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석의 30개론에 대한 비판5 (고급2)

  • 7월 15, 2015

                                            정명석의 30개론에 대한 비판5 (고급2)


                                                                                                              이인규



8) 구원론

기독교의 구원

정명석 집단은 여태까지 설명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먼저 몇가지의 의문을 질문하면서, 기독교의 구원관을 왜곡시키고 매도를 하고 있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면 복음을 들은 적이 없는 사람은 모두 지옥에 가는가?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간다고 했는데, 초림예수가 오신 이후부터 지금까지 지상천국이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모든 구원이 이루어졌는데 왜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셔야만 하는가?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면 복음을 들은 적이 없는 사람은 모두 지옥에 가는가?

예수 천국과 불신 지옥이라는 양자택일의 강요는 선택적이며 한편으로는 극단적으로 보인다. 이러한 제목으로 표현된 이유와 배경을 먼저 알아야만 한다. 먼저 사람은 누구든지 스스로 자력으로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이 본질적인 멧세지가 되어야만 한다. 기독교의 구원은 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데, 성경은 이 세상에 의인이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여 이 세상에는 단 한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전제조건이 먼저 언급되어야만 기독교의 구원론을 이해할 수 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로마서 6 23절은 말한다.

하나님은 죄로 만연된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자인 예수를 보내신 것이다. 그러한 내용이 가장 잘 표현된 구절이 요한복음 316-17절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16-17)

다시 말하여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양자택일의 무시무시한 협박의 내용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한다. 이 질문에 대하여 세가지로 자세하게 답변을 하여 보자.

. 구약의 구원

성경에서는 오직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십자가 이전에는 구원이 있었는가? 물론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의 구약시대에도 구원은 있었으며, 구약시대의 사람들도 신약시대와 같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의 선진들도 믿음으로서 증거를 얻었다고 말하면서, 구약의 조상의 이름을 계속 나열하면서 믿음으로….”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이 히브리서의 11장은 믿음의 장이라고도 불린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11:1-2)

       

11:4 믿음으로 아벨은….

11:5 믿음으로 에녹은 ….

11:7 믿음으로 노아는 ….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11: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구약에서 구원의 대상은 하나님의 선택된 사람과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으로 선택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구원을 받지는 않았다. 즉 하나님의 구원에는 믿음이 언제나 전제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주변의 이방민족들을 외면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신 이유는, 다른 이방인들이 이미 그들의 다른 우상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그래서 선택된 민족들도 죄를 저지르고 우상을 섬기면 구원에서 탈락되었고, 선택되지 않은 민족들도, 예를 들면 니느웨 백성들처럼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구원을 얻을 수 있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6:9)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것”(6:8)이라는 성경의 기록을 유의하여야 한다. 즉 노아는 그가 자력으로 의인이 되고 완전한 자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서 의인이 되었고 완전한 자라고 불려졌던 것이다.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14:20)

     

그러나 노아, , 다니엘과 같은 의롭다고 하는 사람들도 겨우 자기의 생명만 건진다. 더욱이 그들의 도 그들 자신의 가 아니라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것이다. 즉 인간은 자신의 의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 결과적으로 소돔과 고모라성에서 의인 열명을 찾지 못하였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안다. 즉 구약에서도 의인이 구원을 받았던 것은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던 것이다.

. 의인이라고 불렸던 사람들

그렇다면 복음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복음을 몰랐던 사람들 중에서 의인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 못하였는가? 예를 들어 이순신장군과 간디는 구원을 받았는가라는 질문을 종종 접한다. 그 답변에 대해서는, 우리는 구원은 오직 하나님만의 주권의지이시며 하나님만의 몫이라고 말할 수 밖에는 없다. 누가 구원을 받았는지 누가 구원을 받지 못하였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모른다가 정답이 되어야만 할 것이며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권한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순신장군과 간디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음이 분명하며, 하나님 앞에서 어느 누구도 자신을 스스로 의인이며 완전한 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순신장군은 우리나라를 위하여 싸웠고, 간디는 인도의 정진적인 지도자였지만, 그들이 일상생활에서 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는 알 수가 없다.

또한 우리는 누군가가 구원을 받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을 비난하거나 불평할 수는 없다. 그분은 창조자이고 우리는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여도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따질 이유 역시 없다.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9:18-20)

.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의 구원 :

그러나 복음을 받지 못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 공평하지 못하는 불평도 제기할 수가 없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14:16-17)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17:27)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1:19-20)

  

즉 복음이 전하여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자기를 증거하셨으며 자신을 나타나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68)

      

하나님의 은총은 이미 온 세상에 편재하여 있었고 천지에 충만하였기 때문에, 만일 누구인가 구원을 받지 못하였다면, 그것은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이셨다. 우리는 그 주어진 양심으로 사람들을 사랑하며 공의를 행하도록 되어져 있었다.

          

율법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2:14-15)

  

즉 하나님은 인간 누구에게든지 각 사람을 사랑하며 공의를 행하고 선한 일을 행하도록 그들에게 은총을 주셨다. 그러나 결국은 선택하신 백성들마저도 타락하고 말았으며 하나님께 범죄하고 말았다. 이제는 무조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인이라고 불러주는 십자가의 대속을 인류에게 주신 것이다.

      

알지 못하는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17:30)

    

어쨋거나 십자가 사건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의 길이 값없는 은총임을 알며 보편적인 은혜의 수단이 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구약은 예수 중심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구약성경은 오실 메시아“, 신약성경은 오신 메시아에 대해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의 구원은 오실 메시아를 믿음으로, 신약성경의 구원은 오신 메시아를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님 이전과 예수님 이후의 차이는 바로 약속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즉 예수님 이전에는 메시아를 보내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약속이 있었고, 예수님 이후에는 그 메시아가 와서 세상을 구원했다는 성취가 있었던 것이다. 구약시대에 등장하는 신앙의 인물들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받은 것이고, 신약시대 이후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루신 약속의 성취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간다고 했는데, 초림예수가 오신 이후부터 지금까지 지상천국이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이것 역시 천국,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질문이 나온다고 생각된다.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 하나님나라는 다음 세가지의 개념으로 분류된다.

첫째, 영역적이고 통치적인 개념. 둘째, 현재적이고 내면적인 개념. 셋째, 긍극적이며 미래적인 개념이다. 예수님과 함께 도래한 천국은 작은 겨자씨로부터 새가 깃드는 큰 나무와 같이 성장할 것이며, 가루서말에 뿌려진 누룩처럼 팽창하게 될 것이며, 밭에 뿌려진 씨처럼 자라게 될 것이며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이루어질 것이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1:1)

모든 구원이 이루어졌는데 왜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셔야만 하는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이유는 심판을 하러 오신다고 성경은 말한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고급편의 바로 앞의 항목인 <죄론> 마지막 부분에 설명을 한 바 있다.

중간영계

30개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독교는 옥을 지옥으로 해석하고 예수님이 이곳에서 승리를 전하고 다니셨다고 한다. 분명히 지옥은 한번 가면 다시 구원할 수 없는 세계로 알고 있는데 지옥에도 복음이 전파된다는 말인가? 만일 예수님이 지옥에 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면 살아서 믿을 필요없이 죽어서 믿으면 될 것이 아닌가? 그것이 아니다. 여기서 옥은 죽은 영들이 감금되어 있는 옥을 말한다. 아담부터 예수님 오실 때까지 영들 곧 홍수심판 때 멸망 받은 자들, 아브라함 때 소돔과 고모라같이 믿지 않아서 죽은 자들, 모세 때 악평해서 죽은 자들 등을 가두어 둔 구약급의 중간영계(구약영계)이다”(고급, 구원론, 194)

정명석 집단이 인용하는 구절은 벧전 3:18-20이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벧전 3:18-20)

베드로전서 본문을 정명석집단이 자주 인용하는데, 본문은 중간영계가 있다는 내용이 아니다.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라는 성경 본문은 난해한 구절 중의 하나이며, 성경해석적인 관점에 볼 때에 난해한 성경구절로 교리적인 기준을 삼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그렇지만 위에 있는 30개론의 주장과 달리, 기독교는 을 지옥이라고 해석하지 않는다. 본문에 대해서 일반적인 해석은 예수그리스도가 성육신 이전에 영으로 노아를 통해 당시의 패역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전도했다고 해석하는데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본문의 은 이 세상을 의미한다.

두 번째 해석은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후에 옥에 갇혀 있는 타락한 천사들에게 가셔서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다고 본다. 모든 번역성경은 선포하셨다고 번역하고 있으며 케륏소라는 헬라어 단어는 전도하다는 뜻보다는 선포하다는 뜻으로 번역된다.

30개론은 아담 안에서 죽은 영들 곧 육신 쓰고 살아서 메시야를 기다리다가 죽은 영들이 중간영계에 가서 메시야 오기를 기다라고 있었다”(195)라고 해석을 한다. 정명석 집단은 지옥을 가고 천국에 가기 전에 대기실이 있는데 그곳을 중간영계라고 주장하는데, 영계도 메시야를 만나야 보다 이상적인 다른 세계로 올라갈 수 있다고 말한다.

더욱이 30개론은 하나님은 지구촌 전체의 모든 인류에게 함께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불교등, 유교든 간에 다른 종교들 가운데도 나름대로 역사하시면서 돕고 계신다”(200)라고 말하며 종교마다 구원의 차원만 다를 뿐이지 나름대로 구원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겠다”(202)라고 말한다.

즉 가톨릭과 같은 중간장소의 영계가 있다는 주장이며, 다원주의와 같이 다른 종교도 나름대로 구원이 있는 주장을 가르치고 있다.

30개론은 잡다하고 복잡한 구원의 종류를 분류하고 있는데, 1) 영적구원, 육적구원. 2) 내세구원 현세 구원. 3) 1차 구원, 2차 구원으로 분류하며, 구원의 원리에 대해서는 1) 점진적 구원 2) 시대적 구원 3) 차원적 구원 4) 중심 인물을 통한 구원. 5) 매일 구원. 6) 행실적 구원. 7) 생활적 구원. 8) 개인적 구원으로 분류를 하는데, 그 내용이 모두 비성경적이며, 자의적인 추측과 상상으로 분류되어진 것으로서 비판할 가치조차 없다. (210-218)

또한 30개론은 완전한 구원의 원리와 이치에 대한 종류로서 1)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 섭리 2) 초림 구원의 원리와 이치 3) 재림 구원의 원리와 이치 4) 가나안급 2차 구원 등으로 분류한다. (219-227)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오직 하나의 길이며 하나의 과정으로서, 오직 예수 한분을 믿음으로서 하나님께 얻는 선물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2:8)

9) 재림론

정명석 집단은 재림의 실상에 대해서 엉터리 성경해석을 하여서 기독교의 재림관을 부정하고 있다. 30개론의 주장을 살펴보자

본 그대로 오신다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1:11)

여기서 본 그대로란 과거사를 말하는 것이다. ‘본 그대로 다시 오신다는 말은 장차 오실 주님도 동시성적으로 예수님과 같이 땅에서 태어나고 그 노정대로 오신다는 것이다”(고급 재림론, 244)

본 그대로라는 말은 과거사를 뜻하는 것이 아니며, 그러한 해석은 상식적인 해석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든지 알 수 있다. 다음의 번역성경들은 제자들이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신다는 뜻으로서, 1:9에는 예수님의 승천에 대해서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승천하신 것을 본 그대로 오신다는 것이다.

[공동번역] 이렇게 말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너희는 여기에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너희 곁을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시던 그 모양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

[표준새번역]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면서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실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현대인의성경] “갈릴리 사람들아, 왜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워 가신 이 예수님은 너희가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KJV] Which also said, Ye men of Galilee, why stand ye gazing up into heaven? this same Jesus, which is taken up from you into heaven, shall so come in like manner as ye have seen him go into heaven.

[NIV] “Men of Galilee,” they said, “why do you stand here looking into the sky? This same Jesus, who has been taken from you into heaven, will come back in the same way you have seen him go into heaven.”

  

예수님 노정 그대로 오신다

어느 성경에 초림 예수님의 노정대로 재림예수가 오신다고 기록되어 있는가? 정명석 집단을 비롯한 이단들은 재림주가 땅에 났다고 말하기 위하여 초림예수와 재림예수의 노정을 같다고 주장을 한다. 그러나 성경은 초림예수는 종의 모습으로 오셨지만, 재림예수는 영광의 모습으로 오실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재림은 인격적으로 오시며, 가시적(可視的)으로, 우주적으로 오시며, 영광적으로 오실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살전4:16)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그러하리라 아멘“(1:7)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보리라“(24:30)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보리라“(13:26)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보리라“(21:27)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3:4)

   

   

구름타고 오시지 않는다.

   
성경은 예수의 재림에 대해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말한다. 이러한 성경구절은 생각보다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6-17)

1:9-11, 1:7, 24:30, 13:26, 21:27등 많은 성경구절이 구름을 타고 온다고 말한다. 정통신학에서는 이러한 성경구절을 통하여 예수의 재림이 우주적이며, 인격적이고, 형태적이며, 가시적(可視的)이고, 영광적인 형태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다른 존재나 대리인이 아니라 직접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이단 교주들이 다르게 해석하여야만 하는 성경구절이 바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구절이다.

통일교의 원리강론에서도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은 육신을 입고 오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러한 웃지 못할 해석은 결국 그들의 교주가 구름을 타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을 그들의 교리로 짜맞추기 위함이다. 2 이스라엘이라는 용어도 정명석집단이 통일교 원리강론에서 보망한 것이다

우리는 위의 설명에 의하여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뜻은 중생한 성도들의 무리들 가운데서, 2 이스라엘인 기독교 신도들의 인도자로 나타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원리강론, 544)

아래 성경 본문에서 구름이 사람을 비유하는가? 위 본문은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이며 즉 본문에서 구름같이라는 단어는 허다하다, 많다는 것을 비유하는 것뿐이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12:1)

물없는 구름에서 구름이 육체를 뜻하는가? 그렇다면 은 무엇을 뜻하는가? 본문에서 물없는 구름이라는 것은 비를 기다리는 농부에게 허망하고 쓸모없는 것을 뜻하는 내용이다.

저희는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의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1:12)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으니라”( 25:14)

이단들이 구름을 육체로 비유하기 위하여 짜맞추기식의 성경구절을 인용하지만, 모두 억지 주장일 뿐이다. 본문은 유다서 112절과 유사한 비유로서, 구름을 육체로 비유한 것이 아니라, ‘거짓 자랑하는 것 비 없는 구름과 같이 헛것이라고 하는 비유일 뿐이다. ‘구름 육체라면 는 무엇을 비유한 것인가?

이단들은 예수의 초림도 구름을 타고 온다고 예언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구름을 타고 오지 않았다고 주장을 한다. 즉 이단교주들은 자신이 구름을 타고 오지 않았다는 것을 변명하기 위해서, 초림예수도 구름을 타고 온다고 예언되어 있지만, 실제는 구름을 타고 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7:13)

다니엘서에서 예언된 인자 같은 이는 구름을 타고 온다고 예언되어 있지만, 실제로 초림예수는 구름을 타고 온 것이 아니라 마굿간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 역시 앞뒤 문맥과 정황을 살피지 않고 엉터리로 성경을 짜맞추는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다니엘서는 초림예수를 예언한 것이 아니라, 재림예수를 예언한 것이다. 그 증거가 바로 예수님이 다니엘서를 직접 인용하심으로서, 예수님이 친히 장래에 다시 오신다는 것을 증거하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in the future)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will see the Son of Man)” ( 26:64)

그 때에(at that time)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will see the Son of Man)” ( 13: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will see) 하시니“( 14:62)

그 때에(At that time)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will see)”( 21:27)

그렇다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첫째 굳이 이것을 비유적으로 해석할 근거가 없다.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님의 모습 그대로 하늘로부터 강림하신다는 것을 말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구약에서 구름은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뜻하였다. 즉 예수님은 인격적이며, 영광적이며, 가시적이며, 우주적으로 오시게 될 것이다. 초림예수는 낮고 낮은 형태로서 마굿간에서 비천한 모습으로 태어나셨지만, 재림예수는 하늘보좌에서 영광과 승귀의 모습으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언제 재림하시는가?

성경은 수많은 곳에서 예수의 재림에 대해서 그 때와 시간을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또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한다고 성경은 말한다. 도적은 언제 온다고 통보를 하지 않으며, 아무도 모르게 갑자기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24:36)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1:7)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살전 5:1-2)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살후 2:2)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3:3)

그런데 가시적이며 인격적인 예수의 재림을 부정하거나,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하는 이단들은 성경에서 믿는 자들은 그 시간과 때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살전 5:4-6)

앞에서 인용한 바와 같이, 성경에는 수많은 구절이 재림의 날을 알 수가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단들은 전체적이고 보편적인 성경구절에는 관심이 없다. 그 많은 구절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굳이 한 구절만을 제시하면서 재림의 날짜가 도적같이 임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의도가 무엇일까? 즉 이단들은 자신들의 교리를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오해의 소지가 있는 성경을 부분적으로만 인용하여 다른 뜻으로 해석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본문이 과연 그런 뜻일까?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살전 5:1-2)

성경을 잘 보면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밤에 도적같이 갑자기 이를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때와 시기에 대해서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살전 5:4)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바로 앞의 5:1-2절은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할 것을 너희가 잘 알고 있다고 이미 설명하고 있다. 4절의 본문에서 임하다라는 단어는 카탈람바노로서 (취하다, 잡다. 달성하다)는 뜻을 갖는다. 킹제임스 영어성경은 ovetake로 번역하였는데, ‘덮치다, 사로잡히다는 뜻이다. 이 단어는 예수님이 온다, 재림한다는 단어로 사용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이 단어는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9:18(귀신에 잡히다), 8:3(간음 중에 잡힌), 12:35(어두움에 잡힌), 고전 9:14(얻다), 3:12(잡힌 바)등과 같이 붙잡다. 취하다라는 의미로 주로 사용되었다.

다시 말하여 예수를 믿는 형제들, 빛의 아들들에게는 그 날이 사로잡지 못한다, 혹은 덮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즉 예수님의 재림은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아무도 모르게 도적같이 갑자기 닥치게 된다. 그러나 어두움에 거하는 불신자들에게는 그 날이 재난과 심판의 날이 되겠지만, 빛에 거하는 믿는 자들에게는 그 날이 언제가 되든지 아무 상관이 없으며, 오히려 소망이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 날이 신자(信者)들을 사로 잡거나 덮치지 못할 것이다.

본문은 어두움의 뜻을 죄악과 타락에 대한 심판으로 비유하고 있다. 그래서 믿는 자들을 빛에 거하는 자들이라고 비유한 것이다. 이 성경구절을 빛의 아들은 재림의 날짜를 알 수가 있다고 해석하거나, 도적같이 오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이단들은 정말 황당하다 못해 한심하다. 결국 자신이 언제 태어났는지 생년월일을 알고 있는 이단교주들은 자신을 재림주라고 말하기 위하여 그 날을 알 수가 있다고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즉 자신들의 교리에 성경을 짜맞추기 위하여 해석을 조작하고 있는 것이며, 다른 번역성경을 보면 그 뜻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공동번역] “교우 여러분, 그 때와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날이 마치 밤중의 도둑같이 온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태평세월을 노래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멸망이 그들에게 들이닥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해산할 여자에게 닥치는 진통과 같아서 결코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암흑 속에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그 날이 도둑처럼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살전 5:1-4)

[표준새번역] “형제자매 여러분, 그 때와 시기를 두고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겠습니다. 주님의 날이 밤에 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고 말할 그 때에, 아기를 밴 여인에게 해산의 진통이 오는 것과 같이, 갑자기 멸망이 그들에게 닥칠 것이니,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않으므로, 그 날이 여러분에게 도둑처럼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살전 5:1-4)

[현대인의성경] “형제 여러분, 그 때와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분에게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날이 밤중에 도둑같이 온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기 때문입니다. 마치 해산할 여자에게 고통이 닥치듯 사람들이 평안하고 안전한 세상이라고 마음 놓고 있을 때 갑자기 그들에게 멸망이 닥칠 것이며 사람들은 절대로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그러나 여러분은 어두움 가운데 있지 않기 때문에 그 날이 여러분에게 도둑처럼 닥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살전 5:1-4)

재림의 장소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7:2)

계시록 본문이 재림주가 해돋는 곳 즉 동방, 한국에서 태어난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천사가 재림주인가? 또한 본문은 재림의 장소를 말하는 구절이 아니다.

정명석집단이 기독교의 재림을 부정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이다. 즉 정명석이 재림주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정명석집단은 재림의 장소가 제2 이스라엘이며 한국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한국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며, 동방은 예루살렘의 동쪽을 가르킨다. 다음 글을 읽어보면 정명석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정감록은 새로운 지도자로 정도령(鄭道令)의 출현을 예언하고 있다. () 자를 파자하여 풀어보면 닭 유()자와 큰 대()자와 나라 방()으로 유대나라(猶太邦)라는 뜻으로 영적 이스라엘인 기독교 곧 십자가의 도를 말한다. 도는 진리를 말하고 령은 1. 명령한다 2. 호령한다 3. 가르친다는 뜻이다. 따라서 도령이라 함은 1. 결혼하지 않은 사람 2. 진리를 가지고 명령하는 사람, 곧 예수그리스도를 말하며 제2의 이스라엘 민족인 우리나라에 오실 재림주에 대한 문자적 소망이었던 것이다.”(고급, 재림론, 255)

10) 유대 종교와 기독교의 교리 비교

30개론의 유대종교와 기독교의 교리 비교라는 제목은 메시야관, 재림, 심판, 부활등을 담고 있는데 앞의 항목에서 각각 다루었던 내용을 다시 반복하고 있다. 이와 같이 중복되는 내용을 다시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이유는 유대교와 기독교를 비교하면서, 동일한 비교를 기독교와 정명석집단의 교리에 비교하면서 적용시키려는 목적이다.

메시야 강림과 구원

유대 종교인들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꼭 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 하나님이 어떻게 강림하여 오셨는가? 하나님이 어떻게 왔는고 하니, 유대 땅 베들레헴 산골짜기 초막집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서 왔다.“(고급, 유대종교와 기독교의 교리 비교, 267)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올 것을 믿었지만 하나님이 올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유대인들의 묵시문학과 전승자료에 의하면 유대인들의 메시야관은 민족적인 낙관주의, 세속적이고 정치적인 소망이었으나 하나님이 직접 메시야로 오신다는 생각하지는 않았다.

더욱이 예수님은 베들레헴 산골짜기 초막집에서 태어나신 적이 없다. 성경은 여관 밖 구유에서 태어나셨다고 말한다(2:7) 정명석 집단의 성경지식은 거의 전무하다고 보여진다, 정명석집단이 말하고자 하는 목적은 유대인들의 메시야관이 실제 예수님이 초림의 예언과 전혀 달랐기 때문에, 재림주로 온 정명석도 신약의 예언과 다르다는 변명을 하기 위함이다.

강림관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7:13-14)

정명석집단은 구약에서는 다니엘 선지자가 이상을 통하여 메시야가 구름을 타고 올 것으로 계시를 받았지만, 예수는 구름을 타고 오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명석집단은 구름을 유대종교인들이라고 주장한다.

이러므로 유대종교인들 자체가 구름인데 그것을 몰랐다. 스스로 선민 의인이라면서 같은 뜻임을 몰랐다는 것이다. 구름은 깨끗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종교성이 깨끗한 유대종교인들을 타고 다니셨다. 그 중에도 종교적으로 깨끗한 가문에서 의인의 혈통을 타고 마리아를 통해 나타나셨다“(고급, 유대 종교와 기독교의 교리 비교, 271)

30개론 고급편의 바로 전 항목의 9. 재림론에서 구름에 대해서 이미 자세하게 설명하였으며, 다니엘 7:13-14은 예수의 초림이 아니라 재림을 예언한 것으로서, 신약에서 예수님은 단 7:13-14를 여러번 인용하시며 자신이 장차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7:14)

정명석 집단은 이사야서 본문에서 처녀가 유대종교인들을 뜻한다고 271쪽에서 말한다. 즉 구름이나 처녀는 모두 땅에서 온다는 말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마1:18에서 23까지 결혼하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을 잉태하였을 때에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이사야서 본문을 인용한 이유가 무엇인가?

말세의 심판관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4:1)

정명석집단은 구약에서 몇몇 구절을 인용하여 유대인들은 메시야 초림때에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해석도 역시 재림예수가 오실 때에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구절이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변명하기 위함이다. 정명석이 이미 왔지만 심판이 이루어진 적이 없기 때문이며, 오히려 정명석 자신이 말년에 징역 10년형을 받고 형무소에 있지 않는가?

또한 구약 성경 구절이라고 하여 반드시 예수의 초림 때에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재림 때를 뜻하는 경우도 있으며, 특히 말세, 마지막 때등의 단어는 종말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긴 기간을 뜻한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12:49)

성경에서 불이라는 단어는 문자적으로 불을 뜻할 수도 있고, 성령을 비유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심판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성령의 왕성한 사역을 뜻할 수도 있고 심판을 뜻한다고 해석을 할 수 있지만, 본문은 예수님이 사역을 하고 계실 때에 이미 불이 붙었다는 뜻이 아니다.

[공동번역]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표준새번역] “나는 세상에다가 불을 지르러 왔다.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바랄 것이 무엇이 더 있겠느냐?

[현대인의성경] “나는 세상에 불을 던지러 왔다. 이 불이 벌써 붙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부활

정명석 집단은 앞에서 사용했던 방법 그대로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면 죽은 자들이 부활할 것으로 믿고 있었으나, 예수가 오신 이후에 부활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결국 정명석 자칭 제림주가 올 때에 죽은 자가 살아나는 부활이 없었다는 것을 변명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올 때에 죽은 자가 살아나는 부활이 일어난다고 믿지 않았으며, 세상 끝에서 부활이 일어난다고 믿었다.

제자들도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했지만, 육신은 다 죽지 않았는가? 예수님 시대 때에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부활이었다” (고급, 유대 종교와 기독교의 교리 비교, 275)

더욱이 정명석집단의 주장과 같은 부활관은 비성경적이며 엉터리 주장에 불과하다. 성경에서 부활은 언제나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독교의 부활은 육신이 죽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주일학교 학생들도 아는 사실이다.

이상세계관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 11:6-9)

30개론은 이미 중급편의 지상천국 항목에서 설명한 내용에 대해서 다시 중복하고 있다

이사야 본문은 종말론적인 천년왕국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며, 메시야의 통치가 실현될 그날에 있을 낙원의 회복에 대한 시작을 시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다. 죄악된 세상이 끝나고 평화와 공존의 시대가 온다는 것을 이사야 선지자는 환상과 이상을 통하여 아름답게 묘사하였다.

창세기 49장을 보면 야곱이 열두 아들에게 양, 염소, 독사. 이리 등 각각 별호를 붙여주었듯이 이 말씀도 모두 사람을 비유한 것이다. 양같은 성격의 사람, 뱀같은 성격의 사람, 염소같은 성격의 사람, 사자같은 성격의 사람들이 서로 하나되고 상함과 해됨이 없는 세계로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 12 지파가 오신 메시야를 중심으로 하나된다는 말씀이다.”(고급, 유대 종교와 기독교의 교리 비교, 276)

정명석 집단은 이사야 본문은 짐승들이 창세기 48장의 12지파를 상장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사야 본문에서는 12 짐승이 언급되지 않으며, 창세기 49장에서도 열두지파를 모두 짐승으로 비유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사야 본문에서 언급되는 살진 짐승과 어린아이도 12 짐승 중에 하나인지 묻고싶다.

창세기 48장이 아니라 49장이며, 49장을 읽어보면 유다는 사자새끼로, 잇사갈은 나귀로, 단은 뱀으로, 납달리는 암사슴으로, 베냐민은 이리로 비유되었지만, 르우벤과 시므온, 레위, 스불론, , 아셀, 요셉은 짐승으로 비유된 적이 없다. 이사야서의 표범과 염소는 비유된 적도 없다. 특히 요셉은 물가 옆의 가지로 비유되었을 뿐이다. 더욱이 이사야가 기록될 당시는 12 지파가 아니라 예루살렘과 유다로서 임박한 멸망을 목전에 두고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고 있었다.

정명석 집단의 결론은 유대인들의 이상세계가 동물왕국인 것으로 매도하고 있다. 결국 유대인의 이상세계와 초림 메시야가 오신 기독교의 이상세계가 다른 것과 같이, 기독교가 추구하는 이상셰계관과 정명석 자칭 재림주의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목적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지상천국은 사람의 이상세계이다. 유대종교인들은 지상천국이 이렇게 이루어지는지 몰랐다. 이상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틀렸던 것이다. 문자 속에 갇히면 이루어져도 모르고 그 주관권에서 절대 못 벗어나는 법이다” (고급, 유대 종교와 기독교의 교리 비교, 277)

정명석 집단의 목적은 항상 같다. 성경구절을 짜맞추기로 해석하여 정명석이 재림주라는 것을 만드는 것이고 또 정명석집단의 시대를 신약시대와 구별되는 성약기간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더욱이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정통신학에 대해서는 무지하기도 하지만, 일부러 왜곡시켜서 매도하고 조작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재림관

정명서 집단은 동일한 방법을 계속한다. 유대종교인들이 나타날 것으로 생각했던 엘리야가 실제로 신약시대에는 세례요한으로 왔다는 것이다. 즉 예수가 다시 오신다는 재림 메시야는 예수가 아니라 영으로 오는데, 다른 인물 즉 정명석이라는 결론을 짜맞추고 있다.

한편 구약에서 승천한 엘라야가 변화 산상에 영으로 나타났다. 구약의 그 엘리야가 오기는 왔는데 신약에 영인체로 와서 돌아다녔다. 구약에서 영인체로 올라갔던 것이다. 사람은 한번 죽으면 다시 올 수 없다. 그렇다면 사명받고 영으로 다시 온다. 재림 때는 영으로 온다는 것이다. 때가 되면 사명받고 영으로 다시 온다.” (고급, 유대 종교와 기독교의 교리 비교, 278)

많은 이단들이 예수가 영으로 다시 오신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이단교주 자신의 육체를 통하여 예수가 영으로 재림한다는 것이며, 이들이 인용하는 것은 엘리야와 세례요한에 대한 내용이다. 그러나 엘리야의 영이 세례요한의 육체에 온 것이 결코 아니며, 이러한 성경적인 근거는 전혀 없고 비기독교적인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유대종교의 교훈

유대민족이 구세주 예수님을 못 만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이 신앙생활을 덜해서가 아니라 성경을 제대로 풀어 헤치지 못했고 또한 그들의 교리를 절대적으로 고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고급, 유대 종교와 기독교의 교리 비교, 279)

정명석 집단의 주장은 성경을 기록된 내용과 다르게 해석하고, 그 교리를 고쳐야만 재림주인 정명석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의 정체가 무엇이며 목적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 있다.

정명석 집단의 30개론은 기독교의 메시야 강림 교리, 심판관(불의 개념), 부활관(영의 개념), 이상세계관(공중 및 휴거의 개념), 재림관(‘의 개념, 예수님의 재림), 기독교의 교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지만, 중급편과 고급편에서 모두 다루었던 항목을 다시 반복할 뿐이다.

결론은 기독교의 성경관과 교리를 모두 바꾸고 정명석 집단에 참가하여야만 재림주인 정명석을 만날 수 있다는 내용에 지나지 않는다. 이 항목에 대한 성경적인 비판은 이미 중급편과 고급편에서 다루었던 내용으로 생략한다.

11) 우주의 역사와 인류의 기원

우주의 역사

정명석 집단은 창세기의 6일이 6000년이라고 주장한다. 월요일부터 목요일이 구약이고, 금요일부터 토요일이 신약 2000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재림주가 와서 천년 동안 지상천국을 이룬다고 주장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 3:8)

수많은 이단들이 하루를 천년씩 계산하는 비유법을 사용하는데, 그들이 인용하는 성경구절이 바로 벧후 3:8이다. 그러나 벧후 3:8은 하루를 천년으로 계산하라는 내용이 전혀 아니며, 반대로 천년을 하루로 계산하라는 내용도 아니다. 만약 그렇게 계산을 한다면 성경에 나오는 하루를 모두 천년으로 해석하여야 하는가? 그들은 왜 천년을 하루로 계산하지는 않는가?

더욱이 정명석 집단은 종교적으로는 6000년이고 과학적으로는 6백억 만년으로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명석 집단의 30개론을 보면 도처에서 지구의 역사를 6000천년으로 단정하고 있다.

창조의안

한편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질서적인 법칙에 의하여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만물은 하나님의 작품으로 하나님의 신성을 상징적으로 전개한 실체 대상으로 하나님의 본성상과 본형상을 닮아서 이성성상으로 존재하고 있다. 고로 사람에게는 남녀가 있으며, 동물에게는 암컷과 수컷이 있고, 식물에게는 암술과 수술이, 만물은 양성과 음성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고급, 유대 종교와 기독교의 교리 비교, 279)

성경은 기록하기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U 하나님의 형상과 노양대로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또한 이성성상이라는 용어자체도 통일교에서 빌려온 것으로서 정명석집단은 성경을 엉터리로 해석하고 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 1:27)

본문은 하나님의 형상이 남자와 여자라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그 사람이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그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고전 11:7)

하나님은 영이시며 그 모양과 형상이 보이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형상은 영생, 무죄성, 도덕성 등의 속성을 뜻한다고 보아야 한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형상이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데 예수가 남자와 여자의 두가지 형상이였는가? 본문에서 하나님(엘로힘)은 남성복수명사이고, 자기 형상은 3인칭 남성 단수명사인 ‘His image’가 사용되었으므로 정명석 집단의 주장은 히브리어 문법적으로도 오류가 된다.

결국 이러한 통일교의 주장은 정명석 집단뿐 아니라 하나님의교회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인류의 기원

정명석집단의 주장은 소위 이중아담론으로서 베뢰아, 신천지, 김풍일등에 영향을 미친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4:14-17)

아담의 후손이 가인과 아벡 밖에 없었는데, “가인을 만나나는 자마다가 누구이며, 가인과 혼인을 한 여자가 누구이냐는 것이다.

성경은 모든 인물을 기록하지 않고 있으며, 주요인물에 대해서만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성경은 아담이 낳은 다른 아들과 딸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또 언급할 필요가 없다. 과연 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만을 낳았을까? 눈으로 보이는 성경적인 모순을 피해보려고 하다가 급조된 이중아담론은 오히려 더욱 모순이고 더욱 해괴한 주장이 되고만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인류의 초기에는 형제와 자매를 포함하여 가까운 친척들간의 결혼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최초의 인류는 단 하나의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결혼의 기회가 제한되어 있었다. 레위기에서 하나님은 근친결혼을 엄격하게 금지하셨지만, 아담 시대에는 그런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의 아내도 알고 보면 그의 이복 누이였다(20:12).

                                                                                

성경을 보면, 아담은 셋을 낳은 후에도 800년을 더 살았다. 거의 1000년을 산 아담이 낳은 자녀의 숫자는 상당한 숫자였을 것이 분명하다. 만일 아담의 손자까지를 합한다면 그 숫자는 더욱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담에게 성경에 언급되지 않은 자녀들이 있었을까?

창세기 5 4절에, 우리말 성경에는 그냥 자녀를 낳았다고 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아담은 아들(히브리어:)만 아니라 딸(히브리어:바트)도 낳았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으며, 그 히브리 단어는 복수명사(sons and dauters)이다. 즉 아담은 많은 아들과 딸을 낳았다는 것이 명백하다.

(NIV) “After Seth was born, Adam lived 800 years and had other sons and daughters”.

(KJV) And the days of Adam after he had begotten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아담이 일백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삼십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셋은 일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십이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5:3-10)

지질학, 고고학적인 증명

정명석 집단은 이담 이전에도 사람이 있었으며, 아담은 종교적 조상이라고 주장한다. 더욱이 정명석 집단은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셨다는 자체를 부정하는 곳으로서 성경적인 내용을 부정하는 집단이다.

성경은 아담을 하나님이 성인으로 창조한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아담과 하와도 어떻게 태어났는가? 아담 하와도 문자 그대로 흙으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그의 부모를 통해서 유전자로 인해 태어났다” (고급, 유대 종교와 기독교의 교리 비교, 304)

성경은 사람(아담)을 흙으로 지으셨다고 말하며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생령(Living Being, 생명체)이 되었다고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2:7)

고고학적으로 인류가 수백만 년전 혹은 수십만 년전에 시작되었고 그 화석이 발견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존재는 원인, 혹은 원시인이라고 불리는 종류로서 사람과 유사한 짐승으로 본다. 현대과학에서도 현생인류라고 불리는 종류는 약 4만 년전에 시작되었다고 보며, 그 종류는 원인을 알 수 없지만 지속적인 화석이 발견되지 않음으로 인하여 멸종되었다고 본다.

현대과학적인 학설에 의하면, 우리와 같은 현생인류의 출현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으며, 한 장소에서 시작되어 여러 장소로 이동하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구의 역사가 6000년이라고 하는 주장은 기독교의 공식주장이 아니라 일부의 주장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성경은 인류의 시작과 지구의 역사가 몇 년전인지를 언급하는 과학책이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