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직분에 대해서

  • 3월 19, 2016

                                                                   목사 직분에 대해서

                                                                                                                                 이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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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목사라는 직분을 무조건 비난하거나 차별해서는 안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을 존경하여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이의가 있을 수 없다는 데에 동의한다. 그러나 목사는 무조건 하나님의 대리인이며 구약의 제사장 혹은 선지자와 같은 직분이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무조건 교회의 목사이기 때문에 그가 전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한다는 조건 하에 그가 참 목사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적인 기록을 통하여 목사라는 직분과 개념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를 하여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성도들은 목사를 존경하고 순종하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목사는 양으로 비유되는 성도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양육하는 직분이고, 또 교회를 대표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사라는 직분이 하나님의 제사장이며, 선지자이고, 하나님의 사자이며, 하나님의 대리인이기 때문에 무조건 순종하여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은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1) 목사가 제사장인가?

(2) 주의 종이 직분인가?

(3) 목사는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인가?

(4) 목사는 하나님의 대리인이 아니다.

(5) 목사를 존경하라

(6) 목사의 성경적인 의미

(7) 목사와 평신도는 모두 같은 교회의 한 지체이다.

(1) 목사가 제사장인가?

구약의 지성소에는 오직 제사장만이 들어 갈 수가 있었다.

사람은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반드시 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본 자는 죽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우리에게 더 이상 제사장이 필요없는데, 그 이유는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 죄를 위하여 완전한 제사를 드림으로써, 지성소를 구분하는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찢기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제 지성소는 제사장을 거치지 않고 누구나 하나님 앞으로직접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라고 히브리서는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10:19-22)

히브리서 기자는 위 본문에서 우리가 지성소에 직접 나아갈 수 있다고 하였으며(10:19.22),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12:1)라고 하였다.

또한 사도 베드로는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벧전2:9)이라고 하였으며,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벧전2:5)이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가톨릭과 달리 우리는 하나님께 직접 죄를 고하고, 또 제사가 아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게된다. 그것을 우리는 만인제사장이라고 한다.  

오늘날 개신교에서 말하는 목사직분은 제사장이 아니다. 그러나 카톨릭에서는 성직자들을 사제(priest)라고 부르며, 그들이 드리는 미사는 예배가 아닌 제사적인 개념이다. 그들의 성찬에 대해서 카톨릭은 떡이 실제로 예수님의 살로 변화하고, 포도주가 예수님의 피로 변화한다고 보며, 그것을 화체설이라고 말하는데, 종교개혁자들의 큰 이슈가 되었던 것이다. 즉 가톨릭의 미사는 매주마다 실제로 예수님의 피와 살로 희생제사를 재현하며, 그들의 신부는 제사장이 되어진다

가톨릭은제사장적인 직분으로서 평신도와 사제를 구별하려고 하지만, 개신교에서 평신도(lay-man)란 목회자와 일반 성도의 직분적인 구별을 의미할 뿐이다간혹 형제교회라고 불리는 교회에서 목사제도를 부정하는데, 우리가 말하는 목사는 제사장직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여 오늘날 목사는 제사장이 아니다.

교회라는 개념은 카톨릭과 같이 가시적(可視的)이며 유형적인 조직이 아니라, 비가시적(非可視的)이고 무형적인 개념으로서의 교회를 말하며, 주님이 머리가 되시는 유기체적인 조직을 의미하며, 그 구성원은 목회자와 평신도 모두가 그 지체가 되는 성도(聖徒)가 된다. 현재 기독교에서 말하는 목사는 말씀을 가르치며 양육하는 직분, 교회를 대표하는 직분을 가르친다.

(2) 주의 종이 직분인가?

어느교회 J 목사는 목사를 주의 종이라고 비유하여 주의 종을 대적하면 저주를 받고 주의 종을 대접하면 축복을 받는다고 주장하며, 주의 종을 구약의 선지자와 제사장과 동일시 한다.

지금도 많은 목사들이 자신을 주의 종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주의 종은 차별된 성스러운 직분이 아니다. 오히려 주의 종이라는 개념은 자기를 낮추어 부르는 겸손의 호칭이라는 것을 오해하면 안된다.

다시 말하여 목사가 자신을 주의 종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겸손의 뜻이며, 자기를 차별하고 높이려는 생각에서 사용하였다면 큰 오산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더 높은가, 혹은 하나님의 종이 더 높은가?

하나님의 자녀는 기업을 이어받는 후사이며,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8:15 17)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4:1-7)

그러나 주의 종을 상당히 높은 직분으로 잘못 알고, 주의 종을 대적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하는 일부 목사들은 하나님의 자녀를 대적하면 어떻게 되는지부터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날 목사가 자신을 주의 종이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지만, 그 용도는 자신을 낮추는 호칭이라는 것을 오해하면 안된다. 자기를 낮추는 입장에서는 주의 일을 하는 모든 자가 주의 종이라고 할 수 있다

(3) 목사는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인가?

기름부음을 받은 직분은 구약에서 제사장, , 선지자였다.

간혹 목사들이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대적하지 말라는 것을 목사에게 비유하는데 다음 성경구절을 인용한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삼상 24:6-7)

다윗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소년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저를 죽이라 하매 그가 치매 곧 죽으니라 다윗이 저에게 이르기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지어다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삼하 1:14-16)

구약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였다. 다시 말하여 목사가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목사를 왕, 제사장, 선지자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요즈음 신사도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기름부음을 어떤 특별한 하나님의 임재로 간주하는데, 오히려 성경은 성령이 거하는 것을 기름부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 2:20)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후 1:21-22)

물론 부분적이지만, 우리 성도도 선지자이며, 제사장이며, 왕이 된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땅끝까지 전해야 하며, 신자나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우리는 선지자적인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되어진다. 또한 사도 베드로는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벧전2:9)이라고 하였으며,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벧전2:5)이 된다고 하였다.

더욱이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앉도록 일으키셨고(2:6), 이기는 성도에게는 보좌에 앉게 해주신다(3:21)고 약속하셨다.

또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성도가 세상을 판단하게 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6:2-3)고 말하였다. 또 사도 요한은 성도들이 세세토록 왕노릇하게 된다고 하였던 것이다.(22:5)

(4) 목사는 하나님의 대리인이 아니다.

사람들은 목사가 성직으로서 흠이 없고 완전무결한 성인군자이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러나 목사는 우리와 동일한 사람이다. 다시 말하여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개념은 목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진다. 즉 목사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인간적인 성정을 갖고 실수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목사는 아래와 같은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딤전 3:1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딤전 3: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딤전 3: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딤전 3: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딤전 3: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 보리요)

딤전 3: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딤전 3: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또한 목사도 성도이다.

성도라는 단어는 헬라어로는 하기오스”(거룩한 자)이며, 히브리어로는 하시딤”(신실하며 헌신하는 자들), 혹은 케도쉼”(거룩하게 구별되는 자)이 사용되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고전1:2)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1:7)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고후1:1)

즉 위의 성경구절이 성도의 정의가 되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부르심을 받은 총체적인 사람들을 가르킨다. 즉 교회의 구성원을 모두 성도라고 부른다는 점에서 목사도 성도이다.

단지 목사가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조건 하에서, 목사는 하나님의 사자(使者, messenger)가 되어진다,

다시 말하여, 목사가 하는 말은 무조건 아멘으로 받아 들여야 축복을 받는다는 주장은 조건부 수용이어야만 한다.

(5) 목사를 존경하라

성경적인 내용으로 볼 때에잘못된 개념의 목사에 대해서 알아 본다고 하여, 목사를 배척하거나 비판하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평신도로서 교회의 목사를 존경하고 순종하여야 한다는 원칙은 옳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6:6)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딤전5:17)

누구든지 범할 수 있는 인간적인 약점이나 결점을 문제삼아 목사를 비난하거나 대적할 수는 없다. 목사는 말씀으로 성도들을 양육하는 직분이며, 교회를 대표하는 분으로서 우리는 목회자를 존경하여야만 한다. 모든 대인관계와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결점과 흠만 지적하고 비난한다면 그는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목사도 마찬가지이며, 오히려 우리는 목사님의 인간적인 결점과 흠을 고의적으로 지적하면 안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6) 목사의 성경적인 의미

사도와 선지자등의 창설직분들과 달리, 사도 시대 이후 주님 재림 때까지 신약교회에 항상 있도록 주어진 직분(恒存職)은 목사(교사), 장로, 집사이다. 성경은 목사(교사)와 장로, 그리고 집사의 직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가 혹은 사도(), 혹은 선지자(), 혹은 복음 전하는 자(), 혹은 목사()과 교사()로 주셨으니(4:11)

에베소서 4:11을 보면 목사(포이멘, 목자, shepherd)와 교사(디다스칼로스)”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헬라어 원문 성경에서는 하나의 정관사 뒤에 목사와 교사라는 두 단어가 나오므로, 한 직분을 가리킨다고 해석이 가능하다. 즉 목사와 교사는 별개의 직분이 아니라 하나의 직분이라는 것이다.

It was he who gave some to be apostles, some to be prophets, some to be evangelists, and some to be pastors and teachers,

특별히 성경적으로 보면, 목사(牧師, pastor, minister, reverend)는 넓게는 감독 혹은 장로 안에 포함되며, 그 중에서 특히 교사 혹은 가르치는 장로라고 표현된다고 본다.

포이멘(Shepherd)이라는 단어는 성경 다른 곳에서 주로 양을 치는 목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실제로 양을 치는 목자에게도 사용되었고, 때로는 양으로 비유되는 목자, 즉 예수님에게도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에베소 교회에서 바울이 행한 연설 중에는 목자로 행하다 혹은 목사로 행하다“(poimaino)는 동사가 장로들에게 적용된 적이 있다.

하나님의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20:28)에서 치게 하셨느니라라는 단어가 포이마이노라고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같은 문장에서 양 무리를 의미하는 명사로 poimnion(포임니온)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감독자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예수님은 감독자로 하여금 양 떼를 위하여 교회를 치게 하셨다고 언급하고 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포임니온)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에피스코포스)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포이마이노) 하셨느니라“(20:28)

바울은 에베소 교회들의 장로들을 불러 모았다(20:17)

그들 장로에게 감독자를 선출하여 양으로 비유되는 성도들을 치라고 부탁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양 떼 교회를 치라는 단어는 모두 (포이멘)과 같은 어원을 갖는 단어이다.

성경에서 포이멘이란 단어는 양을 치는 목자를 말한다.

즉 감독(에피스코포스)이라는 직분은 양(성도)을 치는 직분(포이멘)이다.

또 벧전5:2에서도 너희 중에 있는 양무리를 치되(poimano)”에서도 같은 동사가 사용되었다. 특히 주님이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고 세 번 부탁하는 요2115-17장의 단어도 포이마이노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던 것이다.

즉 감독이라는 직분은 교회를 치리하는”(문자적으로 양을 치는) 직분이며, 목사라는 단어도 동일한 단어(포이멘)라는 사실이다.

너희 영혼의 목자(포이멘)와 감독(에피스코포스)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2:25)이라는 성경구절에서는, 예수님을 목자이며 감독으로 보고 있으며, 포이멘 에피스코포스는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목자로 번역되는 포이맨과 감독으로 번역되는 에피스코포스는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또 실제로 행20:28과 같이 감독자는 저들 가운데”(장로들 가운데)에게서 양을 치게 하기 위하여 선출되어지는 직분이다.

즉 목자로 표시되는 목사(포이멘)는 감독과 동일어로 사용되었으며, 감독은 장로들 가운데서 선출되는 직분으로서 사실상의 구별이 없다.

일반적으로 장로교회는 장로정치라고 하는데, 교회 목사는 장로 중 한 사람으로 간주되어 진다. 또 감리교회는 장로정치와 거의 동일한데, 목사 중에서 감독을 한 사람 세운다.

즉 감독을 목사로 간주하는가 혹은 목사를 장로로 간주하는가가 장로교회와 감리교회가 조금 다르지만, 이러한 직분적인 문제는 크게 비난할 사항이 아니다.

또 성경은 분명히 감독과 장로에 대한 임명과 자격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며, 양을 치는 목자로서의 직분적인 개념도 성경은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7) 목사와 평신도는 교회라는 공동체의 한 지체이다.

목사의 임무는 앞에 언급한 명칭들이 보이듯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전파하며 가르치고 교인들을 보살피며 감독하며 다스리는 직분이다. 이것은 지교회의 담임목사가 가지는 임무이다. 당회가 있는 조직교회의 담임목사는 또한 치리장로들과 함께 교인들을 보살피며 감독하며 다스린다. 설교는 목사에게 위탁된 전문적 일이며 따라서 목사는 당연히 신학교육을 받지만, 행정적 치리는 장로들이 목사와 함께 행하여야 한다.

이러한 일은 비성경적인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가장 문제점은 목회자와 평신도가 서로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인하여 교회가 분열되는 것은 정말 가슴아픈 일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분열하는 것을 원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최근에는 사회와 문화, 정치와 경제등 전반적인 문제가 양극화되어있으며 이원화되어 대립되어지고 있으며, 기독교도 예외는 아니다.

즉 개혁적인 목회자와 보수적인 평신도, 또 보수적인 목회자와 개혁적인 평신도의 서로 다른 시각의 차이점이 최근의 교회의 당면한 문제점으로 지적 되어진다.

평신도가 교회를 개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러한 분리적, 구별적인 의미로서 평신도의 권리와 목회자의 권리를 각각 주장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목회자나 평신도는 주님이 머리가 되는 교회의 같은 지체가 되어진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함께 합력하여 나아가는 자세가 가장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성령께서 각 지체에게 은사와 직분을 주시는 이유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함이며, 그런즉 각양 각색의 은사를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전12: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