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보존학회와 킹제임스성경

 

                                                                                                                                                           평이협 이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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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보존학회라는 단체가 있다. 그 교회는 성경침례교회라고도 하는데, 보수적이며 전통적인 성서침례교회와는 전혀 다른 곳이다. 피터럭크만의 펜사콜라신학교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으며, 킹제임스 사이버신학대학을 운영하며,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라는 신학지를 발간하고 있다.

그 단체와 교회의 이송오목사라는 사람이 한글킹제임스성경을 번역하여 출간하였는데, 그곳의 특징은 첫째킹제임스만이 참된 성경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매우 배타적이며 공격적인 단체이다.

본인은 말씀보존학회와 성경침례교회의 몇명과 인터넷 상에서 직접 토론을 하여 본 적이 있는데, 이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것이 그 특징이다.

 

그들의 주장을 결론적으로 정리하자면, 오직 자신들의 교회, 오직 자신들의 교리와 신학, 오직 자신들이 번역한 성경, 오직 자신들의 신학교만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으로서, 이들과 토론을 하다보면 이들은 사랑과 은혜의 기독교인과는 거리가 먼, 무슨 극단적으로 치우친 사상적인 단체나 조직같은 생각이 든다는 것이 솔직한 필자의 심정이었다.

 

이들은 한국 교회가 사용하는 개역성경(NIV영어성경)이 변개된 사단의 성경이라고 주장하며, 오직 킹제임스성경만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참성경이라고 주장하여, 이미 예장합동, 예장통합을 비롯한 많은 교단에서 이단으로 공표되었으며, 많은 곳에서 경계의 대상으로 보는 곳이다.

 

특히 말씀보존학회 (http://www.kjv1611.co.kr/)라는 곳에서 한글킹제임스 성경에 대해서 머리말을 쓰고 있는데 그들의 성격을 알아보기 위하여 그 일부를 인용하여 본다.

 

- 초대 교회 이후로 사탄은 수많은 거짓 신학자들을 일으켜서 성경을 변개시켜 놓고, 그 성경이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속여 왔다. 사탄의 추종자들이 한결같이 변개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변증하며 그들의 교회와 신학교에서 가르쳐 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신약 교회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들은 변개된 성경과 변개되지 않은 성경을 놓고, 어떤 성경이 참다운 하나님의 말씀이냐고 할 때, 늘 변개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다. (말씀보존학회 한글킹제임스성경 서문)

 

마치 자신들이 하나님의 성경원본을 갖고 있는 것처럼, 킹제임스 외의 모든 성경번역본을 변개된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으며, 다른 교단의 모든 신학도 변개된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자신들의 킹제임스성경을 보존된 성경이라고 부르고, 개역성경을 포함한 모든 성경은 변개된 성경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즉 한국교회 대부분이 보는 개역성경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단이 변개시킨 것이라는 것이다.

또 미국의 펜사콜라 신학교(원장: 피터 럭크만)만이 올바른 신학교이며, 킹제임스 사이버신학대학만이 유일한 신학대학이며, 영어킹제임스성경과 이송오목사 자신이 번역한 한글킹제임스(흠정역)만이 참성경이라고 주장한다.

 

교회와 신앙에서 인터뷰를 한 내용을 보면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이송오목사 혼자서 번역하였다고 한다.(교회와 신앙 952월호)

그 인터뷰에서 한글킹제임스에도 오류가 있다고 하더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송오목사는 하나님말씀을 파괴하려는 자들의 주장이라고 대답을 한다.

다시 말하자면 자신이 혼자 번역한 킹제임스 한글 성경만이 유일하게 보존된 성경이라는 주장이니, 아마 자기 자신의 번역을 온전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이송오목사의 생각에는 다른 사람이 번역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사단이 변개한 것이고, 오직 자기가 번역한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있는 듯 하다.

 

게다가 교리도 독선적이고 배타적이어서, 자신의 교회의 교리와 신학(극단적 세대주의)만이 참신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개역성경을 보는 모든 교회는 사탄의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논리라면 한국 기독교의 복음은 그동안 주님의 복음이 아니라 사탄의 복음이었단 말이 되므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시간을 내어 그들의 홈페이지를 살펴 보았다.

솔직히 그들의 황당무계한 주장들과 그들의 이상한 교리상 문제점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이 들 정도이었다. 지면상 그들의 주장에서 대표적인 것을 선택하여, 특이한 몇가지 문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비판하여 보기로 한다.

 

(1) 개역성경에서 없음이라고 되어있는 부분이 고의적 누락 혹은 삭제인가?

(2) 루시퍼와 계명성: 킹제임스의 루시퍼라는 번역이 올바른 번역인가?

(3) 요한일서 57절의 삼위일체 본문의 삽입에 대해서

(4) 성경의 역사와 본문비평

(5) 킹제임스 성경과 NIV 성경

(6) TR 본문과 킹제임스 성경

(7) 성경침례교회의 교리

 

(1) 개역성경에서 없음이라고 되어 있는 부분이 고의적인 누락 혹은 삭제인가?

 

말씀보존학회의 이송오목사는 국민일보 기자와  인터뷰에서 신약전서 개역 한글판2천여개의 고의적인 누락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 예를 들면 개역성경 사도행전837절을 보면 [없음]이라고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킹제임스 한글성경 사도행전837절에는 "빌립이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합당하니라고 하니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나이다 하더라"라고 기록되어있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개역성경이 수많은 성경구절을 [없음]이라고 하며, 고의적으로 누락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독선이 아니라, 거의 무식에 가깝다. 37절은 번역자들이 실수 혹은 고의적으로 빠뜨린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권위있는 헬라어 사본에 37절의 구절이 기록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없음]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마치 이것을 사탄이 감추어 놓았으며, 이송오목사 자신이 찾은 듯이 주장하면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사본상에 누락되어 있는 것을 말씀보존학회는 개역성경이 마치 고의 누락을 시킨 것처럼 주장을 하고 있는데, 똑같은 방법으로 대응하자면 이송오목사는 이 구절을 고의로 삽입시킨 것이 아닌가?

 

예를 들면, 마태복음 1721절을 찾아보면, 본문이 있어야 할 곳에 본문은 없고, 그 대신에, 괄호가 쳐있고 그 괄호 안에 "21절 없음"이라는 말이 들어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난외주 1번을 보라는 지시가 있다.

그 지시를 따라서 난외주 1번을 보면, "어떤 사본에, 21[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가 있음" 이라고 적혀 있다.

1811절도, 본문이 없고 난외주에 "어떤 사본에는, 11[인자가 온 것은 잃은 자를 구원하려 함이니라]가 있음" 이라고 적혀 있다.

다시 말하여 킹제임스성경의 모태가 되는 몇몇 사본만이 원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물론 킹제임스 영어성경은 다른 사본에서 번역된 것이므로 또하나의 성경번역본이 될 수는 있다. 우리는 현존하는 여러 성경사본과 번역본을 서로 비교하므로서, 보다 원문에 충실하여질 수가 있는 것이다.

필자는 컴퓨터 성경 프로그램(S회사)을 사용하는데, 한글 성경 3가지와 영어성경 2가지(킹제임스와 NIV)를 서로 비교하며, 물론 헬라어나 히브리어 원문도 참고한다.

이렇게 서로 비교하면서 보다 원문에 충실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영어킹제임스는 훌륭한 성경번역본으로서 필자는 즐겨 참고하고 있지만, 그러나 한글 킹제임스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성경에 오늘날과 같이 장(Chapter)과 절(Verse)이 구분된 것은 훨씬 후대에 이르러서부터였다. 4세기의 것으로 알려진 바티칸 사본에는 가장자리에 장이 표시되어있었다. 물론 이 장은 지금 현재의 것과는 전혀 다르며, 이러한 장과 절은 발견된 사본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또 바티칸 사본과 더불어 권위가 있다고 하는 시내사본은 장 표시가 앞부분은 있지만, 어떠한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끝까지 계속되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의 장 절 구분은 카로의 위고(Cardinal Hugo de Caro)에 의해 13세기에 와서야 이루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장과 절의 구분이 16세기의 불가타(라틴어성경)에 채택되었고, R.나탄에 의해 1440년경에 히브리어 성서에도 채택되었다. 신약성서의 분절(分節) 깊이는 R.스티븐스의 1551년판 헬라어 성서에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이와 같이 성서의 장과 절은 독자를 위한 편의제공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므로, 번역본에 따라서 절이 다를 수도 있었다.

현재의 모습으로 장 구분을 한 이는 대체로 영국교회의 켄터베리 대주교였던 랭튼(Stephen Langton)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한편 스테파누스(Stephanus Robertus)는 신약성경을 절로 구분하여 1551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출판했다고 한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스테파누스는 파리에서 리용으로 가는 마상(馬上)에서 절을 나누었다고 하나, 신 구약성경 모두에 장절이 붙여져 처음 출판된 해는 1555년이며 스테파누스의 라틴역 불가타(Vulgata) 성경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성경은 1560년판 제네바 성경의 장절의 구분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예를 들어 발견된 사본 중에 권위가 있다고 하는 사본에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에 대한 본문 구절이 생략되어 있다고 가정하자.

이미 16세기 후대에 들어서서 장과 절이 분류되어 있으니, 그 장과 절에 대해서 사본 상에 그 구절이 없다면 당연히 없음이라고 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사본 상에 없는 것을 억지로 있다고 만들어 올리라는 것인가? 과연 없는 것을 없다고 하는 것이 고의 삭제나 누락인가? 말씀보존학회의 이송오목사는 아주 무지한 사람인가 아니면 고의로 억지주장을 하는 사람인가?

 

(2) 루시퍼와 계명성

 

성경침례교회의 박모라고 하는 사람이 어느날 인터넷을 통하여 다음 성경구절을 비난하고 나섰다.

이들의 주장과 이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면 이들의 주장이 얼마나 독선적이고 배타적인지 곧 드러나게 된다. 물론 킹제임스성경의 문제점은 이외에도 많지만 모두 다룰 수가 없으므로 본문과 요한일서 57절등 몇가지 대표적인 성경구절만을 다루어 보기로 한다.

 

개역성경: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14:12)

NIV: How you have fallen from heaven, O morning star, son of the dawn!

KJV: How art thou fallen from heaven, O Lucifer, son of the morning

 

킹제임스 성경은 이사야1412절의 계명성(NIVmorning star)을 루시퍼라고 번역하여 놓고, 오직 킹제임스만이 올바른 번역을 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예수만이 샛별인데(벧후1:19, 2:28). 그런데 왜 사단을 샛별(Morning star)이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계명성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헤렐"이며, 이 단어는 금성(Venus)의 별칭이다. 즉 히브리어 원문 그대로를 번역하면 계명성, 혹은 금성, 샛별이 정확하다.

샛별, 혹은 금성이라고 불리는 별은 이른 새벽에 빛을 유난히 발하는데, 그렇기에 새벽별이라고도 불리운다. 그래서 NIV 영어성경은 morning star라고 번역한 것이다.

다시 말하여, 이른 새벽에 다른 별보다 빛난다는 자체가 교만함을 의미하는 뜻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샛별이라고 번역하였다고 하여(실제 개역성경은 계명성이라고 번역했음) 예수님과 착각할 수 있다는 이상한 주장은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첫째, 우리는 이 본문에서 중요한 것을 놓치면 안된다. 이사야 1412절의 "계명성"은 일차적인 해석을 할 때에는 바벨론의 통치자를 말한다.

그러나 만일 그 단어를 천사장이라고 불리는 "루시퍼"라고 의역한다면, 그 단어는 유대적인 전승과 외경에서나 찾을 수 있는 천사장의 의미가 되므로서, 일차적인 의미로 교만한 바벨론의 통치자의 개념이 되어지지 못하므로, 일차적인 이사야 성경본문의 문자적인 개념의 전달이 애매모호하여 진다.

 

둘째, “루시퍼라는 단어는 전혀 성경에 언급되어지지 않는다.

루시퍼가 타락한 천사의 이름이라는 성경은 전혀 없으며, 단지 유대인들의 전승과 외경에 의한 것이다. 다시 말하여 성경외적인 전승에서 비롯된 성경해석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셋째, 이 헤렐(계명성)이 예수님을 말하는 샛별과 착각을 할 수가 있을까?

베드로후서의 기자는 "샛별""포스포로스" 즉 빛의 전달자로 말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설명하고 있다.(벧후1:19)

사도요한은 "광명한 새벽별""아스테르 프로이누스"라는 용어로써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2:28) 즉 원문상으로 보면 전혀 용어자체가 다르다.

이사야 14:12을 계명성이라고 원문 그대로 번역한다고 하여, 그리스도와 사단을 착각할 기독교인은 아무도 없다.

더욱이 루시퍼라는 단어는 빛을 발하는 자라는 의미의 라틴어로서, 오히려 그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였을 때에, 빛이 되시는 예수님과 혼동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말씀보존학회는 오히려 사탄을 빛을 발하는 자라고 번역하면서, 자신들의 번역이 옳다고 주장하는 셈이 된다. 이들의 주장을 들어보자....

 

- 영어KJV성경에서 라틴어의 "lux fero", "빛을 발하는 자"라는 뜻을 근거로 하여 "lucifer(루시퍼)"로 번역을 한 것이며 그렇기에 한글 킹제임스성경 사14:12절도 올바르게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라고 옳게 번역을 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킹제임스 말씀보존학회, 박00)   

 

그러한 논리라면 "빛을 발하는 자"라는 이상한 주장이 더 착각할 염려가 있는 것이다. 성경을 읽어 보면 ""은 오로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일 뿐이다.

어찌하면 사탄을 빛을 발하는 자라고 번역을 할 수 있는가? 오히려 별은 스스로 빛을 발하지 못하지 않는가?

 

예를 들어 보자.

성경에는 "누룩"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구절은 나쁜 의미의 "누룩"을 말한다.(8:15) 그러나 예수님은 "가루 서말의 누룩"을 확장되는 천국의 비유로 말씀하셨다. (13:33) 13장에서의 누룩은 확장되어진다는 의미로서 나쁜 의미가 아니다.

누룩이라는 단어가 모두 나쁜 의미로만 사용되어진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여자라는 단어는 모두 음녀와 같은 나쁜 의미로 해석을 하여야만 하는가? 성경에서 짐승은 모두 나쁜 의미로 사용되었는가?

 

넷째, 킹제임스는 왜 욥기 38:7에서는 천사들을 그대로 “morning stars” 라고 번역하였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여야만 할 것이다.

morning star 라는 단어는 혹시 예수님으로 착각되지 않는가?

 

그 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KJV: When the morning stars sang together.....

 

자신들은 천사를 새벽별(morning star)이라고 번역하여도 아무 문제가 없으며, 다른 사람이 새벽별로 번역하면 잘못이란 말인가?

 

다섯째, 미국 넬슨사의 New King James Version(킹제임스를 현대어로 번역한 성경, NKJV)을 보면 그 Lucifer 라는 단어 왼쪽에 조그맣게 t 자가 붙어 있다.

t 라는 글자는 무엇인가 하면 Verse Translation 의 약자를 말한다.

뉴킹제임스 영어성경의 open guide를 보면....

 

The verse translations provide synonyms, alternate translation, literal meaning, and information from the Hebrew and Greek.

 

라고 가이드를 하고 있다. 무슨 뜻인가 하면....

 

"verse translation 이란 헬라어나 히브리어로부터 정보나 문자적인 의미, 해석의 변경, 동의어를 제공하고 있다."

 

즉 그것이 뉴킹제임스성경의 장점이며, 특징이기도 하기도 하지만, 히브리어나 헬라어로부터 그 본 의미를 동의어, 해석변경 즉 의역. 문자적인 의미로 풀어서 해석되었을 때 그것을 t 로 표시한다는 뜻이다. 12절 바로 옆에는 이태리체로 <day star> 라고 주해석을 달고 있다.

킹제임스 옹호자들은 뉴킹제임스도 비난하며 부정한다. 오직 킹제임스 성경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며 다른 성경은 모두 사단이 변개하였다고 주장한다.

 

더군다나 라틴어 역본을 보고 번역하였으므로 옳은 번역이라고 주장하는 말씀보존학회의 주장은 성경사를 무시하는 무지 혹은 억지주장일 뿐이다.

 

(3) 요한일서에 대해서

 

킹제임스성경은 중요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요한일서 57절에 삼위일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구절을 삽입한 것이다. 그리고 그 구절이 없는 다른 성경을 변개된 성경이라고 하며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변개된 성경은 삼위일체를 완전하게 증명할 수 있는 구절을 통째로 제거해 버렸다. 뿐만아니라 6절의 끝 부분을 7절에 놓아 7절이 없어지지 않은 것처럼 속임수를 쓰고 있다.”(말씀보존학회, 보존된 성경과 변개된 성경의 비교)

 

개역성경: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요일5:7)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요일5:8)

 

[KJV] For there are three that bear record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Holy Ghost: and these three are one.(요일5:7) And there are three that bear witness in earth, the Spirit, and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se three agree in one.(요일5:8)

 

[NIV]For there are three that testify(요일5:7) the Spirit,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 three are in agreement.(요일5:8)

 

사실 삼위일체(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본질적으로는 하나이며 인격적으로는 셋이라는 뜻)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성경구절은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삼위일체를 성경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닌 것이, 삼위일체란 이론은 성경적인 논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기 때문이다.

본인은 지방교회와 토론할 때에 요일57절이 없이 충분히 양태론을 비성경적으로 증명하였고, 여호와의 증인과 토론할 때에는 요일57절이 없이도 단일신론을 비성경적으로 충분히 증거할 수가 있다.

 

이 성경본문에 대해서 오직 유일하게 킹제임스성경은 구체적으로 삼위일체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사본적인 증거로 볼 때에 이것은 킹제임스의 올바른 번역이라고 보기 어렵다. 요한일서 57절은 삼위일체 교리가 형성된 후에 극소수 몇개의 사본에서 인위적으로 삽입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 구절에 대해서 말씀보존학회의 설명을 보자.

 

- 이 구절은 난해구절이기에 앞서 "Johannine Comma"로 알려진 유명한 구절이다.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모든 영어 성경들은 7절을 완전히 삭제하였고 6절 하반부를 7절로 대체하였다(7절에 관한 필사본 증거들과 원문비평학적인 올바른 관점은 <성경대로믿는사람들> 통권 17, 18(938,9월호)"보존 VS. 변개"를 참조하시오. 특히 여호와의 증인들이 왜 이 구절을 그토록 싫어하는가를 주목하시오(말씀보존학회 주장)

 

본인의 체험으로는, 여호와의 증인을 비롯한 단일신론자와 지방교회, 베뢰아같은 양태론자들은 킹제임스의 이 구절을 절대로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호와의 증인들과 양태론자들은 킹제임스 성경을 예로 들면서, “일반교회가 이와 같이 삼위일체를 삽입시키고 조작한 증거라고 말한다.

말씀보존학회는 왜 요일5:7이 유명한 요한의 콤마라고 불리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말씀보존학회는 다른 성경번역본들이 요일5:7의 본문을 삭제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삭제가 아니라, 권위있는 사본에 그 본문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기록되지 않은 것뿐이다.

 

12세기의 사본, 16세기의 사본 몇권에만 기록되어 있는 본문을 삼위일체교리를 잘 설명하고 있다고 하여 무조건 인위적으로 삽입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한 시도는 그동안 성경사의 정당한 성경본문비평을 자칫 교리에 치우치는 본문비평으로 만들어 버리는 잘못된 인위적인 일이 되어질 수 있다.

만일 말씀보존학회와 성경침례교회가 개역성경을 비롯한 모든 성경이 그 본문을 삭제하였다고 평가한다면, 마찬가지로 킹제임스는 그 본문을 삽입한 것이 분명하다.

 

요한일서57절에 대해서 성경사에는 누구나 다 아는 다음과 같은 흥미있는 이야기거리가 있다. 필자는 말씀보존학회 이송오목사도 그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건을 잘 알면서 다른 성경이 그 구절을 변개시켰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상대할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이것에 대해서 성경사적인 증거를 올리고자 한다.

 

에라스무스가 그의 1516년 판과 1519년 판 희랍어 신약에 왜 그 문선을 삽입시키지 않았느냐는 도전을 받았을 때, 그는 얼른 대답하기를 누군가가 그것을 지지할만한 단 한편의 필사본이라도 발견한다면 삽입시키겠다고 했다. 한본의 16세기 희랍어초서체 소문자가 출판되어 그것을 지지했는데, 그것은 1520년에 나온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수도승 프로이의 필사본이다. 에라스무스는 그의 약속을 이행하고저 1522년판에 그 문선을 삽입시켰다. 흠정역본은 에라스무스의 희랍어역본을 따랐는데, 두께가 얼마되지 않으며 중요하지 않은 그러한 단 하나의 원본을 기초로 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다른 희랍어 필사본의 비중과 권위는 무시되어 버렸다. 이 구절을 사실상 옳은 것으로 포함시킴으로 해서, 본문비평에 있어서 각기 중요한 정경의 대부분이 망가져 버린 것이다.”(성경의 유래, 생명의 말씀사, 215

 

그렇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 좀더 자세한 내용을 사본학이라는 책으로 살펴보자.

 

에라스무스를 겨냥한 비평 가운데 가장 심한 것 중 하나는 그의 본문이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 이 셋은 하나라, 또 땅에서 증거하는 셋이 있다”(요일5:7-8)에 관한 삼위일체적인 서술인 요한일서 마지막 장의 부분이 없다는 크시메네스의 컴플루텐시아 다국어 대조서의 편집자들 가운데 한사람인 스투니카의 도전같아 보인다. 에라스무스는 대답하기를 그럭 저럭 하는 동안에 처음 그의 본문을 준비할 때 그가 의존한 것들 외에 몇몇 다른 것들을 조사했지만, 이러한 말을 가지고 있는 어떠한 헬라어 사본도 갖지 못했다고 했다. 방심하고 있는 순간에 에라스무스는 약속하기를 만일 단 하나의 헬라어 사본이라도 이 구절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발견된다면 장차 나올 판에 요한의 콤마를 삽입할 것이라고 했다. 드디어 그러한 필사본이 발견되었다. 그것이 지금 보여주는대로 그 헬라어 사본은 아마도 1520년에 프로이(Froy 혹은 Roy)라고 하는 프란시스코 수도사에 의해 옥스퍼드에서 쓰여졌고, 그는 문제가 된 이 말을 라틴역에서 가져왔다. 에라스무스는 그의 약속을 지키어 이 구절을 제3(1522)에 삽입했으나, 그는 이 사본이 그를 논박하기 위하여 급히 준비되었다고 하는 의구심을 나타내는 긴 설명을 달았다(주해설-지금 Trinity 대학도서관에 있는 사본, Greg 61은 요한일서 5장은 거의 일치한다) 에라스무스의 시대에 이래 시도된 수천개의 신약의 헬라어 사본 가운데 단 3개의 다른 것들이 이 가짜 구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것들은 (1) Greg 88, 17세기 글씨로 가장자리에 코머가 쓰여져있는 12세기 사본이며, (2) Tisch 110, 컴플텐시안 다국어 대역 헬라어 본문의 16세기 사본필사본이며, (3) Greg 629, 14세기 혹은 리겐바흐가 주장한대로 16세기 후반의 것등이다.“(사본학 126페이지, 브루스 M. 메쯔거 저, 기독교문서 선교회)

 

에라스무스는 단지 성급한 말 한마디의 약속 때문에, 그의 헬라어 신약성경에 요한일서 57절을 삽입하게 된다. 그리고 연구결과 그 구절은 단지 12세기, 16세기의 중요하지 않은 세 사본에만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만일 신약성경 사본이 5000개라고 한다면(실제로는 5000개가 넘지만), 4997개의 사본이 무시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며, 이것은 전적으로 에라스무스의 책임이다.

이러한 이유로 요한일서5:7이 킹제임스 성경에 기록된 것이다.

 

그런데 이 요한일서57절을 성경침례교회의 이송오목사라는 사람이 개역성경이 고의 삭제했다고 억지주장을 하고 있으며, 한국교회가 삼위일체를 부정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니, 이 얼마나 무지하고 왜곡된 주장인지 모르겠다.

그가 얼마나 배타적이며 왜곡적인 사람인지 그 성격을 알 수 있는 한 예라고 말할 수 있다. 그저 눈감고 귀막고 목소리만 질러대는 무뢰한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러한 주장을 할 수 있는가? 과연 어느 성경이 변개이고 어느 성경이 고의 삽입하였는지를 그가 직접 밝혀야만 한다.

 

(4) 성경의 역사

 

현재 신약의 사본으로 부분적이나 혹은 전체적으로 발견되어진 헬라어 사본은 모두 합하여 무려 5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 많은 사본중에서 놀랍게도 모두 동일한 기록이 거의 없으며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그 차이는 매우 미미하지만 모든 사본들은 조금씩의 다른 점들이 있다는 것인데, 그 첫 번째 이유는 모든 성경사본들이 모두 필사본으로 전하여졌기 때문이다. 필사본을 다시 필사하고, 그 필사본을 다시 필사하고.....이것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기록들은 조금씩의 차이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전문가와 학자들이 이 수많은 성경의 사본을 서로 연구 조사하고 비교하여, 보다 원본에 가까운 성경을 찾으려는 시도가 오랫동안 계속되었으며, 현재까지도 그 작업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우리는 본문비평”(Textual Criticism)이라고 부른다.

 

초기의 신약성경사본은 초서체 사본이라고 불리는 소문자로 기록되어 있었으며, 부분적인 단편으로 발견되어졌다. 30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가죽 위에 깨끗하게 성경사본이 책으로 묶여 만들어졌으며, 이를 언셜체 사본이라고 하며 대문자 사본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수많은 성경사본을 서로 비교하고 연구하며 검토함으로써, 보다 원문에 가깝게 접근하려는 것이 바로 본문비평인 것이다. 더욱 많은 사본을 서로 비교하고 연구함으로서 우리는 좀더 원문에 접근할 수가 있다. 이러한 본문비평의 기준은 개인마다 다 다르지만, 글리슨 아셔의 제안이 가장 일반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1. 더 오래된 문헌이 우선적이다.

  2. 보다 난해한 문헌이 우선적이다.

  3. 보다 짧은 문헌이 우선적이다.

  4. 상위본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문헌이 우선적이다.

  5. 가장 광범위한 지역적 뒷받침이 우선적이다.

  6. 저자의 문체와 용어가 일치하는 문헌이 우선적이다.

  7. 교리상으로 편견을 노출시키지 않는 문헌이 우선적이다.

 

본문비평의 외적증거는 세 가지의 기본변형으로 시작된다. 즉 연대별, 지역별, 계보별인데 문제는 원본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때로 두가지의 계열의 사본중 어떤 것이 원문에 가깝느냐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임에 분명할 것이다.

이러한 본문비평을 위하여 발견된 모든 헬라어 사본과 또 다른 말로 번역된 고대번역판(시리아어, 라틴어, 콥트어등)과 초대교회 기자들에 의해 기록된 신약의 인용문등을 연구, 참고하기도 하며, 때로는 초대교회에서 사용하던 성구집등을 연구, 참조하기도 한다.

어쨋든 보다 원문에 가까운 성경을 찾으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어지고 있으며, 확실한 본문비평적인 증거를 찾는다면 성경은 새로 번역되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본문비평에서 중요한 가치를 갖은 성경사본에 대해서 알아보자.

 

바티칸 사본

 

그렇다면 왜 권위있는 킹제임스 성경외에 다른 성경번역이 필요하게 되었을까?

하나의 신약성경사본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이 금세기 성경사의 가장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15세기(1475) 바티칸 학자들은 바티칸도서관에서 오래된 도서들을 정리하고 분류하다가 한 사본을 발견하였다. 이 사본이 양피지에 기록된 대자체(대문자체) 중에 가장 오래된 사본으로 판명되는데, 이 연대는 4세기 경의 성경, AD 325-350년경으로 밝혀진다.

이 사본을 바티칸사본이라고 부르는데, 이 사본은 대부분의 구약과(70인역) 헬라어로 된 신약과 일부 외경까지 거의 완벽한 책의 형태로서 포함하고 있었다.

이 사본은 창세기1:1-46:28, 열왕기하2:5-7, 10-13, 시편106:27-138:6, 히브리서9:14-계시록 끝까지가 부분적으로 유실되어져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이 보존되어 있었다.

또한 마가복음16:9-20과 요한복음7:58-8:11은 삭제되어 있었는데, 그 외에는 거의 완벽한 보존을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이 사본이 그 당시에 발견된 가장 오래된 대문자 사본으로, 일명 B사본이라고 불리워지며, 전 세계의 성경학자들의 관심을 집중시켰으나 그 당시의 관심으로 그친다.

 

시나이 사본

 

또 그후 19세기, 1844년에 성경사본의 역사 중에서 가장 극적이고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독일의 백작, 티센도르프가 1844년에 시내산에 있는 성캐더린 수도원에 묵고 있을 때에, 그 방에서 성경 양피지 43매와 불을 붙이는데 사용되는 불쏘시개 중에서 70인역의 일부분인 역대상, 예레미야, 느헤미야, 에스더등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을 어디에서 구하였는가라고 묻는 티센토르프에게 성캐더린 수도원의 수도사는 말하기를, “이미 두 양동이 정도를 태워 버렸노라고 말하였다. 티센도르프는 이 사본을 정리하고 보관하여 독일로 가져와 번역하여 프레데리코 아우구스타누스 사본이라고 이름 불리는 저서를 출간하게 된다.

그 후 1859, 그는 세 번째 수도원을 방문하여 거의 완전히 보관된 300년대에 필사본 되어진 성경사본을 발견하는 금세기 최대의 쾌거를 이루게 된다.

물론 티센도르프로를 통하여 그 양피지가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된 수도사들은 더 이상 그에게 양피지를 내놓지 않았는데, 티센도르프가 자신이 발간한 번역사본의 책을 어느 한 수도사에게 선물하자, 그 수도사도 자신이 갖고 있는 한 권의 완벽한 성경 필사본을 티센도르프에게 보여주게 된다.

 

티센도르프는 그날 밤을 새워 그 성경 필사본을 읽는데, 훗날 그는 잠을 자는 것은 신성을 모독하는 것 같았다라고 고백할 정도였다고 한다. 다음날 티센도르프는 그 사본을 돈을 주고 사려고 했으나, 그 수도원은 완강히 그것을 거부하였고 티센도르프는 수도원에서 차용증의 각서를 써주고 그것을 잠시 빌려오게 된다.

(훗날 수도원측은 테센도르프가 성경을 잠시 빌려간다고 서명날인한 문서를 제시하며, 차용한 것이므로 돌려 주어야만 한다고 하며 강력히 주장한다.)

 

이 사본이 시나이사본이라고 불리우는데, 마가복음16:9-20, 요한복음7:58-8:11을 제외한 신약성경 전체와 바나바 서신서와 헤르마스 목자서를 제외한 전구약 외경서와 구약(70인역)의 절반 이상이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티센도르프는 이것을 갖고 와서 러시아 황제에게 선물하였고, 그 대가로 성캐더린 수도원은 러시아황제로부터 훈장과 약간의 돈을 받았을 뿐이었다. 훗날 러시아는 혁명후 재정이 궁핍하여지자 돈이 필요하였고 성경에는 관심이 없었으므로, 영국정부는 1933년 크리스마스 전날에 러시아로부터 십만루블(US$500,000)에 그 사본을 사들여 현재 대영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그 돈은 대영박물관에서 반을 충당하였고 반은 영국의 개인과 교회, 혹은 미국사람들의 기부금으로 충당되었다고 한다.

 

중립 본문에 입각한 성경 발간의 필요성

 

이 시나이 사본은 많은 성경학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바티칸 사본(B 사본)과 매우 유사한 내용을 갖고 있으며, 그 뒤에 발견된 알렉산드리아 사본(대영박물관 보관)과 에브라임 사본(파리국립박물관 보관)등과 함께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사본이라고 불리워지는데,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킹제임스 성경에 이어 다른 성경번역본의 발간이 논의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헬라어 성경사본은 어느 면으로 치우치지 않았다고 하여 중립본문이라고도 불리워지며, 우리가 지금 보는 개역성경과 NIV영어성경의 근본이 되며, 그 신약성경의 본문비평은 티센도르프, 웨스트코트, 호르트등이 이루어 놓은 작업으로 분명한 기초를 받을 수 있었으며, 그 외에도 많은 자료들을 총괄하여 검토한 결과, 알렉산드리아계열의 본문이 가장 원문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게된다.

 

최근에는 이집트 땅속에서 파피루스 더미가 발견되었는데, 체스터 비티 파피루스라고 불리는 더미에서 신약의 많은 부분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연대는 놀랍게도 AD 200년대로 보며, AD 125년경으로 추정되는 라일란드 파피루스는 비록 작지만 신약본문에 대한 아주 가치있는 증거자료가 된다.

이것도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본문과 일치하며, 보드머 파피루스라고 불리는 요한복음 본문들도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본문을 중립본문으로 굳혀 주고 있다.

 

이러한 고대사본들의 발견은 킹제임스성경 외에 또다른 성경의 발간을 필요로 하였던 것이다. 그 이유는 킹제임스 성경과 이 알렉산드리아 게열의 사본들이 적지 않은 차이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 성경학자들의 본문비평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최근에 발견된 사본들로부터 원문에 더욱 접근하려는 본문비평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만일 최근에 발견된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사본보다 다 연대가 오래 되고, 더 보존상태가 좋으며, 더 많은 중립적인 성경사본들이 발견된다면, 당연히 또 다른 성경의 발간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성경원본이 있다고 할지라도, 지금의 번역 성경과 거의 오류나 틀림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1881년 본문비평작업에 직접 참여한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이렇게 말하였다.

 

비교적 사소한 것들을 제쳐 둔다면 우리가 생각하기에 여전히 의심을 받고 있는 표현들은 전체 신약성경의 0.1%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신약성경사본을 티센도로프에게 빌려주었다가 그만 빼앗긴 성캐더린수도원은 얼마나 억울하였을까? 그것을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겠지만, 과연 그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여 6억원이란 돈으로 대영박물관은 그 사본을 러시아정부로부터 사들였는데, 그 당시의 화폐가치로 본다면, 아마 10배 이상의 환차가 있다고 보아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60억원이라는 돈이다.

 

그런데 그 후 19759, 수도원 측은 보수공사를 하기 위하여 한쪽 벽을 허물고 공사를 하던 중에, 벽과 벽 사이의 작은 틈에서 거의 완전하게 보존된 성경을 무려 수십 상자를 발견하게 되는 사건이 생겼던 것이다.

수도원 측은 이것을 외부세계에 극비로써 엄격히 통제하였으나, 1977년 독일의 한 신문이 이 사건을 알게되어 기사화한 후로부터 외부로 알려졌으며, 그로부터 수도원측은 이를 철저히 경계하며 삼엄하게 보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교의 교수나 학자들에게만 사전에 특별한 예약이 있어야만 오직 30분이라는 시간을 제한하여 단지 구경만 할 수가 있을 뿐이며, 현재는 보존을 위하여 마이크로 필름으로 제작하여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수도원은 551년에 세워진 동방정교측의 수도원이며 현재 3000점의 고대성경사본과 5000권 이상의 희귀한 성경사본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며, 세계에서 바티칸에 이어 두 번째로 귀한 성경사본과 성화, 유물등을 많이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이러한 성경사본들이 발견되어짐에 따라 성경발간이 필요성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5) 킹제임스 성경과 NIV 성경

 

그렇다면 킹제임스 성경의 역사와 유래는 무엇일까?

1600년대 초, 제임스1세는 레이놀즈라는 학자의 주장을 전적으로 수용하여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도록 하는데, 그 왕의 이름을 따서 그 번역본을 킹제임스역이라고 부른다. 소위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사본이라고 불리는 성경이 출간되기 이전은, 킹제임스성경(KJV. 흠정역)은 가장 권위가 있었으며, 특히 그 언어적인 표현은 매우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킹제임스는 1611년에 인쇄된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아야만 한다. 17세기초의 영어는 너무 고어로서 현대에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개정을 거듭하였다.

 

또 킹제임스성경은 최근의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사본들의 잇달은 발견으로 인하여, 본문비평상의 문제가 대두되어 성경이 다시 번역되어질 필요성이 있게 된 것이다.

 

그전까지는 킹제임스 역은 텍스투스 리셉투스”(공인본문)이라고 불려졌으며, 사실 그러한 용어는 킹제임스성경 광고문 서두에 선전의 문구로서 실렸던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권위와 존경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수정하거나 비판하려는 것은 신성모독과 같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 킹제임스 성경은 코이네(Koine=Common)라고 불리는 계열의 사본을 번역한 것인데, 그러나 킹제임스를 번역한 헬라어 사본은 소수의 사본이며, 대부분 후기의 것이었고,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소수의 증거물에 의한 것이었다.

 

마침내, 1885년에는 영어개역(English Revised Version)1901년에 미국표준역(American Standard Version)이 출간되었으며, 신약성경의 번역자들은 가장 최근에 발견된 헬라어 사본들로 본문비평을 하여 출간하였다. 그러나 단점으로는 영어 어순보다는 히브리어나 헬라어 원어의 어순을 그대로 번역하였기 때문에, 다소 거칠고 매끄럽지 않은 언어적 표현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래서 후에 새개정표준역(New Revised Standard Version)이라고 하는 영어성경이 출간되었으며, 그 영어의 표현은 현대적이며 훌륭한 번역을 하였다고 평을 받지만, 그러나 구약본문에서 번역상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평을 받게 된다.

그래서 마침내 다시 출간된 번역본이 국제역(New International Version = NIV)이다. NIV 영어성경은 많은 훌륭한 복음주의 학자들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 이것이 본문에 가장 충실하다는 평을 받게 되며, 오늘날 우리가 널리 받아들이는 영어성경 번역본이 되며, 한글 개역성경과 같은 종류의 번역본이 되어진 것이다.

 

(6) TR 본문과 킹제임스

 

킹제임스 성경은 1611년 영국 제임스 국왕에 의하여 성경번역을 하였으므로 킹제임스라고 불리운다. 우리는 킹제임스에 대해서 논하기 전에 먼저 TR 본문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아야만 한다.

킹제임스는 TR 본문을 영어로 번역한 성경이기 때문이다.

TR의 기원은 중세의 인문주의자요, 신학자인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 1469- 1536)에서 시작된다. 그 당시까지 시중 판매용으로 제작된 헬라어 성경은 전무하였다. 그래서 프로벤(Johann Froben)이라는 인쇄업자의 종용으로 에라스무스는 거액의 돈을 받기로 하고 헬라어 성경 편집 작업을 하기로 하고였으며,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과 스위스 바젤에서 헬라어 사본을 수집하였지만, 실망스럽게도 12세기경의 것으로 발견된 사본 5권밖에는 입수하지 못했다. 그 뿐만 아니라 그가 입수한 사본 가운데 요한 계시록을 포함하고 있는 사본은 단 한 권뿐이었고, 그것도 마지막 6절을 포함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에라스무스는 부득이 라틴어 불게이트 (Vulgate) 성경에서 번역을 하여 그 부분을 다시 라틴어에서 헬라어로 번역하여 보충함으로서, 헬라어 성경을 시중에 발간하게 된 것이다.

(필자주 - 말씀보존학회의 주장이 무엇인가? 킹제임스 성경만이 보존된 하나님의 성경이라고 말하는 것은, 에라스무스가 TR 번역에 참고한 6권의 12세기 경의 헬라어 사본만이 참 성경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얼마나 우스운 생각인가?)

 

에라스무스의 헬라어성경이 1515102일에 시작된 인쇄가 151631일에 완성되었다. 1,000 페이지 가량 되는 방대한 작업을 너무 급히 인쇄했기 때문에 초판은 오자가 엄청나게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헬라어 성경 출판은 대성공이었다고 한다. 마틴루터가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한 것은 그의 2판이었다.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성경은 그 후에도 스테파누스 (Stephanus), 베자 (Beza), 엘제비르 (Elzevir) 등을 통해 여러 차례 개정되었다. 특히 엘제비르 형제는 그들이 개정한 2 (1633)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이제, 우리는 보편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본문(Textus Receptus)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TR(Textus Receptus: 표준원문)이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고, 그래서 KJV(킹제임스)의 신약 부분이 TR에서 번역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즉 킹제임스성경이 마치 누구나 인정하는 공인된 표준원문(TR)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TR이라는 단어는 킹제임스가 아니라, 에라스무스의 헬라어성경을 엘제비르 형제라고 하는 사람이 개정하여 발간한 책의 광고서문이었던 것이다.

 

에라스무스 이후, 테오도르 베자(Theodore Beza)1565년부터 1604년까지 무려 아홉판 이상의 헬라어 신약을 수정 출판했고, 1611년에 나온 제 10판은 사후의 편집이다. 이 베자가 편집한 희랍어 신약 성서는 '표준원문'을 대중화하고 정형화하는 역할을 하였다. 1611년의영어 흠정역 성서(The Authorized or King Kames Version)의 신약 번역의 대본이 되었던 것도 바로 베자가 15881589, 1598년에 편집한 희랍어 신약성서였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킹제임스 성경은 그 역사가 오래 되고 권위가 있는 사본에서 번역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2세기의 것으로 알려진 몇 개의 사본에서 번역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1611년에 번역된 킹제임스 성경은 그 당시 전혀 새로운 성경이 아니라 이전의 번역판을 개정한 것뿐이었고, 제임스 왕이 그 권위를 인정했다하여 흠정역(Authorized Version)이라고 불린다.

이 성경이 아름다운 번역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제한적인 사본으로 인하여 성경 번역의 정확성과 성경의 원뜻을 정확하게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우리가 보는 개역성경과 NIV 영어성경은 시내사본과 바티칸사본등을 사본과 가장 최근에 발견된 많은 사본들을 참고하고 비교하여 번역한 것으로, 최소 AD 300년경의 연대를 갖고 있으며, 거의 완벽한 원문이 그대로 보존된 사본에서 번역된 것으로 가치가 있다. 물론 몇권의 사본에서 번역된 것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사본에서 서로 비교, 연구되어자며, 당대의 성경학자와 언어학자등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하게 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약학자 죠지 래드(George Ladd)의 말을 들어보자.

죠지 래드는 성경 헬라어와 교부 헬라어로써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로서, 신뢰할 수 있는 신약성경학자이다.

 

이른바 흠정역(欽定譯) ‘Autorized Version’이라는 것도 사실상 그 자체는 그 이전의 번역판들을 개정한 것으로 1611년 제임스 왕이 권위를 인정한 것으로 Erasmus의 그리스어 텍스트를 기초로 한 것이다. 에라스무스가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겨우 6개의 후기의 빈약한 그리스어 사본 뿐이었으므로 많이 애용되어 온 흠정역에 있는 재료는 3세기 이상이나 영어를 사용하는 세계의 성경으로는 매우 불명확한 것이다. 사실상 Erasmus도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좋은 그의 사본도 전부 사용하지 않았다. 만일 Erasmus가 그것(시내산 사본)을 볼 수 있었다면, 지금의 흠정역 성경은 의심할 여지없이 좀더 정확한 텍스트가 되었을 것이다”(George E. Ladd, The New Testamentand Criticism)

 

횃불 트리니티신학대학원의 장두만 교수의 글을 인용해 본다.

 

“KJV1611년에 번역된 성경이다. 언어는 역사성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경과하면 그 의미가 변화된다. 400년이 경과하면서 단어의 의미가 바뀐 경우도 많이 있고, 1611년 이후에 성서 고고학은 물론 다른 학문도 급격히 발달되어 성경의 배경이나 단어의 의미가 분명히 밝혀진 경우도 많이 있다. 사본의 수도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엄청나게 많이 있다. TR의 원형인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성경이 겨우 5권의 사본을 사용해서 편집된 것임에 비해 지금 우리는 약 5,400여 권의 헬라어 사본을 가지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모든 것들을 무시해 버리고 킹 제임스 유일론을 주장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망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전반적으로 볼 때 KJV은 좋은 번역이고 믿을 만한 번역이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번역판이기 때문에 오류가 상당히 많다. 우리가 성경의 영감을 말할 때 그것은 원본에만 국한시키지 결코 사본이나 번역판에까지 확대해서 적용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모든 사본과 번역판은 다소간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장두만, 목회와 신학, 987월호)

 

좀더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사본학이라는 책을 참고하여 보자.

 

에라스무스는 전부 헬라어로 된 성경사본을 찾지 못했으므로 신약의 여러부분에 대해 몇몇 사본을 사용했다. 대개의 본문을 위하여 그는 바젤의 수도인 수도원에 있는 질이 좀 떨어지는 두 사본에 의존하였는데, 이들은 복음서 중 하나와 사도행전과 서신들 중의 하나로서 둘다 12세기의 것이었다에라스무스는 이것들을 두세개의 다른 책들과 비교하였고 헬리어 사본의 선과 선 사이나 여백에 인쇄자를 위하여 경우에 따라 교정을 하였다. 계시록을 위해서는 12세기의 단 한권의 사본 밖에 없었는데, 그는 그것을 그의 친구 로이힐린에게서 빌렸다. 불행히도 이 사본은 그 책의 마지막 6개 구절들이 있는 마지막 장이 빠지고 없었다. 이러한 구절들을 위해서 요한계시록의 헬라어 본문이나 그리스어 주석으로 사본이 보충된 책에는 곳곳에 있는 몇몇 다른 구절들이 거의 분간 할 수 없도록 혼합되어 있는 것같이, 에라스무스는 라틴역에 의존하여 이 본문을 헬라어로 번역했다. 그러한 절차에서 기대된 것과 같이 여기저기에 에라스무스 자신이 만든 헬라어 본문은 어떤 알려진 헬라어 본문에서도 한번도 볼 수 없는 이문(異文)들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소위 말하는 헬라어 신학의 텍스투스 리셉투스(Textus Receptus)라는 인쇄물에서 오늘날에도 계속하여 영속되고 있다.” (사본학 124페이지, 브루스 M. 메쯔거 저, 기독교문서 선교회)

 

신약의 다른 부분에서도 에라스무스는 때때로 그의 헬라어 본문에 라틴어에서 취한 재료를 소개했다. 또 사도행전9:6에서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개할 때 물은 질문, “그리고 그는 떨면서 놀라 말했다. 주님, 저에게 무엇을 하려 하시나이까?” (우리 말 성경에는 이 부분이 없다) 솔직히 말해서 에라스무스 가 라틴역에서 가져와 삽입한 것이다. 다른 헬라어 사본에는 없는 이 부가물은 (22:10의 병행설화에는 보이나) 1611년에 만들어진 흠정역에서 부활되었다.“(사본학 125 페이지, 브루스 M. 메쯔거 저, 기독교문서선교회)

 

말씀보존학회의 주장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 우리는 성경사를 통하여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들은 철저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뭉쳐있는 배타주의와 교리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독단적인 사상적인 집단으로 위험한 단체이다.

말씀보존학회는 하나님의 성경원본을 갖고 있는가? 어떻게 자신이 번역한 성경외에는 모두 사단이 변개한 것이 되어지는가? 만일 우리가 그들을 이단이라고 하지 않는다면, 한국교회 전체가  이단이 되며, 킹제임스성경이 아닌 모든 성경번역본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단의 말로 변개한 것이 되지 않는가?

또한 한국교회 전체가 사단이 세운 교회가 되지 않는가?

 

(7) 대표적인 성경침례교회의 교리

 

게다가 말씀보존학회는 다음과 같은 교리를 주장한다.

 

1. 간격이론(창세기 11절과 2절 사이에 상당한 시대적 간격이 있다는 설, 재창조설이라고도 함)을 주장한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였으나 천사가 타락하는 것을 계기로 지구를 심판하여 어둠과 혼돈이 생겼고 하나님은 천지를 다시 창조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간격이론은 비성경적인 견해로 간주된다.

 

2. 극단적 세대주의와 전천년주의 종말론만이 옳다고 주장한다.

말씀보존학회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세대주의에 입각하지 않는 성경해석은 개인적인 주관이다

 

3. 침례가 옳으며 세례로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4. 예정론의 5대 교리를 부정하며, 단 하나 견인교리(구원의 영원보장)만 인정한다. 그렇다고 하여 이들이 알미니안의 견해를 인정하는가? 그것도 아니다. 이송오목사와 피터럭크만은 캘빈을 이단이라고 말하기를 서슴치 않으며, 알미니안 역시 이단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웨슬레안? 그들에게는 웨슬레안도 이단이다. 물론 오순절 은사주의는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결론이 무엇인? 그들은 오로지 자신만의 교리만이 참된 교리라고 생각한다.

 

5. 일단 구원 받은 사람은 어떤 죄를 지어도 구원을 받는다는 믿음지상주의, 도덕무용론으로 구원파의 주장과 동일하다.

 

이들의 교리는 지방교회와 구원파, 많은 부분에서 유사한 점이 많다. 물론 이들은 구원파와 지방교회도 이단이라고 말한다이들은 자신들에게 해당되지 않은 모든 것을 이단이라고 하며 비난하고 배타시키는 위험한 곳이다.

자신들이 보유하는 교리 외에 다른 교리는 모두 이단이고, 자신들이 보는 킹제임스 성경 외에 모든 성경은 다 변개된 성경이며, 자신들의 교회 외의 다른 교회는 모두 거짓 교회일 뿐이다. 게다가 자신들의 신학교만이 참된 진리를 가르치는 신학교라고 하며, 침례와 세례 중 자신들이 거행하는 침례가 아니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을 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진리는 자신에 속한 것인가 보다.

역대 교회사에 수많은 이단이 있었고, 전 세계에 수많은 이단들이 있었지만, 이들과 같이 황당무계한 이단은 없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마음은 예수님의 사랑을 푯대로 하는 기독교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성경말씀을 기록케 하셨고, 언제 어느 시대에서도 그 말씀을 보존케 하셨는데, 그 이유는 성경이 구원에 이르게하는 지혜의 책이기 때문이다.(딤전)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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