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철목사는 인격적인 비방과 거짓말을 하지 않기 바랍니다.
이인규
필자는 정이철 목사의 주장을 반박하는 논리적인 글을 몇 개 올렸지만, 한국의 많은 이단연구가들의 충고를 받아들여서 몇 달 동안 정이철 목사에 대한 글을 하나도 올린 적이 없습니다. 갖은 욕설과 인격적인 비난만을 올리는 정이철 목사에 대해서 국내의 많은 이단연구가들은 모두 한결같이 “상대할 필요도 없는 사람”이라고 만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필자에게 갖은 욕설과 인격적인 비난을 올렸지만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 정이철 목사의 홈페이지에 올려진 필자의 욕설과 비난의 글이 무려 수십개가 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이철 목사와 그 측근들은 필자에 대해서 “사탄, 뱀, 요사스럽다, 회색인간, 돈을 받아 먹었다. 방패막이, 이단옹호자, 사이비, 거짓 이단연구가, 이단, 부활교, 합신과 함께 조작을 하였다”고 갖은 욕설을 다른 목사들에게 말로 전했고 글로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만약 제가 민 형사상 고소를 하면 정이철목사와 그 측근들은 크게 당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미 모든 증거자료는 스크랩을 하여 놓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문제점을 감추기 위하여, 자신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자신의 견해에 반대하는 글이 올라오면 삭제하고 IP를 차단하며, 다른 사람의 아이디나 닉네임을 사용하여 자신을 지지하는 글을 올립니다. 진목연 때부터 자신의 성명서 글에 다른 사람의 이름을 동의를 받지 않고 함께 넣어서 그것을 항의하는 사람들이 계속 나타났으며, 그런 항의가 나타나면 제명을 시켜왔습니다,
더욱이 필자는 아틀란타에 계신 이재위 목사라는 분은 한번도 만난 적도 없으며, 이름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단지 그 분의 글이 세이연 홈페이지 이단시비 게시판에 올라왔는데 논리적인 비판에 공감하는 바가 많아서 그 글을 그대로 카페에 올렸을 뿐입니다. 필자는 오히려 정이철 목사와 그 측근을 반박하고 비판하겠다는 몇사람에게 만류를 해왔습니다.
또 필자가 합신이대위와 함께 이단규정을 하는 것처럼 주장하는데, 필자는 합신 이대위와 아무 상관도 없으며, 필자는 현재 감리교인입니다. 필자는 합신의 이대위와 함께 이단을 조사하거나 이대위 회의에 참석 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다만 합신의 한 목사님이 운영하는 이단상담소에서 이단상담에 대한 사역은 함께 하고 있지만, 이단상담에 국한된 일로서 그 연구소는 초교파적으로 다른 분들도 함께 사역합니다. 상담은 이단에 빠진 사람을 개종시켜 주님에게 돌아오게 하는 어려운 사역으로서 필자는 그 상담소와 감리교 신학교에서 이단상담에 대해서 일주일에 3번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상담은 이대위에서 하지 않으며, 필자는 오직 이단연구와 상담만을 합니다.
물론 합신의 이대위나 다른 교단에서 필자의 연구보고서를 참고하거나 인용한 적은 있으며, 모든 교단이나 이단연구단체에서 자료를 요청하면 저는 언제나 보내 드리고 있습니다.
또한 필자는 미주 남침례 교단이나 한국의 기침 교단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아는 목사님도 거의 없습니다. 세이연 홈페이지도 필자와 아무 관계가 없으며 홈페이지 담당자는 필자가 아니고 다른 분이며, 세이연에 글을 올린지 몇 년이 지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정이철 목사는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한다고 하면서 저의 이름을 실명으로 올려놓고 거짓 이단연구가이며 부활교라고 맹비난을 하였습니다.
필자는 예수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서 단 한번도 부정을 하거나 비판을 한 적이 없으며, 부족하다고 말한 적도 없습니다. 이러한 증거를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그저 조작하고 뒤집어 씌우는 주장만 하고 있는 정이철 목사가 한편으로는 불쌍합니다.
이단연구는 명백한 근거와 자료를 갖고 그 사실을 정확한 비판을 하는 것입니다. 이단연구는 보고서를 쓰는 자신이 먼저 이단이라고 정의를 내리면 안되며, 글을 읽는 사람이 판단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정이철 목사는 자신의 비판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부분적인 증거를 과장하여 인용하거나 전혀 관계가 없는 논리로 비약시켜 이단으로 조작과 매도를 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이단연구는 상대방의 실수나 부분적인 말 한마디를 꼬투리 잡는 것이 아니라, 증거자료에서 반복적이며 전체적으로 흐르는 본질적인 사상을 찾어야 합니다
정이철목사의 거짓말을 몇가지 올리겠습니다.
1) 정이철 목사는 춘천 한마음교회 김성로목사의 국민일보 컬럼을 필자가 써주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런 것을 써 줄 이유도 없고 실제로 쓴 적도 없습니다. 왜 이런 거짓말을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나는 당연히 김성로 목사의 비서도 아니고 글을 대신 써주는 사람도 아닙니다.
2) 정이철 목사는 한마음교회의 제1회 목회자 세미나와 제 2회 목회자 세미나에 수천명이 왔는데, 정이철목사가 김성로목사를 비판한 뒤에 목회자 세미나가 500명으로 줄었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보이기 위한 거짓말입니다. 정이철 목사는 이런 추측적인 거짓말을 자주 하는 사람인데, 처음 목회자 세미나는 100-200명 정도가 왔는데, 점점 늘어나서 최근의 세미나는 거의 900명이 참석했다고 들었습니다. 심지어 대학교수들과 조직신학자들도 대거 참여하였으며 조직신학자들이 직접 특강을 하였습니다. 정이철 목사는 이러한 거짓말을 미국에 있는 목회자들에게 메일로 보냈습니다.
3) 김성로목사는 두 번 제사를 말한 적이 한번도 없으며, 십자가 대속을 부정한 적도 없습니다. 필자는 김성로 목사에 대한 조사를 하기 위해 춘천 한마음교회를 3-4번 방문하였고, 김성로목사의 책자와 양육교재를 모두 조사한 바 있습니다. 김성로 목사의 책과 양육교재를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단번에 드려진 제사”라는 내용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가지 김성로 목사가 실수를 한 것이 있는데, 히브리서의 하늘성소에 들어가신 시간을 “즉시”가 아니라 “부활 후”로 착각하였습니다. 그것 때문에 십자가 사건과 하늘성소에 들어간 사건이 시간적으로 각각 구별이 된 사건처럼 보여서 두 번 제사를 드린 것처럼 오해를 받은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필자는 이미 김성로 목사에게 이것을 지적하였으며, 기이협에서도 이 문제를 지적하였고, 김성로 목사는 이것을 수정하였습니다. 또 속죄사역과 대속, 구속과 구원등의 용어의 사용에서 혼동이 조금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 십자가 죽음은 속죄사역을 온전히 성취하셨으나, 부활은 구속의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이협은 이러한 문제점을 질의서를 통하여 보내고 답변서를 받았고, 김성로 목사는 이것을 즉각 반영하여 수정하였던 것입니다.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 죽음까지만 믿는 신앙이 아니라, 부활까지를 믿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쳐왔으며, 그것이 김성로 목사의 가장 중요한 본질적인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다시 사는 부활을 믿음으로서 죽음도 불사하는 더욱 강한 신앙을 갖게 되며, 이것에 대해서는 박형룡 교수도 한국교회가 부활에 대해서 자주 가르치지 않는데, 부활은 중요한 복음으로서 강조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정이철 목사는 계속 과장하고 확대하고 조작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장과 왜곡은 자신의 주장이 계속 옳다고 보이기 위한 고의적인 목적으로 보입니다.
4) 김성로 목사는 오해를 받았던 사소한 착각에 대해서 즉각 수정하였으나, 오히려 정이철 목사에게는 더욱 심각한 이단성이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것을 수정한 적도 없고 끝까지 옳다고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김성로 목사에 대해서 합동이 일년간 조사를 하겠다고 하였으나, 김성로목사는 묵묵하게 기다리며 합동이 모든 것을 조사하여 진실을 밝혀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반면에 정이철 목사는 자신의 이단성으로 남침례교단에서 조사를 받게 되자, 합동과 남침례교단의 대결구도로 만들어서 빠져나가기 위해 기자회견을 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결국 이단성을 포함한 자기 주장을 공식적으로 모두에게 알리는 것으로 누워 침뱉기가 될 것입니다. 그는 남침례교단이 김성로목사를 보호하기 위하여 자기를 이단으로 조작한다는 식의 무책임한 주장을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자기를 변명하기 위하여 미주 최대의 교단을 조작으로 비방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상한 주장을 하면 로맨스이고, 다른 사람이 이상한 주장을 하면 불륜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래는 정이철 목사에게서 스스로 드러난 심각한 이단성입니다.
– 예수님도 속죄사역의 혜택을 받았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으로 속죄사역의 혜택을 받으실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명백한 이단적인 주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예수님의 시신이 3일 동안 부패하였다. (개혁주의의 중요한 신조인 웨스트민스터 신조 8항은 예수님의 시신이 부패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 예수 십자가 죽음만을 믿으면 부활은 믿지 않아도 부수적으로 저절로 따라온다 (부활을 믿지 않아도 된다는 구원론은 어떤 정통신학에도 없습니다. 십자가는 죽음과 부활을 함께 포함합니다. 죽음만을 믿으면 부활을 믿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은 매우 잘못된 구원론입니다)
– 김정일도 하나님의 종이다. (간혹 악인이나 불신자도 하나님이 종이나 도구로 사용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이 하나님의 종이라면 김정일이 기독교인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인 것은 모두 하나님이 시키신 것이 됩니다)
–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성소에서 예수님의 피를 뿌렸다 (완전하지 못한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성소에서 예수의 피를 뿌릴 수 없습니다. 모든 주석과 신학서적에는 하늘에 있는 성소는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 하늘성소에 직접 들어가셨다고 말합니다.)
김성로 목사는 실수였지만 인정하며 고쳤고, 정이철 목사는 심각한 이단성이 있었지만 고친 적이 없습니다. 정이철 목사는 잘못 비판을 하다가 스스로 이단성을 보이므로 미주 남침례교단의 조사를 받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필자를 왜 기자회견의 제목으로 끌어당기는지 이해를 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정이철 목사는 필자가 쓴 “신사도운동의 정체와 비판”에 있는 내용을 조작하여 마치 필자가 성경의 특별계시를 부정하는 것처럼 왜곡을 하였습니다. 필자가 쓴 책의 내용은 누가 읽어 보아도 오직 성경만이 객관적인 특별계시로 권위가 있으며, 특별계시에서 유일한 종결성과 완전성을 말한다는 내용입니다. 정이철 목사가 김성로 목사의 경우와 같이 필자의 책에서도 이단성을 만들려고 조작을 했던 명백한 증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의 책을 몇몇 장로교와 감리교의 신학교수들에게 보내어 평가를 부탁하였는데, 그 분들은 “신학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좋은 글이다”고 말했으며 이미 그 증거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5) 정이철 목사의 독선과 욕설은 거의 모든 이단연구가들도 외면합니다. 이단연구가들이 만든 카톡방이 있는데 대부분의 이단연구가들이 그 방을 빠져나갔습니다. 80세가 가까운 원로 이단연구가를 비롯하여 많은 이단연구가들이 정이철 목사와 그 측근들을 훈계하고 야단을 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6) 정이철 목사는 한국에 와서 에스라하우스 노우호 목사에게서 세미나를 했습니다. 노우호 목사는 베리칩과 666, 프리메이슨 음모론을 주장하며, 음식물 율법을 제2의 복음이라고 가르칩니다. 현재 정이철 목사를 지지하는 몇몇 목사들도 이단성과 문제점이 있다고 알려진 사람들이 일부 있는데 개혁주의를 비난하는 목사, 이단적인 세대주의를 주장하는 목사도 있습니다. 시간이 되면 이것도 모두 밝히겠습니다.
7) 정이철 목사는 한국의 세미나에서 감리교가 카톨릭과 같은 행위구원론을 가르친다고 주장한 적이 있으며 그 세미나를 수십명이 함께 들었습니다. 필자가 감리교의 교리와 장정에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으며, 행함으로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내용이 있다고 말했지만 그는 자기 주장을 취소한 적이 없습니다.
정이철목사는 감리교를 카톨릭과 같은 행위구원이라고 비판하다가 제가 항의를 하였는데, 그 이후로 저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중에 감리교단에 정이철 목사의 이러한 발언에 대해서 정식으로 이 문제를 제기할려고 생각 중입니다.
그는 신학적인 무지와 배타적인 독선이 있어서 자신과 다르면 모두 이단으로 간주합니다. 더욱이 방언을 사탄의 역사라고 단정하므로서 많은 목사들과 충돌이 있었으며 그의 주장은 한국교회 80%를 사탄의 교회로 만드는 견해가 됩니다. 다른(different) 신학을 틀린(wrong) 신학이라고 배척하는 것은 교조주의이며, 그것이 곧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견해였습니다. 필자는 방언은 교회 안에서 남용되지 않아야 하지만, 모든 방언을 사탄의 역사라고 매도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8) 정이철 목사가 김성로 목사를 비판하기 시작한 시간은 춘천 한마음교회에 대해서 한번도 방문을 한 적도, 설교를 들어본 적도, 책 한권을 본 적도 없습니다. 그가 한국에 와서 세미나를 했던 교회에서 김성로목사를 비판하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의 이야기만 듣고 그를 돕기 위하여 비판을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이제는 확인할 수도 없는 제보나 소문에 의하여 무조건 이단이라고 결론을 내려놓고 비판과 욕설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의 홈페이지는 그의 개인 비방과 욕설을 위한 홈페이지일 뿐입니다.
9) 정이철 목사는 그야말로 조작의 달인입니다. 그는 필자까지 예수 십자가 죽음이 구원에 부족하다고 말한 것처럼 조작을 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그런 말을 한 적이 단 한번도 없으며, 이에 대한 책임을 정이철 목사는 져야만 할 것입니다. 필자는 김성로 목사가 부활을 강조하는 것이 성경적이며 바람직하다고 말한 적은 있으며, 부활까지가 구속의 완성이라고 말한 적은 있습니다. 정이철 목사는 구속의 완성이라는 의미가 무슨 뜻인지도 이해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캘빈을 비롯한 개혁주의 조직신학자들의 공식적인 견해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의 문헌적인 자료를 이미 올렸으며, 글 뒤에서도 몇가지 올리겠습니다.
10) 부활은 아주 중요한 복음이며, 박영선 목사는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는 사단에게 패배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캘빈도 기독교강요에서 부활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하였습니다. 루이스벌콥과 웨인그루뎀은 부활을 칭의와 중생의 근거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수많은 조직신학자들과 신학교수들이 부활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많은 분들이 모두 부활교인가요? 부활에 대해서 믿지 않아도 저절로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라고 말하는 정이철 목사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롬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고전 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롬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 14: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벧전 1:3-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필자와 같은 견해를 가진 아래 신학자들은 모두 부활교인가요?
– 바빙크는 말하기를 “만일 그리스도께서 몸으로 살지 못하셨다고 말한다면 죄악의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가 정복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승자가 그리스도가 아니고 사탄이라는 말이 성립된다.” 하였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으셨다는 부활신앙이 아니었다면 기독교회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무엇보다도 성경의 증거에 의하여 확실하다. (개혁주의 교리학, 박윤선, 279-280쪽)
– 구원은 몸의 부활이 없이는 완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이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을 쓴 이유입니다. 돌아다니면서 몸의 부활이 없고 영적인 부활만 존재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 당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15:17) – 구원이 없습니다. 바울은 실제로 “여러분에게 처음 왔을 때 전파한 이 믿음에 굳게 서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전혀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구원 받지 못하며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입니다” (마틴로이드존스, 교회와 종말에 일어날 일, 기독교문서선교회, 282쪽)
– 오히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활이 구성요소로서 구속사역의 본질, 따라서 복음사역의 본질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의 가장 큰 기초석 중 하나이다. 그리스도의 속죄적 사역은 만일 그것이 전적으로 유효적이었다면, 죽음이 아닌 생명에서 종결되어야만 하였다. 더 나아가 부활은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에 대한 성부의 인치심이었으며 그것은 수납(acceptance)에 대한 공식적인 선언이었다. 마지막으로 부활은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셔서 놓여지신 교회의 머리와 보편적 주님으로서 새로운 생활에 들어가신 것이었다. 이것은 그로 하여금 구의 구속사적 사역의 열매들을 사용케 하셨다. (벌콥조직신학 하권, 74쪽)
– 부활 교리의 중요성
a.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중생을 보장해 준다 : 벧전 1:3
b.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칭의를 보장한다 : 롬 4:25
c.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도 완전한 부활의 육신을 받게될 것을 보장한다. 고전 6:14, 고후 4:14, 고전 15:20 (웨인그루뎀 조직신학 중권, 167-170쪽)
– 기독교강요 2권 16장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및 하늘에 정좌하심
13.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다음은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이다. 이것이 없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논한 모든 체계는 불완전하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음과 장사에서는 연약함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신앙은 그 완전한 힘을 얻기 위하여 이 모든 사실들을 뛰어넘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죽음을 통해 구원의 완성을 이룬다. 그것은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했고, 그의 공의로우신 심판이 충족되었으며, 저주는 제거되고, 형벌은 완전히 치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심은 그의 죽음을 통해서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벧전 1:3). 그가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죽음을 이긴 승리자로 등장한 것처럼, 죽음을 이긴 우리 신앙의 승리 역시 그의 부활에만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의 다음 말이 그리스도 부활의 성격을 잘 표시해 준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이 말은 마치 그가 “죽으심으로 죄는 제거됐고 그의 부활로서 의는 다시 살아나 회복되었다“고 말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가 만약 죽음에 굴복했다면, 그가 죽었다고 해서 우리를 죽음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겠는가? 또 만약 그가 이 싸움에서 졌다면, 어떻게 그가 우리를 위하여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의 요소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써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그의 죽음을 통해서는 죄가 제거되고 죽음이 소멸되었으며, 그의 부활을 통해서는 의가 회복되고 생명이 되살아나 그의 죽음이 우리 안에서 능력과 효력을 나타내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의 부활의 덕분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느니라“(롬 1:4)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그의 죽음만을 언급할 때에는 항상 그의 부활에 속한 것을 포함하고 있음을 동시에 기억해야 한다. 이와 동일한 제유법이 “부활“이란 말에도 적용되는데, 그의 죽음과는 별도로 말하게 될 때에는 언제든지, 특히 죽음에 관계된 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다시 살아났기 때문에 그는 승리자의 상급을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가 “부활이요 생명“이 되기 위함이었고, 따라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속임수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고전 15:17). 따라서 다른 구절에서는 정죄의 공포에 대항하여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자랑하고 난 후에, 이것을 더욱 강조하는 뜻으로 “죽으심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가 하나님 앞에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는 자로 나타나시리라“(롬 8:34)고 하였다. (켈빈의 기독교 강요)
필자는 정이철 목사가 과연 개혁주의 신학을 가졌는지 의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