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동의 베뢰아를 왜 이단이라고 하는가?(허홍선목사)

  • 8월 18, 2015

          김기동의 베뢰아를 왜 이단이라고 하는가?

                                                                 허홍선 목사

서울 성락교회 개척교인(부친을 따라 등록)
기독교한국침례회 서울지방회 목사안수
육군 제2사단사령부 노도교회 담임목사(군종장교 대위예편)
베뢰아 아카데미 담당 목사(제1기-제20기)
베뢰아 대학원대학교 설립 및 교학처장
서울 성락교회 수석 부목사
시카고 성락교회 담임목사
달라스 성락교회 담임목사
베뢰아 이단성을 깨닫고 전격 탈퇴(1999년 1월1일)
미남침례교(SBC) 마운트버넌 협회 가입
미주지역 베뢰아 이단 세미나 인도
워싱톤 예수사랑교회 담임목사
워싱톤 침례신학대학교(WBU) 교수
성락교회 바로세우기협의회(성바협) 지도목사
기독교한국침례회 한남지방회 명문교회 담임목사
현, 뉴욕 샤론교회 담임목사


※일러두기
① <베뢰아원강>은 강의록이므로 문어체보다는 구어체를 사용하였다.
② 글의 인용 출처는 다음과 같이 약어를 사용하였다.
   (예) 베뢰아아카데미 22기 21강 →베아 22.21  
       베뢰아원강 221페이지 →베원 p.221
③ 중간에 그림을 삽입하여 글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 인간창조론


I. 인간 창조의 목적


다음은 김기동 목사가 자신이 정통신앙을 가진 것처럼 위장하기 위한 주장이다.


“하나님의 완전하고 영원한 계획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마귀의 유혹으로 범죄하여 죄인이 되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음을 믿습니다.”(베원 p.40).


김기동 목사는 외형적으로는 평범한 신조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위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을 이단을 정죄하는 교단들의 공격을 무마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김기동 목사는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알아보자.


“하나님은 자신이 정하신 뜻을 이루는 데 관심을 가지십니다.”(베원 p.469)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베원 p.476).


김기동 목사의 하나님은 자기 사랑에 빠진 나르시스적인 신이다. 그는 피조물의 구원이나 축복에 대해서는 사실 별 관심이 없다. 그가 주장하는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의도.PNG

 

“하나님의 의도 측면에서 보면, 하나님이 하늘과 그 모든 것을 지으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후사로 정하시고 아들을 위해 창조하신 것입니다.”(베원 p.766).


 “하늘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아들이 들어오실 때 영접하고 수종들어야 할 천사가 반역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했습니다.”(베원 p.766).


김기동 목사는 애초에 인간을 위한 근원적인 계획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예수는 인간구원이 아닌 “천사”인 사탄의 반란이 있은 후, 모독당한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되찾고, 마귀를 처벌하기 위해 오시는 것이다.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 자신의 뜻을 성취함에 따라 생기는 일종의 부산물일 뿐이다.


“예수께서 오시는 일을 위해 인간은 창조되었습니다.”(베원 p.766,767).

“인간 창조의 목적은 예수께서 ‘여자의 후손’(창 3:15)으로 오시기 위해서입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 꽃봉오리가 생기는 것처럼 인류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킬 여자를 위한 역사였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인류의 역사는 아담부터 시작하지만 예수께서 인류를 사용하실 절대적인 목적은 마리아라는 여자의 몸입니다.”(베원 p.778).


인간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되찾아 아들에게 만유를 후사로 물려주고 마귀를 멸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함이다. 인류 존재와 역사의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여자의 후손”을 낳을 여자 한 명을 생산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김기동 목사의 교리는 “인간도구론”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자기 일을 다 마치시고 하늘에 올라가신 후,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때 비로소 구원하십니다.”(베원 p.767)

“그리고 그가 하늘로 가시면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도왔으니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그가 계신 곳에 데리고 가겠다고 하셨습니다.”(베원 p.767)

“하나님께서 인간을 영적 존재로 지으신 이유는 예수께서 세상에 오실 일과 보상을 위해서다. 창세전부터 인간에 대한 보상 계획을 세우신 것입니다.”(베원 p.637)

“창세기 1장 27절의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할 때의 이 남자와 이 여자는 지금 말하는 인격적인 사람이라기 보다는, 남자와 여자라는 곧 암컷과 수컷이라는 하나의 자웅을 구분하는 이치로서의 표현입니다.”(마귀론 상권, p.49, 83)

“이와같이 땅에 충만한 수의 사람 중에서 아담 하나를 뽑았으니, 그 아담이 얼마나 개화된 인간이었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한 사명자를 불러 이 기존적인 인격 위에 항구적 가치를 부여 하심으로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마귀론 상권, p.85)


인간이 하나님의 일을 도왔기 때문에 도구인 인간을 토사구팽하지 않으시고, 그 “보상”으로 인간을 구원하신다는 것이 김기동 목사의 구원론이다.


II. 인간 창조 과정


“그러므로 창세기 1장 27절의 사람과 2장 7절의 사람은 그들의 임무도 다르고 출발도 다릅니다. 창세기 1장 27절에는 흙으로 사람을 짓되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라는 복수를 썼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2장 7절에서는 ‘그’라는 단수를 씁니다.”(베원 p.639).


즉 창세기 1장의 창조와 2장의 창조가 서로 다른 것이며 서로 다른 종류의 인간이 있다는 것이다. 김기동 목사는 자신의 교리가 “이중아담론”이라 불리우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으면서 자신은 성경이 기술한 그대로를 따를 뿐이라고 항변한다.


“창세기 1장 27절의 남자와 여자는 오직 흙으로만 만들어진 동물적 존재이고, 아담은 ‘사는 영’으로 항구적인 존재입니다.”(베아 10.30)」(베원 p.269, 676)

“성경은 분명히 창세기 1장에서 “사람을 창조했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동시적으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창세기 2장에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그 다음에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었다”고 말합니다.“(베원 p.169,170)

“창세기 1장 27절의 남자와 여자는 땅에 충만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준수한 사람을 에덴으로 이끌어 내셨습니다. 땅의 충만한 자 중에 선택된 그는, 생김새부터 정신과 여러 가지 면에서 가장 준수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베원 p.642).

“호흡하는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니 사람이 생령이 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인간은 영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사람입니다. 흙으로 된 육체 자체는 이미 완전한 인격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생기를 부어 영적 존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완전한 인격이면서 동시에 영적 존재입니다.”(베원 p.270),

“그래서 아담이 되었습니다. 아담은 생령이라는 의미입니다.”(베원 p.269).


III. 아담과 네피림


김기동 목사는 창세기 1장에서 사람을 만든 후 오래 세월이 지나간 후에 그중에 가장 개량된 인간 하나를 골라 그의 코에 생령을 불어넣어 영(靈)을 소유한 유령인간(有靈人間)이 비로소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그 이전의 인간은 영이 없는 “무령인간(無靈人間)이었다고 주장한다. 이 무령인간이 바로 창세기 6장의 “네피림” 곧 거인들이라고 한다.


“한 사람 아담이 선택되고 나서 영적으로 모두 낙오자가 되었습니다.(베아 14.31)

“성경에는 나팔은 나오지 않고 네피림만 나옵니다.”(베아 16.27).

“인류의 조상을 뽑는 심사에서 ‘탈락’된 사람들이 영이 없는 네피림들입니다”(베아 10.31).

“하나님께서 한 사람 아담을 선택하기 전에는 아직 네피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선택된 후 나머지 사람이 네피림이 되었습니다.”(베원 p.679).

“네피림이 거인과 같이 건장했고 그들이 하는 일이 주로 벌목이었지, 네피림 자체의 뜻이 벌목꾼은 아닙니다.”(베아 16.27).

“이들은 인격과 도덕 문화가 있는 건장한 장수였습니다.”(베아 14.31) (p.679)

“창세기 6장 1~2절에…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아담의 후예입니다. 영적인 자녀들이 아담의 후예들입니다.“(베원 p.648).


그러나 이러한 김기동 목사의 주장은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


“육체의 사람은 아름다움에 대한 관념이 없고 그저 생식하기 위해서만 존재합니다. 육체의 사람은 발정할 때만 가능하지 그 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성(性)에 대한 자유의지는 아담의 후예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영이 없는 네피림들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영을 소유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행동한 것입니다.”(베아 22.31)

“이들은 외모로는 쭉쭉 뻣어 멋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후예는 육체의 아름다움을 보고 결혼했던 것입니다”(베원 p.648)

“이렇게 계속되다 보면 결국 하나님의 아들은 멸종되고, 이 땅에 생령을 지으신 목적도 이룰 수 없으므로 하나님은 노아의 홍수로 이들을 쓸어버리셨습니다.”(베아 15.25) (p.678)

“홍수 이후 네피림은 모두 멸종되었으며 영이 있는 아담의 후예만 번성하게 되었습니다.”(베원 p.679)


 


IV. 아담은 “가장 개량된 인간”이다?


“이렇게 예수는 가장 개량된 인간 속에서 오셨습니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 그리고 유다 중 다윗의 혈통에서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것입니다.“(베아 18.30).

“마리아가 태어날 때까지 열등한 것은 계속 끊어지고 우수한 것만 하나님의 보호 아래 개량되어 나왔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 다윗의 세계’는 그만큼 개량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가장 개량된 가정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습니다”(베원 p.643).

“인간은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입니다. 예수께서 일을 마치시면 모든 것이 필요 없어집니다. 예수 이전까지는 인간을 이미 정해진 그릇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하나님의 목적은 다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인간의 용도는 다한 것입니다.”(베아 18.30) (p.691)


김기동 목사에 따르면 인류는 원래 영이 없는 동물 같은 피조물(무령인간)로 지음을 받았으며, 그 중에 가장 우수한 자 곧 아담이 선택받았으며, 쓸모없는 나머지 무령인간들은 홍수로 폐기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생령”인 아담의 후예인 “하나님의 아들들” 중에서도 노아-아브라함-다윗의 혈통이 개량을 거듭하여 “가장 개량된 인간”으로 구성된 “가장 개량된 가정”에서 예수님이 오셨다고 한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의 멸망을 이루셨으므로 인간은 그 기능을 다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김기동 목사의 인간의 창조 과정은 다윈의 진화론적 적자생존의 논리이며,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우생학(優生學)적 실험의 결과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말하는 것이다. 김기동 목사는 인간을 하나님의 의도를 위한 고안된 도구, 품종 개량을 위한 실험 대상, 동시에 죄인들을 구원이 필요없는 “하나님의 아들들”로 만들어 놓았다.

■ 천사론


이번에는 김기동 목사의 천사론을 살펴보자.


1. 천사의 정체


“천사는 심부름하는 자입니다. 천사는 하늘에 있는 피조물로서 하늘에서 창조된 자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하늘에서 지음 받은 자입니다.”(베원 pp.215,216).

“천사는 바람같이 주님을 섬기는 종입니다. 절대로 천사는 섬김을 받을 수 없습니다.”(베원p.229).

외형적으로 천사에 대한 김기동 목사의 견해는 별 무리가 없는 듯하다.


2. 천사에 대한 비성경적인 해석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다음 인용문을 보자.


“성령과 함께 천사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권능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은 ‘천사를 주옵소서!’라는 뜻과 같습니다.”(베원 p.241).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행 1:8)는 ‘성령이 임하시면 천사를 얻고’로 바꾸면 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권능’은 천사를 말하고, 2장 2-3절의 ‘바람,’ ‘불의 혀’ 등도 모두 천사입니다.”(베원 p.241)

 

김기동 목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성령님이 임하실 때 성령님과 함께 천사들이 온다고 말한다. 즉 성령의 ‘권능’이 ‘손가락’ 즉 ‘천사’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김기동 목사의 이러한 주장은 전혀 터무니없는 자의적 해석이다. 성경 어디에도 “성령” 혹은 “능력”이란 단어가 “천사”를 의미한 적이 없으며, 성경은 그리스도인 각자에게 성령님과 함께 천사들을 주셨다고 말하지 않는다.


3. 천사들의 이용


“우리도 천사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천사를 오게 하여 돕게 할 수 있고 일하게 할 수 있습니다.”(베원 p.246).

“우리가 더 신령하고 더 겸손하고 더 믿음이 있어서 주님을 의지하면 할수록 더 많은 천사를 대동할 수 있습니다.”(베원 p.249).

“지혜가 부족하면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에게 지혜의 천사를 보내 주십니다.”(베원 p.237).

“기도를 많이 하여 많은 천사를 동원할 수도 있고, 기도를 하지 않아 돕는 천사가 떠날 수도 있습니다.”(베원 p.237).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셔서 구원받은 성도들을 섬기게 하신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성경 어디에도 구약의 성도나 신약의 그리스도인이 기도하여 많은 천사들을 받아 그들의 그 능력을 이용하는 경우는 없다. 즉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해 천사를 어떻게 보내시고 쓰실지 자신의 권한 하에 두셨다는 것이다. 또한 지혜를 주는 이는 지혜의 천사가 아니라, 모든 지혜의 하나님이시다(약 1:5). 기도하면 천사들을 더 보내 주시고, 기도로 많은 천사들을 동원하며, 기도하지 않았다고 돕는 천사가 떠나는 따위의 역사는 성경에는 없다. 교인들로 전능하신 주 하나님 대신 천사들을 바라보게 하는 김기동 목사의 천사 이용 교리는 변화된 형태의 천사 숭배이다.


4. 미혹의 영


“미혹의 영은 성도를 도우라고 보내신 천사 가운데서 그 사람의 신앙에 따라서 변질되어 버린 자입니다.”(마귀론, pp.250,251).

“오늘날에도 만약 신자가 자꾸 혈기를 내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유혹을 택하여 주셔서 그를 돕던 천사를 변질시켜 버리십니다.”(마귀론, p.154).


김기동 목사는 천사들을 받은 성도의 불신앙이나 혈기로 인하여 그 천사들이 미혹의 영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증거 구절들로 열왕기상 22:19-23, 사무엘상 16:14,15; 18:8-10; 19:22,23, 에스겔 14:9,10 등을 제시한다. 이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악령들로 변질시키셨다고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주 하나님께서 악인을 심판하시기 위해 악령과 악령의 미혹을 쓰신다는 진리를 보여 줄 뿐이다.(살후 2:11,12).


5. 영적 존재들의 가변성과 불가변성


“천사장은 불가변성이 있고 천사들에게는 가변성이 있습니다. 루시퍼는 타락해서 사단이 되었고 미가엘과 가브리엘은 타락하지 않았습니다.”(베원 p.258).

“다른 천사장들은 자기의 직분을 잘 감당하고 있는데 루시퍼만 자기에게 주어진 아름다움 때문에 타락했습니다.”(베원 pp.231,232).

“피조물인 천사나 인간이 완전하다는 것은 의지의 자유, 완전한 선택의 자유가 있음을 말합니다.”(베아 15.27) (베원 p.232).


김기동 목사는 천사들과 천사장 등의 영적 존재들에게 가변성과 불가변성을 주셨다고 말한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미가엘과 가브리엘에게는 불가변성을 주시고, 사탄과 그의 악한 천사들에게는 가변성을 주셨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탄의 타락을 조장하신 것이 아닌가? 둘째로, 만약 천사들이 자신에게 맡겨진 성도의 상태에 따라 변질되고 타락한다면, 처음부터 천사들은 자신의 선과 악에 관한 선택의 힘이 없는 불완전한 존재가 아닌가? 그렇다면 또다시 ‘피조물이 완전하다는 것은 완전한 선택의 자유가 있음을 말한다’라는 자신의 진술에 위배되는 모순이다.


6. 하나님의 전권대사


“여호와의 사자는 하나님의 대사, 즉 하나님의 큰 심부름꾼입니다”(베원 p.220).

“구약에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현현한 하나님의 전권대사인 천사가 있었는데, 그 천사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천사 중 하나가 여호와 이름으로 나타난 것입니다.”(베원 pp.224,225).

“구약 때 하나님을 보았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현현한 천사를 본 것입니다.”(베아 18.11)


김기동 목사의 천사론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천사들을 받았으며 불신앙이나 혈기로 이 천사들은 미혹의 영들로 바뀌어 평생 성도들을 괴롭힌다. 그에 따르면 사탄과 그의 타락한 천사들 외에도 “불신자의 사후존재인 귀신들”과는 별도로, 변질된 천사들인 미혹의 영들까지 성도들을 대적한다는 것이다.

■ 귀신론


베뢰아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부분이 바로 귀신론이다. 그가 주장하는 귀신론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귀신론과 관련된 그의 서적들을 신중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처음에 주장하던 것들과는 달리 말을 계속 번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귀신론과 관련된 그의 책은 10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1985년에 발간된 <마귀론>이며 후미에 귀신론이 다루어지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예수를 모른다면 마귀를 모르고 마귀를 모른다면 예수를 모른다”는 말을 남겼다.(1985년, 마귀론, p.14) 두번째는 1986년에 나온 <귀신이란>인데 이것은 귀신론만 다루었다. 세번째는 1988년 <마귀론>을 수정 보완한 <마귀란?>인데 여기에서는 종전과는 달리 귀신의 정체를 한국 표준어 사전의 정의를 근거로 주장하고 있다. 네번째는 1988년에 나온 <성서적 신학적 현상적 마귀론>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귀신론이 학설이며 이론이라고 했다가 다음에 성서적이라는 말을 첨가했고, 이 책에서는 현상적이란 말을 더하고 있다. 다섯째는 <사람에게 접근하는 영>, 여섯째는 <미혹의 영>, 일곱째는 <영혼을 그늘지게 하는 요소>, 여덟째는 <진리로 마귀를 대적하라>, 아홉번째는 <내가 체험한 그리스도의 신유와 거룩한 이적>이다. 마지막으로 2007년에 <귀신은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것이다.  이 책은 김기동의 귀신론에 대한 최종적인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김기동은 귀신을 쫓아내는 것 때문에 한국 교계가 자신을 이단이라고 정죄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추종자들의 동요를 막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이 때문에 ‘이단’이니‘잘못되었다’느니 하는 여러 말로 정죄를 받고 무시하는 말로 인격 모독의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이다.”(귀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p. 64)

“나는 기독교 일각에서 심한 박해도 받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에 대하여 도덕성이나 윤리적인 문제를 짚고 나온 사람은 박해자들 중에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오직 귀신 쫓는 사람이라는 것만을 가지고 정죄하고 무시하고 경계하고 있다.”(같은책, p.104)


 

1. 귀신은 예수를 믿지 않고 죽은 사람의 영혼이다.


“귀신이 불신자의 사후 존재라는 것은 저의 학설이며 이론입니다.”(1985년, 마귀론, p.179)

“귀신의 정체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어떤 이는 천사가 타락한 것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이렇게, 다른 이는 저렇게 말하나 나는 의견을 달리합니다.  귀신은 믿지 아니하는 자의 영혼, 즉 불신자의 ‘사후(死後)존재‘라고 정의합니다.“(귀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p.79)

김기동 목사는 구원받은 자는 꿈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꿈에 나타나는 영혼(귀신)은 그가 생전에 불신자였을 때 믿지 아니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교회에 착실히 다녔거나 신앙이 신실했던 자는 그의 가족의 꿈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는 확실한 사실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낙원에 가기 때문에 그의 가족들은 꿈에서라도 보고 싶어 하지만 꿈에 나타나지 않습니다.”(귀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p.85)


김기동 목사 불신자의 사후 존재가 귀신이라는 이론이 성경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인 학문, 즉 신학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은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마귀론 상(上), 학문 연구는 제한이 없어야 하며 무한한 자유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책에서는 ‘성서는 신학보다 위에 있고, 신학은 무너지고 흐트러지나 성경은 영원하다’라고 했다.(성서적 신학적 현상적 마귀론) 

김기동 목사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귀신이 불신자의 사후 존재라는 것을 주장하면서 체험적으로 나타나는 각종 사례들을 열거했다.  자신의 그러한 주장은 이 분야의 고급 지식인으로의 충분한 자격이 있기 때문이며 절대로 비웃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귀신에 관한한 자신은 세계적인 지도자이며 또한 대형 교회 목사이자 대학 총장이기 때문에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말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비웃지 말라.  고급 지식인인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내가 반세기 동안 집중적으로 연구한 문제이기에 그렇게 말할 능력과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교만한 말을 하자면 내가 알기로 이 분야에서 나는 세계적인 사람이다.  나는 전 세계를 골고루 다니면서 영적 지도자들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지구를 팔십 여 바퀴를 돌며 지도자들을 가르쳐 왔다.  현재 대한항공의 마일리지가 이를 증명해 준다. 나는 기독교회 목사로서 큰 교회의 목회자이며 대학 총장으로서, 수백권의 책을 저술한 사람으로서 도덕성이 있는 사람이다”(귀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p.104)


그러나 자신의 귀신론이 성서적인 근거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던 김기동 목사는 1988년 갑자기 자신의 귀신론은 성경이 명제적으로 밝히지 않은 것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귀신의 정체에 대해 성경이 명제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는 말은 사실입니다.”(1988년 성서적 신학적 현상적 마귀론, p.213)


김기동은 천사는 육체를 소유하지 않은 존재이므로 결코 귀신이 될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마가복음 9:25의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은 천사가 아니라 자연수명을 다 살지 못하고 죽은 귀먹고 벙어리였던 자라고 한다.  한편, 김기동은 자신의 귀신론과 관련하여 한국 교계가 서양 신학자들의 영향을 받아 능력을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현대 서구 신학의 영향을 받아 귀신으로 말미암은 문제를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에서 취급하도록 넘겨 버렸고, 또 기독교가 이 문제를 다룰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마귀론 하, p.16)


그러나 나중에 다시 말을 바꾸어 서구 신학자들도 불신자의 사후 존재를 귀신이라고 한다는 말로써 자신의 주장을 변호하는 모순을 보여준다. 김기동 목사는 계속해서 귀신의 수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창세기 6:3에 인간이 세상에 머무는 연수의 한계를 120년이라 했습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천 년 가까이 살았는데 노아 홍수 이후부터 사람의 수명이 줄어들었습니다. 곡식을 심으면 다 고르지 않고 위로 올라오는 것도 있고 내려가는 것도 있듯이 하나님이 인간의 연수를 120년이 하신 것은 평균수명이기에 다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곳은 더위와 영양부족으로 설흔네 살이 최장수인 곳도 있습니다. ‘엘리야가 죽을 병이 들매’라고 한 것은 늙어 죽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이는 자연수명을 말하는 것입니다.”(마귀론 p.180)

“자기 수명을 다하고 갔다는 귀신은 없고 모두가 비운에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병이나 사고로 죽었거나 자살했거나 타살된 사람들입니다. 귀신들이 사람 몸에 들어와 있는 기간은 대략 1-2년에서 30년 가량입니다. 그러면 귀신들이 어디에 있었을까요? 사람의 수명은 보통 70-80세이나 120년을 최고로 하여 90-120년으로 자연수명을 잡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갑의 자연 수명이 90세인데 그가 50세에 병들어 죽었든 자살했든간에 비운에 사망했습니다.  그러면 90세에서 50세를 제한 나머지 40년간 귀신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간입니다. 이 귀신은 40년 간을 가족이나 친척 등으로 전전하면서 남은 자연 수명 기간 동안을 사역하는 것입니다.”(성서적 신학적 현상적 마귀론, p.226)

“귀신은 죽은 사람의 사후 존재임을 밝히지만 이때 자연사(自然死)했다는 사람의 이름을 대는 경우는 지난 사십오 년간 단 한 건도 보지 못했다. 모두가 병들어 죽었거나 사고를 당해 죽었거나 자살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백 세 이상 되어 죽었다는 사람의 이름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귀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p.81)


김기동 목사는 영(靈)이 없는 네피림들의 딸들이 하나님의 아들들과 낳은 자가 영는 없는 사람(네피림)이 되었기 때문에 이때부터 사람의 수명을 120년으로 제한했다고 한다.  만일 어떤 불신자가 80세에 죽었다면 나머지 120세가 될 때까지 나머지 40년 동안 귀신이 되어 세상을 떠돌아 다니며 120년이 다 차면 무저갱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사람의 자연 수명을 일백이십 년으로 보았을 때, 죽은 사람이 살았을 때 사용한 나이를 제외한 나머지 기간 동안에는 귀신으로 활동하다 거의 그 자연 수명에 이르게 되면 그 후로는 자동적으로 무저갱에 들어간다.  무저갱은 영원한 심판의 날까지 갇혀서 도무지 나올 수 없는 곳이다.(귀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p.86)


2.  모든 병의 원인은 귀신이다.


김기동 목사는 모든 질병의 원인은 귀신이라고 주장한다.(성서적 신학적 현상적 마귀론, p. 224) 

사람의 몸속에 들어와 있는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를 움직여서 병이 들게 하는 결정적인 원인자가 바로 귀신이라고 보는 것이다.  귀신은 사람의 영혼과 육체의 중간인 신경계통에 거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어린아이들의 귀신들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유아에게는 의지가 없습니다. 그의 의지는 그 생모에게 있습니다. 어린 아이의 생에 관한 애착은 그 생모가 소유합니다. 따라서 생모의 의지 속에서 귀신을 추방할 때 어린 아니는 그 즉시 병고에서 해방됩니다. 유아라 함은 7-8세 이내를 말합니다. 그리고 8-9세부터 15세까지의 경우에는 그 생부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야 합니다. 유아의 의지는 생부에게로 의지가 전환됩니다. 그 다음 16세부터는 완전히 의지가 독립되므로 자신의 의지로서 쫓아내야 할 것입니다”(성서적 신학적 현상적 마귀론, p. 228-229)

“귀신은 사람의 의지를 속이고 들어오기 때문에 7세 이하의 아이들은 의지가 어머니에게 있어 그 어머니 속에 있는 귀신을 쫓아내면 됩니다. 그러나 7세 넘은 아이들은 엄마에게서 의지가 벗어나 아버지에게로 옮겨갑니다. 이들의 의지가 엄마 속에 있을 때는 엄마를 무서워 하지만 엄마에게서 벗어나면 말을 잘 듣지 않고 아버지를 더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대략 8세부터 15세 까지의 의지는 아버지에게 속합니다. 그러나 그 때의 의지는 자기의 의지 절반, 아버지의 의지 절반입니다.”(마귀론 중 116쪽)


김기동 목사는 오락가락 수시로 말을 바꾸기 때문에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귀신은 사람의 영혼 속에는 들어오지 못하지만 육체 안에는 들어올 수 있습니다.”(마귀론 하 63쪽)

그러나 그는 말을 바꾸어 귀신이 마음과 육체로 쉽게 들어온다는 주장을 하였다. 

“귀신이 영적존재라는 말은 사람의 마음과 육체 어느 부분에나 쉽게 침범 할 수 있으며 또 쉽게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마귀론 하 113쪽)


그 다음에 또 말을 바꾸어 귀신이 영혼과 육체의 중간계통인 신경계통과 의지에 들어온다고 주장하였다.


“귀신은 사람의 영혼과 육체의 중간계통에 들어가 신경계통과 의지 속에 있게 됩니다. 귀신은 신경계통과 의지 속에 들어가기 때문에 동물 속에도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동물은 비인격체이기에 귀신이 인격적인 역사는 못하나 신경동작으로는 유도할 수 있습니다. 귀신은 신경이 통하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거처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마귀론 하 173쪽)


그리고 또 말을 바꾸어 신경계통이 마음이라고 주장하였다.


“예를 들어 발가락 끝에 신경이 있다면 귀신은 그곳에 고통이 있게 하며 그곳을 사역할 수 있는 장소로 삼습니다. 이 신경계통을 의식 또는 마음이라고도 합니다.”(마귀론 중 110쪽)


즉, 7세 이하의 어린이에게는 의지가 엄마에게 있으므로 귀신이 그의 어머니의 의지로 들어오고, 8-15세의 어린이는 의지가 아버지에게 있으므로 귀신이 아버지의 의지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귀신이 영혼과 육체의 중간인 신경계통에 들어온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아버지의 의지에 들어온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이것은 너무도 터무니없는 주장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체험을 마치 진리인 양 가르치는 억지 주장이다. 


김기동은 이렇듯 모든 병의 원인이 귀신이라고 해놓고 나서 디모데의 병에 대해 언급한 사도 바울의 말이 맘에 걸렸는지 다음과 같이 변명하고 있다. 


“성경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디모데에게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는 기록에 지나치게 집착되어 병의 원인은 귀신이라는 말에 회의적입니다. 그러나 이는 교습받는 일꾼으로서 아직 영적 경험이 미숙한 디모데가 그의 지병을 처리하기에 미약했던 것을 말한 것입니다.(같은 책, p.235)


또한 병들어 약을 먹는 문제에 대해서도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모든 병의 원인이 귀신이라면 약을 먹고도 병이 낫는데 약이 귀신을 추방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약은 병을 완치시킨다기보다는 예방하는 것입니다. 귀신은 사람의 육체에 붙어서 병균을 가져오고, 또 계속 파송합니다. 귀신이 사람의 몸에서 떠난 다음, 병균만으로는 인체 내에서 스스로 견디기가 힘들게 되어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병균은 모두 사멸되고 맙니다.  병균을 보내는 원인은 영입니다.(같은 책, p.236)

“나도 건강을 위하여 병원에 가거나 때로는 소화제를 복용하기도 한다. 건강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도 얻고 또한 지도받기도 한다. 이는 내가 밥을 먹으면서 찬을 곁들여 먹는 것과 같은 것이다.”(귀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p.52)

“암 덩어리는 수술하여 제거하고 암의 원인은 예수의 능력으로 추방한다면 재발 없이 완전해질 것이다.”(같은 책, p.53)


김기동 목사는 귀신들의 기를 꺾는 것은 기도가 아니라 성도의 신앙생활과 헌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는 기도 외에는 아무도 귀신을 쫓을 수 없다고 하셨다.(막9:29)  그러나 김기동은 성도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며, 여기에 헌신이 빠지면 귀신의 기를 꺾을 수 없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교인들에게 헌신헌금을 강조하기 위한 억지 주장이다.   


“헌신은 귀신이 속일 수 없는 실상이므로 귀신은 헌신하는 자들 앞에서는 거의 절망적이다.  철저히 하나님께 순종하고 감사하며 그가 명령하신 섬기는 도리를 다하라.  그리하면 귀신은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이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그의 계명을 지키며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자들에게서는 귀신들이 활동을 더 하지 못하고 조용히 잠복하거나 견딜 수 없어서 스스로 떠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을 하는 것은 늘 귀신을 제어하는 일이다.  인색하지 말고 주를 섬기는 기쁨이 충만하면 귀신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를 두려워 한다. ”(귀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p.188-189)


김기동의 주장에 따르면 귀신은 다음과 같은 통로를 따라 들어온다고 한다. 

① 충격을 통해서, ② 부정적 관념을 통해서, ③ 혈기를 통해서, ④ 담배연기를 통해서, ⑤ 내성적인 성격을 통해서, ⑥ 자포자기하는 마음을 통해서, ⑦ 불신자의 죽음을 슬퍼할 때, ⑧ 제사를 지낼 때, ⑨ 깜짝 놀랄 때이다. 


또 다음과 같은 자신의 체험적인 진단을 통해 귀신이 들어왔는지를 자가진단할 수 있다고 한다.

① 유전으로 병으로 오는 것, ② 왕신단지 섬기는 집에 살면서 우환이 끊임없이 계속될 때, ③ 차멀미나 배멀미를 하는 것, ④ 어두운 곳이나 골목에 들어설 때 머리칼이 쭈뼛할 때, ⑤ 점치러 다니거나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하는 것, ⑥ 죽고 싶다는 좌절감을 갖게 될 때, ⑦ 앉거나 설 때 어지러울 때, ⑧ 각종 신경질환도 귀신이 들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기동은 질병 뿐 만 아니라 모든 사고의 원인도 귀신이라고 한다.  무엇인가를 잘 잃어버리는 것도, 자주 화재를 당하는 것도, 매를 맞는 아내 속에는(이때 때리는 남편은 귀신이 아니라 미혹의 영에 지배를 받는다고 함) 귀신이 있기 때문에 아내 속에 있는 귀신을 쫓으면 남편이 안 때린다고 한다.  또한 도둑질하는 것도 귀신의 역사이며, 연탄가스를 마시게 하는 것도 귀신이라고 한다. 

김기동이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도 성경의 가르침과 전혀 다르다.  서울 성락교회가 발간한 ‘신유기도의 길잡이’란 내용을 보면 축사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유기도의 길잡이. 기초상식 4번, 5번

“목사가 묻는 말은 당신에게 묻는 말이 아니고 귀신에게 묻는 말이니 혼돈하지 마시고 당신의 의지로 대답하지 마시오. 귀신이 대답할 때는 큰 소리로 시원스럽게 대답하는 것이 좋습니다. 답답하게 얌전빼지 마십시오. 울고 싶을 때는 속이 후련하도록 하소연 하면서 실컷 우십시오.  정신이 아찔하며 주저앉거나 쓰러지는 순간에 귀신은 나가는 것입니다. 안 쓰러지려고 노력하지 마십시오. 이때 쫓겨 나가는 귀신을 자신들이 볼 수도 있습니다. 목사의 눈은 당신에게 붙은 귀신을 볼 수 있습니다. 명찰을 달고 죽은 귀신은 심지어 이름까지도 볼 수 있습니다.”

“더러운 귀신, 귀신은 더럽다, 심방 갔다가 집이 더러우면 집 청소해 주라. 귀신은 잔인하게 다뤄라. 만물의 찌꺼기다. 똥 같은 귀신아, 꾸짖을 수 있다. 잔인하게 욕설로 소리쳐라.”

“귀신은 저주해서 꾸짖어서 내어 쫓는 것이다. 귀신 쫓아내려면 욕 잘하는 은사 도움 받으라 ‘이놈’, ‘쌍년’, 목사가 경건치 못하다고 만류하면 귀신 못 쫓는다”

“귀신을 미워하며 저주하고 추방하라. 귀신은 인격을 가지고 있기에 자기를 미워하고 저주하면 싫어한다.  귀신이 나가는 속도와 미워하고 저주하는 분량과는 정비례한다. 그 귀신이 아무리 부모나 친척이나 남편, 아내, 자식이라 해도 관계하지 말고 추방해야 한다.”

“환자와 귀신의 의식을 분리시켜라. 귀신도 인격적 존재이니 의식이 있다. 마음을 평안이 하여 환자의 의식을 아래로 가라 앉히고 귀신의 의식은 위로 떠 올리게 한다. 즉, 자기 의식을 밑으로 가라 앉히는 방법은 ①환자로 하여금 귀신을 미워하게 함으로서 귀신의 의식을 위로 밀어 올리고 ②심호흡을 해서 무심한 상태로 들어가서 자신의 의식을 가라 앉히고 긴장을 풀게 한다. 또 ③환자로 하여금 축사자의 말에 신경 쓰지 않게 하고 ④주위에 누가 있던지 도무지 의식하지 않게 한다. 환자가 귀신을 미워하는 정도에 따라 귀신이 나가는 시간이 단축된다.”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나가라고 명령하라!  당신의 머리에 손을 얹고 명령하라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귀신아 내몸에서 나가라! 나가라!힘있게 외치라! 하나님이 함께 역사하신다 이때 귀신의 의식이 눈을 통하여 나타나면 환자의 눈동자는 ①고정되고 ②깜박거리지 않으며 ③동공이 커진다. 이 때 축사자는 귀신을 꾸짖고 정체를 밝힐 수 있다. 예수께서도 축사하실 때 더러운 귀신을 꾸짖고 잠잠하게 하신 후 나가라고 명하셨다”


≪성락교회 교인들의 귀신축사 간증사례≫


(사례 1) “낙원 간 줄 알았던 남편 귀신으로 드러나”- 김효순

“신앙생활한지 28년 정도 되었으니 강산이 3번은 변했을 오랜 기간 동안 저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참 성도다운 삶을 살게 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핑계같지만 전에는 제가 벌어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집안사정으로 인해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신앙생활은 엉망이었습니다. 말씀대로 믿는 신앙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바쁜 와중에도 성경교육의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나갔지만 오히려 그 외의 것들은 제대로 챙기지 못했습니다. 주일성수를 범할 때도 많았으니 말 다한거죠.

그러다 보니 사는 게 형통치 않았고, 시댁과의 갈등도 심각해졌습니다. 아마 시부모님과는 20년이 넘게 마음을 닫고 왕래가 없이 살았던 거 같습니다. 내 삶은 왜이리 고단한가를 고민할 때마다 ‘땅에서 풀려야 하늘에서도 풀린다’는 말씀이 떠올라 마음이 불편했지만 시부모님을 향한 마음 속 원망과 미움은 이미 나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단계까지 와 있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나와 내 가족들이 처한 환경은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면서도 하나님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어느날 돌아본 나는 영혼이 그늘지고 무뎌져 영적 갈급함조차 느끼지 못하는 종교인에 다름아니었습니다.

지금도 감사한 것은 내 영적 상황과 환경을 바꾸고자하는 마음은 있으나 실천할 힘도 없는 내게 하나님께서 영혼현상연구소를 알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한 집사님의 안내로 영혼현상연구소를 처음으로 찾게 되었고 이후 주중에 1∼2회씩 방문해 축사에 관한 교육을 받거나 축사를 받았습니다.

영혼현상연구소에서 전  김기동 목사님의 저서인 「성서적 신학적 현상적 마귀론」을 중심으로 교육과 상담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축사도 받았습니다. 이렇게 꾸준한 측사생활을 시작하자 내 모습이 점점 변해갔습니다. 전에는 주일예배를 드려도 기쁨이 없었고, 주님을 향한 열정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축사 후부터는 예배를 드리면 기쁨과 감사가 넘쳤고 주님께 대한 사랑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전에는 성경을 읽어도 1∼2장을 넘기기 어려웠습니다. 그것도 지루해하며 읽었죠. 그런데 이제는 왜 하나님의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다고 하는지 깊히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성경 읽는 일이 즐겁고 쉽습니다. 어느날은 성경을 상고하는 중에 깊은 회개가 터진 적이 있었는데 이후 저는 주님과 더욱 친밀해졌습니다.

또 다른 변화는 기도하지 않으면 살 수 없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기도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기는 하는 걸까하는 의문에 종종 사로잡혔었는데 이제는 기도 중에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으니 어찌 기도를 쉬겠습니까?

한번은 영혼현상연구소에서 축사를 받았는데 구원 받아 낙원에 가있는 줄만 알았던 남편이 귀신이 되어 드러났습니다. 교회를 다녔고 예수를 영접했다고 생각했었기에 귀신이 되어 드러난 남편은 내게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사실 가끔 꿈에 한번씩 보이기는 했어도 ‘설마 귀신이 됐겠어?’라며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내게서 드러난 남편귀신은 시댁 식구들과 나를 이간했고 물질이 들어오는 길을 막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귀신이 밝힌대로 나는 시어머니와 사이가 무척 나빴고, 시댁과 관계가 멀어지면서 물질적으로도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귀신이 내게서 궁극적으로 바랐던 일이 뭔지 아십니까? 내게 물질의 어려움을 주어 직장생활을 하게 하고 그로 인해 신앙생활을 못하도록 방해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귀신은 성도들의 육체에 들어와 환경을 방해하고 결국 영적생활을 못하게 해 주님과의 관계를 끊어놓으려 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은 후 놀랍게도 오랫동안 소원했던 시부모님과 관계가 원만히 회복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앞으로 내 영혼과 내 삶에 더욱 큰 복과 형통을 주실 하나님께 모든 영광 돌립니다.“ (출처 : 주일신문 제 841호) 


(사례 2)“사춘기 아들의 방황, 혈압약 끊자 혈압수치 정상으로 회복”-민순필

“우연찮은 기회로 참석하게 된 남성목장예배가 내 신앙생활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되었다. 그날은 마침 「마귀론」(김기동 목사 著)을 읽은 후 목장식구들끼리 서로 축사를 해주는 형태로 예배가 진행되었다.   당시 나는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 때문에 심적 고통을 겪고 있던 중이었다. 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던 우리 아들은 학교 등교 후에도 공부하기가 싫어지면 교실에서 빠져나와 학교 근처의 교회 기도실에서 실컷 잠을 자고 오곤 했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집으로 전화를 걸어 아이의 행방을 묻곤 했는데 그런 횟수가 잦아지자 나는 아이의 학교에서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곤 했다. 학교생활에 적응 못하는 아들에 대한 염려로 인해 많은 시간을 기도에 할애하면서도 내 마음은 늘 그늘져 있었다.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던지라 우리 아들은 여느 아이들처럼 세상 즐거움에 취해 지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도 방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학교 선생님이 아이의 학교출석일수가 모자라 고등학교 진학이 어렵다는 연락을 해왔다. 안 그래도 아이 생각만 하면 마음이 답답하고 왠지 불안했는데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이후 아이를 설득도 하고 뜻을 다 받아 주기도 하고 과외선생님도 붙여주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이렇다 할 결과는 볼 수 없었다.  
나는 바로 그러한 상황에서 남성목장예배를 참석했던 것이다. 그날 「마귀론」을 읽으면서 내 자녀의 문제가 영적인 원인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 애는 왜 이렇게 속을 썩이나? 왜 다른 아이들 같지 않을까?’ 하는 아이에 대한 원망과 불만이 있었는데 이러한 영적인 사실을 알고 보니 오히려 회개가 나왔다. 그동안 돈을 벌기 위해서 사업장에 마음을 쏟느라 자녀의 영혼을 진정 돌아보지 못한 내 모습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예수여!” 하고 몇 차례 간절히 부르짖은 후 축사자로부터 축사를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이 아랫배에 엄습해 들어왔다. 그 고통이 어찌나 심한 지 축사자가 손을 살짝 얹었는데도 나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듯 누워버렸다. 

난데없는 상황에 나도 놀랐지만 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은 더 큰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모범적으로 교회활동을 해왔으나 귀신이 소리 지르며 드러나는 영적인 현장은 그날 처음 목격한 것이었다. 더욱이 가장 가까운 아내에게서 귀신이라는 영적 존재의 실체가 생생히 드러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축사자가 내게서 귀신을 쫓을 때 손이 마구 흔들렸다. 그러다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온 몸을 흔들어댔다. 평상시의 내 모습을 생각할 때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 표출된 것이다. 축사자가 귀신에게 정체를 물으니 자신은 생전에 무당이었다고 토설했다. 귀신의 이같은 고백은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니며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만은 꼭 지켰던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예수 믿은 지 수 십년이 된 내게 어떻게 무당귀신이 숨어들어와 있었는지, 당황스럽고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 무당귀신은 자신이 우리 아들을 방황하게 했다고 털어놓았다. 

무당 귀신을 쫓아 낸 이후 아이의 방황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학교 결석이나 조퇴 횟수도 줄었고 집보다는 밖으로 나돌던 아이의 귀가 발걸음도 빨라졌다. 고등학교 진학도 어렵다던 우리 아이는 현재 고등학교에 진학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하루는 귀신을 쫓으니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드러났다. 놀라운 것은 비록 병중이긴 했지만 시어머니는 생전에 전도되어 나와 함께 교회를 다녔다는 것이다. 임종 때도 곁을 지켜드리며 끝까지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왔는데 결과는 그리되어 나타난 것이다. 아마도 시어머니는 병도 들고, 가족들의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어 형식적으로 교회에 다닌 것 같았다. 

시어머니 귀신이 예수 이름으로 쫓겨나간 후 남편은 정신이 번쩍 든다며 앞으로 영적생활 제대로 해야겠다고 각오했다. 시어머니는 혈압으로 돌아가셨는데 귀신을 쫓은 후 나는 7년간 먹은 혈압약을 완전히 끊을 수 있었다. 더구나 혈압약을 먹으면서도 늘 혈압수치가 높았는데 귀신을 쫓고 약을 끊은 후에는 오히려 혈압이 정상으로 회복됐다. 

그리스도인은 합법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한 자다. 그럼에도 많은 신앙인들이 예수 이름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아 원수에게 속고 무능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사례를 통해 많은 신앙인들이 귀신을 쫓고 마귀를 대적하는 영적 전투에 적극 나서며, 승리하기를 바란다. 그러할 때 자녀 문제와 질병의 문제를 비롯한 인생의 제반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다.“ (출처 : 주일신문 제 759호)

■ 구원론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교제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죄 아래 놓여 있는 죄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구원받는 일이다. 따라서 혹자가 구원에 대해 거짓 교리들을 주장하며 이를 유포하고 있다면 그는 혼들을 지옥에 보내는 사탄의 종으로 쓰임을 받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번에는 김기동 목사의 구원론에 나타난 문제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예수 바깥에서는 구원이 없습니다.”(베원 p.382)

“믿음이 있으면 당연히 천국에 들어갑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베원 p.379).

“우리의 믿음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때 우리는 구원을 얻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으면 결코 구원받지 못합니다.”(베원 p.390).

위 진술을 보면 바른 구원론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는 구원론을 조금 더 면밀히 살펴보면 성경과 전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기동 목사에게 있어서 구원은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받아 영원한 하늘나라를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질병과 가난과 형통치 못함, 부정적인 현실”에서의 구원을 말한다. 지상에서의 건강과 부와 만사형통이 김기동 목사의 신학에서 실제적인 의미에서의 구원이다.

김기동 목사의 <하나님의 의도>와 <베뢰아원강>의 어느 장 어느 페이지에도 성경적 구원론, 구원(Salvation), 거듭남(Regeneration), 양자됨(Adoption), 의롭다하심(Justification), 거룩하게 하심(Sanctification), 구원의 영원한 보장(Eternal Security), 영화롭게 하심(Glorification)에 대한 진지한 고찰은 없다. 다만 예수 믿으면 귀신이 가져온 병과 가난과 불운을 추방할 수 있다는 것이그가 주장하는 구원의 특징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귀신을 쫓는 것은 능력 가운데 최고의 능력입니다. 신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을 인간이 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베아 16.18).

“예수는 이러한 세상임금을 심판하셨고, 오늘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의 권세 곧 하나님의 나라의 권세가 있습니다.”(베원 p.294).

“예수 믿으면 우리의 죄가 예수에게로 넘어가기 때문에 죄값인 사망과 저주도 모두 예수께로 넘어갑니다.”(베아 15.22).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저주가 없으니 귀신을 추방하여 모든 저주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베아 16.14), (베원 p.283)


김기동 목사는 예수의 오심은 인류의 구원의 목적이 아니라고 말한다. 만일 인류 구원의 목적이었다면 모든 인간을 구원하셨을 것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사단을 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타락과 완악함을 고려하지 않은 무지한 주장이다.


“만약 인류의 구속이 목적이라면 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구원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창세 이후 지금까지 예수 믿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인류가 그렇게 많아도 예수 믿는 사람은 지극히 적은데,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 능력으로 겨우 이 정도밖에 구원하지 못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의 인류구원은 선물이요 은혜입니다. 이 땅에서는 사단을 멸하시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사단은 완전히 멸망하고, 예수는 완벽하게 승리하시는 것입니다. 구원은 선물입니다.”(베원 p.481-482)


김기동 목사의 구원론은 “하나님의 의도”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주장하기 때문에 나중에 하나님의 의도를 언급할 때 그곳에서 다시 다루기로 한다.

■ 우주론


1. 우주의 시작


“우주는 마귀를 멸하기 위해 창조하신 것이고, 인간은 마귀를 멸하기 위해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실 길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안내하는 안내자로서 지으신 것입니다.”(베원 p.578).

“이 우주는 천사들의 하늘에서 범죄한 천사를 가둔 장소입니다.”(베원 p.584).

김기동 목사의 신학은 마귀와 귀신 중심으로 쏠려 있다. 김기동 목사는 하나님께서 우주를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유익을 위해 지으신 것이 아니라 마귀를 멸하기 위해 창조하셨다고 믿는다.


2. 우주의 구조 –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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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하늘은 영계입니다. 천사들의 하늘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영계이고, 우주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물질계입니다. 영계 하늘은 하나님이 아들을 후사로 정하시고 그를 위해 지으신 곳입니다. 즉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위해 그 아들에게 이 하늘을 맡기셨습니다.”(베원 p.509).
“하늘은 하나님의 아들의 보좌가 있는 곳입니다.”(베원 p.510).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에 들어가시기 전에 먼저 천사들을 두셨습니다.”(베원 p.526).

 

3. 우주의 구조 – 세상


김기동 목사는 그가 “우주”라고 부르는 둘째 하늘을 지하세계인 “음부”와 동일시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과 일치시킨다. 즉 김기동 목사에게는 “우주”와 “음부”와 “세상”과 심지어 “지옥”까지 동의어라고 주장한다.

“음부는 하늘나라와는 반대인 곳으로 넓은 의미로 일종의 지옥이라 할 수 있습니다.”(베아 18.29).

“하나님은 우주를 애당초 지옥으로 만드셨습니다. 흑암에서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또 음부와 무저갱과 지옥이 있습니다.”(베아 17.26).

“성경은 이 세상을 음부의 영역, 곧 지옥의 영역으로 봅니다.”(베아 19.39). 하나님께서 결박하신 이 우주 자체가 영원한 음부요, 하늘 나라와 분리된 지옥의 권세입니다.(베아 19.38). 우주는 음부가 있는 곳이고, 지옥도 우주 안에 들어 있습니다. 교도소 안에 교수대도 있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베아 19.26). 교도소 안에 교수대가 있듯이 우주 안에 무저갱도 있고 지옥도 있고 세상도 있습니다.“(베원 p.572).


4. 우주의 구조 – 지하세계


김기동 목사의 지하세계에 대한 이론을 살펴본다.


“그러므로 ‘저주를 받은 자들’ 곧 불신자들은 마귀의 심부름꾼 노릇을 한 자들로 마귀가 있는 곳에 함께 있게 될 자들이며 그들은 음부에서 활동하다가 자기 본래의 수명이 다 되면 무저갱으로 갔다가 마지막 심판 때에 부활하여 심판을 받고 영원한 형벌로 지옥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마귀론, p.40).

“지옥은 헬라어로 ‘게엔나’라 하며 쉽게 말하여 불타는 곳입니다. 어떤 의미로 지옥은 음부의 최정상입니다. 광의의 음부 안에 공중과 세상과 무저갱과 지옥이 다 있지만…”(마귀론, p.44).

 

5. 우주의 종말


“어느 날 우주는 갑자기 축소될 것입니다. 그리고 죄인과 마귀만 남을 것입니다”(베원 p.629).

“현대 과학에서도 우주는 어느 순간 마치 축구공 만하게 축소되어 버린다고 합니다.”(베아 18.17).

“마귀를 심판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야 하고, 그 길이 되어 줄 인간을 위해서 태양과 달과 별 등의 환경을 마련하다 보니 넓은 공간이 필요했지만, 마귀의 형벌이 끝나면 그 모든 것이 축소되고 말 것입니다.“(베아 16.19),(p.629).

“요한계시록 20장 14절에 사망도 음부도 지옥불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합니다. 지옥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 때 우주 안에 있는 공중도 세상도 무저갱도 다 없어진다는 뜻입니다.”(마귀론, p.44).

■ 삼위일체론


김기동 목사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기교회 침례의식을 통해 예수 이름이 삼위일체 이름임을 논증한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는 예수의 말씀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은 단수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의 이름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사도행전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데 예수 이름으로 침례 받으라는 베드로의 설교(행 2:38), 예수 이름으로 침례 받은 사마리아의 디아스포라 유대인(행 8:16),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 받은 고넬료와 그의 가족(행 10:47-48),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 받은 에베소 디아스포라 유대인(행 19:5)들을 통해 예수 이름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양태론적 삼위일체의 이단 사상이다.


“예수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이요, 아들의 이름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아들에게 주셨고, 아들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셔서 그 이름이 이제는 성령으로 우리 안에 오셨습니다. 성령은 예수 이름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김기동, 『하나님을 알자』 (서울: 베뢰아, 2000), 1983)


김기동 목사의 추리신학의 백미는 <그리스도 후사론>과 연계 선상에서 주장되는 ‘여호와의 사자론’과 ‘삼위일체론’에서 그 정체를 드러난다. ‘여호와의 사자론’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1년이다. 만물의 상속자인 예수께서 인간의 모양을 입고 죽음과 부활을 경험한 후에 하나님의 우편보좌에 앉기까지 먼저 그 보좌를 지킨 존재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하나님이 지으신 천사인 ‘여호와의 사자’라는 것이다.  그는 요한복음 1:8과 6:46을 근거로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고 그의 이름을 빌려서 나타난 천사, 즉 여호와의 사자였다고 주장한다. 

여호와의 사자인 천사가 천지를 창조하였으며, 아담과 하와를 만든 것도 모두 천사였다고 한다. 김기동 목사의 이러한 황당한 주장은 2000년 9월 4일에서 8일까지 진행된 ‘제22차 베뢰아 특별집회’에서 반복되었다.  이 집회에서 김기동 목사는 창세기 1장 26절의 창조의 주체를 천사로 표현했다. 다음은 설교 테이프를 녹취한 것이다.

“창세기 1장으로 돌아갑시다. 26절을 보시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이미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 그 형상을 따라 천사들을 인간들보다 먼저 하늘에 지어놓으셨습니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와서 여호와의 역할을 한 것을 보면 천사들과 조물주의 형상이 동일함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그들의 형상보다 못한 몸을 가진, 형체라는 존재(몸을 가진 사람을 말함)를 만들려고 하니까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사가 조물주냐?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곳에서 수종드는 자들입니다. 의사가 수술을 집도할 때보면 간호사들은 의사가 ‘가위!’ ‘메스!’ ‘바늘!’하고 손만 내밀면 이러한 것들을 줍니다. 수술하는 의사가 ‘가위 어디에 있지?’ ‘바늘이 어디에 있지?’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이 피조계를 창조하실 때 수종드는 자들이라 이 말입니다”(2000. 9. 4. 설교 테이프 2).

“창세기 1장 26절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어떤 사람들은 나보고 ‘이중 아담론’이니 어쩌구 합니다. 저들이 내 말을 들어보지도 아니하고 배우지도 아니하고서 그냥 핍박하기 위해서 끄집어 내서 이단 만들기 위해서 저들이 말을 만든 것입니다. 나는 ‘이중 아담론자’도 아니고 오직 성경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자, 보세요. 여기 창세기 1장 26절에 나오는 ‘우리가’라는 의미는 사람들이 설교할 때 이해시키기 위하여 ‘우리’라는 말을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게 ‘우리’라는 말의 의미를 하나님의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라고 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세 분이라고 하는 것으로서 삼신(三神)이 돼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라는 말을 했다고 해서 억지로 그렇게 말한다면 안됩니다. 학자들도 말을 잘못하면 큰일 난다고 생각하여 무서워서 사실 그렇게 말하고, 설교자들도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베뢰아 22차 특별집회, 죽어야 사는 길, 설교 테이프 제1번).


다음과 같은 그의 주장들은 그의 삼위일체론이 양태론임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이 누구시냐 할 때 그 하나님은 본질을 말하는 것이기에 아버지시며 이 분이 나타나셨을 때는 본체이시며 영으로 오셨을 때는 본영이라는 말입니다”(성령을 알자 p.74).

“하나님(그는 여기에서 성부를 말하고 있음)은 보이지 아니하는 성품이시고 보이는 속성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거하실 때는 성령으로 나타납니다.”(풀빛목회 1985년 11월호 p.57)

“성부는 하나님의 본질이요, 성자는 하나님의 본체이시고, 성령은 하나님의 본영입니다. 그러니까 본질로서는 아버지요, 본체 곧 형상으로서는 아들이라 하고 영으로는 성령이라는 것입니다”(베뢰아 사람,제7권, 1988년 7월호, p.40)

“하나님이 곧 성령이십니다. 성령이 예수 안에 있을 때 아버지가 되십니다(요 14;8). 아버지가 성도 안에 있으면 성령이 되십니다. 삼위의 각각 개체의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장소에 따라 불리워지는 이름이 다릅니다. 이는 곧 세모꼴을 어디서 보나 하나인 것과 같습니다. 서로 각각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은 오직 하나입니다. 각각 개체의 인격으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 얼굴을 보는 방향에서 다르듯이 말입니다. 하나님과 성령이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성령님이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는 자기가 자기 안에 있는 아버지에게 기도한 것입니다.”(베뢰아 9기, 강의녹음테이프 9-2).

“그러니까 아들의 인격, 성령의 인격, 삼위의 인격이 각각 3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인격을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서 다릅니다. 인격이 각각이면 어떻게 하나가 됩니까? 지금 큰 문제가 되는 것이 아버지의 인격이 따로 있고 아들의 인격이 따로 있고 성령의 인격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쩌면 신학적으로 굉장히 무식하고 언어학적으로 굉장히 무식한 겁니다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따로따로 생각하고 인격을 셋으로 만들면 큰일납니다. 아버지의 인격이 따로 있고 성령의 인격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여기서 볼 때 성령의 인격, 이쪽에서는 아들의 인격, 이쪽에서는 아버지의 인격 오직 인격은 하나입니다. …각각 보는 방향에서 다른 것 같이 이쪽에서 볼 때 얼굴, 뒤쪽에서 보면 뒤통수, 옆에서 보면 볼인 것 같이 인격은 하나입니다. 지금 객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인격은 한 인격입니다.”(1984년 베뢰아 강의 테이프 No.29-2)


이상과 같이 김기동의 삼위일체론은 말로만 성부, 성자, 성령의 인격이 서로 다르다고만 했을 뿐이지 사실은 구별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양태론적 일신론(一神論)이다.  그의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속내를 다 비치지 않고 비교적 정통적인 삼위일체론을 믿는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김기동 목사는 예수란 이름은 본래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라고 말하며(보이지 않는 벽 p.185), 예수의 육체는 우리의 영과 동격이라고 한다.


“예수님은 육신이 영이시기에 그 육신의 상처가 그대로 영원해지신 것입니다.”(김기동: 마귀론 p.91).

“사람은 흙이 육신이 되셨기에 티끌로 돌아가지만 예수님은 영이신 말씀이 육신이 되었기에 예수님의 육신과 사람의 영은 그 수준이 같아 육신의 죽음은 우리 영혼의 죽음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김기동 : 태초에 계신 말씀 pp.106~107).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를 보면, 여기서 ‘우리’라는 말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이가 ‘우리’라는 말을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셋이라고 하는 것으로써 ‘삼신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입니다.”(베뢰아 23차 특별성회 설교에서)


김기동은 십자가에서 죽은 분이 곧 성부 하나님 자신이며, 예수께서 기도하신 것은 자기 속에 계신 성부께 기도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그는 구약의 하나님의 신, 여호와의 신은 성령이 아니라 천사였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성부와 성령이 함께 존재하고 사역한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창세기 1장2절에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를 운행하시니라” 할 때의 그 신은 성령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아브라함이나 모세에게 나타난 여호와가 천사였던 것처럼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느니라고 한 말은 하나님이 그의 천사들로 지키게 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사자(신)은 그의 천사를 말합니다.(마귀론 상, p.65)

“구약시대에는 모두가 천사에 의해 이끌림을 받았기에 성령을 받은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양자의 영을 아직 받지 못한고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습니다.”(마귀론 상, p.61)

“구약의 하나님의 신, 하나님이 보내신 영들은 천사들을 말하는 것이지 성령이 아닙니다.(마귀론 상, p.108)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셨을 때에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이더라고 했으며 또 하나님이 천사를 사역자로 삼으실 때에 불꽃으로 또는 바람으로 삼으셨다고 했습니다. 이는 천사를 말하는 것입니다.”(마귀론 상, p.131).


그렇다면 왜 김기동은 구약의 성령을 천사라고 했는가?  그 이유는 만일 구약에서 성령을 인정하게 되면, 성부와 성령이 함께 존재하게 됨으로써 그의 삼위일체론을 입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김기동은 성자가 태초부터 계셨다는 것을 부인하면서 성자는 아버지 품속에 있다가 2천 년 전에 나온 존재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성부 하나님이 성자 예수로 오셨고, 성자 예수가 성령이 되어 나타났다는 전형적인 양태론적 삼위일체를 주장하기 때문에 구약의 성령은 천사라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김기동은 “그런 뜻이 아니라 오해일 뿐이다”라고 변명한다.  즉 자신의 삼위일체는 정통교회와 다를 바가 없으며 핍박과 시기로 인한 다소 오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은 그의 저서에 계속해서 나타난다. 


“그 하나님은 본질을 말하는 것이기에 아버지이시며, 이 분이 나타났을 때는 본체이시며 영으로 오셨을 때에는 본영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나 영들이 많기에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실 때는 성령이십니다”(성령을 알자, p.74)

“어떤 사람은 예수님도 성령받고 우리도 성령받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지만 성령이 예수 안에 계실 때에는 어느 장소에도 어느 사람 속에서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늘로 가신 다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교회 안에 성령이 오신 것입니다.”(성령을 알자, p.96).


여기에서 김기동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한 인격을 말하고 있으며 세 가지의 형태의 하나의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본질이며, 하나님이 세상에 나타나셨을 때에는 본체이며, 영으로 오시면 본영이라는 것이다. 베뢰아 강의에도 그의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이 잘 드러나 있다. 


“베뢰아에 와서는….. 여기는 장로교도 아니교 침례교도 아니고 베뢰아 입니다.  그러니까 깨끗히 일단 생각하지 말고 새로운 종이에다 그려야 합니다. 언제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는 객체의 인격을 두고 생각하니까 그렇습니다. 성령이 있고 예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예수가 있고 성령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아버지가 있고 성령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아들의 인격, 성령의 인격, 삼위의 인격이 각각 세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인격을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서 다릅니다. 

그러면 인격이 각각이면 어떻게 하나가 됩니까? 지금 큰 문제가 되는 것이 아버지의 인격이 따로 있고 아들의 인격이 따로 있고 성령의 인격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신학적으로 굉장히 무식하고, 성서적으로 굉장히 무식하고, 언어학적으로 굉장히 무식한 겁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따로 생각하고 인격을 셋으로 만들면 큰일납니다.

아버지의 인격이 따로 있고 성령의 인격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여기서 볼 때 성령의 인격, 이쪽에서 아들의 인격, 이쪽에서는 아버지의 인격, 오직 인격은 하나입니다. ……각각 보는 방향에서 다른 것같이 이쪽에서 볼 때 얼굴, 뒤쪽에서 보면 뒤통수, 옆에서 보면 볼인 것 같이 인격은 하나입니다. 지금 객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격은 한 인격이십니다. 하나님과 성령이 따로 따로 되는 것이 아니고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성령이 예수 안에 있을 때 바로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 안에 있을 때 성령이 되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자기가 자기 안에 있는 이에게 하시는 겁니다.” (베뢰아 강의 9-1. 1983. 6. 25)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께서 하나님께 기도하신 것은 자기가 자기 안에 있는 이에게 기도한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지방교회 위트니스리의 주장과 일치한다. 김기동 목사는  말하기를 예수는 성령께 존칭어를 쓰셨는데 그것은 예수가 몸을 입고 계실 때는 성령님을 같은 수준에서 말씀하실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성령은 예수보다 더 큰 영광을 받아야 하기에 존칭을 쓰셨다는 것이다. 


“예수는 성령을 말씀하실 때마다 ‘내가 가면 그가 오시리니’‘그가 오실 때에’ ‘그가 오시면’‘그가 너희와 함께 계시면’하여 존칭을 쓰셨습니다. 이처럼 주님도 성령에 대해 함부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존칭을 쓰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자신보다 더 높이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기에, 곧 피조물과 함께 하시어 피조물이 수태되는 것같이 사람 몸에서 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땅에서 식물을 먹고 피곤하여 저녁에는 주무시며, 죽임을 당할 때에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 곧 인자로 계셨기에 그 동안은 성령을 자기와 같은 수준에서 말씀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일체 되시지만 인자 예수가 받은 영광보다 성령은 더 크신 영광을 받아야 할 분이십니다.”(성령을 알자, p.13)


이것은 삼위일체의 동등성에 대한 명백한 이단 사상이다.  과연 한글성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존칭어를 쓴 이유가 만일 그렇다면 다음 구절은 성자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보다 영광을 더 받아서 존칭을 쓴 것인지, 또한 성부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보다 우월한 존재여서 반말을 한 것인지 밝혀야 한다. 


삼위일체(Trinity)는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수없는 이단들과의 싸움을 통해서 얻어졌으며 하나님은 교회의 결정을 통해 정통 교리로 확정하셨다. 하나님은 그 본질적 존재를 따라서 한분이시나, 이 한분 안에 제일위 성부, 제이위 성자, 제삼위 성령이라 불리는 삼위가 존재한다. 즉 삼위는 한분 하나님 안에 구별된 세 인격을 의미함이 삼위일체의 핵심이다. 좀더 상세히 설명해보면 삼위일체란 세 인격이 하나의 단일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한다. 즉 삼위가 계시는데 그 본질은 하나님이다.   삼위는 각각 백퍼센트 하나님이시다. 삼위의 신성은 동일하고 삼위는 서로 구별된다는 점이다. 명칭의 특유성을 가지고 있으니 성부가 성자일 수 없고, 성령은 성자일 수 없고, 성부일 수도 없기 때문에 그 이름이 구별된다. 이상에서 보면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로 계시며 그 능력과 영광과 지혜가 동일하며 동일본질(Homousius)을 가진 분이시다.


기독교 역사에 나타난 삼위일체 이단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아리안주의와 성부 자신이 고난을 받고 죽으셨다는 성부 고난설을 발전시킨 사벨리우스의 양태론이다.  사벨리우스의 중심사상은 성부, 성자, 성령은 동일한 하나님이시니 따라서 이 세 이름은 하나의 동일한 본체의 세 형태라는 것이다. 삼위는 하나의 신적 본질에서 나온 세 얼굴로서 밖으로 나타난 모양이다. 따라서 삼위는 각각 온전한 인격체가 아니고 한 인격에 의하여 행해진 세 가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곧 삼위는 한 인격이며 세 가지의 역할에 따라 다르게 이름이 불리워진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개념을 한사람의 연극배우가 관중 앞에서 세 가지의 다른 역할을 맡아 출현한다고 하더라도 진짜 인격은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주장을 한 사벨리우스는 파문을 당하고 그의 가르침인 양태론은 교회에서 배격되었다.

■ 기독론


김기동 목사에 의하면 예수를 제외한 모든 남자는 인류의 영적 유전을 통해서 태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는 남자와는 상관없이 성령으로 잉태되신 ‘여인의 후손’이다.


“‘인자’는 여자에게서 나오셨기 때문에 ‘여자의 후손’입니다. 만약 남자의 후손이 되었다면 그에게는 신성이 없습니다… 인자는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씨로서 여자의 후손으로 왔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김기동, 『인자이신 그리스도』, 54-55.)


인자’란 아버지 앞에 자신을 낮추어 종의 형체 곧 사람의 모양으로 현현하실 때, 아버지를 의식해서 스스로 이렇게 부르신 것이지, 문자 그대로 사람의 아들이란 뜻이 아니다. 이 말 가운데는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경외심과 자신에 대한 극도의 겸비함이 내포되어 있으며 오직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 아들만이 자신을 가리켜서 쓰신 호칭이기 때문에 인간이 감히 그 분을 이렇게 부를 수는 없다. 예수께서 ‘인자’란 말로써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려고 이 땅에 오신 자신의 사명을 밝히셨으니, 이 한 마디가 복음서의 내용이요, 기독교의 본질인 바 겸손과 순종을 대변하는 것이다. 김기동, “성경이 밝히는 하나님의 의도(Ⅱ),” 『한국신학』 3 (1996·5), 80-81.

김기동에 의하면 하나님이 인자의 ‘신분’을 자취(自取)하신 그에게 그리스도란 ‘직분’을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인자는 아들이 택하신 신분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아들에게 주신 직분이라고 한다.


“인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의 마음이요 그의 택하신 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인류를 생각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자는 죽음을 맛보려 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길이요, 그리스도는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대로 보내심을 받은 직분입니다.”(김기동, 『인자이신 그리스도』, 84-85.


김기동은 ‘그리스도 되신 인자’를 구원론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그는 인간구원을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의 논리에 의하면, 인간구원이 하나님의 경륜이라면 백 퍼센트 성취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인류의 구원이 목적이라면 단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고 백 퍼센트 구원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의 구원은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라 은혜 즉 선물입니다.”(김기동, 『인자이신 그리스도』, 82.


즉, 구원은 인간의 상대의지에 따라서 결정되는 ‘선택의 문제’로 보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경륜은 하나님의 절대의지에 의한 성취요, 섭리는 인간의 상대의지에 의한 선택이다. 그러므로 인간구원을 인자 되신 그분의 목적이 아니라 인자의 길을 위해 수고한 인간에게 주시는 선물로 이해한다.  한국신학 편집부 편, 『베뢰아용어사전』, “섭리” 항목.

김기동은 여자의 후손의 의미가 인간의 정욕으로 태어나지 않고 성령으로 잉태됨을 강조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출생을 의미한다고 본다.


“예수께서 여인의 후손이 된 것은 인간의 혈통과 무관한, 죄 있는 영혼과 무관한 거룩한 영이라는 뜻에서입니다. 예수는 첫 아담의 혈통에 속한 죄인이 아니라 첫 아담과 다른, 여인의 후손 곧 의인이신 것입니다. 여인의 후손이란 인간의 혈통과 무관한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김기동, 『예수를 알자 (상)』, 131.


그에 의하면 예수의 육체의 본성은 신성 즉 거룩함이라 본다. 또한 예수의 육체는 인간의 육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본다. 즉, 예수의 육체는 성령으로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이고, 우리는 탐욕으로 가득한 육체, 정욕으로 가득한 육체인 것이다.


“예수의 육체는 우리의 육체와는 그 근원이 다릅니다.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기에 우리와 같이 탐욕으로 가득한 육체, 정욕으로 가득한 육체와는 전혀 다르게, 그분의 육체의 본성은 신성으로만 충만합니다. 인간에게는 탐욕이 있습니다. 이성을 보면 욕심을 냅니다. 음식을 보아도 욕심을 냅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욕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에게는 욕심이 없으십니다.(김기동, 『예수를 알자 (하)』, 66.)

■ 계시론


김기동 목사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과 성서로 구분하여 지금도 성서는 쓰여지거나 삭제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성령의 감동으로 한 자신의 설교와 강의도 얼마든지 성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김기동 목사의 주장을 들어보자.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서 이루어진 율법을 성경이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계시하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기록한 것을 율법이라 합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직접 돌판에다 쓰셨죠. 구약에서는 모세오경이라 하지요. 모세가 고의적으로 성경을 위해서 기록했지요. 그러나 어… 냉정하게 율법은 성경이라 말하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공관복음을 가리켜 성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외는 성경이라 말하지 않고… 예를 들어 욥기나 또는 열왕기 역대기 다니엘서 등의 책이 있는데 욥기로 말하면 하나의 어떤 가정의 이야기인데 이 가정의 이야기를 통해서 율법을 시인해주는, 증거해 주는, 보호해 주는 글을 가리켜 성서라고 합니다.

어느 역사 이야기를 기록했는데 그 역사 이야기가 내용 중에 다분히 율법을 지지하는 면이 있을 때 이는 거룩한 글이 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오늘날 설교집이나 간증집 이런 것들은 수 백년 후에는 성서적 가치를 지니고 있을 수 있어요. 지금도 이런 소리하면 욕먹으니까 못해요. 설교집, 간증집들도 성서와 같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어요. 여러분의 설교도 마찬가지요. 그들의 증거와 글이 성경을 지지하는 내용이 있는 글은 성서라고 합니다. 신약에 있어서 사도행전이나 또는 기타 편지들이 증인들에 의해서 그 예수님의 생애를 지지하고 시인하는 다분한 내용이 들어있는데 이를 성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일방적으로 계시한 뜻을 성경이라 하고, 성서는 증인들이 시인하고 지지하는 것을 성서라고 합니다. 우리는 지도자니까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계시와 증거를 혼돈하고 있어요. 우리는 알고 해야 합니다. 성경이라는 부분에서 구약에서는 율법, 신약에서 예수님의 생애는 영원히 가감할 수 없어요. 그러나 성서는 얼마든지 가감할 수 있고 책을 늘려갈 수 있습니다. 줄일 수도 있습니다. 더 많이 책이 추가 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가감할 수 없는 절대적인 부분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서는 가감할 수 있습니다… 인간들이 신앙으로써 증거한 것이니까. 이 책을 볼 때 성서가 주인일까요. 성경이 주인일까요. 성서라 하면 성경을 격하시킨 것입니다.”(베아 9기 강의 테이프, No.24-1)

“성경을 달리 성서라고도 말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가감되지 않은 말씀을 성경이라 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통해서 간접으로 하나님에 대해 소개받은 거룩한 글들을 성서라고 합니다.”(베원 p.50)

“물론 성경은 모두 성령의 감동된 자들에 의해 기록되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된 율법과 예수의 생애와 그분의 입으로 가르치신 말씀은 성경으로, 하나님께 은혜받은 사람들의 간증 등은 성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절대로 가감된 것이 아니지만, 성서는 그렇지 않습니다.“(베아 16.4)

“성경은 모본이고 성서는 참고할 만한 것으로 성경에 버금가는 것입니다.”(베아 21.3)

“성경은 계시를 적은 것이요, 성서는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자들이 자기의 신앙을 하나님께 고백한 것입니다.”(베아 15.8)

■ 베뢰아 핵심사상 “하나님의 의도”


그렇다면 김기동 목사가 위에서 주장한 많은 이단적 주장들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는 기독교 역사 2천년 만에 1962년 5월, 오직 자신만이 <하나님의 의도>를 최초로 깨달았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의도>는 베뢰아 사상의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며 김기동 목사가 가장 귀하게 생각하는 베뢰아 신학의 핵심이다. 김기동 목사가 주장하는 <하나님의 의도>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든 목적은 마귀를 멸하기 위하여 만든 도구에 불과한 것이며 사람은 결국 여호와의 이름을 가지고 있던 천사의 형상을 따라 지은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알지 못하고 단지 인간 구원만 생각한다면 마치 돼지가 자기를 먹여주는 주인 아주머니를 식모로 생각하고 거름을 치워주는 주인을 머슴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담을 꾀어 사망을 가져오게 했으니 사단을 합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마귀를 합법화시킨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그를 합법적으로 심판하고 형벌하기 위한 것이다. 하늘에서 사단을 즉시 형벌에 처할 수 없었던 이유는 신들의 하늘에서의 범죄는 율법이 없기 때문에 죄로 여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탄을 음부에 가두어 놓은 후에 인간과 선악과를 만들어 세워 놓은 후 사탄을 잡을 유도 장치와 같은 이치로써 선악과를 만들었다.”


김기동 목사가 위에서 주장한 많은 이단적 주장들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는 기독교 역사 2천년만에 오직 자신만이 <하나님의 의도>를 최초로 깨달았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의도>는 베뢰아 사상의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며 김기동 목사가 가장 귀하게 생각하는 베뢰아 신학의 핵심이다.

다음은 <베뢰아원강>에서 주장하는 <하나님의 의도>에 대한 핵심이론이다.


 “하나님은 하늘이 없어도 스스로 자존하셨으나 하늘은 아들을 위해 아들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에 우편 하늘이 별도로 있거나 좌편 하늘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편이라는 것은 가장 사랑하는 오른편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을 자신의 우편에 두신 것입니다. 하늘이 운동장 같고 하나님은 그 운동장 한 귀퉁이에서 서서 주인 노릇을 하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늘보다 더 크십니다. 다만 하나님은 하늘에 하나님의 이름을 두셨고 그 이름의 영광을 아들에게 주시려고 아들을 후사로 정하시고 하늘에 보좌를 두신 것입니다.

아버지 품속에 계신 아들이 이 보좌에 앉으시려면 아버지 품속에서 나와서 하늘로 들어가셔야 합니다(요 1:18).  하늘에서 나와서 하늘로 들어가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품속에서 독생하시어 하늘에 오셔서 상속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 품속에서 독생하신 자가 하늘보좌에 오르실 때는 피조계의 주인으로 들어가셔야 합니다.

이렇게 성경은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순종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보좌에 오르시려면 창조된 종의 형체를 입어셔야 합니다. 히브리서 1장1~4절에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저가 천사보다 얼마큼 뛰어남은 저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라고 하였으며, 빌립보서 2장5~11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늘은 영원전에 창조하셨으나 아들이 보좌에 앉으심은 이천년 전의 일입니다. 영원전에 하신 일이 계속 진행되어 마침내 이천년 전에 보좌에 오르신 것입니다. 이천 년이면 하나님께는 엊그제와 같습니다. 이와 같이 아들이 아버지 품속에서 나오셔서 하늘에 들어가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비로소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부활의 계명은 마귀의 타락이나 인간의 범죄가 있기 전, 영원전에 작정된 아버지의 뜻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늘보좌에 오르신 것은 영원전에 그의 권세로 작정된 행로요 그분의 권세로 성취하시는 것이지 다른 것을 위한 희생이나 봉사가 아닙니다.(인간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는 뜻임) 이와 같이 영원전에 계획하신 것이 이 천년 전에 성취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피조계에 들어오실 때는 창조된 인간의 형체, 곧 종의 형체를 가지고 들어오십니다. 인간이 지음받은 것은 그분의 종의 형체를 입고 오시기 위한 틀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가 먼저 종의 형체, 곧 사람을 만들고, 사람같이 되심으로써 죽음을 경험하신 것입니다.(예수는 인간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은 것이 아니라 영원전에 이미 죽기로 작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죽음 것이라는 뜻임) 천사는 육체가 없으므로 죽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죽음을 맛보시려고 육체로 오셨기 때문에 천사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라고 했습니다.(히2:9)  이와 같이 이 땅에 주인이 오시기 전에 인간이 먼저 지음을 받고 예수의 죽음의 길을 예비한 것입니다.

인간이 범죄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형상이며 인간은 그의 모양입니다. 히브리어로 ‘형상’이란 말은 ‘모양’을 말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형상’이란 단어를 성품으로 이해합니다. 원어를 이해하는 데는 객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한 단어가 있는데 단어의 뜻이 여럿일 때, 어떤 경우는 이렇게 선택할 수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저렇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문맥에 맞는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는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는 인간 속에서 태어난 인간이 아니고 오직 한 사람으로 오신 참 사람입니다. 우리는 인류에 속했지만 예수는 인류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을 모델로 하여 만들어진 피조물입니다. 그분이 참 사람이며 우리는 그분의 형상의 모양을 따라 태어난 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영원전에 사람으로 오실 것이 계획되어 있었고 마침내 인자(人子)로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가 사람을 닮은 것이 아니고 사람이 예수를 닮은 것입니다.  우리는 인자(人子)의 모양, 혹은 사람의 모양입니다.

아담이란 ‘영의 사람’이란 뜻입니다. 아담은 개인이면서 인류도 되고 인류이면서 개인도 됩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창세기 1장 27절의 아담은 ‘사람’이라 번역되어 있지만, 2장 19절부터는 ‘아담’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는 1장의 사람도 아담이고 2장의 사람도 아담입니다. 1장은 사람이란 뜻에서 아담이고 2장은 이름으로서의 아담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혼동하고 있습니다. 1장의 아담은 인류를 대표하는 일반명사로서 사람이란 뜻이며, 2장의 아담은 개인의 이름입니다. 그래서 2장의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아담아!’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개인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하와는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왔기 때문에 하와라는 이름을 지어주셨고, 아담은 원래 이름이 있었기 때문에 안 지어 주신 것입니다.“ 김기동, 베뢰아원강,도서출판 베뢰아,2004. p.461~695.

필자가 다시 정리한 김기동의 <하나님의 의도>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의도(意圖)란 영원 전부터 홀로 자존하시는 하나님이 구상하시고 계획하신 후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들 안에서 성취된 하나님의 뜻을 한 폭의 그림으로 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도는 크게 ‘아들의 보좌 상속’, ‘마귀진멸’, ‘인간구원’이라는 3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각각 <제1의적 의도>, <제2의적 의도>, <제3의적 의도>라 칭한다.


<제1의적 의도>는 하나님과 아들의 관계, <제2의적 의도>는 하나님과 마귀의 관계, <제3의적 의도>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로 요약되며, 이 모든 것은 아들 안에서 성취된다.  아들이 없이는 한 가지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 없으니, 예수의 공생애 자체가 하나님의 의도이다.  이와 같이 3중 구조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의도는 하나님이 지으신 세 하늘과 각각 밀접한 관련을 맺고 진행된다.


하나님의 의도 가운데 <제1의적 의도>는 ‘아들의 우편보좌 상속’(빌 2:5-11)이다.  <제1의적 의도>는 그 목적 자체가 아들이 하늘 보좌에 오르는 것이므로 아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들이 하늘 보좌를 상속하는 것은 인간, 천사, 하늘도 지음을 받지 않은 영원 전에 작정된 것이며, 이것은 타락한 천사인 마귀를 멸하는 일이나,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는 일보다 선재(先在)하는 하나님의 뜻이다. 

<제1의적 의도>는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그 초점이 있으며, 그 관계는 ‘사랑과 순종’으로 요약된다.  그리고 공간적으로는 셋째 하늘(영계 하늘, 천사들의 하늘, 신들의 하늘)과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은 아들을 사랑하사 그를 후사로 세우시고 유업으로 주시려고 하늘(셋째 하늘)을 지으셨는데(히 1:2), 아들은 하늘을 상속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신 아버지 앞에서 죽음을 맛보는 존재로 자신을 낮추셨다.  그런데 성자 하나님은 이렇게 겸손한 아들의 모습을 보고 아들에게 다시 살 수 있는 계명을 주셨는데 요한복음 10:17-18절과 빌립보서 2:5-8절이 그 증거이다.

 따라서 예수의 죽음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희생적 죽음의 차원 이전에 아버지의 계명으로 주어진 것이며, 인간이 지음 받기 이전, 아니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 오직 아들이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실 때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하늘을 상속하기 위한 과정에서 이미 계명으로 주어졌다. 

하나님의 의도 가운데 <제2의적 의도>는 마귀진멸이다.  영원 전에는 천사도 마귀도 없고 하나님만 홀로 계셨는데, 어느 날 하나님은 아들을 후사로 세우시고 그를 위하여 하늘을 지으셨으며, 아들이 하늘에 들어갈 때 그를 수종을 들도록 천사들을 지어 하늘에 두셨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에 들어가기도 전에 천사장 중 하나인 루시퍼가 여호와의 이름을 맡고 있는 ‘여호와의 사자’를 대적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때 천사장이 대적한 상대는 ‘여호와의 사자’라는 천사였지만, 그는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임받아 하나님의 권한으로 일하던 천사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적은 곧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대적이요 하나님께 대한 대적을 의미했다. 

만일 루시퍼가 하나님을 직접 대적했더라면 소멸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즉시 심판 받았을 것이나 그가 대적한 것은 여호와의 사자였고, 하늘의 주인이시며 심판의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 아직 하늘에 들어가시기 전이었으므로, 아들이 죽음을 맛보시고 하늘에 들어가시는 길에 합법적으로 심판하실 때까지 가두어 둘 필요성이 생겼다. 이 가두어 두는 곳이 바로 흑암, 우주, 음부이다.  

이런 과정에서 하늘을 혼란케 한 천사들과 의의 천사들 간에 전쟁이 일어났고, 그 결과 타락한 천사장 루시퍼(사단)와 그를 따르는 하늘의 천사들 중 삼분의 일이 천사들의 하늘인 셋째 하늘에서 쫓겨나 둘째 하늘에 갇혔다.  둘째 하늘에 갇힌 사단은 제한적인 권세를 부여받았는데 이때부터 사단은 ‘흑암 권세자’, ‘음부의 권세자’, ‘어둠의 주관자’가 되었고, 하나님이 흑암 가운데 궁창을 만드신 후부터는 ‘공중 권세 잡은 자’가 되었다.  사단은 하나님의 아들이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존재로 지음받은 아담을 꾀어 범죄케 함으로써 아담에게 주어진 권세를 빼앗았으며, 이때부터 사단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이간하는 ‘마귀’가 되었다.

마침내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 하나님의 아들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후사로 작정한 우편보좌를 상속받기 위한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기 위하여 세상에 나타났다.  이때 아담을 꾀어 범죄케 한 마귀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았지만 그가 죽음과 부활을 경험함으로써 마귀가 불법자라는 것을 온 천하에 드러났으며 이때 동시에 하늘에서 하나님을 대적한 사단에 대한 합법적인 심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오시는 것은 본래 아버지 앞에 겸손히 자신을 낮추는 과정이었는데, 천사의 타락이 발생하자 하늘 보좌 상속을 위한 자신의 죽음에 마귀를 심판하기 위한 목적을 첨가하셨다.  예수는 그냥 죽으실 수도 있었으나, 마귀를 심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택하셨고,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한 사단에 대한 물적 증거를 확보하는 사건이었다.


하나님의 의도 가운데 <제3의적 의도>는 인간구원이다.  예수는 천사와 인간 등 피조물이 지음받기 이전에 하나님만 홀로 계실 때, 사람으로 오셔서 죽음을 맛보시고 하늘에 들어가시기로 이미 작정되어 있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 죽음을 맛보기 위해 오시는 통로로 예비된 존재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그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오시기도 전에, 하늘에서 타락한 천사인 마귀의 유혹을 받은 인간이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그만 영이 죽고 말았다.  그 결과 아담에게 속한 모든 인간은 원죄 아래 영이 죽은 채로 태어나게 되었으며, 이에 성부 하나님은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어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 인간에게 은혜가 되게 하셨다.  이것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이다. 

아들의 하늘 보좌 상속이나 마귀진멸, 인간구원은 하나님의 뜻이므로 아들의 공생애를 통해 이미 성취되었는데 이중에 아들의 보좌 상속이나 마귀진멸은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진행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구원은 개인의 의지와 관련되어 있으므로 개인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자신의 의지로 예수를 믿고 영접하는 자에게만 구원이 은혜로 주어진다.  예수는 어떠한 형태로든 죽음과 부활을 경험함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신 후 하늘에 들어가시면 되는데, 자신의 죽음이 인간에게 은혜가 되게 하기 위해 피 흘리며 고난받는 죽음을 맞으셨다고 한다.  창세기 3장 22절에 나오는 ‘선(善과) 악(惡)은 “죽음과 부활”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 중 하나같이”라는 말을 “우리 중 예수와 같이”라는 뜻이다.  선악과를 먹은 순간 인간은 영원 전에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기로 작정된 예수처럼 선과 악을 경험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구원은 영원 전에 계획된 것이 아니며 불과 2천년 전에 결정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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