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교회의 재림, 부활, 천구원, 국
이인규
1. 지방교회가 말하는 재림
여러분들은 지방교회의 이단적인 양태론과, 그리고 그 사상을 은폐하고 감추려는 변명들을 보셨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이단적인 기독론과 인간론, 그리고 기독교를 사탄이며 음녀라고 하는 지방교회의 욕설과 비난을 목격하였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사람이 하나님이 된다는 주장을 보았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제 지방교회가 주장하는 재림과 부활, 천국이 무엇인지 보시며, 또한 그들이 주장하는 단체구원을 보실 수 있다.
1) 도적같이 오시는 예수님의 재림
우리 일반기독교가 말하는 예수의 재림은, 십자가에 달려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 그 분이 다시 오시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지방교회의 양태론적인 주장을 보면, 예수, 그 분은 이미 죽고 부활함으로서 이미 살려주는 영으로 변화하고 말았다.
– 이 놀라우신 하나님은 그분의 분배를 성취하기 위해 “친히 두 단계를 취하셨다“. 성육신에 의해 그 분은 구속하는 어린양으로서의 사람, 마지막 아담이 되셨다. 그런 다음에 그분은 “또 하나의 단계인 부활을 취하셨다“. 부활 안에서 그분은 더 전진된 “어떤 것이 되셨다“. 그분은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위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두가지 큰 비밀. 19-20쪽)
첫단추를 잘못 꿰메었으니 끝까지 단추가 맞지 않는 것이다.
즉 하나님 자신이 예수로 오셔서 직접 죽고 부활하여 살려주는 영이 되었다는 것이 지방교회의 양태론적인 주장이기 때문이다.
즉 지방교회에게 “예수의 재림“이란, 곧 양태론적으로 계승된 살려주는 영이 개인에게 적용되는 것을 가르킨다. 즉 지방교회에게는 갑작스러운 재림은 없는 것이다.
이들은 이것을 생명의 성장, 성숙이라고 말하며, 예수의 재림은 성경이 말하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하며, 예수는 우주적이며 가시적인 재림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오신다는 것이다….. 지방교회의 주장을 들어보자.
– 주님의 오심은 갑작스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주 예수님께서 오실 것이지만 여러분이 생각한 대로는 아닐 것이다. 주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실 뿐만 아니라, 여러분 안에서부터 오실 것이다. 여러분은 그분이 갑자기 하늘로부터 내려오시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이 여러분으로부터 오실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왕국, 329쪽)
– 거의 모든 신학 서적이 이런 식으로 말한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갑작스럽게 나타나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명의 성장에 의해서 오고 계신다.(330쪽)
– 그러나 주 예수님께서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심으셨고, 그분이 지금 우리 안에서 자라고 계시며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 안에서 성숙되고 계시는 것은 사실이다. 그 분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익고 성숙할 때, 그것은 그분의 오심의 때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그분의 오심은 갑작스런 사건이 아닐 것이다.(왕국, 330쪽)
– 왕국의 나타남은 주님의 재림과 관련된다. 어떤 의미에서 그분의 재림은 왕국의 나타남을 가져온다. 우리의 왕국이 우리 안에서 성숙되어질 때, 이 성수이 주님의 재림을 가져온다고 말할 수도 있다. 왕국의 나타남은 바로 그 분의 다시 오심에 있어서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성숙이다.
– 분명히 주님의 오심의 속도는 우리의 성장의 속도에 달려 있고, 우리의 추구함에 달려있다. 우리가 추구하지 않고 자라지 않는다면 그분의 오심은 연기된다.(왕국, 710쪽)
성경은 예수님의 재림이 갑자기 온다고 말하고 있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으며 성경은 “도적같이 온다“ 혹은 “그 시와 때를 알 수가 없으니 예비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위트니스 리는 “도적같이 온다“는 것을 “몰래 훔치려고 온다”고 해석한다. 한마디로 억지 성경해석이 되어진다. 위트니스 리가 해석하였다는 것만으로 지방교회는 그 해석을 진리로 받아들인다.
– 계시록3장3절은 주님이 무엇인가를 훔치시기 위해 도적같이 오실 것임을 가르킨다. 우리가 그 분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 그 분은 쓰레기가 아닌 귀한 것들을 훔치러 오실 것이다. 생명 안에서 성숙되고 혼 안에서 변화된 사람들만이 주님이 훔쳐가실 만큼 귀한 것이다.(왕국, 558쪽)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을까?
–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3:3)
–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마24:43)
– 너희도 아는 바니 집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눅12:39)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살전5:2)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살전5:4)….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살전5:6)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시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3:9-10)
예수의 재림이 도적같이 온다는 성경구절은 모두 그 날이 갑자기 옴, 그 날과 때를 알지 못하며 갑자기 오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위트니스 리는 “그것을 훔치러 온다“고 해석을 한다. 더 이상한 것은 지방교회 모두가 한결같이 입을 모아 그러한 해석을 진리이고 생명이라고 한다는 점이다.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훔치러 온다고 해석하는 사람은 아마 위트니스 리 밖에는 없을 것이다. 신천지 이만희가 그렇게 해석하였다면 지방교회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2) 예수님의 재림은 가시적이며, 예수 그분이 오신다.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1:11)
예수님은 하늘로 가심, 그대로 하늘로부터 오신다. 제자들이 본 그대로 오신다.
또 성경은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그리스도“(살전4:16)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예수님은 “인자가 오리라“(미24:44)리고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계22:7)라고 말씀하셨으며,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전16:22)라고 기록하였다. 사도요한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라고 기록하였다.
–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행3:20)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9:28)
다시 오는 분은 그리스도 예수이시며, 누구나 볼 수 있게 가시적으로 오시며 영광과 존귀와 함께 오신다고 성경은 말한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3:4)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눅21:27)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24:3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마26:64)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막13:26)
“환난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살후1:7)
지방교회의 입장에서는 이미 예수님은 살려주는 영의 과정과 단계로 변화하였다. 즉 지방교회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그 모습대로 다시 오신다고 주장할 수가 없다.
– 최종완성이라는 단어는 일이나 혹은 과정이 완성되거나 끝났음을 가리킨다. 이것은 음식을 요리하는 것으로 예시할 수 있다. 요리하는 과정이 시작되기 전에 모든 식품은 날것이다. 두시간 동안 요리된 후에 식품은 만찬으로 최종완성된다. 성육신 전에 하나님은 인성이 없이 신성만 갖고 계신 날 것이었다. 성육신과 인생과 죽음과 부활과 그리고 승천을 통하여 하나님은 과정을 거치셨고 최종 완성되었다. 이제 그분은 더 이상 “날 것“이신 하나님이 아니라 신성과 인생과 만유를 포함한 죽음과 능력있는 부활과 그리고 초월하는 승천을 지니신 최종완성되고 완결된 삼일하나님이시다. 이 모든 것들은 과정을 거치고 최종완성되신 삼일하나님 안에 있는 요소이자 성분이다.(위트니스 리, 세부분의 사람의 생명이 되시는 삼일하나님. 53-54쪽)
즉 지방교회의 입장에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이미 우리와 전혀 다른 예수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성경은 재림에 대해서 살려주는 영이 아니라, 예수 그 분이 오신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가시적으로 오신다고 하셨으며, 그분의 부활은 신체적이었다.
지방교회가 말하는 재림은 내면적인 재림이며, 결국 믿는 이들 안에 들어온 영(즉 하나님 자신)과 신인합일을 말한다. 그가 말하는 재림은 갑자기 오는 재림이 아니라, 개인마다 다른 성숙의 시간이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과 한 인격, 한 영, 한 실제가 되는 것이다. 즉 양태론적인 삼일 하나님이 성도들 안으로 들어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 그 생명이 자라나고 성숙되기 위하여서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이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주님의 재림인 것이다.
– 왕국의 나타남은 주님의 재림과 관련된다. 어떤 의미에서 그분의 재림은 왕국의 나타남을 가져온다. 우리의 왕국이 우리 안에서 성숙되어질 때, 이 성수이 주님의 재림을 가져온다고 말할 수도 있다. 왕국의 나타남은 바로 그 분의 다시 오심에 있어서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성숙이다.
– 분명히 주님의 오심의 속도는 우리의 성장의 속도에 달려 있고, 우리의 추구함에 달려있다. 우리가 추구하지 않고 자라지 않는다면 그분의 오심은 연기된다.(왕국, 710쪽)
2. 부활
–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전15:42-44)
우리가 말하는 부활은 신체적인 부활이다.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는 것을 말한다. 돌아가신 예수님이 나타나자 제자들은 예수를 “영”(spirit)으로 생각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 24:39)
제자들 앞에 나타난 부활하신 예수님은 영(spirit)이 아니었으며 살과 뼈가 있었다.
그러나 지방교회의 부활관은 역시 신인합일, 사람이 하나님과 똑같이 되는 것을 가르킨다. 그들의 모든 개념을 하나님–사람으로 귀결시키고 있다.
위트니스 리는 “그 영, 즉 님들이 말하는 살려주는 영이 부활의 실제라고 말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예수가 곧 부활이라는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살려주는 영이 부활의 실제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말하는 부활은 신체적인 부활이며, 그들이 말하는 부활은 우리의 개념과 전혀 다르다는 것으로서 사람이 하나님이 되는 것을 말한다
– 일단 우리가 삼일 하나님 안에, 그리스도 안에, 완결된 영 안에 산다면 우리는 부활 안에 있는 것이다. (같은 책63쪽)
이들이 말하는 신인합일적인 하나님–사람의 개념, 그것이 곧 부활인 것이다.
– 부활로 말미암아 그분의 인간 본성은 거룩케 되고 높혀지고 변화되었다. 그러므로 부활에 의해 그 분은 그분의 인성과 함께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의 맏아들로 인정받으셨다(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44쪽)
지방교회가 말하는 부활이란 그들이 말하는 생명으로 “다시 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성과 신성을 연합시켰듯이, 믿는 성도들이 인성(혼+육)과 신성(영)을 연합시키는 것이 곧 부활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 이제 내가 사는 것은 새 창조 안의 부활한 나를 말한다. 이 부활한 내가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하나가 되었다. 어떻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부활시키셨는가? 부활 안에서 그분은 그분의 신성을 우리의 인성과 연합시키셨다. 이로 인해 우리는 부활한 것이다.(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43쪽)
– 그와 같이 완결된 영을 살아날 때, 이것이 바로 완결된 영의 부활 안에 사는 것이다. 이 부활은 어떤 능력이나 사물이 아니라 한분의 인격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그분은 부활이라고 말씀하신 이유이다. 더욱이 부활의 실제는 삼일하나님의 최종완결인 그 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결론–삼일하나님, 그리스도, 그 영, 부활은 하나임–을 갖는다.
거듭남이란 Regeneration 이고, 부활이란 Resurrection이다.
거듭남이란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주관적인 영적 체험을 말하며, 부활이란 죽은 자가 다시 생명을 얻게 되는 객관적인 신체적 체험을 말한다.
필자는 지방교회에게 어느 성경에 성령이 성도의 안에 내주하는 것을 부활이라고 기록되어 있느냐고 물었다. 성경에 언급되어있는 궁극적이고 종말적인 부활이 지방교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한 지방교인은 이 구절을 인용하였다.
“나는 부활이니….”(요11:25)
예수님이 곧 부활이라는 것이다. “예수 = 부활“은 동의어라는 것이다. 즉 양태론적 예수가 곧 부활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길이요“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예수 = 길“이므로 예수님은 사람과 차가 다니는 길이신가? 나는 포도나무(요15:1)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예수 = 포도나무로 해석하여, 예수님이 포도나무라는 식물이신가? 고전10:4에 의하면 예수 = 반석이므로 예수님은 돌맹이이신가? 이런 유치한 성경해석이 지방교회의 위트니스 리의 성경해석이란 말인가?
예수님이 자신을 부활이라고 하신 이유는 성경 다음 귀절을 읽어보면 누구나 알 수가 있다. 예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3. 지방교회의 구원론
1) 단체구원
지방교회는 단체구원을 주장한다.
– ‘한 사람을 하나님의 구원의 단위로 생각한다‘ 이런 종류의 생각은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의 계획에 반대된다. 하나님이 정하신 길은 개인들만이 아니라, 가정을 얻는 것이다. 하나님은 구약에서도 그 분의 구원의 단위를 계시하셨다. 하나님은 홍수로부터 단지 노아와 그의 아내만 구원하지 않으셨다. 그 분은 또한 그들의 아들들과 며느리들을 구원하셨다.(위트니스 리, 하나님이 정하신 길의 훈련과 실행, 94쪽)
– 영생을 얻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구원을 얻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에 과거 내가 속했던 무리의 문제가 추가된 것이다.(그리스도인의 필수과정1. 1989, 10쪽)
– 하나님이 얻고자 하는 것은 개인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과정이지 목적이 아니다. 하나님은 단체적인 것을 원하신다.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의 나라요, 하나의 민족이요, 하나의 단체이다.(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계시에서 본 하나님의 경륜, 32쪽)
– 한 단체를 얻고자 하신다. 삼일하나님 그분 자신을 이스라엘 백성들 안으로 역사하게 하시어 그들을 한 무리가 되게하고, 단체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처, 하나님의 집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신약에 와서 이것을 매우 분명히 볼 수 잇다. 이는 곧 성도 개인의 신령함이 아니라 온 교회들이 하나님께 얻은 바 되고 거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성전이 될 것이다.(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계시에서 본 하나님의 경륜, 33쪽)
그 단체가 무엇을 말하는가? 지방교회를 말한다
즉 지방교회만이 단체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2) 지방교회는 세상에서 구출되는 것이 구원이라고 한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구출되는 것이 구원이라고 말한다.
– 성경에서 주의하면 구원은 지옥에서 구출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구출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이라는 이 단체는 하나님 앞에서 정죄된 것이기 때문이다.(그리스도인의 50 필수과정, 11쪽)
– 이제 우리는 성경에서 구원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이고 구원의 대상은 대체 무엇인가를 주의해야 한다. 성경에서 구원은 지옥이 아니라, 세상이다. 영생의 반대편은 멸망이다. 성경은 멸망을 구원의 반대편으로 여기지 않았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보여준 구원은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워치만 니, 그리스도인의 필수과정1. 1989, 8쪽)
이들이 말하는 세상은 기독교를 포함한다. 즉 세상에서 단체로 나오는 것이 구원이라고 한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종말적으로는 이 세상은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곳“(계11:15)이다. 세상이 정죄된 곳이 아니라, 인간이 정죄된 것이다.
세상은 복음의 씨가 뿌려지는 곳(마13:38)이며, 생명주시는 곳(요6:33)이며, 성도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한 곳이며(고후5:19)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구주로 보내신 곳이다(요4:14)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17)
(3) 구원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라는 지방교회
지방교회는 구원이 하나님의 사역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라고 주장한다.
–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구원하는 일과 하나님을 구별해야 한다. 많은 경우에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 반드시 다 하나님의 일은 아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일은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일은 사람으로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도록 통치권을 차지하게 하려는 것이다.(워치만 니, 거룩하고 흠이 없어라. 14쪽)
– 타락 때문에 사람에게는 구속이 필요하다. 그러나 구속은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다. 구속은 하나님의 목표가 아니다. 구속은 단지 하나님의 회복의 과정이다. 구속은 타락한 사람을 하나님의 목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위트니스 리, 사람의 영, 1986, 45쪽)
– 우리 가운데서 구원이라는 단어를 상당히 많이 사용하고 있으나, 흔히 남용하고 있다. 여러분은 구원 얻는 것과 영생을 얻는 것에는 구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영생을 얻는 것은 개인적인 일이지만, 구원을 얻는 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영생을 얻는 문제일 뿐 아니라 또한 잘못된 무리에서 구원받는 문제이다.(위트니스 리, 그리스도인의 50 필수과정 1권, 1989, 10쪽)
지방교회의 구원론은 일반 기독교의 것이 아니다.
지방교회는 도대체 왜 이런 주장을 하고 있을까?
즉 지방교회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단체구원을 주장하며, 세상에서 나오는 것이 구원이라고 주장하며, 구원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개인의 일이라고 하는 이유는, 기독교에서 나와 지방교회로 와야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 여러분은 세상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은 개인의 행위의 문제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틀린 것은 그들의 위치가 틀렸기 때문이다….그러므로 구원 얻는 것은 개인의 행위가 어떠한 지의 문제가 아니라, 당신이 속해 있는 그 무리가 잘못이었다는 것이 문제이다.(그리스도인의 필수과정 1, 1989, 10쪽)
4. 지방교회의 성육신
성육신이라는 단어는 로고스이신 성자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신 것을 말한다. 그러나 지방교회에서는 우리 성도들도 성육신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즉 우리 안에 성령이 내주하는 것을 그들은 성육신으로 간주한다.
지방교회는 신성과 인성이 연합하는 것을 부활이라고 한다. 즉 예수의 재림은 우주적, 가시적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온다고 가르친다. 즉 천국은 가는 곳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온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천국의 현재적인 개념, 내면적인 개념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러한 뜻과는 다르다.
지방교회는 예수를 사람으로 간주하고 그 예수 안에 들어온 양태론적 하나님(성령)을 그리스도의 실재라고 주장하여, 예수를 하나님이 된 첫 샘플, 즉 God-man 이라고 부른다. 이것을 “그리스도를 누린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즉 성도들에게 양태론적인 하나님이 내주하는 것과 예수의 성육신을 동일한 개념으로 보기 때문에 성도들도 성육신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와 같이 되셨다. 왜 그런가? 그 목적은 우리를 그 분과 똑같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졌고 하나님의 성품을 가졌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과 똑같은 것이다.”(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계시에서 본 하나님의 경륜, 63쪽)
“바로 그 때 그들은 안팍으로 – 생명과 본성과 기질과 몸의 형태에서 – 하나님의 맏아들과 똑같게 될 것이다.”(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14쪽)
“만일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들은 누구인가? 자녀들과 아버지는 같은 종류가 아닌가? 요한복음3장6절은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라고 말한다. 당신과 당신의 부모는 모두 같은 종류, 육신의 종류이다. 6절은 또 말하기를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말한다. 이 두 영은 같은 종류이며 또한 같은 근원이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 많은 하나님–사람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또한 우리가 믿고 경배하며 따르는 우리의 주님, 또한 첫번째 하나님–사람이다”.(위트니스 리, 하나님–사람의 생활, 40쪽)
“우리는 과정을 거친 삼일하나님 안에 있다. 바로 그 분이 우리 모두로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 분의 맏아들과 똑같게 되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여, 결국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체현이 되게 하실 것이다.”(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18쪽)
지방교회에게는 이러한 신화사상이 곧 부활이며 재림이며 천국이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새 창조 안의 부활한 나를 말한다. 이 부활한 내가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하나가 되었다. 어떻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부활시키셨는가? 부활 안에서 그분은 그분의 신성을 우리의 인성과 연합시키셨다. 이로 인해 우리는 부활한 것이다.”(위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43쪽)
“주님의 오심은 갑작스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주 예수님께서 오실 것이지만 여러분이 생각한 대로는 아닐 것이다. 주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실 뿐만 아니라, 여러분 안에서부터 오실 것이다. 여러분은 그분이 갑자기 하늘로부터 내려오시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이 여러분으로부터 오실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위트니스 리, 왕국, 329쪽)
“그러나 주 예수님께서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심으셨고, 그분이 지금 우리 안에서 자라고 계시며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 안에서 성숙되고 계시는 것은 사실이다. 그 분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익고 성숙할 때, 그것은 그분의 오심의 때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그분의 오심은 갑작스런 사건이 아닐 것이다.”(위트니스 리, 왕국, 330쪽)
지방교회는 기독교가 말하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성육신이라는 용어도 다르고, 중생(거듭남)도 다르며, 재림도 다르고, 부활도 다르며, 심지어 사후의 천국도 부정한다. 그들은 이것을 천국의 비밀이라고 주장한다
“죽으면 천당(국)간다는 말은 이교도의 가르침입니다. 사탄이 한 최대의 거짓말 중 하나는 ‘예수 믿고 죽으면 천당(하늘 어디엔가 있는 집) 간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성경근거가 전혀 없는 거짓말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이교도적인 거짓 사상이 버젓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가르쳐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이런 비성경적인 가르침은 믿음 생활의 초점을 흐리게 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최종 목적을 변질시킴으로 참된 성도들 생각 속에서 말끔히 씻겨져야 할 누룩인 것입니다.”(지방교회 게시판의 글)
“일반적으로 말해서 기독교는 사람들이 죽으면 주 예수를 믿는 한, 그들에게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며, 그들이 일단 죽으면 그들은 천당에 갈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친다. 그러나 여러분이 왕국의 비밀을 안다면 여기에 커다란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위트니스 리의 왕국, 3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