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성소에 대한 히브리서 9장의 해석
이인규
히브리서는 하늘성소에 대해서 말한다. 그렇다면 하늘성소는 단지 상징적인 장소로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곳일까? 그렇지 않다. 모든 정통신학적인 주석은 하늘의 성소를 상징적이 아니라 실재 하늘에 존재하는 지성소로 해석한다.
그렇다면 예수의 피를 드리는 희생제사는 지상에서 드리고 또 하늘성소에서 드린 것일까? 그 답변은 “그렇지 않다”고 우리는 말해야 한다.
예수님의 피는 단번에 드려진 희생제사이며 영원한 제사이기 때문에 하늘과 땅에서 두 번 드려진 제사가 아니다.
히브리서 9장11-12절, 그리고 히브리서 9장23-24절에 대한 해석에 대해서는 상당히 다양한 견해가 있으며, 자신의 주장만을 옳다고 고집하다가 독선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성소에 대한 여러가지 견해를 연구하기 전에 몇가지 중요한 점을 놓치지 않아야만 한다
1) 예수의 피로 드리는 희생제사는 단번에 드려진 제사이다
2) 하늘의 성소는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다.
3) 예수의 십자가 희생제사와 하늘성소에 들어가신 것은 분리된 사건이 아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예수님의 피로 드려진 제사는 십자가와 하늘 성소에 드려진 두 번의 제사가 아니다. 그런데 그 단번에 드려진 한번의 제사는 십자가에서도 드려진 제사임과 동시에 하늘성소에서도 드려진 제사로 적용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여 십자가에서 드려진 희생제사만을 강조하다가 하늘성소에 드려진 제사를 부정하여도 잘못이고, 하늘 성소에서 드려진 희생제사만을 강조하다가 십자가에서 드려진 희생제사를 부정하여도 잘못이다.
옛 언약(율법) |
새 언약(복음) |
|
제사장 직분 |
육체적 혈통에 근거한 제사장의 직분(7:16) |
죄가 없는 대제사장 그리스도(7:26) |
장소 |
하늘성소의 모형과 그림자인 장막(9:24) |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완전한 하늘의 성소(9:11, 24) |
제물 |
염소와 송아지의 피(9:12-13) |
그리스도 자신의 피(9:12) |
횟수 |
해마다 드리는 제사(9:25) |
단 한번의 제사(9:26, 28) |
결과 |
불완전한 정결의식이므로 반복이 요청됨(9:13) |
완전한 구속의 성취(9:26) |
히브리서가 비교하는 지상의 성소(모형)와 하늘의 성소(실체)는 십자가의 제사와 하늘 성소의 제사를 비교한 것이 아니며, 위의 도표가 말하는 것처럼 율법의 짐승의 피로 드리는 성소의 제사와 복음의 예수의 피로 드리는 하늘 성소의 제사를 서로 구별하여 비교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의 희생제사와 하늘성소의 제사는 두 개의 분리된 제사가 아니라, 하나의 희생제사로서 동일한 적용을 하여야 한다.
1. 히브리서 9:11-12
히 9: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히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 IVP 성경주석(1836쪽) 히 9:11-12
– 한편 예수님은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들어가셨다. 그 분의 제사장 직분은 하늘에 속한 성소, 곧 참 하늘로 들어가는 길을 연다. 그분은 우리의 피를 위한 제물로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뒤에 승천하사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 그분은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하늘의 하나님 존전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그 분의 제사는 아주 완전하셔서 단번에 지성소에 들어가셨다.즉 그분의 십자가의 못 박히심과 하늘의 올리우심은 반복된 필요가 없다. 참으로 그 분은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2) 메튜헨리 주석 히 9:12
– 1)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11절). 구약이 장래 나타날 것에 대한 그림자라면 신약은 구약의 성취이다. 약속들이 성취될 때, 즉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와 그의 제사장직에 의지할 때 장래의 모든 좋은 일들은 성취될 것이다. 모든 좋은 일이란 곧 하늘나라의 상태로 되는 것으로 거기서는 구약과 신약이 모두 성취될 것이며 그때의 영광의 상태는 은혜의 상태를 온전케 할 것이다.
2) 그리스도는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의 대제사장이다(11절). 그의 몸, 곧 그의 인성은 복된 처녀에게 임하신 성령에 의해 잉태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새로운 방법, 즉 새로운 창조 질서인 것이다.
3) 우리의 대제사장인 그리스도는 구약시대의 대제사장이 소나 염소의 피를 들고 지성소에 들어간 것과는 달리 자신의 피를 들고 하늘에 들어 가셨다.
4) 우리의 대제사장은 단번에 천국에 들어가셔서 영원한 구속을 얻으셨다.
5) 성령께서는 구약의 희생 제물의 효력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셨다. 율법 하의 희생 제물의 피의 효능은 육체를 정결케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13절).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의 효력은 훨씬 더 큰 것이다(14절).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피의 효력은 다음의 사실, 즉 그리스도께서,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흠도 하나의 죄의 오염도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드렸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피의 효능은 무엇인가? 이 피는 죽음에 이르는 행실로부터 양심을 깨끗이 하기에 충분하다. 이것은 그 죄된 영혼과 양심에까지 효과를 미친다. 이 피는 우리로 하나님께 봉사하는 삶을 살게 하며 성령의 은혜로운 감화력을 통하여 영혼을 거룩하게 하여 재생시킨다.
3) 호크마 주석
성 경: [히9:11]
주제1: [그리스도 희생의 완전성]
주제2: [그리스도의 피 흘림으로 인한 새 언약]
개역성경에는 ‘데‘(‘그러나‘)가 생략되어 있다. ‘데‘는 1-10절에 언급된 불완전하고 제한된 첫 언약으로부터 새 언약으로 주제가 바뀜을 시사한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 ‘장래 좋은 일‘은 옛언약이 제공해주지 못한 온전한 죄의 씻음과 하나님께로 자유롭게 나아가게 해주는 새 언약의 구속을 의미한다(Morris). 이러한 영적 축복은 구약의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들이 속죄일에 행한 제사와는 달리 영원한 새 언약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성취한 종말론적 특성을 반영한다(Johnsson, Grundmann, Lane). 한편 ‘오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게노메스‘는 부정 과거로서 새 언약의 좋은 일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시사한다(Morris). 그러나 아직 완전히 실현된 것은 아니다.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 ‘말미암아‘의 헬라어 ‘디아‘(‘통해서‘)는 도구격으로 그리스도께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에 의해서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기에 혹자는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이 천국이라고 주장하나(Bruce) ‘그리스도 자신의 몸‘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Calvin, Morris,Westcott). 왜냐하면 저자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통해서 새언약의 구속 사역이 성취되었음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24절;10:20).
성 경: [히9:12]
주제1: [그리스도 희생의 완전성]
주제2: [그리스도의 피 흘림으로 인한 새 언약]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 구약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들은 속죄일에 동물의 피를 통해서 구속 사역을 행하였다(레 16:3, 5-11,15,16). 염소는 백성의 죄를 위한 희생 제물이었으며 송아지는 대제사장 자신과 가족을 위한 희생 제물이었으나 그 효력은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것이었기에 매년 속죄일마다 희생 제사를 드려야만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새 언약의 대제사장으로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온전한 구속 사역을 성취하셨다(Lane). 즉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희생 제사는 영원하며 완전한 것이었다(Hewitt).‘단번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파 팍스‘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속죄사역의 특성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매년 반복되는 옛 언약의 구속 사역과는 달리 반복의 가능성이나 필요성이 없음을 시사한다(Morris, Lane). 한편 ‘성소‘는 ‘지성소‘를 가리키는 것으로(Hewitt) 본절에서는 지상의 장막이 아닌 하나님의 존전인 하늘 성소를 가리킨다(Lane, Bruce, Morris). 그리스도께서 속죄 사역을 성취하셔서 하늘 성소에 들어가심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완전한 성취를 시사한다(Lane).
4) WBC 주석
WBC 주석은 특별히 하늘의 성소에서 드려진 제사에 대해서 강조하는데, 지상에서 드려진 제사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즉 본질적인 개념으로서 하늘에서 드려진 제사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 그는 지상의 장막에서 제사장적 직무를 수행한 것이 아니라(참조 9:1,7), 하늘의 성소에서(9:11-12,24) 그리한 것이다(9:11-12,24).결과적으로 그는 하나님께 무제한적인 접근을 제공할 수 있었다(9:14; 참조 10:19-20). 천상 성소에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희생과 사역의 효능이 8:1-4에서 주제적으로 먼저 도입된다.(WBC 히브리서–하, p.105)
– 그의 제사장적 사역의 범주는 지상의 장막에 있지 않았다(9:1).그는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셨다.그의 접근의 매개는 동물의 피가 아니었다(9:7). 그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하나님의 존전에 들어가셨다.그의 제의 행위의 결과는 제한을 받고 반복되는 일년 일차의 속죄의식에 의한 구속이 아니었다(9:9). 그는 “영원한 구속”을 이루었다. (WBC 히브리서–하, p.109)
2. 히브리서 9:23 – 24
히 9: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히 9: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히브리서9:23-24에서 난해한 구절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무엇을 뜻하며, “정결케 될 필요가 있는 더 좋은 제물”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물론 이것에 대해서도 다양한 견해가 있다.
1) 호크마 주석
성 경: [히9:23]
주제1: [그리스도 희생의 완전성]
주제2: [그리스도 희생의 완전성]
저자는 본절에서 ‘하늘에 있는 것들‘과 그 모형인 ‘지상에 있는 것들‘을 비교하여 희생 제물의 피와 그리스도의 피를 대조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 ‘그러므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운‘은 본절이 19-22절에서 논한 내용에서 비롯된 추론임을 시사한다. 한편 구약에서 모세를 통해 허락하신 첫언약과 장막을 통한 희생 제사는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이다. 이러한 모형들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흘림이 필요하였다. 왜냐하면 율법에 따라 정결케 하는 것은 피흘림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22절).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 ‘하늘에 있는 것들‘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사람들의 죄로 인해 더럽혀진 ‘하늘 성소‘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ane). (2) 혹자는 하늘 성소에 들어갈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ruce, Spicq, Morris, Moffatt, Delitzsch, Hewitt). 이 두가지 해석중 후자가 타당하다.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인 지상에 있는 것들은 피로써 정결케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외형적인 정결케 됨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더 좋은 제물‘ 즉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영적이고 내적인 양심의 정결을 필요로 하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전이기 때문이다(엡 2:22).한편 그리스도의 피를 의미하는 ‘제물‘의 헬라어 ‘뒤시아이스‘는 복수이다. 이것은 한번의 제사로서 속죄 사역이 성취되었음을 나타내는 총칭적 용법으로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제사가 단번에 행한 영원한 제사임을 시사한다(Morris).
성 경: [히9:24]
주제1: [그리스도 희생의 완전성]
주제2: [그리스도 희생의 완전성]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통해 들어가신 곳은 지상의 성소가 아니다. 지상의 성소는 단지 외형적(外形的)인 것만을 속죄하는 불완전한 것으로 하늘의 실체를 보여주는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지상 성소의 실체인 하늘이 성소에 들어가셨다.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거하는 성소인 참하늘에 들어가신 것은 (Hofius) 이미 십자가상에서 자신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에, 지상의 성소에 들어가는 대제사장들처럼 희생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우리들을 위해 중보하시기 위함이었다(Hewitt, Morris, Bruce).
2) 메튜 헨리 주석
Ⅳ. 그리스도의 피의 효과 9:23-29
〔1〕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들도 정결케 할 필요가 있다(23절).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은 하늘의 모형이며 이 성전 안에서 하나님과 사귀는 것은 그의 백성에게 있어서 곧 지상에 있는 하늘 나라인 것이다.
〔2〕본래 원형은 모형보다 더 좋은 법이다. 그러므로 원형은 모형보다 더 좋은 제물을 드려서 거룩하게 구별하여야 한다. 이 하늘에 있는 것들은 은혜로 시작하여 영광으로 완성되는 복음의 특권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희생이 율법의 제물보다 훨씬 더 훌륭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한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희생 제물이 바쳐진 장소가 더 훌륭하다. 율법 아래에서 바쳐진 것들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성전이었다(24절). 그러나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은 자신이 직접 들고 하늘로 올라 가셔서 하나님 앞에 바치셨다.
둘째, 희생의 제물 자체가 더 우월한 것이었다(26절). 율법 시대의 희생 제물은 각각 짐승의 생명과 피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희생은 그리스도 자신의 몸이었다. 즉 그는 자신의 피를 드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피야말로 말할 수 없는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셋째, 율법 하의 희생제물은 반복해서 드려야 했다. 이것은 율법의 불완전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희생은 온전하여서 한번만 드려지고 그것으로 모든 목적을 이루기에 충분하였다.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23절).
넷째, 율법 하의 제물은 효험이 없는데 비하여 그리스도의 희생은 효험이 있다는 사실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월함을 알 수 있다. 율법의 제물은 제물 그 자체가 죄를 씻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에 드린 희생 제물은 죄를 완전히 깨끗하게 제거하신다.
3) 톰슨주석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인 지상에 있는 것들은 피로서 정결케 되었다 할지라도 이는 외형적 정결에 불과하였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은 더 좋은 제물, 즉 그리스도의 피를 필요로 한다.여기서 하늘에 있는 것들은 하늘의 성소에 들어갈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4) IVP 주석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 –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 – 은 반드시 제물의 피로서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다. 이스라엘의 성소는 손으로 만든 것이고, ‘참 것 곧 하늘의 그림자’에 불과하였다. 저자가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정결하게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할 때에, 하늘이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더럽혀진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만일 그런 뜻이라면 하나님이 하늘을 떠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리스도의 제사가 단지 인간의 마음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 실체의 차원에서 존재하는 하나님과의 사귐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우주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장막과 속죄일 비유 이면에 있는 저자의 간단한 멧세지는 예수님이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로 하여금 이제와 영원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신다. 23절에 언급된 더 좋은 제물은 실제로 예수그리스도라는 단 하나의 독특한 제물이다.
5) 최세창 주석
최세창주석은 다양한 신학자들의 여러 가지 견해를 모두 올려놓고 함께 설명을 하는 특징이 있어서 필자는 많이 이용을 한다.
천국에 있는 거룩한 것들이 정결케 되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 때문에 해석하기 어려운 문장이다.
1) 하나님의 사랑의 빛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구름으로 대체됨으로서 하늘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더 좋은 제물로 정화되어야 한다는 설(Delitzsch)
2) 죄인들이 들어갈 때에 하늘의 성소가 더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더 좋은 제물로 정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설(Riggenbach)
3) 타락이 하늘의 성소에까지 오염시켰으므로 저 좋은 제물로 정결해져야 한다는 설 (Lane)
4) 하늘에 있는 그것들의 정화는 더 좋은 그리스도의 제사에 의한 하늘성소의 개통 내지 봉헌을 의미한다는 설(C.Spicq, G.Lunemann, J.Owen)
5) 옛 체제 하에서 실시한 여러 가지 정결의식과 새 체제 하에서 이루어진 정화를 일일이 엄말하게 대응시킬 필요가 없으며, 따라서 히브리서 저자의 의도는 단순히 새 언약의 피가 옛 언약의 피보다 절대적으로 우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라는 설(P.E.Hughes)
6) 단순한 문학적 대구로 보는 설(J.Calvin, Ebrard)
7) 글자 그대로 하늘도 더 좋은 제물로 정결해져야 한다는 설(H.Alford)
8) 죄로 인해 더러워진 천국백성이 더 좋은 제물로 정화되어야 한다는 설(H.Windisch)
9) 하늘의 성소는 성도들이 가는 곳이므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케 되어 하늘에 들어가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설(Tholuck, W.F.Moulton, C.W.Carter)
10) 하늘로부터 사단이 추방당하고 그와 함께 초자연적인 악한 권세들이 제거됨으로서 하늘이 정화되었다는 설(Thomas Aqunas, J.Hering, O. Michel, Bleek)
11) 하늘에 있는 그것들 또는 하늘의 성소를 더 좋은 제물로 정화되어야할 하나님의 교회 혹은 하나님의 교회를 구성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해하는 설(Crysostom, Peter Lombard, Herveous, Luther, J.Wesley, J.Brown, F.F.Bluce)
12) 땅뿐 아니라 하늘도 더 좋은 제물로 정결해져야 된다는 설(W.Barclay)
13) 천계에 가기로 되어있는 성도들과 하늘의 성소, 즉 예수님은 피로써 성도들을 정결케 하시고 하늘성소에 나타났던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들도 사랑으로 변화시킨다는 설(박윤선)
1번에서 7번까지는 받아들이기 어려우며, 나머지 견해들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의 타당성을 지닌 것으로 보아 종합해서 이해해야할 것이다. 즉 더 좋은 제물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은 하늘과 땅, 그리고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모두를 포함하는 우주적 구원사건이므로 땅에 있는 모든 존재는 물론, 하늘에 있는 모든 존재들을 정결케 하시는 효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의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나님 곧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셨다. 이제는 모형 또는 그림자의 시대였던 옛 언약의 체제와 원형 또는 실체의 시대인 새 언약의 체제를 대조하는 것일 뿐 아니라, 영원한 현재를 나타나는 것이다. 영원히 하늘성소에 들어가신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자이시며 변호자로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 것이다.
루터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승천하시지 않았다면 그분의 승천은 우리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불이익이 아니라 유익을 위해 하늘에 오르셨다는 이 사실 속에 우리의 영광과 기쁨이 있다”라고 하였고 또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면전에 나타나서 제사장 노릇을 하는 것이 바로 우리를 위한 일임을 확신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휴스(F.E. Hughes)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하심을 얻었으나 루터의 그 유명한 표현처럼, 그리스도인은 의인인 동시에 죄인이다. 그 까닭에 그리스도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하늘에 출현하셔서 모든 죄를 씻는 언약의 피를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적용시킬 필요가 있었다. 다시 말해서 구속적 죽음의 효력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6) 마틴로이드존스 목사
– 따라서 그의 논증은 이렇게 표현될 수 있습니다. 모형은 수소와 염소의 피로 정결케 되었지만, 이것만으로는 하늘의 성막자체를 정결케 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하늘의 성막은 더 나은 것으로 정결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더 나은 것으로 정결케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자의 피로 정결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피를 드렸습니다.히브리서 9장을 읽고 8장도 함께 읽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논증을 파악하기 위해 히브리서 전체를 읽길 바랍니다. 이것은 성경전체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신비로운 진술에 속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천상적 장소 자체도 정결케 되어야 하며 예수그리스도 바로 자신의 피로 정결케 되어 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배우게 됩니다. (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기독교문서선교회, 마틴로이드존스, 463쪽)
– 내 생각에는 이것이 성경의 다양한 진술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골로새서 1:20이 그 한 예입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땅뿐만 아니라 하늘의 모든 것을 당신과 화목시키려 하십니다. 물론 이것이 유일한 설명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은 그저 여러 설명 중 하나일 뿐입니다. 우리 앞에서 주님께서 말하자면, 자신의 피를 취하여 사탄의 타락으로 남겨진 얼룩을 제거하기 위해 하늘 자체도 정결케 하셔야 했다는 참으로 놀라운 진술이 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마침내 하늘은 완전히 정결케 되었습니다. 그라고 악과 그 모든 영향은 땅에서뿐만 아니라 하늘 모든 곳에서 제거되었습니다.(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기독교문서선교회, 마틴로이드존스, 464-465쪽)
마틴로이드존스는 하늘성소의 제사에 대해서, 특히 하늘 자체도 정결되어져야만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심지어 하늘도 예수의 피로 정결해 져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마틴로이드존스의 견해에 대해서 필자는 부분적으로 어느 점은 인정하지만 또 어떤 부분적인 견해에 대해서는 찬성을 하지 않으며, 그러나 하나의 다양한 견해로서 이해를 한다.
7) 그랜드주석
–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점을 갖게 된다. 그것은 하늘에 있는 거룩한 원형이 어째서 정결케 되어야 하느냐 하는 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자들은 여러 가지 해석들을 시도하였다. 그 해석의 첫번째는 이것이 단순한 문학적 대구에 불과하다는 견해이다(Luther, Calvin, Ebrard). 즉 땅에 있는 것들이 정결케 되었으니 하늘에 있는 것도 정결케 되어야 한다는 단순한 대구법적 문학 표현이라는 것이다. 두번째는 욥15:15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하늘이라도 부정하게 보신다는 계시 문학적 개념에서 본절과 같은 표현을 했다는 견해이다(Michel). 세 번째 는 타락한 천사인 사단이 하늘에서 축출당한 사건(눅 10:18)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견해이다(Bleek). 네번째는 글자 그대로 하늘 성전도 정결케 됨을 받아야 한다는 견해이다. 다섯번째는 이것이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임재를 표현한 것이라는 견해이다(Bruce). 여섯번째는 하늘의 성소 그 자체는 부정하거나 더럽지 않으나 장차 성도들이 갈 곳이므로 그곳으로 갈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케 되어야 함을 표현한 것이라는 견해이다(Thomas Aquinas, Bengel, Delitzsch). 이상의 견해들 중 본절의 전후 문맥상에 있어서나 기독교 교리상에 있어서 나 가장 보편 타당한 견해는 제일 마지막 견해일 것이다.
8) WBC 주석
– 그의 제사장적 사역의 범주는 지상의 장막에 있지 않았다(9:1).그는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셨다...(중략)… 해석의 이 노선은 디아 테스 메이조노스 카이 텔레이오테라스 스케네스(δι¦ὰ τῆς μεί¦ζο¦νος καὶ τε¦λει¦ο¦τέ¦ρας σκη¦νῆς, “더 크고 온전한 장막[구획]으로 말미암아”)라는 어절에서 장소적인 언급을 전제한다(위의 원문주해 c를 보라). 만약 디아(δι¦ὰ)를 도구적인 의미로 이해한다면(즉 그리스도가 “더 크고 완전한 스케네스[σκη¦νῆς, 장막]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감을 이루었다”), 그것이 어떤 면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의미할 수 있도록 스케네스(σκηνῆς)에 상징적인 가치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해석의 전례를 헬라와 라틴 교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지라도, 저자가 그렇게 은밀하게 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흔치 않다. 그가 그리스도의 몸을 언급할 때 그의 특징적 용어는 사르크스(σἀρξ, “육체”, “몸”)이다(2:14; 5:7; 10:20). 11b절에서 디아(διἀ)의 도구적인 해석은 인접한 논증, 논증이 전개되고 있는 문맥, 그리고 히브리서의 여타 곳에서 진술이 이루어지고 있는 병행에 거슬린다. (WBC 히브리서–하, p.109)
–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존전에서 구원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서(9:24-26; 참조. Cody, Heavenly Sanctuary, 170-80), “휘장 뒤로” 들어갔다(6:19-20). 십자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희생은 반복이나 갱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의 승귀와 참 성소로의 입성은 구속 사역의 영원한 유효성을 성별 짓는다(Spicq, 2:256-58).(WBC 히브리서–하, p.112)
WBC주석은 히브리서 9장이 구약 제사와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를 구조적으로 대비시켜 영원한 제사의 효력과 영원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가 구약의 제사와 구별되는 이유를 1)장소, 2)수단(매개) 두 요소의 차별성(불연속성)에 있다고 보았다. 즉, 구약은 땅에 있는 성소에서 제사를 드렸지만, 그리스도는 하늘에 있는 성소에서 제사를 드리셨다(장소적 요소). 구약은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렸지만, 그리스도는 자기의 피로 제사를 드리셨다(수단(매개)적 요소). 그렇기에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는 구약 제사의 불완전성을 뛰어넘는 완전하고 영원한 제사인 것이다.
WBC는 구약의 짐승의 피로 드리는 성소제사와 예수의 피로 드리는 하늘 성소의 제사를 서로 구별하여 비교한다. 그러면서 하늘 성소에 대한 제사를 실재적인 제사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것은 곧 영원한 속죄 제사는 짐승의 피가 아닌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로 드려야 하며, 땅에 있는 성소가 아닌 하늘에 있는 성소에 들어가야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속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만이 아니라 하늘 성소의 입소를 필연적으로 포함한다. 즉,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있어서 십자가와 하늘성소 둘 중 하나라도 없이는 온전히 완성될 수 없는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WBC 주석은 히 9:12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라는 구절에 대해 다음과 같은 원문 주해를 기술하고 있다.
– 마지막으로 “일년 일차씩” 지성소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는 레위 대제사장과의 대조에서(9:7), 저자는 그리스도의 하늘 성소로의 입성을 “단번에”라는 에파팍스(ἐφἀπαξ)라는 단어로 수식한다. 그 용어는 반복의 필연성과 가능성을 배제한다(Stαhlin, TDNT 1:383-84). 문맥에서 그리스도의 죽음, 승천, 그리고 하늘 성소로의 입성은 단일한 것으로 회고된다. 그러나 그 강조는 하늘 성소로의 도달과 영원한 구속의 성취에 있다.분사어구인 아이오니안 루트로신 휴라메노스(αἰονἰαν λὐθτρωσιν εὑρἀμενος,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는 예전적인 논조를 갖고 있고, 아마도 찬송 어구였을 것이다(Michel, 312). 여기서 그것은 주동사와 동시적이거나 뒤이어지는 행위를 표현한다(위의 원문주해 f를 보라).(WBC 히브리서–하, p.110)
WBC는 하늘의 성소를 들어감으로서 그것을 종말적인 구속의 성취로 본 것이다.
– 9:11-14에서 저자는 15절에서 형성된 결론을 위한 근거를 발전시킨다: 그리스도가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서 종말론적인 구속을 이루었기 때문에,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신다.(WBC 히브리서–하, p.106)
9) 권성수 교수
– 옛 언약의 성막은 하나님에 대한 제한적 접근과 제한 속죄의 불완전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새 언약의 완전한 접근과 완전한 속죄로 개혁될 필요가 있었는데, 예수그리스도께서 드디어 새 언약의 중보로 단번에 하늘 지성소로 들어가셔서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다는 것이다(히브리서, 권성수, 총신대학교출판부, 263쪽)
– 그리스도는 과거에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단번에 영원히 속죄하시기 위하여 나타나셨다(9:26). 그리스도는 현재 과거에 완성된 속죄사역에 근거하여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대도하시기 위하여 나타나계신다(9:24). 그리스도는 미래에 과거에 완성된 속죄사역과 현재에 계속된 대도사역의 결과로 우리들에게 완성된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나타나실 것이다(9:28). 그리스도의 3시제구원(the three tenses of Salvation)이 그의 완성된 속죄사역에 근거한 것이다.(히브리서, 권성수, 총신대학교출판부, 286쪽)
필자는 호크마 주석, 그리고 WBC 주석과 권성수교수가 말하는 해석에 대해서 지지를 한다. 십자가에서 드려진 예수님의 피는 곧 하늘성소에서 드려진 피이며 이것은 분리된 별개의 사건이 아니며, 히브리서 기자는 율법의 제사와 복음의 제사를 땅의 성소와 하늘의 성소로 비교하고 있으며, 곧 모형과 실체로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