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길자는 하나님어머니가 아니다

  • 5월 22, 2015

                                            장길자는 하나님어머니가 아니다

        

                                                                                                                                                  이인규


하나님의 교회에서 1985년 안상홍이 죽고 장길자가 하나님어머니가 되었다. 서울교회 전도사였던 그녀는 남편도 있고 자녀도 있다. 과연 그가 하나님어머니일까?

장길자1.PNG

  

(1) 장길자가 새 예루살렘과 신부인가?

새 예루살렘과 신부, 여자들의 수건문제 해석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안상홍이 직접 쓴 책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교회에서 발간된 동일한 제목의 책에는 아래 내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교인들이 보면 큰 일이 나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아래 부분을 모두 삭제하여 원본과 모자라는 페이지 수로 책자를 발행하였습니다.

        

그 머리말에는 이 소책자를 발행하게 된 것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말썽꾸러기, 즉 성경을 곡해하고 광신적 행동을 하는 자들을 막기 위함이요, 또는 엄XX의 발행한 책들의 오류를 해명하는 것과 변함없는 우리 하나님의 교회 진리를 대강 증거하기 위함입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실상은 이렇습니다.

안상홍 생전에 엄XX이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인이 지금 징길자와 똑같이 자신을 새 예루살렘이며 신부라고 주장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안상홍은 그 여인을 비난하기 위하여 새 예루살렘과 신부, 여자들의 수건문제 해석이라는 책을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책의 내용을 살펴 보겠습니다.

7장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우리 어머니다.

(21 1-2)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XX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이 자기라고 정신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 자기들의 주장하는 성경절에 4:22-26 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 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 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라한 이 말씀을 가지고 엄XX은 하늘에서 내려온 어머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XX은 생각하기를 하갈이 실지로 지상의 예루살렘이 되고 사라가 실지로 하늘 예루살렘에 된 줄로 생각한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422-26절을 쓰게 된 것은 아브라함의 가정의 역사가 예언이 되는 것을 해명해 주신 것 뿐이다.

424절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였으니 옛 언약과 새 언약에 대한 에언으로써 하갈은 시내산에서 받은 모세 율법과 지상의 예루살렘으로 말미암는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하는 것이고 사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세우신 새 언약과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하는 것인바 곧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엄XX은 자기가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인데 자기가 지상에 내려왔다고 한다. 갈라디아서 4 22-24절의 예언대로 사라가 위에 있는 예루살렘인데 그 예루살렘이 엄XX이 되었다면 엄XX은 자기 아들하고 결혼한 셈이 된다. 왜냐하면 사라의 아들이 이삭이요 이삭은 또한 그리스도라고 하였기 때문이다.(3:16) XX은 그리스도의 어머니도 되고 그리스도의 신부(아내)도 된 셈이다. XX은 나를 눈 먼 이삭이라고 하면서 자기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 즉 사라라고 하니 결국 이삭, 아들하고 살겠다고 하니 이런 해괴망칙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17-18)

(필자 해설 : 하나님의 교회는 안상홍을 이삭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문제는 엄XX라는 여인이 주장하던 그것을, 현재 장길자가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본인과 토론을 한 전도사라는 사람은 XX는 가짜 영적부인이었고, 장길자씨는 진짜 영적부인이었으므로 경우가 다르다고 변명합니다. 과연 다를까요? 안상홍은 머릿말에서 이렇게 계속하고 있습니다.

전국에 계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여러분들의 큰 교육이 되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방자한 자들의 미혹에 걸리지 않도록 각별 조심하셔야 되겠습니다.

안상홍은 다시는 이런 방자한 자들의 미혹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라라고 말하는데, 장길자가 바로 동일한 주장을 한 자에 해당됩니다

XX는 자신을 신부라고 주장하였으며, 위에 있는 예루살렘, 사라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 예루살렘이 엄XX이 되었다면 엄XX은 자기 아들하고 결혼한 셈이 된다. 왜냐하면 사라의 아들이 이삭이요 이삭은 또한 그리스도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엄수인은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삭의 어머니)도 되고 그리스도의 신부(안상홍의 아내)도 된 셈이다. 엄수인은 나를 눈 먼 이삭이라고 하면서 자기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 즉 사라라고 하니 결국 이삭, 아들하고 살겠다고 하니 이런 해괴망칙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이삭을 그리스도라고 하며 안상홍이라고 가르칩니다.

사라가 이삭의 어머니이므로 엄XX이 자신을 사라라고 한다면 이삭의 어머니가 되므로, 안상홍의 어머니가 된다는 뜻입니다.

또한 그가 자기 아들하고 결혼한 것이 된다라고 말한 것이 무슨 뜻입니까?

XX라는 여인이 이삭이며 그리스도라고 하는 안상홍과 살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안상홍 자신이 해괴망칙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자칭 이삭인 안상홍)와 현재 살고 있는데, 자칭 이삭의 어머니 사라라고 주장하니까…. 부인도 되었다가 어머니도 되는 이 족보가 해괴망칙한 것이라고 안상홍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장길자가 자신을 사라라고 주장한다면, 안상홍의 비난을 그대로 적용시켜 보기 바랍니다.

안상홍이 스스로 해석한 새 예루살렘과 신부는 하나님의 교회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하나님인 안상홍씨가 새 예루살렘과 신부를 성도라고 한 성경해석이 틀렸다고 주장할른지요?

– 16장 자기 혼자만 신부라고 한다

…… 그러면 문제의 신부가 말씀하시기를(2217) 여기 신부는 (219-10)의 신부의 신부와 같은 것만은 사실이다.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였으니 어린 양의 아내는 성도들이다. (197-8)을 보면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였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공동번역에는 그 분의 신부는 몸단장을 끝냈고 하나님의 허락으로 빛나고 깨끗한 모시옷을 입게 되었다 이 고운 모시옷은 성도들의 올바른 행위이다하였다. 그런고로 그 신부는 (219-10)의 예언과 같이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을 말하는 것이고 새 예루살렘은 곧 144,000 성도들을 말하는 것이다. 144,000 성도들은 다 신부요, 신부는 새 예루살렘성이다. (41-42)

참고로 현대종교와 하나님의 교회 재판에서 아래와 같이 판결이 되었습니다.

영적 부인 엄XX과 원고 교회의 분파와 관련된 부분에 대하여 보건대, 을 제 14호증의 1, 2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면, XX이 원고 교회의 전도사로 활동하면서 자신이 영의 어머니라는 주장을 하다가 제명된 사실, 안상홍 사후에 부산을 중심으로 하는 새언약 유월절 하나님의 교회와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원고 교회 간에 장길자를 영의 어머니라는 지도자로 추대하는 문제로 다툼이 있어 분리된 사실이 있으므로, 결국 위 부분을 허위의 사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현대종교 판결문)

안상홍이 직접 신부와 새 예루살렘을 성도라고 말하는 내용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자 예수이며 보혜사성령인 안상홍의 주장도 틀렸다고 하는지요? 그런데 안상홍이 죽자, 장길자가 그 예루살렘 그 신부가 되어 버리며, 성도가 아니라고 주장하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4장의 성경본문을 알기 쉽게 요약하여 제가 정리하여 보았습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장길자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하갈과 사라는 율법과 복음을 풍유적으로 비유한 것으로 장길자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성경구절일 뿐입니다.

하 갈

사 라

단어의 뜻

방황하는, 도피하는

왕비, 고상한 여인

언약의 비유

율법

복음

어머니의 비유

종의 어머니

자유자의 어머니

출생의 비유

육체를 따라 난 자

성령을 따라 난 자

성도와의 관계 비유

계집 종의 자녀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

예루살렘의 비유

땅의 예루살렘

하늘의 예루살렘

유업의 비유

유업을 얻지 못함

유업을 얻음

결론적인 비유

구원을 받지 못하는 율법의

언약에 묶여 있는 자녀

구원을 받는 복음의

약속을 받은 자녀

4:24-31에 대해서 설명을 드립니다.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 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4:24-31) 

갈라디아서 성경본문은 예루살렘이 장길자이다라는 뜻을 말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상식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면 성경을 잘 읽어 보십시요.
424절은 비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비유라는 단어는 풍유”(알레고레오)라는 뜻입니다. 즉 사라와 하갈의 사건에 대해서, 바울이 이 사건을 신학적인 진리로 예증하기 위하여 풍유적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즉 바울은 이 여자를 두 언약(구약과 신약)으로 상징적인 비유를 하였습니다. 하갈은 (율법)이고 사라는 (복음)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과 복음에 대해서 갈라디아교인들에게 이해하기 쉽도록 비유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교회는 유대인들이 많았습니다.
그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음 외에도 할례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날과 달과 절기를 지켜야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하여 율법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율법주의를 영어단어로 갈라디안이라고 부릅니다.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는 구원을 얻지 못하며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이것이 갈라디아서의 결론이며 핵심입니다.
즉 바울이 율법의 역할을 하갈로 비유한 것이며, 하갈은 육신적인 생각을 따라 상속자를 낳으려고 하다가 결국 상속자가 아닌 종을 낳았다는 뜻입니다. 즉 율법을 따르면 율법의 종이 되고만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육체의 어머니(율법)는 하갈이며, 약속의 어머니(복음)는 사라가 됩니다.

계집 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4:23)

즉 지상의 예루살렘(시내산)은 하갈을 상징하며, 하늘의 예루살렘은 사라로 비유한 것입니다. 하갈은 종의 어머니이고 사라는 자유자의 어머니가 됩니다.

이 하가(하갈)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4:25-26)

다시 말하여 자유자의 어머니 사라를 상징하며, 계집종은 종의 어머니 하갈을 상징합니다. 이스마엘은 계집종 하갈에게 낳고, 이삭은 자유를 누리는 여자 사라에게서 낳았다는 뜻입니다.

안증회에서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우리 어머니니라”(4:26)을 장길자로 비유하는 것은 그야말로 상대할만한 가치조차 없는 주장입니다.

정리와 요약을 하자면, 하갈(율법)은 육체의 어머니, 종의 어머니, 지상의 예루살렘을 상징하며, 사라(복음)는 약속의 어머니, 자유자의 어머니, 하늘의 예루살렘을 상징한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라고 불렸습니다. 그것을 비유하여 바울은 사라를 복음을 따르는 자유자의 어머니라고 비유했고, 하갈을 율법을 따르는 종의 어머니로 비유한 것입니다.

마치 하와를 산 자의 어머니라고 비유했던 창세기의 비유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를 한번 전체적으로 정독하여 보시면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율법과 복음을 비교하고 있으며, 우리의 구원은 율법을 행함이 아닌, 믿음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시종일관 강조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따르는 우리 자유자인 그리스도인들이 있을 곳은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라는 뜻입니다. 성경본문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4:31-5:1)

왜 이런 비유를 하였느냐면, “예루살렘이라는 헬라어가 여성명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성경번역본을 보면 그 뜻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공동번역] 그러나 하늘의 예루살렘은 자유인이며 우리 어머니입니다.
[표준새번역] 그러나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종이 아닌 여자이며,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현대인의성경] 그러나 하늘의 예루살렘은 자유인이었던 사라를 의미하며 그 예루살렘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KJV] But Jerusalem which is above is free, which is the mother of us all.

[NIV] But the Jerusalem that is above is free, and she is our mother.

예루살렘이 어머니이므로 예루살렘이 장길자라는 성경해석은 교리를 짜맞추려는 황당한 해석일 뿐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누구에게 물려주고 다른 사람이 물려 받는 직분이 아닙니다.

살아서는 하나님이 아니었는데, 1985년에 안상홍이 죽은 다음에 여자하나님으로 임명되는 직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자존하여 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불변하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시편 102:27 주는 여상(如常)하시고라고 말씀했는데, ‘여상(如常)하시다는 말은 동일하시다‘(the same)는 뜻입니다.

말라기 3:6, “나 여호와는 변역지[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 야고보서 1:17에는, “그는[하나님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 22장의 신부가 장길자인가?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22:16-17)

위 성경본문에서 신부가 장길자라고 안증회는 주장합니다.

과연 그렇게 해석하여야 하는지, 아무리 눈을 씻고 성경을 읽어 보아도 과연 신부가 장길자를 이야기하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문선명은 자기 부인을 어린양의 신부라고 했고, 정명석은 자기 첩을 어린양의 신부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또 모방해온 것입니다.

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성경해석학의 가장 기초는 비유와 상징을 해석할 때에는 다른 성경에도 그와 같은 용례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는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신부는 구원받은 성도 혹은 교회를 상징합니다. 성경에서 아내가 성도 혹은 교회로 비유된 적이 있는지 살펴 봅니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남자로 교회를 아내로 비유하여,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예수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비유하여 설명하였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5:22-25)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5:31)

또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성도들을 처녀로, 남편을 그리스도라고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11:2)


또한 구약에서도 하나님을 남편, 이스라엘을 신부로 비유하는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54:5)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62:5)

또 계시록에서도 어린양과 혼인잔치를 하는 성도들이 신부로 비유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to him)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to her)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19:7-8)

(3) 성령과 신부가 생명수를 준다?

[개역성경]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2인칭 명령문)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2인칭 명령문)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3인칭)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3인칭) 하시더라

하나님의 교회의 이 성경해석도 갈린기둥을 엇갈린 기둥으로 착각하여 십자가로 해석하는 것과 비슷한 주장입니다. 다른 번역성경과 영어성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신부가 성도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생명수를 성도들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신부는 성도나 교회가 될 수 없다고 하나님의 교회는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신부가 생명수를 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공동번역(개정)] 성령과 신부가 오소서!”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는 사람도 오소서!” 하고 외치십시오. 목마른 사람도 오십시오. 생명의 물을 원하는 사람은 거저 마시십시오.

[표준새번역(개정)] 성령과 신부가 오십시오!”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듣는 사람도 또한 오십시오!” 하고 외치십시오. 목이 마른 사람도 오십시오. 생명의 물을 원하는 사람은 거저 마시십시오.

[현대인의성경] 성령님과 신부가 오소서!”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도 오소서!” 하고 말하십시오. 그리고 목마른 사람도 오십시오. 누구든지 생명의 물을 마시고 싶은 사람은 와서 마음껏 마시십시오.

[KJV] And the Spirit and the bride say, Come. And let him that heareth say, Come. And let him that is athirst come. And whosoever will, let him take the water of life freely.

[NIV] The Spirit and the bride say, “Come!” And let him who hears say, “Come!” Whoever is thirsty, let him come; and whoever wishes, let him take the free gift of the water of life.

“Let him take”라는 영어는 그에게 (생명수를) 마시게 하라는 뜻이며, 신부가 생명수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은 4번의 초청이 있습니다. 앞의 두 개의 초청이고 2인칭동사로서 직접화법이며, 뒤의 두개의 초청이며 3인칭 동사로서 간접화법입니다.

즉 초청한 사람이 생명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라고 초청한 것이며, (온 사람 중에서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마시고 싶은 사람이 마시도록 하라는 것입니다.(Let him take)

물론 그리스도에게로 오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생명수는 그리스도가 주십니다.(21:6)

그러나 신부와 성령은 생명수를 주는 주체가 아니라, “오라고 초청하는 것입니다.

목마른 사람은 오라 생명수를 마시게 하라는 초청은 신부와 성령의 말이 아니라 사도요한의 말입니다. 다른 번역본을 보면 따옴표가 있으므로 곧 알 수 있습니다

(4) 계시록21장의 신부가 누구인가?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21:2)

안증회는 이 예루살렘이 장길자라고 합니다. 너무 유치하여 웃을 수도 없습니다.

또 본문은 예루살렘 성 = 신부라는 뜻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이 예비한 것(준비한 것) 단장한 신부와 같다는 비유법입니다. “같더라라는 단어는 영어로는 as 로 번역되었고, 헬라어로는 호스라고 하는 종속접속사가 사용되었습니다. “…처럼, …같이라는 뜻입니다.

성경본문을 잘 보십시요…. 예루살렘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성을 상징적으로 말합니다. 새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가 들어갈 처소(천국)를 말합니다.

그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서 성경은 구원받을 성도가 들어갈 수 있는 처소적인 개념(천국)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2111절부터 그 성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기록됩니다….. 열두 문, 열두 기초석등등….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21:26-27)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12:22-24)

219절에서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로 보여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예루살렘성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신부가 예루살렘성이라고 주장하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21:11-23)는 예루살렘성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예루살렘성에 들어오는 성도들을 보여줍니다.(21:24-27)

즉 예루살렘성은 성도들이 거할 장소이며, 그 안으로 들어오는 성도들(21:24-27)이 곧 어린양의 신부라는 것을 사도요한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 21:24-27)

새 예루살렘과 신부가 성도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바로 안상홍이었습니다.

정통신학적인 견해는 신부는 성도(교회)가 맞지만, 새예루살렘은 천상적인 교회, 성도들이 구원을 받는 처소를 말합니다. 일만이천스타디온은 2,200Km입니다. 우리나라보다 더욱 넓은 면적의 처소이며 서울에서 부산이 약 500Km 라는 것을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장길자가 새예루살렘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교회는 장길자의 원래 몸체가 가로 세로 높이가 동일한 정육면체(21:16)인지 설명좀 하여 주시겠으며, 성도들이 들어온다고 했는데(21:26-27), 장길자에게로 들어 갑니까?

구원받을 처소인 하늘의 예루살렘에 대한 묘사를 신부라고 해석하는 하나님의 교회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곳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어린양의 신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예루살렘성을 사도요한에게 보여 준 것입니다. 바로 그 안에 있는 성도들이 신부입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 19:7-8)

사도요한은 아내의 세마포가 곧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친절하게 해석하여 주고 있지 않습니까?

(5) 하나님의 형상이 남녀를 말하는가?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장길자씨를 하나님어머니라고 주장하는데, 그 성경적인 근거를 물으면 창1:26-27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1:26-27)

너무나 유치하여 웃을 수도 없는 성경해석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남자와 여자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1:26)

그라고 그 창조된 사람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무식한 성경해석을 증거하기 위하여, 예를 들어 봅시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키 큰 사람과 키 적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이 문장을 해석하여 보십시오.

위 문장이 하나님은 키가 크고 키가 작은 두 분이라는 해석이 됩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한 사람이 키가 크고 작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남자와 여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His image” 이며, 3인칭 단수이기 때문입니다. 엘로힘은 복수명사이지만, 그 단어가 인칭대명사로 사용될 때에는 남성단수명사, “He”가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창조하다”(바라)라는 단어도 3인칭 남성단수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형상이 남자와 여자를 뜻한다면 성경적인 모순이 생기게 됩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1:15, 고후4:4)이라고 기록되어있는데, 하나님의 교회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면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님이 남자와 여자의 형상이라고 해석하여야 합니다. 또 장차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고전15:49, 3:21))고 성경은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이 우리가 장차 남자와 여자가 된다는 것을 뜻합니까?

오히려 정반대가 되는 성경구절은 있습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고전11:7)

(6) 안상홍이 장길자를 하나님어머니로 지목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재림예수라고 하는 안상홍은 지금 경북 양산시 석개공원묘지 내 5단지 42라인 12에 있는 묘지에 묻혀 있습니다. (현대종교, 교회와 신앙 참고)

물론 안상홍은 황모씨라고 하는 다른 부인이 있었고, 그당시 서울교회 전도사였던 장길자도 김모씨라고 하는 다른 남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는 안상홍 사후에 장길자와 안상홍이 결혼예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증거로 영적혼인을 하였다고 주장하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남편이 따로 있고, 부인이 따로 있는 사람들이 결혼예복을 입고 사진을 찍고 영적혼인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 교인들 중에서 결혼한 남자들이 계시면 생각해 보십시요, 부인이 다른 남자와 결혼예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영적혼인이었다고 합니다. 이해가 갑니까? 하나님의교회 교인들 중에서 결혼한 여자들이 계시면 생각해 보십시오, 남편이 다른 여자와 결혼예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으며 영적혼인이라고 합니다. 이해가 갑니까?

영적혼인이라는 것을 물질적인 사진으로 증거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있었습니다. 결혼예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는 것은 영적혼인이 아니라 물질적인 증거를 남기기 위한 실제혼인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계기로 하나님의 교회는 장길자를 인정하지 못하는 3개의 분파로 분열되게 되었습니다.

교회와 이단(발행인, 이대복)은 그 당시 회의록(1985. 6. 2)을 입수하여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안상홍 사후에 장길자의 호칭을 영모로 할 것인지 어머니로 할 것인지를 토론하다가, 영모라는 이름은 박태선 전도관과 동일하니 그 이름을 부르지 말자고 하며 공식명칭은 어머니로 하되 교회 외에서는 때와 처지와 형편에 따라 적절히 부르자고 결정되었습니다.

본인과 토론한 하나님의 교회 전도사는 어머니라는 호칭을 때와 처지와 형편에 따라 적절히 부르자는 내용이 무슨 뜻인지 설명을 해달라고 질문을 해도 답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임시총회에서 하나님어머니를 만드는지요?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남편이 있고 부인이 있는 사람들이, 다른 남편과 다른 부인과 결혼예복을 입고 사진을 찍어, 그것을 증거로 하나님어머니로 지목되는 것을 믿는지요? 장길자는 남편과 자녀가 있는 유부녀이었으며, 서울 하나님의 교회의 전도사였습니다.

언제 하나님어머니가 되었는가 하면, 안상홍 사후에 결혼예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증거로 임시총회를 통하여 임명(?)되었습니다.

영적인 혼인을 왜 예복을 입고 합니까? 그리고 왜 각자 다른 배우자와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았나요?

그 전에는 남편이 김XX라는 사람이었고, 장길자는 서울교회 전도사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는 장길자가 창세기부터 선재하여,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로 존재했다는 것입니까? 창세기가 1985년 이후에 기록되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