 임하시는 것이다. 성경은 성령이 사람을 통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주시는 선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성령의 은사도 역시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성령께서 각 지체에게 나누어주는 선물이다. 또한 성경은 임파테이션(Impartation)의 주체는 성령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영적은사도 성령께서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 12:11)

메시야’(헬라어: 멧시아스. 히브리어: 마쉬아흐)라는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번역하면 그리스도가 되어진다. 구약에서는 주로 왕, 선지자, 제사장같은 직분을 가진 자가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불려졌으며,(왕상19:16, 133:2, 30:22-30) 그 말의 의미는 신성한 지위를 부여하고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약속된 메시야를 기다려왔다.

다시 말하여, “메시야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 선지자, 제사장(29:29)을 의미하며, 그래서 그 세 직분을 예수님의 삼중직분이라고 우리는 말한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임명된 왕도 있었고, 선지자도 있었고, 제사장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직분을 모두 겸한 사람은 예수님 외에 그 누구도 없었다. 그래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크다는 세례요한도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말하였다.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1:20)

성경은 오직 예수만이 구약에서 예언된 그 그리스도(the Christ)이시며,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약속된 메시야라는 것을 명백하게 말해주고 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20:31)

몇몇 이단들은 기름부음(그리스도)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모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특히 일부 신사도운동은 집단그리스도에 대해서 가르치기도 한다. 지방교회와 그 영향을 받은 자들은 그리스도라는 개념을 양태론적으로 성부하나님 자신으로 간주하여, 예수님에 대해서 영이신 성부하나님 자신이 육신을 입고 온 존재로 해석한다.

성경이 이미 2000년 전에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하여도 믿지 말라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실제로 오늘날 자신이 메시야라고 하는 사이비교주들이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다.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하여도 믿지 말고, 골방에 있다하여도 믿지 말라…..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는 오직 한분이시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24:23-26. 참고: 13:21)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24:5)

기독교의 교회는 예수를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베드로와 동일한 신앙고백 위에 세워졌다.

당신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1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