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는가?
이인규
예수를 진정으로 믿는 성도들은 모두 구원을 이미 받았다.
이것은 장로교나 감리교나 침례교, 성결교등 어떤 교파나 교단의 교회를 막론하고, 이단이 아니라면 모두 동일하게 가르친다. 그런데 구원파라고 불리는 교회에서는 왜 자신들만이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일반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을까?
성경을 전체적으로 본다면 “구원”에 대한 시제는 세가지로 언급된다.
즉 이미 얻은 구원(과거적 시제의 구원)과 현재 구원의 길을 걷고 있다는 표현(현재적 시제의 구원)과 궁극적으로 얻게되는 구원(미래적인 시제의 구원)을 말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미 얻은 구원’만을 구원으로 착각하고 있다.
물론 구원의 개념이 세가지라는 것은 아니므로 이것에 대하여 오해가 없기를 바라며, 다만 성경에서는 구원의 시제적인(시간적인) 개념이 세가지로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1) 과거적인 시제의 구원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성경구절은 과거적인 시제의 구원을 말하고 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엡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요5:24도 현재완료수동형이다. 즉 믿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지 않으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이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8)
요3:18은 믿는 자의 믿지 않는 자의 이미 받은 심판을 언급하고 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골1:13-14)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3:9-10)
골3:9-10도 과거분사형이다. 즉 이미 옛사람을 벗었으며, 새사람을 입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물론 위에 기록한 성경구절보다 더 많은 성경구절들이 과거적인 시제로서 이미 받은 구원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성경은 현재형의 구원을 함께 말하고 있다.
2) 현재적인 시제의 구원
성경은 구원의 현재적인 면과 현재에도 계속되는 진행적인 구원을 함께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이루라”라는 단어는 work out의 의미로 현재동사이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고전1:18도 구원의 현재적 시제를 가르킨다. “구원을 얻는 우리”의 동사시제는 현재수동형 분사로 사용되었고 직역하면 “구원을 받고 있는 우리”라는 뜻이 되어지기 때문이다.(who are being saved)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2:15)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2:2)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8:16)
성경은 이미 얻은 과거적인 구원의 개념뿐 아니라, 현재적인 시제를 갖는 구원의 개념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성경은 장래적이고 궁극적인 구원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3) 장래적인 시제의 구원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shall be saved)….”(롬5:9)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며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롬8:23)
롬8:23은 부활을 말하며, 그것을 몸의 구속이라고 말한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9)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롬14:1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3:20-21)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히4:1)
4) 구원의 확신
구원의 확신은 신앙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으며, 구원으로 가고 있으며,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으면 안되는 것은 그 구원의 시제가 과거이든 현재이든, 장래이든, 인간은 구원의 수혜자이며, 하나님이 구원의 주체이심을 알아야만 한다. 즉 인간은 구원에서 피동적인 입장이라는 것이다. 구원의 확신이란 무조건 내가 스스로 구원을 얻었다고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갖고 있는 믿음의 확증이어야만 한다. 내가 스스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구원 안의 작정과 다를 수가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계획 안에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누가 하나님의작정 안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인지할 뿐이다.
구원의 확신이란 나 자신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그 순간 순간의 현재진행형의 구원에 대한 연속적인 확증이어야만 한다. 즉 구원이란 “믿음의 현재적인 과정”이어야만 한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13:5)
내가 이미 얻었다고 단정하는 주관적인 구원이 곧 하나님의 구원이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나는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깨달았던 사람이 신천지나 하나님의 교회, 정명석집단과 같은 심각한 이단에 빠지는 경우가 실제로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과거에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들의 구원이 아직도 유효한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성경은 믿음에서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였으니…(딤전4:21)”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1:9)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심판을 받느니라”(딤전5:12)
다시 말하면, 과거의 시제만을 생각하는 형태의 구원, 즉 현재시제의 구원을 전혀 무시하는 믿음의 확증이나 미래의 종말적인 구원만을 의미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내가 과거에 예수를 어떻게 믿었는지, 내가 과거에 교회를 열심히 봉사를 했으며, 헌신하였는지는 구원의 확신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내가 지금 예수를 믿느냐는 것이 중요하다.
1) 나는 20년 전에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예수를 믿지 않는다 혹은 지금 이단교회를 다니고 있다.
2) 나는 지금은 예수를 믿지 않지만, 10년 후에 예수를 믿을 것이다.
이 두가지 유형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그들은 현재 구원을 받지 못하였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구원이란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이며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사역이며, 인간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자신의 믿음을 전혀 확증하지 않고 무시하면서, 과거의 믿음만으로, 혹은 내가 오래전부터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 과거적인 사실만으로 내가 이미 구원을 얻었다고 단언하는 것은 구원의 확증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즉 구원의 확신이란, 내가 지난 시간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었기 때문에 나는 구원을 이미 얻었던 것이며, 이 현재의 믿음으로 인하여 현재 구원의 길을 걷고 있으며, 이 믿음을 계속 유지하는 조건으로서 장래에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라는 확증이 되어져야만 한다.
“그러므로 이제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8:1)
본문은 현재시제를 뜻한다.
[KJV] [There is] therefore now no condemnation to them which are in Christ Jesus, who walk not after the flesh, but after the Spirit.
[NIV] Therefore, there is nowno condemnation for those who are in Christ Jesus,
다시 말하여 지금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을 정죄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물론 믿음마저도 하나님의 선물이며 은혜이다. 내가 하나님의 구원 작정 안에 있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 주시고, 내가 믿도록 하여 주실 것이며, 나를 최종적인 구원으로 인도하시고 견인시켜 주실 것이다. 내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주셔서 구원을 받도록 하여 주셨다는 것은 같은 의미의 내용이다.
또한 믿는 성도들에게 성령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구원을 얻었다는 인침과 보증이 될 수도 있으며, 아직 성령이 우리를 보호하고 인도하신다는 사실 자체가 구원의 성취를 향하여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여주신다는 뜻이다.
나의 노력과 의지, 행위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 우리는 오직 믿음과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우리는 구원에 대해서 즉각적인 구원과 점진적인 구원의 두가지를 말해야 하며, Already, but not yet 이라고 말해야만 하는데, 그 이유는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우리가 이미 구원을 얻었다는 사실만을 강조하다보면, 우리가 어떤 죄를 지어도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도덕폐기론이 되어질 수 밖에 없으며 곧 성화무용론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으며 지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최종적인 구원은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며, 그 최종적인 완성을 이루기 위해 예수를 믿음은 세상 끝날까지 지속시켜야 하는 책임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도 잊으면 안된다.성경을 예수를 믿지 않아도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하거나, 어떤 죄를 지어도 상관이 없다는 구절이 단 한곳에도 없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딤후 4:7-8)
“믿음없는 자가 되지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요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