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옥주의 엉터리 성경해석
이인규
책명: 성경과 다른 거짓말(은혜로선교회)
1. 신옥주는 여태까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육적인 것(예수)이며, 자신이 해석하는 짜맞추기만이 영적해석(그리스도)이라고 주장하여 왔으며, 성경은 모두 방언으로서 통역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여 왔다.
그런데 신옥주는 666 짐승표를 베리칩으로 해석하면서 이러한 육적인 해석을 무시하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결국은 육적이나 영적이나 그 기준이 모두 신옥주 자신에게만 있는 것이다. 극단적인 세대주의들이 해석하는 것과 같이 666 짐승표를 베리칩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마 신옥주에게도 유치한 해석으로 느껴진 것 같다. 베리칩이 짐승표가 될 가능성이 98%라는 주장에 웃음만 나온다. 성경의 비밀을 깨닫는 자도 2%는 믿지 못할 수 있다는 뜻인가?
“필자 또한 베리칩(마이크로칩)은 육으로 보이는 짐승표가 될 가능성이 98%가 넘는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는 육체로만 말하는 것으로 그대로 맞다고 할지라도 영육간에 온전한 해석이 아니다. 즉 베리칩(마이크로칩)이 짐승표가 100% 맞다고 할지라도 그건 육체에 해당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육체를 무시해서도 절대 안된다. 영혼은 육체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든지 성경을 통해서 영육 간에 온전하게 보고 듣고 믿고 깨달아 전해야 할 때가 지금 이 시대다. 성경적으로 보면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요한복음6:63)”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들이 일생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도 영혼과 관계가 없는 육체에 관한 말만 하게 되면 이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짐승표도 영육간에 온전히 보고 듣고 깨닫고 전해야 할 시기가 지금 이 시대이며 더불어 짐승표는 받으면 반드시 일생 예수그리스도를 믿었다고 할지라도 영원한 형벌인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간다.“(성경과 다른 거짓말, 신옥주, 은혜로선교회, 73쪽)
제 버릇 남 못준다고 하듯이 “매매”라는 단어를 다른 성경에서 짜맞추기로 찾아서 “인봉치 아니한 매매증서”로 해석하더니, 신천지와 똑같이 계시록이 봉인된 증서라고 주장한다.
“성경에서 경고하고 있는 바와 같이 베리칩이 현실적으로 개인의 모든 금융거래 기능을 하나로 통합시킨 유일한 매매수단이 되어 강제로 받게 된다면 7년대환란이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약 7년 대환란이 시작된다면 반드시 짐승표를 받지 않고 순교해야만 구원 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 베리칩이 마지막 매매 수단인 보이는 짐승표가 된다고 할지라도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영적으로 짐승표가 무엇인지부터 깨달아야 한다. 전체를 다 변증하려면 많은 지면이 필요하므로 요약해서 온전한 율법으로 변증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매매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분별해 보면 창세가 34:10절과 21절에 세겜 땅에 거할 때 야곱과 그 아들들에게 매매하고 [두루 다니다 (특별히 ‘행상인’으로) 강조의 의미(심장이 뛰다), 배회하다, 상인, 점유하다, 헐떡거리다, 장사하다, 거래, 돌아다니다, 이리저리 여행하다, 상업차 돌아다니다, 상인, 무역상, 두근거리더라는 의미] 살도록 허락한다. 매매하는 도구는 예레미야 32:11-16절에 “법과 규례대로 인봉치 아니한 매매증서”로 기록되어 있다.
즉 전 성경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봉한 것이지만, 때가 이르면 택한 하나님의 종들과 자녀들에게는 인봉이 열리게 하고 (계시록 5:9, 창세기 18:17. 아모스 3:7) 또한 인봉치 아니한 매매증서가 된다.(계시록 22:10). 다시 말하면 성경은 본래 기록할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봉하고 기록하셨지만 때를 따라 양식을 먹고 먹일 수 있도록 그 시대마다 택한 주의 종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열어 주셨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문자 그대로만 말하면 요한계시록은 기록할 때부터 인봉치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계시록은 때가 될 때까지 인봉된 증서다“(79-80쪽)
렘32:11의 매매증서는 밭을 사고 파는 계약서이며 소유권에 대한 공인서류를 뜻한다. 그 구절은 계시록의 매매오 아무 상관이 없으며, 또한 성경과 아무 상관이 없다.
신옥주의 짜맞추기 결론은 성경은 인봉한 매매증서라는 것이다. 어느 성경에 계시록이 인봉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가? 계시록 5:1의 일곱인으로 인봉된 책은 계시록이 아니며 겔2:10을 인용한 것으로 애가와 애곡과 재앙이 기록된 책이며, 계5장 이후에 예수님이 직접 일곱인을 떼기 시작한다.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겔 2:10)
계시록은 오히려 인봉하지 말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계 22:10)
신옥주는 성경이 인봉한 매매증서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택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성경은 인봉한 매매증서이지만 인봉치 아니한 매매증서처럼 열어주신다. 반대로 성경은 누구나 살 수 있고 볼 수 있도록 허락된 사대에 사는 사람들이 성경을 가지고 때가 될 때까지 인봉한 매매증서라는 것을 모른 채 본능적으로만 아는 그것으로 함부러 해석해서 사용하면 그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자신의 생명으로 갚아야 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80-81)
신옥주는 계시록 13장17절의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를 해석하기 위하여 성경 이곳 저곳에 기록된 ‘매매’라는 단어를 찾아 비유풀이를 한다. 예레미야32:14의 “봉인하지 않은 매매증서”라는 단어를 끄집어내어 성경이 봉인하지 않은 매매증서라고 주장한다.(79쪽) 게다가 신옥주는 욥기20:18에서 “매매”라는 단어를 끄집어 와서, 욥의 친구들이 매매를 하였고 욥의 친구들은 지금으로 말하면 예수 이름을 사용해서 매매하는 자들의 모형이라고 해석한다(82쪽) 또한 신옥주는 오늘날에는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매매하는 것을 뜻한다고 정의를 내린다(83쪽). 이러한 해석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엉터리 짜맞추기로서 신천지보다 더 황당한 단어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신옥주의 주장은 신천지가 인용하는 엉터리 비유풀이와 동일한 해석이 나타난다
“이미 이렇게 될 것도 하나님께서 아시고 미리 예언하셨다. 그 증거로 다음 말씀을 보자. 예레미야 31:27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라고 예언하신 것이다. 이 본문에서 사람의 씨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짐승의 씨는 곧 짐승이 자신의 소유권을 표시하는 것으로 짐승표라고 하는 것이다. 때가 이르면 이렇게 두종류의 씨가 뿌려질 것도 예언하셨고…“(89쪽)
신옥주는 신천지와 동일한 비유풀이를 하고 있다.
예레미야 31:27에 대해서 신옥주는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의 두가지 종류의 씨를 구별하여, 짐승의 씨는 마치 사탄의 씨를 뜻하는 것처럼 해석하고 있지만, 본문은 사람의 씨와 함께 짐승의 씨를 번성하게 하여준다는 축복의 말씀이다. 유목민이었던 유대인들은 사람도 짐승도 그 숫자가 번성하게 되는 것이 축복이기 때문이다. 신옥주는 신천지의 해석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는데, 다른 번역성경을 보면 곧 이해가 될 것이다.
[공동번역] 앞으로 이런 날이 오리라. 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을 사람이나 짐승 할 것 없이 씨를 뿌려 농사짓듯이 불어나게 하리라.
[표준새번역] “그 때가 오면,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뿌리겠다. 나 주의 말이다.
[현대인의성경]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이스라엘과 유다 땅에 사람과 짐승의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게 할 날이 올 것이다.
2. 신옥주는 성경해석은 신천지와 다를 것이 없는 단어짜맞추기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신천지보다 더 황당한 해석을 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3:9-12절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반대로 나쁜 의미로 말하면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교회 안에 불택자를 두고 말씀하신 것으로 다음에 해당된다. 요한복음 13:26-27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라고 말슴하신 것처럼 한 조각[부분, 부스러기, 또는 조각 (문지르면 없어지는), 즉 한입, 파편(부서진 것이나 깨어진 조각), 소량]을 받은 기록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 중에 들었지만 그는 사탄의 사자로 주님을 십자가에 죽는데 내어 준 사람이라는 것은 천하(그리스도인들과 불신자들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특히 위 본문에 조각을 먹고 먹이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부스러기’를 먹이는 것으로 부스러기를 먹는 사람들에 대한 해답을 보면 아연실색할 것이다. 다음 마태복음 15:27절에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마가복음 7:28절도 같은 사건 기록)라고 하신 말씀이다. 즉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조각, 부분)를 먹는 것은 개들이며, 이 개들에게는 자기 주인이 따로 있다는 뜻이며, 예수님께 자기 딸에게 흉악한 귀신들렸다고 고쳐주심을 바라며 도움을 청하는 가나안 여자는 이러한 개들과 근본부터 다른 만세 전부터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였다는 것 또한 분별이 된다. (성경과 다른 거짓말, 신옥주, 은혜로선교회, 104-105쪽)
신옥주는 또 신천지 식의 단어 비유풀이를 하고 있다.
“부스러기, 조각”이라는 단어를 성경 이곳 저곳에서 찾아 서로 단어풀이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고전13:9-12의 “부분적”이라는 단어를 비유풀이 하기 위하여 요13:26-27에서 예수님이 유다에게 주신 떡 “조각”과 연결시킨다. 그리고 마15:27에서 개가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는 단어와 다시 연결시켜서 사탄으로 해석을 한다.
만약 신옥주 방식대로 성경을 해석하면 오병이어에서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마14:20)도 사단의 것인가? 언약궤에 있던 조각목도 사탄의 것인가? 레 2:6의 소제를 드리는 무교병의 조각도 사탄의 것인가?
그리고 신옥주는 갑자기 “개”라는 단어를 비유풀이하기 시작하여 욥 30:1의 양을 떼를 지키는 “개”라는 단어를 찾아서, “개”가 교회의 지도자라는 해석을 한다. 신옥주는 조각, 부스러기로 단어짜깁기를 시작하더니, 이제는 성경 이곳저곳에서 “개”라는 단어를 찾아 다시 단어 짜맞추기를 편집하기 시작한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간 것은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는 것은 바나나…. 원숭이 엉덩이가 바나나가 되는 비유풀이를 시작하는 것이다.
욥기에서 나오는 양떼를 지키는 개라는 구절을 끄집어내어 개가 교회의 지도자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시 욥기 30:1절 “그러나 이제는 나보다 젊은 자들이 나를 비웃는구나 그들의 아비들은 내가 보기에 내 양 떼를 지키는 개 중에도 둘 만하지 못한 자들이니라“(106)에 기록된 개에 대해서 말하면 욥의 양떼를 기르는 개는 직설적으로 말하면 욥은 예수님의 표상도 감추어져 있으므로 영적으로 보면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들(때를 따라 양식을 먹일 수 있는 하나님의 책하신 종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이 말이 사실인 것은 이 개들의 욥의 양떼들은 결국 지키지 못하고 다 죽는데 내어준 것이 욥기서 1장에 이미 기록되어 있다“(114쪽)
“더군다나 이 개들(몰지각한 목자들)에 해당되는 자들이 먹는 양식은 전부 자기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조각, 부분)를 먹고 있으며 이들 아래 있는 자들은 또 얼마나 불쌍한 지 …. 더 충격적인 것은 이러한 자들의 소득은 하나님의 전에 가지고 오지 말라고 신명기 23:18절에 이미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하면 자기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도리어 필자를 욕하는 분들을 위해서 개들에 대한 다름 말씀을 상고해 보자. 이 개들은 확실하게 저 밖에 있는 세상사람들이 아니라 오늘날 보이는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시편22:16절에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라고 말씀하신 문자 그대로만 보면 다윗의 시지만 다윗은 예수님의 표상이 감추어져 있으므로 이 본문에 기록된 대로, 지금도 개들(몰지각한 목자들)에 해당하는 자달은 주의 이름을 사용하고 주의 자녀들을 찌르고 있다는 뜻이다. 예레미야 15:2-3절에도 “그들이 만일 네게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죽을 자는 죽음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갈지니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네 가지로 벌하리니 곧 죽이는 칼과 찢는 개와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으로 할 것이며” 이 본문 앞뒤 문맥을 보면 유다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대로 주님께서 회개하지 않는 그들에게 네가지로 벌하시는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찢는 개”들을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개들(목지각한 목자들)은 자기들이 지키는 양떼들에게도 부스러기(조각)를 먹여 예수그리스도에게서 떨어지도록 만드는 자들인 줄 상상이나 하겠는가?” (118-119쪽)
신옥주는 갈렙의 의미가 개라고 주장하며(108) 갈렙이 양떼를 지키는 자였기 때문에 개는 목사를 지칭한다고 해석한다. 갈렙은 나쁜 의미가 아니라, “종으로서의 충성과 애정”을 뜻하는 의미이다.
또 마태복음 15:26-27의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라는 성경에서 개들은 목사이며, 부자는 물과 성령(예수그리스도)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만 데리고 있으며(122쪽) 그가 주는 양식이 부스러기(조각)이라고 비유를 한다. 그리고 벧후2:22의 개와 계시록 22:15절의 개들을 몰지각한 목사로 비유한다. 이러한 신옥주의 비유풀이의 결론은 기독교가 성경을 모두 잘못 해석하였고 사탄의 역사이며, 자신의 비유풀이만이 진리라는 것이다.
“특히 그동안 우리는 부분적으로 성경을 보고 듣고 믿고 전한 결과 현재의 기독교는 육체의 열매를 맺었다는 것과 반대로 교회 안에 신앙생활을 하고도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갈 자들인데 멸망의 종들은 “조각”(조각을 먹으면 사단이 역사한다)을 자신들도 먹고 자신이 지키는 양떼들에게 먹인 결과로 이며 이 시대에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인 무서운 질병이 들어있음을 분별해야 한다. 이렇게 조각을 먹고 먹이는 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124-125쪽)
과연 누가 사탄의 조각을 먹이고 있는가?
3. 다른 영터리 성경해석
(1) 다른 세대에는 성령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이보다 더 정확하게 성령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한마디로 그 해답을 보면 에베소서 3:5에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라고 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은 곧 다른 세대에 사람의 아들들에게는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경과 다른 거짓말, 신옥주, 은혜로선교회, 187쪽)
(엡 3:5-6)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다른 세대‘는 앞에서 언급된 ‘이제‘와 비교하는 시간으로서, 장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오시기 이전 즉 구약 시대를 가리킨다. 신옥주는 더이상 성령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황당한 해석을 만들고 있다.
(행 14: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알게 하지 않으셨다”는 동사의 시제는 미래의 시제가 아니라 과거수동태이다. 다른 번역 성경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지나간 세대에서는 사도와 선지자와 같이 성령으로 알려주지 않았다는 내용을 슬쩍 바꾸어서, 장차 앞으로는 성령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으로 왜곡시키고 있다.
[공동번역] 지금은 하느님께서 성령의 힘을 빌려 그 심오한 계획을 당신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셨지만 전에는지금처럼 인간에게 알려주시지 않았었습니다.
[표준새번역] 지나간 다른 세대에서는하나님께서 그 비밀을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려주지 아니하셨는데, 지금은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성령으로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현대인의성경] 지금은 그 계획이 성령님을 통해 그리스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알려졌으나 전에는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KJV] Which in other ages was not made knownunto the sons of men, as it is now revealed unto his holy apostles and prophets by the Spirit;
[NIV] which was not made known to men in other generationsas it has now been revealed by the Spirit to God’s holy apostles and prophets.
(2)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계 10:9-11)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하더라”
“위 본문 앞뒤 문맥을 문자 그대로 요약해서 말하면 사도요한에게 나타난 천사를 통하여 작은 책을 먹어버린 요한에게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고 하신 말씀인데,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만 보면 의문이 들어야 한다. 당시 사도요한은 이미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오순절 날 진리의 성령을 받고 복음을 전하고 있었던 때였다. 그런데 왜 이러한 요한에게 다시 예언하라고 하는 것일까? 이 말씀에는 엄청난 시제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즉 문자 그대로 보아도 이미 예언하고 있던 사도요한에게 다시 예언하라고 했고 다른 천사를 통해서 영원한 복음을 전해 들어야 할 대상 중에 방언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오늘 이 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도 다시 예언이 필요함을 의미하는 말씀이다“ (56-57쪽)
이단들은 성경의 문맥과 상황을 모두 무시하고 부분적인 구절 하나만을 끄집어 내어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시킨다.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는 현재 시대의 예언을 가르키는 것도 아니고, 신옥주에게 적용시킬 이유도 없으며, 방언을 예언하라는 뜻은더욱 아니다.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에 대해서는 두가지의 해석이 있는데, (1) 개역성경과 KJV와 같이 “에게, 앞에서”(before)로 해석하여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 앞에서 다시 예언하라”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있으며, (2) 공동번역과 표준새번역과 NIV와 같이 “대해서, 관해서”(about)로 해석하여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 대해서 다시 예언하라”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보편적으로는 첫번째 해석을 따른다
어쨌든 본문은 요한을 통하여 선포될 예언의 대상이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전 인류임을 뜻한다. 좁게는 일곱교회에 국한 되지 않고 이방인을 포함하여 예언하라는 뜻이다. 즉 “다시 예언하리라“는 것은 새로운 내용을 예언하라는 뜻이 아니라, 교회라는 공동체에게 예언을 하였던 것에 대해서, 지금부터는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을 하라는 뜻이다. “다시‘(again)은 ”다른 것을 예언하라“는 뜻이 아니라 ”반복하여 다시 예언하라“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