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는 지옥이 없다는 안식교와 여호와의 증인

  • 6월 16, 2016

                                                         지옥이 없는가?

                                                                                                                                이인규


 


자유진보적인 신학자 혹은 불신자와 같이 지옥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호와의 증인이나 안식교는 구약에서의 음부는 히브리어 스올로서, 불신자나 신자나 누구나 죽으면 가는 무덤이라는 장소를 말한다고 주장한다. 즉 고통받는 지옥이 없다는 것이다.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하데스)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2:31)

음부의 헬라어 단어는 하데스이다.

그런데 이 사도행전231절은 구약의 시편을 인용한 것으로 시편 1610절을 인용한 것이다. 그런데 시편에서는 하데스라는 단어가 스올로 번역되어 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쉐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16:10)

시편 16:10의 구절에서 음부는 히브리어 스올인데, 여호와의 증인이나 안식교와 같이 누구나 죽어서 가는 무덤이 스올이라는 주장과 달리, 스올과 하데스는 많은 성경 구절에서 사후영혼이 가는 장소로 기록되어 있다.

신약성경에서 사후 영혼이 가는 곳에 대한 구체적인 구절이 있는데 바로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내용이다. 부자와 나사로에서 언급되는 음부는 헬라어 하데스로 구약에서 말하는 스올과 동일한 용어이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16:23)

신약성경에서 하데스를 개역성경은 음부로 번역하였는데, KJV NIV 영어성경은 모두 이것을 hell 이라고 번역하였고, 공동번역은 죽음의 세계라고 번역하였으며, 표준새번역과 현대인의 성경은 지옥이라고 번역하였다.

안식교와 여호와의 증인은 이 부자와 나사로가 실제있는 사건이 아니라, 단지 애굽의 설화라고 주장하는데, 이 비유는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으로, 이집트의 설화와 그 내용이 전혀 다르다. 이집트의 설화는 단순히 부자와 가난한 자를 대비하고 있을 뿐이다. 또 고통받는 음부가 실제로는 없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이러한 비유를 하였다는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나사로란 단어는 하나님이 도우시다라는 뜻이며, “아브라함과 천사에 대한 언급, 또 성경말씀으로 비유되는 모세와 선지자라는 표현은 이것이 이방인의 설화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부자와 나사로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사후세계는 다시 돌이킬 수가 없다는 것이며, 살아 생전에 모세와 선지자로 표현된 성경말씀을 통하여 믿음을 가지라는 내용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부자와 나사로 외에 하데스란 용어가 사용된 다른 구절은 없을까?

그 하데스는 신약성경에서 다른 구절에서도 사용되고 있었는데, “고통의 음부를 의미하는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 불못이라고 성경에서 설명되어 있었다.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하데스)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20:13-14)

즉 구약의 히브리어 쉐올은 헬라어 하데스로 번역되었으며, 그 개념은 단순히 죽은 자의 거처인 무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받는 음부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구약의 경우를 살펴보자. 과연 안식교나 여호와의 증인과 같이 스올이라는 구약의 음부가 악인이 가는 장소가 아니라, 누구든지 가는 무덤을 가르키는 것일까?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는다.

악인이 음부(스올)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 하리로다”(9:17)

시편 9:17의 음부(스올)은 누구나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악인이 죽어서 가는 곳>이며 하나님을 잊어버린 열방을 말한다또 구약에서는 부자와 나사로의 경우와 아주 유사한 경우를 말한 구약의 구절도 있다.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독주를 따라가며 밤이 깊도록 머물러 포도주에 취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저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의 행하심을 관심치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이러므로 나의 백성이 무지함을 인하여 사로잡힐 것이요 그 귀한 자는 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며 음부(스올)가 그 욕망을 크게 내어 한량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연락하는 자가 거기 빠질 것이라”(5:11-14)

여호와의 행하심을 관심치 아니하고 연회만 즐기는 귀한 자들은 결국 주리게 되며, 목마르게 될 것이라는 표현은 그들이 가야할 곳이 음부라는 심판적이며 장소적인 개념을 말하고 있다. 물론 구약에서도 이 스올은 단순한 죽은 자들이 가는 무덤을 뜻하지 않는다.

지혜로운 자는 위로 향한 생명 길로 말미암음으로 그 아래 있는 음부를 떠나게 되느니라”(15:24)

이 구절도 매우 구체적인 음부의 개념을 설명하여 주는데, 잠언에서의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를 말하므로, 음부를 떠나 위로 향한 생명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결국 음부는 단순한 죽음의 거처가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이 음부 스올이며, 특히 떠나다라는 뜻의 동사는 쑤르이며 이 단어는 피하다. 외면하다라는 뜻이다. 즉 지혜로운 자는 음부를 피하여 위로 향한 생명길로 간다는 뜻이다.

이러한 성경구절은 또 찾아볼 수 있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계시나이다”(139:8)

음부이든 하늘이든 하나님의 통치영역이라는 의미이지만, 이 구절 역시 하늘로 올라갈 수도 있고, 음부에 자리를 펼 수도 있음을 선택적으로 말하고 있다.

신약성경에서 지옥으로 번역된 단어는 주로 게헨나인데5:22 “지옥 불”, 23:33 “지옥의 판결 등에서 사용되는 지옥이라는 단어에 사용되었으며, 이 단어가 언급하는 고통받는 장소적인 표현은 제법 많다.

물론 이 단어가 게힌놈 혹은 힌놈의 골짜기를 유래하는 단어를 말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이 단어는 분명히 죽어서 가는 장소적인 개념이며, 심판적인 개념으로 사용되었으며 하데스와 게헨나가 다른 장소라고 말하기는 더욱 어렵다.

특히 이 단어는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시며 가르키시는 구절에서 주로 나타나기 때문에 무시되어질 이유가 없고, 지옥이 고통을 받는 곳으로 표현되는 성경구절은 수없이 많다.

또 신약에서 지옥이라는 단어가 다른 헬라어 단어로 사용된 예가 있는데 타르타루스로서 그 단어가 사용된 성경구절은 아래와 같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벧후2:4)

이 단어는 헬라어 타르타루스로서 지옥에 던지다는 동사이다. 다만, 이 지옥은 사단과 마귀들이 심판의 날까지 가두어지는 무저갱을 가르키며, 일반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곳과는 다르다는 견해가 보편적이다.

다음은 신약에서의 지옥에 관한 성경말씀이다.

마태복음  5:22  지옥불

마태복음  5:29  지옥에 던지우는 것이 유익하며

마태복음  5:30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태복음 18:9   지옥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마태복음 23:15  지옥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가복음  9:43  지옥 꺼지지 않는 불

마가복음  9:45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가복음  9:47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누가복음 12:5   지옥에 던져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야고보서  3:6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베드로후서 2:4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마태복음  3:12  꺼지지 않는 불

마가복음  9:43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마가복음  9: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누가복음  3:17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누가복음 16:22  부자와 나사로

디모데후서 3:1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서

마태복음  25:41  영영한 불

요한계시록 14:1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마태복음 25:46  악인은 영벌에 의인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13:42  풀무불에서 이를 갈며(13:50)

어떻게 이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 많은 구절을 어떻게 상징적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고통을 받는 지옥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만일 그 개념이 상징적이며 현실적으로 없는 곳이라면, 성경에서 이렇게 많은 구절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가?

안식교와 여호와의 증인들이 주장하듯이 그들이 성경적이라고 한다면, 지옥을 인정하여야만 할 것이 분명하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무시하면서 자신들의 인위적인 교리를 주장하기 때문에 이단이라고 불리울 수 밖에 없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과연 지옥이 없는데도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이야기인가?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2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