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옥주 책 비판 1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고)

  • 6월 17, 2016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고”(신옥주) 책 비판

이인규


1) 신옥주의 성경해석 예

고전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 13: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고전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본문은 누가 보더라도 어떤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하여도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서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유익이 없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신옥주씨는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고, 신옥주, 242-243 )

꽹가리는 제금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면 제금에 대한 원문을 보자

제금은 찰랄(딸랑 울리다), 덜컥 소리내다 / 부딪히다 에서 유래되어 덜컥소리, 날개소리, 귀뚜라미, 쨍그렁 울리는 징, 메뚜기, 그늘짐, , 소리내며 나는 메뚜기라는 의미이다. 울리는 꽹가리라는 말은 바로 제금이 내는 소리이며 이 소리는 곧 위의 의미들이다……그렇다면 결정적으로 울리는 꽹가리는 제금을 뜻하고 제금은 메뚜기와 관련된 말이 된다…..메뚜기는 무엇을 뜻하는지 그 해답을 찾아보자.

3:17 너의 방백은 메뚜기 같고 너의 대장은 큰 메뚜기 떼가 추운 날에는 울타리에 깃들였다가 해가 뜨면 날아감과 같으니 그 있는 곳을 알 수 없도다

메뚜기는 곧 너의 방백을 지칭하는 말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지도자를 뜻한다….그러므로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은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가리(제금)와 같은 말이며, 제금은 메뚜기를 지칭하시는 뜻으로 메뚜기에 대해서 더 넓고 깊게 들어가 보면, 메뚜기는 바로 방백(메뚜기지도자)를 뜻하는 말로 이들이 하는 말은 돈과 관련한 말이라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넓이와 높이와 깊이와 길이를 찾아 들어가서 캐낸 보화이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간 것은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는 것은 바나나….. 높은 것은 백두산….이라는 말잇기가 있다.

원숭이가 백두산인가?

신옥주씨는 꽹가리는 제금, 제금은 메뚜기, 메뚜기는 방백, 방백은 지도자, 지도자는 돈과 관련된 설교라고 해석을 하고 있다.

과연 꽹가리 돈과 관련된 설교인가

 

2) 신옥주의 성경 해석 예

고전 14: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고전 14: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본문은 방언과 같은 신령한 은사적인 기도를 행할 때에 교회에서 무질서나 시끄러움을 조심하라는 뜻이다. ‘다불과 많아야’(at the most)라는 뜻으로, 즉 방언을 할 때에 2명 혹은 많아야 3명 정도가 순서대로 하라는 것이다,

신옥주씨는 성경에서 두사람과 세사람이라는 다른 구절을 찾아서 그 다른 구절의 의미를 적용시키는 이상한 해석을 하고 있다.

신옥주씨의 결론적인 해석이 무엇인가?

두사람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뜻하며, ‘세사람은 삼위일체의 비밀을 뜻한다는 것이며, ‘다불과’(많아야)는 비유와 상징을 뜻하는데, 많은 사람과 많은 일이라고 해석을 한다. 또 차서(순서)는 부분, 몫이라고 해석을 한다.

(같은 책, 208)

또한 통역하는 방법을 말하면 다음과 같다. 두사람, 즉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다불과(많은 사람과 주의하신 많은 일 등), 차서(부분적으로, 또는 몫/조각), 세사람(요일5:8,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방언으로 통역하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성경은 모든 단어가 항상 동일한 의미로 비유되지 않는다. 성경이 모두 비유라고 하는 이런 해석은 요즈음 신천지라고 하는 이단집단이 사용하는 해석이다.

신옥주씨의 책은 이러한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을 일일이 예를 들자면 한이 없을 것 같으며 이러한 유치한 해석을 일일이 비판할 가치조차 없다고 본다. 즉 이러한 해석은 자기가 원하는대로 성경을 짜맞출 수가 있다. 성경은 기독교인의 신앙적인 표준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이어야만 한다.

신옥주씨는 자신이 해석하는 방법은 그리스도의 일이고,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예수의 일이라고 하면서 예수와 그리스도를 구별하고 분리시킨다

(같은 책, 10)

보이는 문자적인 기록은 예수의 일이요, 문자속에 담겨져 있는 말의 뜻은 그리스도의 일로 보면 가장 정확하게 보는 방법으로 실수하지 않고 정경적인 해석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해석법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