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말하는 예언
이인규
성경에서 선지자는 예언자와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구약에서 선지자를 의미하는 히브리어는 “나비. 호제, 로에”등의 세가지 단어가 주로 사용되었는데, 그 의미는 “보다”라는 뜻이며,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의 입”을 상징한다.
모세가 말을 더듬기 때문에 그의 역할을 담당할 수 없다고 하자, 하나님은 모세의 입을 대신하여 아론이 대신 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출 4:15-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히: 나비)가 되리니” (출7: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렘 15:19)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멧세지를 전하는 자로 사용되어왔다. 즉 선지자는 그 놓여진 상황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고지하는 자인데 장차 올 시대에 관해서도 말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장차 하려고 하시는 일을 그 종인 선지자들에게 미리 보이셨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암 3:7)
성경에 의하면 사람은 장래의 일을 알 수가 없으며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없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장래 일을 알 수 없도록 하셨다고 말한다.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 바람을 주장하여 바람을 움직이게 할 사람도 없고 죽는 날을 주장할 사람도 없으며 전쟁할 때를 모면할 사람도 없으니 악이 그의 주민들을 건져낼 수는 없느니라”(전 8:7-8)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 7:14)
“우매한 자는 말을 많이 하거니와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나중에 일어날 일을 누가 그에게 알리리요 우매한 자들의 수고는 자신을 피곤하게 할 뿐이라 그들은 성읍에 들어갈 줄도 알지 못함이니라”(전 10:14-15)
장래 일을 점치는 무당을 성경은 죽이라고 말하며 그러한 일을 가증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너는 무당을 살려두지 말라”(출 22:18)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 이런 일을 행하는 모든 자를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신 18:10-12)
성경은 거짓선지자와 거짓예언자가 있음을 경고하고 있으며, 그들의 특징은 거짓 예언과 거짓 계시와 점술과 거짓 예언이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령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점술과 헛된 것과 자기 마음의 거짓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당할 것인즉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요 그들의 아내와 아들과 딸이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악을 그 위에 부음이니라”(렘 14:14-1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렘 23:16)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나 예언자는 개인을 장래를 점치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에 하나님의 멧세지를 전하는 사람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장래 일을 점치는 자는 하나님의 선지자, 예언자가 아니라 무당일 뿐이다. 이것을 어떻게 분별하느냐는 기준은 공동체에 유익이 있느냐 없느냐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23:32)
여러 가지 다양한 성령의 은사를 주신 이유도 유익하게 하려함이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4-7)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과 같은 은사도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주기 위함이었으며, 그래서 유익함이 없는 방언의 남용에 대해서 사도바울이 꾸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고전 14:6)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이신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사 48:17
즉 예언은 하나님의 음성을 그 공동체에 전하는 사역이며 선지자라는 직분이 그러한 일을 수행하였다. 개인의 장래 일을 점치는 것은 금지된 일이었으며, 그것은 무당의 행위이다. 물론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예언적 사역에는 그러한 장래 일을 말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공동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과 같은 특별한 경우였다. 예를 들면 꿈을 통하여 요셉을 예언한 것(창37:9)과 사도바울의 경우(행21:11)인데 이들은 그 공동체의 중요한 지도자로서의 공인의 임무를 맡고 있었다. 특히 사도바울의 경우는 예언과 관계없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사 59:2)
사람은 죄 때문에 하나님을 대면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다고 말하며(딤전1:17, 롬1:20, 요1:17, 요일4:12) 심지어 하나님의 음성도 들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도 죽는다고 말한다.
“이제 우리가 죽을 까닭이 무엇이니이까 이 큰 불이 우리를 삼킬 것이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다시 들으면 죽을 것이라.무릇 육신을 가진 자가 우리처럼 사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불 가운데서 발함을 듣고 생존한 자가 누구니이까”(신 5:25-26)
“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처럼 듣고 생존하였었느냐”(신 4:33)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출 20:19)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선민이었던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선지자와 사사를 보냈고, 때로는 천사를 보냈다.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나시기도 하였다.
심지어 모세조차도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등을 보았다고 표현하고 있지만(출33:23),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사람이 바로 성경의 저자이다.
이와 같이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그의 뜻을 전하여 오셨던 하나님이 이 모든날 마지막에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을 하셨다. 그 말씀이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성경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