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의 황당한 비유풀이 – 창조론
이인규
1) 천지창조에 대한 신천지의 황당한 비유풀이 :
신천지는 어떤 곳인가? 과연 성경대로 믿는 곳인가?
그들은 창세기의 창조기사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내용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즉 성경의 창세기는 신천지와 이만희를 예언한 비유와 상징적인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비유풀이와 짝풀이를 가르쳤던 이유가 바로 이러한 해석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목적이다.
신천지에서 처음 성경의 비유풀이를 배운 사람들은 신천지의 이런 비유풀이에 대해서 “앞뒤가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라고 평가하며 재미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비유풀이는 그렇게 오해할 수 있는 부분적인 구절만을 선택적으로 인용하는 억지 짜맞추기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교회의 평신도들이 평소에 성경공부를 했거나, 정통신학적인 공부를 교회에서 조금이라도 배웠다면, 그 누구도 신천지의 비유풀이에 절대로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즉 신천지의 주장은 태초에 하나님이 만드신 ‘빛’은 이만희라는 비유풀이이며 첫째날부터 일곱째날은 모두 기독교와 이만희가 만든 신천지장막교회의 비교라는 것이다. 이만희가 직접 쓴 <천국비밀계시>라는 책과 <성도와 천국>이라는 책에서 그 내용을 직접 살펴보자.
– 창세기 1장을 아담 이전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창세기를 기록한 사람은 모세로 그는 아담 이후 약 2,500년경 사람이다. 그가 기록한 5경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보고 듣고 깨닫는 마음을 허락하지 아니하셨고(신 29:4) 초림때 오신 예수님도 창세로부터 감추인 비밀을 드러내시되 비유로만 말씀하셨고(마 13:35) 다만 때(그)가 되면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를 것을 약속하시고 승천하셨다(요 16:12~14, 25). 이와 같이 창세기 1장은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인간의 심령과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한 창조의 원리를 기록한 것으로 육에 속한 자연계의 창조를 빙자하여 비유와 비사로 오늘날까지 감추어 놓았던 것이다……. 창세기 1장을 표면적인 문자에 매여 육적인 창조라고 고집하는 주장은 과학적, 논리적, 현실적, 상식적으로 모순 투성이며 이러한 주장은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그릇된 성경관을 갖게 되는 요인만 될 뿐이다.(이만희, 천국비밀계시, 426-427)
2) 신천지의 단어풀이 :
신천지는 단어비유풀이를 통하여 하늘은 ‘목자 혹은 장막’으로 해석하고, 땅은 ‘성도’로 해석한다. 즉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天地)는 기독교의 목자와 성도라는 것이다. 그 기독교가 타락하고 범죄하여 흑암이 왔기 때문에 성령이 빛(이만희)을 찾아 세상을 운행하셨다는 것이다.
– 땅은 흙으로 된 사람을, 하늘은 지도자와 장막을 말하는 것이다. 그곳 선민의 장막에 선민들과 함께하시던 하나님이 떠나가시니 공허요 빛되시는 하나님의 성령이 새같이 날아 왔다가 떠나갔기 때문에 그 장막은 흑암한 것이다.(이만희, 성도와 천국, 42)
– 뿐만 아니라 계시록 17장에서도 많은 물(바다)을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라고 하셨으니 본문의 수면은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셨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처음 하늘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한 후 빛을 찾아 이 세상에 두루 운행하셨다는 뜻이다.(이만희, 성도와 천국, 43)
너무나 황당하고 기가 막힌 해석을 일일이 설명과 비판을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신천지가 성경을 비유풀이로 가르치는 이유와 목적이 바로 이것이며, 성경을 마음대로 다른 의미로 해석하기 위함이다. 다만 한가지 너무 무식한 주장이 있어서 그것을 밝혀 보자.
“하나님이 신은 수면 위를 운행하시느니라”(창 1:2)를 이만희 교주는 하나님이 빛(이만희)을 찾아 세상을 운행하였다고 주장을 한다. 물을 말하는 ‘수’는 히브리어 ‘마임’인데 성경에서 526번을 사용되었는데 거의 대부분이 문자적인 ‘물’(water)을 의미한다. 물론 ‘물’이라는 단어가 간혹 비유적으로 사용되었을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기록된 ‘물’이라는 단어가 모두 ‘세상’을 비유한다는 해석은 너무나 황당한 자의적 해석이므로 말할 가치를 못느낀다. 성경에서 ‘물’이라는 단어 대신에 ‘세상’을 대입하여 보면 성경이 얼마나 황당하게 되는지 곧 알게 될 것이다.
더욱이 ‘운행한다’에 대해서 이만희는 아마 무엇인가 찾아 헤메고 돌아다니는 모터보트나 수상비행기를 연상하는 모양인데, 히브리어 ‘라하프’는 그런 뜻이 아니라, ‘알을 품다, 날개치다, 흔들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공동번역은 “휘돌고 있었다”로 표준새번역은 “움직이고 계셨다”로 번역하였고, 현대인의 성경은 “활동하고 계셨다”로 번역하였다.
다시 말하면, ‘운행하다’를 뜻하는 ‘라하프’는 “모터 보트나 경비행기와 같이 무엇을 찾아 돌아다닌다”는 뜻이 아니라, 마치 새가 보금자리에서 알을 품으며 날개짓을 하는 ‘작은 움직임’을 뜻하는 용어이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창 1:2을 포함하여 세 번이 사용되었는데 신 32:11에서는 독수리가 날개를 “너풀거리다”로 사용되었으며, 렘 23:9에서는 “뼈가 떨린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즉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에서 작은 움직임으로 계속 활동하셨다는 것은 독수리가 알을 품는 것을 연상시키며, 즉 성령께서 새 생명의 잉태를 위하여 창조사역에 동참하셨다는 뜻이다. 이만희 교주는 그저 한문으로만 해석하여 ‘운행한다’는 단어를 성령께서 이만희 교주를 찾아 온 세상을 헤메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으니 웃지 못할 일이다. 이만희 스스로가 자신이 쓴 책을 읽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지 한번 묻고 싶다.
다른 번역성경은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공동번역] 땅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것도 생기지 않았는데,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 그 물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
[표준새번역]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현대인의성경] 지구는 아무 형태도 없이 텅 비어 흑암에 싸인 채 물로 뒤덮여 있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에 활동하고 계셨다.
다음 신천지의 책들은 결국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모든 성경이 이만희 교주의 출현을 위한 예언적인 기록이라는 것이다.
– 위의 참조에서 본 바 수면은 바다 곧 세상을 두고 하신 말씀이며 빛은 진리의 소유자를 말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빛(진리)을 찾으시는 이유는 처음 하늘이 흑암(무지)하였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나라 장막 백성이 배도하여 멸망받아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나라가 되었기 때문에 그 심령이 밤이 된 선민을 깨우쳐 돌이키게 하기 위해 진리의 소유자인 빛을 찾으시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세상 나라가 되어버린 선민의 장막에서 한 진리의 소유자를 찾으시는 것은 타락한 아담의 세계에서 노아를 택함 같고 노아 때 비둘기가 바다에서 감람나무 한 잎을 찾은 것과 같으며 부패한(세상이 된) 예루살렘의 선민에게서 예수님을 택함과 같다(눅9:35). 하나님께서 어두운 세상 가운데서 한 빛 곧 진리(말씀)의 소유자를 찾으시니 이때부터 세상에는 빛과 어두움 곧 빛(낮)의 자녀와 어둠(밤)의 자녀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이만희, 천국비밀계시, 432-433)
– 첫째 날에 빛과 같은 목자를 택하고 둘째 날에 그 목자의 장막을 창조하는 것을 알린 말씀이다. 다음은 궁창을 만들어 위의 물과 아래의 물로 나뉘게 한다는 말씀에 대해 알아보자.이 말씀은 하나님이 떠난 오랜(깊음) 흑암세계인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 목자(빛)를 하나 택하시고 또 세상 중에 새 하늘 장막을 창설하신 후 하나님의 택한 목자가 진리의 말씀으로 진리와 비진리 곧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성경)과 세상 사람의 지식(사이비=주석)의 말을 갈라 심판한다는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진리의 소유자와 비진리의 소유자 곧 알곡과 가라지를 가른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택한 목자(빛)가 있기 전에 누가 이일을 하겠는가? 흑암 속에 있는 자들이 누구를 심판할 수 있겠는가? 이 일은 빛되신 참 목자와 새 하늘 장막이 창조되므로 시작되는 일이다.(이만희, 천국비밀계시, 436)
– 첫째 날에는 2절에 본 바 혼돈, 공허한 땅과 흑암한 하늘이 있었다. 이것은 처음 하늘과 땅이 흑암으로 끝났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일 후 빛과 같은 목자가 출현하므로 둘째 날과 세째 날에 2절의 하늘, 땅과 구별되는 새로운 하늘과 땅이 생겨났으니 이것이 참조에서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다. 그리고 이 새 땅이 바로 세째 날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드러난 뭍이다. 또 이 뭍에서 바다물이 없어지게 되니 이것을 일컬어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고 한 것이다. 계시록 17장 15절에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무리를 많은 물이라 하였다. 이 많은 물이 계시록 12장과 13장에 본 바 하나님의 장막에 들어갔으니 그곳은 홍수가 난 것이 되고 이후 이들이 증거장막성전의 성도와 싸워 다시 바다로 쫓겨났으니 많은 물이 한 곳으로 모인 것이 된다. (천국비밀계시, 438-439)
3) 혼돈과 공허
이만희 교주는 창1:2의 ‘혼돈’에 대해서 “두가지 이상의 교리나 사상이 혼합된 것”이라고 정의를 하고 있다. 그러나 ‘혼돈’(the existing chaos)을 가르키는 히브리어 ‘토후’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영어로 without form 혹은 formless 로 번역되며 ‘형태가 없음’을 뜻한다. 즉 처음 창조 당시의 일정한 form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또한 신천지는 ‘공허’에 대해서 “원래부터 있었던 것들이 떠나간 상태”라고 정의를 한다. 그러나 히브리어 ‘보후’는 ‘비어있다’는 어원을 가지고 있으며, 영어로는 void로 번역된다. 문자적으로나 어원적으로 혼돈과 공허는 “아직 형태가 없는 비어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혼돈과 공허는 “아직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상태“로 해석하는 것이 전통적이며 보편적인 해석이다. 그래서 “아직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혼돈과 공허의 땅”을 하나님은 6일 동안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땅”으로 창조를 진행하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람이 거할 수 있도록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그 말씀에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45:18)
성경에서 ‘혼돈’(토후)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곳은 19곳이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이 ‘광야, 사막, 거친들’이라는 의미의 장소로 사용되었으며(신 32:10, 욥 16:18, 욥 12:24, 시 107:40등) 그 이유는 그 단어의 본래적인 의미가 사람이 살지 못하는 장소를 뜻하기 때문이다. 또 ‘헛된 일’이라는 의미로도 많이 사용되었는데(삼상 12:21, 사 29:21, 사 40:23, 사 41:29, 사 44:9) 그 이유는 ‘공허’라는 개념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 허공(욥 26:7), 빈 것(사 40:7), 무익(사 49:4)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또 ‘공허’(보후)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오직 세 번 사용되었는데, 모두 ‘혼돈’과 함께 사용되었다.(창 1:2, 사 34:11, 렘 4:23)
‘성도와 천국’이라는 책에서 이만희교주가 쓴 내용을 보면 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우리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으며, 이들의 궁색한 변명에 대해서 쓴 웃음만 나온다. 성경의 저자들이 한글로 성경을 썼는가? 다른 번역성경이나 영어성경, 특히 헬라어나 히브리어 원문으로 성경을 보면 신천지의 주장이 황당한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므로, 이만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성경이 히브리어나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할지라도 기록된 바 그 예언이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질 말씀이라면, 한국어로 번역된 성경의 말씀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대한민국 사람을 들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로 정확하게 기록했을 터이고, 또한 하나님이 기록된 말씀대로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성령의 역사를 믿는 성도라면 아멘으로 화답할 것이다.(이만희, 성도와 천국, 9쪽)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1절), 3절에서는 빛을 지으셨다.
빛을 만드셨다는 것은 그 전에 어두움만이 있었다는(빛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그 이후의 하나님의 창조는 사람이 거할 수 있는 환경을 계속 조성하신다. 즉 하나님께서는 물과 물을 나누시고, 물과 뭍을 나누시며, 달과 해와 별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식물(食物)을 위하여 열매와 채소등과 짐승들을 창조하신다. 이것은 창조가 엿새 동안에 진행 중이었다는 증거가 되며, 그러한 성경적인 증거는 많다. 하나님은 여섯째 날에야 비로소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여섯째 날이 되어서 그 지으신 모든 것이 완료되었다는 뜻이다. 또 창세기 2장1절에 가서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출애굽기 20장에서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출 20:11)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모든 것이 6일 동안에 진행되었으며 만들어진 것이다.
신천지는 빛이 떠났으므로 흑암이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창 1:2의 ‘흑암’은 빛이 떠나간 상태가 아니라 빛이 아직 없는 상태를 말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3절에서야 비로소 빛을 창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창 1:3-4). 즉 창 1:2의 흑암은 빛이 떠나간 상태가 아니라 아직 빛이 창조되기 이전을 뜻한다. 성경에서 어두움(darkness)이라는 단어가 때로는 악 혹은 사단을 뜻하는 경우도 있지만, 항상 그런 의미로 비유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문자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때로는 비유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문맥을 통하여 그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주께서 흑암을 지으셨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주께서 흑암을 지어 밤이 되게 하시니 삼림의 모든 짐승이 기어나오나이다”(시 104:20)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사 45:7)
만일 ‘어두움’이 사단과 악을 의미한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할 수 없다.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18)
신천지에서 가르치는 비유풀이는 이것 외에도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저울, 지팡이, 불, 향로, 빛, 등대, 물, 샘, 강, 짐승, 머리, 뿔, 꼬리, 피, 포도주, 감람유, 산, 인과 나팔, 돌과 우상, 생물과 바람, 부활, 신랑, 예루살렘, 이스라엘등등…. 이러한 단어풀이는 요한계시록을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해석하기 위하여 가르치는 예비적인 학습이 된다.
예를 들어보면 모든 비유를 이원론적으로 가르치는데, 씨도 하나님의 씨와 사단의 씨가 있다고 분류하듯이, 그릇도 하나님의 그릇과 사단의 그릇이 있으며, 저울도 하나님의 저울과 사단의 저울이 있고, 불도 하나님의 불과 사단의 불이 있다고 분류하여 가르친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을 신천지의 진리로, 사단의 것을 기독교의 비진리로 비유하여 이것을 계속적으로 세뇌시키고 있다. 이러한 주장을 증거하기 위하여 인용하는 성경구절은 거의 부분적인 구절이거나 혹은 억지로 해석되는 구절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