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이 봉하여진 비밀인가?
이인규
많은 이단들이 요한계시록이 비밀로 인봉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말세가 되면 그 이단단체의 교주나 지도자만이 성경의 비밀을 알 수가 있다고 가르친다. 누구나 들어도 그러한 주장이 황당한 주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단들은 그러한 주장을 성경으로 짜맞추는 수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초신자들이 미혹되는 것이다. 이러한 수법을 가장 잘 사용하는 곳이 바로 신천지이다.
이단들이 주로 사용하는 성경구절과 그들의 짜맞추기 해석을 살펴보자
– 계시록이 응하고 있는 오늘날은 계시록에 약속한 이긴 자(계2, 3장, 21:7)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이 없다. 이를 부인하는 사람은 예수님과 그 말씀을 믿지 않는 자이며 마귀의 영에게 조종을 받는 자이다. 천하만국은 계시록 10장에 기록한 열린 책을 받아먹은 약속한 목자 앞으로 나아와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소성 받아 하나님과 예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려야 한다. (이만희, 요한계시록의 실상, 14쪽)
1) 계시록이 봉하여 졌다는 주장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계 5:1-5)
신천지와 같은 이단들이 주장하는 것을 보면, 이 봉하여진 책이 바로 계시록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후로 일곱인을 떼는 것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며, 그것이 곧 요한계시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계시록 5장의 일곱인으로 봉하여진 책은 요한계시록이 아니다. 계시록 5장의 시점에서 사도요한은 아직 계시록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계시록 6장부터는 일곱 인에 대한 내용이 하나씩 기록되어 있지만, 계시록 5장의 시점에서는 사도 요한은 아직 일곱 인을 열어 보지도 않았다. 이것이 어떻게 계시록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계시록 5장의 인봉된 책은 바로 구약의 에스겔에 언급되는 두루마리 책을 뜻한다. 그것은 마치 사도요한이 쓴 요한계시록이 에스겔 시대에도 있었다는 황당한 주장과 같다.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겔 2:9-10)
계시록 5장에서 언급한 두루마리는 에스겔서에서 언급하는 애가와 야곡과 재앙이 기록된 두루마리이다. 그래서 이후로 일곱인을 하나씩 떼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계시록5장1절에서의 책도 안팎으로 썼으며, 에스겔 2장10절에서 책도 안팎으로 썼는데, Johnson 이라는 성경학자는 그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고대에는 두루마리 안쪽에만 쓰는 경우와 양면 모두에 글을 쓰는 경우가 있었는데, 양면 모두에 글을 쓰는 것을 opisthograph(오시스토그라프)라고 불렀으며, 한쪽만 글을 쓰는 두루마기는 매매가 가능하였으며, 양면에 모두 글을 쓴 두루마리는 비매품이었다….. 두루마리는 촛물로 봉하고, 진본임을 보증하기 위하여 도장을 찍었는데, 그 당사자만이 인봉을 떼거나 그 내용을 발표할 수 있었다. 원본은 인봉하였고 보관되었으나, 사본은 그렇지 않았으며 공개되었다”
에스겔 2:9-10의 다음에는 3장이 시작되는데 그 3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겔 3:1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겔 3:2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겔 3: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겔 3:4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내 말로 그들에게 고하라
겔 3:5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백성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는 것이라
그 에스겔 3장의 내용이 다시 요한계시록 10:8-11에서 인용되어진다. “배에는 쓰나 입에서는 꿀과 같이 달다”고 표현된 그 책이다. 에스겔서에서는 이스라엘 족속에게만 전하라고 하였는데, 계시록에서는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을 대상으로 다시 예언을 하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다시 예언하라는 것”은 내용적으로 다른 예언을 반복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예언의 대상이 달라졌음을 뜻하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 이단교주들에게 다시 예언하라는 뜻이 아니라, 사도요한에게 주어진 사역을 말한다는 것은 상식적인 것이다.
계 10:8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 하기로
계 10: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계 10: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계 10:11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2) 그 책은 재앙이 기록된 두루마리(바빌리온)이다.
그 책은 장래의 애가와 애곡과 재앙이 기록된 책이었다.
공동번역은 “구슬프게 울부짖으며 엮어대는 상여 소리“라고 번역하였으며, 표준새번역은 “온갖 조가와 탄식과 재앙의 글“이라고 번역하였으며, 현대인의 성경은 “탄식과 슬픔과 재앙의 말“이라고 번역되어있다. 다시 말하면 그 책은 “슬픈 재앙“이 기록된 책이다.
실제로 계시록 5장 이하에서는 예수님이 일곱인을 떼면서 인류에 닥치게 되는 재앙이 차례대로 나타난다. 계시록의 “책“(비블리온)은 두루마리를 뜻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여 보자. 사도요한은 계4:1에서 다음과 같은 소리를 듣고 하늘로 올라가 장차 될 일을 보게 된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 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계 4:1)
즉 사도요한이 하늘 보좌로 올라가서 본 것이 바로 계 5장이다. 만일 그 책이 계시록이고 사도요한이 쓴 것이라면 상식적으로 모순이 되지 않는가?
사도요한이 장차 될 일을 환상으로 보고 쓴 것이 계시록인데, 그 환상에서 아직 보지 못한 책이 계시록일 수가 있는가? 또 계시록을 쓴 저자가 사도요한이면 그 책의 내용을 모두 알고 있을텐데 왜 요한은 그 봉한 책을 펴거나 볼 수가 없어서 울었는가? 그 재앙이 적힌 두루마리는 바로 예수님이 그 저자였던 책이었다.
3) 성경은 계시록이 봉인된 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특히 계시록 마지막 부분에 있는 가감에 대한 경고에서 “이 책“에 대해서 계시록이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사도요한이 책을 다 쓰고 마지막 결론을 맺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
물론 이단들의 교주나 지도자만이 계시록을 해석할 수 있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입맛대로 성경을 짜맞추는 것이 곧 가감이 될 것이다. 그러나 계시록 22장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단들에게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계22장의 “이 책“은 당연히 계시록이며, 저자인 사도요한에게 천사는 “이 책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고 전하고 있는 것이다.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때가 가까우니라“(계 22:10)
4) 반문에 대해서
이단들, 특히 신천지는 이렇게 반문한다.
“계시록이 봉인되지 않았으면 당신들은 계시록을 다 아느냐? 정통기독교는 왜 계시록에 대해서 해석이 다른가?“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거의 억지 혹은 무지에 가깝다. 계시록이 봉인되지 않았다고 하여, 우리가 그 내용을 모두 획일적으로 동일하게 알아야만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늘날 성경은 계시록을 포함하여 봉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성경해석이 일률적이 아닌 것과 같다.
성경에는 사도 베드로도 사도바울의 편지에 알기 어려운 부분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으며, 그것을 억지로 풀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 3:16)
초대교회의 은사 중에는 지혜와 지식도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남을 가르치는 교사가 있었다. 안디옥에 있는 성도들은 일년 동안 가르침을 받고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고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 11:26)
즉 성경이 봉하여지지 않았다고 하여 그것을 모두 획일적으로 동일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무지에 가까운 비상식적인 주장이다. 예를 들어 어려운 수학책과 철학책이 봉하여지지 않았다고 하여 그것을 읽는 모두가 그 책을 모두 동일하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그들이 이단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어느 특정한 개인만이 성경의 비밀을 알고 봉한 것을 해석할 수 있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신천지는 이만희씨의 해석과 다른 주장을 하게 되면 제명을 당할 것이며, 하나님의 교회는 안상홍과 다른 해석을 한다면 쫓겨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기록된 성경과 다른 내용을 가르치기 위하여, 성경이 모두 감추어진 비밀이고, 짝이 있으며, 봉하여졌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즉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단들의 주장은 곧 그들의 교주와 목사만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는 결론을 유도하여, 그들이 원하는 대로 성경을 해석하기 위함이다.
5) 이단들의 무지한 주장
“하늘에서 말씀의 책을 가지고 온 천사는 대언의 영, 진리의 영(요17:17)으로 이 영이 책을 받은 사도 요한격인 목자와 하나되어 역사하니, 진리의 영이 함께 한 사도 요한격인 목자를 보혜사라 한다. 이 천사는 예수님의 대언자요 요한도 천사의 말을 듣고 나라와 백성과 방언과 임금에게 전하게 되니 곧 예수님의 대언자요 목자인 것이다. 하나님의 봉해진 책의 비밀을 천상 천하에 아는 자가 없는 이 때에 오직 책 받은 요한만이 성경을 통달하여 그 입에서 하나님의 비밀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만민은 책을 받아먹은 사도 요한격인 오늘날의 목자에게 가서 배워 믿고 행해야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되고 구원에 이르게 된다”(천국비밀 계시 – 요한계시록의 예언과 성취된 실상 p.193).
신천지 이만희는 자신이 보혜사이고 예수님의 대언자이며, 오직 자신만이 봉해진 책의 비밀을 알 수 있다고 주장을 한다. 그러나 보혜사라는 단어는 헬라어의 “파라클레토스”를 보혜사라고 음역한 것이다. 신천지 이만희는 이것을 한문풀이를 하여 “은혜로 보호하는 스승”이라고 하며 자신을 보혜사라고 주장한다.
파라클레토스는 원래 헬라의 법정용어인데, 그 의미는 “피고측 변호인”을 말한다, 즉 파라클레토스는 하나님의 대언자가 아니라, 장차 있게될 심판에서 성도들의 대언자를 말한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파라클레토스)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그래서 다른 성경들은 “변호해 주시는 분”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공동번역] 나는 믿음의 자녀인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고 여러분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그러나 혹 누가 죄를 짓더라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표준새번역] 나의 자녀 여러분,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고,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씁니다. 누가 죄를 지을지라도, 아버지 앞에서 변호해 주시는 분이 우리에게 계시는데,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현대인의성경] 나의 믿음의 자녀들이여,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고 나는 이 편지를 씁니다. 그러나 만일 누가 죄를 짓더라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예수가 우리의 피고측 변호인이 되시는 파라클레토스(보혜사)이므로 예수께서는 또다른 보혜사가 되시는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한 것이다. 이 또다른 보혜사를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이단교주들이 우리나라에 40명이 넘는다는 것은 참으로 웃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6-17)
6) 환상계시와 실상계시
신천지는 계시록을 환상계시와 실상계시로 구별한다. 사도요한은 환상계시만을 받고 계시록을 기록하였으며, 이만희 교주는 실상계시를 받았으므로 계시록의 비밀을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 이만희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계시는 계시일 뿐 환상계시와 실상계시로 구분되지 않는다. ‘계시’라는 단어 자체가 하나님의 그 뜻을 드러내신다는 의미이다.
신천지가 주장하는 것은 이만희가 풀어주는 계시록을 알아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며, 그 환상계시를 해석하기 위하여 이만희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뿐이며, 결과적으로 성경에 기록된 내용과 전혀 다른 뜻으로 해석하기 위하여 비유풀이를 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환상’이라는 단어는 vision을 말하며, ‘실상’이라는 단어는 fact, true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계시는 곧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비젼(vision)을 말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비젼은 당연히 모두 사실(fact)이 되어야만 한다. 구태여 환상계시니 실상계시로 분류할 아무런 근거도 없으며, 신천지 이만희 교주의 거짓 해석을 정당화하기 위한 용어일 뿐이다.
신천지가 비유풀이를 가르치는 이유와 그 결론은 모두 요한계시록을 자신들의 뜻대로 해석하기 위함이며, 그것을 신천지는 실상계시라고 부르며 오직 이만희만이 요한계시록을 실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창한 실상계시라는 것은 결국 너무 유치하고 코믹스럽게 그 단어들을 신천지 교회의 인물과 역사로 해석을 하고 있다. 과연 2000년 전에 사도요한이 밧모섬에서 한국 땅의 사이비 교주가 나타나서 이루게 되는 신천지 교회를 위하여 계시록을 썼다고 생각되는가?
만약 성경이 감추어진 비밀의 계시로 기록되어 있어서 이만희교주를 만나야만 그 비밀을 알 수 있다고 한다면 신천지가 나타나기 전 2000년 교회사의 기독교인들은 모두 구원을 받지 못하였단 말인가? 심지어 이만희의 실상을 몰랐던 예수님의 열두제자들과 그 제자들조차 구원을 받지 못하였는가?
– 약 이천 년 전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환상 계시이다. 당시 요한은 성령에 감동되어 환상으로 예수님의 계시를 받아 기록했지만 그 예언이 언제 이루어지는지, 실체가 무엇인지는 몰랐다. 다만, 예수님께서 환상으로 보여주신 계시를 기록했을 뿐이다. 그러나 정한 때가 되면 비유로 비사로 감추어둔 예언 속의 인물과 사건이 이 땅에 실상으로 나타난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예언대로 나타난 실상을 보여주시고 들려주시니 이것이 바로 실상 계시이다. 이와 같이 실상 계시는 예언이 응할 때 나타난다. 그러므로 계시록이 응할 때에는 이미 죽은 지 오래인 사도 요한이 이 땅에 살아나서 자신이 기록한 말씀과 그 실상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 요한과 같은 입장의 목자’가 나타나서 실상 계시를 보고 듣고 증거하게 된다. (이만희, 요한계시록의 실상, 21쪽)
그러나 이만희 교주가 해석한 실상이 엉터리와 거짓말이며, 계속 바뀌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만희 교주만이 알고있다는 실상계시와 성경해석은 초보자도 알 수 있는 황당하고 유치한 것으로서 그 오류가 너무도 많이 발견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신천지의 주장이 처음부터 모두 거짓말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말하여 준다.
예를 들면, 계시록 12:6의 “여자가 광야로 도망가매”에 대해서 실상계시라고 해석하는 것을 들으면 첫째 ‘아이를 낳은 여자’를 증거장막성전의 유재열씨라고 주장하는데, 광야에 3년 반동안을 도망간 사건을 유재열씨가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에서 3년반 동안 공부를 하고 신학박사를 받아온 사건을 뜻한다고 해석하는데, 유재열은 웨스트민스터뿐 아니라 미국의 어떤 신학대학에서도 공부한 적이 없으며 고등학교 중퇴를 한 학력으로 미국의 신학대학원에서 3년 반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든지 생각할 수 있는 상식이 될 것이다. 이만희 교주는 그것에 대해 질문을 하는 신천지 교인에게 “유재열에게 들었을 뿐”이라고 변명을 하는데, 그렇다면 실상이라는 것이 계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유재열씨에게 들은 거짓말을 근거로 하여 만든 것이라는 증거가 될 것이다. 더욱이 유재열씨가 낳은 아이가 이만희 교주라면 스스로 이단 출신임을 고백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유재열씨는 현대종교의 인터뷰에서 이만희 교주가 누구인지 잘 기억조차 못하며, 이만희 교주가 자신에게 수없이 많은 편지를 보내 함께 일하자고 하였으나 거절하였다고 말한다.
더욱이 신천지에서 두 증인이며 두 감람나무라고 주장한 홍종효씨는 자신을 자칭 예수라고 주장한 이단중에 하나이며, 더욱이 2012년에 죽었다. 자신을 자칭예수라고 하는 자가 어떻게 두 증인이 될 수 있는가? 또한 홍종효씨는 이만희 교주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만희 교주에게 거짓말을 한다고 하면서 “당신이 어떻게 증인이 될 수 있는가”라고 주장한 적도 있었으며 그 편지가 공개되었다.
계시록 2-3장의 실상해석에서 이만희는 일곱교회라고 하는 실명의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다고 주장하며 그 일곱 사람의 이름을 열거하는데, 두 증인이며 두 감람나무라고 불렸던 홍종효씨는 이만희 교주에게 반박하는 질문의 편지를 공개하고 있는데, 이만희 교주가 밧모섬이라고 주장하는 반포아파트에서 언제 일곱사람에게 편지를 썼느냐고 반문을 하고 있으며, 방송에서는 그 당시 일곱명의 사람들은 모두 죽거나 없었는데, 받을 사람이 없는 어느 교회, 어느 누구에게 편지를 썼는가라고 반문을 하고 있었다.
또 이만희 교주가 주장한 성경의 실상인물들의 이름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미 죽었거나 도중에서 계속 바뀌었다. 이런 황당한 주장들이 과연 계시를 받은 실상이란 말인가? 신천지 이만희 교주는 자신의 실상에 대해 공청회를 통하여 검증을 받을 자신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