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가 없는 ‘메시야 과정설’

  • 6월 27, 2015

어처구니가 없는 메시야 과정설?

                                                              평이협 이인규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 4:1)

 

예수님이 광야에 가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을 때에 마태복음은 이것을 성령에게 이끌리어라고 표현하고 있다.

마가는 더 노골적으로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1:12) 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누가는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어”(4:1)이라고 표현한다. 즉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것은 성령의 뜻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두날개 공청회에서 합신의 박형택목사는 이 사건에 대해서 마귀가 예수를 공격하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성령의 이끄심이었다고 설명을 하였다.

두날개뿐 아니라 많은 문제단체들이 이 세상을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구도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인터콥은 인류역사를 신들의 전쟁이라고 표현한다. 만약 그러한 이원론적인 구도로 해석을 하게 되면, 하나님이 그 전쟁에서 패배할 가능성도 있다는 결론이 도출될 수 있다. 사탄은 하나님과 대결상대가 될 수 없으며, 그들은 영원한 심판으로 멸망당하게 될 것으로 성경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날개는 사탄이 주님의 사역조차 방해했고 공동체를 파괴하려고 했다고 주장하면서 그 성경적인 근거로 마4:1-11 16:21-23을 인용하였다. 그것을 반박하기 위하여 박형택목사는 두날개의 주장을 비판하였다.

 

그래서 마태복음 41절에서 11절이 뭡니까?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러 간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그게 예수님과 마귀가 싸우면서 마귀가 예수를 공격하는 과정입니까? 아니잖아요?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러 간 것은 성령의 이끌리심을 따라서’… 메시야로서 하나의 거쳐야할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에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서 간 것이지, 언제 마귀를 대적을 해가지고 예수님하고 마귀가 싸웠습니까? 이런 논리는 아주 위험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공동체를 파괴하기 위해서 사단이 에덴동산에서부터 공격을 시작했다 이렇게 쭉 썼는데요. 이것도 참 우스운 겁니다.” (동영상 녹취)

 

통합으로부터 상습적이단옹호자로 목사에서 면직된 로앤처치 황규학은 박형택목사가 메시야 과정설을 주장했다고 공격을 하였다. 워낙 황당한 주장이고, 앞뒤 문맥을 모두 짤라버린 웃을 수도 없는 매도와 조작이려니 했더니, 놀랍게도 예장합신이 유모교수가 황규학의 메시야과정설을 그대로 인용하는 일까지 나타났다.

박형택 목사가 동영상에서 말한 내용이 과연 메시야 과정설인가?

박형택목사가 예수가 메시야가 아니었는데 마귀의 시험을 받고나서 메시야가 되었다고 말한 것으로 이해가 되는가? 신학대학교수가 본문을 그렇게 이해하였다면, 그는 학생들을 가르칠 자격이 없으며, 그는 교수를 내려놓아야만 할 것이다.

더욱이 그 유모교수가 두날개의 지도교수라는 것이 밝혀졌다면, 그 유모교수는 지도교수로서 두날개를 보호하기 위하여 상습적이단옹호자 황규학의 매도와 조작을 인용한 것으로서, 그는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지나간 것이 되고 말았다. 두날개를 보호하기 위하여, 허위사실로 소속교단 이단상담소장을 매도하고 조작하였으며, 결국 이단 옹호자 황규학과 손을 잡은 결과가 되었기 때문이다.

2003년에 예장합신의 신학위원회는 셀 운동을 비판하고 경고하면서 이미 G12에 대해서 비판을 하였고, 2008년에 합동에서도 G12를 이단성이 있다고 공식규정하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두날개를 조사하여 발표하라는 것은 합신의 노회에서 공식질의 된 사항으로서 2013년 예장합신 총회에서 결의된 사항이다.

 

유모교수는 박형택목사의 주장이 메시야 과정설로 이해가 되는지 묻고 싶으며, 그가 인용한 황규학의 기사는 황규학이 예장통합에서 목사가 면직된 자로서, 지하철에서 성추행과 절도미수와 수십범의 전과를 가진 상습적 이단옹호자라는 사실을 알고 인용했는지 반드시 해명을 하여야 할 것이다.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받으신 것은 성령의 이끄심이었으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메시야에 대한 정통성을 공인 받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다고 이해되어야 한다. 그것은 시험을 받기 전에는 메시야가 아니었는데, 시험을 받은 후에 메시야가 되었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두날개 김성곤목사는 그것을 공동체를 파괴하기 위한 사탄의 공격으로 해석하였는데, 매우 잘못된 이원론적인 해석이다.

참고로 톰슨주석과 호크마 주석을 보면 다음과 같이 해석을 한다, 유모교수는 호크마 주석과 톰슨주석도 메시야 과정설로 이해를 하는지 묻고 싶다. (황규학에게는 질문할 가치조차 없으며, 답변을 원하지도 않는다)

 

(톰슨주석)

4:1-11 사탄의 유혹과 예수의 승리 : 예수께서 공생애에 들어가기에 앞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신 데 대한 기사이다.(1:12,13. 4:1-13) 그런데 이 사건은 그 시험이 특히 그의 사역 초기에 있었다는 점에서 예수의 메시야직에 대한 정통성 내지 그 능력, 순결성에 대한 도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호크마주석)

4:1 성령에게 이끌리어 예수를 잉태케 하신(1:20)성령은 그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됨을 증거한(3:17) 후 마귀에게 시험 받으시도록 광야로 이끄신다( 1:12, ‘몰아내신지라‘). 이는 물론 외형상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에 의해 예수께서 수동(passivity)적으로 인도당한 것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예수께서 성령에게 자발적으로 순종하신 것을 나타낸다.즉 성자, 성령의 유기적 연합과 협력을 통해 예수께서 하나님과 인류의 공동 대적(大敵)인 마귀에게 나아가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성자, 성령께서 마귀에게 도전했다는 뜻이 아니다. 수세(受洗)와 관유(灌油)로 성령이 충만하신 예수께서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 첫째 아담을 정복했던 사단이 둘째 아담인 자신을 꺾어버리기 위해도 전해 온 것을 받아들이신 것이다. 이 도전을 극복함으로 비로소 예수는 하나님과 사단의 공인(公認)을 받으며 참 메시야로서의 공생애를 시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