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단들과 문제단체들은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을까?

  • 6월 16, 2016

                                   왜 이단들과 문제단체들은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을까?


                                                                                                                                  이인규

 

수많은 이단들과 문제단체들은 자신의 문제점이 정확하게 지적을 당하면 대부분 “그런 적이 없다”고 부정을 하거나 “그런 뜻이 아닌데 오해였다”라고 변명을 한다. 그러나 증거자료가 제시되면 “수정하겠다” 또는 “고치겠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결국 다시 전과 동일한 주장을 다시 가르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되풀이 되고 있을까?

어떤 단체나 교회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큰 규모로 성장하게 되었다면, 일단 그 이유는 바로 그 이상한 프로그램이나 이상한 내용의 가르침 때문이라고 의심을 해 볼 수 있다.

정통기독교에서 가르치는 보편적인 교리와 사상과 전혀 다른 가르침이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끌어왔으며, 그 교리와 사상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짧은 시간 안에 큰 규모로 발전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떤 새로운 사상이나 독특한 운동이 교계에 유행처럼 성행하면, 무조건 그것을 받아들이는경향이 있는데, 대부분 그러한 주장은 색다르고 특이한 주장으로서 많은 문제가 수반되었다. 예를 들어서 신기한 기적과 표적을 강조하거나 이상한 현상을 보이는 집회를 열면 많은 교인들이 몰려 오는 경우이다.

즉 가계저주론이 관심을 갖고 퍼지게 되면 그것을 받아들이며, 영적도해 사상이 퍼지게 되면 그것을 영입하여 받아들인다. 또한 신사도운동이 성행하게 되면 그러한 현상적인 집회를 받아들여서 혼합시킨다. 소위 ‘거룩’이라는 이름으로 트랜드 마케팅이 교회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교회에 그러한 것들을 도입하는 이유는 첫째로 무엇이 성경적으로 또는 신학적으로 틀렸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틀리는지 알면서도 도입하는 경우가 있다.

왜 교회에서 정통신학과 성경공부를 가르치지 않을까? 그 단체의 지도자와 교회의 목사가 정통신학을 전혀 모르거나, 성경을 가르칠만한 성경지식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오히려 이단들이 성경공부를 가르치면서 전도를 하고 있는 것이 요즈음의 추세라는 것은 한국교회가 반성을 해야할 문제로 보여진다.

기적과 표적등 현상적인 집회를 열고, 예언과 직통계시를 가르치던 신사도운동 단체가 어느날 갑자기 회개를 하고 돌아온다고 하면 그 가르침에 익숙한 교인들이 과연 그것을 인정할까?

오히려 그러한 교리와 사상에 익숙한 교인들은 그곳을 떠나게 된다. 그동안 그러한 기적과 표적, 예언과 직통계시가 곧 성령의 임재이며 영성 운동이라고 가르쳐 왔기 때문에, 그러한 현상이 없는 집회는 곧 성령이 임재하지 않는 집회와 동일시 된다.

또 다른 예를 들면 통일교에서 원리강론 교리를 가르치다가 그것이 잘못이라고 고백하고 고치겠다고 한다면 통일교 교리를 믿는 교인들은 그곳을 떠나게 된다. 결국 그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모두 고치겠다고 한다는 것은 그동안 그것때문에 모은 교인들을 포기한다는 결론과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단체의 지도자와 목사의 입장에서도 여태까지 자신이 옳다고 하며, 새로운 진리를 발견한 것처럼 그동안 가르쳐왔던 것을 갑자기 틀렸다고 인정할 수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문제단체들의 지도자는 그동안 기존 기독교 교회가 잘못 가르쳐왔다고 주장해 왔는데, 갑자기 자신이 잘못 가르쳤다고 인정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은 잘못을 고치고 수정하려는 방법이 아니라, 감추고 위장하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 어느 단체는 대외적으로 양육교재를 모두 고치겠다고 말하고, 교인들에게는 업데이트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또 어느 단체는 대외적으로 모두 수정하고 고치겠다고 말하면서, 내부에서는 자신들이 억울하게 정치적인 목적으로 희생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고친다고 말을 하지만, 그들은 아무리 좋은 기회가 와도 스스로 멸망의 길을 가게 된다.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대외적으로는 잘못을 깨닫고 고쳤다고 하며, 대내적으로는 우리가 정치적으로 핍박을 당하고 있지만, 진리라고 가르친다.

2) 양육교재를 수정하거나 홈페이지등에서 글을 올리는 둥 대외적인 용어를 바꾸지만, 그동안 가르쳐온 것을 쉽게 바꾸지 못한다.

3) 유명목사나 교수들을 자문위원으로 세운다.

4) 연합단체나 교단으로 가입하거나, 교단의 정치적인 세력을 통하여 보호막을 이용한다

사실 회개를 하고 고치는 방법은 가장 빠르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되며, 돈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은 그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방법은 유명한 목사들이나 교수들을 앞에 세워서 방패막이를 하거나, 교단의 유명한 목사들을 “고문, 이사, 지도위원, 자문위원”등으로  세우는 정치적인 방법을 택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돈이 많이 드는 방법이지만 일시적인 효과밖에 기대할 수 없는데, 정치적으로 이용한 힘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을 비판하는 이단연구가나 비판세력을 돈으로 매수를 하거나 후원하는 방법, 또는 이단을 조작하는 사람으로 매도하거나 공격하는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결국 친이단인사들과 이단옹호자들이 그들 곁에 모이게 된다. 마치 파리가 더러운 곳에 꼬이게 되는 경우와 같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들은 결국은 모두 실패를 하였고, 단 한번도 성공한 경우가 없었다. 연합단체나 교단을 통하여 그 안으로 숨으려고 했던 이단들이 처음에는 성공하는 듯이 보였지만, 정치세력은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그동안 가르쳤던 문제점과 이단성이 결국은 하나씩 드러나게 되면서, 그동안 숨겨왔던 그 과거 전력들이 모두 나타나게 된다. 

그들이 진정으로 고치고 수정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도와 주겠다고 약속을 하여도 그들은 그동안 가르쳐온 교리와 사상을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이 현실적인 딜레마이다. 바꾸면 그 교리에 익숙한 교인들이 모두 떠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시적인 안목으로 잘못된 교리를 수정하고 고치면 오히려 전화위복의 경우가 될 것이 분명하지만, 그들은 결코 그렇게 시간이 걸리는 일을 선택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