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뢰아 신론 비판

  • 5월 26, 2015

                                                   베뢰아비판 – 신론


                                                                                                          이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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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믿는 여호와하나님이 천사의 이름이었다고 주장하고, 구약의 하나님의 신(성령)도 천사였다고 주장하는 목사가 있다. 베뢰아 김기동목사가 믿는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하나님이며, 그가 믿는 성령은 도대체 누구인가?

(1) 성령이 천사인가?

구약의 하나님의 신, 하나님이 보내신 영들은 천사들을 말하는 것이지 성령이 아닙니다.(마귀론 108 페이지)

구약시대에는 모두가 천사에 이끌림을 받았기 때문에 성령을 받은 사람이 없었습니다.(마귀론 61페이지)

창세기 12절에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를 운행하시니라 할 때의 그 신은 성령이 아닙니다.(마귀론 65 페이지)

구약에서 아브라함이나 모세에게 나타난 여호와가 천사였던 것처럼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느니라고 한 말은 하나님이 그의 천사들로 지키게 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사자()는 그의 천사를 말합니다. (마귀론 65페이지)

베뢰아 김기동목사는 구약의 하나님의 신(Spirit)”은 성령이 아니고 천사라고 주장을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느니라”(1:2) 하신 것처럼 음부를 물로 결박하셨습니다. 여기서 신은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법무부 장관이 형무소를 지키지만 직접 총을 메고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밑에 있는 교도관들이 지키는 것 같이 하나님의 천사들이 우주를 지킵니다. 심판자가 들어오셔서 사단을 정죄하고 멸할 때까지 결박해 놓고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139)

김기동목사의 신학적인 무지가 그대로 나타난다.

12절의 ”(루아흐, Spirit)은 복수가 아니라 단수명사이다.

물론 하나님을 뜻하는 엘로힘은 당연히 복수명사이다. 김기동목사는 이 한문으로 이므로 “god” 이라는 뜻으로 해석을 한 것 같다. 그러나 본문에서 신은 한문으로는 이지만 god 이 아니라 spirit 이다. 표준새번역과 현대인의 성경은 하나님의 영으로 번역하였다.

게다가 수면을 운행하다라는 단어는 물로 결박하다라는 뜻과 전혀 다르며, “라하프라는 단어는 알을 품다, 날개짓을 하다, 날다라는 뜻을 갖는다. 이 성경구절을 물로 결박하다고 괴상한 해석을 하는 사람은 난생 처음이다. 마귀의 감옥이라고 하는 우주와 하늘 사이에 물벽이 있다고 주장한 김기동목사 자신의 견해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KJV] And the earth was without form, and void; and darkness [was] upon the 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moved upon the face of the waters.

[NIV] Now the earth was formless and empty, darkness was over the sur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was hovering over the waters.

이 단어는 성경에서 창세기12절과 신32:11, 23:9에서 사용되었는데, 32:11에서는 새끼를 품는 날개의 작은 움직임과 렘23:9에서는 뼈가 떨리는 미세한 움직임에 사용되었으며, 1:2에서는 성령의 창조사역을 말한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32:11)

선지자들에 대한 말씀이라 내 중심이 상하며 내 모든 뼈가 떨리며 내가 취한 사람 같으며 포도주에 잡힌 사람 같으니 이는 여호와와 그 거룩한 말씀을 인함이라”( 23:9)

김기동목사는 모든 이단들의 교주들이 같이 모든 성경을 자신이 인위적으로 짜깁기로 만들고 있다. 구약의 여호와도 천사가 받은 이름이고, 구약의 하나님의 신도 성령이 아니라 천사였다고 주장하는 김기동목사는 이제 신약의 성령도 천사였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황당하게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이 이단교주들 중에서 또 있었을까?

2) 권능이 천사인가?

그러면 지금 천사들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사도행전18절에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성령을 받고라고 했는데, 이는 천사들의 사역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권능은 본래 손가락을 뜻합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손가락 즉 하나님의 자체입니다, 사도행전 22-3절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의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여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눈에 보이지 않고 귀로 들을 수 없고 만져지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실 때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이고 바람소리가 났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느낄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은 천사를 말합니다“(베뢰아원강, 2005, 239)

성령은 하나님이시고 권능은 성령에 의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는다는 것은 그의 지체가 되어 그를 수종드는 천사들이 임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성령과 함께 천사들이 와서 성도를 돕게 되는 것입니다….성령은 불이 아니고 바람이 아닙니다. 바람과 불로 나타난 것은 그가 부리는 천사입니다. 성령이 임하실 때는 그의 천사들이 권능으로 나타납니다. 바람과 불같은 현상을 통해서 나타납니다”(베뢰아원강, 2005, 240-242)

천사는 권세가 아니라 권능입니다. 천사는 마귀에게 정죄하거나 능력을 해체시킬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가 있습니다. 따라서 기도하면 얼마든지 권능을 더 얻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어느 때는 능력이 많았다가 어느 때는 적었다 하는 것은 기도할 때는 천사가 더 많이 오고 구하지 않을 때는 천사가 내 곁을 떠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귀신 쫓을 때 권세뿐만 아니라 권능도 있어야 합니다. 만일 귀신이 간다, 간다하면서도 안나간다면 이는 권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는 나가 주인이 나가라는데 왜 안나가하고 밀어내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밀어내 주는 천사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천사가 없기 때문에 귀신이 나가요 나가요 하면서도 안나가는 것입니다. 귀신을 불러 내놓고 내쫓지 못하는 것은 권세는 있지만 권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권세와 권능은 구별됩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은 권세가 있지만 군인은 권능이 있습니다.“(베뢰아원강, 2005, 297)

김기동목사의 주장을 옳다면 베뢰아는 아래 성경의 권능을 천사로 해석하는가?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3:10)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11:17)

위 성경구절에서 권능을 천사로 해석하면 얼마나 황당한 해석이 되는지, 직접 권능이라는 단어 대신에 천사로 대입하여 확인을 하기 바란다. 또 개역성경을 찾아보니, “권능 권세라는 단어는 주로 엑수시아 뒤나미스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었는데 엑수시아라는 단어는 권능 혹은 권세로도 번역되었고, “뒤나미스라는 단어도 권능 혹은 권세로도 번역되었다. 이 단어를 천사로 해석하면 성경은 어떻게 될 것인가?김기동목사가 옆에 있다면 권능이 천사라는 주장의 설명을 듣고 싶다.

엑수시아 -> 10:1 권능(엑수시아) 7:29 권세(엑수시아) 9:6-8 권세(엑수시아)

뒤나미스 -> 7:22 권능(뒤나미스) 4:7 권세(뒤나미스) 11:17 권능(뒤나미스)

3) 오순절 이전에는 성령이 없었다?

게다가 김기동목사는 예수가 부활하여 승천한 이후에 비로소 성령이 임하였다고 주장을 하는데, 김기동목사는 구약의 하나님의 신은 천사였다고 주장하므로, 성령은 오순절 이후에 처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김기동목사가 양태론자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하늘보좌에 올라 왕권을 가지신 후 비로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셨으면 우리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이요, 우리는 그 권능을 가진 것입니다, 성경에 성령에 대해서는 존대하지만 권능은 물건 다루듯 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 받고라는 말은 성령이 임하시면 종들을 보내시고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입장에서 보면 천사는 종입니다. 인자가 왕권을 얻으신 후에 그 왕권을 가지고 오실 때는 종들을 주신다는 말입니다“(베뢰아원강, 2005, 301)

성령이 예수 이름으로 너희 속에 임하신다’(14:26)고 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의 이름은 보혜사이고, 성자의 이름은 예수이고, 성부의 이름은 여호와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보혜사는 성령의 이름이 아니고 직분을 일컫는 말입니다. 예수만이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이 아버지의 이름을 아들에게 주셨고, 또 아들이 하늘로 간 후에 성령이 그 이름으로 오셨습니다.” (베뢰아원강, 356-357)

예수 자신이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또 성령이 임하였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성령을 받으신 것은 사역하시는 성령이 임하신 것이다. 예수의 일을 하기 위해 직분으로 임하신 것이다. 성령이 임하지 않으시면 예수는 자신의 사생활을 가진 목수에 불과하다. 성령이 임하신 다음부터 예수는 신분을 드러내고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아들을 증거하시는 분이 임하심으로 직분이 주어진 것이다. 그때부터 예수는 공생애를 가지신다.” (베뢰아원강, 183)

이러한 주장은 다른 책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므로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만약 믿을때 성령 받았다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때 믿은 사람도 성령을 받았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나 분명히 성령은 예수님 부활하신 50일 후에 오셨습니다.”(마귀론 상 110)

김기동목사는 삼위의 사역이 각각 시간적인 차이가 있었다고 하므로, 오순절 이전에는 성령이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노골적인 양태론이 등장한다.

그리스도는 하늘로 가시고 성령이 오셨습니다. 우리는 하늘로 가신 그리스도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영광 받기 위해 왕권으로 오신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가 곧 성령이십니다”(성령을 알자, 95)


만일 예수가 지금 이 땅에 육신으로 계신다면 우리 안에는 성령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지체가 되었기 때문에 예수 안에만 계신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것은 그가 하늘로 가시고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한 다음부터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예수 안에 계신 성령이 제자들 안에도 계셨던 것이 아닙니다. 과거 선지자들과 침례요한이 받은 성령충만은 모두 은사적인 것, 사역적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이 예수 안에도 계시고 제자들 안에도 계시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절대 오해입니다. 성령이 예수 안에 계실 때에는 어느 장소에도, 어느 사람 속에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늘로 가신 다음에 비로소 예수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교회 안에 성령이 오셔서 각 사람에게 역사하는 것입니다”(성령을 알자, 96)

하나님이 오래 전에 하늘에서 뜻하신 것을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생애로 사셨고, 그가 하늘로 가신 후에 성령으로 오셨기에 시간적인 차이는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오시기까지는 예수그리스도의 생애가 먼저 있었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가 있기 전에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루어진 구원은 삼위하나님의 이름으로 동시에 이루어졌습니다. 침례를 받음으로 이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사역에 시간적인 차이는 있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 영광 받으시기 전에는 성령이 오시지 않았고 또 아버지의 뜻이 없었다면 아들이 이 땅에 오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뜻과 성령의 사역 중간에는 삼위하나님의 이름이 동시에 역사합니다.”(성령을 알자 46-47)

우리는 아버지의 보좌와 아들의 보좌가 따로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한분이십니다. 그래서 따로 보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보좌에 앉으시고 아들이 그 우편에 앉으셨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편이라는 것은 아버지가 가장 사랑하는 곳입니다”(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35)

여호와가 천사의 이름이라고 주장하던 김기동목사는 하나님의 이름이 예수라고 주장을 한다.

“(96) 삼위하나님의 이름은 예수다. 우리에게 예수 이름을 주신 것은 우리를 보전하기 위헤서다”(베사 2,17)

인자는 아버지 품 속에 나오실 때 예수란 이름을 가지고 나오셨습니다. 그 전에는 예수 이름이 불리지 않고 여호와 이름이 불렸습니다. 인자가 세상이 오시자 비로소 예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하늘로 가시면서 이 세상에서 예수 이름만 알려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동안 여호와 이름으로 했던 것은 인자가 오심으로 폐하여 없어진 것입니다”(베뢰아원강, 608)

  

성령이 예수 이름으로 너희 속에 임하신다’(14:26)고 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의 이름은 보혜사이고, 성자의 이름은 예수이고, 성부의 이름은 여호와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보혜사는 성령의 이름이 아니고 직분을 일컫는 말입니다. 예수만이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이 아버지의 이름을 아들에게 주셨고, 또 아들이 하늘로 간 후에 성령이 그 이름으로 오셨습니다.” (베뢰아원강, 356-357)

4) 본질과 본체, 본영?

김기동목사는 본체(휘포스타시스)라는 말 자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는 본영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신조어를 만들어낸다.

또한 하나님은 물질이 아니고 영이십니다. 그래서 본영으로서는 성령이 되십니다. 이는 질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구시냐 할때의 그 하나님은 본질을 말하는 것이기에 아버지이시며, 그가 나타나셨을 때에는 본체이시며, 영으로 오셨을 때에는 본영이라는 말입니다. 이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 안에 계실 때에는 아버지이시고 우리 안에 계실 때에는 성령이십니다.”(성령을 알자 60)

“(315) 신이 아니면 하나님이실 수 없으니 신으로서는 성신이라고 하고, 자존자로서 조물주가 아니면 하나님이실 수 없으니 만물의 아버지라는 뜻에서 성부라 하고, 관념이 아니라 형상이 있는 실체라는 뜻에서 성자라 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일을 하기 위해 피조물의 형상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뜻이다. 아버지의 뜻을 성취한다는 말은 아버지의 뜻에 복종한다는 뜻이고, 우리도 그 뜻에 복종하면 아들이라고 불리게 된다.(베아15,10) 하나님은 삼위일체시다. 아버지는 본질, 아들은 본체, 성령은 본영이시다. 그러나 신은 한분이시다. 하나님의 신, 아들의 신, 성령의 신이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다. 아버지도 완전한 인격이시고, 아들과 성령도 완전한 인격이시다. 그러나 셋은 한분이시다.(베아16,23) 세상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자격과 인격이 각각 있다면 개체이기 때문에 일체가 될 수 없다.그러나 하나님은 각각이 개체가 아니시고 위가 각각이신 한분이시다(베아21,25)” (베뢰아원강 199)

하나님은 본질이고, 예수는 본체라는 주장에 쓴웃음을 감추지 못하겠다.

한마디로 김기동목사의 신학적인 무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휘포스타시스라는 단어는 본질, 본체, 실상라는 뜻을 갖는다.

헬라어 성경사전을 찾아 보자.

본체로 번역된 히1:3 휘포스타시스는 다음과 같은 뜻을 갖는다.

휘포스타시스 : (원조)하의 상황’, (비유적 의미에서) 구상적으로 본질‘, 혹은 추상적으로 확신‘(객관적이거나 주관적으로), 본체, 실상, 실체, confidence essence;

휘포스타시스 본질, 본체, 실상, 실체를 뜻한다.

하나님은 본질을 말하고, 예수는 “본체라는 김기동목사의 주장은 휘포스타시스가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무작정 본질과 본체가 다르다고 한문식으로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성경은 하나님이 본질이라는 내용이 단 하나도 없으며, 삼위일체에서 신학적인 용어로 본질이 하나라고 말하는데, 그 단어가 바로 휘포스타시스이다.

즉 하나님이 본체로 나타난 분이 예수이고, 영으로 우리 안에 계시면 성령이라는 것이라는 김기동목사의 주장과 삼위의 사역에 시간적인 차이가 있다는 주장은 정확한 양태론이다. 그러므로 김기동목사에게 구약의 성령은 피조물인 천사가 되어질 수 밖에 없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신이 동시에 공존한다면 양태론이 오류가 되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베뢰아 김기동목사에게 있어서 성부, 성자, 성령은 모두 한 분 하나님으로서 형태만이 달라진 한 인격일 뿐이며, 즉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것 뿐이다.

성경을 믿고 구원을 받은 다음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38절에 믿고 죄사함 받은 자가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성령을 받지 않아도 구원은 받을 수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은 구원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았던 50일 간도 그리스도의 공로로 구원은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를 변호하기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성령을 알자 100)

5) 구약에는 성령이 없었는가?

앞에 살펴본 것과 같이 김기동목사는 양태론자이다. 그리고 김기동목사에게 성령은 오순절 이후에 처음 등장하는 존재이므로, 그 전에는 성령없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여야만 한다. 만일 그러한 주장을 하지 않으면 모든 인간은 오순절 이후에만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처음 단추를 잘못 꿰면 나중 단추는 잘못 될 수 밖에 없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필요하다고 인정하시는 극히 제한된 사람만이 성령을 받았다. 그러나 신약에서 누구든지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구원이 있었지만, 신약에서는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이미 구약에서 요엘선지자에게 예언된 약속이며 그것이 오순절에 성취되었던 것이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2:16-17)

물론 오순절 사건은 매우 특별한 방법이었으며 여태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방법에 의한 것이었으며 그것은 만민에게 신을 부어주는 요엘2 28절의 성취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에는 한번도 신이 내주한 적이 없다는 그러한 뜻이 되어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즉 오순절 성령은 만인에게 부어지는 성령이며, 영원히 내주하는 성령을 뜻한다.

에스겔 39 29절은 내가 다시는 내 얼굴을 그들에게 가리우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내 신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쏟았음이니라.”라고 언급하고 있다.(KJV 영어성경은 현재완료형의 시제를 사용하고 있음)

그렇다면 구약에서 볼 수 없었던 오순절의 쏟아 부어지는 영은 무엇이 과연 특별한 방법이 된다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만민에게 인 것이다.

즉 성령의 보편적이고 개인적인 사역에서 구약의 성령의 임재와 제한성과 특수성에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새롭고 특별한 방법이 되어 지는 것이며 오순절에 그것이 성취되었던 것이다.

구약에 있어서 하나님과 인격적 교제를 할수 있었던 사람들은 매우 드문 예였으며 단지 하나님에 의하여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들에 국한되었던 것이다

구약에서는 사사들이나 선지자들이 소개되어 질때에는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였으므로 로 성경은 시작되어 진다.(참고. 3:10. 6:34. 11:29. 14:6. 14:19. 삼상10:6. 16:13. 왕상18:12. 대하20:14)

즉 구약의 성령은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하나님에 의하여 통제되고 하나님에 의하여 주어지는 그러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구약에서는 성령이 성도에게 임한 적이 없을까?

김기동목사의 이러한 주장은 지방교회 위트니스 리의 모방으로 보인다.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예수 안에 계신 성령은 어느 장소에도 어느 사람속에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과거 선지자들도 성령을 힘입었고 요한도 모태로부터 성령충만함을 입어라고 했으나 그들은 성령의 권위로 외투를 입고 있듯 힘입었던 것이지 내주하여 임하신 것은 아닙니다.” <김기동, 성령을 알자 책76페이지>

구약시대에는 모두가 천사에 의해 이끌림을 받았기에 성령을 받은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양자의 영을 아직 받지 못한고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습니다.”(김기동, 마귀론 상 61페이지)

과연 구약에서는 성령이 성도의 안에 임한 적이 없을까? 찾아보자….

말씀하실 때에 그 신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세우시기로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2:2)

NIV: As he spoke, “the Spirit came into me” and raised me to my feet,

KJV: And “the spirit entered into me” when he spake unto me, and set me upon my feet,

히브리어 안으로 오다, 거하다는 뜻이다.

분명히 “Came into” 이며 그것이 외적사역인지 내적사역인지 확인하시기 바란다.

또 겔3:24, 4:8, 4:18, 5:11등도 모두 외적 사역이 아니라, 내적으로 거함을 의미한다. NIV영어성경, KJV영어성경, 그리고 히브리어 성경을 참조하기 바란다.

또 눅1:41에서는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고 되어있으며 이것은 “was filled with the Holy Spirit” 로 번역되어 충만히 채워지는 가득한 내부적인 상태를 말하며, 1:61에서 그 부친 사가랴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언을 하였다고 기록되어있다.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성령충만이 되는가?

구약에서도 모세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신(Spirit) 150명의 장로에게 동시에 임한 적도 있다. 그러나 구약에서 성령은 필요에 따라 주어진 것이며, 신약과 같이 영원히 내주하는 것이 아니었다.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임한 신을 칠십 장로에게도 임하게 하시니 신이 임하신 때에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다시는 아니하였더라”( 11:25)

6) 김기동목사의 오류

동일한 책에서 더욱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하나님의 신이 천사라고 주장했던 김기동목사는 다음에서 하나님의 신은 천사도 아니며 성령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아담에 부어준 영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창세기63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신은 성신(성령)이란 말이 아닙니다. 성령은 예수께서 오신 후 비로소 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하나님의 신은 아담에게 부어주신 아담의 영을 말하는 것입니다.“ (베뢰아원강, 678)

김기동목사의 이중아담론이 무엇인가?

영이 없는 짐승과 같은 사람들 중에서 하나를 택하여 성령을 부어준 것이 아담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제와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부어준 영은 아담의 영이었다고 변명을 하고 있다.

모순은 모순을 낳고, 오류는 오류를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