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말하는 영적전쟁의 의미

  • 6월 17, 2016

                                                 성경이 말하는 영적전쟁

                                                                                                                                                             이인규


 

영적전쟁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 영적인 전쟁과 유사한 개념을 찾아본다면 씨름, 대적, 싸움, 승리, 군사등의 단어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영적전쟁에 대해서 혹간은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구도로 보는 이원론적인 개념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는 선과 악의 대결구도, 혹은 영과 육의 대결구도로 보는 이원론의 개념을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기독교의 주장이 아니며, 이방적인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세상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천사를 창조하셨으며, 그 천사가 타락하여 마귀(사탄)이 된 것으로서 마귀(사탄)은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베뢰아와 같은 곳에서는 세상을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구도로 간주하며, 예수는 마귀를 멸하러 세상에 오셨다고 주장하고, 인간은 마귀를 멸하는 도구로 창조되었다고 가르치는데, 이러한 주장들은 모두 잘못된 비성경적인 내용이다.


더욱이 인간은 영(또는 영혼)과 육이 연합한 전인적인 존재이며 영과 육이 대결하며 싸우지 않으며, 인간은 전인적이며 총체적인 존재로서 살아있을 때에 영과 육이 분리되지 않는다. 성경에서 말하는 대부분의 ‘육’이라는 용어는 고깃덩어리의 부분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에는 ‘인간 자체’를 말하며, 대부분의 ‘영'(Spirit)은 성령하나님을 말하고, 성령이 거하지 않는 불신자를 ‘육에 속한 자’라고 말할 뿐이다. 특히 영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육에는 사탄이 거한다는 주장은 지방교회와 베뢰아의 주장이다

혹간은 가계저주론등을 가르치며 그 저주를 없애는 방법을 영적전쟁이라고 하거나, 우리 안에 어떤 과거의 상처나 약점을 뜻하는 트라우마를 ‘사탄의 세운 견고한 진, 쓴 뿌리’라고 지칭하며 그것을 제거하는 내적치유를 영적전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혹간은 땅밟기 기도, 대적기도, 선포기도등의 방법으로 귀신을 쫓아내거나, 그 저주를 극복하거나 혹은 치유를 하는 것에 그 단어를 적용시키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귀신을 쫓아내어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영적전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누구든지 기독교서점에 잠깐 들러 본다면, 이러한 제목의 책들을 수없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것들을 ‘영적전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씨름, 대적, 싸움, 승리, 군사등의 단어들이 사용된 성경구절을 찾아보면 몇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우리가 싸우고 대적하여야할 대상은 사탄마귀, 또는 귀신, 악한 영들이 분명하지만, 그 싸움은 육체적인 싸움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을 의미하는 것이다. 혹간은 귀신을 쫓아내어서 질병의 고침, 저주의 극복, 부의 이동등을 포함한 “생활의 모든 문제의 해결”을 영적싸움의 목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성경은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6:12)

성경이 말하는 “영적싸움”은 육신에 따라 싸우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무너뜨리는 것으로서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는 것에 있다. 즉 성경이 말하는 “영적전쟁”은 “개인적인 성화의 과정”을 가리킨다.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고후 10:3-6)

특히 신사도운동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믿는 자가 종말적으로 요엘의 군대’(또는 왕의 군대, 지저스아미)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요엘서가 말하는 요엘의 군대는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는 이방인의 군대로서, 성경이 주는 멧세지는 우리가 요엘의 군대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아니라, 범죄하고 타락한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이다. 즉 요엘의 군대는 타락하고 범죄한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이방인의 군대를 뜻한다.

또 혹간은 딤후 2:3-4을 근거로 예수의 병사가 되어 사탄과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딤후 본문에서 말하는 병사는 싸움을 하는 병사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기 생활에 얽메이는 것이 없는 조직의 개념을 뜻한다고 해석이 된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3-4)

2) 우리가 사탄, 마귀나 악한 영들에게 대적할 수 있는 어떤 능력을 우리 스스로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이다. 성경은 말하기를, 주 안에서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함으로서 대적할 수 있다고 말한다.( 6:10-13) 즉 성경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음으로서 그 말씀의 공로를 힙입어 승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6:10-6:17)

즉 성경에서 마귀를 대적한다는 것은 이원론적인 대결구도의 전쟁을 대비하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된 전신갑주를 입는 것, 또는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며(고후10:5-6),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성결한 마음을 갖는 것(4:7-8), 혹은 믿음을 지키는 것(벧전5:9)등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오직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말씀에 힘입어, 자기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가는 성화적인 과정이 곧 영적인 싸움이며 그것을 마귀를 대적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4:6-8)

베드로전서 본문에서도 마귀를 대적하는 것은 근신하고 깨어서, 믿음을 굳건케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벧전 5:8-9)

또한 선한 싸움이란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갖는 것이며, 그 믿음과 양심을 버린다면 파선하게 된다고 말하며, 성경은 그 파선의 의미에 대해서 이미 사탄에게 내 주었다고 표현을 하는데 그것은 그가 믿음을 지키지 못함으로서 구원에 이르지 못한 것을 뜻한다. 특히 디모데전후서에서는 믿음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것을 사탄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삶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딤전 1:18-2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딤전 6:10-12)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딤전 4:1-3)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딤후 4:7-8)

디모데 전후서가 말하는 선한 싸움의 정의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며, 다시 말하면 개인의 구원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믿음을 지키는 것, 죄로부터 이기는 것이 영적전쟁의 의미라고 볼 수 있다.

3) 성경은 많은 곳에서 마귀의 미혹을 조심하라고 하거나 경고하라고 말하지만, 그 대상은 이미 성령으로 거듭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볼 수 없다. 우리는 일단 신자(信者)와 성령에 내주하는 중생된 자를 구별할 필요성을 느낀다. 신자(信者)는 믿음을 잃을 수 있지만, 중생한 자는 믿음을 잃을 수 없다. 오히려 성령이 내주하는 거듭난 성도들에게 귀신이 들어올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하기 때문이다.

물론 귀신이 사람에게 들어올 수 있다는 주장은 성경적으로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모든 질병과 불행과 사고가 귀신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전제조건이 먼저 제시되어야만 하고, 성령이 내주하는 거듭난 성도에게 귀신이 들어올 수 없다고 말하여야 한다

필자는 성도에게 귀신이 외부에서 미혹할 수는 있지만, 거듭난 성도에게 들어올 수 없다고 본다. 물론 귀신이 성령이 내주하는 성도를 사로잡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만약 거듭나서 성령이 내주하는 성도들을 귀신(혹은 마귀)이 들어와서 그를 사로잡을 수 있다면,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작정한 하나님의 자녀의 구원이 취소가 될 수 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주셔서 인도하고 보호하는 이유와 근거가 없어진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성경적인 근거로 볼 때에는, 성령이 내주하는 성도들에게 귀신이 들어올 수 없다는 견해가 옳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요일 4:4)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요일 5:18)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살후 3:3)

성경은 성령의 구원에 대한 보증, 즉 보호와 인도를 분명히 말하고 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너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 10:28-29)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 1:28)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8:30-35)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8:38-39)

또한 아래 본문은 거듭난 사람에게 귀신이 들어올 수 없다는 내용이라고 직접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는 것은 곧 성령과 마귀를 동시에 섬기지 못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 6:24)

그러나 성도들에게 귀신이 들어올 수 있다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성경적인 근거를 제시한다. 이것에 대해서 살펴보자.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 22:3)

과연 유다가 온전히 거듭난 성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 5:1-5)

비록 성경은 아나니아가 성령을 속였다고 말은 하지만, 아나니아가 거듭난 성도였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러한 경우가 성경에 있는데, 바로 히브리서 6 4-6절이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 6:4-6)

한번 비췸을 얻고, 맛보고, 참예한바 되고, 능력을 맛보고라는 표현이 과연 온전히 거듭난 사람을 뜻하는지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이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을 온전히 거듭난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아나니아가 성령을 속였다는 내용만으로 그가 거듭난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아나니아가 그 자리에서 즉시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삼상 16:14)

어떤 사람들은 이 성경을 증거로 제시하는 경우도 있는데, 위 성경은 여호와의 신이 떠났다는 것과 그 악신이 여호와가 보낸 존재라는 것이므로 해당되지 않는다. 구약에서는 소수의 제한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성령을 보내 주셨으며, 신약의 오순절에 이르러서 성령이 모든 만인에게 부어주게 된 것으로서, 영원히 거하게 된 것이다.

성경은 성령이 거하는 거듭난 성도들에게 사탄 마귀가 들어올 수 있다고 언급하지 않으며, 오히려 불신자들의 안에서 거하는 영이라고 말한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 2:2)

사탄, 마귀는 하나님의 자녀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 아니라,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다. 특히 성경에서는 귀신이 들리다라고 표현된 단어가 사용되는데, 주로 다이모니조마이’(demon-possessed, 4:24), 혹은 카타뒤나스튜오’(dominate, 10:38), ‘데오’(bind, tie, 13:16), ‘에코’(hold, 8:49)등이 사용되었으며, 귀신에게 사로 잡혀서 소유가 되는 것을 뜻한다. 즉 귀신의 내적 사역을 뜻하며, 성령이 내주하는 거듭난 성도들에게 해당될 수 없는 단어들이다.

4) 믿는 자가 귀신을 쫓을 수 있는가?

성경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귀신을 쫓고 병을 치료하며, 능력과 권세를 보여준다. 그런데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예수님이 귀신을 쫓으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준 사람들은 열두 제자들, 즉 사도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9:1-2)

누가복음 91-2절은 열두제자에게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그 대상이 열두 제자라고 언급한다. 또한 성경은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하는 것을 사도의 표라고 말한다.

사도의 표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후12:12)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3:14-15)

그러나 보편적으로 믿는 자가 귀신을 쫓을 수 있다는 성경구절이 유일하게 나온 곳이 마가복음 16:17이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 16:16-18)

그러나 우리는 이 성경구절에서 과연 보편적으로 믿는 자가 그 대상인지에 대해서는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믿는 자는 뱀을 집어 올리거나 독을 마셔도 해를 입지 않을까? 우리는 누구라고 할지라도 이 질문에 답변할 수 없다. 믿는 사람이 병든 사람에게 손을 대면 낫는가? 이것도 실제와 다르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이 귀신을 쫓아낼 수 있으며 방언을 말할 수 있다는 것까지는 성경구절을 인용하지만, 그 이하는 인용하지 않는다. 초대교회의 은사 중에는 치유에 대한 은사도 있었지만 모든 사람이 다 치유의 은사를 받은 것은 아니며, 모두가 방언의 은사를 받은 것도 아니었고, 은사란 공공체의 유익을 위하여 각 지체에게 나누어주는 선물로서, 지체마다 그 은사적인 기능과 역할이 다른 것이었다.

학자들은 이 성경구절이 보편적인 내용이 아니고, 장래의 어떤 특정한 사건을 뜻한 표현이라고 말한다.

사도행전 28:3-6에서 바울이 뱀에게 물렸지만 상함이 없었던 사건이 있었으며, 이 사건을 지칭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또 독을 마셔도 해를 입지 않는다는 내용이 사도요한의 전승(Acts of John 20)이나 유세비우스의 교회사(3, 39, 9)에 기록되어 있는데, 유세비우스는 유스투스 바르사바스가 독을 마셨는데 아무런 해를 입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학자들은 강조를 위한 과장적인 표현법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서 아래 마테복음 본문은 믿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누구라도 산을 옮길 수 있다는 보편적인 사건을 예로 든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강조하는 표현이 될 것이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17:20)

교회를 세우기 위한 초대교회의 한정적인 은사와 능력을 말하지만, 그러나 지금은 중지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러한 주장은 워필드, 크리소스톰, 어거스틴 조나단 에드워즈, 메튜헨리, 헨드릭슨등의 주장이며 현재 보수적인 신학 견해이기도 하다. 그 근거는 유사한 표현의 기록이 누가복음 10:17-19에 있는데 다음과 같다. 즉 주님이 한정적으로 부여해 준 권능이라는 것이다.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10:17-19)

시내산사본, 바티칸사본등 주요 사본에는 마가복음 169-20절까지가 기록되어 있지 않으므로 후기에 추가된 내용이라는 주장이 있다.

물론 마가복음 16:9-10절의 내용이 주요사본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이 실제 사실적인 사본적인 증거이지만, 필자는 우리가 보는 성경 내용을 후대에 추가되었다는 견해를 인정할 수 없으며, 부분적으로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어쨌든 네가지 학설 중에서 어떤 것이 사실인지 알 수 없지만, 마가복음 본문의 내용은 모든 믿는 사람이 지금도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인 능력이 아니라고 볼 때에, 믿는 자가 귀신을 쫓을 수 있느냐는 내용은 현실성이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특히 아래 성경구절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다고 하여도 모두 진실이 아니라는 내용이 분명하다. 즉 모두가 귀신을 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7:21-2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19:13-16)

5) 대적기도, 선포기도가 기도인가?

일반적으로 대적이라는 용어는 , 어떤 세력, 힘 따위가 서로 마주 대하여 섬을 뜻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신약성경에서 사탄, 마귀나 귀신, 악한 영에게 대적한다는 것은 모두 개인적인 구원에 대한 것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미혹에 넘어가지 않는 것 또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기도라는 용어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이며 하나님께 드리는 간구와 요청을 뜻한다. 성경은 대적기도와 선포기도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즉 영적싸움이란 개인의 구원을 위하여 믿음을 지키는 것이며, 혈과 육의 육체적인 싸움을 뜻하지 않는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질병을 치료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며, 귀신을 쫓을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성경에서의 영적싸움 특히 대적이라는 의미는 개인의 구원에 대한 성화의 과정을 뜻한다.

만약 귀신을 쫓음으로서 우리가 가난으로부터 부를 찾게 되고, 질병으로부터 건강을 회복하며, 육체적인 불행과 사고로부터 축복을 불러올 수 있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부를 소유하여야 하며, 모두 질병에 걸리는 일이 없이 건강하여야 하고, 모두 불행과 사고가 없는 육체적인 축복을 누려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성경은 귀신을 쫓는 것을 영적싸움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우리는 사탄과 마귀, 귀신의 미혹에 대적하기 위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성령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기도로 요청할 수 있으며, 우리의 질병을 치유할 수 있도록 기도할 수 있다.

또한 대적기도나 선포기도를 함으로서 어떤 효력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한 기도는 없으며, 우리는 하나님께 응답을 기다리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