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운몽의 <2천년 전통교리 이상있다> 책의 비판
평이협 이인규
나운몽씨가 쓴 “2천년 전통교리 이상있다”라는 책이 있다. 필자가 갖고 있는 책은 1993년 2월27일에 발간한 초판이다. 저자는 나운몽씨이고 발행처는 복음신문출판국이며, 발행인은 나일영씨이다. 필자는 나운몽씨가 쓴 여러권의 책들을 갖고 있지만, 가장 먼저 이 책을 살펴본다면 기독교 정통교리를 비판하는 저자 나운몽씨의 사상과 함께 이 책의 발행처인 복음신문의 정체성이 가장 명확하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제목부터 거부감이 나타나는데, 2천년 전통교리가 곧 기독교의 정통신학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 책을 읽은 결론을 말하자면, 나운몽씨는 2천년 전통교리도 잘 모르고 있으며, 그 이상이 있다고 하는 비판을 볼 때에는 성경적, 신학적 무지로부터 시작된 것이며, 혼자서 추측하고 상상하여 자의적으로 성경을 해석하였을 뿐이다.
그 책 표지 위쪽에는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성경박사 나운몽목사 저”라고 적혀있으며, “발행, 성경바로알고 바로믿기 운동본부”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책 뒤에는 그 운동본부 산하 이사회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 1조에는 나운몽을 포함하여 김선혜, 나서영, 나혜영, 나도영, 나일영, 나이영의 유가족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2000년 전통교리에 이상이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여 그 책을 발행한 곳이 ‘성경바로알고 바로믿는 운동본부’라는 것을 말하여 준다.
우선 목차를 살펴보자. 목차를 통하여서도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 대체적으로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서론 “2천년 전통교리 이상있다”
– 성경으론 정통, 교리로는 이단?
– 하나님 안에 있는 “한”의 세계
– 지구 창조 이전 창조도 있어
– 3위3체 의논설은 이설이다.
– 선악과는 왜 만드셨을까?
– “사람없는 별유천지 발견했다”
– 홍수심판 직전은 네피림 시대
– 사선 넘어 영혼세계 있어
– 죽은 자들에게 복음전파 됐다.
– 우리 조상은 몽땅 지옥에 갔을까?
– 음부에선 구원 받을 수 없고 영옥에서 구원 받을 수 있다.
– 사무엘의 영혼 증거하고 있다.
– 현세 발달이 천국 아니다
– 하늘 뜻이 이루어지는 지상천국
– 한민족 뿌리 성경서 찾았다
– 이스라엘 기업 한국으로 옮겨졌다.
– 동양선지자 이단이랄 수 없다.
– 바리새 성벽을 행한 기치 세워져
– 풍습에도 신앙역정 드러나
– 첫돌판은 왜 깨져야 하는가?
– 물심판 있듯이 불심판도 있어
– 모세는 왜 가나안에 못들어갔나?
– 유전된 전통교리 사람 죽인다
– 영혼 사냥꾼이 많아졌다
– 지금이 주강림 기롱하는 그때다
– 엘리야는 하늘 어디에 가 있나?
– 공중재림, 지상재림 따로 없다
– 환란후 안식 천년 왕국시대
– 신랑예수의 신부는 누가 되나?
– 그리스도 성도의 혼인잔치
– 에녹은 왜 죽임이 없었나?
– 사람은 왜 천국을 사모하나?
– 안식천년은 에덴 본향 찾은 시대
– 지상낙원에 어떤 사람이 사는가?
– 지상낙원 다음은 어떻게 되는가?
– 성경이 증거하는 천국을 보자
– 재정비 되어야할 천국개념
– 천상에 있는 피조천국
– 인류이상이 실현된 지상천국
– 삼층천은 셋째의 한의울
– 천국과 현세와의 관계
– 천국 가는 길은 어떤가?
– 붓을 거두며
필자는 나운몽씨의 여러 권의 책을 갖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 한권만으로 나운몽씨를 이단이라고 규정하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 책에 동조하여 발행한 운동본부도 친이단단체로 규정되어야만 할 것이다.
(1) 많은 하늘나라
➀ 많은 하늘 나라와 많은 하나님의 아들들
“하늘나라가 한 곳 밖에 없다고 알았던 우리의 교리는 하늘나라가 많다는 성경말씀이 용납되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은 독생자 한분뿐이라는 전통교리로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늘나라에 많다는 것도, 지구창조를 태초라고만 알고 있는 교리로서는 지구 창조 이전에 창조세계가 따로 있었다는 것도 용납 안될 성경말씀이다. 그러나 위에 증거된 성경말씀대로의 사실이 틀림없는 진실인데야 어떻게 하랴”((33-34쪽)
나운몽씨는 하늘나라가 많다고 하였는데, 원래 “하늘”(솨마임)이라는 히브리어 단어가 구약에서는 항상 복수명사로 사용되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단어가 천사들에게 사용된 적이 있으며, 간혹 이스라엘에게도 ‘하나님의 아들’ 혹은 ‘장자’라는 명칭이 사용된 적도 있는데, 나운몽씨가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은 그러한 뜻이 아니며, 매우 이상한 해석을 하고 있다. 심지어 예수님 외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많다는 주장도 하는데, 놀랍게도 나운몽씨가 말하는 이 하나님의 아들들은 우주인을 가르킨다.
더욱이 천국을 삼층천으로 이해하는 것도 나운몽씨의 자의적인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구약에서 “모든 하늘들의 하늘”이라는 개념은 매우 많은 하늘 중에 한 하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히브리어적인 문학적인 표현기법으로 보는데, 성경에는 이와 유사한 표현으로 ‘종들의 종‘, ‘왕 중의 왕‘, ‘노래 중의 노래‘, ‘거룩함 중의 거룩함‘등이 있다.
나운몽씨는 고후 12:2에서 바울이 셋째 하늘에 다녀왔다는 구절에서 추측을 한 것 같은데, 사도바울은 천국이 세 개라는 것이 아니라, ‘셋째하늘’이라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 ‘셋째하늘’에 대해서 히브리인들은 하늘을 상.중.하라는 개념을 갖고 있었다고 해석하는 견해도 있고 유대인들은 묵시문학에서 하늘이 일곱으로 나뉘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러한 견해에 동의하지 않으며, 엡4:10에서 바울이 표현하였던 “모든 하늘 위에”(표준새번역: 하늘의 가장 높은 데)와 같은 최상급적인 비교의 개념으로 해석한다.
어쨌든 나운몽씨와 같이 천국이 세 개라고 해석하는 사람은 없으며 천국을 3층건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더욱이 나운몽씨는 천국을 셋으로 해석하고 이것을 첫째 한울, 둘째 한울, 셋째 한울이라는 민속적인 명칭까지 자의적으로 붙여놓고, 각각의 한울에는 하나님의 아들, 즉 장자들이 많이 있었다고 주장을 한다(40쪽). 더욱이 히브리서 12:23의 ‘장자들의 총회’가 그것을 뜻한다고 해석을 추가하고 있다. 나운몽씨는 이것을 지구보다 먼저 창조된 한울이고, 아담보다 먼저 창조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
나운몽씨는 누가복음 15:7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라는 구절에서 하늘에 있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이 한울에 있는 장자라고 해석하며 한 마리 양이 아담이 살고 있는 지구촌 전체의 단위를 말한다고 주장한다.(40-41쪽)
그러나 본문은 실제로 하늘에 99명의 의인이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라, 죄인 1명의 가치를 강조하기 위한 표현적인 기법이다. 이러한 내용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하늘에 99명이 있다고 해석하는 나운몽씨의 해석은 이해할 수 없다. 더욱이 그것을 한울에 있는 장자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한 마리의 양을 지구 전체의 단위라고 해석하는 것은 더욱 있을 수 없는 주장이다.
“이렇게 모든 하늘을 창조하시고 그 하늘마다 하나님의 아들들을 지으시고 생육번성 하게하사 그 중에도 장자들의 총회가 있게 하여 피차 연락하며 살게 하셨다. 우리 지구도 그 같은 천국이었으며 타락하므로 하나님 아버지를 이탈하여 짐승들과 같은 위치에 떨어져 궁핍을 견디다 못해 다시 아버지 앞으로 찾아가게 된 것이다”(95쪽)
“천국이 한 곳이라고만 알고 있던 우리의 신앙교리로서는 얼른 이해 안되는 점도 있겠지만, 성경대로는 분명하게 하늘나라도 여러 곳이고 하나님의 아들들도 많다. 더구나 타락 안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는 천국은 하늘에 많이 있다는 것은 오늘의 과학자들이 증거하고 있다. 즉 은하수 사이를 떠돌고 다니는 대진운 속에는 식물의 녹색을 띄게 하는 클로로필 성분이 있는 것을 발견하므로 은하수 저편에도 지구 비슷한 천구가 있어 생명체들이 살고 있는 천체가 있다고 발표한 일이 있다”(96쪽)
➁ 지구에 에덴동산이 있다
또한 나운몽씨는 에덴동산이 지구상에 있다고 주장하며, 그의 책 50-51쪽에서 1940년대에 버어드라는 사람이 남극에 있는 지구 공동을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창세기 3장24절에서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라고 하나님이 감추어 놓으신 곳을 사람이 발견했다는 주장도 이해할 수 없지만, 계시록 22장7절에는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라고 기록하였는데, 그렇다면 사도바울이 올라갔던 고후12:4의 낙원은 땅속이었으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도성에 있었던 생명나무는 지구 땅속에 있으며,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는 남극 동공에 있는가?
(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계 22:1-2)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➂ 나운몽씨의 삼위일체 :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이 모든 말씀은 종합적으로 모두어 해석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는 말씀은 3위3체의 의론이 아니고 3위1체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들과 한 자리에서 의론한 것이다”(34쪽)
창세기 1장26절에서 “우리”는 정통신학에서는 삼위일체의 세 인격적 복수를 말한다고 가르친다. 정통신학은 나운몽씨의 주장과 같이 삼위삼체를 가르치지 않는다. 인격적 복수는 ‘삼위’를 말하는 것이며 ‘일체’는 인격(페르소나)이 아니라 본질(우시아)을 말하는 것이다. 나운몽씨는 정통삼위일체를 삼위삼체라는 잘못된 개념으로 알고 있으며, 또 ‘우리’를 “많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의적인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삼위일체에서 ‘삼위’라는 용어는 인격적인 복수로서 상호교류하고 상호구별되는 성부, 성자, 성령을 말한다. 또한 ‘일체’라는 용어는 한문이 잘못 번역되었는데, 몸(体)이 하나라는 의미가 아니며, 인격을 뜻하는 것도 아니며, 본질이 하나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나운몽씨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라는 구절에서 정통신학의 삼위일체를 삼위삼체라고 이해를 하고 있어서 정통교리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운몽씨는 인격적 복수를 ‘삼체’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더욱이 욥 39:7을 인용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많았기 때문에 창 1:26에서 ‘우리’가 의론하였다고 주장한다. 욥 39:7의 ‘하나님의 아들’은 천사를 말한다. 왜냐하면 욥1:6에는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거운데 왔는지라”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단도 타락한 천사라는 것은 벧후 1:6과 유 1:6을 보면 알 수 있다.
➃ 이중아담론과 네피림, 하나님의 아들들이 우주인이다?
나운몽씨는 지구역사를 창조 후 6천년으로 해석하는 세대주의적인 해석을 2000년 전통교리로 이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더욱이 그러한 해석을 비판하기 위하여 더욱 이상한 “타락후 6천년”이라는 주장을 세우고 있다. 나운몽씨는 소위 타락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소위 이중아담론과 유사한 주장을 하며, 아담이 타락한 연대를 BC 4246년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나운몽씨가 그동안 주장했던 여러 하늘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 즉 장자의 정체가 과연 무엇일까? 나운몽씨가 말한 하나님의 아들들은 놀랍게도 우주인을 뜻한다. 성락교회 김기동목사가 말하는 이중아담론은 아담 이전에 사람이 살았으며 그들을 네피림이라고 불렀다.
“더구나 그 때에는 타락한 지구촌이 아닌 모든 하늘의 하나님의 아들들(지금의 우리가 말하는 우주인)이 찾아와서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아 시집가고 장가가며 먹고 마시는 것으로 일을 삼아 부패일로에서 음남음녀로 들끓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령 형체가 타락한 인간의 육체와 합하는 고로 하나님의 신을 영원히 떠나게 하시고 육체가 되게 하셨다. 생령인이 육체인간으로 전략이 된고로 공간의 제한을 받아 하늘의 본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어 네피림이라고 불리우는 고대의 유명한 장부 용사들이 되었다.” (57-58쪽)
2) 음부에서는 구원을 받지 못하지만 영옥에서는 구원을 받을 기회가 있다?
나운몽씨는 성경에 좀 어려운 난제가 있으면 그것을 자의적으로 추측하고 임의적으로 해석하여, 자신의 해석 외에 다른 주장은 모두 틀렸다고 단정한다. 결국 자신의 해석과 다르다는 이유로 2천년 전통교리가 이상이 있다고 주장한다. 난해한 성경구절로 교리적인 해석을 하는 것이 그동안 이단들의 전용수법이었다. 벧전 3:21에 대해서 나운몽씨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주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육체는 죽었으나 그 영으로 살으셔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을 때에 노아 방주 예비할 동안 기회를 주었으나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을 상대로 전파하셨다. 그들이 이미 육체 심판은 받았으나 영의 심판은 안받았기 때문에 그 영으로는 구원받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전파하셨다고 했다.”(68쪽)
육체심판은 받았으나 영의 심판은 받지 않았다는 주장이 과연 무슨 뜻인가? 결국 나운몽씨는 음부와 영옥으로 구별하여 영옥에서는 다시 한번 구원의 기회가 있다는 카톨릭의 연옥과 같은 주장을 한다. 음부에서는 구원받을 수 없고 영옥에서는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천국의 영계는 낙원이요 지옥의 영계는 음부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도 영계가 있는데 그 영혼들은 자유가 없는 고로 옥에 있는 영들이라고 했다”(82쪽)
“그래서 성경에 이르기를 ‘죽은 사람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았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즉 죽은 사람들에게도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한번 더 주셨다는 것이다. 영혼만이라도 구원받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자비이시다. 천주교에서 주장하는 연옥과 영옥, 그 용어에 차이가 있다해도 이 세상 영계를 의미했다면 맹목 반대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음부나 지옥에 간 영혼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주장이라면 그것은 성경에 어긋나는 주장이기 때문에 반대할 수 밖에 없다.”(83쪽)
“그러므로 죄사함을 받지 못한 영혼들과 중생하지 못한 영혼들은 낙원으로 직행하지 못하고 세상에 속한 영계의 과정을 밟아서 비로소 하늘에 속한 영계인 낙원에 이르게 된다.”(208쪽)
나운몽씨는 카톨릭의 연옥을 영옥이라는 명칭으로 다르게 부르는 것이다.
“천주교에서 주장하는 ‘연옥’이 그 용어의 차이는 있다해도 바로 이 세상 영계를 의미한 것이라면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서는 안될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연옥이라고 한 것 같기는 하나 ‘옥에 있는 영들’이라고 했으니까 ‘영옥’이라 해야 성서적일 것이다”(267쪽)
나운몽씨는 이 문제에 대해서도 정통신학을 부정한다.
“우리 개신교에는 영옥과 음부를 동일시하고 있다. 영옥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성경귀절까지라도 관심없이 보아 넘기고 만다. 성경을 자세히 상고하면 영계가 3계로 구별되어 있다. 즉 낙원과 음부와 영옥으로 나뉘어져 있다. 낙원은 천국의 영계이고, 음부는 지옥의 영계이고, 영옥은 세상의 영계이다”(267-268쪽)
“영옥에 있는 영들은 아직 낙원이나 음부에 가기 전 영들로서 세상이 남아있는 영들이다. 그래서 심판을 받기 이전의 미결수들인 고로 음부로 갈 영도 있거니와 선령도 있어 구원에 이르기도 한다” (269쪽)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히브리서는 사람이 죽으면 심판이 있다고 말하며, 누가복음은 거지 나사로와 부자가 죽자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있었지만, 부자는 음부에 있었다고 말한다 .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눅 16:22-23)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3) 우리 조상들이 섬기던 신도 기독교와 같은 하나님이며, 동방은 한국이다?
나운몽씨는 우리의 조상들이 섬기던 무속적이고 전통적인 신도 동일한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조상들이 섬긴 그 하나님이 오늘의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틀림이 없다는 것을 맥박속 피가 증거하고 있다. 이스라엘 하나님을 의붓아비 섬기듯 의부하나님을 섬기듯 하는 오늘의 신앙자세를 시정해야 할 일이다.”(77쪽)
더욱이 한민족의 뿌리를 성경에서 찾았다고 주장하는데, 셈의 후손에 벨렉과 욕단이 있는데, 욕단의 후손이 한민족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도 결국 자의적인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그 중 한 지파가 만주를 거쳐 한반도에까지 해뜨는 곳을 찾아 와서 백두산 산정 천지가 있는 곳에서 동해에서 해 떠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기원전 2333년에 건국을 했다. 욕단의 후손이 동양인종 임이 성경상으로 인증이 되고 있다. 욕단이 동방으로 사라지기는 기원전 2489년 즉 BC 2500년경 이후였다.”(106쪽)
“이제 성경 속 진실에서 민족의 뿌리를 찾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사랑하시고 말세에 택한 민족으로 구별하셨기 때문이다. 성경상 계보대로 우리 민족은 아담의 후손으로 둘째 아벨인 셋의 계통 노아의 아들 셈의 증손자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의 후손이다”(107쪽)
“그런고로 육신 예수는 형 벨렉계에서 출생하셨다가 벨렉계인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신령의 그리스도는 동생 욕단계의 동양사람들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다. 지금도 벨렉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아랍권 내에서는 그리스도가 배척을 받고 있다. 욕단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동양권 내에서는 크게 환영을 받고 있다. 그레서 그리스도의 열매 맺는 백성은 동방에 있음이 확실하다.”(108쪽)
이러한 주장은 혼합주의이다. 특히 많은 이단들이 이사야서를 인용하여 ‘동방’이 한국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러한 주장을 나운몽씨도 역시 113쪽에서 사41:2, 사46:11등을 인용하여 말한다.
4) 공자와 석가는 선지자이다.
분명히 나운몽씨는 공자와 석가를 선지지라고 했고 몽학선생이라고 했다. 이것에 대해서 그런 뜻이 아니라는 변명을 하고 있는데, 나운몽씨는 동양의 공자와 석가를 이스라엘의 모세와 엘리야와 비교하였으며, 선지자이며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고 말하였다. 나운몽씨가 주장하는 것을 글자 하나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기록한다.
“엄연히 공자는 하나님의 교훈 공의를 들고 나와서 도덕율을 선포하는 교훈은 율법역할을 했고, 석가는 자비를 들고 나와서 내세를 증거하는 교훈은 예언역할을 했다. 이스라엘에서 모세를 통한 율법이 선포되었고, 엘리야를 비롯한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이 선포된 것은 곧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가 선포되는 경륜과정에 씌여진 역사였다. 유대의 모세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경륜에 씌어진 인물이라면 동양의 공자나 석가를 비롯한 선지자들도 하나님의 경륜에 씌여진 인물이 아니라고 할 이유는 없다. 그들도 분명히 인생을 그리스도에게까지 인도한 몽학선생 역할을 충분히 시행한 이들이다”(120쪽)
과연 공자와 석가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선지자였으며, 그들이 사람들을 예수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였는가?
5) 전통교리가 유전이고 전통교리를 믿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
나운몽씨는 122-126쪽에서 물세례를 받고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과장하고 왜곡시켜서, 전통교리대로 믿으면 거듭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떤 정통신학에서도 물세례를 받음으로 거듭났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너무나도 당연히 정통신학에서는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운몽씨는 정통신학에서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을 왜곡시켜서 물세례만 받으면 성령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것처럼 바꾸어놓고, 정통신학적인 구원관을 성경과 다른 가르침이며 유전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정통신학의 구원관은 ‘오직 믿음’과, ‘오직 은혜’이었으며, ‘오직 기록된 성경’이라고 가르치며, 이것이 종교개혁자들의 슬로건이었다.
“유전대로 전래해 내려오는 전통교리로서는 너무도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에도 큰 지장을 주고 있다. 천국 문을 닫고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는 주님의 말씀대로이다”(126쪽)
전통적인 기독교의 교리가 성경적이 아니라 유전이며,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주장이 과연 신학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주장인가? 더욱이 나운몽씨는 151쪽에서 “유전된 전통교리 사람 죽인다”라는 제목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정통교리는 숨어있다”고 주장하며, 157쪽에서는 “유전된 전통교리 거짓예언 자료 제공”이라고 하고, 163쪽에서는 “지조잃은 음녀 교권 참혹하게 진멸될 터”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소수면 이단이고 다수면 정통”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운몽씨는 168쪽에서 정통교회를 음녀라고 여러번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책을 쓴 나운몽씨도 문제이지만, 그 책을 발간한 단체도 문제가 될 것이며, 그 사상에 동의한 같은 단체의 사람들도 모두 문제가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6) 종말론
게다가 나운몽씨는 정통신학적인 종말론을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을 주장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 나운몽은 175쪽에서 “탈선된 전통교리가 탈선신앙으로 유도해”라고 주장하며, 세대주의 종말론을 비판하고 있는데, 그것을 정통교회의 종말론으로 잘못 알고 있다. 이것은 나운몽씨가 정통신학에 대해서 전혀 지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통신학적인 종말론은 당연히 시한부종말론도 아니고,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의 두 재림을 주장하는 세대주의적 종말론과 다르다.
정통신학적인 종말론은 무천년주의와 후천년주의, 역사적 전천년론과 세대주의 전천년론이 있는데 현재 대부분의 장로교와 감리교는 무천년론을 주장하며, 혹간은 역사적 전천년론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세대주의 종말론을 주장하지 않으며, 특히 세대주의적 종말론에 대해서는 비판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정통신학에서는 다양한 천년왕국론을 인정하며 서로 다른 관점을 이단이라고 규정하지는 않는다.
“이는 곧 창조 6일 후에 제7일 안식기간이 있었던 같이 아담이 타락한 후 개조 6천년이 지나면 제 7천년 기간이 안식 천년 기간이 된다는 말이다.”(184쪽)
나운몽의 천년왕국에 대한 종말론이야말로 변질된 세대주의 종말론이다. 하루를 천년으로 계산하는 자체가 세대주의적인 해석이며, 그런 주장은 구약 4000년과 신약 2000년이 지나면, 문자적인 2000년에 재림이 와야만 하기 때문이다.
“즉 차례대로 본다면 예수님 부활하신 직후에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인 그들이 첫 부활에 속한 자들이고, 그 다음 차례로는 주님께서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때에 함께 오게 되는 부활인들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첫부활에 참여한 자들’이라고 했다. 그 다음으로는 지상에서 천년낙원시대가 지나고 그 말기에 사망왕권의 최후 발악으로 마지막 환란이 있게 된다. ”
나운몽씨의 종말론은 황당한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부활이란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을 말하는데, 과연 마 27장 52-53절의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에 무덤에서 나왔던 사람들이 지금까지 2000년 동안 살아있는가?
(마 27:52-53)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게다가 나운몽씨는 219-223쪽에서 지상낙원에서 부활인과 변화인과 생육인이 문자적으로 천년동안 살게 되며, 낙원이 3층으로 구분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225- 234쪽에서 지상낙원 천년 후에 백보좌 심판이 있게 되며 심판환란이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정리하자면 나운몽씨가 말하는 종말론은 아무도 인정할 수 없는 자의적인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7) 그리스도와의 연합
또한 성도들이 어린양의 신부가 된다는 것에 대해서도 나운몽씨는 이상한 해석을 하고 있다.
“또한 1부다처주의 혼인잔치를 하는 것처럼 신부는 많은 성도들이고, 신랑은 예수 한분 뿐이니 더더욱 이상야릇한 혼인잔치가 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이치에도 맞지 않는 전통권위를 내세우는 고집은 과감히 무너뜨리고, 성경을 바로 알고 바로 믿는 길을 택해야 할 것이다”(189쪽)
나운몽씨는 어린양과 혼인잔치를 하는 것에 대해서 문자적인 해석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혼인잔치는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을 비유적이며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일부다처로 해석하는 사람은 아마 나운몽씨 외에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정통신학에서 일부다처의 혼인잔치를 주장한다는 견해에는 할 말이 없어진다.
정통신학에서 ‘신부’라는 용어는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적 개념으로 해석한다. 어차피 상징적인 표현이므로 일부다처에 대한 문자적 오류를 언급할 필요가 없다. 성경에서 어린양의 신부는 무엇을 말할까?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남편’으로, 교회를 ‘아내’로 비유하여,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비유하였다.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1)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성도들을 처녀로, 남편을 그리스도라고 비유한 적이 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11:2)
특히 남편과 아내에 대한 비유는 신약에서만 표현된 내용이 아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을 남편, 이스라엘을 신부로 비유하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사54:5)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사62:5)
성경은 구약과 신약을 막론하고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 즉 에클레시아(교회)가 곧 ‘신부’로 표현한 것이며, 그래서 성경은 변절자나 배교자를 간음으로 비유하기도 한다(렘3:1-2, 호1:2). 성경은 이스라엘을 아이를 낳지 못하고 가정을 잃어버린 비참한 여자로 비유하기도 하며, 남편되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다시 영화롭게 만들어준다는 비유도 표현한다(사54:1-3, 겔16:8-14).
예수를 어린양으로, 성도를 신부로 상징하는 것은 성도와 그리스도의 연합을 상징하는 것이며, 그것을 실제 혼인으로 생각하여 일부다처에 대한 도덕성과 윤리성을 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1) in (2) with (3) syn 의 의미로서 포도나무의 뿌리와 가지의 관계같은 “믿음 안에서의 유기체적인 연합”을 뜻하며, 이것이 정통신학적인 연합의 개념이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라”(고후 13:5).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엡 3:17).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갈 3:26)
나운몽씨의 주장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정통신학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정통신학은 유전이고 음녀이며, 구원이 없다는 욕설에 가까운 비난을 하면서 자신의 주장만이 진리인 것으로 말하고 있고, 그러한 배타적인 주장이야말로 이해할 수 없는 잘못된 내용에 지나지 않는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4).
8) 천국관
나운몽씨는 이사야 34:16을 인용하여 모두가 짝이 있으므로 천국도 짝이 있으므로,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사야 본문은 타락하고 범죄한 에돔땅에 대한 심판으로 사람이 살 수 없게 되고 부정한 짐승들만이 짝을 짓고 살게 된다는 뜻으로서, 나운몽씨의 주장과 같이 상대계의 짝에 대한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살고 있는 지구처럼 형성된 원상세계를 천국이라고 말하지 않으며(248쪽), 이러한 주장은 나운몽씨 자신의 공상과학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 나운몽씨는 ‘모든 하늘’에 대해서, 죽어서 가는 천국과 천상에 있는 천국, 천사들의 영체세계가 있다고 주장하며, 게다가 영혼도 형상이 있다고 말한다(252쪽)
나운몽씨는 인류의 과학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지상천국이 건설된다고 주장하는데(256쪽), 인간방법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므로 천국이 건설된다고 주장하며, 인간의 체질이 변하게 되는데, 그런 시대가 30년 이후 어느 시기에 성취된다고 주장한다. 그 책이 1993년에 발간되었으니 2023년 이후 어느 시기에 성취된다는 것이 된다. 더욱이 나운몽은 아담의 통치시대보다 더 좋은 낙원으로 화하는 세상이 되어 주님께서 통치하시는 그리스도의 왕국이 건설된다고 주장한다(259쪽)
나운몽씨는 천상의 낙원에 대해서는 바울의 고후12:2-4을 인용하여 ‘셋째 한울’이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나운몽씨는 성경을 근거로 한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비주의자로 알려진 스웨덴 보그, 선다씽등의 간증을 보고 천국을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나운몽씨의 천국관은 성경에 전혀 없는 신비주의자의 간증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정통신학을 부정하고 비난하는 가운데서 나타난 것이다.
“그 때의 일을 바울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런데 임마누엘 ‘스위든 볽’이 입신하여 천국에 가서 봤다는 체험기를 보면 삼층천국이란 곧 3층으로 등분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가옥으로 말하면 단층과 같고, 2충천은 2층과 같고, 3충천은 3층과 같다고 하였다. 이 셋은 동일한 질서와 서로 서로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질서 유지상 필연적으로 천국은 3층으로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람으로 말하면 제일 높은 머리가 3층천에 해당되고 중간복부체가 2충천에 해당되고 제일 낮은 수족 부분이 1충천과 같다고 했다. 이같이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으면서도 세가지 천국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3층천은 극히 내적 천국이고 2충천은 중간천국이고 2층천은 극히 외적 천국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썬다싱’은 입신 중에 체험한 천국을 세가지로 설명했는데 1층천은 세상에서 체험할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한 생활이 곧 1충천이라고 하였다. 이는 물론 세상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느끼는 정도의 기쁨이나 쾌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회개하고 은혜를 받아 중생한 체험의 감격생활을 말함이다. 2충천은 1충도 3층도 아닌 중간상태로서 잠간 있는 곳이라고 한다. 즉 십자가에 달린 강도가 회개했을 때에 주님께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한 그곳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3층천에 갈만한 영적 진보를 얻지 못한 영혼들이 잠깐 있는 곳이지만 실제로 그리스도를 보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3충천은 모든 위인들이 들어가는 최고의 천국이라는 것이다. 그곳이 곧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 있는 곳으로서 보좌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264쪽)
스웨덴 보그는 예장고신에서 이단으로 규정하였으며 신비주의자로 알려져 있으며 썬다싱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직통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였고, 지옥에 대한 두려움으로 악령에 사로 잡힌 적도 있다고 한다. 또 사람이 죽으면 중간영계에 들어간다고 하였으며, 그는 천국에서도 성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한 바 있다. 웨슬레목사는 스웨덴 보그에 대해서 ‘재미있는 미치광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었다. 오늘날 많은 이단들이 스웨덴 보그의 책을 인용하기도 한다.
나운몽씨는 스웨덴 보그와 썬다싱의 소위 입신 간증을 길게 나열하며 천상천국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 둘의 간증이 서로 다른 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처럼 다 같은 천국을 말하면서도 말의 표현은 각각 달리 되어 있다. 그러나 천국이 다른 것은 아니다”
결론
나운몽씨는 2000년 기독교의 전통적인 전통교리 자체를 부정하였으며 그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이단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나운몽씨가 전통교리를 비판한 내용을 검토하여 볼 때에 우리는 나운몽씨의 성경해석이 매우 잘못 되어 있으며, 기본적인 신학 지식과 정보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신론, 창조론, 구원론, 교회론, 성경론, 종말론등 전반적으로 매우 심각한 이단성의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그의 후손들이 운영하는 복음신문과 애향숙은 현재 나운몽의 신학적, 성경적인 오류와 문제들을 인정하고 수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나운몽씨의 책에 대해서 광고와 출간, 판매를 하고 있다는 것은 나운몽씨의 사상에 동조한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애향숙을 영입한다는 것은 나운몽씨의 신학과 사상을 감리교에서 공적으로 인정하여 주는 결과가 되어질 것이여 복음신문에서는 나운몽씨의 문제가 많은 책을 공개적으로 출간하게 된다.
특히 복음신문은 그동안 다른 이단들(성락교회, 다락방, 만민중앙교회등)의 광고와 기사를 계속적으로 실어주었던 것으로 인하여 예장통합에서 친이단옹호언론으로 규정되었다.
결론적으로 나운몽씨와 애향숙, 복음신문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감리교로 영입하기 위해서는 첫째, 나운몽씨의 책을 모두 폐기 처분하여야만 하고 둘째, 과거 나운몽씨의 이단성과 오류를 모두 인정하고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수정, 회개를 하는 자세가 필요하며, 셋째, 복음신문도 함께 잘못을 인정하고 그동안 여러 이단들의 광고와 기사를 실어주었던 재발의 방지를 제도적으로 마련하여야 하며 넷째, 상당한 기간 동안 신학적인 재교육을 받아야만 하고 다섯째, 별도로 만든 독립기관이나 신학단체를 통하여 검증을 받아야만 할 것이라고 본다.
최근에 이단을 영입하려고 하는 교단들이 많아졌다. 아마 인위적으로 교세를 확장하기 위한 이유이거나 혹은 해당단체에 대해서 이단사상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보는데, 혹시라도 고의적이며 개인적인 다른 목적이 있지 않는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다행히도 이단의 영입은 교단들의 총회에서 대부분 거부되어 왔다. 특히 이와같이 기독교의 정통신학 자체를 부정하는 이단단체의 영입을 신학적인 검토없이 먼저 시도했던 책임자에 대해서는 철저한 조사를 받아야만 마땅하며, 건전한 믿음의 반석 위에 세워진 감리교회에서 이런 일이 다시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