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락교회(김기동, 베뢰아)의 이단연구보고서(2)
이인규
성락교회의 인간론과 하나님의 의도
– 성락교회가 과거 문제점들을 수정하였으므로 이단에서 해제하여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있었습니다. 성락교회 외에도 여러 이단들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시도가 유명한 장로교단에서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이 얼마나 근거가 없는 주장인지를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성락교회는 회개한 적도 없고, 과거의 교리를 수정한 적도 없으며, 더욱 위험한 문제점들이 발견되어집니다 –
4. 인간론
(1) 죄의 분류
김기동목사의 책을 읽어보면 그가 신학적인 지식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김기동목사는 본죄와 자범죄를 서로 다른 것을 구별하고 있는데, 본죄(actual sin)는 자범죄와 다른 것이 아니라 동일한 것이다. 원죄(origin sin)와 구별하여 자범죄 혹은 본죄라고 말한다.
– 이와 같이 인간은 누구나 이 세가지, 원죄와 본죄와 자범죄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하와가 마귀의 유혹을 받고 선악을 알게하는 실과를 보니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탐스럽게도 보였습니다. 이것은 정욕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후 그것을 따먹었습니다. 품행으로 따먹고 먹지말라 한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영이 죽었습니다. 지금도 죄를 범하는 양상은 똑같습니다. 이렇게 죄를 짓는데 하와가 지은 죄는 일종의 자범죄이며, 아담이 범한 것은 원죄가 되었습니다(베뢰아원강, 667쪽)
– (344) 인간에게는 원죄와 본죄와 자범죄가 있다. 원죄는 아담이 지은 죄이며 유전한다. 본죄는 성품죄다. 자기 마음에서 솟아나는 죄다. 자범죄는 마음에 품은 생각을 행위로 지은 죄다.자범죄를 짓거나 본죄를 지으면 죄에 대한 의식이 강해진다(베아 22,8) 원죄는 영에서 나오고, 본죄는 육신의 생각이고, 자범죄는 본죄의 결과이다.원죄는 예수그리스도에 의해서 해결되고 본죄는 성령에 의해서 다스려지고 자범죄는 훈련을 통해 억제할 수 있다(베아 16, 29) (베뢰아원강 667쪽)
자범죄와 본죄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명칭만 다른 것으로 동일한 용어이다. 김기동목사는 자범죄와 본죄를 서로 다른 것으로 구별하더니, 본죄는 성령에 의하여 다스려지고, 자범죄는 훈련을 통해 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김기동목사는 예수그리스도에 의하여 원죄만 해결되었다고 주장한다.
(2) 영혼유전설(실재설)
더욱이 김기동목사는 원죄가 유전한다고 주장하는데, 아담을 통해 한 영이 계속 유전되어진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인간의 영혼의 기원에 대해서 “실재설”이라고 하는 이단적인 주장이며, 또 죄의 전가에 대해서는 “유전설”을 주장하고 있는데, 김기동목사는 이 두가지를 전혀 구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즉 전자는 “영혼의 기원”에 대한 주장이며 후자는 “죄의 전가”에 대한 주장이라는 것을 전혀 이해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통신학에서는 영혼의 기원에 대해서는 “영혼창조설”을 주장하며, 죄의 전가에 대해서는 “언약적대표설”을 주장한다.
– 그러면 범죄는 하와가 먼저 했는데 왜 하와의 죄가 유전되지 않고 아담의 죄가 유전됩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그 후에 하나의 영만 지으셔서 그 영이 유전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담을 통해 계속 한 영이 넝쿨처럼 유전되어 나갑니다. 하와가 먼저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따 먹음으로 사단적인 죄를 범했을지라도 이 사단적인 죄가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하와가 주는 실과를 먹음으로 불순종한 아담의 죄가 유전됩니다, 그래서 하와의 죄는 유전되지 않고 하와 한 사람만 사단적인 죄를 범한 것으로 끝납니다(베뢰아원강 659쪽)
– 아담의 죄와 그 후손의 죄의 관계
(1) 실재설– 셋 중의 처음 것은 실재설이다. 이 설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최초의 하나의 보편적 인간성을 창조하셨는데 이것은 시간의 과정 속에서 많은 부분으로, 곧 인류 각 개인으로 나뉘어졌다는 것이다. 아담은 이 보편적 인간성 전체를 소유하였으나 죄의 결과로 그것은 유죄하게 되었으며 또한 부패해졌다. 그 결과로 그것의 모든 개체의 부분도 역시 이 죄책과 오염을 지니게 되었다. 이 설은 우리가 왜 아담의 최초의 죄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고, 동일한 인간성에 의하여 범한 그의 나머지 죄와 또 우리 조상의 죄에 대하여는 책임이 없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또한 그리스도는 아담 안에서 범죄한 그 인간성을 취하셨는데, 어찌하여 그는 아담의 죄에 대하여 책임을 갖지 않는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도 답을 주지 못한다.(루이스벌콥 기독교신학개론, 성광문화사, 153쪽)
성경은 영혼이 유전된다고 말하지 않으며 영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여 주신다고 말한다. 김기동목사의 주장은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으며, 모두 자신의 추측과 상상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영혼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여 주신다고 말하고 있다.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spirit)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사42:5)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히12:9)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여….”(민16:22)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눅12:20)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전12:7)
김기동목사는 모든 교리를 자신이 추측하고 상상하여 만들고 있다. 영혼유전설을 주장하다보면 우리는 아담 이후의 모든 조상들의 죄까지 다 유전을 받아야만 한다. 왜 원죄만 유전되고 다른 죄는 유전되지 않는가?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더욱이 실재설에 의한 영혼유전설은 영혼이 대대로 계승된다는 점에서 윤회설을 근거로 한다. 그렇다면 모든 인류의 영혼은 결국 하나라는 뜻이 아닌가? 모순은 점점 모순을 낳고, 오류는 점점 오류를 낳게 된다. 이미 김기동목사의 주장은 기독교의 것이 아니다
– 영은 아담이라는 한 영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영 자체가 유전됩니다. 온 인류는 아담 한사람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왔습니다. 하와는 먼저 죄를 범했어도 그 영이 아담에게서 분리되어 나왔으므로 불순종한 아담의 죄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유전되는 죄를 원죄라고 합니다. 금방 태어난 아이에게 도덕적인 죄는 없지만 이미 원죄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 원죄로 인해 영이 죽은 것입니다(베뢰아원강, 664쪽)
– 하와의 죄와 아담의 죄는 다릅니다. 또 범죄의 양상도 전혀 다릅니다. 창세기3장1-7절에 “여호와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막지도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된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도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살과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하와의 죄는 “네가 먹으면 하나님이 될 것이라”는 뱀의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곧 하나님이 되리라는 유혹에 자기도 눈이 밝아져 하나님같이 선악을 분멸하게될 줄을 알고 죄를 범한 것입니다. 반면 아담의 죄는 불순종의 죄입니다. 사단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사단의 죄를 용서한 것이 아니라 불순종의 죄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범죄는 하와가 먼저 했는데 왜 하와의 죄가 유전되지 않고 아단의 죄가 유전됩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그 후에 하나의 영만 지으셔서 그 영이 유전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담을 통해서 계속 한 영이 넝쿨처럼 유전되어 나갑니다(베뢰아원강 656-659)
실재설이라는 영혼유전설을 주장하면, 예수의 무죄성을 주장할 수 없게 된다. 어처구니가 없게도 이것을 변명하기 위하여 김기동목사는 여자의 죄는 유전되지 않고 남자의 죄만 유전된다고 주장한다.
– 여자의 후손이 누구입니까? 예수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께서 여자의 후손이 되는가를 봅시다. 여자의 죄는 유전되지 않습니다. 본래 사람의 영은 남자에 의해서만 유전됩니다.그러므로 예수께서 여인의 몸에 태어나셨다 할지라도 사람의 혈통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베뢰아원강, 671쪽)
죄는 생식적인 방법에 의하여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아담이 온 인류를 대표하여 하나님께 언약을 하므로서 그 죄책은 전가되며, 그 오염된 죄성이 후손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이것을 언약적대표설이라고 하며, 로마서5장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라.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5:17-19)
죄는 물질이 아니라 관계를 말한다. 예를 들어 내가 A에게 죄를 지었다면 A에게는 죄가 있지만, B에게 죄를 짓지 않았다면 B에게는 죄가 없다. 즉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의도 유전되지 않는 것과 같이, 아담의 죄도 유전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한사람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모든 인류가 죄를 전가받은 것이 된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동산 각종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창2:16-17)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에는 “먹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는 반대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다. 아담은 하나님께 지음을 받은 첫사람으로서, 온 인류를 대표하는 것이다. “아담”이란 히브리 단어는 “인류”를 뜻한다.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당부는 아담과 하나님만의 관계가 아니라, “인류 전체와 하나님과의 관계적인 언약”이었다. 아담은 인류를 대표하여 하나님과 언약하였다고 보는 것이 바로 언약적 대표설이다. 만일 그 실과를 먹으면 죽게 되며, 그 실과를 먹지 않으면 영원히 죽지 않게 되는 언약인 것이다. 성경은 아담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겼다고 언급하고 있다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호 6:7)
(3) 정녕 죽으리라
인간의 죄에 대해서 황당한 주장을 하던 김기동목사는 이제 더욱 해괴망칙한 주장을 하고 있다.
– 첫 아담에게 “네가 먹으면 죽으리라”고 한 그 죽음은 예수께서 담당하시게 됩니다. 인간은 심판받아 죽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죽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먼저 죽으십니다. 여기서 “먹으면 죽으리라”고 한 것은 첫 아담이 먹으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마지막 아담이 죽으신다는 말입니다(베뢰아원강, 699쪽)
더욱이 예수가 죽었으므로 인류는 죄값으로 죽는 일이 없으며, 육체적인 저주만 받는다고 주장한다.
“동산 각종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창2:16-17)
김기동목사의 주장은 성경을 살펴보면 곧 확인할 수 있다.
히브리어 동사는 인칭이 표시되어 있다. 본문에서 “죽는다”와 “먹다”는 동사는 동사는 모두 2인칭 동사이다. 김기동목사의 책을 읽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상상과 추측으로 성경을 짜깁기로 만들어서 해석을 하고 있다. 그러한 해석은 완전하게 성경의 근거를 무시하며, 기본적인 상식까지 부정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라는 말이 과연 예수가 죽게된다는 뜻으로 해석이 되는가? 본문에서 “네가”가 누구를 말하는가? 그러나 불과 몇페이지 앞에서는 김기동목사는 또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영이 죽는다”는 뜻이라고 해석을 한다.
“선악에 알게하는 실과를 먹으면 죽으리라” 할 때 “죽으리라”라는 것은 영이 죽는다는 말입니다….. 영이 죽으면 영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전부가 육에 속하여 육을 충족시키고 육을 만족하게 하는 생활을 합니다.(베뢰아원강, 650-651)
5.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의도’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예수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이며, 구원론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신 예수님의 보혈, 즉 가장 중요한 기독교의 구원론에 대해서 베뢰아는 그 자체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1) 베뢰아 김기동목사는 예수가 오신 것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함이 아니라, 마귀를 멸하기 위함이었다고 주장한다
(2) 또 인간이 창조된 이유는 마귀를 멸하는 예비적인 도구로 창조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3) 그렇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굳이 예수를 보내실 필요가 없이 범죄한 마귀를 멸하시면 되지 않는가? 김기동목사는 하나님이 마귀를 합법적으로 멸하시기 위하여 예수를 보내셨다고 주장한다,
(4) 김기동목사는 영은 인격이 없으므로 육체를 가져야만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네가지의 황당한 주장이 바로 김기동목사의 “예수가 오신 목적”이며 “하나님의 의도”라는 제목으로 가르쳐온 내용이다. 베뢰아에 영향을 받은 베뢰아 계열의 인사들에게는 위와 같은 주장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1) 베뢰아 김기동목사는 예수가 오신 것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함이 아니라, 마귀를 멸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
– 인류구원보다는 사단의 정죄가 먼저다.사단이 정죄되지 않으면 구원도 있을 수 없다. 아직 인류가 없을 때 마귀 정죄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실 것이 작정되었다(베아10,30) (베뢰아원강, 574)
– 하나님의 아들은 그가 보좌에 앉으실 때까지 자기 직분을 잘 지키고 있어야 할 자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 것을 심판하시고 보좌로 들어가십니다. 처음부터 아들이 보좌에 계셨더라면 천사는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들은 자신이 오시기 전에 하늘을 더럽힌 천사들을 신판하시고 하늘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이 임하심은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3장16절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일반 기독교교리는 성경을 구원사적으로 봅니다. 인류를 구원하는 구원의 역사로 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은 단면만 본 것입니다. 인류구원의 목적이 목적이라면 단 한 사람도 멸망하는 사람이 없이 다 구원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심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입니다. 이것이 그의 목적입니다.(베뢰아원강, 573-574)
요한복음 3장16절은 “저를 믿는 자마다”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는데, 김기동목사는 만약 예수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다면, 단 한사람도 멸망하는 일이 없이 다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이상한 해석을 한다. 언제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로 오셨다고 하였는가? 성경은 1예수를 믿는 자를 구원하시겠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주일학교 학생들도 암송하는 요3:16을 김기동목사는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하고 있다.
– 그런데 아들이 하늘을 기업으로 상속받으시기 전에 사단이 반역했습니다. 이에 그 사단을 먼저 심판해야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사단이 마음대로 짓밟고 모독했던 그 이름을 영화롭게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들이 세상에 오셔서 마귀의 일을 멸하셨습니다. 그리고 마귀의 일을 멸하시는데 동원된 인간을 구원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마귀를 멸하신 후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마귀의 일을 멸하시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마귀의 일을 완전히 멸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으므로 인간을 구원하지 않으셔도 하나님께서는 아무 아쉬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구원을 선물로 부여하신 것입니다(베뢰아원강, 576-577)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딤전1:15)
성경은 마귀를 멸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마귀의 일(Satan’s work)을 멸하러 오셨다고 말하고 있다. 마귀의 일은 죄로 인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sadan’s work)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3:8)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를 멸하려 함“이 아니라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마귀의 일에서 “일“(work)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엘곤“으로 “노역, 사업, 행위“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예수께서 마귀를 멸하러 오셨는가,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는가…..그것은 전혀 다르다. 물론 궁극적으로 마귀는 무저갱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므로, 마귀를 멸하려고 오실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마귀를 멸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마귀로부터 미혹되어 죄를 짓던 인류를 위하여 죄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분이시다. 베뢰아는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다”라고 써놓고 그것을 “마귀를 멸하러 오셨다”라고 읽는다.
(2) 또 인간이 창조된 이유는 마귀를 멸하는 예비적인 도구로 창조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 예수의 죽음으로 하늘에서 마귀를 멸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제물이 된 것이다(베아10,34) 우주는 마귀를 멸하기 위해 창조하신 것이고, 인간은 마귀를 멸하기 위해 오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오실 길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안내하는 안내자로서 지으신 것이다(베아 19,34)
– 그리고 우리를 데려다가 함께 있게 하시고 상까지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죄짓고 오는 인간에게 상까지 주시겠다는 것은 인간이 마귀를 멸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실 길을 위한 사전의 안내자였기 때문입니다.“(김기동저, 마귀론 상78쪽)
성경은 마귀를 멸하는 도구로 삼기 위하여 인간을 만들었다는 구절이 하나도 없다. 그러한 주장은 김기동목사의 자기 생각일 뿐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라고 성경은 말하는가?
첫째, 세상과 피조물을 정복하고 다스리게 함이다.(창 1:26-28, 창 9:1-2)
둘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으셨다.(사 43:7, 사 43:21, 계 4:11)
(3) 만약 사단을 멸하기 위하여 예수가 이 세상에 오셨다면, 굳이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돌아가실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마귀를 그 자리에서 멸하시면 되지 않았는가? 김기동목사는 하나님이 마귀를 합법적으로 멸하시기 위하여 예수를 보내셨다고 주장한다. 과연 합법적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러한 주장은 베뢰아의 독특한 주장이다.
–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한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다. 하나님이 마귀를 멸하시는 것은 합법적인 일이다. 하나님의 대적으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합법적으로 증거를 잡아 형벌하시는 것이다.하나님은 누가 하나님을 대적했다고 해서 그를 상대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정죄하여 형벌을 내리신다.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므로 합법적으로 처리하신다.(베뢰아원강, 706쪽)
– 어떤 사람은 ‘마귀가 도전했을 때 당장 하나님이 멸하시면 될텐데 왜 그렇게 오랫동안 묵인했느냐?’고 하지만 하나님은 반역하는 천사를 인정해서 묵인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불법을 합법으로 처리하시려고 한 것입니다.(김기동저, 마귀론 상66쪽)
하나님께 범죄하고 타락한 마귀를 멸하시는 것이 불법인가?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합법적인가?
(4) 김기동목사는 영은 인격이 없으므로 육체를 가져야만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지방교회 위트니스 리에게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만약 영이 인격이 없다는 주장이 옳다면 하나님과 성령도 인격이 없는 존재가 되고만다. 신학적인 용어에서 인격(personality)이라는 용어는 성격(character)이라는 뜻이 아니라, 지정의를 주체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영이 인격이 없다는 주장은 영이신 하나님과 성령이 실존하시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라고 말할 수 없는 주장이 된다.
– 우리는 육체를 통해서 인격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가 없으면 인격을 발산할 수 없습니다.귀신도 육체가 없으면 인격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귀신이 육체를 파고 드는 것입니다(베뢰아원강, 277)
– (439) 귀신은 육체를 떠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오즉 다급했으면 돼지 육체 속에라도 들어가겠다고 했겠는가? 귀신은 육체가 없으면 활동할 수 없다. 귀신은 육체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사람의 인격과 똑같이 나타난다. 말하는 것도 그렇고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행동도 육체 안에서 나타난다(베아18,12). 귀신은 몸을 가졌던 존재요 몸을 가졌을 때 인격을 나타낼 수 있었던 존재였기 때문에, 사람의 몸에 들어와야 자기 구실을 할 수 있다…..따라서 귀신은 사람의 몸 안에 들어와 있을 때 지정의의 인격활동을 하지만, 일단 몸 밖으로 내쫓기면 그냥 영적존재일뿐 아무런 인격 활동을 할 수 없다(베아, 15,19). 귀신은 사람의 몸 안에서만 인격이 나타난다.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인격으로서 구실을 못하기 때문에 사람 속으로 들어가려고 한다(베아14,23) (베뢰아원강, 277-278)
– 영은 항구적 존재다. 어떤 사람은 영이 인격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격은 혼이고 몸과 함께 있을 때를 말한다. 따라서 영이 인격이라면 사람 속에 혼인 인격과 영인 인격, 두 인격이 들어있다는 말이 된다. 영은 인격이 아니고 항구적 존재, 영원한 존재다(베아 주는 예수께서 담당하셨습니다. 죄인인 내가 예수를 믿어 구원받는 순간에 예수가 내 안에 들어오심으로 저주는 모두 사라집니다. 내 병은 다 없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예수믿고 고질적으로 앓던 신경통이 다 나았는데 다른 병은 안 나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경우 자기 병은 예수께서 담당하셨으니 없어졌고 남이 들어와서 만든 병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귀신을 쫓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믿기 전에 자기에게 부여된 자주가 현실화된 병은 예수를 믿으므로 그가 다 담당하셨습니다. 가난해야할 사람이 부유해지고 병들어야 할 사람이 병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이 들어와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쫓아내야 합니다. 신자는 구원받았으므로 영은 깨끗합니다. 그러나 육체는 언젠가 죽습니다. 육체는 죽으면 사라지고 영혼은 분리되어 낙원으로 갑니다. 그런데 귀신은 머물러 있어야할 육체가 없으니 다른 사람의 육체로 옮겨 들어갑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서 다시 그 병을 일으킵니다(베뢰아원강, 283-284)
– 영은 투명한 유리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영은 인격도 아니다, 육체에 영이 들어감으로써 영원한 사람이 되었다.원래 몸과 혼을 합하여 인격이라고 하기 때문에 아담은 ‘영과 몸’, ‘영과 혼’이라고 한다(베아1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