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닉 운동에 대해서(1)
평신도이단대책협의회 이인규
1. 서론 : 용어적 개관
2. 한국의 메시아닉 운동에 대한 비판
3. 율법주의에 대한 비판
4. 이스라엘과 교회에 대한 비판
1. 서론: 용어적 개관
최근에 ‘메시아닉 운동’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많은 질문이 들어오고 있으며, 주의를 끌고 있다. 이 용어에 대해서 언급을 하기 전에 먼저 관련된 용어들을 살펴보아야만 한다. 그와 관련된 용어들은 다음과 같다.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
메시야닉 젠타일((Messianic Gentiles)
메시아닉 운동(Messianic Movement)
히브리 뿌리 운동(Hebrew Roots Movement)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
대체신학(Replacement Theology)
백투예루살렘(Back to Jerusalem)
이스라엘의 회복the Restoration of Israel)
‘메시아닉 쥬’라는 용어는 원래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유대인들을 일컫는 용어이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는데, 메시아닉 쥬는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을 하지만, 기독교의 삼위일체나 기독론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이들은 안식일, 절기, 음식등 구약의 율법을 모두 지켜야 한다는 율법주의적인 구원관을 갖고 있으므로 기독교의 이신칭의적 구원론과 다르며, 교회론과 종말론에서도 기독교적인 관점과 차이가 많다. 즉 쉽게 설명하자면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한다는 것 외에는 사실 기독교의 신학과 너무나 상이하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메시아닉 쥬에도 몇가지 유형의 구별은 있을 수 있다. (1) 정통기독교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아 유대인으로서 정통신학을 인정하는 부류 (2) 예수를 삼위일체로 믿지 않는 유대인의 메시야닉 쥬 (3) 극단적세대주의와 신사도운동과 같은 이단적인 교리의 영향을 받은 잘못된 메시야닉 쥬도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메시아닉 쥬의 순수한 개념은 (2)번을 의미한다.
‘메시야닉 젠타일’은 메시아닉 쥬와 구별하여, 유대주의를 따르는 이방인을 말한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으로서 예수를 메시야로 믿는 사람들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하기도 하며, 혹간은 이 용어가 유대인이 아닌 이방적 기독교인들도 포함하기도 한다. 즉 이들 중에는 몇가지 유형이 존재하는데,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이방인들을 뜻하기도 하고, 유대주의를 따르는 이방인들을 뜻하기도 한다. 또 기독교인들 중에서 유대교의 율법을 따르자고 하는 소위 히브리뿌리운동을 전개하는 자들을 뜻하기도 한다. 후자와 같은 무리들을 ‘메시아닉’이라고 칭하며, 이들이 주장하는 히브리 뿌리 운동을 메시아닉 운동이라고도 부른다.
다시 정리하면 유대인들 중에서 예수를 메시야로 믿는 단체를 ‘메시아닉 쥬’라고 하며, 메시아닉 젠타일은 원래 이방인들 중에서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단체를 말하지만, 이방인들 중에서 유대주의를 지지하는 단체의 의미할 때에도 사용된다.
이 모든 단체를 넓은 의미로 ‘메시아닉’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는데, 좁은 의미로서는 기독교인 중에서 유대주의를 지지하는 단체를 ‘메시아닉’이라고 부른다.
메시아닉 쥬는 세대주의와는 다르다. 그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는 것 외에 기본적인 사상을 유대주의로 갖고 있다. 그러나 메시아닉 운동을 주장하는 자들은 히브리 뿌리 운동을 지지하는 동시에 그 신학적인 성향은 세대주의 신학을 지지한다. 그리고 그들은 기독교의 신학을 대체신학이라고 부른다.
세대주의의 가장 중요한 교리는 이스라엘과 교회의 구분이며, 이들의 연관성과 지속성은 단절되어진다.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그의 왕국을 하나님의 구약 백성에게 제공했으나 그들이 거부하였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메시야를 거절하였기 때문에 왕국은 일단 보류 또는 연기되어 때를 기다리고 있고, 하나님은 전혀 다른 세대, 즉 교회 시대를 시작하셨다는 것이다. 즉 세대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에 신약교회의 시대는 이스라엘과 왕국 사이에 삽입되어 있는 임시적인 시대가 되어진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선민이었던 이스라엘에 해당되는 옛 언약이 폐하여진 것이며 교회를 통하여 새 언약이 다시 세워진 것으로 본다. 이스라엘과의 옛 언약은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어김으로서 파하여진 것이며 단절되어진 것이다. 이스라엘과의 옛 언약이 잠시 보류되었거나 그 유효성이 지속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옛 언약은 없어졌고 폐하여졌으며, 신약교회 위에 새 언약이 세워진 것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눈을 뜨고 보아야 할 것이다.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히 8:13)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히 10:9)
물론 이외에도 신약성경은 너무나 명백하게 말하고 있다. 소위 메시아닉 운동을 하는 자들이든 히브리 뿌리 회복운동을 하는 자들이든, 그들이 신약성경을 새 언약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유대주의와 기독교를 비교하여 새 포도주와 새 가죽부대라고 하셨는지를 이해하여야만 할 것이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하나님나라에 앉게 될 많은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8:11-1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마19:28, 참고: 눅 22:30)
세대주의자들이 보는 대체신학(Replacement Theology)은 하나님이 범죄한 이스라엘을 잠시 보류하고 이방 교회로 대체(Replace)하였다고 보는 것이며, 세대주의나 메시아닉이 일반 기독교의 신학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히브리 사상의 뿌리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세대주의 신학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모두 메시아닉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역으로 메시아닉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세대주의 신학사상을 지지한다고 말할 수 있다.
요즘 회자되는 ‘메시아닉 운동’은 메시아닉 쥬와는 상관없이 하나의 교파 또는 교단과 같은 개념으로 그 세력을 넓히고 있어서 주의가 요구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이런 명칭이 유독 성행하기 시작하는데, 이들은 기독교 신학을 유대주의의 뿌리를 잃어버렸고 헬라철학의 오류 위에 세워진 대체신학이라고 비난하며, 토라와 성경에 예언된 진정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 국가가 2,000년 만에 다시 세워지고, 또한 비밀리에 제3 성전이 추진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스라엘이 회복될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시 절기를 지키며 성전에서 짐승의 희생제사를 드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에 김종철 감독의 영화 회복, 제3의 성전등이 이러한 사상을 근거로 만들어진 영화이며, 김종철 감독은 메시아닉과 세대주의, 신사도운동 인사들과 함께 집회를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유대주의적인 운동들이 세대주의와 신사도운동에 의하여 기독교에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지하 가정교회에서 시작된 소위 백투예루살렘이라는 운동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주장하는 세대주의 신학이 인터콥, G12등과 같은 선교단체와 신사도운동 교회와 단체들 그리고 온누리교회의 송만석장로가 대표로 있는 KIBI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토라의 회복’이라는 책을 쓴 김주성목사(부천 제자공동체교회)는 교회에 토라회복센터를 설립하고 토라회복과 히브리뿌리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 메시아닉교회 연합이라는 교단을 창설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로버트 하이들러는 그의 저서 ‘메시아닉 교회’에서 초대교회는 유대교적이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교회사를 부분적으로 왜곡시키는 잘못된 주장이다. 그런데 이 ‘메시아닉 교회’라는 책은 피터와그너의 신학교인 WLI(Wagner Leadership Institute)에서 출판하였다는 사실이 신사도운동과의 관련성을 의미한다.
초대교회 당시에 유대주의로 돌아가려는 성향에 대해서 갈라디아서는 다른 복음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거짓선생이라고 비난하고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스테판 사이저가 쓴 ‘시온의 크리스쳔군사들’(CLC)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추천사 첫머리에 정형남선교사가 쓴 흥미있는 내용이 있다.
“심히 안타깝게도 이 시대에 시온주의를 지지하는 기독교인들, 즉 ‘시온의 크리스천 군사들’이 아주 많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구호들을 외치고 있다. ‘이스라엘의 회복’, ‘예루살렘의 회복’, ‘Back to the Jerusalem’, ‘복음의 서진’, ‘땅끝 예루살렘’, ‘성경예언 성취의 주인공–이스라엘’, ‘성경예언 성취의 장–예루살렘’, ‘성경예언 성취적 사건–이스라엘 건국(1948)’, ‘성경예언 성취적 사건–예루살렘 탈환(1967)’,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무너져라 예루살렘 성전터의 두 이스람 사원’, ‘제3의 성전 재건 임박’, ‘마귀의 계략–예루살렘 분할’, ‘마귀의 계략–수도 예루살렘, 팔레스타인 건국’등이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 또는 아랍인보다 유대인을 편애하는 가운데 아랍권과 이스람권의 적대세력이 되고 있다. 그리기하여 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혈과 육의 투쟁집단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그들로 인하여 중동과 세계평화에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예언 성취의 진정한 주인공은 ‘시온의 크리스천 군사들’의 주장과 달리 야곱의 혈통적 후손들인 이스라엘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교회이다. 또한 그 성취의 장도 예루살렘으로 대표되는 가나안 땅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이다. 땅끝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은 그 어디든 땅끝이다. 땅끝은 성경의 원문에 의하면 땅끝(단수)가 아니라 땅끝들(복수)이다. 복음은 서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동서남북으로 나아간다. 이른바 ‘이스라엘 회복’, 그 주인공은 야곱의 혈통적 후손들이 아니라 아담의 모든 후손들 가운데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교회공동체이다.” (시온의 크리스천군사들, CLC, 6쪽)
이러한 견해는 이필찬 교수도 동일하다. 이필찬 교수는 ‘백투예루살렘 운동 무엇이 문제인가’(새물결플러스) 라는 책에서 세대주의, 메시아닉, 이스라엘의 회복과 신사도운동등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으로 여러 책을 비판하고 있는데, 1) 폴터웨이의 ‘백투예루살렘’ 2) 키이스 인트레이더의 ‘그날이 속히 오리라’ 3) 로버트 하이들러의 ‘메시아닉 교회: 언약의 뿌리를 찾아서’ 4) 대니얼 저스터의 ‘마지막때의 교회와 이스라엘’ 5) 루벤 도런의 ‘한 새사람’ 6) 송만석 장로의 ‘지금은 예루살렘 시대’ 7) 최바울 대표의 ‘백투예루살렘 운동’의 제목을 보아도 그들의 연관성을 알 수 있다.
위의 목차에서 언급된 로버트 하이들러, 루벤 도런등은 모두 신사도운동 인사들이다. 루벤 도런은 밥존스, 폴 케인, 마이크 비클과 함께 캔서스예언자그룹의 일원으로 있었다. 키이스 인트레이터도 메시아닉 쥬 지도자로서 KIBI 송만석 장로, 벤자민 오, 마이크 비클등 신사도운동 인사들과 교류를 하고 있으며, 아이합에서 강의를 한다.
대니얼 저스터는 TJCII라는 단체의 대표이다. TJCII는 “제2의 예루살렘 공의회를 향하여”(Toward Jerusalem Council II)라는 약자인데, 예수전도단의 총재인 존 도우슨, 티쿤 연합회 대표인 대니얼 저스터, 바룩 하셈 메시아닉 회당 대표인 마르틴 왈드맨등이 함께 만든 단체로서, 교회 안의 반 유대주의의 견고한 진이 깨어지고, 1세기의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목적을 갖는다. 물론 온누리교회의 KIBI 송만석 장로와 인터콥 최바울도 신사도운동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며 세대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필찬 교수의 책을 보면 본 책의 가장 앞에 있는 축사 중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발견할 수 있다. 김성태교수의 축사에 나오는 내용인데, 백투예루살렘과 세대주의, 메시야닉쥬의 지도자들과 신사도운동의 관계가 나타난다.
“중생파 혹은 호함파라고 불리는 중국 최대 가정교회 조직의 창설자인 쉬용저는 지난 2000년, 서방으로 망명했다. 그는 백투예루살렘을 주창하며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중, 소위 신사도운동의 주요 지도자 중 하나인 마이크 비클을 만나 국제기도의집(IHOP)과 연결되었다. 곧 백투예루살렘 운동은 세계적인 선교 네트워크를 통해 퍼져나갔고 현재 곳곳에서 저자가 우려하는 모든 양상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메시야닉쥬의 지도자들이 신사도운동을 벌이는 교회 및 선교단체의 지도자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세밀하게 분석한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회복되고 예수님의 재림이 감람산 자락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신념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인다. 저자는 여기에 혈통적 유대인에 대한 심각한 편향이 작용하고 있음을 밝힌다. 또한 학자답게 인터콥의 세대주의적 신학경향이 신사도운동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도 객관적으로 규명한다.” (김성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선교학교수)
특히 아이합은 세대주의가 주장하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마지막때의 중요한 징조로 주장한다. 또한 신사도운동이 말하는 다윗의 장막의 회복, 백투예루살렘, 한 새사람(One New Man)등은 모두 이스라엘의 회복을 뜻하는 유대주의, 메시아닉과 관련이 있는 사상이다.
스캇할렐이라는 곳이 있다. 소위 아이합(IHOP)이 추구하는 이스라엘 24/7 기도의 집이며, 그곳이 이스라엘의 메시야닉 쥬를 후원하는 대표적인 곳인데, 그곳은 릭 라이딩스가 대표로 있는데, 릭 라이딩은 미국 ‘IHOP의 ‘Israel-Mandate 주 강사이다. 이 단체는 온누리교회 송만석장로의 KIBI와 밀접한 교류를 갖고 있다.
2010년 10월 4-7일에 ‘이스라엘 성회’라는 제목으로 집회가 열렸는데, 주요강사가 김상복 목사, 이동원 목사, 하용조 목사였고, 외국의 강사는 예수전도단의 매튜 톨러, 스캇 할렐의 릭 라이딩, 요엘라라고 하는 가톨릭 수녀였다. 그 집회는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집회를 하였는데, 그 집회를 주최한 곳은 IMN(이스라엘사역네트워크)이었으며, 온누리교회 송만석장로의 KIBI, ICM 경배센터, Glory House, 수캇 다비드, 이용희교수의 에스더기도운동, 쿰 선교회, 선두주자 커뮤니케이션, 데이비드 차가 대표로 있는 KAM, 한사랑선교회, 사랑의 멧세지, 김종철 감독의 영화 회복팀, 사도적 기도의 집이라고 하는 AHOP, 대학선교네트워크(CMN), 손종태목사의 Onething Network 등이 참여하였다.
신사도운동과 메시아닉 쥬의 연계적 관련은 모닝스타 미니스트리의 릭조이너, 아이합의 마이트 비클, WLI등 많은 신사도운동 인사들과 단체들에서도 나타난다.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메시아닉 쥬, 메시아닉 운동, 중국의 백투예루살렘을 주장하는 지하교회뿐 아니라 세대주의 교회들까지 포함된 단체들이 신사도운동과 연계하여 기독교 정통신학을 대체신학이라고 부르며, 위협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결코 성경적인 내용이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극단적 세대주의, 변질된 세대주의라고 불리는 일련의 주장들 중에서 적지않은 숫자들은 이단적이며, 어떤 특정한 징조를 과장하고 확대해석한 임박한 종말론, 또는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그 위험성이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하여야만 한다.
메시아닉이라는 명칭 아래에서 세대주의와 극단적세대주의가 혼합되고, 유대주의와 신사도운동이 혼합되고 있으며, 삼위일체론과 기독론등을 부정하는 이단들과 혼합되어서, 기독교의 정통신학을 대체신학을 비하하며 위협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들은 2000년 기독교를 배교, 변질된 신학, 적그리스도, 사단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앞에서 잠시 언급한 루벤 도런의 ‘한 새 사람’(One New Man)에 대해서 살펴보자. 루밴 도런(Reuven Doron)은 캔자스시티예언자 그룹선지자의 일원이었고, 신사도운동을 하는 인사이다. 그는 마이크 비클, 밥 존스, 짐 골, 프랜시스 프랜지펜, 폴 케인 등과 함께 캔자스시티예언자 그룹이었으며 이 그룹은 나중에 존 윔버와 결합함으로써 빈야드 운동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그는 ‘ONE NEW MAN(한 새 사람)’이라는 책의 저자이며 ‘ONE NEW MAN CALL’이라는 단체의 사역을 하고 있는데, 신사도운동 인사이자 메시아닉 운동을 하는 인사이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One new man)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엡2:12-18)
이 성경본문을 루벤도런은 다음과 같이 해석을 한다.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함께 한 새사람을 이루는 것은 장차 올 시대의 징조다. 이것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육의 자손과 영적 자손을 약속하셨던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영적인 자손(이방)과 육적인 자손(이스라엘)이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될 때, 영적인 영역과 육적 영역이 연합되어 하나님의 생명이 방해받지 않고 흘러나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영적인 세계와 육적세계의 문들이 활짝 열릴 때 하늘의 실체가 하늘과 땅의 영역사이에 자유롭게 교류될 것이다. (루벤도런, 한 새사람, Eastwind, 15쪽)
본문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장차 유대주의로 하나로 묶인 새로운 공동체가 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으로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으며, 또 “자기 안에서”라고 말하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즉 유대인과 이방인이 조건없이 하나의 공동체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율법주의가 폐하여지고 그리스도를 믿는 십자가로 이루어진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본문을 영적인 영역과 육적인 영역으로 분리하여 해석하는 것도 인위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이며, 그 개념은 아마도 육적으로는 유대인의 율법주의를 지켜야 하고, 영적으로는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자의적인 해석으로 보인다. 그러나 성경본문은 육적과 영적으로 분리하여 해석할 어떤 근거도 없으며, ‘한 새사람’이란 혼합된 제3의 공동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분명하다. 성경본문은 다음과 같은 의미로 해석하여야 한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0-13)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새 언약은 유대주의가 아니라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이루어지며, 예수님의 피, 그리스도의 십자가로서 성취되기 때문이다. 루벤 도런은 종말적으로 장차 유대인과 이방인의 연합으로 이루어지는 제3의 민족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해석을 하고 있지만, 유대인이나 헬라인을 막론하고 누구라고 할지라도 예수님의 피로 이룬 새 언약으로서 하나가 될 수 있으며, 이 새 한 사람은 이미 십자가에서 성취된 복음을 뜻한다.
루벤도런은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가 된다는 십자가의 성취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그것이 종말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인데, 오늘날 그 성취가 강하게 요구된다는 것은 곧 오늘날이 종말이라는 의미이며, 오늘날에 한 새사람의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연합되고 온전해진 성도들의 무리인 한 새 사람에 대한 계시는 주님과 사도들의 글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만 이 세대의 마지막 때가 되기까지 성취되지 않은채 보존되어왔다. 사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외치셨다. 그런데 그 분의 완성된 사역은 기독교 시대 전체를 통하여 더 온전하게 성취되어 가다가 종말에 이르러 집중적으로 성취되면서 그 절정에 달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 새사람의 실체는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그 성취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한 새사람, 루밴 도런, 13쪽)
그러나 에베소서 본문에서 이미 십자가에 의한 복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원문을 보면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와 “한 새 사람을 지어”, 그리고 “화평하게 하시고”등의 동사의 시제는 모두 과거 능동태 동사이다.
즉 예수님께서 그의 피로 이룬 십자가 성취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주장은 다른 복음이 분명할 것이다.
특히 루벤 도런의 책에서는 노골적으로 발견되지 않지만, 일부 신사도운동 인사들은 루벤 도런의 “한 새사람”에 대해서 종말적으로 이루어질 집단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극단적이며 이단적인 해석을 하는 견해도 있다.
성경은 유대주의, 특히 율법주의를 다른 복음이라고 말하고 있음을 우리는 잊으면 안된다. 갈라디아교회는 유대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한 교회였다. 갈라디아교회는 할례를 지켜야만 하며, 구약의 절기나 음식물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이 많아서 분쟁이 되었다. 즉 갈라디아 교회는 행함과 믿음, 율법과 복음에 대한 문제가 있었으며, 사도바울은 유대주의를 다른 복음이라고 경고하였으며 (갈1:6-9), 율법주의에 대해서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신 것”으로 혹평하고 있었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19-21)
사도바울은 율법주의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