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Jeremiah) 이단연구소
2015년 5월, “이단문제에 대한 무관심과 이단옹호자들의 횡포”에 대한 한국교회의 이단문제를 걱정하는 한국과 미국의 이단연구가들 몇명이 어떤 외부의 영향도 받지 않는 순수한 이단연구소를 만들 것을 약속하고 이렇게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늘날 이단과 가까운 정통교단의 인사들의 정치적인 압력과 물질적인 유혹등으로 인하여, 순수한 이단연구를 방해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스라엘의 타락과 범죄를 걱정하고 경고했던 선지자 예레미야와 같이 우리도 한인교회의 이단문제에 대해서 걱정하고 경고하며 함께 눈물을 흘리려고 합니다.
이 홈페이지의 서버는 미국에 있으며, 이단에 대해서는 인격적인 비난이 아니라 순수하게 신학적, 성경적인 연구와 비판을 할 것이며, 정확한 근거에 의한 이단교리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홈페이지로서, 한국교회와 기독교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자료를 제공하기 위함이 그 목적입니다.
예레미야(Jeremiah)
<예레미아서>의 저자이며 주인공으로, 구약성서에 나오는 BC 627년경 유다왕국 말기 요시아왕 제 13년 때부터 부르심을 받고 선지자적 사역을 시작하였다. 베냐민 지방 아나돗의 사제(司祭)인 힐키야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젊어서 예언자로서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면서 예언자적 선지자 사역을 하였다. 이 때의 상황은 국제적인 정세가 매우 혼란스러웠고 급변하는 시기라고 말할 수 있는데, 앗수르가 쇠퇴하여가고, 그 와중에 바벨론과 애굽이 서로 세력을 키워나가다가 BC 605년경 갈그미스 전쟁에서 애굽이 패하고 바벨론이 최강국으로 등장하게 된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배반하고 타락하여 온 이스라엘인들을 향하여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가해질 것을 경고하였다. 즉 이스라엘이 돌이키지 않는다면, 나라가 패망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갈 것을 예언하였는데,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에게로 돌아서기를 거부하였고, 얼마 후 그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이 점령당하고,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예루살렘이 BC 587년 바벨론에서 패망한 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그를 후대하여 유대에 머물도록 허락하였다. 그러나 바벨론에서 세운 총독 그달리야가 살해되자 그를 살해한 동포들의 강요로 이집트로 함께 끌려 갔으며, 얼마 후 그곳에서 죽은 것으로 전승되어진다.
‘예레미야’(이르메야후, 이르메야)라는 단어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던지신다”(문자적으로 태에서 떨어트리셨다) 라고 해석하는데, “여호와께서 세우신다”라고 사역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고, “던지다”라는 의미를 여호와의 심판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예레미야가 전하는 양면적인 사상의 중요 핵심도 ‘이스라엘의 구원과 심판’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적인 관계’에 대한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레미야의 사역은 요시야(BC 640-609년), 여호아하스(BC 609년), 여호야김(BC 609-597년), 여호야긴(BC 597년), 시드기야 (BC 597-587년) 유다의 마지막 다섯 왕의 통치기간에 해당되는 40년 이상 계속되었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으로 설명될 수 있다.
예레미야는 에스겔 선지자와 함께 포로기의 위대한 선지자였다. 그는 태어나기도 전부터 선지자가 되리라는 운명을 받았다(예레미야 1:4). 예레미야에게 주어진 사명은 유대인들이 잘못된 태도를 고치지 않으면 파멸되고 말리라는 하나님의 멧세지적인 예언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예레미야 4:22)고 말했다. 9장은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하는 구절로 시작한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흔히 ‘흐느끼는 선지자‘ 혹은 ‘눈물의 선지자’라고 불렸다. 그런 성향의 선지자들이 그렇듯이 예레미야도 핍박을 받았으며 목숨이 위태로운 경우도 있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특성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타협하지 않는 믿음’이었다. 또한 왕이 원하는 예언만 말하는 가짜 선지자들과 자주 충돌했다. 사악한 왕 여호야긴은 예레미야가 쓴 두루마리를 읽고 코웃음을 치면서 불쏘시개로 쓰라고 명했다. 사제 바스훌은 예레미야에게 매질을 가하고 나무에 매달았다. 한번은 우물에 던져진 적도 있었다. 언제나 거짓선지자들은 그 숫자가 많았으며, 그러나 예레미야는 단 한번도 굴복하지 않았다. 예레미야는 수줍음이 많고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으나 왕, 사제, 가짜 선지자들에게 대항할 때는 매우 용감했다.
마침내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그 백성들이 추방되었을 때에도 예레미야는 소망을 잃지 않고, 언젠가 회복이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신뢰에 대한 그의 믿음을 잃지 않았다. 예레미야가 추구했던 ‘새 언약’(렘31:31-33)은 히브리서 기자에 의하여 메시야적 새 언약으로 해석되어진다.(히8:7-10)
‘흐느끼는 선지자‘ 또는 ‘눈물의 선지자’라고 불리웠던 예레미야는 <예레미야애가>라는 짧은 성경도 썼다. 바벨론에 의해 멸망된 예루살렘을 애도하는 책이다. 그 책의 첫 단어는 “에카”이며 이 뜻은 “어찌하여”라는 의미를 갖는다. ‘예레미야’라는 이름은 비관론자를 뜻하는 일반명사로도 사용되며, 그 이름에서 나온 ‘jeremiad’라는 말은 비탄이나 하소연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예레미야서의 렘36장은 이 책의 중요한 부분을 그의 친구로 알려진 바룩을 통하여 쓴 것으로 암시하며, 특별히 예레미야서의 후반부도 그 친구가 쓴 것으로 추측하는 견해가 있다.
예레미야는 신약성서에서도 자주 인용되는데, 예수를 부활한 예레미야로 믿은 사람들도 있었다.(마16:14) 특히 전승에 따르면 예레미야가 언약궤를 어느 동굴에 감춰두었다고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예레미야는 유대사에서 비중이 있는 큰 선지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