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동복음(장재형) 성경공부 녹취록(3) 부활

  • 6월 17, 2016

합동복음(장재형) 성경공부 녹취록(3) – 부활

 

                                                                                                        이인규

 

이단들의 특징 중에 하나가 그들은 부활을 영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기독교가 말하는 신체적인 부활을 부정하고 그들이 이루어갈 수 있는 개념으로서 예수의 영적인 부활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면 신천지도 영적부활을 가르치는데 그래야만 이만희에게 임한 재림예수의 영이 곧 부활의 개념이 되어 이만희 자신을 예수와 동일한 존재로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신천지는 144,000명을 채우게 되면 그들은 영생을 하게된다고 믿으며, 그것을 그들은 부활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교주형 이단들도 모두 부활을 영적부활이라고 하며 재림을 영적재림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그 교주가 예수가 부활하고 재림한 것이라고 말하려는 목적에 있다.

아래 설명을 가만히 들어보면 마치 지방교회와 같이 부활을 영적으로 해석하며, 인위적이며 행위적인 노력으로 만들 수 있는 부활, 인간의 내면적인 고백과 사명적인 헌신등으로 만들 수 있는 천국, 재림, 부활을 설명한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날 수 있다는 알쏭달쏭한(?) 주장과 함께, 공동체의 부활이 예수의 재림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장합동복음은 마치 신천지가 성경공부를 가르치듯이 구체적인 본론을 생략하며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 개념은 정통신학적인 내용과 분명히 다른, 잘못된 이단적인 부활의 개념을 가르치고 있다. 앞에서 녹취한 몇개의 자료도 충분히 이단성이 증거되는 자료만을 선택하여 올렸지만, 그 자료들이 더 필요없이, 이 영적부활의 주장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이단적인 부활관과 이단적인 재림관을 가졌다고 증거할 수 있을 것이다 (운영자)

 

예장합동복음의 성경공부 녹취록 – 부활의 개념

강사: 조보라

  

1)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를 만날 수가 있다는 주장

– 그러한 주님을 만나지 않아도 다른 방법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다라는 얘기야! 근데 주님을 만나야 되잖니, 왜?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야지 우리는 부활할 수 있잖아!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봐야 되잖아! 그러면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 그래서요 국장님께서 그랬어, 예수님 정성 드리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고 초대교회처럼, 정성드리면 만날 수 있다고 초대교회 나타나셨는데 지금은 안 나타시겠어요? 정성 잘 드리면 다 나타나서 다 만날 수 있다고…

2) 부활은 영적인 부활이며, 기독교가 말하는 부활은 부활이 아니라는 주장

 

– 그런데 말씀을 하다보면 누가복음 24장을 디밀거든 36절, …

그러니까 그 예수님이 그 때 이 부활이라는 거는 뭐냐면 제자들 앞에 당시에 나타나가지고 짝 나오셨던 이 몸이라는 것은 신령한 몸이라는 거야! 알겠지? 이거는 엄밀히 이야기하면 부활이라는 개념보다 이거는 자연이치지! 그렇지? 죽는다고 영은 없어지는게 아니잖니? … 그러기 때문에 문이 잠겼는데 그냥 들어오셨잖아! 영으로 그냥 들어오셨잖아! 육끼리라면 그냥 어떻게 들어오시겠니! 알겠어? 이건 자연 현상으로써의 어떠한 즉 부활이라는 개념, 이거는 엄밀히 이야기하면 부활이라는 그리스도종교에서 말하는 부활의 개념이 아니야! 이거는 이건 그러한 부활의 개념이 아니고 이거는 아까도 얘기했지만 형태의 변이야! 형태의 변이! 엄마의 뱃속에서 태어 나고 자연의 법칙에 의한 거야. 그래서 이것을 부활이라고 말할 수 없어!

3) 부활의 개념은 고백, 심정, 사랑, 사명이다.

 

– 우리가 말씀의 떡을 떼는 행위가 뭐냐? 예수님을 부활시키는 행위죠! 알겠죠? 그리고 또 이 말씀이라는 것은 우리가 말씀의 떡을 떼지만 또 말씀으로 고백하잖아! 입으로 말로 고백하잖아!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우리는 말로 고백하죠? 이 고백, 말로써 고백하는 이 고백속에 주님이 부활하는 거야! 예수님은 그리스도라는 이 고백이 예수님을 부활시키는거야! …… 이것을 깨달았던 제자들의 입술에서 예수는 그리스도다라는 고백이 뛰쳐나온 거에요. 이 뜨거운 고백 이 고백속에서 예수님이 부활하시는 거에요…… 이것이 진실로 진정한 산자들의 부활이지요. 산자들의 부활! 그러므로 말미암아 그러니까 이제 내가 내가 아닌거에요. 갈라디아서 2장20절 마냥 이제는 내가 내가 아니라 나는 나는 뭐야? 부활하신 예수님인 거야. 내 안에 예수님께서 들어와 사시는 거죠. 말씀의 부활을 우리는 날마다 날마다 경험하고 살아야 되는 거에요. 저는 날마다 주님을 만날 수 있어요.

두 번째는 우리가 어떻게 어떠한 부활에 참여 할 수 있는가? 두 번째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심정의 부활, 심정의 부활을 경험해야 합니다….. 탕자가 경험한 것이 심정의 부활이야!… 하나님의 심정을 우리가 알게 될 때 우리는 부활하게 되는 거에요.

세 번째는 사랑의 부활이에요. 사랑의 부활! 누가복음 10장 25절, 어떤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이웃을 사랑하게 되어 지면 그는 부활한다는 거죠. 그 사랑 속에서 누구를 만나냐? 주님을 만난다는 거야. 부활한 주님을 우리 만나게 된다는 거야. … 우리가 사랑할 때 부활하는 거에요. … 재물을 팔아 이웃에게 준다는 것이 뭐야? 사랑이죠. 사랑하지 않으면 영생할 수 없는 거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부활할 수 없는 거야. 알겠어요?

네 번째 사명의 부활. 사명적인 부활! 이거는 예를 들자면 엘리야가 엘리야의 사명이 세례요한이 원래 엘리야의 사명을 감당했야되죠. 사명적인 부활자…이런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 안에 주는 사명이 있어… 사명이 없는 자는 죽은자 인거야…. 섭리인이 가져야 할 의식 중에서 정말 중요한 의식이 뭐냐? 사명의식야! …크리스챤은 뭐야? 예수님을 부활시키는 자들인거야! 제자가 없으면 스승이 부활할 수 가 없는거에요….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주님을 부활시켜야 되지 않겠니? … 아브라함의 그런 사명은 누가? 이삭이 대를 잇게 된거야! 이삭은 아브라함의 사명을 해야 될 아브라함의 부활체야! 아브라함의 부활체. 이게 진정한 부활이야! 이런게 진정한 영적 부활이야!….

4) 모두가 그리스도가 되므로서 교회 공동체가 부활하는 것이 예수의 재림이다.

– 가장 확실한 부활은 교회의 부활인거야. 이것이 예수님의 환생이야! 다시태어나심이야! 이것이 예수님의 재림이야! 알겠죠? 예수님 같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서 전체적인 공동체가 예수님의 모습이라면 이게 천국아니니? 이게 재림이야! 이게 엄밀히 이야기 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재림이야! 로마서나 고린도전서에서 이야기하는 엄밀히 보면 마지막 재림의 모습은 예수님의 몸이 일으켜 세워지는 것이 이게 진정한 재림인거야! 이 세계가 되면 끝난 거지! 우리는 이 그리스도의 몸을 일으켜 세워야 되는 거야! 알겠죠? 그러니까 너도 그리스도 너도 그리스도 나도 그리스도니까 서로가 존중해야지 알겠죠? …..이러한 모습으로 일어나야 되요. 이렇게 해서 예수님을 부활시켜야 되고, 예수님의 몸을 일으켜 세워야 되는 거에요. 이것이 진정한 부활의 모습이에요….천국의 모형의 공동체가 필요하다. 이것을 만들어 내는 게 사탄과 하나님과의 싸움이야!… 이 첫 번째 틀 만드는 것이 너무 힘든 거야! 첫 번째 공동체 만드는 것이 힘든 거야! 이것만 만들어 지면 천국은 와요! 이것만 만들어 지면 이겼다 선언할 수 있는거야. … 이것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 거야!

 

5) 영적 부활

– 마태복음 22장 23절 부활이 없다하는……

이건 뭐냐면 부활은 육적인 부활이 아니라는 거야! 너네들이 말하는 육적 부활이 아니라는 말야! 하늘에 있는 천사와 같다. 이거는 영적 부활이라는 거야! 알겠죠?

6) 주님의 재림은 만들어지는 것이고, 144,000명이 되면 천국을 이루는 것이 끝난다는 주장

– 사탄을 이겼다고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리적인 틀 숫자가 144,000 무리 인 거야. 그래서 이들을 처음 익은 열매라고 말하는 거야. 144,000명의 무리가 이 모형을 이루어서 채워지면 그러면 끝난거야! 그래서 이것이 세워지게 되면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은 천국을 이룬 사람들이에요. 이겼다 하고 승리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는 사람 되는 거에요. 여기 그러니까 인류의 신앙인의 최대 희망이 이 안에 들어가는 거라구! … 그러니까 고생을 많이하지. 고생할 수 밖에 없겠지! 금형 틀 만들 때 고생하고 시간이 오래가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 또 복된 거야…. 이것이 만들어 지는 것이 거대한 주님의 재림이라구 알겠니? 이것이 나타나야지만 주님이 나타나는 거야! 천국의 모형이 나타나지 않고서는 재림이 나타날 수 없어!

 

성경적인 부활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부활은 영적부활이 아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은 살과 뼈가 있었으며 물고기를 함께 먹었다고 말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활의 개념은 영적부활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말하지 않으며, 죽음 이후에 그 영혼이 다시 입게 되는 신령한 몸, 썩지 않는 몸, 강한 몸, 영광의 몸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전15:42-44)

우리는 우리의 부활체가 어떤 형태가 될지, 영광의 몸이 어떤 모습인지 우리는 구체적으로는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벗어나서 임의로 상상하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성경에서 우리는 “썩지 않을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고,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게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고전15:42-49)

또한 빌립보서3:21에서는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신다”고 기록되어있다. 즉 예수님의 부활체가 우리의 부활체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궁극적인 부활체가 어떤 모습일지 우리는 잘 모르지만, 성경으로 보면, 우리의 부활은 새로운 형상의 몸을 입는 신체적이라는 것은 확실하며 그 육체는 신령하고 영광된 육체이므로 썩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부활하신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24:39)고 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은 부활하시어 제자들과 음식을 함께 먹으셨으며, 또한 예수님은 잠겨있는 공간에 나타나시기도 하셨고, 하늘로 승천하시기도 하셨다. 즉 예수의 부활체는 우리의 현재 몸과는 다르며 공간적인 제한을 받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과 뼈가 있었으며, 분명히 “영”은 아니었으며 신령하고 강하며 썩지 않고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성경에서 부활은 영적인 개념이나 내면적인 마음상태를 뜻하는 개념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공관복음에 나타는 부활을 살펴 보자. 사두개인들이 예수를 시험하기 위하여 질문을 한다

마 22:25-28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 들었다가 죽어 후사가 없으므로 그의 아내를 그 동생에게 끼쳐두고 그 둘째와 세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유대인들에게는 수혼법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형수가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와 혼인을 하는 것인데, 그것은 남편이 죽은 형수를 돌보게 하려는 제도였다. 일곱형제가 차례로 형수를 취하였다가 죽은 후에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는 질문으로 예수를 곤경에 빠트리게 하려는 고의적인 질문이었다. 혹간은 부활은 천사와 같은 영적존재가 된다고 오해하는데, 천사와 같이 장가와 시집을 가지 않는다는 것이지 천사와 같은 영적존재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 22:31)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진대

(눅 20:35)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은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부활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요한복음에도 부활이라는 단어가 3개가 나오는데 그것을 살펴 보면 요한복음의 부활은 모두 죽은 자의 부활을 가르킨다.

(요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 11:24)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요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그 외에 사도행전이 말하는 부활, 로마서가 말하는 부활, 고린도전서가 말하는 부활을 모두 살펴보아도 부활은 죽은 자의 부활임을 알 수 있다.

(고전 15: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고전 15: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고전 15:21)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고전 15:42)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