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대에 있는 666 (유영권목사)

  • 6월 12, 2015

                                                           모든 시대에 있는 666


                                                                               예장합신이대위원 유영권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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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은 표이다. 오른 손과 이마에 받은 표이다. 이 표를 받지 못하면 매매를 할 수가 없다. 매매를 못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생활 및 사회활동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어쩌면 심각한 경우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때문에 일반적 삶을 위해서는 반드시 표를 받아야만 한다.

표를 받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13장에는 두 짐승이 출현한다.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다.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에게 먼저 경배를 올렸다(12). 이적을 통하여 사람들을 유혹하여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을 위해 우상을 만들도록 한다(14). 그리고는 만들어진 우상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고는, 우상을 경배하도록 하는데, 경배하지 않는 자는 다 죽였다.(15) 그러고 나서 모든 자들에게 666표를 받게 하였다.

경배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인가? 죽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죽는 것이 싫어 신앙을 버리는 사람들이다.

666표를 받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매매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매매는 살기 위한 수단이다. 그렇다면 666표를 받는 사람들이나 우상에게 경배하는 사람들이나 모두 다 살기 위해 신앙을 버린 사람들이다. 혹은 신앙과 상관이 없이 사는 사람들이다.

우상에게 경배를 않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경배를 않은 사람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신앙하는 가운데 우상에게 경배를 할 수가 없다. 우상에게 경배를 않는다는 것은 곧 당시 상황을 볼 때 죽음을 의미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우상에게 경배를 않는 것이다.

계시록에서는 이들이 누구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유배를 당하고 있는 사도 요한은 자신의 유배의 배경을 분명히 하고 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죽음을 당한 영혼들의 죽음의 배경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6:9), 장차 보좌에 앉아 왕노릇 할 사람들의 죽음의 배경에 대해서도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20:4).

말씀과 증언의 삶은 성도들의 삶이다. 말씀대로 산다는 것과 예수 증언의 삶은 배척의 이유이며, 핍박의 이유이며, 죽음까지 각오하여야 하는 일이었다. 모든 시대의 성도들에게 동일하다. 이상으로 볼 때 우상에게 경배를 하지 않는 사람들, 표 받기를 거절하는 사람들, 말씀과 증언의 삶을 위해 죽기를 각오하는 사람들은 다 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666표를 받는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666표가 갖는 의미

살기위해 신앙을 버리게 하는 그 무엇이다. 모든 성도들에게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신앙의 포기를 강압하는 것을 갖고 산다. 666은 죽지 않기 위해 신앙을 포기하고 받는 허락한 표식이다.

신앙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이다.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생사를 의탁한 자로서의 삶이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 신앙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세상의 삶의 방식이 있다. 세상의 삶의 방식을 거부하면 생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즉 세상의 살아가는 방식과 하나님의 방식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살아야 한다. 세상은 하나님의 방식을 부정한다. 하나님의 방식을 따른다는 것은 세상의 방식의 시각으로 볼 때 죽음, 혹은 실패 내지는 인생 포기를 전제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많은 성도들이 이러한 두려움 때문에 세상 방식을 고수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이중적인 모습을 갖는다. 만일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신앙의 정신을 말미암는 삶을 포기한다는 것은 살기 위해 666표를 받는 것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666은 어느 한 시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대에, 모든 성도들에게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특별한 666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 각 사람에게 있는 666이 문제이다. 특별히 베리칩이라고 하는 666을 알아 베리칩을 받지 않는 것으로, 다른 신앙적 요소와 상관이 없이 구원에 이른다고 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베리칩이 666이라고 하면서,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종말론적 시각으로 말하는 것은 비성경적인 것이다. 666을 받지 않는 것은, 오늘, 현재, 신앙을 지키기 위해 내게 다가온 불신앙을 강요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신앙을 지키는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 자녀로서의 마땅한 삶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오늘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서 허락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내지는 않으면서, 단순히 666이 무엇인지 찾아내, 받지 않으려는 모든 시도는 사실은 심각한 오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