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선지자와 거짓 예언
이인규
최근에 땅굴이 지하철 앞과 청와대 앞까지 이미 뚫려있다고 주장하며, 곧 전쟁이 일어난다는 예언을 한 어떤 여자 때문에 단체로 외국으로 나간 교회도 있다는 텔레비전의 방송도 있었다. 또 외국의 이상한 인사를 초청하여 곧 전쟁이 일어난다는 집회를 했던 교회들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조용하기만 하다.
시한부종말론에 대한 계시를 받았다는 자칭 선지자들도 간혹 있었다. 성경은 분명히 “그 날과 그 때를 아무도 모른다”고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거짓주장에 미혹된 사람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또 베리칩을 받지 않으려면 어느 외국에 가야만 한다고 주장하여, 집을 팔고 직장과 학교를 그만 두고 집단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이단도 있다. 반면에 미국에 있는 어떤 단체는 한국으로 가야만 베리칩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한국으로 들어온 곳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 통치 안에 강제로 베리칩을 몸 안에 이식할 것이라는 주장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이러한 주장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소위 구원파라고 부르는 이단들 중에는 아직도 바코드와 베리칩을 받지 말아야만 한다고 가르치고 있으며, 열뿔이 유럽연합이라고 주장했지만, 지금은 10개국이 넘어서 27개국이 되었다. 마태복음 24장의 무화과나무가 1948년 이스라엘 독립을 뜻한다고 하여 한 세대 안에 예수가 오신다고 주장했던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과 세대주의 목사들은 무엇이라고 변명을 하고 있는가?
이런 근거없는 황당한 개인의 예언이 널리 퍼지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2007년에 큰믿음교회에 온 샨볼츠라고 하는 신사도운동의 예언사역자는 3년 안에 한국에서 남과 북이 평화와 통일의 계기를 갖게 된다고 예언하였는데, 오히려 2010년 이후부터 남과 북이 냉전에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비성경적이라는 것이며, 그것은 결국 성경이 가장 객관적이며 최종완성된 특별계시라는 것을 인정하지 때문이다. 이미 성경은 초대교회부터 거짓선지자와 거짓선생에 대해서 경고를 하고 있는데, 성취되지 않으며 증험이 없는 예언은 거짓예언이다. 이루어지지 않은 예언은 곧 하나님이 잘못 가르쳐 주셨다는 결론이 되기 때문이다. 예언의 성취에 대해서 신사도운동 인사들이 말하는 주장을 들어보자.
“당신은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신디, 당신의 예언이 틀린 적은 없습니까?’ 물론 나도 있다”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신디제이콥스, 270쪽).
예언이 틀릴 수가 있다면 그 예언은 당연히 거짓말이다. 마이크 비클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에 국민일보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예언과 쓰러트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예언도 마찬가지다. 때때로 맞지만 대부분 경우 아니다. 전부 맞다, 안맞다가 아니다. 조금은 맞지만 대부분 맞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마이크 비클,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IHOP에서 일어나는 외적인 현상의 80%가 가짜일 가능성이 크다. 예언하고 넘어뜨리고 하는 것들 말이다. 그 중에서 물론 진짜도 있다. 한 20%. 크게 잡은 것이다.” (2011. 3. 7. 마이크 비클, 국민일보 인터뷰 기사)
마이크 비클의 말을 그대로 살펴본다면, 아이합은 말할 필요도 없는 거짓 단체이다. 대부분의 예언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아이합의 예언자학교는 하루 빨리 문을 닫아야 한다.
하나님이 알려주신 예언은 틀릴 수 없다. 왜냐하면 예언은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아서 그대로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행크 헤너그라프는 그의 책에서 빈야드교회 목회자였던 데이빗 레이븐힘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엉터리 예언으로 피해를 입은 경우를 언급한다. 그 거짓 예언자는 잘못된 책임을 성령께 돌리고 있다.
“가짜 부흥운동 예언자인 밥 존스는 ‘3분의2 정도만 맞혀도 꽤 잘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가짜 부흥운동 리더인 잭 디어도 현시대 예언자에게 100% 정확성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한다. 디어는 800여 명이나 되는 청소년들이 모인 곳에서 한 학생에게 ‘포르노를 보는 죄를 짓고 있다’고 잘못 예언을 한 예언자의 이야기를 예로 들려 주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예언자는 문제의 학생을 앞으로 불러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는 포르노에 빠져 있구나. 주가 회개하라고 말씀하신다.’ 디어의 말에 학생은 울기 시작했다. 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디어는 그 다음 상황도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 학생은 800명이나 되는 친구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창피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학생의 교회로 찾아가 교회에 사과하고 모든 회중에게도 사과했습니다. 정말 난처한 상황이었습니다’……하지만 비록 걸림돌이 있긴 하지만 모든 일은 전적으로 성령께 책임이 있다. (행크 헤너그라프, 빈야드와 신사도의 가짜 부흥운동, 164-166쪽)
구약과 신약을 모두 통틀어서 성경에는 거짓선지자와 거짓선생에 대한 내용이 많이 등장하고 이것을 경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오랫동안 거짓선지자를 사칭하는 자들이 많이 존재하였다는 증거가 된다.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벧후 2:1)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자들이 허탄한 것과 거짓된 점괘를 보며 사람들에게 그 말이 확실히 이루어지기를 바라게 하거니와 그들은 여호와가 보낸 자가 아니라 너희가 말하기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여도 내가 말한 것이 아닌즉 어찌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된 점괘를 말한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허탄한 것을 말하며 거짓된 것을 보았은즉 내가 너희를 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선지자들이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 것을 점쳤으니 내 손이 그들을 쳐서 내 백성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호적에도 기록되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땅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겔 13:6-9)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령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점술과 헛된 것과 자기 마음의 거짓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는도다”(렘 14:14)
‘선지자’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나비’, ‘로에’, ‘호제’라는 히브리어가 주로 사용되었다. 특히 ‘로에’와 ‘호제’라는 단어는 ‘보는 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즉 하나님이 보여주신다는 의미이다. ‘나비’라는 단어의 어원에 대해서 학자들은 여러 견해가 있지만, 성경적인 의미를 볼 때에 ‘공동체에 하나님의 멧세지를 전하는 직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0-21)
예언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사사들에게 그의 멧세지를 전하려고 할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에게 임하여 이르시되”라는 표현이 자주 나타난다.(창15:1, 삼하7:4, 왕상6:11, 왕상17:2, 겔6:1등)
즉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공동체에 그대로 전하는 직분’을 가르킨다. 성경에서 말하는 ‘선지자’는 다른 종교의 ‘예언자’와는 의미가 다르다고 보여진다. 예를 들어 헬라와 같은 이방지역의 ‘예언자’들은 ‘신탁을 해석하는 자’의 개념이었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선지자는 해석하는 직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멧세지를 그대로 전하는 자’를 뜻한다. 선지자의 의미가 잘 언급된 구절은 신명기 18:18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신 18:18-19)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가 거짓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과연 무엇일까? 성경을 살펴보면 그 거짓선지자의 분별에 대해서 몇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선지자의 말이 증험도 없고 성취도 없을 때이다.
어떤 선지자의 멧세지가 일부가 맞았다고 가정한다고 하여도 그 예언이 틀렸다고 한다면 그는 거짓선지자이다. 하나님의 멧세지는 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틀릴 수도 있다는 변명은 성립되지 않는다.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네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께서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신 18:20-21)
(2) 신학적이며 교리적인 가르침의 문제이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신학과 교리적인 가르침이란 어느 특정한 교리와 신학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당연히 ‘성경적인 가르침’을 뜻한다. 우리가 조심하여야 할 것은 기적과 표적이 있다고 하여 무조건 선지자가 맞다고 말할 수도 없는데, 성경은 거짓선지자들도 큰 기적과 표적을 나타낼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 24:24)
어떤 선지자라고 하여도 이적과 기사를 보인다고 하며 그가 진정한 선지자라고 말할 수 없다.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을 따르며 그를 경외하며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 말을 바꾸어 말하면 그가 추구하는 신앙적인 대상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이름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어야만 하며, 그 방법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는 성경적인 신학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며 그를 경외하며 그의 명령을 지키며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를 의지하며 그런 선지자나 꿈 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에게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게 하려 하며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령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신 13:1-5)
거짓선지자인가 아닌가하는 기준은 결론적으로 그 영이 하나님께 속한 영인가 아닌가를 분별하는 것이었다. 그 분별의 기준은 기록된 말씀이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요일 4:1)
사도요한은 우리의 말, 즉 사도들의 말을 듣는 자는 진리의 영이며, 사도들의 말을 듣지 않는자는 미옥의 영으로 분별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요일 4:6)
성경에서 “모세와 선지자” 혹은 “모세와 율법”, “하나님의 명령”과 “여호와의 말씀”은 곧 “기록된 성경”을 가르킨다. 신약에서도 사도들의 가르침과 서신문은 곧 성경이었다, 다른 복음을 경계하라고 하였을 때에 곧 사도들이 전하지 않은 다른 복음은 저주를 받았으며, 비록 하늘의 천사가 전하였을지라도 그것은 다른 복음이 되었다.(갈1:7-9)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에게 방언과 같은 은사를 남용하는 행위를 비판하며 경고하는 서신을 보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4:29에서 예언을 분별하라고 경고한 후에 자기를 선지자이며 신령한 자라고 주장하는 거짓선지자들의 미혹에 대해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고전 14:36-37)
즉 바울의 서신, 곧 성경은 주의 명령이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선지자 혹은 신령한 자로 말하고 싶다면, 편지(사도들의 가르침)을 주의 명령으로 알아야만 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렇게 자신있게 당당한 주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곧 바울의 사도성과 함께 성경이 곧 주의 명령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말이 될 것이다. 이러한 내용이 바울의 최초의 서신이라고 하는 데살로니가전서 2:13에도 등장하는데, 바울은 데살로니가교인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것을 감사하고 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그 후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를 기록하는데, 그 이유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 서신의 권위에 대해서 엄하게 경고하고 있다.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살후 3:14)
사도 베드로도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명하신 것을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과 동일한 권위를 갖는 것으로 말하였다.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벧후 3:2)
유다는 자신을 예수의 동생 야고보와 형제라고 소개하는데, 그도 거짓선지자들의 미혹과 기롱을 경고하면서 사도들의 한 말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유1:17-18)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선지자의 예언은 성경적인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며, 기록된 성경이 객관적인 기준이 되어진다.
또한 모든 선지자와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서 종결되어지고 또한 성취되어져야만 하며, 최종적인 계시와 예언은 기록된 성경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구약에서 선지자, 사사 혹은 천사를 통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멧세지를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전하여 왔다. 그러나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곧 성경이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한 객관적인 기록이므로 특별계시가 되어진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히 1:1-2)
성경이 기록된 목적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구원에 받게 하려는 것이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9)
3)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
“내가 사마리아 선지자들 가운데 우매함을 보았나니 그들은 바알을 의지하고 예언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그릇되게 하였고 내가 예루살렘 선지자들 가운데도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을 행하는 자의 손을 강하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과 다름이 없고 그 주민은 고모라와 다름이 없느니라”(렘 23:13-14)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엡 5:9-10)
그 선지자는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며 양의 옷을 입었으므로 외형적인 모습으로 판단하기 어려우며, 그 열매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예언을 하는 선지자라고 하는 자들의 열매가 드러나는 것을 보면 그들의 정체를 알 수가 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50-20) “
4) 성경은 사람이 장래 일을 알 수가 없다고 말한다.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 바람을 주장하여 바람을 움직이게 할 사람도 없고 죽는 날을 주장할 사람도 없으며 전쟁할 때를 모면할 사람도 없으니 악이 그의 주민들을 건져낼 수는 없느니라”(전 8:7-8)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 7:14)
“우매한 자는 말을 많이 하거니와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나중에 일어날 일을 누가 그에게 알리리요 우매한 자들의 수고는 자신을 피곤하게 할 뿐이라 그들은 성읍에 들어갈 줄도 알지 못함이니라”(전 10:14-15)
물론 성경에는 선지자가 바울에게 위험을 알려주는 예언이 있으며(행21:11), 요셉이 꿈을 통하여 장래 일을 예언한 적도 성경에는 있다.
그러나 그러한 극소수의 예언은 그 사람이 공동체에서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을 유의하여야 한다. 바울의 경우에 선지자는 그 위험을 피하라고 바울에게 말하지는 않았으며, 그 예언을 들었던 사람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권고를 한 것이지만, 바울은 예언을 해달라고 요청을 한 적도 없고, 올라가지 말라는 주위의 권고를 듣고 피하지 않으며, 그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 즉 사도바울의 개인을 위한 장래 일을 점치는 것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5) 선지자는 개인의 이익을 위한 예언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가져오는 예언을 말하여야만 한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그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보내신 직분이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23:32)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4-7)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 12:4-8)
은사에 대한 신학적인 견해에는 은사중단론도 있지만, 은사지속론도 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른 견해를 선택할 수 있다고 보는데 취향에 따라서, 소속교단의 성향에 대해서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필자는 오늘날도 은사가 중단되었다고 보지 않지만, 은사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각 지체에서 나누어준 성령의 선물이라고 본다.
마틴로이드존스 목사는 중간적인 입장이며, 지금은 초대교회 때와 같은 일부 은사는 일시적이었다고 본다. 그는 예언의 은사에 대해서 구약과 신약이 달랐다고 보며, 예언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멧세지를 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것들 중 가장 먼저, 일시적인 은사들입니다. 이에 속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사도직의 은사입니다. 사도직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단 한번으로 영원합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을 사도로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은사는 더 이상 없습니다. 그런 동일한 것을 예언의 은사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예언의 은사란 무엇입니까? 구약에서 그것은 두가지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백성들에게 진리를 전하는 ‘외부로 말하는 것’(forthtelling)입니다. 그것은 누군가 영감을 받아 계시를 전하는 혹은 백성을 가르치는 도구와 통로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 역시 ‘예고하는 것’(foretelling)을 의미합니다”(마틴 로이드존스, 성령하나님, 기독교문서선교회, 385쪽)
즉 예언은 개인의 장래에 대해서 점을 쳐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공동체에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멧세지를 전하여 주는 forth-telling을 말한다. fore-telling도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반드시 증험이 있어서 성취되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