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식(진주초대교회)의 헌금과 물질에 대한 지나친 강조

  • 6월 16, 2016

                             전태식(진주초대교회)의 헌금과 물질에 대한 지나친 강조

 

                                                                                                                                 이인규

    

아바드성경.PNG

 

교회의 물질에 대한 헌금을 임마누엘(하나님과 함께 하는)의 조건으로 해석하는 것은 이단성이 있다기 보다는 사이비성이 있는 교회론이 될 수 있으며, 예배를 예물을 드리는 방편으로 해석하는 것은 구약적인 제사의 개념으로 문제가 많은 주장이다. 구약의 성전에서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은 죄의 전가에 대한 것이며, 예수의 십자가 대속 이후 신약에서 우리는 더 이상 희생제물을 바치지 않는다.

신약의 예배를 물질과 예물로 적용하는 것은 단번에 바쳐진 예수의 온전한 대속을 물질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되므로 교회론의 오류가 된다. (아바드성경은 신구약 성경의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물질과 헌금을 구원의 조건이나 축복과 저주의 조건으로 반복하고 있음)

4:4-5 예배는 삶과 예물을 드리는 것이라는 아바드성경

4:3-5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예배란 예물과 상관이 없으며, 구약의 제사에서 제물은 죄를 전가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짐승을 바친 것이다. 본문에서는 가인도 제물을 드렸기 때문에 예배가 예물을 드리는 것이라는 해석은 옳지 못하다.

예배란 가치를 돌리다, 존경을 나타내다라는 뜻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예배(, 프로스퀴네오)는 영안에서(in Spirit), 진리안에서(in Truth) 드려지는 예배이며, 구약의 성전과 달리, 하나님이 예배자를 찾아오신다(4:20).

히브리어 아바드 경작하다, 일하다라는 어원을 갖고 있으며, 실제로 성경에서는 일하다는 의미로 주로 사용되어졌다. 아바드에서 파생된 (아보다)의 출12:25, 삼하15:8의 아바드는 예배를 드린다 혹은 섬기다는 의미는 있지만, 예물과 전혀 상관이 없다. 12:1에서의 예배도 우리의 몸을 드리는 영적인 봉사(, 라트레이아, reasonable service)를 말한다.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영적예배에 대해서 [KJV] reasonable service. [NIV] spiritual act of worship으로 번역하였다. 구약의 예물과 짐승을 바치는 제사와 신약의 예배는 다르다.

4:8 (5)

4:5-6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아바드성경은 예배를 드린 후, 마음에 분이 일어난다면 하나님께 나의 예배를 받지 않으셨음을 깨달아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해석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나 주의 종을 비방하는 둥 가인과 같이 의인을 죽이는 삶을 살게 된다고 해석을 하고 있다.

물론 예배를 드린 후에 마음의 분과 같은 나쁜 감정을 가지게 되면 안될 것이다. 그러나 분이 나는 것을 하나님이 예배를 받은 것인가 아닌가의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교회나 주의 종을 비방하는 것과 가인이 의인을 죽이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죄란 자기의 행동적인 결과로 판단하면 되는 것이며, 예배 후에 나타나는 감정적인 변화로 죄를 판단할 수 없다.

성경은 오히려 아벨이 믿음으로 드린 제사라고 말하고 있으며 가인보다 나은 제사라고 말한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11:4)

(36) 26:12-14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아바드성경은 본문을 지시하는 땅, 즉 교회에 머물러야 하나님의 약속하신 복을 얻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논리적인 이유가 되지 않는 기복적인 신앙이다.

이삭이 농사한 그 땅은 교회와 아무 상관이 없다. 이것은 그 교회가 잘못된 줄 알면서도 교회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협박적인 해석과 다름이 없다.

100 E.(12:35-36)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으로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의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아바드성경은 본문을 물질로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119쪽 출25: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아바드성경은 구약에서 예물을 바치는 것에 대해서 어김없이 오늘날 교회에 헌금과 헌물로 비유하여 해석하고 있다. 예배는 물질이 아니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것이며, 구약의 제사와 다르다. 이러한 반복적인 주장은 모두 수정하여야만 하며, 교회론과 예배론의 심각한 오류가 되며, 전태식목사의 물질에 대한 신앙이 심각한 오류라는 것을 의미한다. 아바드성경은 물질과 헌금을 교회로 바치는 것과 목사의 비방하지 못하며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축복을 받는 것으로 반복하고 있다.

131쪽 금송아지 사건

금송아지 사건의 문제는 신으로 숭배했다는 우상이며, 재물을 섬겼다는 것이 아니다. 그 금송아지가 금이 아니라 쇠, 혹은 흙으로 만들어졌다고 할지라도 그 재료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신으로 숭배하였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다.

32: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그 본문을 교회생활에서 재물과 하나님의 두 주인을 섬기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교회에 재물을 바치라는 내용으로 해석될 수 밖에 없다. 아바드성경은 계속 수십번을 반복하여 재물과 헌금을 교회에 바치라고 강요하고 있으며, 주의 종에게 쓸 것을 공급하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으므로, 건전한 교회론이 아니며, 진주초대교회가 건전한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여 준다.

레위기

150쪽 회개와 회개예물

151쪽에서 이것을 죄와의 단절을 회개의 예물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회개는 죄로부터 돌이킴이며 방향전환을 말하는 것으로서, 예물과 아무 상관이 없다. 더욱이 예물을 드려야만 회개가 된다는 주장은 심각한 오류이다.

예물을 바치지 않으면 죄와 단절이 되지 않거나 죄사함을 받지 못하는가?

마태복음

1쪽 임마누엘의 반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경우

3:7-10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할 때

16-17장 주의 종을 대적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을 때에 대해서, 예수를 믿지 않을 때라는 상식적인 답변은 없는가? 결론적으로 십일조와 주의 종을 대적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가? 과연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조건이 십일조와 주의 종을 대적할 때가 되는 것인가? 주의 종이 이단일 경우도 대적할 수 없는가?

7, 6:3 오른 손 ….왼손이 모르게

제자나 사도들, 곧 주의 종이나 교회를 통해 구제하는 것이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구제하는 것이라고 해석?

교회중심주의, 목사중심주의, 헌물중심주의를 주장하는 오역

8, 두 주인(6:24) 2.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는 법

1) 성전건축 및 성물

2) 제사장에게 쓸 것을 공급,

3) 규례의 예물

4) 절기 예물

5) 십일조

6) 가난한 자 구제

44쪽 마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아바드성경은 달란트에 대한 비유를 물질에 충성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아바드 성경은 땅에 감추었나이다”(25:25)에 대해서 달란트는 돈이다. 따라서 땅에 감추었다는 것은 보물을 땅에 쌓아두었음을 의미한다고 해석을 한다.

달란트를 물질로만 해석한다면, 치명적인 성경해석의 오류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로지 돈과 물질로만 봉사하여야 하는가? 그렇다면 본문은 돈과 물질로 봉사하지 못하면 지옥에 간다는 뜻인가?

이것은 헌금중심주의의 알레고리적인 해석이다. 달란트는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사역을 의미한다. 본문에서 땅에 감추었다는 것은 자신에게 맡겨진 달란트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122 H 16: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그 후부터는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라는 본문을 아바드 성경은 123쪽에서 원하는대로 예물을 드리는 것으로 해석하는데, 이것은 물질주의적인 이상한 해석이며, 비상식적인 해석이다. 십자가 대속으로 휘장이 찢어진 것은 성도가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만인제사장의 시대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을 성도들이 하나님께 직접 원하는대로 마음껏 예물을 바치는 것으로 해석한다는 자체가 심각한 물질주의적인 해석이 된다.

194 5 아나니아….삽비라의 사건”(5:1-11)

이 사건은 구제헌금이라고 볼 수 없다. 밭과 집 등 전재산을 팔았으며, 성경은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줌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4:35)

362 (9:4-5)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아바드성경은 본문의 언약의 비석들 두 주인,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말라는 교훈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언약의 비석들은 십계명이 적힌 돌판을 말하며, 재물에 대한 교훈과 전혀 상관이 없다.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돌판이 언약궤에 들어있었다는 것은 상식이며, 그 돌판이 하나님과 재물을 섬기지 말라는 교훈이라는 내용은 이상한 해석이다아바드성경은 언약궤 안에 있던 돌판까지 헌금을 강조하는 교훈으로 만들어서 자의적인 해석을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