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교회의 신인합일

  • 6월 16, 2016

                                                       지방교회의 신인합일

                                                                                                                                              이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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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만 니

 

지방교회, 몰몬교등은 사람이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우리는 그것을 신일합일설이라고 부르는데, 특히 지방교회의 신인합일설은 사람과 하나님의 구별이 없는 똑같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지적하면, 지방교회는 사람이 하나님과 똑같은 직위를 가진다는 의미가 아니며, 연합적인 개념이라고 변명을 한다. 그러나 삼위일체론, 기독론과 마찬가지로 지방교회는 항상 자신의 사상을 위장하고 감춘다. 이것을 상세하게 밝혀보자.

만일 사람이 하나님같이 경배를 받는 직위가 된다면, 그것은 이단이 아니라 사이비가 되고만다. 우리가 지방교회를 비판하자는 것은 그 직위에 대한 비판이 결코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이 된다는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다.

먼저 지방교회의 위트니스 리의 견해가 무엇인지, 그의 책을 보자.

(인간이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같은 부류라는 글)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다 같은 부류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고 그리스도도 우리와 하나가 되실 수 있다. 우리는 그 분과 한 영이 되었다. 하나님이 당신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을 당신 안에 담기 위한 것이다.”(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계시에서 본 하나님의 경륜, 45)

(인간이 하나님과 똑같이 된다는 주장)

그분은 우리와 같이 되셨다. 왜 그런가? 그 목적은 우리를 그 분과 똑같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졌고 하나님의 성품을 가졌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과 똑같은 것이다.”(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계시에서 본 하나님의 경륜, 63)

(하나님의 맏아들과 똑같이 된다는 주장)

바로 그 때 그들은 안팍으로 생명과 본성과 기질과 몸의 형태에서 하나님의 맏아들과 똑같게 될 것이다.”(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14)

(하나님의 자녀가 아버지와 같은 종류라는 주장과 주님이 첫 번째 하나님사람이라는 주장)

만일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들은 누구인가? 자녀들과 아버지는 같은 종류가 아닌가? 요한복음36절은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라고 말한다. 당신과 당신의 부모는 모두 같은 종류, 육신의 종류이다. 6절은 또 말하기를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말한다. 이 두 영은 같은 종류이며 또한 같은 근원이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 많은 하나님사람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또한 우리가 믿고 경배하며 따르는 우리의 주님, 또한 첫번째 하나님사람이다”.(위트니스 리, 하나님사람의 생활, 40)

(하나님의 체현으로 똑같이 된다는 주장)

우리는 과정을 거친 삼일하나님 안에 있다. 바로 그 분이 우리 모두로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 분의 맏아들과 똑같게 되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여, 결국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체현이 되게 하실 것이다.”(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18)

(맏아들과 똑같이 된다는 주장)

이 삼일하나님이 우리의 거듭난 후로 우리 안에서 계속 역사해 오셨고, 우리가 하나님의 맏아들과 똑같이 될 때까지 그 역사를 계속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택한 자들인 우리 모두는 거룩케 됨, 새롭게 됨, 변화, 형상을 본받음의 과정을 거쳐 우리의 온 존재의 영화롭게 됨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18)

위트니스 리는 분명히 사람이 하나님과 똑같이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지방교회는 이것을 하나님사람(God-Man)이라고 부른다.

지방교회는 자신의 주장을 감추고 위장하기 때문에, 이러한 지방교회의 주장을 더욱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미 올린 지방교회의 양태론과 인간론을 알아야만 한다. 인간론에서 보았듯이 이들은 인간을 영과 혼과 육의 삼분법으로 날카롭게 구별하여 분리시킨다. 그러한 삼분법을 염두에 두면서, 또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위트니스 리의 주장에 주목하여야 한다.

즉 초대교회부터 있었던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에 대한 기독론적인 이단주장이 등장한다.

(인성과 신성을 가진 예수와 사람이 똑같다는 주장)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맏아들이시므로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인 우리는 그분과 똑같다. 그러나 그 분의 인성에는 죄가 없으며 결코 이전에 타락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분의 인간의 부분은 구속될 필요가 없었으며 다만 높혀질 필요가 있었다. 우리의 인성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한부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부분이고, 다른 한부분은 타락되고 부패한 부분이다.”(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45)

(예수와 한 실제, 한 인격으로 연합되었다는 주장)

하나님의 성육신 안에서는 신성이 인성 안으로 들어왔고, 인성에 더해졌다. 이 하나님사람의 부활 한 안에서는 인성이 신성 안으로 가져가졌고 신성에 더해졌다. 이것을 놀라운 왕복교통이다. 사람의 본성과 신성한 본성, 이 두 본성이 서로 더해졌을 뿐 아니라, 한 실제, 한 인격으로 제삼의 성분을 산출하지 않고 서로 연합되었다.”(새 예루살렘 237)

    

1. 기독론

지방교회는 예수를 인성과 신성으로 분리시킨다.

이미 설명하였듯이 이들의 기독론은 초대교회의 이단적인 주장의 종합적인 견해인데, 이러한 주장을 살펴보자.

1) 예수는 인간적인 예수와 신적인 그리스도의 결합이라는 일부 그노시스파

2) 하나님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한 형태로 나타나셨다는 사벨리우스파의 양태론

3) 그리스도의 일부는 피조물, 일부는 창조주라고 하는 반신으로 만든 아리우스파

4) 인간이 육체와 혼과 영의 세부분이고, 그리스도의 인성은 육체와 혼의 두부분이고, 그리스도의 신성이 영으로 들어온다는 아폴로내리스파의 견해

5)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분리하는 네스토리우스파

루이스 벌콥은 기독교 신학개론 197-198에서는 다음과 말한다

  

기독론에 의한 몇가지 중대 오류 인성의 실재성에 대한 부정

2세기의 그노시스파는 그리스도의 참된 인간성을 주정하였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를 단순히 순화한 육체, 혹은 천적인 육체로 보고, 또 어떤 사람은 인간적인 예수와 신적인 그리스도를 구별하여, “신적인 그리스도는 임시로 인간예수와 결합하였다고 보았다. 4세기의 싸벨리우스파는 그리스도를 단순히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신 한 형태로 생각하였다.

신복윤교수의 기독론에 대해서 살펴보자….

(아폴로내리우스)는 사람이 신, , 영의 3부로 구성되었다는 헬라철학의 3분설의 개념을 가지고 로고스가 죄의 좌소인 영의 자리를 취하셨다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는 신체와 혼만을 가지셨고 영의 자리는 로고스가 채웠다고 하여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축소하였다. 즉 그리스도는 영이 없는 인성을 입으신 것이다.(신복윤교수. 기독론에 나타난 이단, 102)

이 초대교회부터 기독론의 이단적인 다섯가지 주장을 지방교회가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 특별히 위의 신복윤교수의 설명과 같이 특히 아폴내리우스파의 주장에 주목하여야 한다.


인간을 육체와 혼과 영의 세부분으로 분리하여 구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분리시켜, 인성은 다시 육체와 혼으로 분리시키고, 신성을 영이라고 하여 세부분으로 구별한다.

물론 지방교회가 말하는 영은 구약과 신약(부활전)의 성령과 다르다. 양태론적인 견해로서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예수가 부활의 영으로 과정을 거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지방교회의 교인들에게 부활의 영이 내주하면, 그들은 곧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똑같이 됨으로서 그들은 이것을 부활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예수의 재림이라고 부른다. (1) 양태론 (2) 인성과 신성을 분리시키는 아폴로내리우스적인 기독론 (3) ..육을 장소적으로 분리시키는 삼분법적 인간론이 합쳐서 God-man 교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성도들에게 성령이 내주하는 사건을 동일하게 간주한다. 예수에게 양태론적인 하나님이 임한 것을 성육신으로 해석하고, 성도들에게 성령이 내주하는것도 양태론적인 하나님이 임한 것으로 해석하여 동일한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분의 인성에는 죄가 없으며 결코 이전에 타락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분의 인간의 부분은 구속될 필요가 없었으며 다만 높여질 필요가 있었다. 우리의 인성은 두 부분으로 되어있다. 한 부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부분이고, 다른 한 부분은 타락되고 부패한 부분이다.”(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48)

하나님의 성육신 안에서는 신성이 인성 안으로 들어왔고, 인성에 더해졌다. 이 하나님사람의 부활 안에서는 인성이 신성 안으로 가져가졌고 신성에 더해졌다. 이것을 놀라운 왕복교통이다. 사람의 본성과 신성한 본성, 이 두 본성이 서로 더해졌을 뿐 아니라, 한 실제, 한 인격으로 제삼의 성분을 산출하지 않고 서로 연합되었다.(새 예루살렘 237)

비록 그분의 인간의 부분이 죽었지만, 죽지 않는 그분의 신성한 부분은 영원히 산다.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실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자신 안에 신성한 요소 곧 거룩의 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44-45)

그 분이 육체 안에 사셨을 때에 그분의 한 부분은 다만 사람, 곧 다윗의 씨였다. 그 부분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 그러면 그 부분이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는가? 그것은 죽음과 부활을 거쳐 인정됨을 통해서이다”(같은 책 45)

이 새 예루살렘은 과정을 거친 삼일하나님과 변화된 세부분으로 된 사람과의 연결과 연합 곧 한 총체로서의 하나님을 표현한 것이다.”(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16)

그래서 지방교회에서는 예수는 부분적으로 피조물이 되어지며, 그렇기에 사람이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지방교회에서는 예수님은 하나님() + 사람( + )이 되어지며 삼분법으로 해부되고 분리되어지고 만다. 성령이 내주하는 성도도 하나님() + 사람( + )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부활 이전에 그분은 그분의 신성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그러나 그 분의 성육신으로 그분은 인성 안으로 들어가셨고 그 분의 존재의 부분으로 인간의 본성을 입으셨다. 그러나 그 분의 인성은 그분이 부활할 때까지는 아들화 되지않은, 즉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지 않았다.(위트니스 리, 그리스도 23)

“(1:15-18의 구절)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창조자이실 뿐 아니라, 모든 창조된 것들 가운데 첫 번째, 모든 피조물 가운데 첫 번째 이심을 계시한다.”(그리스도 67)

즉 지방교회에서는 그리스도와 지방교회 교인의 구별이 없다. 그들은 하나님이며, 똑같은 것이다.

2. 정통신학이 말하는 연합의 개념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든지 예수를 닮는다는 견해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등의 주장은 지극히 정상적이며 성경적이다.

지금부터 간단하게 정통신학이 말하는 연합의 개념을 올린다. 과연 정통신학이 말하는 연합의 개념이 무엇인지를 말하기 위함이다. 그 이유는 지방교회는 신알합일을 주장하면서 자신들은 정통신학의 연합개념과 같다고 위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신학적인 면뿐 아니라, (3번 항목)에서는 지방교회의 주장이 얼마나 비성경적인가를 증명할 것이다.

그들의 삼분법에 대해서는 이미 성경적으로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충분히 설명하였고, 3번의 항목에서는 그들의 하나님화의 주장이 얼마나 비성경적인지를 증명할 것이다.

정통신학은 사람이 하나님과 똑같이 된다든지,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분리시켜서 믿는 성도와 똑같다고 하거나, 한 인격, 한 실제가 된다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

즉 지방교회는 양태론적 삼위일체, 비성경적인 영과 혼과 육의 삼분법, 빗나간 기독론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통신학이 말하는 연합의 네가지 개념적인 분류(웨인그루뎀, 조직신학 중권, 552-567)

1)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

2)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계시다.

3)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는다

4)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

첫째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다양한 개념을 포함한다.

a.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안에서

b. 지상에 그리스도의 생애 동안

c. 현재 우리의 생애 동안

둘째,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계시다.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심(3:17, 고후13:5)을 말하며 지속적인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2:20, 15:18, 4:13)과 예수께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는다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의 삶을 반영함으로써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통해 그에게 영광을 돌려야 한다(1:30) “그분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12:2)이다.

넷째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

a.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관계….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든지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18:20, 16:7, 17:11, 1:9-11)

b. 성부와 성령과의 연합우리와 그리스도의 연합은 성부와의 연합을 의미하기도 하고, 성령과의 연합을 의미하기도 하며, 이 관계는 우리의 독자성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성부 하나님, 우리와 성자 예수님, 우리와 성령과의 맺는 관계를 말한다.

본인이 정통신학을 인용하는 이유는, 정통신학의 연합이라는 개념과 지방교회의 이단적 신인합일이 분명하게 다르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지방교회의 신인합일이 정통신학의 연합과 같다고 주장한다. 물론 위장과 조작이다.

만일 지방교회의 삼위일체와 기독론이 정통신학과 동일하다면, 하나님과 한 인격, 한 실제로 똑같이 되어야 한다는 위트니스 리의 주장을 이단적인 주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다음은 웨인그루뎀의 조직신학책을 참고하여 보자.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변화되어감에 있어 각자의 개성을 잃어 버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온전히 그리스도를 닮을 것이지만 <그리스도가 되지는 못하며> 그리스도에게로 흡수되거나 우리의 개성을 영원히 잃어 버리게 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자신으로 남아서(고전13:12)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이다.(요일3:2) 그의 얼굴을 대하며 그에게 경배를 드리고 이마에 이름을 가지고 그와 함께 영원히 왕노릇하는 것도 바로 우리들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성품에 있어서는 서로 정확하게 같으면서도 독립적인 위격으로 남아 계셨던 것처럼 우리도 점점 그리스도를 닮아가면서도 다른 은사들과 기능을 소유한 독립된 개체로 남아 있게 된다.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자신이 되어갈 것이다“(10:39, 10:3, 2:17, 37:4)(웨인그루뎀 조직신학 중권, 563)

루이스 벌콥은 지방교회와 같은 신인합일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C. 신비적연합의 그릇된 개념들. 2. 신비적 오류:

다른 위험한 오류는 신비적 연합을 신자와 그리스도의 동일성으로 이해한 신비주의자들의 그것이다. 이 견해에 의하면 신비적 연합에는 본질의 연합이 있으며, 거기에는 한편의 인격성이 단순히 다른 편의 인격성으로 합체가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신자는 두 개의 구별된 인격들로 남아있지 않는다.“(루이스벌콥, 벌콥조직신학 하권, 199)

정통신학의 연합과 지방교회의 신인합일이 다른 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과 똑같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둘째: 살려주는 영과 성령이 다르다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

셋째: 양태론적인 주장, 하나님 자신이 죽음과 부활의 과정을 거쳤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넷째: 한 인격, 한 실제를 주장하지 않는다.

다섯째: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분리하는 이단적 기독론을 주장하지 않는다.

여섯째: 양자와 독생자를 동일한 개념으로 보지 않는다.

일곱째: 한분이시지만 상호관계가 가능한 구별되는 인격으로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

여덟째: 연합이란 유기체적인 영적결합과 관계를 의미하며 몸과 지체의 관계, 뿌리와 가지의 관계로 비유된다.

유명한 조직신학자인 웨인그루뎀도 다음과 같이 상호내재를 설명하였다.

(예수)는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했는데 이는 우리의 연합이 삼위일체 안에서 성부와 성자 사이의 완전한 연합과 같게 되기를 기도하신 것으로, 우리의 하나됨은 영원하고 완전히 조화를 이룬 것이어야 함을 (하나님의 하나됨과 같이)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삼위를 통한 비유가 대단히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개개인의 성품을 흡수해 버리지는 못할 것을 경고하기 때문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완전한 연합을 이루고 있음에도 그들은 <독립된 삼위>이다. 마찬가지로 어느날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고 다른 신자들과 함께 완전한 연합을 이루게 되겠지만, 우리는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와 능력, 관심 책임, 친구관계, 선호도, 욕망등을 소유한 <독립된 개체>로 남아 있을 것이다.”(웨인 그루뎀, 조직신학 중권, 557)

3. 그리스도의 개념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개념이 과연 무엇인가?

구약에 있어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이었다.

다니엘 924절에는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니….”라는 예언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메시야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말한다.

요한복음 141절을 보면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라는 말씀이 있는데 역시 히브리어 메시야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의미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하여 복음을 전파하시는 선지자의 사역, 자기 백성의 사죄를 위해 간구하시는 제사장의 사역, 모든 권세를 위임받고 통치하시는 왕으로서의 사역, 이 세가지를 수행하시는 분이며 그 세가지의 사역을 곧 그리스도 혹은 메시야라고 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였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이다.

지방교회의 주장은 사람이 영을 받으면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그리스도를 문자적으로만 생각하는 편견이며 대단한 착각이다. 그러한 주장은 사람이 곧 메시야라는 주장이 되고만다.

모세와 아론도 기름부음을 받은 자였으며 다윗왕도 기름부음을 받은 자였으며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도 기름부음을 받은 자였다. 그러나 과연 이들을 그리스도 메시야라고 언급한 적이 성경에 있었는가?

구약뿐만 아니라 신약에까지 예수이외의 사람이나 존재를 한번도 그리스도나 메시야로 언급한 적은 없다.

오히려 거짓그리스도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으며 누구든지 어디서든지 그리스도가 있다하여도 너희는 나가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광야에 그리스도가 있다하여도 나가지 말고 골방에 그리스도가 있다고 하여도 나가지 말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출현에 대한 예언은 지극히 거룩한 자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었으며 구약의 모든 성경이 예언하였던 바로 그 그리스도“(호 크리스토, the Christ) 였으며 그 메시야였다.

모태에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1:15) 세례요한도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라고 말했다. (3:28. 4:25)

23:10에는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라고 말하고 있다.

딤전2:5에는 하나님은 한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중보도 한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라고 되어 있음으로 그리스도가 오직 한분임을 언급하고 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르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3:16)

즉 아브라함의 언약을 구속사적인 측면으로 볼때 그 자손이란 오직 그리스도 한분을 가르킨다는 의미이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한 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5:7)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언제나 그리스도이며 메시야는 오직 한분이셨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4:25)

예수님의 대답은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분명히 말씀 하셨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다” (4:26)

대제사장이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26:63)

예수님은 대제사장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네가 말하였도다.” (26:64)

사단은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려고 하는 존재“(14:14)이거나 자기를 하나님이라 하는 자“(살후2:4)이었다.

뱀은 하나님같이 될 수 있다”(3:5)고 유혹하는 존재이었다.

성경은 이 점에 대해서 단호하게 말한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자 누구리요……!” (113:5)

4. 신일합일의 방법

지방교회의 신일합일의 밥법은 그야말로 유치한 수준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트니스 리의 후계자들은 이중의 얼굴을 가진 지방교회는 자신들이 전통적인 기독교의 교리를 갖고 있다고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

위트니스 리의 글을 읽어보자.

우리가 또한 삼일적으로 아들 그리스도의 실제화이신 그 영과 함께 살아야 한다. 당신이 오 주 예수 그리스도여라고 부를 때 당신은 주님을 누린다. 당신이 주님을 누릴 때 즉시 당신 안에 계신 주님은 그 영이시다. 주님은 그 영으로 실제화 되신다. 주님을 더 부를수록 당신은 그리스도의 실제화이시며 실제의 영이며 당신 안에 계신 그 영을 더 갖게 된다. 실제란 주로 삼일하나님의 신성한 성분 안에 있는 존재자체를 가리킨다. 그 영이 하나님의 실제이다.”(새 예루살렘, 396)

생명주는 영으로서 그분은 우리의 영 안에 들어올 준비가 되셨다. 우리가 오 주 예수여라고 부를 때 그분은 즉시 우리의 영의 종착지에 도착하신다. 우리의 영은 그분의 노정의 종착지이다.” (세부분인 사람의 생명되시는 삼일하나님, 28)

우리는 불신자를 구원하기 위해 설교가 필요없다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그들을 도와 오 주예수를 세 번만 말하도록 한다면 그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불신자가 해야 할 것은 입을 열고 오 주 예수여 오 주 예수여라고 말하는 것이다. 비록 그들이 믿을 의도가 없다 할 지라도 그들은 붙잡히고 말 것이다. 그들에게 의도가 있든 없든, 그들이 창문을 여는 한 공기는 들어갈 것이다. 그것은 가르침의 문제가 아니다.” (Lee Stream magazine, : 1,Feb.!, 1970,p.6)

교회가 그분의 이 한 영을 마시며 그 분과 한 영이 됨: 우리가 오 예수여!’라고 부르는 것은 성령을 마시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순간순간 이 성령을 마셔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부를 때 성령이 오신다. 우리가 부르는 것은 주님이지만 받는 것은 성령 이다. 예수는 그 분의 이름이요, 성령은 그분의 인격이다. 어떤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 그 사람이 오게 된다. 이름은 곧 그 사람이다. 당신이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에 성령이 온다.” ( 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계시에서 본 하나님의 경륜 69)

그리스도께서 생명주는, 생명을 분배하는 영이 되심은 그 분이 사람에게 오시는 마지막 단계이다. 이제 오직 한가지가 필요한데 그것은 우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그 분을 믿는 것이다. 그 분을 믿는 길은 그 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그 분의 이름을 부를 때 그 분은 즉시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 그 분은 우리 안에 들어오시며, 우리는 그 분 안에 들어 간다. 우리가 믿는 것은 그분을 그분의 노정의 종착지인 우리의 영 안에 모셔온다.” (세부분인 사람의 생명되시는 삼일하나님, 28)

 

그들은 주여 주여라고 주문을 외우듯이 주의 이름을 부르면, 양태론의 마지막 단계인 생명의 영이며 부활의 영인 삼일하나님이며 하나님의 실제가 그들에게 들어오고, 그렇게 하여 그들에게 들어온 하나님이 그들의 영혼 안에서 성숙하게 자라나면 그들이 하나님과 똑같이 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소위 신일합일이라고 불리는 방법이 주문 외우듯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0:9-10)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예수를 주로 시인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마음에 믿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름을 부른다고 하여 이름을 주문처럼 외우면 주님이 우리에게 들어오신다는 주장은 말도 안되는 황당한 주장일 따름이다. 이름만 부르면 주님이 들어오신다? 그렇다면 말을 못하는 장애자에게는 주님이 들어오지 못하는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2:8)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며,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이며 은혜이다.

주여 주여 라고 이름을 부르면 그들에게 영이 된 주님이 들어가고, 그들은 하나님이 된다는 것인가?. 그들은 이러한 신알합일을 부활이라고 부르며, 그들의 안에서 재림이 온다는 것이다.

그러한 지방교회가 곧 그들에게 천국이 된다.

그분은 우리와 같이 되셨다. 왜 그런가? 그 목적은 우리를 그 분과 똑같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졌고 하나님의 성품을 가졌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과 똑같은 것이다.”(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계시에서 본 하나님의 경륜, 63)

만일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들은 누구인가? 자녀들과 아버지는 같은 종류가 아닌가? 요한복음36절은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라고 말한다. 당신과 당신의 부모는 모두 같은 종류, 육신의 종류이다. 6절은 또 말하기를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말한다. 이 두 영은 같은 종류이며 또한 같은 근원이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 많은 하나님사람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또한 우리가 믿고 경배하며 따르는 우리의 주님, 또한 첫번째 하나님사람이다.”(위트니스 리, 하나님사람의 생활, 40)

이제 내가 사는 것은 새 창조 안의 부활한 나를 말한다. 이 부활한 내가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하나가 되었다. 어떻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부활시키셨는가? 부활 안에서 그분은 그분의 신성을 우리의 인성과 연합시키셨다. 이로 인해 우리는 부활한 것이다.”(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43)

주님의 오심은 갑작스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주 예수님께서 오실 것이지만 여러분이 생각한 대로는 아닐 것이다. 주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실 뿐만 아니라, 여러분 안에서부터 오실 것이다. 여러분은 그분이 갑자기 하늘로부터 내려오시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이 여러분으로부터 오실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위트니스 리의 왕국, 329)

그러나 주 예수님께서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심으셨고, 그분이 지금 우리 안에서 자라고 계시며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 안에서 성숙되고 계시는 것은 사실이다. 그 분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익고 성숙할 때, 그것은 그분의 오심의 때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그분의 오심은 갑작스런 사건이 아닐 것이다.”(왕국, 330)

그러나 주 예수님께서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심으셨고, 그분이 지금 우리 안에서 자라고 계시며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 안에서 성숙되고 계시는 것은 사실이다. 그 분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익고 성숙할 때, 그것은 그분의 오심의 때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그분의 오심은 갑작스런 사건이 아닐 것이다.”(왕국, 330)

이것이 그들의 거듭남이며 부활이고 천국이며 재림이라는 것이다.

성경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부활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26)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8:23)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