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도운동의 정체와 비판
이인규
제1장 서론
제2장 신사도운동의 정체
제3장 신사도운동의 비판
제1장 서론
◆ 신사도운동(New Apostolic Reformation)
신사도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사도와 선지자”라는 직분을 주장하는 것이다. 사도가 계승된다는 주장은 주로 이단들의 주장이었으며, 일부 이단들과 지방교회는 위트니스 리와 워치만 니를 사도라고 부르며, 몰몬교도 그들의 지도자들을 사도라고 부른다. 자신들을 사도와 선지자로 부른다는 것은 곧 성경의 성취성과 완전성을 부정하는 주장으로서 자신들의 주장이 지금도 계속하여 성경이 되거나 성경과 동등한 권위가 있다는 주장이 되어지기 때문이다. 피터 와그너는 국제 신사도연맹을 만들어서 2001년부터 자신들의 단체를 제2의 사도시대(신사도개혁운동)이라고 불렀다. 사도와 선지자가 있다는 것은 그들을 통한 직통계시와 예언이 있다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이 곧 신적권위가 있다는 의미를 반영한다.
신사도운동은 세상을 7대권으로 나누어 신사도운동이 종교뿐 아니라 문화, 경제, 사회, 국가등 모든 분야에서도 통치적인 주권을 행사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그들은 dominion (지배, 통치)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혹은 킹덤나우(Kingdom Now)라고도 하는데 지상에서 천국을 세운다는 의미이며, 자신들을 종교개혁에 비교함과 동시에 기독교를 옛 포도주와 헌 가죽부대라고 비유하므로서 예수님이 유대인들을 대하는 것과 같이 비유하고 있으며 기독교를 종교의 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이 운동을 가리켜 내가 붙인 이름은 ‘신사도적 개혁’(New Apostolic Reformation)이다. 내가 개혁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이 운동의 전반적인 영향력이 개신교 종교개혁에 필적하기 때문이다.(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피터와그너, 9-10쪽)
(신사도운동의 특징)
1) 오중직분과 은사 (사도와 선지자)
2) 기적과 표적의 현상 집회
3) 예언과 계시
4) 도미니온(통치신학, 주권운동, 킹덤나우))
5) 개방신학(열린신학)
6) 영적도해(지역신)
7) 종말론적 성취(오순절, 신부운동, 다윗의 장막, 요엘의 군대)
8) 임파테이션(성령과 은사의 전이)
9) 새 포도주와 새 가죽부대
10) 중보기도(중보자)
물론 신사도운동이라고 하여 모든 단체들이 위의 교리들을 모두 100% 동일하게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신사도운동은 하나의 단체가 아니라 일종의 movement(운동, 성향)을 뜻한다. 특히 신사도운동은 좁은 의미로서는 피터와그너의 단체를 말하지만, 넓은 의미로서는 신사도운동과 유사한 모든 단체의 운동을 포함하고 있다(예를 들면 아이합). 즉 신사도운동과 그 유사단체들은 교리적으로 조금씩 다른 차이점을 가질 수 있지만, 본 보고서는 신사도운동과 그 유사단체가 지지하는 교리와 사상을 포괄적인 의미로서 보아서, 개략적인 특징을 설명하고저 한다.
제2장 신사도운동의 정체
(피터 와그너가 분류하는 제3의 물결)
1) 제1의 물결 : 1900년대 초의 캘리포니아 아주사의 (성령부흥운동)
2) 제2의 물결 : 1960-70년대에 은사주의 운동(방언과 성령세례)
3) 제3의 물결 : 1980년의 빈야드 (다양한 현상주의적 집회)
(밥 존스의 분류)
1) 제1의 물결 : 토론토 브레싱
2) 제2의 물결 : 펜사콜라의 부흥운동
3) 제3의 물결 : 새 변화의 바람 ㅡ 온 세계에 부흥이 일어날 것
이들이 주장하는 “물결”(Wave)의 의미는 결국 숫적인 부흥을 뜻하는 것이다.
(피터 와그너가 말하는 신사도운동의 유래)
1830년 에드워드 어빙파
1900년 아프리카 독립교회
1970년 은사주의
1970년 남미 풀뿌리운동
1980년 빈야드운동
1989년 제2차 로잔회의 영적도해
(필자가 보는 신사도운동의 유래)
(1) 늦은비 운동 (윌리엄 브랜넘, 폴 케인)
(2) 캔서스 예언자 그룹(밥 존스, 마이크 비클등)
(3) 빈야드운동(존 윔버), 토론토브레싱(존 아놋)
(4) 영적도해 그룹(신디 제이콥스, 존 도우슨, 조지 오티스, 루이스 부쉬등)
(5) 2001년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연맹
피터와그너는 신사도운동의 유래를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것은 고의적으로 하나의 역사성과 전통성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주장일 뿐이며, 필자가 보는 관점은 전혀 다르다.
필자가 보는 신사도운동의 유래의 직접적인 동기는 몇가지의 이단적인 단체의 혼합과 계승으로 보는데, 첫째, 늦은비 운동, 둘째, 늦은비 운동에서 비롯된 캔서스시티예언그룹(Kansas City Fellowship: KCF) 셋째 빈야드 운동이라고 보며, 넷째, 영적도해를 주장하는 지역 귀신론 그룹까지 연합이 되어, 신사도연맹으로 시작한 것으로 본다. 그리고 현재 신사도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유사단체들이 성행하고 있다.
(1) 늦은비 운동과 캔서스예언그룹
늦은비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은 윌리엄 브랜넘이며, 브랜넘은 오컬트적인 귀신 축사, 치유, 천사, 정통신학의 부정등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고 한다. 마이크 비클의 책을 보면 브랜넘을 따르는 사람들은 브랜넘을 ‘엘리야 선지자‘라고 부르며 그를 추종하였다고 한다.
이 늦은비 운동은 현재 신사도운동의 원조가 되어지며 이단적인 집단이다.
그러한 늦은비 운동이 계승된 곳이 캔서스예언그룹이며 폴 케인과 밥 존스, 마이크 비클등이 예언사역을 했던 단체이다. 캔서스예언그룹(KCP: Kansas City Prophets)은 단체의 명칭이며, 마이크 비클이 세운 교회가 캔서스펠로십(KCF: Kansas City Fellowship)이었다. 후에 폴 케인은 동성애와 알콜중독등의 추문으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브랜넘은 1930년대부터 늦은비운동이라고 불리는 단체의 중심적인 인물 혹은 교주이었다. 현재 신사도운동이 주장하는 사도와 선지자의 직분 계승, 예언, 신부운동, 종말론적인 주장, 성경적인 해석 오류, 임파테이션등은 모두 늦은비 운동에서 가르쳤던 사상이다. 어쨋든 늦은비 운동에 대한 이단성들에 대해서는 1949년 시애틀 기독교 총회에서 다음과 같이 발표되었다. (구체적인 사항은 필자의 책, 신사도운동의 정체와 비판을 참고할 것)
1) 교회의 기초가 되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복원.
2) 안수와 사람의 의지에 의하여 성령의 기름부음이 전이된다는 임파테이션의 가르침
3) 사람에 대한 죄로부터의 축출과 고백.
4)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정통신학적인 가르침에 반대
5) 성경을 왜곡하여 비유적으로 해석하는 것
이 늦은비 운동이 곧 신사도운동의 유래이며 모태가 되어진다.
마이크 비클은 늦은비 운동의 브랜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하지만 그는(브랜넘은) 비록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부인하거나 성경의 권위를 의심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이설적인 교리를 만들어 내었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인정했지만, 삼위일체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계시록 3장의 일곱교회에 보내진 ‘천사’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를 따르는 자들 사이에 큰 혼동이 일어났다. (마이크 비클, 예언사역의 여정, 94쪽)
그러나 행크 해너그라프에 의하면 브랜넘은 완전한 이단으로 묘사되어진다.
– 1963년 브란함(Branham)은 자신에게 엘리야의 영이 임했다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이미 죽은 교회를 벗어나 종말 예언자들에게 충성을 다하라”고 경고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사도였던 것처럼, 브란함은 마지막 때에 자신이 라오디게아 교회의 천사라고 말했다. 브란함은 “1977년 쯤에는 로마 카톨릭이 통제 아래 모든 분파가 세계교회협의회에 속할 것이고 그러면 휴거가 일어나고 세계는 파괴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브란함의 빗나간 예언은 브란함의 잘못된 교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브란함은 “뱀의 씨앗 교리”를 주장하며, 이브가 뱀과 관계를 맺어 가인을 잉태했다고 주장했다. <오순절, 은사주의 운동 백과사전>은 브란함의 새로운 계시를 이렇게 요약한다. “이브는 뱀과 성적관계를 맺는 죄악도 저질렀다. 어떤 사람은 뱀의 씨앗에서 출생하여 지옥에 갈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이 운명이 영원하지는 않다. 하나님의 씨앗, 즉 브란함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도록 예정되어 있다. 아직도 자유의지를 내세우며 분열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 중에도 구원받을 자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대환란을 통해 고난을 받아야 한다. 브란함은 분열된 교회야말로 사탄의 징표라고 여겼다”. 브란함은 성경적 삼위일체를 강경하게 거부했다. 브란함은 1937년 자신의 아내와 아기가 죽은 것은 자신이 오순절 교회 안에서 일치를 이끌어 내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이라고 확신했다. 브란함은 “삼위일체론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이클 모리티어는 “브란함의 정도를 벗어난 가르침은 늦은 비 운동과 하나님의 나타난 아들들 운동과 같은 소수 컬트 집단을 양산했을 뿐 아니라 거짓예언, 계시적 광란, 교리적 이단 그리고 브란함의 설교를 말로 된 성경이라고 여기는 사교집단들을 만들어 냈다.”고 지적한다. 1965년 12월18일, 브란함은 음주 운전자와 정면충돌하는 바람에 죽었다. 브란함이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 하나님’이라고 믿었던 친구들은 브란함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브란함은 아직 무덤 안에 있지만 종말회복주의를 외쳤던 브란함의 가르침은 여전히 살아있다….. 케네스 헤겐과 잭 디어 같은 가짜 부흥운동 지도자들은 계속해서 브란함과 브란함의 모방자들이 일으킨 치유부흥운동을 하나님의 역사라고 극찬한다. (빈야드와 신사도의 가짜 부흥운동, 257-258쪽)
1965년 윌리엄 브랜넘이 죽은 후에 늦은비운동은 결국 와해되어지며, 이곳에서 사역했던 폴 케인이 1980년대에 마이크 비클과 밥 존스를 만남으로서 함께 캔서스예언자그룹이 시작된 것이다. 이 캔서스예언그룹은 마이크 비클이 세운 캔서스펠로우쉽이라는 교회로 시작되었으며 1983년 마이크 비클은 밥 존스를 처음 만나게 되므로서, 캔서스 예언그룹의 예언사역이 시작된다.
이 캔서스예언그룹에 대해서는 7년 동안 함께 사역했던 어니 그루엔이라는 목사가 1990년 그들의 정체를 폭로하였다. 이것을 어니 그루엔 레포트라고 하는데, 이 보고서의 내용에 의하면 캔서스예언그룹은 거짓과 조작으로 이루어진 곳이며, 마이크 비클과 밥 존스는 명백한 거짓선지자라는 것이다. 어니 그루엔이라는 동역자가 목숨의 위협을 무릎쓰고 이 레포트를 통하여 캔서스예언그룹에 대해서 폭로를 하자, 많은 사람들이 캔서스예언그룹을 떠나게 되었고, 결국 KCP는 정체를 감추었고 문을 닫게 되었으며, 빈야드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타났다고 말한다.
어니 그루엔 레포트가 말하는 예언의 몇가지 사례
1) 1990년에 종교지도자가 1,000명이 죽을 것이다 : 그런 일은 없었음
2) 6주 안에 젊은이가 6명이 죽는다 : 그 지역에서 2년 동안 3명의 젊은이가 죽었음
3) 3달 동안 가뭄이 들것이다 : 3달 동안 평균치보다 오히려 비가 더 많이 왔음
(2) 빈야드운동
빈야드운동의 시작은 존 윔버(John Wimber, 1934-1997)이며, 소위 Power Religion라고 부른다. 그는 1970년부터 퀘이커 교회의 목사였다가 1974년에는 풀러신학교의 교회성장 연구소의 연구원이 된다. 그는 오순절 운동과 은사주의와 표적과 기사등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1977년에 에너하임에 빈야드교회를 개척한다.
윔버는 ‘능력 전도’와 ‘능력 치유’등과 같이 능력(Power)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였다
피터 와그너가 빈야드운동의 존 윔버를 알게 된 것은 1980년경이다. 그래서 1988년 피터 와그너는 “제3의 물결”이라는 책을 발행하면서 빈야드운동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며,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고 본다.
그후 1989년 마닐라에서 제2차 로잔회의가 열리게 되며, 빈야드 운동은 1989년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 해에 1982년부터 환상과 예언등의 선지자 운동에 주력하고 있던 마이크 비클과 밥 존스를 포함한 캔자스시티의 예언자들이 빈야드운동의 존 윔버와 교분을 쌓은 폴 케인의 예언과 권유로 모두 빈야드 운동에 합류하였기 때문이다. 마이크 비클과 캔사스시티의 선지자들의 예언운동과 기적과 표적의 집회를 열었던 존 윔버의 빈야드 운동이 서로 합류하고 연합함으로서 다시 부흥을 시도하였고, 풀러신학교의 교회성장학과의 교수였던 피터 와그너가 존윔버를 풀러신학교로 초청하여 “Signs, Wonders, and Church Growth”라는 과목을 개설하게 되므로서 신사도운동이 시작되어진 것이다.
토론토 브레싱(존 아놋)
존 아놋(John Arnott)의 교회에서 시작된 ‘토론토 브레싱’(Toronto Blessing)은 분열된 또 하나의 다른 빈야드를 말한다. 존 아놋은 1988년에 토론토 공항근처에서 빈야드 교회를 시작하였는데, 빈야드운동에 비하여 토론토 브레싱의 특징은 빈야드보다 더욱 격렬한 쓰러짐, 짐승소리, 웃음, 진동, 입신등의 집회를 성령의 역사라고 주장하게 된다. 특히 웃음과 짐승소리같은 격렬한 반응은 빈야드에서 볼 수 없었던 경우였다.
토론토브레싱의 영적체험적인 현상에 대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몸의 진동과 떨림 (2) 쓰러짐, 입신 (3) 술 취한 듯한 행동, 춤 (4) 몸부림 치거나 경련을 일으키는 현상. 딩굴기 (5) 웃거나 흐느껴 우는 현상, 짐승의 소리, 부르짖음 (6) 장시간 계속하여 찬송을 부르는 행위
존 윔버는 토론토브레싱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비난하였으나, 빈야드연합회의에서는 토론토브레싱을 빈야드운동으로 인정하게되고, 존 윔버는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게 되며, 암으로 죽는다. 그 이후 빈야드운동은 몰락하고 만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인가?
펜사콜라의 부흥
그 후 1995년 토론토브레싱과 같은 부흥운동이 플로리다의 펜사콜라에서 존킬 패트릭 목사를 중심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이것을 ‘펜사콜라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당시에 성령의 능력을 보기 위해 세계 도처에서 성도들과 목회자들이 펜사콜라를 방문하였다고 한다.
펜사콜라에서는 새로운 부흥운동이라고 주장하였으나, 펜사콜라의 인사들이 집회 얼마 전에 토론토를 방문하였으며, 토론토 교회의 인사들이 펜사콜라 집회에 참여했다는 것이다(136-139쪽). 즉 펜사콜라는 새 물결이 아니라, 토론토 브레싱의 연장이었다는 것이다.
이 펜사콜라에 대해서는 조용기목사가 미국을 방문하여 기도를 하다가 미국지도를 갖고 오라고 하여 손가락을 짚으며 “이곳이 앞으로 미국에서 부흥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 부흥은 토론토 브레싱의 모방이었으며 얼마 가지 못하였다.
타드 벤트리
2008년부터 다시 한번 유사한 사건이 일어나는데, 플로리다의 래이크랜드(Lakeland)에서 타드 밴틀리를 중심으로 또 이러한 성향의 부흥운동이 또 일어났다. 당시에 타드 밴틀리를 통하여 많은 신비한 치유가 일어났고 심지어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기도 했다고 선전되었다.
이 집회에서 알콜 중독과 동성애로 인하여 몰락한 늦은비운동의 폴 케인이 타드 벤트리를 극구 칭찬하며 재기를 시도하지만, 이미 영향력이 없어진 그는 회복에 실패한다. 온 몸에 문신을 한 타드 벤트리는 자신이 늦은비운동의 브랜넘의 능력을 임파테이션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것은 곧 신사도운동의 시각이 브랜넘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었는지 알게 하여주는 것이었다. 이 집회에서 죽은 자가 수십명이 살아났다는 과장이 있었는데, 이러한 허위사실이 그들의 숫적 부흥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 그들의 정체성을 알려준다. 그러나 훗날 신사도운동에서 사도로 있었던 리쳐 델리는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객관적인 증거는 단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라고 증언한다.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인원수가 처음에는 3명이라고 하였으나, 그 3명에 대해서도 전혀 확인된 바 없었고, 그 숫자가 갑자기 13명으로 늘어났고 곧 후에는 27명, 32명으로 계속 늘어났다는 것이다. 타드 벤트리는 이 집회를 통하여 신사도운동의 새로운 스타가 되었다. 그러나 곧 타드 벤트리의 과거 성추행 전력과 여자관계등의 사생활이 드러나면서, 오히려 신사도운동에 대한 정체성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 후에도 타드 벤트리, 밥 존스, 폴 케인등 신사도운동의 사도들의 부도덕과 범죄, 타락등이 계속 밝혀짐에 따라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왜 그들은 성추문과 여자문제, 알콜중독, 동성애와 같은 타락을 할까? 그들이 정체가 곧 그들의 열매로 보여주는 것이다.
3) 지역귀신과 영적도해의 그룹
– 1989년 봄에 나는 영적전쟁과 함께 예언사역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존 윔버, 신디 제이콥스, 폴 케인등을 다소 의심했다. 그러나 이들은 나로 하여금 새로운 분야에 대해서 깨닫게 해준 사람들이다. 예언이야말로 중대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다(기도는 전투다, 피터 와그너, 44쪽)
제1차 로잔회의는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이 많이 참석한 회의였지만, 1989년 제2차 로잔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과반수 이상이 오순절 운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 회의를 통하여 피터와그너는 영적도해에 대해서 발을 딛게 된다. 2차 로잔회의에서 소위 영적도해의 주장들이 나타나며, 피터와그너에 의하면 다섯팀의 워크샵에서 지역귀신과 전략적 수준의 중보기도에 관한 세미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 1990년 2월 12일 캘리포니아 파시데나에서 첫모임이 열렸다는 것이다. 그 모임에 참석한 자들이 존 도우슨, 신디 제이콥스등이었다. 피터와그너는 조지 오티스, 신디제이콥스등 몇사람이 함께 “지역사회에서 마귀의 진을 헐라”라는 책을 공동저술하기도 한다.
– 이 과정이 시작된 것은 흔히 2차 로잔회의라고 부르는 역사적인 세계복음화 회의에서였다. 세계복음화를 위한 로잔위원회는 전 세계에서 4,500명의 지도자들을 초청한 가운데 1989년에 마닐라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서 적어도 다섯명의 연사들이 다른 참석자들 대부분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에 대해서 강의를 했다. 그 주제는 ‘지역의 영들’(territorial spirits)이었다. 나도 그 다섯명의 연사들 중의 하나였다. 우리는 교회가 바울이 말하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한 싸움”(엡6:12)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그러한 “공중전”이 전세계의 미전도 종족들에게 나아가 사역하는 전도자들, 교회개척자들, 그리고 목사들이 수행할 지상전의 길을 닦기 위해 필요하다고 느꼈다.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129쪽)
– 악령들의 이름을 밝히는 것과 깊이 연관된 기독교의 연구조사와 사역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새로운 영역은 ‘영적도해’(spiritual mapping)이다. 이 분야의 발전과 사역의 주도적 인물은 남부침례 외국선교회의 데니빗 버렛과 AD2000년 운동의 루이스 부쉬, 파수대의 조오지 오티스2세이다.(피터 와그너, 기도는 전투다. 183쪽)
– 사람과 사단의 세력 사이에 맺은 고대계약들 중 많은 것들이 아시아에서 이루어졌고, 아시아는 현재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기 때문에 이 대륙이 지금 10/40 창문이라고 알려진 가장 복음화 되지 못한 지역이 되어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사람의 수와 그 계약의 기간은 영적세력의 지역적 참호와 영적 어두움 양쪽에 깊은 관련이 있다(지역사회에서 마귀의 진을 헐라, 영적도해의 개괄, 조지오티스, 47쪽)
이 지역귀신에 근거한 영적도해 사상이 인터콥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다. 인터콥뿐 아니라 예수전도단에도 이 영적도해가 전해지고, 국내외의 많은 선교단체들이 이러한 사상에 영향을 받게 된다. 학자들은 이러한 영적도해에 의한 귀신론을 베뢰아와 비교하여 신귀신론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이 세상을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구도로 보는 이원론적인 관점이기 때문이다
– 백투 예루살렘 운동을 통하여 주님의 지상명령을 완수하기 위해 한국교회가 함께 동참할 수 있는 첫째의 방법은 10/40창을 위한 연합중보기도 운동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현재 10/40창을 묶고 있는 어두움의 세력을 향한 영적인 공중전에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백투예루살렘 운동이 나아가는 길목을 막고 있는 강한 자의 세력을 결박하고, 전진하는 영적군사를 후방에서 영적인 포의 지원사격을 하는 것입니다.(인터콥의 선교사의 인터뷰 기사)
– 그 결과 9.11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세계교회의 영적공격을 받은 이스람 신이 봉기해 일어난 것이 바로 9.11 사태입니다. 빈 라덴과 그의 친구들의 배후에는 이스람 신이 있습니다. 영적전쟁인 것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10/40 창을 집요하게 공략하자, 세상 신들이 이스람 신으로 통합되어 가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최바울, 백투예루살렘, 89쪽)
총신대 심창섭교수는 인터콥을 비판하는 ‘인터콥의 사상도해’라는 보고서에서 김성태교수의 다음과 같은 글을 인용한다. 아래 글은 위에서 인용한 신사도운동의 글과 일치된다.
– 루이스 부쉬의 10/40창문 개념을 설명하면서 이곳 지역들이 가장 선교가 안 되고, 선교에 황무지인 것은 이 세상 신 즉 지역 악마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인식이 있다. 복음의 서진 운동 즉 백투예루살렘 운동을 하게 될 때 전략적 선교를 수행해야 하는데 이것은 소위 21세기 운동의 지도자들이 주장하는 전략적 영적 전쟁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진다. 원래 전략적 영적 전쟁이란 피터 와그너를 중심으로 한 소위 신사도개혁운동의 지도자들이 주장하는 핵심이론이다. 사단이 하나님을 대적하는데 있어서 무소부재하고, 전지전능하시지 못한 제한된 영적 피조물이기에 그의 졸개인 악령들과 더불어 세계의 중요 지역에 중심 거점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민속학에서 나오는 지역 수호신의 개념을 놓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4) 피터와그너의 신사도연맹
신사도운동은 이러한 혼합과정을 거쳤다. 즉 빈야드 운동과 오순절교단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늦은비 운동이 모태가 되는 캔서스 예언자 그룹이 함께 섞이면서, 2차 로잔회의를 통하여 소위 지역귀신을 주장하는 영적도해 그룹이 의기투합하여 신사도운동으로 발전된 것이다. 결국 2000년에 이르러서, 국제사도연맹(ICA)이 결성되어 이 운동을 동조하는 무리들이 모여서 공식적으로 출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제3장 신사도운동의 비판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신사도운동은 어떤 외형적인 교회나 단체가 아니라 하나의 운동, 즉 성향(Movement)이다. 그래서 신사도운동을 지지하는 교회들이 모든 신사도운동의 교리와 사상을 전적으로 100% 수용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신사도운동의 교리와 사상의 특징을 말하자면, 정통신학과 기독교의 가르침을 부정, 지도자들의 사도화와 신격화, 신비주의적인 기적과 표적의 집회, 숫적인 부흥과 돈을 통한 세상의 지배와 통치라고 말할 수 있다.
1. 오중직분과 은사 (사도와 선지자) :
–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인간의 시도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하나님은 성경이 완성된 후에도 하나님 자신과 그 뜻을 나타내기를 중단하지 않으셨다(피터와그너,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178쪽)
피터와그너는 성경의 완전성과 성취성을 부정하며, 그 이후에도 계시가 있다고 주장한다. 자신들이 사도와 선지자라는 주장도 결국은 자신들의 주장이 성경과 동일한 권위가 있다는 주장이 된다. 왜냐하면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기록이 곧 성경이기 때문이다
엡 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 사도와 선지자는 교회의 기초(Foundation)가 되었던 직분이다. 지금도 사도와 선지자가 있다는 주장은 이미 세워진 빌딩 위에 다시 기초석을 만들어서 다시 건물을 올리겠다는 주장과 같으며, 오늘날도 성경이 계속 존재한다는 주장과 같다.
엡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2) 사도는 예수가 직접 임명하고 부르신 자들이다. 초대교회에서도 사도의 제자들이 사도라고 불리지 못한 이유는 예수가 직접 임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성경의 정경화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사도들이 직접 썼느냐는 사도성이었다.
–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막3:13-14)
–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갈1;1)
– 주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바울)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9:15)
3)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특히 그의 부활을 직접 본(목격한) 자이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사도성을 의심하는 자들에게 “예수를 직접 보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었던것이다.
–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행1l:21-22)
– 내가 사도가 아니냐? 자유자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고전9:1)
–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고전15:7-9)
4) 성경은 자칭사도와 거짓사도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계2:2)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고후11:13)
2. 기적과 표적의 현상 집회
1) 기적과 표적은 하나님에게로부터 온 것일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을 미혹하기 위하여 사단으로부터 온 것일 수도 있다.
–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다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 24:24).
–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살후 2:9~10).
2)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여지는 권능과 능력이라고 할지라도 예수님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경우도 있다.
–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1-23)
3) 그러한 가시적인 현상을 보고 추구하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다.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 20:29).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11:1-2)
우리는 성경적으로 다음과 같은 정리를 해 볼 수 있다.
(1) 기적과 표적은 하나님에게로부터 온 것일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을 미혹하기 위하여 사단으로부터 온 것일 수도 있다.
(2) 하나님에게로부터 온 기적과 표적이라고 할지라도, 그러한 가시적인 현상을 보고 추구하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다.
(3)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여지는 권능과 능력이라고 할지라도 예수님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경우도 있다.
3. 예언과 계시
1) 장래의 점을 치는 행위는 금지된 일이었다
–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 듣고 믿지 말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신18:10-12)
–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렘14:14)
2) 예언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은사이다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몽사를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이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23:32)
–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12:7-11)
3) 예언의 성취가 없으면 거짓 예언이다
– 내가 고하라고 명하지 아니한 말을 어떤 선지자가 만일 방자히 내 이름으로 고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의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신18:20-22)
– 오늘날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계시들을 모두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가려낼 필요가 있습니다. (밥존스, 너는 나의 친구라, 181쪽)
– 참 예언자가 100% 정확하다는 것이 아니다”(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신디제이콥스, 136쪽).
– 당신은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신디, 당신의 예언이 틀린 적은 없습니까?’ 물론 나도 있다”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신디제이콥스, 270쪽).
– 예언도 마찬가지다. 때때로 맞지만 대부분 경우 아니다. 전부 맞다, 안맞다가 아니다. 조금은 맞지만 대부분 맞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마이클 비클,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마이크 비클은 그의 책에서 예언을 4가지로 분류한다.
즉 (1) 단순 예언 (2) 예언적 은사 (3) 예언 사역 (4) 예언자 직분인데 그 수준과 성취에 따라 분류한다는 것이다. 어느 성경에서 예언을 위와 같이 4가지로 분류하였는가? 위와 같이 분류를 한다는 자체가, 실제와 틀린 엉터리 예언이 첫 번째 수준이나 두 번째 수준이 된다는 변명과 핑계를 대기 위함이 아닌가?
예언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므로 그런 수준이나 과정의 차이가 있을 수 없으며, 하나님께 받은 예언인가 혹은 거짓 예언인가의 두가지 외에는 없다.
4. 도미니온(통치신학, 주권운동, 킹덤나우) :
이들은 세상을 일곱산(Seven Mountains) 혹은 7대권역(Seven Spheres)을 주장한다. 이 7권역은 비즈니스, 정부, 미디어, 예술과 엔터테인먼트, 가정, 종교 그리고 교육등의 여러 가지 방면을 뜻한다. 주권운동(dominion)은 쉽게 말하면, 세상을 7대권으로 분류하여 예수의 재림 전 세상에 신자들이 미리 모든 분야에서 지배를 하여 ‘하나님의 왕국‘을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도미니온에서 두 개의 기둥(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일터교회(신사도운동의 교회)이며 하나는 돈이라고 주장한다.
– 사회의 변혁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가고자 하는 우리의 목표와 더 잘 부합되는 신학은 통치의 신학(dominion theology), 즉 킹덤나우(Kingdom Now) 신학이다. 통치의 신학, 즉 킹덤나우 신학을 강력하게 주장해 온 사람들 중의 한 명이 마라나타 운동의 창시자인 밥와이너이다. 사람들이 킹덤나우 신학과 통치의 신학을 다소 지혜롭지 못하게 적용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비판자들이 생겨난 것은 사실이다.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피터와그너, 쉐키나. 111-112쪽)
– 어떤 사람들은 내가 말하는 바를 이해할 것이다. 나는 존 켈리의 지역 지도자 회의에서 발표한 내용을 감명깊게 읽었다. 그곳에 참석했던 사도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만일 도시를 점령하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그 도시를 돈을 주고 사야 한다. 그러므로 부를 축척해 놓기 위하여 비주니스의 재산과 당신이 발견할 수 있는 모든 기회들을 소유하도록 하라”. 도시를 위하여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이같은 물질을 소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도록 간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피터와그너, 도미니온, 235쪽)
– 당시에 필요했던 것은 크리스쳔 후보를 선거 후보자 명단에 올리기 위한 지금이었다. 나는 얼마나 필요하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대답하기를 주지사직을 위해서는 5만달러가 필요하고, 대통령직을 위해서는 백만달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이백오십만달러 정도를 투자하는 것은 훌륭한 투자일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그것은 한 나라를 사기 위한 투자치고는 적은 액수이기 때문이다(도미니온, 234쪽)
성경은 돈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가 없다고 말한다.
눅 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맘몬)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막 10:23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5. 개방신학(열린신학)
신사도운동은 이단교리를 포함하여 모두 개방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정통신학은 받아들이지 않고 비난한다. 그들에게는 단지 숫적부흥만이 목적이 되기 때문에 교인숫자가 많은 이단교회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이다.
1) 펠라기우스적인 행위구원론/ 지상천국을 이룰 수 있다.
– 만일 하나님이 역사 가운데 어떤 일들을 인간의 결정에 맡기시기로 작정하셨다면 우리가 무엇을 결정할 지 그 분이 미리 아신다고 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게 보인다. 그렇게 하는 것은 마치 도박을 하는 카지노에서 슬롯머쉰을 미리 조작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 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열어 놓기로 결정하실 뿐 아니라, 사람들이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하나님 자신이 미리 알지 않기로 작정하셨다고 말해야 설득력이 있다. (피터와그너, 도미니온, 100쪽)
–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움직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다스리시고 있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하나님이 다스리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들의 삶 밖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지상에서 수행되고 있지 않습니다.(기도의 기술, 케네스 헤긴, 믿음의 말씀사, 12쪽)
2) 정통신학의 부정
– 나는 1998년에 WLI를 세울 때까지는 새로운 신앙고백을 작성할 일이 없었다. 그 때에 이르러 나는 신사도개혁운동의 특징이 무거운 교리적 짐에서 가벼운 짐으로 옮겨가는 것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또한 단일신론자들을 제외시키고 싶지 않았다.(피터와그너,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198쪽)
– 종교의 영에 대한 나의 가정이 옳다면 종교의 영은 분명히 신학교육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 가운데 역사하여 그들로 하여금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게 만들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해진다(피터와그너,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156쪽)
피터 와그너는 풀러신학교 교수 심사에서 “만약 우리의 전문적인 조직신학자들이 우리의 삼위일체 교리의 표현을 좀 조정한다면 지상위임 명령을 앞당기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라고 하여 일차면접에서 탈락되었는데, 2차면접에서는 삼위일체를 언급하지 않는 지혜를 발휘하여 통과되었다. (피터와그너, 신사도적 교회로서의 변화, 197쪽)
– 그(베니힌)는 신격의 각 하나님이 각각 영과 혼과 영적인 육체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 다른 말로 이야기해서 신격의 각 하나님이 각각 삼위를 갖고 있어, 모두 합하면 “9의 신격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영적으로 죽어 사단의 본성과 같이 되었다가 지옥에서 다시 태어났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땅에서 ‘작은 메시야들’이고 ‘작은 신들’이라고 한다. (빈야드운동 평가, 59쪽)
– 베니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위치’라는 카셋트테이프 시리즈물에서 자신이 예수의 일부분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일체가 되었기 때문에 “내가 곧 그리스도이다. 내 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라고 주장까지 한다. (빈야드운동 평가, 61쪽)
–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움직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다스리시고 있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하나님이 다스리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들의 삶 밖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지상에서 수행되고 있지 않습니다.(기도의 기술, 케네스 헤긴, 믿음의 말씀사, 12쪽)
6. 영적도해(지역신)
– 이 과정이 시작된 것은 흔히 2차 로잔회의라고 부르는 역사적인 세계복음화 회의에서였다. 세계복음화를 위한 로잔위원회는 전 세계에서 4,500명의 지도자들을 초청한 가운데 1989년에 마닐라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서 적어도 다섯명의 연사들이 다른 참석자들 대부분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에 대해서 강의를 했다. 그 주제는 ‘지역의 영들’(territorial spirits)이었다. 나도 그 다섯명의 연사들 중의 하나였다. 우리는 교회가 바울이 말하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한 싸움”(엡6:12)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그러한 “공중전”이 전세계의 미전도 종족들에게 나아가 사역하는 전도자들, 교회개척자들, 그리고 목사들이 수행할 지상전의 길을 닦기 위해 필요하다고 느꼈다. (피터와그너,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129)
– 이 연사들 중 일부는 사탄이 특정한 지리적인 영역들을 영적인 어두움에 가두어 놓기 위해 그 지역들을 영적으로 관찰하는 일을 위임한 마귀적인 정사들이 존재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다니엘서에 나오는 바사군과 헬라군단이라는 이름의 영들이 오늘날 역사하는 지역의 영들의 원형으로 볼 수도 있다고 역설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러한 악한 정사들은 특정한 지역에서의 전도사역의 주된 방해요인임이 판명되는 것이다 (피터와그너,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130쪽)
– 이것은 라이베리아 정글 길을 따라 굴러 내려오는 “물귀신”이나 거주하고 있는 귀신이 외부인을 죽이는 것으로 알려진 불교 사찰의 경우에 있어서, 어느 정도 신학적이고 학문적인 조명을 해준다. 실제 귀신은 수많은 다양한 인공물과 자연물뿐 아니라 동물, 우상, 놋쇠 링, 나무, 산, 빌딩 등에 달라 붙어 있다(피터와그너, 기도는 전투다, 91쪽)
영적도해에 근거한 행위들: 땅밟기기도, 대적기도, 선포기도, 동일시 회개
– 걷는 기도와 예언적 행위 : 물론 우리는 교회에서 많은 기도를 한다. 그러나 전투기도는 교회 밖으로 나가 지역사회에서 하는 기도이다…..우씬스크에서 중보기도자들은 몇 달동안 도시 주위를 돌았으며 레닌의 동상 근처에 있는 나우에나 로드 산에서 기도한 것을 포함하여 하늘의 황후로 불리는 것에 대항해서 기도했으며, 가능한 모든 종류의 상징적인 기도를 했다 (피터 와그너, 도미니온 166-169쪽)
– 대적기도, 선포기도 : 선포할 때에는 하나님께 무엇을 해달라고 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있는 어떤 것들을 이루어지도록 선언하는 것을 말한다…..우리는 하나님께 말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위해 말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해달라고 말하지 말고, 하나님의 권세를 사용해서 어떤 일이 이루어지도록 명령해야 한다(피터 와그너, 도미니온, 170쪽)
7. 종말론적 성취(오순절의 성취, 늦은비와 이른비, 요엘의 군대, 다윗의 장막, 신부운동)
신사도운동의 특징은 임박한 종말론이며, 대추수(대부흥)와 함께, 신사도운동의 교회에 선택적으로 성취되는 종말론이다, 그것을 주장하기 위한 그들의 성경해석은 알레고리적인 풍유적인 해석일 뿐이다.
요엘서의 오순절 성취
– 요엘이 예언한 성령 부으심에 대한 약속은 베드로의 때에 완전히 성취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이 부분은 요엘서 2장과 사도행전2장의 확연한 차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요엘이 예언한 것의 충만한 분량은 베드로의 때에 일부분만이 성취되었을 뿐, 아직 완전히 성취되지 않았다(마이클 비클, 요엘서, 149쪽)
–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욜2:28-32)
–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행 2:16~21).
1) 성경은 오순절의 성령강림 사건을 요엘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행 2:16에 대한 다른 번역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개역성경]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공동번역] 이것은 예언자 요엘이 예언한 대로 된 것입니다.
[표준새번역] 이 일은, 하나님께서 예언자 요엘을 시켜서 말씀하신 대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 2:33).
그렇다면 본문의 예수가 약속하신 성령이 어느 성경에 나타날까?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 1:4~5).
2) 자녀와 젊은이, 늙은이, 남종, 여종…
신사도운동은 “자녀들이 예언을 하지 않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지 않았으므로 아직 성취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라고 말한다. 성경본문에서 말하는 자녀, 젊은이, 늙은이, 남종, 여종은 어느 특정한 개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만인”, 즉 모든 사람이라는 표현이다.
만약 그런 해석을 한다면 과연 늙은이만 꿈을 꾸는가? 과연 남종과 여종들만이 성령을 받는가? 그러한 성경적인 예는 출애굽기 4계명에서 나온다. 본문은 아들과 딸, 남종이나 여종만 안식일을 지키라는 뜻이 아니라 모두 지키라는 표현으로서 육축과 객(손님)까지 언급한 것이다.
출 20:10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3) 말세에 : 신사도운동의 목사들은 성경 본문에 ‘말세에’ 라는 단어가 있으므로 이 요엘의 예언은 종말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오순절 사건이 부분적으로만 이루어졌으며 교회사 중간이 아니라 종말에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말세에’라는 단어는 ‘에스카토스’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그 단어는 ‘끝, 마지막’이라는 뜻도 있지만, 현재 시간을 기준으로 ‘나중, 뒤’라는 의미도 있다. 아래 성경의 구절은, ‘에스카토스’라는 단어가 “나중” 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던 성경적인 증거이다.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에스카토스)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마 12:45).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에스카토스)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 19:30).
또 ‘에스카토스’는 마지막 종말적인 말세가 아니라, 예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신약 전체의 시대를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는 얼마든지 성경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스카토스)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 1:2).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스카토스)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벧전 1:20).
– 선지자들은 연대에는 관심이 없었고 미래는 언제나 임박한 것으로 보았다. 특히 구약의 선지자들은 가까운 미래와 먼 미래를 섞어 한 캔버스에 그렸다. 성경의 예언들은 삼차원이 아니라 이차원이며 높이와 넓이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먼 사건도 임박이라는 투명함을 통하여 보았다. 초대교인들이 주님의 재림에 대한 기대로 산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종말을 기대하며 사는 것을 가능케 만드는 것이 성경적 예언의 본질인 것도 사실이다. (조지 래드, 예언적 생략법)
마이크 비클은 요엘서의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미지막 심판의 날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는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로 번역하고 있고, 말라기4장5절에서는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고 말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엘리야를 세례요한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볼 때에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마지막 심판날을 뜻한다고 볼 수 없다.
4) 이른비와 늦은비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욜 2:23).
요엘서 본문을 성령강림으로 해석할 어떤 근거도 없다. 오히려 요엘서는 이른비와 늦은비가 전과 같다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전과 같다는 뜻이다. 과연 요엘서 이전에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과 같은 성령강림이 있었는가? 더욱이 본문은 계절에 따라 적절하게 내려주는 하나님의 은혜를 뜻하는 내용으로서, 구체적으로는 신실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뜻한다. 성경본문에서 ‘이른 비’를 오순절로 해석할 어떤 근거도 없으며, ‘늦은 비’를 종말적인 성령강림으로 볼 어떤 근거도 없다.
신 11:14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비, 늦은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신사도운동의 성경해석은 자신들의 주장을 짜맞추기 위한 억지 해석이며, 다른 번역 성경은 오히려 이른 비를 가을비로, 늦은 비를 봄비로 해석하고 있다. 히브리어 성경사전을 참고하면 ‘늦은 비’를 뜻하는 ‘말코쉬’라는 히브리어는 3~4월에 내리는 ‘봄비’를 뜻하는 단어이다. 즉 성경으로 볼 때에는 유대 지역에서는 오히려 늦은 비가 오순절 즈음에 내리는 봄비를 뜻하는 것이 된다는 뜻이다. 히브리어 사전과 호크마주석을 살펴보자.
(디럭스 바이블)
말코쉬 : 봄비(3954와 비교), 상징적으로 ‘유창함‘, 늦은비
– 늦은 비, 봄비, 팔레스타인의 곡물을 성장시키는 3-4월의 비
(호크마주석성경)
–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 ‘이른 비‘인 ‘모레‘는 ‘가을비‘를 가리키는 것으로 10, 11월에 걸쳐 내리는데, 땅을 부드럽게 하여 경작하기 좋고 싹을 돋우기에 좋다. 또한, ‘늦은 비‘인 ‘말코쉬‘는 ‘봄비‘로 3, 4월에 걸쳐 내린다. 이 비는 추수를 앞두고 내리므로 알곡을 알차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이런 비가 적당한 때에 내리지 않으면, 이스라엘 농부들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신 11:13-17). 한편, 이런 비는 마음의 준비가 잘 되어 있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복을 상징하곤 하였다(렘 5:2)
요엘 2:23의 말씀을 여러 번역본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늦은 비’를 ‘봄비’로 번역하고 있다.
[공동번역] 시온의 자녀들아, 야훼 너희 하느님께 감사하여 기뻐 뛰어라. 너희 하느님께서 가을비를 흠뻑 주시고 겨울비도 내려 주시고 봄비도 전처럼 내려 주시리니,
[표준새번역] 시온에 사는 사람들아, 주 너희의 하나님과 더불어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주께서 너희를 변호하여 가을비로 내리셨다. 비를 흡족하게 내려주셨으니 옛날처럼 가을비와 봄비를 내려주셨다.
[NIV] Be glad, O people of Zion, rejoice in the LORD your God, for he has given you the autumn rains in righteousness. He sends you abundant showers, both autumn and spring rains, as before.
5) 다윗의 장막 :
다윗의 장막은 구약의 모형이었고 예표였다, 신약에서 예수가 곧 크고 온전한 장막이 되셨기 때문이다. 장막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었으며(A tent for meeting God), 구약의 장막은 땅에 있는 것이지만, 예수님이 오신 후에 장막은 하늘에 있는 것이다.
히 9:11-12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계 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계 5:8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그들은 계5:8의 거문고가 하프(Harp)이고 금대접(Bowl)은 기도를 뜻한다고 한다. 즉 기도와 찬양을 계시록에서 찾는다. 물론 기도와 찬양을 비난하자는 의도는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러한 기도와 찬양을 다윗의 장막으로 적용시켜 하나님의 임재로 상징하고 있다.
이들은 성경도 잘못 비유하고 있는데, 기도는 금대접이 아니라 향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만일 대접을 기도라고 비유해석한다면, 진노의 일곱 대접도 기도라고 해석할 것인가?
또한 이러한 상태와 용어가 “다윗의 장막”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가? 교회가 작아서 악기가 없거나, 혹은 몇명이 부르는 찬양은 하나님이 받아주시지 않는가? 골방에서 드리는 조용한 기도는 하나님이 귀가 어두워서 듣지 못하시는가?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에 하나님은 찾아오신다고 성경은 말한다.
과연 전자기타와 드럼등의 현란한 악기로 연주하는 찬양 속에서 “다윗의 장막의 영의 기도”만을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며, 찬양과 함께 임재하시는가?
특히 청년들은 항상 자극적인 용어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으므로, 이러한 신사도운동에 쉽게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쉽게 빠지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찬양이다. 물론 찬양을 하나님은 즐거이 받으신다. 그러나 현란한 악기로 24시간 연주와 찬양을 하여야만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은 결코 아니다.
6) 요엘의 군대
신사도운동에서는 요엘의 군대를 ‘Jesus Army’ 라고 부르거나 ‘왕의 군대’ 혹은 ‘하나님의 군대’ 혹은 ‘추수군대’ 라고 부른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모든 성도들이 주님의 군사가 되어서 승리하여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 과연 신사도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주의 군대가 되는가? 더욱이 요즈음 신사도운동의 영향을 받은 교회와 단체들은 모두 Jesus Army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 요엘서의 군대는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이방족속이고 사탄의 군대이다
욜 2:25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욜 2:4 그의 모양은 말 같고 그 달리는 것은 기병 같으며
욜 1:6 다른 한 민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수가 많으며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
욜 2:5 그들이 산 꼭대기에서 뛰는 소리는 병거 소리와도 같고 불꽃이 검불을 사르는 소리와도 같으며 강한 군사가 줄을 벌이고 싸우는 것 같으니
아래의 계시록과 위 요엘서를 비교하면 요엘의 군대에 대한 정체를 확인할 수 있다.
계 9:7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계 9:8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으며
계 9:9 또 철 호심경 같은 호심경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쟁터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2) 욜3:11의 주의 용사는 천사를 뜻한다
욜 3:11 사면의 민족들아 너희는 속히 와서 모일지어다 여호와여 주의 용사들로 그리로 내려오게 (come down)하옵소서
[공동번역] 그리고 빨리 오너라. 사방에 있는 민족들은 모두 그리로 모여라.” 야훼여, 당신의 용사들을 보내주소서.
[표준새번역] 사방의 모든 민족아, 너희는 모두 서둘러 오너라. 이 평원으로 모여라.” “주님, 주님의 군대를 보내셔서, 그들을 치십시오!”
[현대인의성경] 사방의 모든 나라들아, 너희는 급히 와서 모여라.” 여호와여, 주의 용사들을 내려보내소서.
8. 임파테이션
롬 1: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영어성경: gift)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impart)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신사도운동은 안수를 통하여 은사를 나누어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카리스마를 반드시 영적은사로 해석할 이유는 없다. 실제로 다른 번역성경은 ‘영적인 축복’으로 해석한다
[공동번역] 내가 여러분을 애타게 만나보려는 것은 여러분과 함께 영적인 축복을 나눔으로써 여러분에게 힘을 북돋아주려는 것입니다.
[표준새번역] 내가 여러분을 간절히 보고 싶어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신령한 은사를 좀 나누어주어, 여러분을 굳세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현대인의성경] 이처럼 내가 여러분을 간절히 만나려고 하는 것은 영적인 축복을 나눔으로써 여러분의 믿음을 강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롬5:15-16은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과 영생을 은사(카리스마)라고 말한다.
은사는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각 자체에게 나누어 주는 성령의 선물을 뜻한다. 성경은 성령을 주시는 임파테이션(Impartation)의 주체는 하나님이며, 그 통로는 말씀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은사는 성령께서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다
고전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로마서15:29을 보면 롬1:11과 동일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내가 너희에게 나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고, 그는 말하였다“(롬15:29).
안수는 기도와 함께 이루어진다
마 19:13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행 6: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행 13: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행 28:8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안수를 사도가 줄 수 있는 능력으로 아는 것은 시몬과 같은 생각이다. 베드로는 그 성령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행 19: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행 8:20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은사는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라, 기름부음 역시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다. 기름부음은 우리에게 구원을 인치시고 보증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는 것을 뜻한다.
고후 1:21-22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9. 새 포도주와 새 가죽부대
마 9: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 낡은 가죽부대에서 새 가죽부대로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강력한 저항을 유발한다. 이 저항은 낡은 가죽 부대의 기름부음 받은 지도자들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낡은 가죽 부대의 기름부음을 받지 못한 지도자들로부터 온다.(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피터와그너, 쉐키나, 19쪽)
– 이 상황에서 세례요한은 구약이라는 옛 가죽부대를 상징하며 예수님은 신약이라는 새 가죽부대를 상징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마9:17).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신사도적 개혁교회 내에 있는 사람들이 새 가죽부대라는 것이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에 과거 몇세기 동안 주요한 가죽부대는 교파였으며 그 이전에는 국가교회였다. (도미니온, 35-36쪽)
포도주와 가죽부대는 상대적인 비유의 개념이 아니다. 당연히 종교적 계시의 진리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계시적인 진리가 변화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가 자꾸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또 다른 자칭 메시야가 나타나 유일하신 한분 메시야의 또 다른 상대적인 개념을 주장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예수님의 복음은 또 다른 상대적인 개념의 포도주로 대체될 수 없다.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며, 새 언약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그 개념이 변화할 수 없다.
막 14:23-25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10. 중보기도
중보기도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물론 성경은 이러한 용어가 나오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는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것을 부정하거나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런데 신사도운동에서 주장하는 중보기도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중보자가 있다는 뜻이며, 그들이 곧 중보자가 된다는 뜻이다. 구약에서는 제사장, 선지자등의 중보자가 있었다. 그러나 신약에서 누구든지 만인제사장이 되어지며, 오직 예수만이 중보자가 되어진다.
1) 중보기도와 중보자
2) 중보기도가 은사라는 주장
3) 중보기도가 영적전쟁이라는 주장
4) 중보기도는 비밀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주장
5) 중보기도가 예언기도라는 주장
신사도운동에서 주장하는 중보기도는 남을 위하여 드리는 기도의 개념이 아니다. 그들은 중보기도와 중보자를 동일한 개념으로 보며, 중보는 특별한 은사이며 예언의 기도이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특별한 중보자가 있다고 주장한다.
– 오늘의 중보자들이 증거하듯이 중보사역의 가장 큰 상급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중보자들의 기도를 통하여 선한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피터와그너, 방패기도, 30쪽)
– 오늘의 중보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충성스러운 중보사역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이루지 않으실 때가 많은 것이다.(피터와그너, 방패기도, 31쪽)
신디 제이콥스는 이러한 중보자가 훈련을 받아 세워진다고 주장한다
– 우리가 지금 응답하고 중보자로 훈련받고 세워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많은 영적인 아기들이 믿음으로 태어나기는 해도, 그들이 자라도록 도와주고 그들이 무너진 대를 막아설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각 열방들이 복음의 영광스런 빛 가운데로 나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도록 돕는데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중보)할 사람을 ….찾다가 내가 얻지 못하는고로….”((겔22:30)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전쟁을 위해 훈련합시다. (대적의 문을 취하라, 신디제이콥스, 42쪽)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구약의 중보자들은 약속하신 예수가 오실 때까지만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신약에서 중보자는 오직 예수라고 말한다.
–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갈3:19)
–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히9:15)
–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2:5)
결론: 우리나라의 통일교와 전도관으로부터 시작된 이단사상이 현재의 다른 이단들에게 계승된 것과 같이 미국의 신사도운동 역시 그 전의 이단사상이 계승된 것이다. 신사도운동은 늦은비운동의 브랜넘으로부터 시작된 이단적인 집단의 사상으로서 그 사상이 캔서스예언그룹과 빈야드운동, 토론토브레싱으로 승계되어, 영적도해라고 하는 신귀신론과 접목되어서 신사도연맹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타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신사도운동은 피터와그너를 포함하는 좁은 의미에서 시작하여 그 유사운동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광범위한 운동을 뜻하게 되었다. 그들의 중요한 주장 중에 하나는 자신들의 단체의 지도자들을 사도, 예언자, 선지자, 중보자의 위치에 올려 놓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종교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예술, 문화까지 모두 7개의 권역으로 분류하여(Seven Mountain), 모든 분야에서 신사도운동이 지배하고 통치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 가장 높은 정상의 위치는 자신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며, 이 목적을 위하여 교회(일터교회)와 돈(부의 이동)이라는 2가지 방법이 사용되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교회는 그들이 세상을 통치하는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큰 교회와 큰 선교단체를 접촉하여 연합을 시도한다.
기적과 표적을 보이는 집회는 그들이 자신들의 세력과 돈을 쌓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되어진다. 그들의 집회는 죽은 사람을 살려냈고 난치병이 치료되었다는 온갖 루머와 거짓소문이 퍼지게 되며, 그것이 적중하든 아니든 상관없이 예언과 계시가 난무하게 된다. 사람이 벽을 투과할 수 있다거나, 한사람이 두 장소에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든지, 교통사고로 잘린 다리가 하루만에 원상대로 자라났다는 식의 헛소문은 그들의 집회에서는 항상 퍼지는 평범한 소문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들의 교리는 정통신학을 제외한 모든 신학을 수용한다. 필자는 그들을 이단종합백화점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의 교리와 사상은 성경을 조작하고 짜맞추는 이단들의 수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들의 적은 보수적이며 성경적인 기독교이다. 그들이 종교의 영이며 사탄의 개라고 부르는 대상은 바로 정통신학을 추구하는 기독교가 된다.
신사도운동은 교류금지 대상이나 참석금지 대상이 아니라, 아주 위험한 이단 혹은 사이비단체가 되어야만 한다. 그들은 이단종합백화점이다.
<신사도운동과 연관된 개인 및 집단>
외국의 신사도운동 단체 : ICA(국제사도연맹. 피터 와그너), HIM(세계추수선교회, 체 안), IHOP(국제기도의 집, 마이크 비클), CI(빌 해몬), MSM(릭 조이너), 올랜도 크리스쳔센터(베니 힌), 아이리스미니스트리(하이디 베이커), 밥 존스(큰믿음교회 원로목사), 신디 제이콥스(영적도해, 대적의 문을 취하라), 빌 존슨(래딩 벧엘 교회, 초자연적사역학교) 등
국내의 신사도운동 관련 단체 : WLI(와그너사역신학교, 홍정식), 큰믿음교회(변승우), 영동제일교회(김혜자), 레위지파(다윗의장막, 스캇 브레너), KHOP(한성진), 에스더기도운동(이용희), JMI선교회(김희준), 뉴와인/원띵하우스(손종태), 더데이미니스트리(Theday, 조지훈), 아가페신학연구원(김태진), 아이리스미니스트리(김승환), 한국기독교영성운동연합회(예영수), KIBI(한이성경연구소, 송만석), IMN(이스라엘사역네트워크), AMI(HIM Korea, 이성대), Awake Korea(서바울) 등
외국 한인교회 : 엘리야학교/엘리야기도운동(김종필), 사랑과진리교회(뉴욕, 밴자민 오), 가스펠펠로우쉽교회(뉴저지, 성현경), 인터내셔날갈보리교회(워싱턴, 이성자), 워싱톤드림교회(버지니아, 이근호), 신시로 교회(일본 나고야, 다키모토 준)
참고(유사단체, 영향을 받은 단체, 개인) : 순복음성서교회/마하나임 ISOM(정바울), 메누하(윤남옥), 늘기쁜교회(문대식), <천국은 확실히 있다>(토마스 주남), 두날개(풍성한교회, 김성곤), 예수전도단(로렌 커닝엄), 온누리월요어노인팅(김성진), 열방교회(김민호), 아가선교회(이현숙, 홍의봉), 인터콥(열방기도의집, 최바울)등
이 외에도 대형교회나 유명 선교단체가 신사도운동의 집회를 하거나 영향을 받아왔다. 특히 피터 와그너나 마이크 비클, 베니 힌, 체 안, 신디 제이콥스, 릭 조이너, 밥 존스, 빌 존슨과 같은 신사도운동의 인사들을 초청하거나, 국내외의 신사도운동 단체들의 집회를 열어주는 대표적인 대형교회들이 많은데, 이러한 교회들은 신사도운동의 위험성에 대해서 인지하고 외국의 신사도운동 인사를 초청하는 집회나 신사도운동과 관련된 단체의 집회를 금지하기를 촉구한다.
참고문헌 :
1) 『빈야드와 신사도의 가짜 부흥운동』 행크 해너그라프, 이선숙 옮김. 부흥과개혁사. 2009.
2) 『신사도운동의 정체와 비판』 이인규 著. 대림문화사. 2011
3) 『도미니온』, 피터 와그너, WLI. 2007
4) 『기도의 기술』, 케네스 헤긴, 믿음의 말씀사. 2003
5) 『요엘서,』 마이크 비클, 드보라하우스. 2009.
6) 『예언사역의 여정』, 마이크 비클, 뉴와인. 2007
7) 『목사와 예언자』 피터 와그너 著 도서출판 진흥. 2000.
8) 『기도하는 교회, 피터 와그너』, 알돌기획. 1994
9) 『기도는 전투다』 피터 와그너 著 명성훈 옮김. 도서출판 서로사랑. 1997.
10) 『방패기도』 C. 피터 와그너 著 명성훈 옮김. 도서출판 서로사랑. 1994.
11) 『너는 나의 친구라』, 밥 존스, 큰믿음. 2010.
12) 『왕의 나라』 최바울 著 도서출판 펴내기. 2011.
13) 『왕의 군대 the King’s Army』 최바울 著 도서출판 펴내기. 2010
14) 『왕의 대로 the King’s Highway』 최바울 著 도서출판 펴내기. 2010
15) 『세계영적도해 Global Spiritual Mapping』 최바울 著. 도서출판 펴내기. 2011.
16) 『백투예루살렘』 최바울 저. 도서출판 펴내기 2008.
17) 『어서오세요 성령님』, 베니 힌, 은혜출판사. 1996
18) 『주님 저에게는 기적이 필요합니다』 베니 힌, 열린책들 1993.
19)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피터 와그너 김영우 옮김. 쉐키나 출판사. 2008.
20)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박영돈, IVP. 2011.
21) 『지옥에 가는 크리스쳔』 변승우 著. 은혜출판사. 2007.
22) 『지역사회에서 마귀의 진을 헐라』 C. 피터 와그너 著 홍용표 옮김. 도서출판 서로사랑 1994.
23) 『빈야드운동평가』, 박영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6.
24) 『세계 오순절성결운동의 역사』, 빈슨 사이난, 서울말씀사. 2004.
25) 『대적의 문을 취하라』 신디 제이콥스 著 고세중 옮김. 죠이선교회출판부. 1998.
26) 『기도의 배수진을 치라』, 피터 와그너, 나눔터. 1996.
27) 『능력전도, 존윔버』, 나단출판사. 2004.
28) <펜사콜라 기적의 현장>, 이영훈, 국민일보사. 1997.
29) 『은사 예언자인가 광신자인가 아니면 이단인가?』 죤 맥아더. 생명의 샘. 1994.
30) 『교회를 허무는 두 대적』 김재성 著. 킹덤북스. 2011.
31) 『일터교회가 오고 있다』 피터 와그너. 이건호 옮김. WLI korea. 2008.
32) 『사도와 선지자 교회의 터』 피터 와그너. 임수산 옮김. 쉐키나 출판사. 2000.
33) 『오늘날의 사도』 피터 와그너 박선규 옮김. 쉐키나 출판사. 2006.
34) 『다가오는 사도시대』 로저 샢. 고새중 옮김. 죠이선교회 출판부.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