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사후영혼의 의식적인 활동을 부정하는가?

  • 6월 16, 2016

                                            성경은 사후 영혼의 의식적 활동을 부정하는가?

                                                                                                           이인규


 


이것은 안식교회와 여호와의증인의 또다른 특이한 주장이 되어질 것이다.

또한 안식교회와 여호와의 증인이 비성경적인 단체일 수 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의 창시자 럿셀은 원래 안식교 목사에게 교리를 배웠으며,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점에서 교리가 유사하다.

안식교와 여호와의 증인은 소위 영혼수면설, 즉 인간이 죽으면 영혼이 육체와 함께 무의식상태로 있다고 주장하며, 영혼의 사후세계가 없으며 단지 무덤에서 예수님의 재림까지 기다린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을 영혼수면설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서 영혼의 사후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영혼이 고통받는 지옥을 부정하며, 또한 영혼수면설을 주장하므로서 사후 영혼의 의식적인 활동을 부정한다, 결국 그들은 지옥뿐 아니라 낙원도 부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안식교회의 주장은 매우 간단하게 비성경적임을 밝혀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16)이며, 또 십자가 옆의 강도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예로 들 수가 있다.(23:42-43)

예수님은 십자가의 강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23:42-43)

안식교의 교리를 따르자면, 십자가의 강도는 그 영혼이 그 시체와 함께 무의적인 수면을 취하고 있어야만 하는데,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안식교의 교리를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가?

안식교의 교리대로라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낙원이 곧 무덤이 되어진다.

이것에 대하여 안식교는, 헬라어 원문에는 콤마가 없기 때문에, “오늘이라는 부사를 다르게 해석하여야 하며, 그 성경구절은 내가 오늘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라고 해석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안식교의 주장을 따르자면, 세계각국의 모든 번역성경이 잘못된 번역을 하였다는 주장이 된다.

다시 말하자면 성경에 충실한 교리가 아니라, 교리에 짜맞추는 성경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즉 자신들의 교리가 성경과 다르면 성경번역이 잘못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안식교인들은 아래 질문에 대해서 답변할 수 있어야만 한다.

  

1. 강도는 예수님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간구하였다.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에라는 확실치 않은 미래의 시간적인 부사구를 말하고 있었다. 이에 예수님은 불확실한 장래를 말하는 내 나라에 임할 때가 아니라 바로 오늘 그 강도가 낙원에 있게 됨을 말씀하신 것이다.

2.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구절 중에서 내가 오늘 말하노니…..”라는 구절은 단 하나도 없다. 상식적으로 판단을 할 때에도 내가 말한다는 구절에 대해 오늘 내가 말한다는 시간을 나타내는 부사구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3. 23:43과 매우 유사한 문맥을 예로 들 수 있는데…. 마태복음26;34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라는 구절을 만일 내가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라고 시간을 나타내는 부사구로 옮기는 해석도 옳다고 우기는 것과 같다.

4. 역대 이래로 성경번역본은 가장 뛰어난 언어학자와 신학자들이 번역해 온 것이다. 안식교회는 성경원본을 가진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성경번역이 모두 틀렸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여야만 하며, 그와 같이 이상한 해석을 진리이며, 원본적인 해석이라고 믿는가? 안식교회의 교리는 알지도 보지도 못한 성경원본으로부터 유래된 것인가, 아니면 번역성경이나 사본으로부터 유래된 것인가? 적어도 안식교 교리는 현존하는 번역본 성경과 다르다는 것은 인정하는가? 현존하는 성경번역본이 모두 틀렸다고 주장해야만 되는 교리라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 분명하며 현존하는 성경번역본과는 다른 비성경적이라는 것을 자백하는 결과가 되지 않는가?

안식교는 나사로와 부자의 경우에 있어서는 안식교회는 실제로 있지 않은 이방종교의 설화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실제로는 없는 이방종교의 설화를 말씀하셨다는 이야기가 된다. 성경을 교리에 짜맞추기도 모자라는지, 이제는 예수님의 말씀마저 왜곡, 변질시키는 안식교회는 과연 그들의 주장대로 성경대로의 교회인지 의심스럽다.

서양의 신데렐라와 우리나라의 콩쥐팥쥐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듯이, 고대 이집트의 민간전승의 유사한 설화가 있다고 하여, 무조건 그것을 애굽의 설화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해가 어렵다. 이집트의 설화는 유대교 진영에서 전승되어 전해지고 있는데, – 죽은 다음에 많은 사람이 참석한 호화스러운 장례식을 치른 부자 세리 바르 마얀과 죽은 다음에 장례식에 참여한 사람도 없었던 가난한 학자의 이야기 가 이집트의 설화로 알려져 있다.

만약에 예수님이 흔히 떠도는 설화적 이야기에 자신의 독특한 의미를 전달하였다고 가정을 하더라도, 그것이 실제적인 사후의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다면 그 말씀을 전하려고 하는 예수님의 의도가 맹목적이었다고는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와 그 설화는 큰 차이점이 있다. “나사로라는 헬라어의 이름은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뜻으로 이집트의 설화와 다르다.

이 명칭은 히브리어 엘리에제르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집트의 설화가 말하는 단순한 부자와 가난한 자의 사후 이야기와 그 멧세지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이 이야기의 결론이 되는 내용인 회개”(30)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어지며, 성경으로 일컬어지는 모세와 선지자”(31)라는 단어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즉 살아 생전의 회개와 모세와 선지자로 표현되는 성경말씀을 사후세계의 음부와 아브라함의 품이라 불리는 천국으로 분류되는 조건으로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이 부자와 나사로의 성경본문을 통하여 예수님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사후세계의 존재를 분명히 말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 기준은 모세와 선지자라고 표현된 성경을 읽고 회개하여야 한다는 것이며, 그리고 사후세계에서는 결코 돌이킬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성경의 표현을 보면, 거지는 죽어서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는 음부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22)

그렇다면 안식교회의 교리와 같이 죽은 자의 영혼은 그 사체와 함께 무의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사후에도 의식적인 활동을 한다는 결론이 되어질 것이다.

즉 부자와 나사로의 성경본문은 안식교의 교리를 뒷받침하지 않는다.

1) 바울은 사후영혼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여증과 안식교의 교리를 갖고 있지 않았다. 바울은 그가 죽어 몸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거함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1:22-24)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5:8-1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 3:20)

 

2) 사도요한은 여증과 안식교와는 달랐다. 사도요한은 하나님 곁에 있는 사후영혼을 말하였기 때문이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6:9)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20:4)

3) 예수님은 여증과 안식교와는 다르시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셧고, 십자가 강도에게 그날 낙원에 함께 잇을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10: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23:43)

정통교리란 성경을 그대로 믿는 것이며 기록된 성경을 기준으로 요약된 것이 정통교리라고 말할 수 있다ᅟᅳᆫ 것에 동의할 것이다. 고통받는 지옥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수없이 많다 그러한 말씀을 모두 부정하는 교리가 제대로 된 교리가 될 수 있는가?

예수님은 십자가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다.

성경대로 믿는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친히 하신 말씀대로 십자가 강도는 그날 예수님과 낙원에 함께 있었을 것을 당연히 믿는다 그러나 안식교는 예수님이 이 날에 지옥에 내려갔기 때문에 낙원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주장도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다.


안식교의 교리는 사후영혼의 세계를 부정한다. 그러므로 안식교는 예수님의 말씀을 부정하여, 십자가 강도와 예수님이 낙원에 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에 구체적으로 반박하여 본다.

(1) 무소부재하심:

예수님이 그날 과연 지옥이라는 장소에만 국한 되어 계셨을까? 또는 예수님은 부활하시기 전까지 계속 지옥에만 머물러 계셨을까?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성경구절은 단 하나도 없다.

예수님은 인간의 육신으로 오셨을 때에 장소와 시간의 공간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예수님을 시간과 공간으로 제한하려는 주장은 너무 우습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육체를 벗어난 하나님은 지옥에서 있었으므로 낙원에 갈 수가 없었다고 주장하는가?

하나님께서 무소부재하시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중심은 어디에나 있으며, 또한 그분의 존재의 거처하시는 범위는 아무 데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무소부재, 편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139:8-10)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17:24-2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가까운데 하나님이요 먼데 하나님은 아니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23:23-24)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15: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4;13)

예수님의 인성에 관해서 말할 때에 그는 하늘로 올라가셨기에 더이상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16:28, 17:11, 1:9-11)

그러나 그의 신성에 있어서 예수님은 어디에나 편재하여 계신다고 말할 수 있는데, 예수님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다”(18:20)고 하셨으며, 또한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28:20)고 하셨던 것이다안식교는 아프리카 교회에서도 예배를 받으시며, 시베리아에 있는 교회에서도 예배를 받으시는 주님을 부정하는가?

(2) 예수님의 지옥강하:

예수님이 과연 지옥에 내려가셨는가? 안식교는 다음 성경구절을 제시한다.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벧전4:18-19)

물론 그들이 제시하는 성경구절도 그들의 교리와는 전혀 다르다,

안식교는 고통받는 지옥이 없으며, 사후영혼의 세계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영혼이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수면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위 벧전 본문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고 하여도 사후영혼의 세계가 있으며, 불순종하던 영들이 옥에 갇혀 있지 않는가너무 우습게도 안식교의 교리는 그들이 스스로 제시한 성경구절에서도 오류로 밝혀진다.

위 본문은 예수님이 죽으셔서 지옥에 가셨다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심판주이시며 십판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다이 구절에서 전파하다는 단어는 유리겔라조”(복음을 전하다)가 아니고, “케루소”(선포하다)이다.

즉 정확한 번역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옥에 있는 영들에게 승리를 선포하셨다는 것이다.

누가복음16장에 의하면 음부에 있던 부자는 낙원에 있던 아브라함과 대회가 가능하였다. 다만 그 사이에는 구렁이 있어서 건널 수가 없었다. 성경은 음부는 내려가는 것으로 낙원은 올라가는 것으로 전혀 별도의 분리된 장소로 표현하지만, 누가복음에서의 음부와 낙원은 구렁이 가로 막혀있을 뿐 서로가 가시권 안에 있으며, 대화가 가능한 곳이 되어진다.

즉 음부와 낙원에 대해서는 성경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지 않고 있으므로 우리가 모른다라고 말해야만 하지만, 사후영혼이 죽어서 가는 낙원과 음부는 분리된 별개의 물질적 장소개념이 아니라 영적인 개념으로 어느 장소를 뜻하지 않는다.

성경에서는 하나님도 손이 있고 발이 잇으며, 등과 얼굴이 있으며, 발등상이 있는 것으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물론 사람의 힘으로는 영을 가두어 놓을 수 없지만, 하나님은 영을 심판하실 수가 있으며, 성경에서도 영적존재인 타락한 천사를 가두어 놓았다고 기록하지 않았는가?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앙겔로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벧후2:4)

음부와 낙원은 사후영혼이 대기하는 영적인 곳으로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태적인 개념이다. 물론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육체를 가지신 예수님은 온 세상에 편재하실 수가 없으셨지만,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영혼은 온 세상에 편재하실 수 있으시다. 다시 말하여 한 장소에 제한시키려는 안식교의 주장은 궤변이 되고만다. 예수님이 지옥에 내려갔으므로 예수님과 강도는 낙원에 갈 수가 없었다는 주장은 결국 안식교 교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말씀과 성경을 부정하는 결과가 되고 만다.

심판주이시며, 창조주이시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심판을 받고 음부와 낙원으로 분류되어진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바로 안식교다운 이상한 주장이 된다.

예수님은 낙원에도 계시고 음부에도 계신다. 즉 지옥에 내려가신 예수님에 대해서 어떤 문제점도 있을 수 없다. 만일 벧전의 본문을 예수님이 오직 지옥에만 내려가신 것으로 해석한다면, 노아의 방주때에 불순종하던 영들이 옥에 갇혀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안식교는 어떻게 해석을 할 것인지 묻고 싶다. 안식교의 영혼수면설과 지옥이 없다는 교리는 모두 고쳐져야만 하지 않는가?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난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을 인식하자 갑자기 사라지신다. 또 문을 잠근 제자들 앞에 아무도 인식하지 못한채 나타나셨으며, 더욱이 하늘로 승천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