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동복음(장재형)의 성경공부 (1) 선악과
이인규
(왼쪽부터 박중선, 이광선, 길자연, 장재형, 홍재철)
강사는 장재형 교단 측의 성경공부 강사로 알려진 조보라이며, 음성화일을 직접 녹취하여 발췌한 것이다.
첫 번째는 선악과에 대한 성경해석이 통일교와 정명석계열과 유사하다는 것이며, 통일교 계열은 선악과를 따먹은 것에 대해서 상징적인 해석을 한다. 즉 하와가 뱀. 즉 사탄과 섹스를 하여 가인을 낳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통일교 출신으로 밝혀진 예장합동복음 교단의 장재형(한국 크리스쳔투데이, 미국 기독일보)에서 성경공부를 가르친 녹음화일을 보면 이와 유사한 내용이 있다.
두 번째는 메시야와 재림에 대한 성경공부 내용으로서 이것 역시 통일교 계열과 유사한 내용이 언급된다. 물론 이 녹음화일에는 다시 오는 재림주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가 다시 오시지 않는다는 주장 자체만으로도 이단적인 주장이 되어진다.
그 이유는 성경은 분명하게 예수가 다시 오신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1:11)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고전15:23)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3:20-21)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2:13)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행3:20)
(1) 선악과의 뜻, 특히 하체와 관련된 것이다
– 선악과를 따먹었으니까 선악과가 뭔지 알아야 하잖아.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라고 했어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 그런데 이게 뭔지 알아야 하잖아. 있었던 나무인데 지금은 갑자기 뿅 사라졌나? 도대체 뭔가? 이런 생각 안해봤어? 하나님이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했는데 그것을 따먹은 인간이 타락했잖아. ‘그럼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들지 말지’ 이런 생각 해보잖아. 안 만들었으면 따먹을 이유도 없잖아. 따먹을 이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럼 우리가 죄를 안 짓잖아. 애시당초 만들지 말지 하나님이 그것을 만들어서 그러냐? 이런 질문을 한 번씩 해보게 돼.
그리고 또 하나. 따 먹을 수도 있고, 안 따먹을 수도 있는데 만들지 말지, 아니면 따먹을 수 없게 만들지, 그러면 인간이 타락할 수가 없잖나? 그 두 번째 문제는 자유의 문제지. 하나님이 자유를 주지 말지. …
그러한 생각을 왜 하게 되느냐 하면 선악과가 뭔지 모르니까 그런 소리를 하는거야. 선악과가 선악과는 문자 그대로의 과일이 아니거든? 과일이 아니라 추상적인 어떤 의미의 것을 과일로 표현한 거야. 그 의미를 알게 되면 하나님이 이것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돼. 이거 안 만들면 큰 일 나. 꼭 만들어야 하는 거야.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가 뭔지 알아야 하잖아. 그게 뭔지 알아야 하잖아. 이것을 보는 방식이 두가지가 있겠지. 문자 그대로 볼 수 있고, 영적으로 볼 수 있을거야. 성경을 보는 시각은 두 가지니까. 문자 그대로 보면 뭐야? 과일이 되잖아? 그런데 이게 문자 그대로 과일이 되느냐 그게 아냐.
이건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면 마태복음 15:11!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으로 범죄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신도들: 아멘). 입에 들어가는 것, 즉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않는데. 음식이 사람을 죄 짓게 할 수 없다는 거야. 죄 지은 인간의 입에서부터 나오는 것, 말이지! 죄 지은 인간이 더러운 말하고 악한 말하는 거지.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야. 그러니까 이 말은 뭐니? 먹는 음식이 인간을 타락시킬 수 없다는 거야. 그러니까 과일이 인간을 타락시킬 수 없다는 것야. 그래서 이것을 과일로 보면 안 되고, 어떠한 의미, 영적인 의미, 이것은 비유구나. 비의구나 이것을 알아야 해. 이것을 풀어야 해.
자 이런 얘기도 한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문자 그대로의 과일이든지, 아니면 이건 하나님의 시험이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아. 인간이 하나님을 경외하는지 안 경외하는지 시험하시려고 선악과를 만드셨다는 거야. 선악과는 하나님의 시험인가? 그것도 아냐. 야고보서 1장 13절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그런데 하나님이 인간을 시험하는 장면이 나와. 어디에서 나오느냐 하면 아브라함한테 자식을 바치라고. 그런 시험이 나오거든. 그것은 왜 나오냐 하면 아브라함의 자리는 어떠냐하면 이미 타락한 인간이잖아. 타락한 인간, 이미 하나님을 불신한 상태. 그래서 불신한 인간이 다시 하나님께 갈 때는 그 어떠한 하나님이 주신 어떤 시험을 이기고, 불신의 터를, 불신을 믿음으로 이기고, 떨어졌으니까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하려면 사탄의 시험을 이길 때 회복할꺼 아냐? 시험이란 건 타락한 인간이 만든 것이지, 타락하지 않은 인간이 만든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여기 아담은 타락한 사람이 아니잖아. 타락하지 않은 인간에게 하나님이 아무 잘못도 없는 인간에게 시험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그래서 이건 시험인가? 시험으로 보면 안 되는거야. 시험일 수가 없는거야. 하나님이 순진한 아담과 하와를 갖고 악한 시험을 할 수 없었다는 거야. 그렇다면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지. ···
첫째, 죽음보다 강한 것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특징을 볼게, 첫 번째는 아까도 그랬지만 창세기 2장 17절을 근거로 볼 때 뭐냐하면 하나님이 이랬어. 선악과를 따 먹으면 죽는다고 했잖아. 죽는다고 했는데도 따먹었거든. 그래서 선악과는 죽음보다 강한 거예요. 죽음보다 강한 것. 자, 선악과는 첫 번째 죽음보다 강한 것. 뭔지 모르지만 죽음보다 강한 거예요.
둘째, 보암직, 먹음직, 탐스러운 것
두 번째, 창세기 3장 6절 보세요.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것이야. 이게 뭐냐? 선악과야. 생각해 보세요. 어떤 과일이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냐? 세상에. 복숭아가 그럴까? 지혜롭다고 할 만큼? 진짜 이런 과일이 있다면 진짜 장사 잘 되겠지?
셋째, 해산의 고통과 관계가 있는 것
그 다음 창세기 3장 16절! 선악과를 따먹고 벌을 받았어요. 무슨 벌을 받았느냐 하면 해산의 고통을 받았어요. 해산의 고통. 그 많은 고통 중에서 왜 해산의 고통을 받았을까? 이것과 관련 있기 때문에 그래요.
넷째, 선악과 따먹고 부끄러워서 하체를 가렸다는 것
네 번째, 창세기 3장 7절. 선악과를 따먹고 하체를 가렸어. 하체를 가렸다. 가렸다는 것, 가린다는 것, 있잖아요? 가린다,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타락한, 죄 지은 다음에 일어나는 감정이에요. 죄 지으면 발생하는 것들이에요. 죄 지으면 가려요. 죄 지으면 부끄러워지는 거예요. 죄 짓지 않고 떳떳한 사람은 절대로 안 가려. 가렸다는 게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죠.
다섯 번째, 죄의 유전과 관련된 것
다섯번째, 로마서 5장 12절에서 14절! “이러므로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아담처럼 죄를 짓지 않은 사람에게도 사망이 왔다는 거잖아요. 이 말은 죄가 유전된다는 거예요. 죄의 유전, 선악과는 죄를 유전시키는 거예요. 이 다섯가지를 충족하는게 선악과예요. 그렇다면 뭘까? ···사실 이것만 봐도 거의 힌트는 나와. 죽음보다 강한 것, 뭘까? 돈일까? ···
이 세상에 사람들이 추구하는 게 3가지가 있잖아. 돈, 명예, ···그리고 사랑이잖아. 여자! 여자 때문에 망하잖니. 여자가 잘 들어오면 좋지만. 인간을 유혹하는 게 돈과 명예와 사랑이잖아. 그런데 돈은 죽음보다 안 강해. 명예라는게 죽음보다 강하지 않아. 사랑. 이건 죽음보다 강해.
선악과는 사랑, 특히 하체와 관련된 것.
사랑이란 건 두 가지 사랑이 있어요. ···영적 사랑이 무너지면 육적 사랑도 무너진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죠? 그러니까 육적 사랑의 결과는 결국 애를 낳잖아. 사랑의 결과 자체가 그렇게 죄를 지었으니까 그런 벌을 받는거야. 그것에 해당하는 벌이 내려지는 거야. 그 다음에 뭐야 하체를 가렸다! 죄 지었으니까 가렸지. 사랑의 범죄는 하체로 짓잖니? 그러니까 가렸어. 그 전에는 안 가렸어. 벌거벗어도 부끄럽지 않았다고. 그런데 죄를 짓고 나니까 죄를 지으면 가리잖아. 맞죠? ···.
콕 집어서 그 부분을 가리게 돼 있는거야.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양말에 구멍이 나면 그 부분을 가리잖아. ···죄 지었으니까 가리는 거야. 과일 따먹었으면 손이나 입을 가리지? 먹은 곳이 그곳이니까 하체를 가리지. 그 다음에 사랑을 먹는 것을 따먹는다고 해. 은어의 세계에서 따 먹었다고 해. 이것은 좀 세상에서 표현할 때 날라리? ··· 따 먹었다고 하잖아. ···
욥기서 31장 33절~34절 “내가 언제 큰 무리를 두려워하며 족속의 멸시를 무서워함으로 잠잠하고 문에 나가지 아니하여 타인처럼 내 죄악을 품에 숨겨 허물을 가리었었던가.” 자 여기 뭐가 나와 타인이라는 말이 나오죠? 이 타인이 뭐냐하면 히브리어로는 아담이야. 아담. 그래서 보통 재래식 성경에는 관주에 아담이라고 써 있어.··· 타인이란 말에 아담을 넣고 읽어보세요. ···
아담이 가린 곳이 허물이다 이거야. 아담이 가린 곳이 뭐라고요? 허물이라고요. 아담이 가린 곳이 죄지은 곳이라는 거야. 그 다음에 사랑이란 세계는 어떠냐? 유전되잖아. 맞죠? 유전과 관계되잖아. 사랑은 유전되잖아. 혈통은 유전되잖아. 만일에 문자 그대로 과일이라면 ··· 이것은 죽은 이후 계속 죽는 거니까, 유전과 관계된 것이니까 사랑과 관계된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죠? ···
(2) 메시야에 대한 내용
장재형측은 자신들은 장재형목사를 메시야로 가르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것이 변명이 될 수 있는가? 다시 오시는 메시야가 예수가 아니며, 사명자와 대행자라고 가르치는 자체가 이단이 아닌가?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통일교와 정명석이 가르치는 그 내용이다. 노골적으로 장재형이라고 가르치지 않았으면 이단이 아닌가?
재림 메시야가 1945년-46년 생이라고 가르쳤던 정명석도 자신이 메시야라고 가르친 적이 없다고 극구 변명하지 않았는가?
– 불수레타고 올라간 엘리야
엘리야의 재림에 대한 예언 이것을 살펴볼께요………승천을 했어요. 뭘타고 승천했냐 하면 불수레를 타고 승천했어요.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한 것이 아니에요. 탄건 불수레에요.
– 초림예수도 구름을 타고 온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냐면 문자 그대로 생각했기 때문에 불수레 타고 올라갔으니까 불수레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줄로 알았던 거야. 불수레가 언제오나 이것만 보고 있었던거야.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메시야가 초림의 메시야가 하나님께서 구름을 타고 강림하는 줄 알았어. 메시야가 그러니까 엘리야도 불수레타고 하늘에서 오지 메시야도 구름타고 하늘에서 오지……
– 자라서 그리스도가 되고, 세례요한이 되었다.
메시야도 어릴 때 어린이 아니겠어? 석가도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태어나겠냐고, 어린이지. 근데 자라서 예수는 그리스도가 된 거고, 요한은 자라서 예비자가 된 거지.
– 엘리야가 예수님 재림의 쌤플
성경에서 가르쳐 주는 재림의 쌤플이에요. 구약에서 유일하게 승천했었던 인물이 엘리야에요. 신약에서 유일하게 승천한 사람이 누구죠? 예수님이죠. 그렇다면 그 예수님께서 어떻게 재림할 것이냐를 보여주는 거에요…………이전 역사를 통해서 이후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러한 것을 통해서 예수님의 재림의 비밀을 알 수 있는 거에요. 예수님의 재림 엘리야를 통해서 예수님의 재림의 비밀을 알 수 있는 거에요.
– 재림은 사명의 재림이다
재림은 사명의 재림인거야. 알겠어요? 옛날에 올라갔던 사람이 다시 구름타고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육을 가진 사람이 이전 사람의 남겨진 사명을 이어가는 거라고, 성취시키는 자가. 다시 할께요. 이전의 사람, 이전의 사람의 사명이 있잖아. 사명을 성취시키는 자야. 성취시키는 자가 바로 재림자가 되는거야.
– 재림은 예수님이 오시는게 아니다.
엘리야는 요한이야. 두 인격체는 달라요. 인격이 다르단 말이에요. 엄연히 동일인물이 아닌 다른 인격체지만 그 의미와 사명적인 면에서 볼 때는 같다는 말이에요. 그것을 성취시켜 주는 거에요. 그렇다면 예수님의 재림자는 뭐냐. 예수님께서 하시고자 하셨던 뜻과 사명이 있어요. 그 사명을 성취시키는 자가 재림자가 되는거야. 이것이 바로 엘리야를 보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재림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야. 성경에 아모스 3:7절에 쓰여있는거야.
– 재림은 심령과 능력을 행하는 대행자다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온다 이렇게 되있거든요. 그러므로 재림은 사명의 재림이라고 말했는데. 이 사명이라는 것은 하나는 심령의 재림이에요. 이 사명은 뭐냐면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 오는거야. 심령의 재림 그리고 능력의 재림인거야. 그니까 세례요한은 엘리야가 가진 엘리야의 심령과 엘리야의 능력을 지상에서 행하는 자야. 그래서 하는 일이 같아요……. 예수님의 심령을 가지고 예수님의 능력, 대행하는 자가 재림주가 되는거야……..대행하는 자가 재림주라고.
– 재림주는 예수님이 오시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사도행전에 구름을 타고 승천하셨다….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승천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재림하신다. 그런데 뭐타고?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계시록1장7절에 지금의 2천년전의 유대인과 똑같죠?…….그 예수님이 올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는게 아니에요. 이것은 뭐냐 사명의 재림자야 사명의 재림자로 오는 거에요. 이게 바로 뭐냐 이게 바로 예수님의 재림이지. 엘리야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엘리야가 올라갔는데 엘리야가 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격체를 가진 사람이 그 사명을 대행했던 것처럼 예수님이 이렇게 승천하셨지만 그 예수님이 오시는게 아니라 다른 또 다른 인격체가 또 다른 인격체를 가지신 분이 예수님의 사명을 이어가는 사람이 재림주가 되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