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철목사와 임헌원목사에 대한 반박(4)
– 오히려 이단성이 있는 사람은 그분들이 아닌가?-
이인규
필자는 많은 신학서적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가진 거의 모든 조직신학 서적은 부활에 대해서 동일한 설명을 하고 있다. 이것은 부활에 대한 정통신학적인 견해가 같다는 것을 뜻한다.
성경이 말하는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속죄, 칭의, 중생등 구속사역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단이 아닌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예수 십자가 대속의 사역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조직신학 서적은 동일하게 말하고 있는데, 만약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의 교리들이 모두 헛것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부활을 믿지 않아도 십자가 죽음만을 믿으면 구속사역이 완성될 수 있다는 주장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정통신학적인 견해도 아니다. 아니 단순히 오류가 아니라 위험한 견해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시시한 토론은 해 본 적이 없다. 필자는 신학적인 근거가 너무 많아서 모두 글로 올릴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런데 상대방은 신학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다만 인격적인 비난만 하고 있을 뿐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춘천 한마음교회의 부활관은 지극히 정상적인데, 오히려 그곳을 비난하는 몇사람들에게 심각하고 위험한 문제점이 있어 보인다. 구체적인 조사를 받아야 할 사람은 오히려 그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고전 15: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고전 15: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고전 15: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고전 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전 15: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고전 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 2. 구속사역의 구성분 :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속사역의 본질의 구성분이며 따라서 복음의 구성분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나눌 수 없는 사건으로 성경에서 항상 함께 언급된 것은 부활은 구의 죽음과 함께 구속사업의 기조가 되는 때문이다.
1) 속죄 사업의 수행에 필요 :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속죄사업을 수행할 수 없는 것이었다.
2) 구속의 본질에 광명 :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속의 본질을 가르쳐주는 큰 광명이다.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서 자아의 인격 완성을 기대함에는 부활의 광명에 의하여서만 그 본격적 지위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즉 인생은 영과 육의 합성체이므로 완전한 구속을 얻음에는 바울의 말과 같이 몸을 속량하는 것이 그 요결의 하나다.(롬8:23) 마22:32의 예수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이 산 자의 하나님이시면 영뿐만 아니라 육까지 살게 하여 주실 것이 당연한 것이다. (교의신학, 기독론, 박형룡, 보수신학서적간행회, 201-202쪽)
박윤선목사의 다음 주장은 아주 충격적이며 참신한 선포와 같은 내용이었다.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지 못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사탄이 승리하였다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부활신앙이 아니라면 기독교회 자체가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바빙크는 말하기를 “만일 그리스도께서 몸으로 살지 못하셨다고 말한다면 죄악의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가 정복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승자가 그리스도가 아니고 사탄이라는 말이 성립된다.” 하였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으셨다는 부활신앙이 아니었다면 기독교회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무엇보다도 성경의 증거에 의하여 확실하다. (개혁주의 교리학, 박윤선, 279-280쪽)
박윤선목사는 부활이 곧 예수가 메시야와 중보자가 되는 증표가 되며, 사죄와 칭의 의 완성과 보장이 되며, 우리 부활의 보증이며, 기독교의 기초가 된다고 말한다
– 바빙크의 말을 다시 인용한다면 그의 부활은 그가 메시야이신 증표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증표요, 그의 중보자 사역의 완성이요, 그의 높아지심의 방법이요, 우리의 받을 사죄와 칭의의 보장이요, 우리에게 주실 영적 축복과 은사의 근원이요, 우리의 부활에 대한 보증이요, 사도적 기독교의 기초이다. (개혁주의 교리학, 박윤선, 280쪽)
웨인그루뎀은 약 4페이지에 걸쳐서 부활교리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내용은 부활이 중생과 칭의와 몸의 구속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너무나 많은 분량으로 인하여 소제목만을 기록하고자 한다.
– 부활 교리의 중요성
a.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중생을 보장해 준다: 벧전 1:3
b.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칭의를 보장한다: 롬 4:25
c.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도 완전한 부활의 육신을 받게될 것을 보장한다. 고전 6:14, 고후 4:14, 고전 15:20 (웨인그루뎀 조직신학 중권, 167-170쪽)
김준삼교수는 동일한 주장을 한다.
– 만약 그리스도의 실제적 부활이 없었고 다른 인간들과 같이 죽은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가 죄인들을 대신해서 구속사역을 주장하는 근거가 없어진다.그리스도가 십자가로서 악마를 격멸하셨다고 말해도, 실제 이 부활이 없었다고 한다면 즉 죽음의 세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그 죽음의 세력이 놓여져 있다고 한다면, 승리하였다는 증명이 없는 것이 된다. 그렇지만 승리하신 그리스도가 부활하시므로서 죽음을 격멸하신 사실에 있어서 증거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의 구속의 완성이 필연적 결과임과 함께 부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증명하는 증거적 의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교의신학, 기독론과 구원론, 김준삼, 도서출판 총신, 94쪽)
김준삼교수는 로마서 4:24-25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인 구원론에 의하면 칭의는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획득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만일 예수가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그 믿는 근거가 없어진다고 결론을 말한다
– 셋째, 신자의 칭의, 중생, 부활의 수단으로 연결되어진다. (롬4:24-25,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이것은 단순하게 문자대로 읽는다면 칭의는 부활에 의해서 일어났다고 생각되어진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의해서 우리들이 의롭게 되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죽으심에 의해서 칭의가 일어나지 않고 부활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성경의 명확한 가르침에 의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칭의는 어디까지나 십자가의 죽으심에 있어서 획득되어진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 만약 그리스도가 부활하시지 않았고 부활이란 사실이 우리들에게 제시되지 않았다면 우리들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믿는 근거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의롭게 되어지지 않는다.하나님은 우리들이 믿어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부활하시어, 그리고 부활한 사실을 우리들에게 풍부하게 제시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의롭게 되기 위해서 부활되어졌다는 표현은 가능하겠다고 보겠다. 이 경우에 있어서 부활이란 성도의 칭의의 수단으로 연결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교의신학, 기독론과 구원론, 김준삼, 도서출판 총신, 95-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