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의도, 최바울/윤석전/김기동의 비교

  • 8월 15, 2015

                                  하나님의 의도, 최바울/윤석전/김기동의 비교

 

                                                                                                                  이인규


인터콥의 최바울선교사는 베뢰아 출신이다. 그런데 그는 베뢰아가 양태론과 이원론, 귀신론등의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곳을 나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최바울선교사의 책을 보면 베뢰아의 사상이 아직도 그대로 담겨져 있다. 그는 세계영적도해라는 책에서 “하나님의 사정”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는데, 그것이 베뢰아의 “하나님의 의도”를 제목만 바꾼 것으로서 그 네용이 유사한 것으로 밝혔다.

윤석전목사도 베뢰아출신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다가 결국 베뢰아아카데미 10기생이라는 것이 밝혔다. 그들의 주장을 비교하여 보자.

 

1) 영은 인격이 아니다

 

영은 인격이 아니므로, 육체를 가져야만 인격을 갖게 된다는 것이 베뢰아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지방교회, 베뢰아 계열의 주장으로서 이원론적인 사상이 포함되어 있는 이론이다, 즉 이들에게는 천사와 사탄도, 심지어는 하나님과 성령도 인격적인 아닌 존재가 되어 버린다.

 

– 그리스도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다. 하나님의 아들 그러나 그가 육신으로 오시기 전에는 아버지 안에 있지요 우리 어린아이가 엄마품속에 있는 것과 똑같지요 똑 같애요 그래서 우리가 아들 할 때는 영적 존재로 생각하는데요, 아들 할 바는 반드시 사람으로 오신 이를 말해야 되지. 그래야 인격이 되니까. 하나님의 아들 할 때요? 육신으로 오신 이가, 사람으로 오신 이가, 사람이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사람이신 그가 육신으로 오심으로 아들의 인격이 세상에 현현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 아들이신데, 성령이 아들 안에 있을 때 아버지라고, 하나님아버지 라고(하지요).” (김기동, 베뢰아아카데미, 9기)

 

–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는데 이 말씀은 요한복음 6장 63절에 의해 곧 영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은 영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로서 영은 항구적 존재이니 예수님의 육체는 우리의 영과 같은 수준으로서 인격이 아닌 항구적 존재라는 것입니다.(베뢰아 아카데미 9기)

 

최바울선교사 역시 영은 육체가 없으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으므로, 영은 육체를 통하여 인간에게 나타낸다고 말한다.

 

영은 육체를 통해 육체를 가진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냅니다. 육체가 없는 영은 인간계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합니다, 귀신들이 인간의 육체를 그렇게 사모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에덴에서 사단은 간교한 뱀의 육체로 이 땅에 왔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체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최바울, 왕의 대로, 75쪽)

이것은 베뢰아 출신 윤석전목사에게도 똑같이 나타난다,

 

– 인간이 육체와 혼이 있는데 이것은 정신적입니다. 생령이란 혼에다가 영을 추가한 것입니다. 아멘합시다. 그래서 영이란 인격이 아니고 항구적인 존재력을 가진 것이 영입니다. ·….그래서 혼은 육체가 살았을 때는 육체에 붙어가 일하고 육체가 죽어 없어질 때는 영에게 붙어 일하기 때문에 뜨거운 것도 알고 아픈 것도 알고 고통도 알고 지옥도 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혼이 없으면 몰라요. 왜? 영은 인격이 아니기 때문에(아멘). 영혼이어야 인격입니다(아멘). 그렇기 때문에 혼이 없으면 아픈 것을 못 느낍니다.(윤석전, 설교 테잎)

 

즉 영은 인격이 아니므로 육체를 갖어야만 인격이 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 천사와 사탄은 모두 영이므로 인격적인 존재가 아닌가? 인격이 없어서 육체를 가진 인간에게 들어와야만 인격적인 존재가 된다는 독특한 주장이다. 이 주장은 원래 지방교회의 주장인데 김기동목사가 그 영향을 받아서, 베뢰아아카데미를 통하여 많은 목사들에게 전하여진 것으로 추측된다.

즉 이들은 영이신 하나님과 성령의 인격마저 부정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 사탄은 인간을 빼앗기 위하여 대결을 한다는 것이 바로 베뢰아의 이원론적인 생각이며, 또한 나아가서는 이 세상의 지역도시도 하나님과 사탄이 서로 빼앗기 위하여 싸우는 대결구도로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곧 신사도운동과 극단적세대주의가 주장하는 영적도해가 갖고 있는 사상이다.

 

2) 양태론

 

– 비록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사역에 시간적인 차이는 있으나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으시기 전에는 성령이 오시지 않았고 또 아버지의 뜻이 없었다면 아들이 이 땅에 오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중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김기동, 성령을 알자 46-47쪽)

 

– 또한 하나님은 물질이 아니고 영이십니다. 그래서 본영으로서는 성령이 되십니다. 이는 질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구시냐 할때의 그 하나님은 본질을 말하는 것이기에 아버지이시며, 그가 나타나셨을 때에는 본체이시며, 영으로 오셨을 때에는 본영이라는 말입니다. 이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 안에 계실 때에는 아버지이시고 우리 안에 계실 때에는 성령이십니다.”(김기동, 성령을 알자 60쪽)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따로 생각하고 인격을 셋으로 만들면 큰일납니다. 아버지의 인격이 따로 있고 성령의 인격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여기서 볼 때 성령의 인격, 이쪽에서 아들의 인격, 이쪽에서는 아버지의 인격, 오직 인격은 하나입니다. ……각각 보는 방향에서 다른 것같이 이쪽에서 볼 때 얼굴, 뒤쪽에서 보면 뒤통수, 옆에서 보면 볼인 것 같이 인격은 하나입니다. 지금 객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격은 한 인격이십니다. 하나님과 성령이 따로 따로 되는 것이 아니고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성령이 예수 안에 있을 때 바로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 안에 있을 때 성령이 되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자기가 자기 안에 있는 이에게 하시는 겁니다. (베뢰아 강의 9-1)

 

최바울선교사는 베뢰아에서 양태론을 가르치기 때문에 자신이 베뢰아를 나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바울선교사의 책을 보면 그도 역시 양태론이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직접 이 땅에 오셔서 완벽하게 당신 자신을 증명하셨습니다. 이 땅에 육신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정말 엄청난 사건입니다. 육체적인 죽음에서 부활하신 이 사건은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죽으셔야 했을까요? (최바울, 세계영적도해, 21쪽)

  

– 그리고 세월이 흘러 하나님도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이 땅 인간계에 진입하셨다는 놀라운 사실이 연상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일입니까? 사단은 가장 간교한 육체인 뱀의 모습을 입고 들어왔고, 하나님은 하나님을 닮은 가장 고위한 육체를 입고 들어왔다는 사실이, 분명 아주 근본적인 천국의 비밀을 말해 주리라는 기대에 부풀었습니다(최바울, 세계영적도해 27쪽)

  

– 아담과 하와의 범죄 후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로 그 ‘여자의 후손’이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 다름아닌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이 어찌 놀라운 사실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육신의 옷을 입고 직접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최바울, 세계영적도해, 35쪽)

  

윤석전목사의 양태론을 보자

  

– 성령과 예수와 아버지는 동일한 1위이십니다. 오해하면 안돼요. 자 – 아버지가 영으로 계실 때가 뭐요? 예 성령이요 아들이 영으로 계실 때가 뭐요 성령이요 성령은 성령으로 계실 때를 거룩한 영 성령이라고 말 한다 이 말여 육신을 입고 왔을 때는 아들이요 육신을 벗고 영으로 계실 때는 성령이라 이 말이여 내가 너희 안에 있겠음이라 – 세상 끝 날까지 너희 안에 있겠음이라(아멘)” (설교테잎-이영호목사 발췌)

  

– 어떻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삼위일체라고 말하면서…성령은 그렇게 무시합니까 ? 이 분이 한 분이신데 이 분이 영으로 계실 때는 아버지요 육신을 입었을 때는 아들이시오 또 육신을 벗고 부활하시고 영혼일 때는 또 근본이 성령이신데 어찌 이분을 이렇게 무시 하냐 이 말여 -“(설교 테잎-이영호목사 발췌)

  

– 이 아버지가 성령임을 아시기 바랍니다.…성령은 우리의 거듭난 아버지요 우리를 양육하시는 아버지요 우리를 책임지는 아버지이십니다. 성령이 없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 보장이 없습니다. 그가 우리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설교테잎 – 원문호목사 발췌)

  

3) 예수가 오신 목적은 마귀를 멸하기 위함이며, 사람은 마귀를 멸하기위한 도구이다

 

이러한 이원론적인 이단적인 주장에 대해서 베뢰아는 ‘하나님의 의도’라고 표현하고, 최바울대표는 ‘하나님의 사정’이라고 용어만 바꾸어 표현한다.

베뢰아의 하나님의 의도는 “예수님이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기본적인 기독교의 멧세지를 부정한다. 극단적 세대주의의 이원론은 모든 것을 하나님과 사탄의 이원론적인 대결구도로 보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신 목적도 마귀를 멸하기 위한 것이 된다.

 

즉 베뢰아도 “예수가 마귀를 멸하기 위하여 오셨다”고 주장하며,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마귀를 없애기 위한 도구로 왔다”는 주장을 하는데, 베뢰아 만의 아주 특이한 주장으로 “하나님은 마귀를 합법적으로 멸하기를 원한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최바울과 윤삭전에게도 동일한 표현이 나타난다.

  

– 어떤 사람은 ‘마귀가 도전했을 때 당장 하나님이 멸하시면 될텐데 왜 그렇게 오랫동안 묵인했냐?’고 하지만 하나님은 반역하는 천사를 인정해서 묵인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불법을 합법으로 처리하시려고 한 것입니다.“(김기동저, 마귀론 상66쪽)

   

– 그리고 우리를 데려다가 함께 있게 하시고 상까지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죄짓고 오는 인간에게 상까지 주시겠다는 것은 인간이 마귀를 멸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실 길을 위한 사전의 안내자였기 때문입니다.“(김기동저, 마귀론 상78쪽)

 

–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첫째 하늘에서 하나님을 배신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은 원수를 심판하고 멸하고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려 하는 것입니다.”(김기동저, 마귀론 상12쪽)

  

그렇다면 최바울선교사의 주장을 살펴보자

  

주님은 사단을 정죄하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늘에서 범죄한 사단을 영원히 저주하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에덴에서 그것을 행하신 것입니다. 사단을 저주받아야 했습니다. 사단은 처음부터 하나님께 대적하여 범죄한 천사이고 저주받아야 마땅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사단을 고소하였고, 하나님은 합법적으로 사단을 정죄하신 것입니다.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사정이 풀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최바울, 세계영적도해, 32쪽)

–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인간을 창조하셨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이면서 동시에 동역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사단을 정죄하셨으며 마침내 하나님께서 직접 이 땅에 오셔서 정죄된 사단을 정사와 권세를 꺾으셨습니다. (최바울, 세계영적도해, 38쪽)

 

윤석전목사도 동일하다

 

하나님의 아들의 목적은 이 놈(마귀)을 멸해 버리는 게 목적이라 그 말이오. 하나님을 반역한 놈을 합법적으로 멸한다 이 말이오. 분명히 이해 되야 해요. 어디 가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믿는 자가 구원이라는 거요. 모두 구원이 아니라는 거요. 그래서 ‘주여 주여’ 하는 자도 못 믿는다는 거요. 이 사건을 믿고 분명히 나의 소유로 삼아야 구원이라는 거요. 오늘날 구원이 완성되지 못한 자가 이 소리 듣고 받아들이면 그냥 구원이 완성되는 거요. 간단한 거요(윤석전, 교회와 신앙, 2000년 3월)

– 인간을 구원하려고만 하나님이 오셨다면 하나님은 무능한 분이며 마귀와 줄다리기 하고 싸우고 계신 하나님은 인간을, 마귀를 멸하는 일에 도구로 쓰시고 아버지께로 가며 찬송 부르는게 하나님께 영광이 아니라 마귀의 불의를 들어내는 것이 영광이며 마귀를 멸하는 것이 영광이라”(윤석전, 교회와 신앙 2000.3. 녹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