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온(Dominion)과 킹덤나우(Kingdom Now)
이인규
피터 와그너는 목회의 목적을 ‘복음의 전파’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교회성장’이라는 용어로 바꾸었다. 그 ‘교회성장’이라는 용어가 피터 와그너에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교인의 숫적 성장, 예를 들면 기존 기독교의 수평 이동을 포함하게 된다. 오히려 피터 와그너는 기존 기독교교회에서 신사도운동 교회로 옮기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물론 그러한 개념은 솔직히 과거 한국의 대형교회들이 추구하였던 교회성장과 일치하며, 교회의 주요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런데 피터 와그너에게 아주 심각한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필자는 신사도운동의 이 도미니온 사상이 가장 이단적인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피터 와그너는 그 개념이 교회를 벗어나 경제, 사회, 문화, 심지어는 국가까지 통치하는 소위 신정통치 체제적인 개념을 포괄하여 주장하고 있다.
물론 그 가장 높은 위치에는 그들이 말하는 사도들이 자리하고 있게 될 것이다. 그러한 변혁의 수단과 방법을 피터 와그너는 두개의 기둥으로 묘사하는데, 하나는 ‘일터교회’이고 하나는 ‘돈’이라는 것이다.
즉 사도가 중심이 되는 신사도운동을 지향하는 ‘일터교회’를 통한 방법과 ‘부의 이동’이라고 부르는 돈으로 문화, 경제, 예술, 사회와 국가까지 7대권으로 분류하여 그들의 통치체제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들에게 일터교회는 하나의 비즈니스적인 방법이다.(이것을 그들은 칠대권역, 혹은 일곱산, ‘Seven Mountain’이라고 부른다)
피터 와그너가 주장하는 ‘도미니온’(Dominion)은 통치신학, 주권운동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혹은 킹덤나우(Kingdom Now)라고도 불리운다. 이 개념을 파악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천국,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이해를 하여야만 한다.
(1) 지상에 이루는 신사도운동의 천국
하나님 나라, 천국, 즉 영어로는 Kingdom of God, Kingdom of heaven 이며, 히브리어 “말쿠트 야훼”, 헬라어 “바실레이아 투 데우, 바실레이아 톤 우리논”은 본래 하나님의 통치영역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매우 오랫동안 다양하게 체험되어져 전해 오고 발전되어진 개념이다.
정통신학에서 가르치는 하나님나라, 즉 천국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의 개념을 포괄한다. 어느 한가지에 치우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첫째는 과거적인 개념으로서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시는 실제적인 신정통치의 왕국을 뜻한다.
둘째는 현재적이며 진행적인 개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개인적인 성도와 동일시되며, 겨자씨로부터 새가 깃드는 나무로, 가루 서말로부터 확장되어가는 내면적이며 영역적인 의미를 뜻한다
셋째는 종말적이며 미래적인 개념으로서 사후영혼이 거하는 궁극적인 구원의 장소를 뜻한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곧 이스라엘이었으며 영역적이고 통치적인 개념이었다. 소돔과 고모라, 노아의 방주로 악인을 직접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이며, 직접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광야를 인도하시며, 성전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뜻한다.
물론 하나님 나라, 천국은 반드시 죽어서 가는 사후 장소만을 뜻하지 않는다. 바울은 현재적인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내면적이고 영적인 개념도 자주 강조하였다. 하나님 나라는 “성령 안에서의 평강과 희락”(롬14:17)이라고 하였으며, 예수님 또한 “하나님 나라는 볼 수 없는 내면적 영적실체이며, 믿는 성도들 안에 있음”을 말씀하셨다(눅17:20-21). 또한 성도들을 곧 그의 나라와 동일한 개념으로 간주된다(벧전2:9. 계1:6. 5:10)
그러나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으며(요18:36) 그 나라는 미래적이며 장래적인 의미로 비유하셨으며(눅19:11 이하) 또한 종말적으로 주님과 만나게 되는 장소로서 설명하기도 하셨다(마26:29). “불의한 자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전6:9. 15:4. 갈5:21. 엡5;5)고 바울은 말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이며 종말적인 장소적인 개념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며,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세가지의 개념을 모두 인정하는 것이 균형있는 개념이며, 그 이유는 오직 성경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사도운동이 주장하는 하나님나라는 소위 ‘킹덤나우’ 사상으로서, 지상에서 이루는 현재적인 세상적인 개념을 강조하고 있다. 그들은 오히려 세상나라와 하나님나라를 동일시하는 개념이며, 그들은 현재적인 진행 중인 개념만으로서 그들이 하나님나라를 인간이 지상에서 만들 수 있다고 주장을 한다. 이것이 곧 신사도운동이 말하는 주권운동, 즉 통치신학(Dominion)이다. 아주 쉽게 말하자면 신천지가 주장하는 지상천국의 개념과 같다고 보면 된다.
그들이 말하는 킹덤나우(kingdom now) 사상은 소위 “중보기도를 통한 전략적 영적전투”로서 도시(지역사회)를 변혁시킨다는 주장으로 ‘변혁’(Transformation)을 강조한다. 그것을 지도로 표시한 것이 곧 ‘영적도해’이다. (그들이 말하는 중보기도의 정체에 대해서도 뒤에서 별도의 항목으로 상세하게 다룰 것이다)
주권운동(dominion)은 쉽게 말하면, 예수의 재림 전 세상에 신자들이 미리 ‘하나님의 왕국’을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이며, 그래서 각계 각층 모든 분야에 크리스천들이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고유적인 뜻대로 예수님이 오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왕국을 이루어놓으면 예수가 오신다는 것이다. 신사도운동에게 하나님은 더 이상 세상을 통치하거나 간섭하지 않으시는 분이다.
그래서 신자들이 각 분야(일곱산)에서 직접 참여하는 다양한 운동을 통치신학, 주권운동이라고 하며, 재건운동‘(Reconstructionism), 킹덤나우, 도미니온등은 모두 같은 뜻의 용어이다.
신사도운동이 말하는 도미니온, 킹덤나우는 현재적이며 진행적이며 내면적인 하나님나라의 개념을 표방하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를 부정하는 개념으로, 지상에서 인간이 이루는 하나님나라를 말한다.
신사도운동은 기독교를 인본주의로 만들고, 무속적인 종교로 망치고 있는 무당과 같으며, 건전한 정통신학(Ortho-dox)을 부정하고 변질시키는 참람한 이단이다. 그들이 말하는 개혁은 곧 기독교에서 신사도운동으로 옮기는 것을 뜻하며, 그들은 기독교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것을 그는 종교의 영, 사탄의 영이라고 부른다.
그들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들 주장에 맞는 성경구절만 선택하여 짜맞추고 있으며, 그들을 사도라고 부르고, 계시와 예언을 인정하므로서, 그들의 주장을 성경의 권위와 동일시하고 있다.
둘째, 그들은 기독교 존립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셋째, 그들은 교회를 지상천국을 세우는 비즈니스의 수단으로 착각하고 있다.
피터 와그너는 이 세상을 두 개의 기둥으로 변혁시켜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하나의 기둥은 ‘일터교회’이며, 두 번째 기둥은 ‘돈’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교회 체제를 신사도운동을 지지하고 따르는 일터교회로 바꾸어야 하고, 자칭 사도들을 중심으로 가난의 영을 파괴하여 부를 이동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가 말하는 통치신학이라는 무엇일까? 그가 말하는 통치신학은 자칭 사도들이 다스리는 현재적이며 물질적이며 세상적인 하나님나라를 뜻하며, 그는 신천지의 주장과 같이 하나님나라를 지상에 세우자는 것이다. 더 쉽게 표현하자면, 신사도운동 사상을 추종하는 교회들과 부의 이동(돈)으로 지상에 천국을 만들자는 것이며, 정통신학과 기독교는 낡은 부대로 버리고, 피터와그너와 그 자칭 사도들이 계시와 예언을 행사하여 그 보좌에 앉겠다는 것이다. 피터 와그너가 직접 말한 통치신학은 바로 왜곡되며 이단적인 하나님나라이다.
– 사회변혁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가장 좋은 기초를 제공할 수 있는 실천신학은 통치신학이다. 혹자는 이것을 “현재적인 하나님 나라”라고 부른다…… 불행하게도 통치신학이라는 용어는 최근 몇 년동안 난항을 겪어야 했다. 나의 몇몇 친구들은 통치신학이라는 책의 제목만 보고 이 책 자체를 거부할 수 있으므로 통치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고 설득하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통치신학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이해한다.(피터 와그너, 도미니온, 70-71쪽)
이단들은 항상 문제가 제기되면 그런 뜻이 아니라고 일단 변명을 한다. 그러나 이내 뒤로 돌아서면 또 그러한 주장을 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도미니온은 현재적인 하나님나라의 내면적이며 영역적인 뜻이 아니다. 피터 와그너의 견해 중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들이 있다.
– 우리의 일터는 우리의 사역지이다
– 효과가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하자
– 사회변혁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 도미니온 사상은 지혜롭게 적용시키자
– 사회의 변혁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가고자 하는 우리의 목표와 더 잘 부합되는 신학은 통치의 신학(dominion theology), 즉 킹덤나우(Kingdom Now) 신학이다. 통치의 신학, 즉 킹덤나우 신학을 강력하게 주장해 온 사람들 중의 한 명이 마라나타 운동의 창시자인 밥 와이너이다. 사람들이 킹덤나우 신학과 통치의 신학을 다소 지혜롭지 못하게 적용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비판자들이 생겨난 것은 사실이다.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피터와그너, 쉐키나. 111-112쪽)
피터 와그너의 속셈이 드러난다. 즉 도미니온이라는 용어를 지혜롭지 못하게 사용하여 비판자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혜롭게 사용하여 비판자들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는 뜻인가?
피터와그너는 자신들의 기도로 에이즈감염률이 33.3%에서 5%로 떨어졌다고 말한다. 물론 기도는 중요한다. 그러나 신사운동의 킹덤나우사상은 기도로 사회변혁까지 가능하며 신정통치국가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의 섭리대로 통치하지 않고 인간의 기도대로 통치하시는가? 그렇다면 전쟁과 질병은 왜 일어났는가? 그렇다면 가난과 질병, 사고, 재앙을 포함한 모든 악은 기도가 부족한 사람에게만 나타나며,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가?
피터와그너는 오스힐맨의 주장을 인용한다.
– 일터는 진정한 변혁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이다. 왜냐하면 일터는 도시의 권세자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전에는 목사와 교회 지도자들과 기도로 땅밟기를 통해 도시를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제 우리는 일터의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들을 무장시켜야 한다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119쪽)
– 사회의 변혁을 위해서는 기도와 영적전쟁과 사도적 리더쉽이 필요할 뿐 아니라 돈도 필요하다. 1992년 무렵부터, 하나님은 전례없이 많은 재물을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해 동원하실 것이라는 말씀이 검증된 선지자들에 의해 선포되기 시작했다.(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120쪽)
이제 그들은 땅밟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천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직접 사회와 경제와 종교, 국가와 문화등 일곱산을 변혁시키겠다는 것이다.
2) 기독교 체제의 전복
신사도운동이 말하는 기독교는 종교의 영, 즉 사탄이 세운 나라이다. 또 예수의 십자가 대속의 피는 옛 포도주이며, 기독교의 교회는 헌 가죽부대이다. 그들은 결국 기독교를 전복시키고 그들이 그 자리에 앉겠다는 것이다.
– 이 상황에서 세례요한은 구약이라는 옛 가죽부대를 상징하며 예수님은 신약이라는 새 가죽부대를 상징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마9:17).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신사도적 개혁교회 내에 있는 사람들이 새 가죽부대라는 것이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에 과거 몇세기 동안 주요한 가죽부대는 교파였으며 그 이전에는 국가교회였다. (피터와그너, 도미니온, 35-36쪽)
예수님은 옛 가죽부대를 구약을 수용한 유대인으로 비유하셨고, 복음을 새 포도주로 비유하셨다. 피터 와그너는 예수님의 말씀을 왜곡시켜 교파가 있는 기독교를 옛 가죽부대로 비유하고 신사도운동을 새 가죽부대로 비유하고 있다. 이러한 비유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못으로 적용시키며 스스로 신사도운동을 신약 복음을 초월하는 것으로 언급하는 것이다. 그는 쥬스에 술을 탄 가짜 포도주를 거짓 비닐 부대로 담고 있으며 새 가죽부대로 가장하고 있다.
그 증거로 피터 와그너는 기본적인 기독교의 정통신학을 부정한다. 그는 마치 정통신학이 전도에 장애가 되므로 불필요한 것처럼 언급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의 주장이 바로 정통신학과 다르기 때문이며, 다시 말하면 신사도운동은 정통신학적인 견해가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그의 요점은 기독교의 정통신학을 자신의 신학으로 바꾸고 싶어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 나는 때때로 신학이라는 것이 지루하고 따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이유는 전통적인 신학이 대단한 학문이기는 하지만 실제적인 측면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나는 신학을 바라보는 기독교 지도자들의 태도가 미묘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나는 신사도적 개혁운동과 관련된 대부분의 교회들이 전통적인 교회의 경우와 달리 신학을 그렇게 중요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피터와그너, 도미니온, 68-69쪽)
피터와그너를 포함한 신사도운동의 목사들에게는 기적과 표적을 보이는 집회가 교인들을 불러 모으고 돈을 모으는 중요한 수단과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숫적인 부흥과 부의 이동이며, 그들은 이단적인 신학이든 아니든 모두 불문에 부치게 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교인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현상적인 집회이며, 그들에게 정통신학은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3) 부의 이동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피터 와그너는 노골적으로 돈을 두 번째 기둥을 본다. 즉 돈은 그의 통치신학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며 방법이 된다. 즉 많은 교인들에게 많은 돈을 걷어 내자는 것이다.그에게 곧 가난은 사단의 역사가 된다.
– 두 번째 기둥은 부의 거대한 이동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수년동안 약속하신 내용이다. 나는 뒤의 9장에서 온 인류의 역사 가운데 중요한 세가지가 사회를 변혁시켰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폭력과 지식과 부인데, 그 중 가장 강력한 것이 부이다. 하나님의 원칙들을 고수하는 의로운 사람들의 수중에 막대한 양의 재산이 없다면 우리는 원하는 사회변혁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기둥의 기초는 “가난의 영을 파괴하는 것”이다.(피터와그너, 도미니온, 18쪽)
– 선지자들은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거대한 부의 이동이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우리가 그 길을 예비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첫 번째 단계는 우리가 방금 살펴본 대로 가난의 영의 능력을 결박하고 무력화시키는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은 부해지는 것이요. 가난은 저주임을 깨달아야만 한다. (도미니온, 244쪽)
다음은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신사도운동의 2006년 집회에 대한 교회와 신앙의 기사이다. WLI(와그너신학교)와 KHOP의 홍정식목사등이 주최를 하였고, 신디제이콥스와 체안이 초청된 집회였다.
– 그는 “지금부터 궁핍의 영을 끊고 부요의 복이 임하도록 기도하겠다”며 좀 더 많은 양의 헌금을 강조했다. 또 “성령을 제한하지 말라, 처음 주는 생각이 하나님이 주는 생각이다”며 “그 액수를 안 갖고 왔으면 ‘하나님 내일 갖다 내겠습니다’라고 쓰라”고 헌금의 액수로 고민하지 않도록 촉구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졌던 물질적 축복의 약속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즉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하면 하나님이 이 세대에 한국 땅에 ‘비즈니스의 기름’을 부을 것이라는 약속이다. 조건은, 많이 심어야 한다. 즉, 많은 헌금을 바치면 그에 대한 대가로 더 큰 물질적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참석자들은 의자마다 놓여있는 헌금봉투에 시키는 대로 기록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는 체안 목사를 따라 기도했다. “제게 주신 권세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시간 종교의 영을 묶나니, 궁핍의 영을 묶나니, 끊어버리노라. 예수의 이름으로 떠나갈 지어다. 다시 심나니, 믿음으로 내가 축복을 받습니다. 더 나은 직장을 받습니다. 월급의 인상을 내가 받아들입니다. 승진을 받아들입니다. 은총을 받아들입니다. 유업을 받아들입니다. 모든 빚이 끊어졌습니다. 수표가 내게 날아옵니다. 형통함이 옵니다.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의 그 일을 이룰 수 있도록, 할렐루야!!” 집회 참가자들은 헌금봉투를 흔들며 체안의 기도를 따라했다. 바구니에 있는 수표를 긁어모으는 시늉을 내며 허공을 향해 양손을 휘젓는 사람도 보였다. 궁핍의 영을 좇는 기도를 하는 내내 곳곳에서 허리를 뒤로 비틀며 “으~~ 허억~!”하는 신음소리를 냈다.(2006년 6월, 교회와 신앙, 신사도운동 집회 참관)
– 헌금시간을 갖겠다. 처음 주는 생각이 하나님이 주는 생각이다. 만약 그 액수를 안 갖고 왔으면 “하나님 내일 갖다 내겠습니다”라고 써라. 아무 생각이 없다면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고 했다. 지금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라. 그래도 확신이 없다면 성경에 ‘즐겨내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을 기억해라. 기록했으면 일어서라. 지금부터 궁핍의 영을 끊는 기도를 하겠다. 부요의 복이 임하도록 기도하겠다. 오늘은 놀라운 은혜를 주는 날이다. 놓치지 말라. 한국 사람들은 목숨까지 내놓을 정도로 헌신적인 분들인 걸 안다. (2006년 6월, 교회와 신앙 기사)
과연 헌금을 많이 하면 자칭 사도들이 가난의 영을 끊고 부요의 복을 줄 수 있을까? 자칭 사도들에게 부요의 복을 받고 돈이 많아지면 신사도운동의 하나님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돈을 투자하여야 하여야 한다는 뜻인가? 과연 누가 종교의 영을 빙자한 사기꾼들인지 여러분은 스스로 판단하기 바란다.
피터 와그너는 가난뿐 아니라 병균도 없어질 수 있다고 주장을 한다. 즉 베뢰아를 비롯한 극단적세대주의의 주장과 같이 가난과 질병은 모두 사단의 역사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 따라서 가난은 병균과 같이 아담의 통치를 찬탈한 산물임이 틀림없다. 이같은 견해에 따르면 가난은 묵인되거나 감소시켜야할 대상이 아니라, 진정으로 변화된 도시에서 제거해야할 요소이다. 그리고 그 일은 이루어질 수 있다.(도미니온, 225쪽)
– 아마도 근본적인 통치명령 안에는 HIV 바이러스 자체를 극복하고 제거하는 것을 포함하여 더 이상 이러한 것이 존재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이러한 주장이 일리가 있다면 그 원리를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이러한 주장이 일리가 있다면 그 원리를 더 확대하여 이제는 암, 알츠하이머, 당뇨, 심장병, 각종 경화증, 그리고 심지어 감기에까지 그 범위를 넓힐 수 있을 것이다. “환자들을 돌보는” 대신 우리는 “질병 자체를 없애버리는” 궁극적인 목표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도미니온, 224쪽)
그는 가난이 사단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거듭난 기독교인들은 모두 부자가 되어야만 하는가? 혹은 가난한 사람은 모두 사단을 추종하는 사람들인가?
– 또한 전체적인 구조를 뒷받침하고 있는 ‘땅’과 땅위를 운행하고 있는 공중권세는 영적 전투를 심각하게 다루어야할 필요성을 강조하게 만든다. 어두움의 세력인 사단은 의로운 사회변혁이라는 개념을 싫어한다. 사단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왔다. 사단은 사람들이 행복하고 번영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가난과 비참함은 마귀가 강력하게 추구하는 목표이다.(도미니온, 19쪽)
– 사단이 교회로 하여금 거대한 부의 이동을 수용할 준비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가장 효과적인 책략 중 하나는 가난의 영을 통하여 악한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도미니온, 236쪽)
피터 와그너는 돈으로 국가를 사서 세우는 것과 자신들을 지지하는 정치의 후보자를 세우는 것도 투자라고 주장한다. 과연 이것이 사탄을 쫓아내고 지상에 세우는 하나님나라인가?
– 예를 들어, 얼마 전에 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몇몇 사도들과 함께 사역을 하고 있었다. 당시 40대처럼 보이는 한 흑인이 충격적인 질문을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피터씨, 당신은 한 나라를 사시겠습니까?” 나는 그같은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없었고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될 것인지 궁금해서 즉시 대답했다. “그러죠, 어느 나라를 살까요? 비용은 얼마입니까?”
– 당시에 필요했던 것은 크리스쳔 후보를 선거 후보자 명단에 올리기 위한 지금이었다. 나는 얼마나 필요하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대답하기를 주지사직을 위해서는 5만달러가 필요하고, 대통령직을 위해서는 백만달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이백오십만달러 정도를 투자하는 것은 훌륭한 투자일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그것은 한 나라를 사기 위한 투자치고는 적은 액수이기 때문이다(도미니온, 234쪽)
– 어떤 사람들은 내가 말하는 바를 이해할 것이다. 나는 존 켈리의 지역 지도자 회의에서 발표한 내용을 감명깊게 읽었다. 그곳에 참석했던 사도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만일 도시를 점령하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그 도시를 돈을 주고 사야 한다. 그러므로 부를 축척해 놓기 위하여 비주니스의 재산과 당신이 발견할 수 있는 모든 기회들을 소유하도록 하라”. 도시를 위하여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이같은 물질을 소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도록 간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도미니온, 235쪽)
물론 돈도 선교와 전도를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과연 기독교인들에게 가난의 영을 쫓아내면 모두 부자가 될 것이고 돈으로 도시와 국가를 세우라고 말하는가? 돈을 투자하여 자신들을 지지하는 정치인을 후보자로 세우라고 말하는가? 오히려 성경은 믿음을 지키는 제자들은 핍박과 고난을 당할 것이라는 반대적인 내용을 말하고 있다. 역시 피터 와그너는 자기 주장을 정당화 시키기 위하여 성경을 달리 해석하고 있다.
– 예수님은 “너희가 하나님과 맘몬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16:13)라고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맘몬을 돈과 동의어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존 캘리와 폴 코스타는 이렇게 말한다. “맘몬은 단순히 사람들이 숭배하는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맘몬을 숭배할 때 그들은 실제로 악령을 숭배하고 있는 것이다”.(도미니온, 242쪽)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맘몬)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눅 16:13)
과연 성경본문에서 ‘맘몬’이 돈이 아니라 악령을 뜻할까? 성경은 재물과 하나님을 대조시키기 위하여 재물을 신격화하는 용어로서 “맘몬”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맘몬은 아람어에서 파송된 단어로서 “의인화된 부”를 뜻한다. 그것을 돈, 재물이 아니며 굳이 악령이라고 해석하는 피터 와그너의 해석은 극단적세대주의다운 해석이며 그의 의도가 의심스럽다.
그의 주장이 성경과 다른 점을 감추기 위하여 성경을 달리 해석하는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성경본문의 앞 구절은 재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으며, 또 바로 뒷구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피터 와그너의 주장대로 라면 “바리새인들은 악령을 좋아하는지라“라고 바꾸어야 한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눅16:14)
과연 성경은 피터 와그너의 주장과 같이 돈으로 하나님나라를 세우라고 말하는가? 돈이 천국을 세우는 수단과 방법이 된다고 말하는가? 예수를 믿으면 가난의 영이 파괴된다고 말하는가? 신사도운동을 지지하면 병도 사고도 재앙도 당하지 않는가? 성경에서 감독의 조건은 돈을 사랑하지 않았어야만 하였다(딤전3:3).
물론 돈도 선교적인 사역을 위하여 사용되는 도구가 된다. 그러나 가난이 사탄의 영이며 그것을 가난의 영을 끊으면 부의 이동이 온다는 주장은 비성경적인 주장이다.
아래 성경에 대해서 피터 와그너는 어떻게 해석하는가?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막 10:23)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10)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 13:5)
종교적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대표적인 사람 – 그들이 바로 신사도운동이다.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전 6:5)
4) 킹덤나우(Kingdom-Now)
주권 신학은 세 가지 기본 신념에 입각한다:
1) 사탄이 아담과 이브의 유혹을 통해 이 땅에 대한 사람의 주권(지배권)을 빼앗았다.
2) 교회는 주권을 사탄으로부터 되찾아 올 하나님의 도구이다.
3) 예수는, 교회가 지구의 정치사회적 기관들에 대한 지배를 장악하여 주권을 확립할 때까지, 재림할 수 없거나 재림하지 않는다. (Al Dager, Vengeance Is Ours: The Church In Dominion)
첫 번째 주장은 극단적인 세대주의의 이원론적인 주장이며, 두 번째 주장은 베뢰아의 주장과 같은 잘못된 교회관이다. 더욱이 위에서 세 번째의 항목에 주목하기 바란다. 그들이 인위적인 지상천국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예수는 재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 글은 신사도운동에 대한 미국의 이단연구가인 알 데이저의 글로서, 신사도운동의 도미니온, 킹덤나우 교리를 말하고 있다. 그들이 지상에서 하나님나라를 이루어야만 예수가 비로소 재림하신다는 것이다.
피터 와그너를 비롯한 신사도운동 인사들은 이 세상을 하나님과 사탄의 영적대결로 본다. 신사도운동은 어김없이 이원론적인 사상이 나타난다. 그들에게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유는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한 대속의 개념이 아니라 마귀의 일을 멸하러 왔다는 것이다. 마치 베뢰아의 사상을 보는 것과 같으며, 피터 와그너는 그의 책에서 그러한 주장을 말하고 있다.
– 하나님은 아담이 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예수님을 인간의 몸으로 보내셨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순결하고 순종하는 삶을 사셨다. 그분은 그동안 존재했던 모든 인류 가운데 아담이 잃어버린 통치권을 사단으로부터 되찾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신 유일한 분이시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3:8). 마귀의 주된 임무는 악과 포악한 통치로 포장되어 있는데 마귀는 첫번째 아담의 타락 이후로 온 인류에게 그 폭정을 행사하고 있다. 예수님이 이같은 역사를 영원히 바꾸어 놓으시기 위하여 돌아가셨다(도미니온, 82쪽)
– 그렇다면 예수님이 멸하시기 위해 오신 그 마귀의 일이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에덴동산 이후 사단이 인류에게 커다란 고통을 가했던 불행과 조직적인 빈곤, 그리고 불의와 압제 들이었다. 사단의 명칭인 “공중의 권세 잡은 자” 혹은 “이 세상 임금”은 그가 왕국을 소유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사단의 호전적인 계급적 체제를 갖추어 통치한다. 이 어두움의 나라는 두 번째 아담이 오시기 전까지는 세계적인 규모로 직접적인 도전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셨을 때 사단은 전면적인 공격을 당하게 된 것이다.(도미니온, 146쪽)
신사도운동은 기독교를 종교의 영, 사탄의 영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그들이 지상에 세우는 하나님의 나라의 정체는 무엇인가?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으며 우리는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찾게 될 것이다. 신사도운동의 견해대로 된다면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다. 신사도운동을 지지하는 교인들에게 모두 가난의 영을 끊고 부요의 복을 부어서 그들의 돈으로 국가를 사면 될 것이 아닌가?
그들은 자신들이 예언과 선포를 하였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미국에서 산불이 일어나 꺼지지 않을 때에 신디제이콥스가 기도를 하니 여름에 눈이 내려 산불이 꺼졌다고 주장을 한다. 이러한 주장은 기적을 자신의 것으로 가장하는 종교사기꾼과 같은 주장이다.
광우병은 독일에서만 자취를 감춘 것이 아니다. 광우병이 동물성 사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전세계에서 광우병은 거의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피터와그너는 자신이 선포기도를 하므로서 광우병이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 선포할 때에는 하나님께 무엇을 해달라고 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있는 어떤 것들을 이루어지도록 선언하는 것을 말한다…..우리는 하나님께 말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위해 말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해달라고 말하지 말고, 하나님의 권세를 사용해서 어떤 일이 이루어지도록 명령해야 한다 …… 예를 들면 나는 광우병이 유행할 때 독일에서 공적인 모임을 인도하고 있었다. 그 때 하나님이 내게 광우병을 행하여 사도적인 선포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2,500명이 모인 앞에서 그렇게 했고, 바로 그날이 광우병이 보고된 마지막 날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다만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내게 주어진 권세로 그 병이 멈출 것을 명령했다. 그때 그 일이 이루어졌다. (피터 와그너, 도미니온, 170-171쪽)
그들이 기도하면 자살도 사라지게 된다. 심지어 산불까지도 자신들의 기도를 하여 꺼졌다고 함으로서 자신들을 신격화시키는 이단들의 수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즉 지나간 과거사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기도 때문이라고 공로를 주고 있다. 이들의 가장 문제점은 자신들로 하여금 악과 가난과 재앙이 없어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 2001년 12월27일 제이 스왈로우는 스탠딩 락에서 자살이 사라질 것이라는 권위있는 사도적 명령을 선포하였다. 그날 이후로 삼년이 넘도록 그 인디안 보호구역 내에서 단 한 건의 자살시도조차 보고되지 않았다. 그 이후에 단 한 건의 자살사건이 있기는 했으나 자살이라는 유행병이 재발되지는 않았다. 우리가 마귀가 빼앗아간 통치권을 되찾는 일을 심각하게 생각한다면 마귀를 추방하기 위하여 영적전투가 필요하다는 사실 또한 심각하게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도미니온, 173쪽)
피터와그너는 사도바울도 지역적인 신에 대항하기 위한 지역적 사도였다고 주장하며 베드로도 마찬가지였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주장하는 영적도해의 정체이다.
– 주된 변화 중 하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울 수 있는 지도체제일 것이다. 이는 사단이 거점을 확보한 이후 오랜 세월동안 점령하고 있던 지리적인 영역에 세워진 흑암의 지도체제의 도전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경우 현장에서 사역하는 사도적 리더쉽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볼 때에 바울은 주어진 자신의 영역을 담당하던 지역적 사도였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베드로 역시 그에게 특별하게 할당된 지역이 있었다(도미니온, 195-1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