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책임

  • 6월 16, 2016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책임


 이인규

 

우리의 구원은 행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행위구원론적인 주장은 다른 복음이며,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에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를 저주를 받는다고 말한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이 오직 믿음이며 오직 은혜라고 말한다. 물론 믿음마저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임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자체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가된다.

 

그렇다면 구원에서 사람의 책임은 전혀 필요하지 않을까?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하지만,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책임이 하나도 필요없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예수를 믿지 않아도 저절로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성경에는 그러한 내용이 단 한마디도 없다는 것에 우리는 주목하여야 한다.

 

인간은 자유로운 의지와 선택권을 갖고 있다. 동시에 하나님은 이 세상을 그 뜻대로 통치하고 섭리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책임도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통치적 섭리를 말하고 있지만, 한편 성경은 인간의 책임도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인간의 책임은 행위와 의지가 구원의 조건이 된다는 뜻이 아니므로 오해가 없기 바란다.

 

1)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본문에 대해서는 “성도들이 힘을 합쳐서 노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으며, 또한 “하나님이 그 뜻대로 선을 이루어 나가신다”고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심지어 교단의 신학적인 견해에 따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후자로 해석하고, 인간의 책임적인 의지적 측면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전자로 해석하기도 한다.

 

다른 번역성경을 살펴보자.

 

[공동번역]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표준새번역]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현대인의성경]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획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결국 모든 일이 유익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KJV] And we know that all things work together for good to them that love God, to them who are th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NIV] And we know that in all things God works for the good of those who love him, who have been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한글번역성경들은 ‘모든 것’을 주어로 번역하였다.

KJV는 ‘All thing’을 주어로 해석하였고, NIV는 ‘God’을 주어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본문의 주어는 하나님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며, ‘모든 일’(all thing)이다. ‘쉬넬게오’라는 단어는 ‘동역하다, 함께 일하다’(work together)라는 뜻인데, 능동형 동사로서 함께 일한다는 것이다. 본문을 직역하면 “모든 것들이 선을 위해 함께 역사한다”로서 ‘모든 것’이 주어가 되며, “All thing work together”로 해석된다. 본문에서 ‘모든 것’이라는 개념은 성도들에게 일어나는 고난과 기쁨을 비롯한 결과도 포함하지만, 이 세상의 피조물과 자연세계도 모두 포함될 것이다. 사람의 의지와 행위를 포함한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합력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공교롭게도 본문에서는 두 가지의 종류의 사람이 언급된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who love God)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who are th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인데 그러나 이 두 유형의 사람은 서로 다른 형태의 구별이 아니라, 동일한 유형의 사람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는 동일한 사람의 두가지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에, 하나님은 미리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의롭다하시고, 영화롭게 하신다.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 8:30)

 

그러나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어야만 구원을 받는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9-10)

 

이것은 서로 다른 내용이 아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예정하신 그의 선하신 뜻대로 부르실 것이며, 인간은 자유로운 선택 중에서 예수를 믿어야만 할 것이다. 즉 ‘예정하시는 하나님’과 ‘책임적인 측면을 갖고 있는 인간”은 그 주어가 누구인가에 따라, 입장에 따라 달라지는 주체적인 차이라고 본다. 하나님의 예정적인 주권과 인간의 믿음은 서로 다르며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다.

 

2) 구원은 은혜인가 믿음인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런데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다른 번역성경들은 다음과 같다.

 

[공동번역] 여러분이 구원을 받은 것은 하느님의 은총을 입고 그리스도를 믿어서 된 것이지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이 구원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표준새번역]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현대인의성경]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KJV] For by grace are ye saved through faith; and that not of yourselves: [it is] the gift of God:

[NIV] For it is by grace you have been saved, through faith–and this not from yourselves, it is the gift of God–

 

구원은 By grace 와 through faith 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구원은 ‘은혜에 의하여’ 얻는 것이며, 동시에 ‘믿음을 통하여’ 얻는 것이다.

렌스키는 “구원을 얻는 믿음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에 의하여 초대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 근원과 기원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그리고 오직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다. 죽은 자가 자신의 소생에 있어서 최소한의 노력도 할 수 없듯이 그의 영적인 죽음도 그 영적인 생명을 획득함에 있어서 최소한의 기여도 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물론 웨슬레도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에 동의하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믿음도 구원도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 어느 것도 인간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요, 분에 넘치는 선물이다.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구원을 얻는다.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이 즐거이 주시는 사랑의 선물이다. 사람들이 믿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한가지 실증이요,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또 하나의 실증이다(한국웨슬레학회, 웨슬리설교전집, 1권 26)

 

이것에 대해서 신성종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요한 구절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란 말씀이다. 이것에 대해서 두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로 루터와 웨슬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란 말에 강조를 두고 우리의 구원은 믿음에 있다고 강조했다. 둘째로, 칼빈은 ‘그 은혜로 말미암아’란 말씀에 강조점을 두고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에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나의 견해는 구원의 근원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러나 그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란 손에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본다” (신성종, 성경이 꿀맛이다, 도서출판 하나, 229쪽)

 

성경은 은혜뿐 아니라 믿음도 말하고 있으며, 어느 한쪽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박윤선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말씀은 인간이 구원을 받을 방편의 두가지 요소를 가리킨다. ‘은혜’는 하나님 편에서 주신 것이고, ‘믿음’은 인간 편에서 가질 태도이다. 그러나 이 믿음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사실을 아래 말씀이 밝힌다. 이 점에 있어서 명심할 것이 있다.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란 말은 믿음 그것이 무슨 공로라는 의미가 아닌 사실이다. 믿음은 받는 태도 뿐이고 공로나 의가 아니다. 인간이 구원 받는데 있어서 공로나 의는 예수그리스도뿐이시다.”(박윤선, 바울서신 성경주석, 에베소서, 영음사, 134쪽)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위 본문에서 “이것”은 무엇을 지칭하는가? 이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마틴 로이드존스 목사는 “믿음”이라고 주장하며, J. A. 벵겔도 믿음이라고 말한다. 또 캘빈, H. 알포드, 메이어등은 “구원”이라고 주장한다. 또 이것은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실”을 뜻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웨슬레, 메튜 헨리등이다.

 

이러한 해석에 대해서 호크마 주석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이것’이 가리키는 것에 대해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이것이 ‘믿음’이라고 주장한다(Bengel, Beza, Hodge, Chird, Westcott). (2) 혹자는 구원의 과정 전체라고 주장한다(Lincoln,Wood, Abbott, Gnilka, Schlier, Mitton). 두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하다. 왜냐하면 ‘이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토’는 중성으로 믿음의 성(性)인 여성과 맞지 않으며, 문맥상 본절의 내용이 믿음에 대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Bruce, Foulkes).”

 

또 IVP 성경주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울은 예수님과 연합하여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김으로서 우리가 이미 경험한 구원은 그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운 능력이 극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 행위의 결과도 그에 대한 상급도 아니다. 그것은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바울이 사용한 헬라어는 비록 다른 곳에서는 몰라도 여기서는 믿음 역시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는다)”(IVP 성경주석, 에베소서, 1689쪽)

 

3) 과연 사람에게는 책임이 전혀 없을까?

 

구원뿐 아니라 멸망도 동일하게 정해져 있다는 주장이 곧 Hyper 칼비니즘이라고 불리는 이중예정론이다. 이러한 주장에 따르게 되면 예정론은 운명론이 되어진다. 최근의 장로교는 이러한 극단적인 이중예정론을 채택하지 않는다.

과연 성경에는 인간의 조건과 책임이 언급되어있지 않는가? 성경은 분명하게 인간의 조건과 책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인간의 조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하나님의 약속—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인간의 조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하나님의 약속— 구원을 얻으리니….(롬10:9)

 

인간의 조건—– 저를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약속—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3:16)

 

인간의 조건—–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약속— 너희를 거룩하고 흠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골1:22-23)

 

인간의 조건—-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하나님의 약속–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마10:32)

 

인간의 조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하나님의 약속–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행2:21)

 

인간의 조건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인간의 조건 —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하나님의 약속–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우리는 예정론도 성경적이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예정론에 대해서 운명론, 숙명론으로 이해하여, 인간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필요없다고 주장하면 그것은 상당히 곤란하다. 만일 그렇다면 멸망은 그 사람의 책임이 아니라, 하나님이 멸망당하도록 미리 정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책임이 되고만다. 또한 우리는 믿음을 유지할 아무 필요가 없어진다.

한편 인간의 믿음으로 구원이 결정된다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균형있게 설명할 것인가? 1/2은 인간의 믿음이고 1/2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 있는가?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구원은 절대로 취소되지 않는다.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의 능력보다 더 강한 자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고자 하시는 일을 능히 하실 수 있다는 것에 우리는 동의한다. 그러나 한번 구원 받은 자의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나는 이미 하나님의 구원 예정 안에 있는 자”라는 사실을 피구원자인 우리가 어떻게 미리 알 수가 있는가?

성경은 수많은 곳에서 “예수를 믿으라”, 혹은 “회개하라”, “미혹에 빠지지 말라”라고 인간의 책임을 경고하고 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마 7:7-8)

 

위 성경 구절을 “구하지 말라, 찾지 말라, 두드리지 말라”고 해석을 하여야 하는가?

우리는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는다. 예수를 거부한다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필자는 인간의 의지나 행위를 구원의 조건으로 전혀 생각하지 않으며, 오직 은혜를 주장하는 사람 중에 한명이다.

물론 이러한 믿음의 가능성 여부마저도 하나님은 예정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➀ 우리에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서 믿느냐 안믿느냐는 선택과 응답의 자유가 있으며 그것을 자유의지라고 부른다. 성경도 자유의지를 말하고, 상식적으로도 우리는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 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신30:19-20)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 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않으리라.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서 (삿10:14)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

 

➁ 우리는 구원을 받기 위하여 믿음을 유지할 책임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주장은 행함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대한 책임을 말하는 것이다. 믿음이 전혀 필요없다는 성경구절은 없다.

 

“믿음없는 자가 되지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요20:17)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벧후2:15)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요12:48)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5:17)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심판을 받느니라.” (딤전5:12)

 

“이미 사단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느니라.”(딤전5:15)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인하여…..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마18:7, 눅17:1)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 즉 언제든지 실족치 아니하리라.”(벧후1:10)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였으니….”(딤전4:21)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살후2:3)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1:9)

 

➂ 하나님의 주권적인 예정과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는 함께 움직인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그 의지대로 선택한다. 그러나 그 자유로운 선택마저 하나님께서는 이미 예정하고 계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불의하다고 할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다. 멸망에 빠진 사람은 곧 멸망이 그 사람 자신의 선택과 책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의지라는 문제 앞에 섰을 때 싸울 것인가 도망할 것인가 라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와 하나님의 주권이 참으로 상호모순이라면 우리는 둘 중에 하나는 버려야 한다. 하나님이 주권자가 아니라는 것도 안되지만 인간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하여도 모순이다. 다행히 하나의 대안이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상호모순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면 모두 지킬 수가 있는 것이다. 인간의 가족을 통해서 유추할 때 나에게도 자유로운 의지가 있고 자녀에게도 자유로운 의지가 있다. 이 의지가 충돌할 때, 자녀의 의지를 나는 통제하는 권위가 있다.(스프롤)

 

“세계 안에는 자연세력이나 인간의지와 같은 원인들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행동하도록 고무하시며 매순간마다 동행하시며 또한 이 행동을 효과있게 하신다. 이러한 일은 하나님이 한부분을, 인간이 다른 한부분을 분담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며 하나님은 그의 모든 창조물과 합력하시며 그들의 일을 정확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선을 위하여 악을 제압하시는 것이다.(루이스 벌콥)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는 우물 속에 있는 밧줄과 같다. 표면에서는 그것들이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우물 바닥의 어둠 속에서는 함께 올라온다.”(롤레이드)

 

밧줄에 달려있는 두레박의 물은 중력의 법칙으로 우물로 떨어지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밧줄로 당기실 때에 두레박에 있는 물은 함께 밖으로 이끌려 나오게 된다. 물은 언제라도 당기는 힘이 없을 때에 함께 우물 아래로 떨어진다.

성경은 인간의 책임적인 한계로서 믿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으며, 그러나 동시에 그것을 모두 하나님의 예정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믿음과 하나님의 주권은 서로 다르지만 동시에 움직인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믿음조차도 하나님의 선물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피구원자인 사람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며, 우리는 인간의 책임으로서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욥 34:21)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6:9)

 

예정론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를 말하는 이론이며, 그것은 분명히 성경적이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분명히 책임의 한계가 있다. 만약 인간에게 책임소재가 없다면 심판을 받을 이유가 없지 않는가?


그러나 예정론은 인간의 선택이 전혀 필요없다는 숙명론적인 이론이 아니며, 인간은 자신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그 선택마저도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논리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지와 인간의 의지가 각각 50%씩 해당되는가? 그렇지 않다. 모두는 100%씩 적용되어진다.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분리된 것이 아니며, 각각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함께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