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저주론의 성경적인 비판
평이협 이인규
가계저주론은 현재 합신(2001/86/위험한 사상), 통합(2006/91/사이비성 농후)에서 이단 명단으로 발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계저주론은 한국교회에서 만연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을 들자면, 귀신론을 주장하는 자들과 소위 내적치유와 영성훈련을 가르치는 단체들, G12, 다락방(예장전도총회)과 두날개(풍성한교회)를 들 수 있다. 또한 신사도운동의 영향을 받은 교회와 단체들도 가계저주론을 주장한다. 풀러신학교의 피터 와그너와 챨스 크레프트도 가계저주론을 주장하며, 이윤호목사는 스스로 자신이 피터와그너와 챳스크래프트의 제자라고 자처하고 있다.
최근에는 적지 않은 정통교회와 선교단체, 그리고 새신자를 가르치는 양육프로그램에서도 가계저주론을 가르치는 곳이 발견되는 것이 문제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모두 외국에서 수입된 이단사상이며, 아무런 검토도 없이 무조건 모방하고 따르는 한국교회의 맹점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가계저주론의 가장 문제점은 무엇일까?
첫째, 조상의 죄와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가 가계를 통하여 후손에서 계속 유전된다
둘째, 그 저주는 질병과 재앙, 가난, 사고등을 포함한다
셋째, 예수를 믿는다고 하여 가계의 저주가 끊어지지 않는다
예수를 믿는 믿음만으로 부족하여 온전한 죄사함을 받지 못한다거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주장은 기독교사 2000년 동안 언제나 이단적인 견해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말아야 한다. 그것은 예수 십자가의 대속이 불완전하다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말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하시며 십자가의 온전한 성취를 말씀하셨다. 그런데 예수를 믿음으로서 조상의 죄와 가계의 저주가 모두 끝나지 않았다는 주장은 비성경적이 되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가계저주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왜 구약성경만을 인용하는가? 신약성경에서 예수 십자가로 저주에서 승리한 것을 왜 적용시키지 않고, 구약을 그대로 인용하는가?
만약 구약성경만을 적용한다면 기독교는 유대교와 무엇이 달라지는가? 우리는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할례를 지켜야 하며, 짐승의 희생제물을 바쳐야만 하며, 구약의 명절과 절기를 지켜야만 하는가?
유대인과 달리 기독교인들은 예표적인 구약성경을 십자가의 성취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만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구약은 슬픈 소식이었지만, 신약은 기쁜 소식이 되며, 구약은 그림자였으나 신약은 실체였다.
가계저주론을 주장하는 자들은 죄와 저주로부터 승리한 예수의 십자가를 어느 곳에 잠시 숨겨 두고 구약성경만을 인용하고 있다.
더욱이 예수의 십자가로 끊치 못하는 가계의 저주가 대적기도, 선포기도등과 같은 주술적인 기도문으로 끊을 수 있다는 주장은 이단적인 주장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인위적이며 자의적으로 만든 기도문이 십자가보다 더 효력이 있는 주술적인 주문이 되는가? 기도는 성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하나님께 대적기도와 선포기도를 드리는가?
가계저주론을 주장하는 자들은 성경을 인용하는데, 가계저주론의 주장이 왜 비성경적이며, 잘못된 주장인지 살펴보자
1) 가계저주론자들이 주장하는 성경적인 근거
① 잠언 26:2 “까닭 없는 저주는 이르지 아니하느니라“
먼저 이상한 주장을 해놓고 그 주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짜맞추기식의 성경해석은 언제나 오류를 초래하며, 그러한 수법은 이단들이 주로 사용하는 수법이기도 하다. 성경의 본문 전체를 잘 살펴보자
잠 26:2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의 떠도는 것과 제비의 날아가는 것같이 이르지 아니 하느니라
가계저주론을 주장하는 자들은 본문을 인용하여 모든 저주는 이유가 있다는 식으로 해석을 하며, 조상의 죄를 정당화시키려고 해석을 한다.
그러나 본문은 아무리 읽어도 가계저주론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까닭 없는 저주는 이르지 아니하느니라“는 말은 내가 받는 저주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뜻이 아니며, 더욱이 조상의 죄 때문에 저주가 일어났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 성경본문의 뜻은 “나에게 저주가 이르렀을 때에 그 저주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수동형의 뜻이 아니며, 본문은 “아무 이유없이 상대방을 저주하면 안된다“는 능동형의 뜻을 말하고 있다.
예를 들면 내가 어떤 사람을 아무 이유없이 개인적인 감정으로 미워하고 증오하여 저주를 한다고 하여도 그 저주는 그 상대방에게 아무 효과도 미치지 않는다는 뜻으로서, 이유없이 저주를 하지 말라는 의미인 것이다..
[공동번역] 참새가 떠돌듯, 제비가 날아 가듯 까닭없는 저주는 미치지 않는다.
[표준새번역] 까닭없는 저주는 아무에게도 미치지 않으니, 이는 마치 참새가 떠도는 것과 같고, 제비가 날아가는 것과 같다.
[현대인의성경] 이유 없는 저주는 날아다니는 참새나 제비처럼 상대방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KJV] As the bird by wandering, as the swallow by flying, so the curse causeless shall not come.
[NIV] Like a fluttering sparrow or a darting swallow, an undeserved curse does not come to rest.
[ASV] As the sparrow in her wandering, as the swallow in her flying, So the curse that is causeless alighteth not.
[RSV] Like a sparrow in its flitting, like a swallow in its flying, a curse that is causeless does not alight.
잠언 26:2은 가정에 닥친 저주나 조상의 죄 때문에 내가 받는 저주의 근거를 제시하는 구절이 전혀 아니며, 반대적인 의미로서 남을 이유없이 저주하지 말라는 뜻이다. 즉 정당한 이유와 근거도 없이 상대방을 저주하여도, 그러한 저주는 상대방에게 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호크마주석)
팔레스틴 전역에서 쉽게 발견되는 참새는 까닭없이 땅으로 내려오지 않으며 제비 역시 먼 이국 땅을 행해 갈 때는 그 목적지를 분명히 정한다. 참새와 제비같은 미물(微物)들도 이유나 목적이 없는 행동은 취하지 않듯이 인간 세계속에도 이유 없는 결과, 특히 악한 저주는 까닭없이 임하지 않는다. 당시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저주가 공의(公義)에 관계없이 마술 화살처럼 그 목적지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간다는 미신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바로 이 같은 어리석음을 본절은 깨우쳐 주고 있다. 발람도 그같은 미신에 대한 강한 반발을 보인 바 있다: “하나님이 저주치 않으신 자를 내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 어찌 꾸짖을꼬“(민 23:8).
잠언26:2은 가계저주론을 지지하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가계저주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반격할 수 있는 성경구절이 된다는 것을 알자. 본문은 아무에게나 조상의 저주가 미친다고 하는 가계저주론 주장자들과 같이, 정당한 이유없는 조상의 죄에 의한 가계저주는 다른 사람에게 해당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② 예레미야 31:29;
에스겔 18:1-32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죄의 유전적인 전승을 주장하기 위해 든 성경 중에 많이 사용되는 것이 위의 두 구절이다.
이윤호목사가 모방한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는 책을 발행한 메리린 히키는 예레미야 31:29인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는 부분만을 인용하여 “에서가 야곱과 그의 자손들에게 원망과 분노의 쓴 뿌리를 품게 되었을 때, 그의 자녀들과 야곱의 자손들에게 쓴 뿌리를 품게 되었다“는 결론을 유도하였다(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 182쪽)
성경은 이렇게 부분적으로만 인용하면 성경이 말하려고 하는 것과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어진다. 본문을 보자.
“그 때에 그들이 다시는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아니하겠고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 이가 심 같이 각기 자기 죄악으로만 죽으리라(렘31:29-30)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겔18:2-4)
성경이 말하는 내용은 정반대적인 내용이다.
이스라엘에는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라는 가계저주론자들의 주장과 같은 속담이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은 그 속담을 적용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아들에게 아버지의 죄가 승계되지 않으며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이윤호목사와 메릴린 히키는 성경말씀이 본 뜻과 다른 이스라엘의 속담을 부분적으로만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항상 이상한 주장을 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비성경적인 주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성경을 짜맞추는 수법을 사용하는데, 이러한 방법은 본문의 문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성경해석의 위험을 보여준 대표적인 예가 된다.
직접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조상 대대로 쌓여온 죄악 때문에 자기가 불행을 겪게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조상의 죄 탓으로 돌리는 타의적인 책임, 집단적인 책임으로 돌리는 불신앙적인 주장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저주는 심판이며, 그 심판은 자기의 죄로 인한 것이라는 것이 성경66권의 결론이다.
즉 각 사람은 자기의 죄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대신 짊어지는 일이란 없다. “범죄하는 영혼“이 그가 지은 죄악으로 죽는 것이다.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 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 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겔18:20)
③ 출애굽기 20:4-6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5-6)
성경에서는 수많은 부분에서 죄에 대한 책임이나 의를 행한 공로는 항상 그것을 행한 당사자 개인이 적용된다. 그러면, 출애굽기 20:4, 5에서 말하는 아비의 죄를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한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성경본문은 하나님께서 가장 혐오하시는 십계명의 “우상숭배와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는 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출20:4)
그렇다면 이것을 가계저주론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에게 묻자.
평행구조로 기록된 내용, 즉 계명을 지킨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푼다“는 구절에 대해서는 왜 문자적인 설명을 하지 않는가? 성경에서 의인들은 그 후손 천대까지 은혜와 축복을 받았는가?
성경적인 예를 들어 열왕기하를 보면, 하나님이 15년 동안이나 수명을 연장하여 준 히스기야왕은 여호와에게 순종한 선왕이었으나(왕하20:6), 그 1대의 아들 므낫세는 우상을 숭배한 사악한 왕이었다. 또 2대 후손인 므낫세의 아들 아몬도 악을 행하였으나(왕하21:20), 그 3대인 아들 요시야는 여호와께 순종하는 왕이었다(왕하22:2). 과연 저주의 3-4대와 은혜의 천대를 문자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가?
여호와 하나님에게 순종한 히스기야왕의 후손은 왜 1대와 2대에서 여호와를 거절하는 사악한 왕들이 나타났는가? 왜 히스기야의 후손은 천대까지 은혜를 받지 못하였는가?
그리고 므낫세는 왜 3-4대까지 저주를 받지 않았으며, 므낫세 2대의 요시야는 여호와께 순종하여 칭찬을 받는 왕이 나타났는가? 혹시 가계저주론자들은 므낫세와 요시야를 포함하여 히스기야 때문에 그 천대의 후손들이 모두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것인가?
과연 조상의 죄가 유전되어질까?
죄가 유전된다면 원죄에 대한 설명은 쉬울지 몰라도, 그렇다면 참 인성을 가진 예수님은 마리아 조상의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만일 죄가 유전되어진다면, 또 의도 유전되어져야만 하는데, 조상의 믿음으로 그 후손이 구원을 받을 수는 있다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특히 로마서5장은 유전되는 죄가 아니라, 언약적대표로서의 아담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어느 누구에게나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으며, 어떠한 죄인이라도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기에, 복음은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되는 것이 아닌가?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출애굽기20장 4-6절의 본문에서 우상숭배를 하는 자들의 경우 3-4대까지 죄를 묻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천대까지 은혜를 베푼다는 구절은 과장법과 강조법적인 표현으로 해석되어져야만 한다. 즉 후손들에게 죄를 묻지 않는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를 하는 자들의 경우는 3-4대까지 죄를 묻겠다는 표현을 함으로서,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아주 싫어하신다는 강조법적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바로 함께 나타나는 평행구절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천대까지 은혜를 베푼다는 것은, 하나님은 자신에게 순종하는 백성을 아주 기뻐하신다는 것을 강조법으로 적용한다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④ 가계저주론과 반대가 되는 성경구절
가계저주론과 정 반대가 되는 성경구절은 성경에 매우 많으며 다음과 같다.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신24:16)
“저희 자녀는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 율법 책에 기록한 대로 함이라 곧여호와께서 명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인하여 아비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비로 인하여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각 사람은 자기의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하셨더라”(대하25:4)
“손을 금하여 가난한 자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변이나 이식을 취하지 아니하여 내 규례를 지키며 내 율례를 행할진대 이 사람은 그 아비의 죄악으로 인하여 죽지 아니하고 정녕 살겠고 그 아비는 심히 포학하여 그 동족을 억탈하고 민간에 불선을 행하였으므로 그는 그 죄악으로 인하여 죽으리라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찌 아비의 죄를 담당치 않겠느뇨 하는도다 아들이 법과 의를 행하며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정녕 살려니와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 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 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겔18:17-19)
성경은 아비의 죄가 아니라 당사자의 죄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틀렸다고 말할 것인가? 하나님은 당사자의 행위와 항실로 보응을 하신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예레미야 17:9∼10)
또한 신약성경에서도 예수님이 직접 죄에 대한 말씀을 하시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과연 성경본문이 저주는 가계를 따라 흐른다는 뜻인가? 혹은 죄가 조상때문이라고 해석하여야 하는가?
유대인들은 질병을 자신의 죄나 조상의 죄때문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예수님은 소경은 부모의 죄나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요9:1-3)
또한 예수님은 사고나 재앙을 당하는 것도 특별히 죄가 많아서 당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요점은 죄가 원인이 아니라 회개치 않는 것이 원인이며, 회개하지 않으면 종말적으로 모두 망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 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13:1-5)
2) 저주가 가계와 조상의 죄때문인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예수를 믿는 시점에서 죄사함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의 조상의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가계에 저주가 흐른다는 결론이 된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믿음의 선조들이 자신의 조상의 죄를 회개하였다는 내용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조상의 죄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성경에는 왜 조상의 죄를 회개하여야 가계의 저주가 풀린다는 구체적인 구절이 없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역대의 조상의 모든 죄 때문에 우리는 저주와 질병을 받게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반대로, 저주와 질병을 갖지 않는 자는 역대조상들의 죄가 없기 때문이며, 저주와 질병을 가진 자는 조상에게 죄가 있기 때문인가?
자기가 아무리 의인이라고 가정하여도, 역대 조상들까지 죄가 없었던 사람이 과연 있을까?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죄가 있다고 말하는데, 서기 2000년 이전의 가계저주론을 몰랐던 그리스도인들은 조상의 죄를 회개하지 않았으므로 모두 저주와 질병과 고난을 받았는가?
더욱이 재앙과 질병, 사고같은 저주가 없으며 물질적인 부유함을 가진 불신자나 타종교인은 어떻게 설명한 것인가? 그들은 예수를 안믿어도 가계의 저주를 받지 않았는가?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고난과 역경을 당한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초대교회사는 그리스도인들의 고난과 순교를 기록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예수의 제자들은 대부분 순교를 당하였으며, 심한 고난을 당하였다. 과연 그들은 가계의 저주를 받았는가?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으며, 성경에서 저주는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며, 저주와 심판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믿음이 없는 자들이 받는다고 말한다
고전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살후 1:8-9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이윤호목사는 자신의 책에서 그는 심지어 “당신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았다고 해서 당신이 모든 저주에서 해방된 것은 아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인간론뿐 아니라 심각한 구원론의 오류까지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특별히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한 사건“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도 조상의 죄와 저주를 계속 승계받아야만 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은 불완전한 승리였다는 것인가? 우리가 저주에서 풀리는 방법은 예수 십자가 대속이 아니라, 조상의 죄를 회개하는 방법이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왜 성경은 그러한 언급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있을까?
요 8:34-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에서 자유롭게 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또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당한다는 것은 성경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이윤호목사의 주장을 따르면 예수의 제자들과 사도들은 모두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결과가 되고만다.
롬 8:17-18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벧전 4:13-16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빌 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마 5:10-12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구약에서 복과 저주에 대한 성경구절도 가계저주론과 다르며 당사자에게 달려있다.
신 28:15-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더욱이 가계저주론자들은 저주를 사단의 뜻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이 사단의 뜻일까? 성경은 예수의 고난이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행 4:27-28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예수를 믿는 자도 사단에게 사로잡혀 저주를 벗어나지 못하였다면, 예수는 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는가? 예수의 십자가가 사단의 저주조차 당할 수가 없다는 것이 가계저주론의 정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