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운몽과 애향숙에 대한 여러 교단의 견해

  • 6월 03, 2015

나운몽과 애향숙에 대한 여러 교단과 이단연구기관의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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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몽(1998년 예장통합 83회 총회)


나운몽 씨에 대하여는 제 82회 총회(1997)에 제 40회 총회(1955)와 제 41회 총회(1956)의 결의가 일단 그대로 유효함을 보고하고, 4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현재의 상황을 살펴 재고의 여지가 있는지 1년간 더 연구하기로 하였다.


1. 개 관

나운몽 씨는 용문산기도원(龍門山祈禱院)의 설립자이다. 평북 박천 출신으로 젊은 시절 인생의 근본적 문제 등에 번민하여 여러 학교를 전전하기도 하고 깊은 회의에 빠지기도 했다. 한 때 불교에 귀의, 승려 수도에 몰두하였다. 그러나 여기서도 득도치 못하고 계속 방황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기독교로 개종하여 해방 전 경북 소재 용문산에 입산, 개인적 신앙생활을 하다 해방되던 해에는 상경하여 서울 수표감리교회로 교적을 옮겼고 그 이듬해 장로 임직을 받았다.

1947년에는 다시 용문산에 입산, 신앙운동은 물론 빈곤퇴치 등의 민중운동도 겸한 애향숙(愛鄕熟)을 설립했다. 이는 한국 개신교 기도원 운동의 모체가 된 것이기도 하다. 6.25 후 본격적인 수도생활에 들어갔고 스스로 은혜를 체험, 입신 방언 신유 예언 진동 등의 신비적 체험을 했다고 한다. 이에 전국 각지로 순회하며 설교를 하고 신유의 은사도 행하는 부흥집회를 주도하였다. 1954년의 양칠년 창립기념대회를 계기로 본격적인 부흥운동을 시작하였고 이 운동은 점차 수도원적 기도원 운동으로 초점이 맞춰졌고 경건운동이라는 이름도 뒤따르기도 했다.

나운몽 씨의 집회가 시작될 무렵, 문선명의 통일교운동, 박태선의 전도관운동, 노광공의 동방교 등 이단종파운동이 극성을 부렸고 기성교회에서 이탈 신흥종파를 조직했다. 나운몽 씨의 용문산기도원 운동도 세력이 비대화되면서 감리교회를 이탈, 일동일교회운동으로 설립된 애향숙산하 교회들을 모두 규합하여 1979 대한예수교오순절성결회라는 새 교단을 창설하였다.

나운몽 씨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신학 교육을 받지 아니했다. 그의 사상이 집약된 책으로는 {기독교도리학 해설본} {성경정통교리강론} {2000년 전통교리에 이상 있다} {동방의 한나라}를 들 수 있다.


2. 경 과

나운몽 씨에 대한 본 교단의 결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 40회 총회(1955)
군산노회장 김형우씨가 헌의한 근래 한국교계를 풍미하는 나운몽 씨에 관하여 각 지방에서 그로 인한 손해를 많이 입고 있는 바 그 정체를 밝혀 주기를 청원한 건은 그 신분과 거취가 분명하지 않고 신앙의 기초를 정신수련 위에 두며 우리 장로교 신경에 맞지 않는 점이 많음으로 막는 것이 가한 줄 아오며.


. 41회 총회(1956)
나운몽 씨에 관하여는 거년 총회시 결정한 바 있거니와 본 장로교회 강단에 세우는 것은 물론 엄금할 것이요 기타 장소에서 개최하는 집회에도 교인들의 참석을 금지할 일이오며.

다른 교단의 규제 결정은 1956 4 17일부터 22일까지 서울신학대학 강당에서 회집된 성결교의 제 11회 총회, 1962 10 16일 감리교 총리원에서 모인 연합감리사회의 부흥사를 초빙할 시는 사전에 그 지방 감리사의 승인을 받아야 할 것이며 나운몽, 백시응 씨 등 초빙하지 못하도록 하되 이를 위반하는 교역자는 심사에 붙이도록 가결한 것을 들 수 있다. 또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서울노회는 1967 5 9일 용문산기도원운동을 불법집단으로 단정했었으며, 1968 7 22일 고신 경남노회의 제 38회 제 3차 임시노회도 규제하는 결의를 하였다.

예장합동측도 1976 10 11일 담화문을 발표하여 제 40회 및 41회 총회의 결의를 재확인하였으며, 대한기독교연합회도 1976 10 5일 성명서를 발표하여 겸손히 회개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기독공보는 1976 11 6일부터 12 11일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용문산기도원 비판이란 글을 실었다. 1976 11 6일자에는 신학적 측면(문상희), 11 13일자 교회적 측면(김규당), 11 20일자 역사적 측면(박영관), 11 27일자 현상학적 측면(탁명환), 12 4일자에는 노회장의 견해가, 그리고 12 11일자에는 전국교회에 드리는 글(임택진)이 실려있다.


3. 현재상황


1990년대에 출판된 나운몽 씨의 저서들을 살펴 본 결과 한마디로 그의 비성경적, 비교리적 주장을 논리적으로 더 체계화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나운몽 씨는 특히 [2천년 전통교리에 이상 있다 성경정통교리론]라는 책에서 기독교의 교리를 많은 부분에서 부정하고,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성경정통교리라고 한다. 즉 그의 논지는 자신의 주장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기에 성경정통교리이고 그 동안 기독교가 믿어오고 가르쳐 온 교리는 이상이 있다고 하여 기독교의 정통성과 역사성을 부인하고 있다. 특히 나씨는 한울님을 성경의 하나님과 동일시하고 우리 조상들이 섬긴 그 하나님이 오늘의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임이 틀림이 없다고 주장한다.


단군이 산상에서 천제단을 쌓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다는 데서부터 그후 계속해서 산에서 돌단을 쌓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다는 사실과 그후에도 그 습성이 유래하여 산에서 천제를 드려 산당제단이 이뤄졌고 산에서 민촌으로 제단이 옮겨지면서 하나님을 위하던 제단이 사람을 위하는 제단으로 속화되면서 회당으로 이름이 붙었고 이것을 좀더 거룩히 구별한다고 이제는 예배당이라고 이름하게 되었다. 성전 또는 성당이라고도 한다. 어떻든 한민족이 하나님께 제사드린 유래와 방식이 이스라엘 백성과 다름이 없거늘 왜 이스라엘이 섬긴 하나님은 진정한 하나님이라면서 우리 조상이 섬긴 하나님은 미신적으로 간주해야 하는 이유가 나변에 있는 것인지 알고 싶은 일이다. 우리 조상에게서 이어 받은 핏줄은 우리의 맥박 속에서 뛰고 있거늘 핏줄이야 속일 수 있겠는가? 우리 조상들이 섬긴 그 하나님이 오늘의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임이 틀림이 없다는 것을 맥박속 피가 증거하고 있다. 이스라엘 하나님을 의붓아비 섬기듯 하는 오늘의 신앙 자세를 시정해야 할 일이다.”([2000년 전통교리 이상 있다], pp.76-77.)


이 같은 주장은 셈의 증손자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의 후손이 우리 민족이라는 가정에 따라 전개되는 사상으로, 하나님이 한국에 동방의 한나라를 세울 것이며 창조 6일 후에 안식한 것과 같이 아담 타락 이후 6천년이 지난 제 7천년부터는 안식천년 기간이 되어 서기 2천년대에 대변혁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제 성경 속 진실에서 민족의 뿌리를 찾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사랑하시고 말세에 택한 민족으로 구별하셨기 때문이다. 성경상 계보대로 우리 민족은 아담의 후손으로 둘째 아벨인 셋의 계통 노아의 아들 셈의 증손자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의 후손이다. 즉 에벨의 두 아들 벨렉과 욕단이 서로 갈라진 후 형 벨렉은 아브라함의 조상으로 성경에 드러난 계통이지만 동생 욕단은 감추인 속사람같이 계대가 이어졌다. 마치 형 에서는 아버지의 집에서 드러난 처지였지만 동생 야곱은 동방 하란땅 어머니의 친정에 가서 숨겨져 살고 있던 처지와 같은 처지다. 이는 곧 유형은 드러나고 신령은 감추이는 이치와 같은 일이다. 이렇게 에서는 겉사람을 상징했고 야곱은 속사람을 상징했다. 그래서 겉사람은 천국을 얻지 못하고 속사람이 천국을 얻게 되는 것이다(고전 15:50). 에서는 드러난 형이면서도 장자의 기업을 얻지 못했고 야곱이가 동생이면서도 장자의 기업을 얻게 된 것과 같은 이치다( 25:32, 12:16,17). 이처럼 형 벨렉계의 기업은 동생 욕단계에게로 옮겨진 것이다. 그런고로 육신예수는 형 벨렉계에서 출생하셨다가 벨렉계인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신령의 그리스도는 동생 욕단계의 동양사람들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다. 지금도 벨렉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아랍권내에서는 그리스도가 배척을 받고 있다. 욕단의 후손이 살고 있는 동양권내에서는 크게 환영을 받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열매 맺는 백성은 동방에 있음이 확실하다( 21:43). 동방에 있는 한나라‘”.([2000년 전통교리 이상 있다], pp.107-108)


이제부터 7년후 2000년부터는 지상에 낙원이 이루어진다는데 그것이 사실인가고 의심스럽게 묻는 이들도 있다. 에덴과 같은 시대가 된다는 말이 반갑기도 하지만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창조 6일 후 제7일 안식이 있었던 것처럼 아담 타락후 개조역사 6천년이 지나면 7천년 기간이 될 것은 사실이다. 그때가 곧 안식천년기간이니까 물론 낙원일 것이다.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것을 잊지말라고 베드로는 말했다(벧후 3:8). — ( 중략 ) — 그때가 인류타락 후 6천년 후라니까 이제부터 7년 후 2천년이 되면 2000 1 1일부터 변화된다고 생각하는 무리들이 있어 7년 환난설에 의하여 93년부터는 환난기간이라고 겁을 주는 일도 있으나 그 기간을 그렇게 산출하는 것은 아니다. 기원전 4천년 전에 인류가 에덴에서 추방당했다고 하나 그해가 BC 4246년이었으니 246년이나 차이가 생겼다. 그렇게 생각하면 2000년대에 대변혁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어느 해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나님만이 아시는 그 날을 우리가 확정지어 말할 수 있으랴.”([성경난제 백문백답], pp.231-233.)


더구나 공자·석가를 대선지 몽학선생으로 추켜 세운다.


즉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름 없이 하나님께 순종하면 살고 하나님을 거역하면 망한다는 동양의 전통교리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하거늘 어찌 유대인에게만 한한 구원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 조상 때부터 우리에게 전래해 내려오는 유일한 생명길이다. 그렇다면 왜 유대나라 선지자는 정통이고 동양의 선지는 이단이라고 몰아쳐야 할 것인가? 분명히 이방 선지자도 하나님을 증거했고 구원의 길을 증거했다. 많은 선지자들 중에도 공자나 석가같은 이들은 대선지였다. — ( 중략 ) — 오늘날까지 25백년이 지나오는 동안 계속되고 있는 공자의 교훈이나 석가의 교훈을 어찌 이단이라고 단정할 수가 있겠는가? 엄연히 공자는 하나님의 교훈 공의를 들고 나와서 도덕율을 선포하는 교훈은 율법역할을 했고 석가는 자비를 들고 나와서 내세를 증거하는 교훈은 예언역할을 했다. 이스라엘에서 모세를 통한 율법이 선포되었고 엘리야를 비롯한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이 선포된 것은 곧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가 선포되는 경륜과정에서 씌여진 역사였다. 유대의 모세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경륜에 씌여진 인물들이라면 동양의 공자나 석가를 비롯한 선지자들도 하나님의 경륜에 씌여진 인물이 아니라고 할 이유는 없다. 그들도 분명히 인생을 그리스도에게까지 인도한 몽학선생 역할을 충분히 시행한 이들이다( 3:24).”([2000년 전통교리 이상 있다], pp.119-120)


이 밖에도 하나님께서 이 지구를 지으실 때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많이 있었다“([2000년 전통교리 이상 있다], p.2

3) 함이라든지, 영계를 낙원과 음부와 영옥 등 셋으로 나눠 영옥에 있는 영들은 아직 낙원이나 음부로 가기 전 영들로서 세상에 남아있는 영들로서 심판을 받기 이전의 미결수이므로 음부로 갈 영도 있고 선령(善靈)도 있어 구원에 이르기도 한다(같은 책, p.269)고 한다.


4. 연구결론

나운몽 씨의 주장은 성경해석이 편향적 해석으로 대단히 주관적이요 비역사적이며 한계를 넘은 알레고리칼(Allegorical), 성경이 가르치고 뜻하는 바를 떠나 있어, 우리 신앙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내용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그의 가르침은 우리가 경계해야할 혼합주의적 요소가 강하다.


5. 참고자료

나운몽. [2천년 전통교리에 이상 있다]
나운몽. [성경난제 백문백답]
나운몽. [성경정통교리강론 창조원론편]
나운몽. [성경정통교리강론 개조원론편]
나운몽. [성경정통교리강론 귀일원론편]
나운몽. [기독교도리학해설본]
나운몽. [십자가의 도]
나운몽. [동방의 한나라 합권]
나운몽. [내개 체험한 성령과 그 운동 반세기]

 


<복음신문>에 대한 조사 보고서 (예장통합)


. 조사 경위


서울동노회 소속 경동제일교회에서 우리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했던 전 고 나운몽 씨가 발행인으로, 현재 고 나운몽 씨의 아들 나서영 씨가 사장을 발행하고 있는 복음신문에 대한 질의입니다. 총회 이단 규정 결의 내용에서는 나운몽 씨에 대한 것은 확인되는데 복음신문에 대한 결의 내용을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복음신문에 대한 이단 사이비성이 있는 지에 대하여 질의합니다. 혹 이단 사이비성이 있다면 교회 차원에서 기고, 광고 기타 협력에 있어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질의합니다.” 라는 (2012. 3. 17)질의로 인하여 연구하게 되었다.


. 조사 보고


나운몽 씨는 본 교단 1955 40회 총회시 장로교 신경에 맞지 않음이라고 규정하였고, 1956 41회 총회시 강단에 세우는 것 엄금, 집회에 교인 참석금지라고 규정하였고, 1998 83회 총회시 변화 없음( 40, 41회 총회 결의대로 지킬 것)’이라고 하여 이단으로 규정된 자이다.

그런데 복음 신문은 (주소 : 서울시 중랑구 망우3 531-35, 사장 : 나서영, 편집국장 : 신동명) 고 나운몽 씨가 창시한 언론으로 지금은 그 자녀들에 의하여 운영되는 회사로 조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본 교단의 고 나운몽 씨를 이단으로 규정한 후에 나운몽 씨의 잘못된 이단 사상에 대하여 반성하거나 회개하는 모습을 전혀 찾을 수 없다.


둘째, 최근까지도 나운몽 씨의 책을 선전 보급하고 있는 점은 이 언론이 나운몽 씨의 잘못된 이단 사상을 간접적으로 옹호하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증거 : 복음신문의 <나운몽 목사 저서 절찬 판매중>이란 광고(2011 8 14 2445, 2011 8 21 2446, 2011 8 28 2447, 2011 12 11 2459, 2012 1 15 2464, 2012 1 22 2465, 2012 3 4 2470, 2012 5 6 2478, 2012 5 13 2479호 등)

기타 나운몽 관련 기사 및 광고: 2446(2011. 8. 21) 한민족 유월절 대성회 성령의 불길 뜨겁게 타올라라는 기사, 동호의 “2011년도 한민족 유월절 대성회 특집 화보 기사가 2465(2012. 1. 22) “2012년도 용문산 기도원(새별산 기도원) (나서영 목사)”의 광고 등이 있다.


셋째, 본 교단은 물로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이단자들의 광고를 하고 있다.

증거:

1) 2010 10 3일자 2406, 본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이재록이 상임총재로 되어 있는 <사단법인 기독교세계부흥선교협의회> 광고.

2) 2010 10 17일자 2408,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라는 이재록 씨의 책 광고.

3) 2010 10 17일자 2408, 이단자 김기동 소속 <기독교 베뢰아 교회연합 제 23대 총회의장단> 광고.

4) 2011 12 11일자 2459, 류광수 관련 <대한예수교장로회 렘너트신학교> (2012학년도 렘넌트신학교 신입생 모집) 광고.

5) 2012 1 15 2464, 이재록이 상임 총재로 있는 <민족복음화와 세계 선교에 매진하는 한 해가 되도록 노력합시다>라는 광고.

6) 2012 5 6 2478, 김기동 관련 <기독교베뢰아교회연합 제28차 목회자성장대회> 광고 등


. 조사 결론

복음신문은 본 교단에서 이단시 결의한 나운몽 씨에 대하여 우호적인 광고와 기사가 계속되고 있고, 지금까지 나운몽 씨의 이단 사상에 대한 어떤 반성도 회개도 없다는 점과 나아가 다른 이단들을 홍보하는 점 등을 볼 때, 이단을 옹호하는 언론으로 보아야 하며, 따라서 본 교단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이 이 신문에 글을 게재하거나 광고를 내거나 구독을 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나운몽 씨는 용문산기도원(龍門山祈禱院)의 설립자이다. 애향숙(愛鄕熟)도 설립했는데 이는 한국 개신교 기도원 운동의 모체가 된 것이기도 하다. 나운몽 씨는 장로교회로부터 1955년과 1956년에 잇따라 강단금지와 집회참석금지 결정을 받았다.

1956 4 17일부터 22일까지 서울신학대학 강당에서 회집된 성결교의 제 11회 총회, 그리고 1962 10 16일 감리교 총리원에서 모인 연합감리사회의 부흥사를 초빙할 시는 사전에 그 지방 감리사의 승인을 받아야 할 것이며 나운몽, 백시응 씨 등 초빙하지 못하도록 하되 이를 위반하는 교역자는 심사에 붙이도록 가결되기도 했다. 또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서울노회는 1967 5 9일 용문산기도원운동을 불법집단으로 단정했다. 1968 7 22일 고신 경남노회의 제 38회 제 3차 임시노회도 규제하는 결의를 하였다.

 


나운몽 (현대종교)


1. 2천년 전통교리에 이상있다


나운몽 씨는“2천년 전통교리에 이상있다.”고 외치며 나섰다. 그는 2천년 전통교리에 이상있다는 그의 저서 머리말에서 잘못된 것을 알고도 경고를 못한다면 이는 벙어리 개라고 말하면서 2천년 전통권위를 향한 도전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나는 전통교리에 항거도 아니요, 도전도 아니다. 개혁도 혁명도 아니니 오직 성경 바로 알고 바로 믿자는 기치를 들었을 뿐이다. 즉 진리의 파수꾼 역할을 충실히 해 보자는 외침이라고 했다. 그는 성경을 바탕으로 한 근본교리의 정통에서 탈선한 유전교리의 전통을 이어 내려오면서 성도들의 신앙을 오도하고 있는 사례들을 많이 발견하게 되어 성경을 바로 알고 바로 믿자고 반세기를 외치며 증거해 왔다고 말하면서 신앙을 오도한 범인은 전통교리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성경과 교리를 달리 보고 있다.


“2천년 전통교리에 오류가 있다는 자기 주장 앞에 성경을 믿어야 하느냐? 교리를 믿어야 하느냐? 두 갈래 길 중에서 한길을 택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면서 교리라면 성경중심인고로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구교의 주장이지만 개신교에서는 성경 중심이기는 하나 인간 의견이 가미되어 계통을 잡았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주장해 왔다하고 구교에서도 신교에서도 이처럼 성경보다 오히려 유전돼 내려오는 전통교리를 더 신봉하는 폐단이 오늘의 교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교리란 역사적 사실에 의거하여 점차 명백화하여 역대교회의 계속적인 연구와 장구한 투쟁에서 계속 발전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 전통을 무시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하면서도행여나 성경을 무시하고 교리만을 주장하다가는 오늘의 바리새인이 될터이니 교리가 성경과 다르다면 즉시 교리를 시정하거나 폐지해야 마땅치 않겠느냐는 평신도의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고 나 씨는 주장하나 그의 주장은 목회자도 아니요, 신학자들도 아니요, 하필이면 평신도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고,“ 행여나”, “만일이라는 가정적인 전제하에 주관적 성서해석으로 자기 주장을 펴면서 오늘의 바리새인”, “비 성서적”, “이상있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문제가 있다.


나운몽 씨가 2천년 전통교리에 이상있다는 논문에서 지적했다는 내용은 창조 근본부터 현행 교리와는 다르게 설명이 되었다(17:3-5)”는 것인데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이 지구를 지으실 때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 하였느니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시다(38:7)”는 부분이다.

이 말씀에 의하면 우리가 이제까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분 뿐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이 지구를 지으시기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류시조 아담이 생겨나기 전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많이 있었다는 말이다. 나 씨는 욥기 38 7절만을 근거로 삼는 것이 아니고 창세기 126절 말씀을 들고 있다. 하늘에는 독생자 외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많이 있었다. 지구를 지을 때에도 많이 나와서 기뻐했거니와 지구상에 사람을 지을 때에도 하나님과 같이 의논한바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126)한 것은 다른 아무도 없이 성부와 성자, 성신 3위가 마주 앉아 의논한 것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이 있으나 이것은 하나님을 3 3체로 오인하는 이설이다고 주장하고 동시에 성경과 달라진 것이 없는 교리라야 정통교리다. 유전된 전통교리가 성경과 다르다고 강변한다. (나운몽 저 2천년 전통교리에 이상있다. 성경 바로알고 바로믿기 운동본부 1993 p.1324)

전통교리에 도전하는 그의 책 내용 목차를 보면, ‘지구창조 이전 창조도 있어’,‘ 죽은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됐다’, ‘영옥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 ‘유전된 전통교리 사람 죽인다’, ‘천상에 있는 피조천국 삼층천은 세 째의 한의 울이다는 문제성 어린 제목도 보인다


2. 나장로가 이단이면

나운몽 씨의 이단시비에 얽힌 이야기는 한국에도 피가 있다.는 그의 저서에서 주로 다루고 있다. 이 책은 1960 2 6일 용문산 대강당에서 했던 진리는 결박되지 않는다는 나 씨의 설교를 1963 4 7 나운몽 장로 구국 설교집 5집에 게재하여 출판한 것인데 예장 고신측 경남노회에서는 1968 7 22일 제 88회 제 3차 임시노회(노회장: 권성문, 서기: 이기진)를 열고 이 설교를 근거로 한 6가지 이유를 들어 나운몽 장로를 이단으로 규정했다. 나 씨는 이같은 결정에 대해 위의 저서에 6개 항목을 전제하고 조목 조목 반박했는데 핵심적 내용은 아래와 같다


공자와 석가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동방의 선지자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셨다는 주장이라는데 대하여

(항변) 전서 66권의 내용을 집약한 그 대의를 표현한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진리가 아니겠는가? 이방인 발람도 선지자라고 했는데, 공지나 석가를 이방선지자라고 했다고 해서 비성서적일 수 없다. 남보다 먼저 알고 만인의 지도자 노릇을 한 것만은 사실이니 어찌 선지자가 아니뎄는가? 그 다음 그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나타나셨다는 것은 순천자는 존하고, 역천자는 망한다고 하였으니, 이 말은 성경전서 66권의 내용을 집약한 그 대의를 표현한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진리가 아니겠는가?

기독교의 부활체나 불교의 불타, 유교의 신선 등이 표현한 어휘가 다를뿐 구원받은 자들의 동의어라고 함이라는데 대하여,

(항변) 인생의 사후에 다시 부활한 신령체를 영생체라고 할 수도 있고 부활체라고 할 수도 있다면 같은 뜻의 부활체의 대명사를 불타라고 했거나 신선이라고 했거나 그 어휘가 다르다 할지라도 그 뜻에는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다. 그것이 동의어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이 도리어 맞지 않는 궤변이다. 영생할 수 있는 신령체로 부활되었다면 그거야 물론 영원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하지만 부활체가 있다는 주장을 했다고 해서 그가 부활할 수 있는 사람이라든지, 구원을 얻을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신령체를 주장했다고 해서 그 주장을 구원이라고 단정했다는 것은 구원의 경로를 부정하는 불신행위이다. * 그러나 표현한 어휘가 구원받을 자들의 동의어라 했다면 문제는 전혀 다르다.

복음이 전파되기 전 시대인 불교와 유교를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있다고 함이라고 한데 대하여,

(항변) 불교나 유교를 통해서 구원받을 사람이 있다고 한 말은 설교문 가운데 한마디도 없는 말이다. 도리어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했다

유교, 불교, 기독교 복음 안에서 조화되는 것이 천국이라 함에 대하여

(항변) 설교문에서는 유교, 불교가…”라고 종단을 거론하지 않았다. 설교문 138면 하단에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 안에도 우주가 담겨져 있는데, , 불이 그 속에 없을 리가 있겠는가?”, “유는 공의만으로 구원이 아니고, 불이라는 사랑만으로 구원이 아니다라고 전제하고 특이 유는 공의를 의미했고, 불은 자비를 의미했다고 주를 달아 놓았다. 즉 공의를 뜻한 유도, 사랑을 뜻한 불에도 혈육의 인간인 공지나 석가를 통하여 완성이 아니고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뜻이다.

진리는 형()에 있지않고 질()에 있으니 진리이면 유교나 불교나 기독교나 하나가 된다고 함에 대하여,

(항변) 무조건 유교나 불교니 기독교가 하나가 되었다고는 설교문에 기록하지 않았다. 설교문에는 진리는 유교나 불교나 기독교라 하는 외형에 결박되지 않는다. 진리는 형이 아니고, 질이기 때문에 동질이면 얼마든지 상합하고 상응한다.”라고 명기되어 있다. 이 말에는 구태여 해명할 필요조차 없다.

가말리엘 교법사의 말과 같이(5:34-39) 불교나 유교나 만일 하나님의 뜻에서 난 것이 아니면 공자와 석가의 죽음과 함께 없어 졌을 것이나 지금까지 유, 불교가 있음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에서 된 종교라고 수긍한다고 함이라고 한데 대하여,

(항변) 그러나 설교문 가운데 예장고려 측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유 불교를 하나님의 뜻에서 된 종교라고 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사람의 뜻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서 난 것임을 우리는 수긍하지 않을 수가 없다라고 한 설교문은 그같이 왜곡한 말이다. 그들의 교훈은 사망의 그늘 안에 있는 인생을 생명의 도까지 인도하는 몽학선생 역할을 했을 뿐이지 그들이 인류의 죄를 대속해주는 구세주는 되지 못했거늘 이를 어찌 종교라고 할 수 있겠는가(3:24). 즉 죽음에서 생명을 구출해 주는 생명의 도가 아닌 이상 종교일 수는 없다. 설령 십자가를 졌다 할지라도 구세주는 되지 못한다. 돌나무에 돌나무를 접붙인 이치와 같을 터니 말이다(11:17). 그는 부정모혈로 출생한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인간이 아니던가 하거늘 유 불교가 있음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에서 된 종교라고 수긍한다고 했을 리가 있겠는가? 하나님의 뜻안에서 선지자 역할을 했다고 수긍이 간다는 말이었다.

이상은 고신측 경남노회 결의문에 대한 나 씨의 항변이다. 그의 항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박윤선 박사도 나와 같은 말을 했는데 왜 박 박사는 정통이고 나는 이단이란 말인가?”라는 것이다. 그는 1966 1 16일자 복음신문 독자 투고난을 예로 들면서 항변하고 있다. 투고자는 고려 신학교 출신(본과 제 3회 졸업)으로 한부선 박사와 박윤선 박사의 문하에서 수업한 사람의 하나라고 한다.

박윤선 박사는 수업시간에 나 장로와 같은 강의를 했고 한부선 선교사 역시 경남 사천읍 정의동 교회 낯 예배 설교에서와 진주 봉래동 교회 집회설교에서도 나 장로와 같은 설교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 장로가 이단이라면 박윤선 박사도 한부선 선교사도 이단이라고 규정지어야 마땅하다고 투고자는 주장한다.


3. 성결교와는 삼위삼체설로


나 씨는 그의 저서 한국에도 피가 있다에서 “1976 11 6일자 기독신보에 당시 성결교회 총회장 이대준 목사가 11 1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보도된 내용은 삼위 삼체설은 나운몽씨가 주장’, ‘용문산은 이단이다라는 8단 제목을 첫머리에 잡아놓고 용문산 건전운동 운운 한적 없다라는 2단 컷을 지르고 기성 총회장 이대준 목사 기자회견서 밝혀라는 부제를 달고 이대준목사의 사진까지 곁들여 놓았다는 것이다.

그 내용인즉 기독교 성결교단은 용문산의 나운몽 씨에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하고 사이비 이단종파 척결에 앞장설 것을 회견을 통해 밝혔다는 것으로 시작하여 이대준 총회장과 성지순례 중 나운몽 씨와 논쟁한 삼위일체설에 대해 나운몽 씨는 아담 이전에 하나님의 아들들과 하나님을 합하여 우리들이라고 하였고 성부, 성자, 성신 삼위일체가 아니라 삼위 삼체라고 밤이 새도록 역설하였다는 이상 삼위일체설을 부정하고 삼위삼체설을 주장하는 나 씨에 대하여 더 이상 이단에 대한 증거가 필요치 않고 삼위 체설만 보더라도 이단으로 규정된다라고 결론을 맺은 장문의 기사였다는 것이다. 이 신문을 읽고 난 나 씨는 즉시 전주 이대준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삼위 삼체설은 당신이 주장해 놓고 왜 나더러 그런 말을 했다고 했느냐고 항의했더니 그 기사는 기자들의 장난이지 자기로서는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는 답변 이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 씨는 사실로 믿어지지 않는 내용을 폭로하고 있다. 나 씨가 삼위 삼체설은 내가 한말이 아니고 이대준 목사가 한 말이라고 복음신보 지상에 밝히겠다고 언명했더니 급기야 이대준 목사가 서둘러 서울로 올라와 복음신보 사장실에서 조용히 만났는데 이목사 자기는 용문산 운동에 대해서 건전이니 이단이니에 대한 질문을 받지도 않았고 답을 한일도 없고 더구나 삼위일체설은 나 장로님이 주장했다는 말을 한 적이 없노라고 강경히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 장로님은 이보다도 더한 강풍 속에서도 이날까지 끄덕 없이 지나오고 있지만 나는 이런 바람을 한번만 맞아도 단번에 쓰러질 처지이니 나의 총회장 재임기간만 이라도 참아달라는 내용의 간청이었다. 만일에 기성 총회장 이대준 목사가 삼위삼체설을 주장했다면 당장에 총회장도, 목사직 모두 끝장난다는 것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나 장로는 그 간청을 받아들여 아무런 반항도 없이 삼위삼체설을 주장하는 이단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의 총회장 재직기간까지 참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이런 주장은 그다음 이야기에서 아리송해진다. 한국에도 피가 있다 126페이지에 나오는 대화내용이다. 이 목사는 창세기 1 26절의 우리라는 말은 성부, 성자, 성신의 삼위께서 의논했기 때문에 우리라고 했다는 것인데 나장로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설명) 하늘나라에는 하나님 혼자 계신 것도 아니고 아담을 짓기 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많이 있어 지구를 지으실 때에도 많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와서 기뻐하며 소리를 했다는 욥기 38:4-7 말씀을 인용해서 설명을 했다….. 하늘에는 장자들의 총회가 있는 것으로 보아도 하늘에는 장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장자가 많다면 그 장자들이 주인 노릇하는 하늘도 많다는 논리가 된다(2:23, 10:4, 9:6)


여기서 나 장로는 이 목사의 설명을 자기 혼자 삼위삼체설로 보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삼위일체설을 나무로 설명했다고 한다. 뿌리, 줄기, 진액 이 세 부분이 연결되어 한 나무인 것처럼 생명의 근원이신 성부가 생명의 뿌리라면 성자는 생명의 줄기요, 성신은 생명의 진액이시다라고 반론을 폈다는 것이다.

나 씨는 기독신보의 이대준 목사의 회견 보도가 나온 배경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설명) 나 장로와 같이 다녔다는 것만으로 이단성이 있다는 증거가 충분하다느니, 이 총회장은 물러나야 한다느니 징계를 해야 한다, 사과를 해야 한다등의 구구한 구설이 나돌았다. 사실상 이대준목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화살이었다….. 결국에는 나장로가 삼위삼체설을 주장한 것이지 내가 한 말이 아니다라는 엄청나게 잘못된 오보가 나오기까지 된 것이다.

오보는 오보이겠으나 생각해 보건대 기자는 나운몽 씨가 삼위삼체설을 주장했다고 기사를 쓴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이 목사가 전통적 성서해석에 따라 말을 했는데 이를 판단해서 말한 사람은 나운몽씨이기 때문이다.


결론 : 나운몽 씨 스스로 잘못된 것을 알고도 경고를 못한다면 이는 벙어리 개라고 했으니 몇가지 지적하므로 결론을 삼고자 한다.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의 김찬국 교수는현대 와 신학 6호에서 나운몽 장로의 용문산 기도원의 운동과 그의 신앙이론에서 이단이라고 할만한 큰 교리문제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기도원 운동은 사이비 신앙집단도 아님을 발견하였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는 구약학 전문신학자인데 4문서설에 입각한 모세 5경 해석에서 크게 이탈한 나 씨의 창세기 해석을 덮고 지나갔다. 그리고 욥기 해석에서 욥기를 문학작품으로 보는 해석에서 동떨어진 나씨의 해석을 인정하고 넘어간 셈이다. 결국 이런 해석이 베뢰아 귀신론에서 말하는 이중 아담론을 비롯해서 용문산을 출입하며 은혜를 받았던 많은 이단· 사이비 교주들도 나 씨와 똑같은 주장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행여나 성경을 무시하고 교리만을 주장하다가는 오늘의 바리새인이 될 터이니 교리와 성경이 다르다면 즉시 교리를 시정하거나 폐지해야 마땅하지 않겠느냐는 평신도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고 나 씨는 주장하나 목회자도 아니요, 신학자들도 아니요, 하필이면 평신도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고 행여나”, “만일이라는 가정적인 전제하에 자기식 성서해석으로 전통교리에 도전해 오늘의 바리새인이니 비성서적이니 이상있다라고 판단하고 있는데 문제가 내재돼 있다. 나 씨가 성경을 바탕으로 한 교리가 정통교리라고 주장하는데, 그가 바탕으로 삼아야할 성경에 대한 해석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성경을 빙자한 이론(異論)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모세 5경의 4문서설을 외면한 채 창세기 1 26절과 욥기 1 6, 2 1절과 38 47절을 연결한 성서 해석에서 아담을 짓기 이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많이 있어 많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와서 기뻐하며 소리를 했고 지구를 지을 때 그 아들들과 함께 의논했다 는 주장을 하고 있는 점이다.

나씨가 말한 신앙을 오도한 범인은 전통교리가 아니라 잘못된 구약 성서신학을 바탕으로 한 나 씨의 성경적 정통교리라는 사실이다.

이단과 사이비종교가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 내용들을 비교해보자.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에는 비 성경적이라는 것이 하나도 없다. 전부는 아니지만 나 씨의 주장도 그와 같은 범주에 속한다 하겠다.

 


고신교단의 보고서


예장고신의 최근 연구 발표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유사종교연구> 5, 1993 pp.148-150).

그의 설교 원문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흰옷을 입어 결백을 자랑했고, 예의 범절이 고결하여 높고 어진 마음을 지녔고, 의를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던 우리의 모든 조상들과 순천자는 존하고 역천자는 망이라는 높은 진리를 설명한 공자도, 자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낸 석가도, 정의의 덕을 가르치다가 닭 한 마리의 빚까지 청산해 버리고 간 소크라테스도 영원한 지옥나라로 몰아 넣어버리는 신학사상에서 우리는 그대로 만족하고 있을 것인가? 고향 하란을 떠나 아브라함이 낯선 가나안 땅을 유리하면서, 이르는 곳 상수리나무 우거진 산에 올라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한 사실이나 참나무가 우거진 한반도의 산 위에서 단군 시조가 하나님께 제사를 올렸다는 사실과는 아무런 간격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이 산은 강화도 마니산을 가르침)고 하였다(<구국설교집> 5 pp.134~139).


유감스러운 것은, 이렇게 나운몽이 이단인 것은 성경적으로 확실한 데도 불구하고 본 고신 교단 외에는 총회가 나운몽을 이단으로 규정한 교단이 한 교단도 없는 것이다. 이단성 논란과 정치성이 있다는 것과 강단에 서는 것을 금하는 등의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본 고신 교단에서 용문산기도원 나운몽 집단이 이단인 것을 단호하게 총회 결의로 규정하였다(경남노회 제 38차 임시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