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포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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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살,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활동하는 데이비드 차 |
그에게는 얼굴이 없다. 아니 얼굴을 좀처럼 내보이지 않는다. 요즘처럼 ‘신상털기’가 유행인 때 데이비드 차의 얼굴 사진 하나 올라온 사이트를 찾지 못했다. 얼굴뿐 아니라 그가 어느 교회를 다니고 어떤 교단 출신이고 본명은 무엇인지 역시 찾지 못했다. 네이버, 구글, 다음 등에서 검색해봤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렇다고 그가 유명인사가 아닌 것도 아니다. <마지막 신호>(예영)라는 소위 베스트셀러의 작가다. 국내외에서 공개적으로 많은 집회를 인도했다. 동영상이 많이 올라갔지만 카메라 앵글은 그의 얼굴을 외면하고 있다.
그가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목소리로만 만난 데이비드 차는 달변가다. 그는 2013년 모 교회 집회에서 자신을 31살이라고 소개했다. 달변의 그가 메시지를 전한다.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고 따르고자 하는 열정이 돋보인다.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며, 천국 티켓을 받았다고 안도하며 맘대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며 왜곡된 신앙이라고 질타한다. 회개하지 않은 신앙의 방만함을 지적한다. 이것이 그의 메시지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책을 찾고 메시지를 듣는지도 모른다.
반면, 그의 매우 비뚤어진 관점을 보여주는 대목들도 적지 않다. 시중에 떠도는 음모설을 수집해서 짜깁기 한 내용을 ‘주님의 특별한 영적 계시’인 것처럼 포장한 점, 집회 중에 한국교회·선교사 등을 매우 타락한, 그래서 회생이 불가능한 타락한 집단이나 인물처럼 매도한 점(그래서 새로운 군대들로 한국교회를 채워야 한다는 주장으로 연결시킨다), 1992년 시한부종말론자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주장 패턴을 반복하는 것(직통계시, 적그리스도의 등장, 짐승의 표=베리칩) 등은 그를 건전하게 바라 볼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인규 대표(평신도이단대책협회, 세계한인기독교이단대책연합회 연구위원)의 글을 시작으로 데이비드 차의 문제점을 정리해서 공론화해보고자 한다. 이런 시도가 한국교회를 조금더 건강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데이비드 차측의 대표성있는 반론이 들어온다면 언제든지 환영한다.<편집자주>
평신도이단대책협의회 이인규
유럽연합(EU)이 과연 계시록의 열뿔일까? :
유럽연합이 열뿔이라고 주장하며 10개국이 되면 종말이 온다고 주장하던 이들은 EU가 27개국이 되자, 또 주장을 바꾸고 있다. 이제 그들은 666이 베리칩과 프리메이슨에 의한 세계단일정부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신앙적 기준은 기록된 성경이 아니라, 시중에 떠도는 헛소문일 뿐이다.
데이비드 차는 유럽연합의 대통령을 세계단일정부의 대통령이라고 착각을 하는데, 유럽연합의 President는 유럽 27개국 전체를 다스리는 대통령이 아니라, EU 정상회의의 상임회장을 말한다. 헤르만 반 롬푸이가 현재 EU 정상회의의 상임회장으로 선출되었는데, 그 직분은 주로 대외관계를 대표한다. 각 가입 국가는 자체적인 대통령이나 수상이 있다. UN 사무총장이 전세계를 대표하고 다스리는 직분이 아닌 것과 같다.
유럽연합이 열뿔이라는 주장은 유럽연합의 시작부터 있었고 유럽연합이 열뿔이 되면 종말이 온다고 주로 이단교회(구원파)들이 주장했지만 EU는 현재 27개국이 되었다. 계시록에서 말하는 10뿔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유럽연합의 창립목적은 다음과 같다.
1. 유럽 내 단일 시장 구축과 단일 통화 실현으로 유럽의 경제, 사회 발전 촉진
2. 공동방위정책을 포함하는 공동외교안보정책을 수립·이행하여 국제무대에서 유럽의 이해 제고
3. 유럽시민권제도를 도입하여 회원국 국민의 권리와 이익보호 및 ‘자유·안전·정의’를 공동 영역으로 확대 발전
4. 통합 성과인 공동체법 및 관행의 집적 유지 및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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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U 상임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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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U 대통령으로 표기한 데이비드 차의 마지막 신호 |
열 뿔, 바벨론 :
‘열 뿔’은 구약의 다니엘서와 신약의 계시록에 나타난다.
사도요한이 환상을 통하여 본 계시록의 “열 개의 뿔이 있는 짐승”은 다니엘서와 깊은 관련이 있다. 다니엘이 환상에서 본 것은 열 개의 뿔이 달린 네 번째 짐승이 인자가 왕국을 차지할 때까지 전쟁을 일으켜 성도들과 싸운 것(단7:7-8, 13, 21-22)이었다.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네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단 7:7-8)
다니엘이 본 네 마리의 짐승이 상징하는 것은 바벨론, 메대-바사, 헬라, 로마제국이다. 특히 다니엘서 7장8절이 말하는 열 개의 뿔은 네 번째 짐승인 로마가 가진 것이다. 성경에서 ‘뿔’은 세력을 상징한다. 또 천사가 스가랴에게 보여준 “뿔”도 이스라엘을 대적하였던 실제적인 지상의 국가와 같은 세력을 의미하였다.
“내가 눈을 들어 본즉 네 뿔이 보이기로 이에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내게 대답하되 이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헤친 뿔이니라(슥1:18-19)
그러나 사도요한을 통하여 본 계시록의 열 개의 뿔을 가진 짐승은 로마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니엘서에서 열뿔을 가진 넷째 짐승은 분명히 로마인데, 계시록에서 열뿔을 가진 짐승은 일곱머리를 가졌다는 점에서 다니엘과는 다르다. 또 계시록에서 열 뿔은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한 열 왕을 말하지만, 계시록이 기록될 당시에 로마는 이미 국가로서 존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다니엘과 계시록의 시대적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우리는 인식하여야 한다.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계 17:2).
열뿔은 반그리스도적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다. 이들이 짐승과 연합하는 지상국가의 통치자들이며, 그들이 짐승과 더불어 권세를 잡고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세력을 잡는다. 그러나 그 기간은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멸망당하게 될 것이다(14절). 열 뿔은 어느 특정한 나라나 어느 단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를 반대하는 총체적인 반기독교적인 세력을 열 뿔로 상징적인 표현을 하는 것이 타당한 해석이다. 특히 열뿔을 유럽연합이라고 비유하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재차 반복하지만 현재 유럽연합의 소속국가는 10개국이 아니라 27개국이다. 계17장에서 ‘열 뿔’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간 동안 계속하리라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계 17:9-12)
다니엘은 열 뿔로 비유된 열 왕이 지극히 높으신 자와 대적한다고 말하고 있다. 구약에서는 사탄을 추종하는 세력들을 하나의 실체로 묶어 적그리스도나 적메시아라는 단어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그러나 심판이 시작된즉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끝까지 멸망할 것이요”(단7:24-26).
본문은 종말적으로 음녀의 멸망과 그들의 분열, 배반이 모두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임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때로는 악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기도 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은 사탄의 세력이 멸망을 당하리라는 예언이 성취될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또 네가 본바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계 17:18).
계시록의 바벨론은 미국이나 가톨릭 등 어느 특정한 지역이나 단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의 총체적인 세력을 뜻한다고 본다. ‘땅의 임금들’이라는 소유격 복수명사가 사용된 것이나 ‘큰 성’(폴리스, 도시)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을 볼 때에 어느 특정한 하나의 도시나 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결국 적그리스도가 다스리는 총체적이고 영적인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으며, 특히 짐승과 열뿔이 음녀를 죽인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사탄의 나라가 종말적으로 분열되어 패배를 당하는 것을 뜻한다.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계 17:15-16)
본문은 서로 연합하여 예수를 대적한 열뿔과 짐승이 결국 패전함으로서, 내분에 의하여 음녀와 분열하게 됨을 말한다. 이것은 결국 음녀가 같은 편이었던 열 뿔과 짐승에게 철저히 멸망당하며 배신당하여 파괴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하여 인간적인 측면에서 준비하고 경계한다고 하여 피할 수 있는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뜻한다.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저희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니라”(계 17:7)
666(육백육십육) :
데이비드 차는 계시록에 등장하는 666 짐승의 표를 ‘생체칩’, 소위 ‘베리칩’이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첫째, 베리칩이 성경에서 말한 것과 동일하게 모든 사람에게 삽입할 준비가 돼 있으며 둘째, 이 칩을 받지 않으면 물건 거래를 할 수 없게 될 것이다는 것이다. 또한 베리칩이 삽입된 사람에 대한 모든 정보는 EU 본부에 ‘짐승’이라 불리는 슈퍼 컴퓨터에 저장·관리 된다고 주장한다. 먼저 성경 말씀부터 읽어보고 반증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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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 차는 베리칩을 666 짐승의 표로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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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륙이니라.”(계 3:15~18).
1) 먼저 계13장 5절에서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 다 죽이게 하더라”는 구절을 보자. 다시 말하여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 죽는다는 것이다. 즉 666이라고 하는 표를 받은 자는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 – 즉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2) 이 표는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는 것이다. 그 수는 짐승의 수이며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라는 것이다.
[공동번역] 그리고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을 표시하는 숫자의 낙인이 찍힌 사람 외에는 아무도 물건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바로 여기에 지혜가 필요합니다. 영리한 사람은 그 짐승을 가리키는 숫자를 풀이해 보십시오. 그 숫자는 사람의 이름을 표시하는 것으로서 그 수는 육백육십육입니다.
[표준새번역]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사람, 곧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을 나타내는 숫자로 표가 찍힌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팔거나 사거나 할 수 없게 하였습니다. 여기에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각이 있는 사람은 그 짐승을 상징하는 숫자를 세어 보십시오. 그 수는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데, 그 수는 육백육십육입니다.
[현대인의성경] 그 표를 갖지 않은 사람은 아무것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했는데 이 표는 짐승의 이름 또는 그 이름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지혜가 필요합니다. 총명한 사람은 그 짐승의 숫자를 세어 보십시오. 그 숫자는 사람의 이름이며 666입니다.
[KJV] And that no man might buy or sell, save he that had the mark, or the name of the beast, or the number of his name. Here is wisdom. Let him that hath understanding count the number of the beast: for it is the number of a man; and his number [is] Six hundred threescore [and] six.
[NIV] so that no one could buy or sell unless he had the mark, which is the name of the beast or the number of his name. his calls for wisdom. If anyone has insight, let him calculate the number of the beast, for it is man’s number. His number is 666.
성경은 666이 짐승의 이름이며 그 이름을 상징하고, 그 숫자는 사람의 이름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여 사도 요한이 짐승이라고 표현하는 사람의 이름이 누구였을까? 그 이름의 숫자의 합이 666 이라는 것이다.
베리칩이 666 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첫째, 베리칩이 사람의 이름인지 혹은 어떤 물질의 이름인지를 가장 먼저 설명하여야만 한다. 둘째, 베리칩을 삽입하지 않으면 매매를 할 수 없게 되는, 일어나지도 않은 장래 일을 막연하게 공상적으로 추측해서는 안된다. 셋째, 성경에 의하면 666은 짐승을 경배하여 살아남은 자들에게 해당되는 것으로서 현재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넷째가 가장 중요한 것인데, 사도요한이 계시록을 쓴 이유는 성도들에게 믿음을 지키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즉 성경 66권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그 본질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어떤 물질을 거부하여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내용은 성경에 단 한번도 없는 내용이다.
성경을 잘 살펴보면 “인”(印)에 대해서 두가지 유형이 나타난다. 첫째는 하나님의 인, 하나님의 이름을 이마에 인 받은 사람이고, 둘째는 짐승의 인을 이마에 받은 사람이다.
이러한 용어가 나타난 유래가 무엇일까? 유대인들은 원래 유목민이었으며, 기르는 가축을 구별하기 위하여 소유자의 이름을 낙인했다. 그것은 가축들의 소유자를 구별하기 위함이다. 즉 인침이라는 것은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소유, 짐승의 인을 받은 사람은 그 소유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표현이지 인체에 낙인을 찍거나 칩을 삽입해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인을 받았다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 혹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뜻이며, 성령을 받은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즉 “짐승의 인을 받았다는 것”도 사탄의 영, 미혹의 영을 받은 것을 의미한다. 아래 성경은 계시록에서 하나님의 인과 짐승의 인으로 구별되는 구절들이다.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 사만 사천이니.”(계 7:3-4)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계 9: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하니.”(계 20: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계 22:4)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계 14:1)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이마에 예수 혹은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실제로 낙인되거나 ‘예수칩’이나 ‘성령칩’이 삽입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한 표현은 성령의 보증을 인치심, 즉 하나님의 소유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상징적인 표현을 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아래 이마에 받는 표는 실제로 받는 표나 베리칩으로 해석이 될까?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계 14:9).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계 13:16-17)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계 17:5)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계 19:20)
데이비드 차가 짐승의 표를 베리칩이나 바코드라고 해석을 한다면 성령의 인에도 동일한 원리를 적용시켜서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녀도 어떤 물리적인 표시를 이마나 오른손에 받는 것이라고 해석하여야만 한다. 그러나 ‘소유’를 의미하는 ‘표’라는 단어를 베리칩이나 바코드 등 실제로 눈에 보이는 특수한 표시로 해석하는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구원론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나타나게 된다. 데이비드 차의 <마지막신호>도 그런 오류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불과 십수년 전만 해도 컴퓨터가 666 이라는 견해가 난무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유명한 대형교회 목사는 666을 은행 지로시스템이라고 했다. 매매를 못하게 한다는 내용으로 666이 바코드라고 하는 주장과 은행카드라고 하는 주장도 있었다. 과연 예수를 믿고 거듭난 사람이 은행카드를 사용하거나 바코드의 물건을 사면 구원을 잃는다고 생각하는가? 그러한 주장은 단순한 개인적인 견해 차이나 실수가 아니라, 구원론에서 심각한 오류를 초래한다는 것이 문제다.
현재 베리칩의 발달은 고가의 애완견이나 치매에 걸린 노인들의 행방을 추적하기 위한 장치로까지 사용되고 있으며, 최근에 성범죄니 범죄성이 많은 위험한 사람들의 행방을 추적하기 위한 시도로도 사용될 계획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중대하고 위험한 질병(예를 들면 심장병, 고혈압 등)에 걸린 사람의 생체 상태를 수시로 파악하기 위한 장치로도 사용할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신앙과 불신앙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성경은 666에 대해서 짐승의 수, 이름의 수라고 말하며, 그것이 곧 사람의 수라고 말한다.
이 견해에 대해서 (1)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숫자라는 견해 (2)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숫자라는 견해의 두가지가 있다. 가장 보편적인 견해는 (1)번의 견해로서 ‘로마제국’을 뜻한다는 견해와 ‘네로황제’를 뜻한다고 보며, 일차적으로 이 견해는 분명히 옳다. 네로황제라는 히브리어 (네론 카이사르)를 모두 합하면 그 숫자가 666 이 된다. 또 네로를 라틴어로 표시하면 (NERON) 그 숫자의 합이 616이 되는데, 어떤 사본에는 616으로 기록된 구절도 발견되기 때문에 이 주장이 가장 신뢰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을 과거적이며 문자적인 해석만으로 국한시킬 수 없기 때문에 (2)번의 경우로 적용시켜 상징적인 개념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예를 들면 완전한 숫자 7에서 하나가 모자라는 6이라는 숫자를 셋을 나열함으로서 짐승의 숫자로 표시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하는 견해다. 왜냐하면 예수의 이름을 합산하면 888이 되기 때문이며 사도요한은 이러한 생각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666에 대해서 오히려 너무 많은 해석적인 견해들이 있어서 혼란을 가중시켜 왔다고 하여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네로황제뿐 아니라 로마제국, 혹은 도미티안을 라틴어로 합산하여도 666이 나온다고 한다. 사도요한의 시각은 네로뿐 아니라 로마제국과 도미티안황제도 짐승으로 보였을 것이다. 물론 이 견해가 가장 보편적인 견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계시록의 상징적인 단어를 임의적으로 하나의 과거적인 해석으로만 단정하여 정의를 내릴 수는 없다.
가장 중요한 점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성도들에게 이 숫자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숫자로서, 단순히 물질적이거나 외형적인 숫자로 해석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자의적으로나 임의적으로 가감하지 말라고 사도요한이 말하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예수를 믿고 거듭난 성도들에게 이러한 666은 큰 의미를 갖지 않으며, 베리칩으로 해석할 하등의 근거가 없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 1:13)
지식이 더하리라 :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단 12:4)
데이비드 차는 180-181쪽에서 지식이 정보량, 혹은 생체칩이라고 주장한다. “지식이 더하리라”라는 말이 정보량을 말하는가? 본문에서 지식은 정보량이 아니라 다니엘서의 예언과 같은 지식을 뜻한다. 본문의 내용을 보면 데이비드 차와 같은 미혹의 종말론을 뜻할 수 있다. 혹간은 “빨리 왕래하며”를 최근의 교통수단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해석은 무지의 소산이다
[공동번역] 너 다니엘아, 이 말씀을 비밀에 붙여 마지막 그 때가 오기까지 이 책을 봉해 두어라. 많은 사람들이 읽고 깨쳐 잘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갈팡질팡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표준새번역] 그러나 너 다니엘아, 너는 마지막 때까지 이 말씀을 은밀히 간직하고, 이 책을 봉하여 두어라. 많은 사람이 이러한 지식을 얻으려고 왔다갔다 할 것이다.”
[현대인의성경] “다니엘아, 너는 이 예언을 책에 기록하여 인을 쳐서 봉하고 마지막 때까지 잘 간수하여라. 그 때에는 많은 사람이 지식을 쌓으려고 이리저리 왔다갔다할 것이다.”
[KJV] But thou, O Daniel, shut up the words, and seal the book, [even] to the time of the end: many shall run to and fro, and knowledge shall be increased.
[NIV] But you, Daniel, close up and seal the words of the scroll until the time of the end. Many will go here and there to increase knowledge.”
천국복음의 전파와 멸망의 가증한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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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나비루 효과라는 게 나타날 것이라는 데이비드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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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4:14 -15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데이비드 차는 179쪽에서 “핍박과 복음이 세계에 전파됨을 예언한다”고 주장한다. 또 세계선교협회는 2020년까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며, 2020년 이후에는 선교에 대한 계획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적지 않은 선교단체에서 이 본문에 대해서, 인간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면 그 때에야 비로소 종말이 온다는 해석을 한다. 그러나 이 성경은 ‘전파되리니’(be preached)라는 수동형으로 사용되고 있다.
[공동번역] 이 하늘 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 모든 백성에게 밝히 알려질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끝이 올 것이다.”
[표준새번역] 이 하늘 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서, 모든 민족에게 증언될 것이다. 그 때에야 끝이 올 것이다.
[현대인의성경] 이 하늘 나라의 기쁜 소식이 온 세계에 전파되어 모든 민족에게 증거가 될 것이니 그제서야 세상이 끝날 것이다.
[KJV] And this gospel of the kingdom shall be preached in all the world for a witness unto all nations; and then shall the end come.
[NIV] And this gospel of the kingdom will be preached in the whole world as a testimony to all nations, and then the end will come.
본문은 (사람이 주어가 되어) 사람이 복음을 세상 끝, 즉 어떤 특정한 장소를 임의로 지칭하여 그곳까지 능동적으로 전파하게 되면 그 때에 종말이 오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주어가 되어) 복음이 세상 끝까지 전파되면 하나님이 정하신 그 때에 종말이 온다는 뜻이다.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 것에 대한 여부는 하나님께서 직접 결정하실 문제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 16:15)
본문은 어느 지역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말한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은 결국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뜻이 명백하다. 그런데 이 땅끝을 ‘예루살렘’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발견하는 게 무슨 특별한 마지막 때의 신호를 체득한 것처럼 여기는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약한 주장이다.
왜곡된 세대주의자들이나 하는, 마태복음 24장 15-16을 인용하며 예루살렘이 세계단일정부의 수도가 되어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성전에 설 것이라며 이상한 종말을 부추기는 행위를 데이비드 차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 지어다”(마24:15-16)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스러운 것’은 단 9:27, 11:31, 12:11의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뜻한다.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은 주전 168년 수리아왕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BC175-164)가 예루살렘 성전의 번제제단에 세운 우상(제우스신)을 가르킨다. 그런데 마태복음 24장15절은 과거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장래 일을 지칭하고 있으므로, 그 글을 읽는 독자에게 다니엘이 예언했던 에피파네스의 성전 훼손 사건을 상기시키면서, 장래에도 그러한 일이 다시 나타날 것을 깨닫게 하려는 것으로 본다. 이는 주후 70년에 티투스에 의한 로마군대가 예루살렘 성전을 공격하고 성전을 파괴한 사건이라고 해석한다.
마태복음 24:15-16의 예언은 일차적으로 주후 68-70년의 예루살렘 멸망을 말한다고 보며, 멸망의 가증스러운 것은 성전 제단 위를 차지한 이방종교의 우상을 말한다. 천국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때에 끝이 온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예루살렘의 종말을 말한다고 본다. 그 증거로 누가복음은 평행구조에서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눅 21:20)라고 기록하고 있다.
“많은 독자가 종말의 표적을 찾느라 이 장을 열심히 살펴보지만 이 장의 많은 부분 특히 이 대목의 주제는 (그 어떤 의미에서든) 너무나 쉽게 종말이 임박했다고 결론 짓는 것은 위험하다”(Richard. T. France, IVP 성경주석, 1286쪽)
위 내용을 우리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현재 우리는 마24장을 과거의 사건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예언의 다중적인 성취’라고 부른다. 물론 마태복음의 이 예언은 일차적으로 볼 때는 분명히 AD 68-70년경에 이루어진 사건이다. 우리는 이 사건을 예수님의 재림과 종말적인 예언으로 적용하여 해석할 수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첫째, 이러한 사건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에 대한 임의적인 추측을 할 수 없으며, 둘째, 이러한 사건이 언제 이루어질지에 대해서 우리는 “모른다”라고 말하여야만 한다. 다시 말하여 위 성경구절에 대해서 그 사건과 시간에 대해서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추측으로 단정을 하여, “복음이 서진하여 한국과 중국을 거쳐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면 종말이 되어 예수가 오신다”고 해석을 하는 것은 명백한 오역이며, 더욱이 마24:32의 무화과나무의 잎사귀에 대한 비유를 1948년 이스라엘 독립으로 해석할 어떤 근거도 성경은 말하지 않는다. 더욱이 이러한 구절을 인용하여 지금이 마지막 시대라고 하며 임박한 종말론을 강조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36)
무서운 일이 테러인가? :
데이비드 차는 눅 21:11을 인용하면서 종말의 징조중 하나인 ‘무서운 일’에 대해 ‘테러’도 그 중의 하나일 것이라 설명한다(178쪽). 그러나 눅 21:11의 ‘무서운 일’은 인간의 테러나 지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폭력이 아니라, 하늘에서 나타나는 무서운 일과 징조를 말한다.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눅 21:11)
[공동번역] 곳곳에 무서운 지진이 일어나고 또 기근과 전염병도 휩쓸 것이며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굉장한 징조들이 나타날 것이다.
[표준새번역] 큰 지진이 나고, 곳곳에 기근과 역병이 생기고, 하늘로부터 무서운 일과 큰 징조가 나타날 것이다.
[현대인의성경]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무서운 일과 하늘에 큰 징조들이 나타날 것이다.
[쉬운성경] 큰 지진이 있을 것이며 여러 곳에서 질병과 기근이 있을 것이다. 하늘로부터 무서운 일과 큰 징조가 있을 것이다.
[KJV] And great earthquakes shall be in divers places, and famines, and pestilences; and fearful sights and great signs shall there be from heaven.
[NIV] There will be great earthquakes, famines and pestilences in various places, and fearful events and great signs from heaven.
성경에서는 무서운 일을 ‘하늘로부터’ 있는 일이라고 설명하는데 데이비드 차는 이를 지상에서 일어나는 ‘테러’와 같은 일로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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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를 통과한 니비루 행성. |
데이비드 차는 하늘의 큰 징조에 대해서 “지구 온난화로 인한 각종 재해가 일어나는 가운데 2012년 태양계 나비루효과, 태양폭풍에 의한 과학자들의 예견 내용이 있다”라고 말한다 (178쪽).
데이비드 차가 어디서 봤는지 모르겠지만 ‘나비루 효과’라는 말은 없고 어떤 효과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나비루’가 아니라 ‘니비루’라는 어떤 행성이 지구에 접근한다는 가설을 말한다. 이 행성이 지구를 3600년마다 접근하는데, 2012년 12월21일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며 그날이 마야의 달력의 마지막 날짜와 같다고 하는 주장이었는데 이미 NASA의 전문가들은 황당한 주장이라고 공식적으로 부인한 내용이다. 그런데도 데이비드 차는 과학자들이 ‘나비루효과’를 말했다고 주장하면서 178쪽에서 “필자는 절대로 2012년을 종말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설명을 첨가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2012년 12월이 지난 2013년 5월이다. 니비루 행성과 관계되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에 대해 그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신사도운동의 영향과 직통계시 :
데이비드 차의 책에는 직통계시나 주님의 현현과 같은 신비주의, 세대주의와 신사도운동의 용어들이 나타난다. 이것은 그의 사상의 근거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예수께서 찾아오셔서 전하라고 하셨다는 직통계시)
– 낮고 낮은 자에게 찾아오셔서 이러한 숨겨진 계획을 알게 하시고 전하라 하시니 두렵고 떨리지만 한편 감사하고 영광스럽다. 다만 이 책을 통하여 지금의 시대적 상황을 분별하길 바란다(7-8쪽)
(적그리스도의 총체적인 공격 앞에 전략과 방법을 미리 공개하는 것이 주의 길을 예비한다는 주장)
– 이 책은 단순한 흥미와 음모설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곧 시작될 적그리스도의 총제적인 공격 앞에 그들의 전략과 방법을 미리 공개함으로써 잠들어 있는 크리스천들을 깨우며, 마지막 대전쟁을 준비하여 하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주의 길을 예비하는 데 있다.”(23쪽)
(주님이 주신 다양한 영적계시를 보여주셨으며, 주님이 주신 장면을 적는다는 주장)
– 이 글을 쓰면서 참 다양한 영적계시를 보여 주셨다. 영적계시는 참으로 조심스럽고 위험한 부분이 있다. 기도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이 주신 장면을 적는다.(233쪽)
(신사도운동이 사용하는 마지막 추수)
– 그 물이 닿는 곳마다 땅이 회복되었으며, 마지막을 준비하는 십자가 용사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이들은 마지막 추수를 준비하며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길 기도하며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들이다.(233쪽)
(백투예루살렘과 같은 주장)
– 이때는 동방에서부터 이스라엘까지 길이 열리는 시기인 것이다(233쪽)
(미국이 순교의 열매를 맺기 힘든 곳이며, 주님이 보여주신 장면이라는 주장)
– 또한 큰 바벨론 미국은 너무나 순교의 열매 맺기 힘든 곳임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는 사단이 참으로 악하게 주의 자녀들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이는 2009년 12월 초에 책을 쓰고 쉬는 와중에 주님께서 보여주신 장면이다.(235쪽)
(주님에게 질문하고 답변하는 장면)
– “주님 왜 이 피는 색깔이 탁한가요?”라고 물었고, 주님이 “이 피는 지식으로 순교의 필요성을 깨닫고 비자발적인 순교자들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234쪽)
(백투예루살렘과 종말론)
– 그리하여 세 개의 검이 합쳐져서 거대한 순교의 길이 나고 있었으며,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스라엘을 향해 나아갔다. 그들이 이스라엘에 도달했을 때쯤 새 예루살렘이 내려옴을 보았는데, 이는 천년간 함께 왕노릇한 새 땅이었다. 그들은 기쁨에 감격하여 주님의 나라로 들어갔다 (234쪽)
(전신갑주는 등에 보호막이 없다는 비성경적인 주장, 전신갑주는 완전무장이라는 뜻이다)
– 주님이 주신 전신갑주를 보면, 등에 보호막이 없다. 이는 로마시대의 갑옷을 보면 더욱 잘 알 수 있다. 따라서 주의 군사가 마귀와 대적하여 뒤를 돌아보면 우리의 보호막을 잃어버리게 된다. (235쪽)
(신사도운동이 주장하는 오순절의 종말적인 성취, 군사를 추려내는 과정이 있다거나 전문적 군사훈련이 있다는 비성경적인 주장)
– 하나님은 이제 이 세상을 다시 한번 흔들 군대를 모으고 계신다. 주님의 군사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모으시는 병사들은 오순절 때의 제자들보다도 하나님의 능력을 더 확실하게 보여줄 것이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이미 모집된 병사들에 합쳐진 당신들은 엘리야의 영으로 굳게 세워질 것이며 그 목적은 다시 한번 주님이 오시는 길을 곧게 하는 것이다. 새로 모집된 군사들이여, 권하노니 성경을 부지런히 공부하고 삶의 모든 구석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라. 또한 사소한 것에서부터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연습하라. 영적훈련의 시간이 부족하지만, 삶에서 먼저 주님을 구한다면, 당신은 상상할 수 없을 전도의 여러 방법을 통해 쓰임을 받을 것이다. 택함을 받는 자들은 성경에 나오는 용사들이다. 당신은 전문적 군사훈련으로 영적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이것 또한 알아야 한다. 이 기드온의 군대에 적합하지 못한 자들을 ‘추려내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기드온의 삼백 용사처럼 준지된 자는 마지막 때의 전투에서 주님의 군사로 쓰여질 것이다.(236-237쪽
(생체칩을 받지 않아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구원관)
– 무엇보다도 편리함으로 찾아오는 생체칩을 세상 누가 뭐라해도 받지 말고 승리하길 간절히 바란다(237쪽)
(신사도운동이 주장하는 신부의 개념)
– 그러나 성경은 온전한 사랑이 올 때 두려움은 없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은 두려움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하며 신부로 준비된 자들에게 다가오는 환란은 두려움이 아니다.(241쪽)
(신사도운동이 주장하는 7개의 산, Seven-Mountain)
– 많은 사람들이 종말(End-Time)만을 생각하지만, 우리는 고난과 환란을 넘어 주님과 통치할 그 사대를 준비해야 한다. 바로 지금 기도하며 허락된 믿음의 분량만큼 7개의 산들의 개로운 리더를 주님은 찾고 계신다(244쪽)
(신사도운동이 주장하는 7개 영역)
– 기도하며 응답받고 순종하며 행동해야 한다. 그럴 때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듣게 된다. 7개 영역에서의 회복,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마지막 날에 심판과 함께 회복하실 일이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247쪽)
(주님과 직접 대화)
– “주님 왜 이렇게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인가요?” 기도로 주님께 물어 보았다. “아-, 계약할 사람을 네가 만나야 내가 일하지 않겠니?” (246쪽)
결론:
음모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사건, 영국 다이애너 왕세비 사건, 심지어 9.11 테러사건들의 과거의 국제적인 몇몇 사건을 특정 단체들의 음모였다고 주장하지만, 구체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다. 또 기후협의회나 그린피스를 사회주의 운동이라고 하는 주장, 지구온난화와 같은 과학적 이론을 주장하는 단체를 실제와 다른 목적을 가진 곳으로 보는 견해, 통일교의 단체를 UN의 통합종교단체라고 주장하는 황당함, 생체칩을 통하여 인류의 의식을 조종하고 통제한다는 공상과학적인 음모, 록펠러가 UN 단체를 만들었다는 주장, 가톨릭이 히틀러와 손을 잡고 유대인들을 학살했다는 주장, 가톨릭이 생체칩을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을 죽이는 살인집단으로 언급된 것, 프리메이슨이 세계경제와 유착되었다는 주장···· 등은 저자가 얼마나 그런 부류의 책들에 심취하여 그러한 내용을 모방하여 왔는지, 또 평소에 허황된 공상적인 생각을 가졌는지 충분히 증거하여 준다.
결국 오래 전부터 있었던 공상적인 주장들을 다시 모방하면서 그것이 마치 주님의 특별한 계시였다고 주장하며, 신사도운동이 주장하는 신비주의적인 성향의 용어들을 표현하는 것이 데이비드차의 <마지막 신호>의 특징이다. 이러한 책들에 대해 각 교단이 ‘불건전 책자’ 등으로 공식 규정해 특히 정서가 예민한 청소년들이 이러한 영향을 받지 않도록 경고와 금지를 할 것을 촉구하는 바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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