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증인 주요 교리 비판과 반증
정운기 목사 예하성 이대위원장
1.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 개관(槪觀)
여호와의 증인은 미국의 찰스 테즈 럿셀에 의해 창시된 이단으로 두 명씩 짝을 지어 가가호호를 방문하면서 성경을 잘 모르는 기독교인을 집중적으로 미혹하며 포교하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은 사단법인 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에서 발간한 <파수대>와 <깨어라>라는 소책자를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성경공부를 통해 포교하며 <신세계역 성경>이라는 자신들만의 번역 성경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모임 장소는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이라고 한다.
여호와의 증인의 국내현황에 대해 현대종교에서 발간한 <이단바로알기>책자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 공식 웹사이트 ”WATCHTOWER“에 게재된 ”여호와의 증인 전세계 2009년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여호와의 증인 신도수는 97,385명이다. 전국에 분포된 왕국회관 수는 1,412개로 교세는 점진적인 증가추세에 있다”(p.387).
여호와의 증인들이 주장하는 주요 교리들을 살펴보면 이러하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우선 정통교회의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한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삼위일체라는 용어가 성경에 없으므로 비성서적이라고 하며 예수님을 피조물이라고 하면서 신성을 부정하고, 성령도 비인격적인 활동력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들의 신론은 초대교회의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던 아리우스의 사상과 거의 유사하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영혼멸절을 주장한다. 영혼과 육체는 분리될 수 없으며, 육체가 죽으면 영혼도 죽는다고 하며 지옥도 없다고한다.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서인 <성서는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는가?>에 보면 지옥이 없음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일부 종교에서는 사람이 악하게 살면 죽은 다음에 불타는 고초의 장소에 가서 영원히 고통을 당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하느님께 불명예를 돌립니다. 여호와는 사랑의 하느님이시며 결코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고통을 당하게 하실 분이 아닙니다.(요한 첫째 4:8)”(p.64).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님의 육체가 부활한 것이 아니고 영이 부활했다고 하며, 1914년에 영으로 재림해서 하늘 정부의 왕으로 통치를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여호와의 증인의 모임 장소는 교회라고 하지 않고 ‘왕국 회관’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제 최후의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을 통해서 세상 나라는 무너지고 여호와의 왕국은 지상낙원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한다.
여호와의 증인 중 십사만사천명은 하늘에서 예수와 함께 지상 낙원을 다스릴 것이라고 하며, 나머지 여호와의 증인들은 지상 낙원에서 영생할 것이라고 한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피에 생명이 있다며 피를 먹지 말아야한다고 하면서 수혈조차 금지를 시키고 있다. 그로 인해 수혈하면 살 수 있는 환자가 수혈을 거부해서 죽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다’ ‘하나님은 전쟁을 반대하신다’ ‘살인하지 말라고 했다’는 등의 이유를 들며 병역을 거부하고 있는데 병역을 거부하는 실제적인 이유는 세상 나라의 군대는 장차 아마겟돈 전쟁을 통해서 여호와의 왕국의 군대와 최후의 결전을 벌이게 될 적국의 군대로 여기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이단바로알기>에서 여호와의 증인의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국기에 대한 경례 및 애국가 봉창은 우상이므로 하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의무교육도 포기하며, 국가 공무원이 되는 일은 단호하게 거부한다. 국토 방위를 위한 병역의무를 기피하고 공공선거 등 정치활동에도 전연 참여하지 않는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이러한 반국가적인 행위를 하는 이유는 세상 정부를 사탄 체제로 보기 때문이다”(p.383).
윌버 링글은 자신이 저술한 책의 서문에서 여호와의 증인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겉으로는 매우 담대해 보이지만 그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그들의 마음은 만족이 없고 상당히 공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그들이 처해 있는 안타까운 상태 때문에 마음 속으로 눈물을 흘린다”(<여호와의 증인에게 사랑으로 전도하자>, 생명의말씀사, p.5).
이제 본인의 글을 읽는 분들이 윌버 링글이 말한대로 여호와의 증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전도하기를 바라면서 여호와의 증인의 주요 교리를 비판하고 반증해 보고자 한다.
2. 여호와의 증인 ‘神論’ 교리 비판(1)
여호와의 증인은 삼위일체를 부정하면서 성자 예수는 피조물이며 성령은 하나님의 활동력이라고 한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그들의 주장을 살펴보자.
“성서는 예수께서 땅에 오기 전에 하늘에서 사셨다고 가르칩니다. 미가는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임을 예언하면서 그분의 기원이 ”먼 옛날부터“라고 말하였습니다. (미가 5:2) 예수께서도 자신이 인간으로 태어나기 전에 하늘에서 살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3:13; 6:38, 62; 17:4, 5) 하늘의 영적 피조물로서 예수는 여호와와 각별한 관계이셨습니다. 예수는 여호와의 가장 귀중한 아들이며,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는 ”모든 창조물 가운데 처음 나신 분“이라고 불리며, 이는 하느님께서 처음으로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골로새 1:15) 이 아들이 특별한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그분은 ”독생자“이십니다.(요한 3:16) 이 말은 하느님께서 직접 창조하신 분은 예수님뿐이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예수는 하느님이 다른 모든 것을 창조할 때 사용하신 유일한 분이기도 합니다.(골로새 1:16) …
하느님의 맏아들은 일부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하느님과 동등합니까? 성서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앞 항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 아들은 창조된 분입니다. 따라서 그분에게는 분명히 시작이 있었던 데 반해, 여호와 하느님은 시작이나 끝이 없으십니다.(시 90:2) 이 독생자는 결코 자기 아버지와 동등해지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성서는 아버지께서 아들보다 크시다고 명백하게 가르칩니다.(요한 14:28; 고린도 첫째 11:3) 오직 여호와만이 “전능한 하느님”이십니다.(창세 17:1) 그러므로 아무도 그분과 동등하지 않습니다“(<성서는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는가?>, 워치타워聖書冊子協會,2007, pp.41-42).
정통 교회에서는 성자 예수님은 삼위일체 가운데 한 위가 되시는 하나님으로 성부 아버지와 동등한 하나님이심을 믿고 있는 반면에 여호와의 증인들은 위의 인용한 내용처럼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가 아니며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들의 주장에 대해 반증을 해 보자.
먼저 성경은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심을 말씀하고 있다.
빌립보서 2:6-8에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기록되어있다. 빌립보서 2:6을 공동번역성경에서는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라고 번역하고 있다.
빌2:6-8은 예수님이 원래 하나님과 같은 본질, 본체로서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셨지만 인류의 구속을 위해서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낮추시며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셨음을 말씀하고 있다. 개역한글판 관주성경에 보면 빌2:6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에서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부분의 난외주의 내용을 확인하면 “혹 보류”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 빌2:6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보류하시고’라고도 번역될 수 있는 것이다.
빌2:6-8의 말씀을 다시 설명하자면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의 본체이시고 동등하신 분이셨지만 성육신하셔서 이 땅에 계신 동안에만 하나님과의 동등됨을 보류하시고 자신을 낮추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요14:28)는 말씀이나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막13:32)는 말씀들을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가 아닌 근거 구절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 말씀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과의 동등됨을 보류하시고 낮아지신 기간 동안에 하신 말씀이지 하나님과의 동등한 위치에서 하신 말씀이 아닌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신 동안에 하나님께 버림받은(마27:46) 상태까지 낮아지시고 하나님께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은 히브리서 5:8-9의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라는 말씀대로 자신의 낮아짐과 죽기까지 순종하심을 통해 우리의 구원의 근원이 되시기 위해서인 것이다.
또한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골1:15의 말씀으로 하나님이 예수님을 처음으로 창조하셨다라고 주장하는데 골1:15에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에서 ‘먼저 나신 자니’로 되어있지 ‘창조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다. 성경에서 피조물에 대해서는 ‘창조되었다’, ‘지었다’, ‘만들었다’ 등으로 표현하지 ‘나았다’라고 하지는 않았다. 골1:15의 ‘먼저 나신 자니“의 헬라어 원어는 ’프로토토코스‘로서 ’처음 태어난‘ ’초태생의‘(바이블렉스 원어사전)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예수님이 독생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하고 있다. 오히려 ’나신 자‘라는 표현이 피조물이라는 것보다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하는 것은 사람이 자식을 낳았다면 짐승을 낳은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낳았다고 하듯이 하나님이 예수님을 낳았다면 예수님도 하나님이라는 말이지 결코 피조물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본 구절은 예수님이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계신 분으로서의 예수님의 지위와 예수님의 신성을 나타내는 구절로 보아야 하지 예수님이 피조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구절로 보아서는 안된다.
3. 여호와의 증인 ‘神論’ 교리 비판(2)
정통 기독교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성부,성자,성령을 예배하나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여호와의 증인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숭배(여호와의 증인에서는 ‘예배’ 나 ‘경배’를 ‘숭배’라고 표현한다)해야 한다고 한다.
여호와의 증인의 ‘숭배’에 관한 주장을 살펴보자.
“지구 전역을 통하여 숭배의 연합을 위한 감동적인 운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 운동은 모든 민족과 족속과 언어로부터 사람들을 모아들이고 있습니다. … 여호와의 목적은 모든 지성있는 피조물이 숭배에서 연합되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거짓에 속는 일이 없고 아무도 인생의 참 뜻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듬어 찾는 일이 없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송축할 그 날이 오기를 얼마나 갈망하고 있읍니까! (시 103:19-22)”(<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연합된 숭배>, 왙취타워성서책자협회, 1983, pp.5-6).
“여호와 외에 누구 혹은 어느 것이든 숭배해서는 안 됨을 알려 줍니다”(<우리는 지상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 왙취타워성서책자협회,1982, p.46).
“그렇다면 오늘날 참 숭배자들의 단체를 형성하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그들은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말합니다“(위의 책, p.190).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예수님을 “하늘의 영적 피조물로서 예수는 여호와와 각별한 관계이셨습니다”(<성서는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는가?>,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 2007, p.41)라며 피조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니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예수님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숭배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여호와의 주장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살펴보자.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대로라면 성경에 예수님이 경배받으시는 내용이 나와서는 안 되는 것인데 성경에는 예수님이 경배를 받으심이 기록이 되어 있다.
요한계시록 5:12-14에 보면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찌어다 하니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본문에서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함께 경배를 받고 있다. 위 본문의 13-14절을 여호와의 증인에서 발간한 ‘신세계역’ 성경에서도 “왕좌에 앉아 계신 분과 ‘어린 양’에게 … 장로들은 엎드려 숭배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히브리서 1:6을 보면 “또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찌어다 말씀하시며”라고 기록되어있다.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예수님을 ‘천사장 미가엘’이라고 하니(<성경을 사용하여 추리함>,워치타워聖書冊子協會,2002, p.292), 그렇다면 어떻게 천사가 천사를 경배할 수 있는가?
이 외에도 마태복음 28장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과 여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경배하는 장면이 기록이 되어 있다. 예수님이 천사장 미가엘이라면 경배받는 것을 거부했어야 한다. 요한계시록 22:8-9을 보면 천사는 경배받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예수님이 경배받으실 하나님이심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근거는 예수님도 여호와로 불리운다는 사실이다.
로마서 10:13절과 사도행전 2:21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은 요엘서 2:32의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를 인용한 구절이고, 마태복음 3:3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는 구절은 이사야 40:3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는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이 구절들을 보면 구약에서의 ‘여호와’가 신약에서 ‘주’로 호칭되고, 신약의 본 구절에서의 ‘주’는 예수님을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예수님도 여호와로 호칭되어짐을 알 수 있다(신세계역에서는 본 구절의 ‘주’를 모두 ‘여호와’로 번역하고 있는데 마태복음 3:3의 세례 요한이 예수님이 오실 길을 예비한 선지자인 것이 확실한 것을 보면 본 구절들에서의 ‘주’는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명백한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좀 더 확실한 근거가 있는데 그것은 성경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호칭하고 있는 것이다(사9:6, 요20:28, 롬9:5, 요일5:20 등).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볼 때, 여호와의 증인의 ‘예수님이 피조물’이라고 하는 주장은 비성경적인 주장으로 초대교회의 니케아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던 ‘아리우스주의’와 같은 형태의 이단 주장인 것이다.
4. 여호와의 증인 ‘神論’ 교리 비판(3)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성령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삼위일체 중 소위 세째 위라는 ”성신“ 혹은 ”성령“에 관하여는 우리가 이미 살펴 본 바와 같이 한 위(位) 혹은 한 인격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활동력입니다. 침례자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가 물로 침례를 베푼 것처럼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물이 한 인격체가 아닌 것처럼 성령도 한 인격체가 아닙니다.(마태 3:11)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되신 후에 ‘예루살렘’에 모인 추종자들에게 성령이 부어짐으로써 ‘요한’의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성서는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2:4) 그들이 한 인격체로 충만함을 받은 것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활동력으로 충만된 것입니다”(<우리는 지상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 왙취타워성서책자협회, 1982, p.40).
정통 교회에서는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位)가 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으로 믿는 반면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성령은 인격적인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의 활동력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주장에 대해 비판하고 반증을 해 보자.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성령의 인격성을 부정하고 있는데 성경에서는 성령이 인격적인 존재임을 명백하게 기록하고 있다. 첫째, 성경은 성령에 대하여 인칭대명사(‘그가’, ‘내가’)를 사용했다( 요14:26, 행10:19-20). 둘째, 성경은 예수님에게도 사용된 헬라어 ‘파라클레토스’(요일2:1, ‘대언자’ 혹은 ‘보혜사’)가 성령에 대해서도 사용함으로써(요14:16) 성령이 성자와 동일한 인격적인 존재임을 밝히고 있다. 셋째, 성령은 지(知),정(情),의(意)의 인격적인 요소를 가지고 인격적인 활동을 하신다. 성령은 ‘가르치시고’(요14:26), ‘근심하시고’(엡4:30), ‘뜻대로 행하신다’(고전12:11). 넷째, 성령은 인격적인 존재와 인격적인 교류를 나누셨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예루살렘 회의에서 성령과의 인격적인 교류를 통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위한 중요한 결정을 하였다(행15:28 “성령과 우리는 …”).
성령의 신성에 대해서 <그랜드종합교리>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① 명칭– 성부,성자와 마찬가지로 성령에게도 여호와(출17:7 ; 히3:9)와 하나님(행5:3,4 ; 고전3:16 …)이란 신적 명칭이 적용되었다.
② 속성– 성부,성자와 마찬가지로 성령에게도 하나님만이 갖고 계신 영원성(히9:14), 편재성(시139:7-10), 전지성(사40:13), 전능성(눅1:35)이 있으시다.
③ 사역– 창조(창1:2 ; 욥26:13 …), 섭리(시104:30), 성도의 중생(요3:5,6 …), 죽은 자의 부활(롬8:11)과 같은 신적 사역을 성령께서 수행하셨다.
④ 존귀– 세례시 성령의 이름이 성부, 성자와 더불어 거론되며(마28:19) 죄를 사하시고 기도를 들으시며 또한 예배의 대상도 되시는 존귀한 분으로 언급된다(고후13:13)“(<그랜드종합교리>,제2권, 성서교재주식회사,1996, p.33).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성령의 세례를 받는다’는 표현이나 ‘성령의 충만을 받는다’는 표현이 비인격적인 표현임으로 성령이 비인격적인 존재라고 하는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에 대해서도 비인격적인 표현을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호6:3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결국 이러한 표현들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현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인데 이러한 표현을 두고 성령이 비인격이라고 한다면 여호와 하나님도 비인격이라고 해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순절에 모인 무리들이 다 성령충만을 받은 것을 가지고 “그들이 한 인격체로 충만함을 받은 것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활동력으로 충만된 것입니다”라고 하는데 이는 오히려 성령이 하나님의 신적인 속성의 하나인 편재성(遍在性)을 가지셨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위에 밝힌 내용으로 보건대 성령이 인격적인 하나님이심은 명백한 성경의 진리이며, ‘예수님이 피조물’이라는 주장과 함께 ‘성령은 하나님의 활동력’이라며 성령이 ‘인격적 하나님’이심을 부정하는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은 초대교회 때부터 정통교리로 확립된 ‘삼위일체’(三位一體)교리에 반하는 주장으로 비성경적인 이단 교리이다.
5. 여호와의 증인 ‘人間論’ 교리 비판
정통 기독교회에서는 인간의 영혼을 불멸의 존재로 믿고 있는 반면 여호와의 증인들은 사람의 육체가 죽으면 인간의 영혼도 사라지게 된다고 말한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인간의 영혼에 대해서 어떻게 주장하는지를 살펴보자.
“성서에서 ”영혼“은 히브리어 네페시 및 그리스어 프시케를 번역한 말이다. 성서의 용법에 의하면 영혼은 사람이나 동물 또는 사람이나 동물이 누리는 생명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혼“은 육체의 사망시 생존하는 인간의 비물질적인 혹은 영적인 부분을 의미한다. 일부 사람들은 영혼을 생명의 본질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러한 후자의 견해들은 성서의 가르침이 아니다”(<성경을 사용하여 추리함>,워치타워聖書冊子協會,2002, p.277).
“하느님의 말씀을 더 연구해 보면 성서 어디에서도 ”불멸의“나 ”영원한“이라는 표현이 ”영혼“이라는 말과 함께 사용된 경우가 없다. 오히려 성경은 영혼이 멸성이라고, 다시 말해 죽는 것이라고 알려 준다.(에스겔 18:4, 20) 그래서 성서는 죽은 사람을 단순히 ”죽은 영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레위 21:11. … 일부 사람들은 ”영“과 ”영혼“이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성서에서는 ”영“과 ”영혼“이 각기 다른 두 가지 것을 가리키는 것임을 명백히 밝혀 준다. 이 둘은 어떻게 다른가? 성서 필자들은 ”영“에 관해 기술할 때 히브리어 루아흐와 그리스어 프뉴마를 사용하였다. 이 말들의 의미는 성경 자체에서 밝혀 준다. 예를 들어, 시편 104:29은 이렇게 알려 준다. ”당신(여호와)이 저들의 영(루아흐)을 거두시면 저들의 숨이 끊어져 그 흙으로 돌아갑니다.“ … 이처럼 ”영“은 모든 생물을 살아 있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생명의 기운)을 가리킨다”(<성서는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는가?>,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 2007, p.210).
이러한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에 대해 반증을 해보자.
먼저 영혼과 영으로 번역된 단어를 원어적으로 분석해보자. 성경에서 히브리어 ‘네페쉬’는 ‘숨쉬는 존재, 영혼, 생명’ 등의 뜻을 가지고 있고, ‘네페쉬’에 상응하는 신약의 단어는 헬라어로 ‘프쉬케’가 사용되는데, ‘영혼, 목숨, 생명’의 의미를 갖고 있다. 히브리어로 ‘루아흐’는 ‘숨, 호흡, 바람, 영’의 의미를 갖고 있고, 헬라어에 상응하는 단어는 ‘프뉴마’로, 신약에서 ‘바람, 호흡, 생명, 영, 성령’으로 번역된다(바이블렉스 성경원어사전 참조).
개역성경에는 ‘루아흐’나 ‘프뉴마’를 어떤 곳에서는 ‘영’으로 어떤 곳에서는 ‘영혼’으로 번역을 하기도 했다. 이상의 원어적인 분석을 기초로 해서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이 왜 비성경적인지를 살펴보자.
여호와의 증인은 에스겔 18:4의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는 말씀을 근거 구절로 제시하며 ‘영혼이 죽는다’는 말을 하는데 이 구절에서의 ‘영혼’은 원어로 ‘네페쉬’이다. 본 구절을 공동번역에서는 “사람의 목숨은 다 나에게 딸렸다. 아들의 목숨도 아비의 목숨처럼 나에게 딸렸다. 그러므로 죄지은 장본인 외에는 아무도 죽을 까닭이 없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개역성경에서의 ‘영혼’을 공동번역에서는 ‘목숨’으로 번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겔18:4의 “영혼이 죽으리라”는 구절의 ‘영혼’은 ‘목숨’으로 번역한 것이 더 정확한 번역으로 여겨지며, 그래서 본 구절은 죽음을 통해 ‘육신의 생명이 끝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와 같이 여호와의 증인에서 영혼이 멸절된다는 근거로 제시하는 구절(겔18:4,20; 레21:11)들은 목숨, 생명이란 뜻을 가진 ‘네페쉬’를 쓰고 있는 구절들이다. 그러나 구약성경에서 죽은 아이의 ‘혼’(네페쉬)이 다시 몸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으며, 신약성경에서는 ‘영혼’(프쉬케)을 천국이나 지옥에 있는 존재로 표현하기도 했다(계6:9, 계20:4, 마10:28).
이와 같이 성경에서는 ‘네페쉬’ 나 ‘프쉬케’가 불멸의 존재이거나 소멸되는 것으로 표현되는 경우를 볼 수가 있는데, ‘영’ 또는 ‘영혼’으로 번역되는 ‘루아흐’와 ‘프뉴마’는 불멸의 인격적인 존재임을 밝히 보여 주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에서 ‘루아흐’도 멸절된다는 근거로 시편146:4의 “그 호흡(루아흐)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는 구절과 시편104:29절 등을 들고 있는데 이 구절들 중의 ‘루아흐’를 개역성경에서는 ‘호흡’으로 번역되었고, 공동번역에서는 ‘숨’으로 번역되었다. ‘루아흐’가 ‘호흡’이나 ‘숨’으로 번역이 된 경우에는 호흡이나 숨이 끊어지는 죽음을 통해 육신의 생명이 끝나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여호와의 증인의 해석처럼 ‘루아흐’나 ‘프뉴마’를 단지 ‘생명의 기운’으로만 해석한다면 소멸되는 것으로 볼 수가 있다. 하지만 ‘루아흐’나 ‘프뉴마’가 ‘호흡’이나 ‘숨’의 뜻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영’이나 ‘영혼’의 의미도 가지고 있고, ‘영(영혼)’으로 번역된 곳에서는 불멸의 인격적인 존재로 표현되고 있음을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간과하고 있다.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선 성경은 사람의 속에 ‘루아흐’나 ‘프뉴마’로 표현된 영(영혼)이 있으며 이 영(영혼)은 사람의 몸에서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시편31:5에서 다윗은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했고, 고전2:11에서는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 함으로 사람의 속에 영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또한 고후5:4-9에 “…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 기록되어 영(영혼)이 몸에서 분리될 수 있으며, 히12:23의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라는 구절이 있는 것을 보면 몸에서 분리된 영(영혼)이 천국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눅23:46에 보면 예수님이 운명하시면서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했고, 스데반 집사도 순교의 순간에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한 것이나, 예수님이 십자가 상의 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한 것과 예수님이 말씀하신 ’한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부자와 나사로의 영혼이 죽은 후에 내세에 있는 것 등을 보면 사람의 몸 속에 있는 영(영혼)은 몸에서 분리된 후에는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는 존재라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확실한 진리임을 알 수 있다.
성경에 하나님은 영(프뉴마)이시고(요4:24), 성령도 ‘프뉴마’이며(마3:16), 천사도 영(프뉴마)이고(히1:14), 악신도 ‘루아흐’인 것(삼상16:23)을 보면 ‘루아흐’나 ‘프뉴마’는 불멸의 인격적 존재임을 알 수가 있으며, 그러기에 인간의 영(루아흐,프뉴마)이나 영혼이 불멸의 인격적 존재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확연한 성경의 진리인 것이다.
6. 여호와의 증인 ‘基督論’ 비판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의 부활에 관해서 예수님이 영적 인격체로 부활한 것이지 육체가 부활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들의 주장을 살펴보자.
“인간 예수가 죽임을 당하자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충실한 아들이 무덤에 계속 있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시 16:10; 사도 13:34,35) 하느님께서는 예수를 부활시키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으로 부활시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았다고 설명합니다. (베드로 첫째 3:18) 이것은 참으로 큰 기적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제 강력한 영적 인격체로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고린도 첫째 15:3-6) 예수는 최초로 이러한 종류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받으신 분이었습니다. (요한 3:13)”(<성서는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는가?>,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 2007, pp.73-74).
“그러면 예수의 육체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제자들이 그분의 무덤을 보니 비어 있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의 몸을 옮기셨기 때문입니다. 왜 옮기셨습니까? 그것은 성서에 기록된 것을 성취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시 16:10; 사도 2:31) 그리하여 여호와께서는 이전에 ‘모세’의 몸을 옮기신 것처럼 예수의 몸도 옮기시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신명 34:5, 6) 또한 만일 몸이 무덤에 그대로 있었다면 예수의 제자들은 그분이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킴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
그러면 사도 ‘도마’가 예수의 옆구리 구멍에 손을 넣어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형주에서 못박히신 몸을 가지고 일으킴을 받으셨음을 증명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단순히 과거에 천사들이 했던 바와 같이 육체를 입어 물질화하신 것입니다. ‘도마’에게 자기가 누구인가를 확신시키기 위하여 그분은 상처난 구멍이 있는 몸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그분은 한 때 ‘아브라함’이 대접한 천사들이 한 바와 같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는 온전한 인간처럼 보이게 나타나셨습니다. – 창세 18:8; 히브리 13:2“(<우리는 지상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 왙취타워성서책자협회, 1982, pp.144-145).
위의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에 대해 비판하고 반증해보자.
본 주제에 대해 여호와의 증인과의 논쟁의 핵심은 예수님의 몸이 부활했느냐? 몸은 부활하지 않고 영이 부활했느냐?는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예수님의 영이 부활했다고 주장하는 근거 구절로 삼는 말씀이 벧전3:18의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이다. 본 구절의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라는 말씀을 예수님이 육체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영은 부활했다는 것으로 해석을 하는 것이다.
본 구절에 대해서 호크마 주석은 이렇게 해석을 하고 있다.
“본 절의 ‘육체로는’의 헬라어 ‘사르키’( … )와 ‘영으로는’의 헬라어 ‘프뉴마티’( … )는 도구를 나타내는 여격이 아니라 영역을 나타내는 여격이다. 따라서 ‘육’과 ‘영’은 그리스도의 몸과 영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육’은 인간적인 생명의 영역에서의 그리스도를 ‘영’은 부활하신 생명의 영역에서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바이블렉스 원어사전에서도 ‘프뉴마티’에 대해서 ‘죽음을 초월한 삶의 존재방식’이라고 해석을 하고 있고, 공동번역성경에서는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았다’는 구절을 ‘영적으로는 다시 사셨습니다’라고 번역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본 구절에서의 ‘영’을 물질적인 육체에 대비하는 ‘영’으로 보아서는 안되는 것이기에 여호와의 증인에서 본 구절을 근거로 예수님의 부활을 영이 부활했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성경은 많은 곳에서 예수님의 육체가 부활했음을 증거하고 있다.
사도행전 2:31-32에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위의 구절에서 베드로는 시편에 다윗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 예언된 내용을 가지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면서 예수님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않고 살아났으며 제자들이 이 일에 증인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누가복음 24:36-43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을 영으로 생각하는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고 말씀하신 후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잡수셨다.
이것이 예수님의 육체 부활을 확실히 증명하는 것이라는 정통교회의 주장에 대해서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이 아브라함이 대접한 천사들처럼 예수님이 물질화해서 나타나신 것이라고 반증을 하지만 눅24:36-43의 내용은 예수님이 자신의 부활이 영의 부활이 아니고 육체가 부활한 것임을 증명하기위해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라는 말씀을 하시고 자신의 몸을 보이시고 음식을 드신 상황임을 알아야 한다.
위의 ‘여호와의 증인 人間論 비판’의 글에서 영(루아흐,프뉴마)은 불멸의 존재임을 밝힌 바가 있다. 불멸의 존재인 영은 부활이 필요가 없기에 성경에서는 육체(몸)가 죽은 후에 불멸의 ‘신령한 몸’(고전15:44)으로 살아나는 것을 부활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2:19-21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륙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는 말씀에서 자신의 육체가 부활할 것을 예언하셨고 예언하신대로 삼일만에 부활하신 것이다. 이 외에도 예수님의 무덤이 빈 무덤으로 있는 것이나 부활에 관한 천사들의 증언(마28:5-6)들을 들어볼 때 예수님의 육체가 부활했음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진리인 것이다.
7. 여호와의 증인 ‘終末論’ 비판(1)
정통 교회에서는 지옥이 있음을 믿고 있음에 반해 여호와의 증인은 지옥의 실재를 부정하고 지옥은 영원한 멸망의 상징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다. 먼저 여호와의 증인의 지옥에 대한 주장들을 살펴보자.
“일부 종교에서는 사람이 악하게 살면 죽은 다음에 불타는 고초의 장소에 가서 영원히 고통을 당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하느님께 불명예를 돌립니다. 여호와는 사랑의 하느님이시며 결코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고통을 당하게 하실 분이 아닙니다. (요한 첫째 4:8) 불순종하는 자녀를 벌주려고 자녀가 불 속에 손을 넣고 있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겠습니까? 그런 사람을 존경하겠습니까? 아니, 그런 사람을 알고 싶기나 하겠습니까? 전혀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그런 사람은 매우 잔인한 사람이라고 생각될 것입니다” (<성서는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는가?>,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 2007, p.64).
“그러면 예수께서 한 비유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뜻은 무엇입니까? ”어느 날 거지는 죽어 천사들에게 이끌려 아브라함의 품으로 가게 되었고 부자도 죽어서 땅에 묻혔다. 부자가 하데스에서 고통을 당하다가 눈을 들어 보니 멀리 아브라함 옆에 나사로가 있지 않은가!“(누가 16:19-31, 새번역) 이미 우리가 살펴 본 바와 같이 ‘하데스’는 고초의 장소가 아니라 인류의 무덤을 의미하므로 예수께서는 여기에서 하나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
우리는 ‘스올’ 혹은 ‘하데스’가 죽은 자들이 희망을 가지고 쉬는 곳임을 이미 살펴 보았습니다.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이 모두 그곳에 가며, 거기서 부활을 기다립니다. 우리는 또한 ‘게헨나’는 고초의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에서 영원한 멸망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이 “불못”도 문자적으로 불이 타는 곳이 아니라 부활이 없는 “둘째 사망”을 의미합니다“(<우리는 지상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 왙취타워성서책자협회, 1982, pp.87-89).
이러한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에 대해 반증을 해보자.
먼저 원어적으로 분석을 해보면 개역성경에서 ‘죽은 자의 거처’로 해석되는 ‘음부’는 히브리어로는 ‘스올’이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하데스’라고 한다. 그리고 신약성경에서 ‘지옥’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게엔나’로 구약의 히브리어 ‘게 힌놈’(힌놈의 골짜기, 느11:30, 수15:8, 수18:16)에서 유래가 되었다(바이블렉스 원어사전 참조).
먼저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지옥이 없다는 첫 번째 이유로 여호와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사람들을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게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면서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잊고 있다. 공의의 하나님의 심판하심에 대해 성경 살후1:5-9에는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 환난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성경 마태복음 25:41에 보면 예수께서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범죄한 천사들을 가두고 형벌할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불신자가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후에 인간은 죄의 종(롬6:17)이 되어 흑암의 권세(골1:13)에 속해서 살아가기 때문에 죽음 이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된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지옥의 실재함에 대해서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로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다.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비유이기에 한 부자가 들어간 음부(하데스)가 실재하는 지옥이 아니라 ‘인류의 무덤’이라고 해석을 한다. 그런데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비유라기 보다는 실제로 존재했던 ‘나사로’라는 사람의 이야기로 보아야할 개연성이 크다. 왜냐하면 성경에 비유라는 말이 나오지 않고, ‘나사로’라는 이름이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설령 비유라고 하더라도 지옥의 실재를 이야기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은 예수님이 없는 지옥을 거짓으로 꾸며서 말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13:34-35의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는 말씀대로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비유이든 비유가 아니든 예수께서 구약성경에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음부’(스올,하데스)의 세계를 밝히 보여 주신 것이라고 보아야한다.
무엇보다도 지옥이 실제적인 장소임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직접적으로 지옥(게엔나)을 언급하셨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29에서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라고 했으며, 마태복음 10:28에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옥에 관한 여러 표현들 “꺼지지 않는 불“(마3:12), ”영영한 불“(마25:41),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계21:8)이 있고, 마태복음 25:46에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는 말씀을 통해 영생하는 천국이 있음이 확실하듯 영벌의 지옥이 있음도 확실함을 알 수 있다.
8. 여호와의 증인 ‘終末論’ 비판(2)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이 1914년에 재림하셔서 하늘 정부의 왕으로 통치하심으로 하나님의 하늘 왕국이 시작되었으며, 아마겟돈 전쟁으로 인간 정부가 멸망되고 땅은 낙원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을 살펴보자.
“성서 예언의 성취로 볼 때, 1914년에 그리스도께서 왕이 되셨고 하느님의 하늘 왕국은 통치를 시작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탄에게 남은 기간이 ‘짧은’ 때에 살고 있습니다. (계시 12:12; 시 110:2) 또한 우리는 머지않아 하느님의 왕국이 행동을 취하여 땅에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할 것이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성서는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는가?>,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 2007, p.85).
“성서에서 말하는 ‘아마겟돈’은 하나님께서 싸우실 의로운 전쟁이 있을 곳입니다.(계시 16:14, 16) 하나님의 이 전쟁은 의로운 새 질서를 위한 길을 예비해 줄 것입니다. ‘아마겟돈’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들을 모두 죽이는 사람의 전쟁과는 달리 악한 자들만 멸망시킬 것입니다.(시 92:7) 여호와 하나님께서 심판관이실 것이며, 그분은 자기의 의로운 법을 순종하기를 고의적으로 거절하는 자들을 제거하실 것입니다. …
‘아마겟돈’후에는 이 악한 세상의 어느 부분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만 계속 살 것입니다.(요한 1서 2:17)“(<우리는 지상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 왙취타워성서책자협회, 1982, p.155).
“ ‘아마겟돈’후에, 지상 낙원에서는 하나님께서 웅대한 기적을 행하심으로 이 모든 일을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 왕국 통치 아래서는 늙어가는 일이 정지될 것입니다. 늙은이들이 다시 젊어지기까지 할 것입니다. … 지상 낙원에서 청춘과 완전한 건강을 즐기며 사는 사람들은 아무도 죽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죽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위의 책, p.164).
위의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들에 대해서 비성경적인 해석을 비판하고 반증을 해보자.
여호와의 증인들은 단4:16의 ‘일곱때’를 2520년으로 해석하여 시드기야 왕이 왕좌에서 쫒겨난 때인 기원전 607년을 기점으로해서 2520년 후인 1914년에 예수님의 재림이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성서는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는가?>, pp.215-218).
그렇다면 성경에서 예수님께서는 재림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마태복음 24:36에서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재림의 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는데 여호와의 증인들이 재림의 때를 정한 것은 자의적인 성경 해석에서 나온 비성경적인 주장인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재림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24:30-31)고 하셨고, 요한계시록 1:7에는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이라고 했으며, 데살로니가전서 4:16-17에는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고린도전서 15:51-52에는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위의 재림에 관한 성경 말씀을 종합해서 볼 때 예수님의 재림시의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예수님의 재림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가시적으로 일어나며, 둘째, 예수님의 재림 시에 죽은 성도의 몸의 부활이 있으며, 셋째, 살아남은 성도들이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되어 부활한 성도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져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1914년에는 이러한 일들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여호와의 증인의 종말론 교리는 거짓 교리요 또한 1914년에 하늘 왕국의 통치가 시작되었다는 것도 거짓 주장인 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예수님의 초림 때부터 시작이 되어 예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이기 때문이다(마12:28, 골1:13, 히12:28, 벧전2:9, 계1:6).
9. 여호와의 증인 ‘終末論’ 비판(3)
성경 요한계시록 21:1-2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부분의 정통교회에서는 이 구절의 ‘새 하늘과 새 땅’을 문자적으로 지금 하늘과 지금 땅이 아닌 새롭게 창조된 하늘과 땅으로 믿고 있는 반면 여호와의 증인은 지금의 하늘과 지금의 땅에 있게될 지상낙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먼저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을 살펴보자.
“땅에 대한 하느님의 목적은 참으로 가슴 설레게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땅이 행복하고 건강한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성서는 ‘하느님이 에덴에 … 동산을 만드’셨고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나무를 … 자라게’ 하셨다고 알려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첫 남자와 여자인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다음 그들을 이 아름다운 집에 살게 하시면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땅을 정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 1:28; 2:8, 9, 15) 따라서 하느님의 목적은 인간이 자녀를 갖고, 자기들의 집인 동산의 경계를 온 땅으로 넓혀 가면서 동물들을 돌보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지상 낙원에서 살게 하시려는 여호와 하느님의 목적이 과연 실현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느님께서는 ”내가 그것을 말하였으니, … 또한 그것을 행할 것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이사야 46:9-11; 55:11)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이 목적하신 바를 틀림없이 이루실 것입니다!”(<성서는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는가?>,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 2007, p.27).
“그런데 사탄이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였으며, 그래서 땅에 대한 하느님의 뜻이 성취되는 일이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뜻은 바뀌지 않았습니다”(위의 책, p.81).
“이 성구들(베드로 둘째 3:7, 10과 계시 21:1)이 문자적 행성인 땅이 불에 의해서 소멸될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문자적인 하늘(별과 그 외의 천체들) 역시 불로 멸망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문자적인 견해는 마태 6:10, 시편 37:29과 104:5 그리고 또한 잠언 2:21, 22과 같은 성구들에 내포되어 있는 보증과 모순된다“(<성경을 사용하여 추리함>,워치타워聖書冊子協會,2002, p.92).
“이제 요한은 이 약속이 주의 날 동안에 성취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 곧 사단과 그의 악귀들의 영향력 아래 있는 정부 구조와 사단의 조직화된 사물의 제도는 지나갈 것입니다. 악하고 반역적인 인류의 격동하는 ”바다“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 대신에 ”새 하늘과 새 땅“ 곧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새로운 정부 아래 새로운 지상 사회가 들어설 것입니다”(<계시록–그 웅대한 절정은 가까웠다!>, 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 1991, p.301).
이제 이 땅에서 지상낙원이 이루어진다는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이 왜 비성경적인 주장인가를 살펴보자.
성경 베드로후서 3:4-13에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고 기록되어 있다.
위의 성경 본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물이 창조되었고, 노아의 때에 홍수 심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듯이 하늘과 땅도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게 된다고 했으니 만물의 창조가 실제 창조이고, 노아 홍수 사건이 실제의 홍수 심판이듯이 하늘과 땅이 불살라지게 된다는 것도 실제의 하늘과 땅이 불살라진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에 천지가 없어질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씀들이 있고(시102:26, 마24:35),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약속의 말씀이 여러 곳에 있다(사65:17, 사66:22, 벧후3:13, 계21:1).
그러므로 새 하늘을 ‘새로운 정부’로 새 땅을 ‘새로운 지상 사회’라고 상징적으로 해석해서 지금 이 땅에 지상낙원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는 여호와 증인의 주장은 비성경적인 주장이며 거짓 교리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땅이 없어지지 않고 의인들이 땅에 영원히 거하게 된다며 제시하는 근거 구절(시37:29, 시104:5, 잠언2:21,22)들은 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없어지지 않고, 의인들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거하게 된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마6:10의 “나라이 임하옵시며”는 이 땅에 지상낙원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기도가 아니라, 이 구절에서의 ‘나라’는 예수님을 믿는 자의 심령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고 하셨고,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요18:36)고 하셨기 때문이다.
성경 고린도전서 15:50에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있게 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새로운 차원의 나라이기 때문에 육의 몸을 가진 자가 들어갈 수가 없으며,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변화를 받아(고전15:51-52, 살전4:16-17) 얻게 된 ‘신령한 몸’(고전15:44)을 가진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들은 지금 하늘과 지금 땅에서 이루어질 지상낙원이 아닌 성경 베드로후서 3:13의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는 말씀대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누리게 될 영생하는 천국의 삶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다.
10. 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 교리 비판
여호와의 증인들은 병역을 거부하는데 먼저 그들로 하여금 병역거부를 하게 하는 교리가 무엇인지 그들의 주장을 살펴보자.
“이 정부들은 ‘사단’의 세상의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을 형성합니다. 이미 우리가 살펴 본 바와 같이 성서에서 그들은 짐승으로 상징되어 있습니다. (다니엘 7:1-8, 17, 23) 이 짐승같은 정부들이 그들의 권세를 ‘사단’으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이 사도 ‘요한’이 기록한 환상 가운데 나옵니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 용이 자기의 능력(을) … 그 짐승에게 주었더라.“(계시 13:1, 2; 12:9) 이 왕국들 혹은 정부들이 ‘사단’의 세상의 일부라는 도 다른 증거는 ‘사단’이 이 왕국들을 예수에게 제공하면서 그분을 시험했다는 사실입니다. ‘사단’이 이 왕국들의 통치자가 아니었다면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태 4:8,9”(<우리는 지상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 왙취타워성서책자협회, 1982, p.210).
“성서는 하느님께서 아마겟돈 전쟁을 통해 악한 세상을 없애실 날이 가까웠음을 밝혀 줍니다. 악한 세상이 사라지고 나면 의로운 신세계가 들어설 것입니다. –계시 16:14-16) … 하느님의 왕국은 머지않아 이 세상의 모든 정부를 제거하고 그 정부들 대신 들어설 것입니다.(다니엘 2:44) 그런 다음 하느님의 왕국은 지상 낙원을 가져올 것입니다“(<성서는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는가?>,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 2007, pp.32-33).
“여호와의 종들은 연합된 백성으로서 여호와의 메시야 왕국 편에 굳게 서 왔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왕국을 반대하는 편에 서게 하려는 음모에 빠져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합니다.(계시 16:14, 16; 19:11-21)“(<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연합된 숭배>, 왙취타워성서책자협회, 1983, p.168).
여호와의 증인들이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말을 하면서 병역의 의무를 회피하려고 하는데 위의 여호와의 증인들의 주장을 종합해 볼 때 양심적인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다는 말은 표면적 이유이고 실제적으로는 이 세상의 정부는 사단의 정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1914년에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하늘 정부의 왕으로 통치하심으로 하나님의 하늘 왕국이 시작되었다고 하며, 이 하늘 왕국은 때가 되면 아마겟돈 전쟁으로 세상의 모든 정부를 제거하고 여호와의 증인의 하늘 정부가 이 지상을 다스림으로 이 땅이 지상낙원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 사단의 정부가 다스리는 세상 나라의 군대에 들어가서 병역 의무를 수행한다는 것은 자신이 적국의 군대에 군인으로 활동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언제 아마겟돈 전쟁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세상 정부의 군대의 소속으로 있는다는 것은 그들의 신앙 양심으로 볼 때 도저히 용납을 될 수 없는 것이기에 병역거부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위의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가 왜 비성경적인지를 밝혀보자.
다니엘서 4장에 보면 느브갓네살왕이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의 기간을 지내는데 그 이유가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단4:17)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으로 보건대 세상 정부를 사단이 다스린다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여호와의 증인이 세상 정부에게 사단이 권세를 주었다는 근거로 제시하는 요한계시록 13:1의 짐승은 세상 정부로 보아서는 안되며, 성경에 예언된 ‘적그리스도’(요일2:18)를 상징하는 존재로 보아야 하는 것은 이 짐승이 하는 짓이 ‘참람된 말을 하고 하나님을 훼방하며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사람들에게 경배받는 존재’(계13:5-8)임을 보면 알 수 있다.
오히려 성경에는 세상 정부를 대하는 성도의 태도에 대해서 로마서 13:1-2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고 기록되어 있고, 디모데전서 2:1-2에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비록 사단이 ‘공중의 권세’(엡2:2)를 잡고 활동하고 있으나 사단 역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 아래 있음은 사단이 하나님이 허락을 받고 욥을 시험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욥기1-2장).
그리고 디모데후서 2:4에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세상 정부의 병역 제도를 예를 들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딤후2:3)의 자세에 대해 말씀한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 정부의 병역 제도를 인정하고 계심을 볼 수 있다. 구약 성경에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군대를 두셔서 공의를 행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여호와의 군대’(출12:41)라고 했고, 이스라엘 군대와 함께 여호와께서 싸우셨음(수10:14)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증인들이 세상 정부의 병역을 거부하는 행동은 ‘1914년에 예수님이 재림해서 하나님의 하늘 왕국이 세워졌다’는 거짓된 교리에 기인한 것으로 비성경적인 행동이며,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롬13:1)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행동인 것이다.
11. 여호와의 증인 ‘수혈거부’ 성경해석 비판
여호와의 증인 가운데 사고를 당하여 수혈을 받으면 살 수 있는 사람이 수혈을 거부함으로 죽는 경우들이 있다. 어떠한 성경적인 근거로 수혈을 거부하게 하는지 먼저 그들의 주장을 살펴보자.
“세계 여러 곳에서 또 다른 일반적인 관습은 피를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를 올바로 빼지 않은 고기를 먹거나 피를 빼서 그 피를 식품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피를 먹는 것을 금합니다. (창세 9:3, 4; 레위 17:10) 그러면 수혈을 하는 것은 어떠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수혈하는 것은 실제로 ”먹는 것“이 아니라고 추리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환자가 입으로 음식을 먹을 수 없을 경우에는 의사들이 흔히 수혈하는 같은 방법으로 그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도록 하지 않습니까? 성서는 우리에게 ”피를 멀리하라“고 명령합니다. (사도 15:20, 29)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만일 의사가 술을 멀리하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입으로 마시지 말라는 말이요 정맥으로 직접 주사하는 것은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피를 멀리하라“는 말도 그것을 전혀 몸으로 들여 보내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우리는 지상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 왙취타워성서책자협회, 1982, p.216).
위의 여호와의 증인의 성경해석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살펴봄으로 본 주제에 대해 반증을 하겠다.
먼저 그들이 근거로 제시하는 구절 중 구약성경의 구절을 자세히 검토해보자. 창세기 9:3-4에서는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찌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고, 레위기 17:10-11에는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위의 구절들을 보면 하나님이 피를 먹지말라고 하신 이유에 대해서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고 피가 죄를 속한다’고 하셨고 ‘이 피를 단에 뿌려 생명을 속하게 하였다’는 데서 찾아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피를 먹지 말라고 하신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피를 단에 뿌림으로 속죄가 되는데 있음을 알아야 한다.
히브리서 9:22의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는 말씀과 베드로전서 1:18-20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라는 말씀을 볼 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인을 구속하시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인류 구원의 방법이요 뜻임을 알 수 있다. 히브리서 10:1에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한대로 구약에서의 제사는 그림자요 참 형상은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피를 먹지말라고 하신 것은 구약의 제사에서 동물의 제사를 드릴 때마다 속죄의 의미를 가지는 피를 경시하지 않게 하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피를 먹지 말라는 다른 이유를 창세기 9:5-7의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는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노아 홍수 후에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할 것을 명하셨다. 그러면서 피를 ‘생명의 피’라고 말씀하시면서 살인행위를 금하셨는데 동물의 피를 경시한다면 분명 사람의 생명도 경시할 수 있기에 피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여호와의 증인들이 피를 먹지말아야 한다고 해서 수혈을 통해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수혈을 거부하게 해서 죽게 하는 것은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어 피를 먹지말라고 하신 원래의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약에 와서 피를 먹지말라는 말씀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여호와의 증인이 수혈 거부의 근거 구절로 삼고 있는 사도행전 15:28-29에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고의 구절에서 ‘피를 멀리하라’고 기록한 구절을 들고 있다.
이 구절은 이방인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이 지켜야할 규례로 예루살렘 교회의 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이다. 위의 결정은 야고보의 의견(행15:19)을 듣고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와 장로들에 의해 결의(행21:25)된 규례(행16:4)이다. 구원과 관계된 법이라면 ‘의견’을 듣고 ‘결의’해서 교회법으로 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초대교회가 이러한 규례를 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당시 처음으로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특수한 시대적 상황에서 이방인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을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임에 있어 율법의 전통이 몸에 배어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의 하나됨과 융화를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수혈을 해서라도 사람을 살리는 것이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뜻이며,수혈을 거부하게 해서 살 수 있는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경시하는 행동으로 여호와의 증인의 ‘수혈 거부’ 주장은 잘못된 성경 해석에 의한 비성경적인 주장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