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요한과 엘리야
이인규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4:5-6)
구약에서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하나님이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어 그 백성들을 돌이키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구약성경구절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한다고 믿고 있었다. 즉 엘리야가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예수님도 메시야가 아니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이 엘리야가 신약에서는 세례요한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마11:13-14)
“제자들이 묻자와 가로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야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마17:10-13)
1) 이단들의 주장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막9:13)
많은 이단들이 이 성경구절을 이용하여 예수의 재림교리를 조작하고 있는데, 다시 온다고 기록되어있는 엘리야도 실제로는 세례요한이었기 때문에, 다시 오신다고 하는 예수도 실제 예수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주장을 한다. 다시 말하여 엘리야 대신에 세례요한이 왔다는 것을 이용하여 재림예수도 다른 사람이 대신 온다는 것으로서, 결론은 자기 교주를 재림예수로 만들려고 하는 성경 짜맞추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초림예수도 유대인들이 메시야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하면서 재림예수로 온 자신을 임의로 대우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 이단들은 세례요한이 엘리야의 영을 받고 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배경은 많은 이단교주들이 재림예수의 영을 받고 왔다고 주장하기 위함이다. 성경에서는 죽은 사람의 영을 받고 다시 살아나서 나타나는 경우가 한번도 기록되어있지 않으며, 그러한 접신이나 초혼같은 경우는 반기독교적인 일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은 전혀 성경에 없으며, 세례요한이 엘리야와 동일한 인격으로 온 것도 아니며, 엘리야의 영을 받고 온 것도 아니고, 세례요한의 사역은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적인 사역과 하나님나라를 회복하는 사역을 위하여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다.
성경은 세례요한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왔다고 말한다.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눅 1:13-17)
다른 성경은 눅 1:17을 다음과 같이 번역을 한다
[공동번역] 그가 바로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을 가지고 주님보다 먼저 올 사람이다.그는 아비와 자식을 화해시키고 거역하는 자들에게 올바른 생각을 하게 하여 주님을 맞아들일 만한 백성이 되도록 준비할 것이다.”
[표준새번역] 그는 또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 주님보다 앞서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아오게 하고 거역하는 자들을 의인의 지혜의 길로 돌아서게 해서,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된 백성을 마련할 것이다.”
[현대인의성경] 그는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을 가지고 주님보다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이 자녀들에게 돌아서게 하고 순종치 않는 사람들이 의로운 사람의 지혜를 갖게 하여 백성들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
누가복음 1장 13-17절은 천사가 나타나 사가랴에게 전한 말인데, 엘리야가 직접 온다는 것이 아니고 세례 요한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온다”고 구체적으로 고지한다.
비록 외경이지만, 에녹1서 89:12에는 엘리야가 종말에 평화와 구원을 이루실 메시야의 재림을 전파하는 대제사장이 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세례요한은 엘리야의 사역을 감당한 것이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외치는 세례요한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회개를 하고 세례를 받았다.
2) 세례요한과 엘리야는 같은 인물이 아니다.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엘리야와 모세를 만나는 것을 제자들에게 보여주는데, 그 엘리야는 세례요한이 아니었다. 베드로는 그 광경을 목격하고 초막 셋을 짓겠다고 요청하기도 하였다.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마 17:3-4)
심지어 세례요한 본인조차도 자신을 엘리야가 아니라고 말한다.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 대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요 1:20-23)
즉 세례요한을 엘리야라고 말한 사람은 바로 예수님이셨고, 세례요한은 엘리야의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하였다.
3) 선지자적인 사명
엘리야는 성경에서 대표적인 선지자를 상징하며, 세례요한이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였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마 11:13)
또한 세례요한이 엘리야와 동일인물이 아니라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를 상징한다는 증거가 성경에 은연 중에 기록되어 있다. 세례요한에 대한 옷차림이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기록되어있는데, 우리는 이 구절에 대해서 무심코 지나치고 있으나, 이 털옷과 가죽띠에 대한 기사는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마3:4)
“요한은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막1:6)
세례요한의 털옷차림과 가죽띠의 옷차림에 대해서 무엇이 중요한 문제라고 마태가 마가는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을까? 그러나 이 구절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 구약에서 엘리야가 털옷을 걸쳐 입었으며 가죽띠를 띠었다는 사실이다.
“저희가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공동번역: 털옷을 걸친. 현대인의 성경: 털옷을 입고)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왕이 가로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왕하1:8)
스가랴 선지자도 그러한 언급을 기록하고 있는데, 선지자들도 자신을 선지자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선지자라고 하지 않으려고 털옷을 입지 않았던 것이다.
“그 날에 선지자들이 예언할 때에 그 이상을 각기 부끄러워 할 것이며 사람을 속이려고 털옷도 입지 아니할 것이며 말하기를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슥13:4-5)
[공동번역] “그 날이 오면, 예언자들은 환상을 복 예언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속임수로 입던 털옷을 걸치지 못하고”
[표준새번역] “그 날이 오면 어느 예언자라도, 자기가 예언자 행세를 하거나 계시를 본 것을 자랑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에게 예언자처럼 보이려고 걸치는 그 거친 털옷도 걸치지 않을 것이다.”
[현대인의성경] “그 날에 예언자가 다 자기가 예언한 말을 부끄러워할 것이며 예언자의 신분을 속이려고 예언자의 털옷을 입지 않고“
선지자들은 오히려 털옷을 입지 않았고, 자신이 선지자라고 하지 않았으며 환상과 예언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였다. 그러나 세례요한의 옷차림은 당당하게 털옷과 가죽띠를 입은 구약의 선지자 엘리야의 옷차림과 같았다. 다시 말하면 여러 가지 성경의 기록을 통하여 볼 때에, 엘리야가 직접 온 것이 아니라 세례요한이 “엘리야의 모습”으로 왔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엘리야라는 인물은 메시야가 오기 전에 와야만 하는 징조로서, 기다리고 있던 하나님의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서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리는 회복의 사역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례요한은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맣하였으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죄사함의 세례를 전하였다. 그런데 정작 세례요한은 자신이 엘리야도 아니며, 선지자도 아니라고 말한다. 특이한 점은 예수께서는 세례요한이 엘리야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정작 세례요한은 자신이 엘리야가 아니며 선지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요1:21-23)
그러나 세례요한은 분명한 선지자였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여자가 낳은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평가하였으며,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라고 말씀하고 계셨다. 심지어 헤롯왕조차도 세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느끼면서도 달게 들음이러라”(막6:20)
또 예수께서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장로들에게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인가 사람에게로인가를 물었을 때에, 그들은 대답을 못하였으며, 즉 모든 사람이 요한을 하늘에서 보내신 참 선지자로 알고 있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내게 대답하라. 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니, 그러면 사람에게로서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선지자로 여기므로 저희가 백성을 무서워하는지라”(막11:30-32)
4) 엘리야의 멧세지
이단의 교주들은 자신이 전에 몸을 담고 있었던 이단의 교주를 세례요한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정명석은 문선명을 세례요한이라고 주장하고, 이만희는 유재열이 세례요한이었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자신이 전에 있었던 곳의 교리와 유사하게 가르치고 있으므로 이단이라고 말하기 곤란하기 때문이고 둘째, 자신이 전에 있었던 곳의 교주를 세례요한이라고 하여야만 자신이 메시야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일교와 같은 계열의 이단들의 특징 중에 하나는 세례요한이 배도를 했다고 주장을 한다.
세례요한을 배도자라고 비판하는 이단들의 주장에 반박할 근거를 찾는 분들은 아래 링크된 필자의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https://cafe.naver.com/anyquestion/38569
물론 세례요한이 배도를 했다는 어떤 성경적인 증거도 없다. 세례요한은 주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왔으며, 예수님은 엘리야가 모든 것을 회복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이와 같이”라는 말의 뜻은 엘리야가 왔지만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고난을 받았듯이, 자신도 메시야로 왔지만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알지 못하므로 고난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당당히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띤 “엘리야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그는 당당하게 털옷을 입고, 참 예언자로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외치는 자”로 온 것이다.
성경적인 세례요한의 멧세지는 크게 다음과 같았다.
(1) 메시야의 오심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외쳤다(요1:6-8, 19-22)
(2)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 회개의 세례를 받으라고 외쳤다(눅3:3-14)
(3) 자신은 주의 길을 예비할 뿐이며, 자신의 뒤에 오실 메시야가 성령으로 세례를 줄 것이라고 외쳤다(막1:7-8)
5) 재림하시는 분은 예수님 본인이시다.
다시 오시는 분이 과연 예수님과 동일한 분이 아닐까? 어떤 다른 사람이 대신 예수님의 영을 받고 오는 영적 재림을 말할까?
성경은 전혀 그렇게 언급하지 않으며, 예수님 그 분이 다시 오신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예수님은 하늘로 가신 그대로 다시 오신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1:11)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2:13)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행3:20)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3)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3:20-21)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의 재림은 인격적이며, 가시적(可視的)이며, 우주적이고, 육체적이며 영광적이 되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단교주들이 세상에 올 때에도 이런 일이 전혀 없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살전4:16)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3:10)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1:7)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24:30)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막13:26)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눅21:27)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3:4)
예수의 재림은 모든 인류의 재판과 심판이 뒤따를 것이다. 그러나 이단교주들이 온 후로는 어떤 심판도 없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7-2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8)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 12:48)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롬 2:16)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딤후 4:1)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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