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베덴 보리에 대한 연구보고서
이인규
스베덴보리(Emanuel Swedenborg, 1688. 2. 8 – 1772. 3. 29)는 발음 상 ‘스웨덴보리’, ‘스베덴보그’라고도 하는데,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태어났다. 웁살라대학에서 언어학, 수학, 광물학, 천문학, 생리학, 신학을 수학했으며, 자연과학을 연구하여 광산학자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았으나, 57세에 심령적 체험을 겪은 후 하늘의 소명을 받았다고 하며 영능자로 전향했다. 이후 그는 지옥과 천국을 체험했다고 주장하였고, 다른 혹성과 다른 태양계의 주민들을 만나서 대화하였다고 하며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스웨덴보리는 과학자로서 유명하였으며, ‘자연물의 제 1원리’, ‘두뇌’, ‘동물왕국의 경제’, ‘합리적 심리학’ 등의 저서를 썼다. 그중 ‘자연물의 제 1원리’는 일종의 진화론과 같은 주장으로서, 찰스 다윈이 철저히 탐독한 책이라고 하며 ‘종의 기원’에 영향을 미친 저서였다고 말한다. 즉 진화론은 이미 다윈 이전 스웨덴보리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평가까지 있다. 그러나 창조론이 아닌 진화론을 주장하였다는 것은 그가 성경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증거로서 자랑이 아니다.
스웨덴보리는 이른바 소위 영능자라고 불리우며, 35권의 책을 저술하였다고 한다. 이 35권의 ‘해설서’는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성경과 동등한 권위의 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늘날 스베덴보리를 따르는 교회를 새예루살렘교회 혹은 새교회라고 부르며, 그러나 아무리 많은 책을 썼다고 할지라도 성경의 권위와 비교할 수 없으며, 성경과 다른 내용을 주장하였다면, 그는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1) 스베덴보리의 영적 능력
스웨덴보리에 대한 책이 많이 출간되어 있는데, 그 책들은 서로 다른 기록을 하고 있다. 번역서적들마다 그에 대한 진술이 다르다는 것은 그에 대한 기록들이 일방적인 주장이거나, 과장되어있으며, 인위적으로 추가 되어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영의 세계’(도서출판 동암, 1992년)를 보면 스웨덴보리가 영계에 대한 최초의 체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곳이 영국의 식당이라는 것은 공통적이다.
“내가 식사를 하고 있었던 실내의 바닥 가득히 뱀과 두꺼비등 기분 나쁜 파충류들이 갑자기 쏟아지듯 솟아 나왔다. 나는 얼이 빠질만큼 놀랐다. 그러나 잠시후 이 기분 나쁜 파충류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그곳에는 한번도 만나 본 적이 없는, 이상 야릇한 분위기를 풍기는 인물이 나타났다. 그는 나에게 이르기를, 「그대여 과식은 하지 말지어다」 그 사람은 내게 그 말만을 남기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뒤에는 구름이나 안개와 같은 것이 방안에 가득 피어올라 나를 에워쌌다”(영의 세계, 도서출판동암, 17-18쪽)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위대한 선물’(다산 초당, 2009년)이라는 책을 보면 그 최초의 체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식사를 마치고 포크를 테이블 위에 놓고 일어서려는 순간이었다. 난데없이 스베덴보리가 식사를 하던 식당쪽으로 오색찬란한 무지개가 비치더니 곧이어 태양빛의 열배쯤 되는 강렬한 빛이 비치는 것이다. 스베덴보리는 눈이 부셔 눈을 뜰 수도 없었고 기절할 정도로 놀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던 잠시후 그 빛 가운데서 금빛 찬란한 흰색 로브(길고 헐거운 겉옷으로 예복, 관복, 법복으로 쓰임)를 입은 한 인물이 빛을 발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스베덴보리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신비한 느낌의 인물이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그대여」 그 한마디를 남기고 그는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말았다.”(위대한 선물, 34-35쪽)
스베덴보리가 최초로 신비한 영적체험을 한 것에 대한 기록도 번역책마다 그 내용이 다르다. 한 책은 식당 바닥에 뱀과 두꺼비등 파충류가 나타났다고 하지만, 다른 책은 강렬한 빛이 비쳤다고 한다. 더욱이 그 나타난 인물이 한 말도 서로 다르다. 이러한 차이점을 볼 때에 서로 다른 책마다 각각 다른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번역자에 따라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베덴보리가 자랑하는 두 번째 초능력은 자신이 죽을 날짜를 미리 웨슬레목사에게 편지로 보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며, 요한 웨슬레목사에게서는 전혀 증거를 찾아 볼 수 없다. 요한 웨슬레는 스웨덴보리의 저서를 처음 접하고 그를 영적인 사람으로 보고 매우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책을 자세히 살펴본 결과, 나중에는 스베덴보리를 “가장 재치있고 활발하고 재미있는 미치광이”라고 배척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1760년 2월 28일 일기장에 기록한 바와 같이 그의 말을 믿으려면 차라리 미신을 믿는 것이 낫다고 혹평하였다.
또한 스웨덴의 여왕이 이미 죽은 어느 장군의 유서를 스베덴보리에게 직접 보여주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영계로 가서 그 장군을 만나 그 유서의 내용을 알아왔다는 소위 신접술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성경이 금지하고 있는 소위 초혼과 접신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성경에서 신접자나 초혼자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내어 대화하는 사람을 뜻한다.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 이런 일을 행하는 모든 자를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신 18:11-12)
“남자나 여자가 접신하거나 박수무당이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레 20:27)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주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사 8:19)
이사야 8장19절에 대해서 [현대인의성경]은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신앙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 어찌하여 스베덴보리라고 하는 죽은 자의 개인적인 체험을 신앙의 기준으로 삼는가?
“그러나 사람들은 너희에게 속삭이며 중얼거리는 영매와 마법사에게 가서 물어 보라고 말할 것이다.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말아라. 어째서 하나님에게 물어 보지 않고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물어야 하겠느냐?”
스베덴보리의 책에는 스베덴보리의 몇가지의 신비한 영적인 능력이 기록되어진다. 그러나 거의 모든 이단 단체의 책에는 그 교주나 지도자의 이러한 초능력적이며 신비한 체험들이 기록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현재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도 없지만, 그러한 자서전적인 체험으로 그 사람의 영적인 능력을 신뢰한다는 자체도 매우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 때문이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다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 24:24).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살후 2:9~10).
또한 스데벤보리는 수백 Km를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화재사건을 영으로 보았다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전에,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기록을 통하여 살펴보면 스베덴보리는 영적인 능력자이기 전에 황당한 거짓말쟁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님은 내가 다른 지구들에서 온 영들과 천사들과 더불어 어떤 이들과는 하루 종일, 또 어떤 이들과는 한 주 내내, 그리고 어떤 이들과는 수개월 동안 말하고 대화하도록 허락하셨고, 또 그들이 살다 온 지구들과 그 가까이 있던 지구들에 관하여, 그리고 그곳 주민들의 생활과 관습과 예배에 관하여, 그리고 그것에 도움되는 여러 가지 일들에 관하여, 그들에게 배우도록 해주셨던 것인데, 또한 그것들에 관해서 이런 방법으로 알도록 하셨으므로, 듣고 본대로 그것들을 기록하는 일도 허락된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으로 말미암아 내성이 열린 사람은 사람과 말하는 것처럼 그들과 말할 수 잇는데, 이 일이 지금 나한테 이십년 동안이나 매일 허락되는 것이다.”(우주 안의 지구들, 한국스베덴보리재단, 13-14쪽)
지금도 우주인과 교통을 하며,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미치광이와 같은 사람들이 있지만, 스베덴보리의 주장과 같이 수성이나 화성, 달에는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미 밝혀졌다.
“수성의 영들은 우리 지구에서 온 영들과 아주 달랐는데, 까닭은 우리 지구의 영들은 사실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아니하고 물질적인 것들만 세상적이고 육적이고 지상적인 것들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수성의 영들은 우리 지구의 영들과 마주칠 적에는 어디서나 도망쳤는데, 왜냐하면 양편에서 발산되는 영기들이 거의 반대가 되기 때문이다 (우주 안의 지구들, 한국스베덴보리재단, 29쪽)
“나는 수성의 영들이 어떤 얼굴과 신체를 가진 사람들인지, 그들은 우리 지구의 사람들과 같은지 알고 싶어졌다. 그러자 우리 지구에 있는 여인들과 아주 비슷한 여인 하나가 내 눈 앞에 와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아름다웠지만, 우리 지구 여인의 것보다는 작았고, 그녀의 몸도 호리호리했지만 키는 비슷했고, 그녀는 머리에 얇은 천을 썼는데, 맵시가 있었지만 공들여 매만진 것은 아니었다”(우주 안의 지구들, 한국스베덴보리재단, 53쪽)
특히 수성에는 호리호리하고 얼굴이 아름다운 여인들이 살고 있었으며, 달에는 얼굴이 길고 볼품없는 난쟁이들이 살고 있다는 주장은 마치 만화책을 보는 것과 같이 웃음을 자아나게 한다. 스베덴보리는 두 말할 필요도 없는 거짓말쟁이에 불과하다.
“그들의 성정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 가운데 몇몇이 그들이 우레 소리를 냈던 높은 곳에서 내려왔는데, 놀란 것은 하나가 다른 하나를 등에 업었고, 그렇게 해서 그 둘이 나한테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들의 얼굴은 불품없이 보였지만, 다른 영들보다 얼굴이 길었다. 아주 단단했고, 그래서 그들은 난쟁이들이었다. 그들은 달에서 왔다고 천사들이 말했다.” (우주 안의 지구들, 한국스베덴보리재단, 121쪽)
“영들과 천사들은 목성과 토성의 달들 또는 위성들과 마찬가지로, 달에도 주민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거기서 온 영들을 보지 못했고 그래서 그들과 이야기 못한 이들도 그 달들 위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어떤 점에서도 의심하지 않는데, 그것은 그 달들이 마찬가지로 지구들이고, 그곳에 사람이 있으며, 사람은 그 지구가 존재하는 목적이며, 목적없이 최고의 창조자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것은 없기 때문이다.”(우주 안의 지구들, 한국스베덴보리재단, 123쪽)
화성과 수성은 물론이며 달에도 사람이 살지 않으며,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스베덴보리가 살아있을 때에는 달과 화성과 수성등 혹성에 생명체가 있다고 주장하여도 그것을 증거할 수가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더욱이 달에는 난쟁이가 살기는커녕 어떤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1997년 [교회와 신앙]에 실렸던 글을 보면 안식교의 엘렌화잇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엘렌화잇은 스베덴보리의 주장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 그가(엘렌화잇) 목성의 달들을 큰 목소리로 센 다음에 이어서 토성의 달들을 센 후에 토성의 허리띠(rings)의 아름다운 모양을 묘사하였다. 그리고 그는 말하였다. `주민들은 키가 크고 위엄 있는 사람들로서 지구의 주민들과는 아주 다르다. 죄가 이곳에 들어온 일이 없었다‘”(The Great Second Advent Movement. pp.260~261).
안식교의 선지자라고 불리는 엘렌 화잇은 계시 가운데 목성과 토성, 천왕성 등을 보았는데 목성에서 네 개의 달들을 보았다고 했으며, 토성에서 일곱 개의 달들을, 천왕성에서 여섯 개의 달들을 보았고, 토성에서 주민들을 보았는데 키가 크고 위엄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일곱 개의 달을 가진 별에서(토성) 에녹을 보았다고 하였다(A Word to The little Fock p.22, The Great Second Advent Movement. p. 260~261) 그런데 최근의 천문학은 목성과 토성이 화잇이 본 것들보다 더 많은 달들을 가지고 있음을 발표하였다(목성은 12개, 토성은 열 개).
화잇의 남편이요 대변자격인 화잇 장로는 1847년에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지난해 11월 톱샴(Top sham)회의에서 엘렌(자기 아내 화잇을 의미함: 필자주)은 하나님께서 손수 지으신 세계들에 관한 묵시를 보았다. 그는 여러 유성들에 가 보았는데 목성, 토성 그리고 또 하나에 갔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이상으로부터 깨어난 후에 그는 각 별들의 위성에 대하여 명확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A Word to The little Flock p.22). (교회와 신앙, 1997년 1월1일 기사) –
그 당시의 과학으로는 어떤 반박이나 부정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예언은 자신의 초능력을 과시하기에 안성맞춤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체험이 신앙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며, 그가 추구하는 교리와 사상이 성경적인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스베덴보리의 책에서 나타나는 그의 영적인 체험과 교리와 사상은 성경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오히려 어떤 점에서는 성경과 정반대의 주장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베덴보리는 조심하여야 할 이단적인 견해일 수 밖에 없다. 특히 많은 이단들이 스베덴보리의 책을 인용하고 있다는 것은 우연이라고 볼 수 없다.
2) 영(spirit)과 신령한 몸(spiritual body)
스베덴보리는 영은 현세와 같은 몸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영이란 공기라든지 정기같은 것, 또는 기껏 공중을 떠도는 에텔같은 것이다 – 영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들도 영에 대한 인식은 이 정도의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은 실제로는 육체가 없으나 일종의 인체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성, 이성, 감각 같은 면에서는 인간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과 다름이 없다”(영의 세계, 도서출판 동암, 96쪽)
스베덴보리는 영과 신령한 몸의 부활체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부활체는 신령한 몸이지만 영과 다르다. 사후영혼이 부활 때에 갖게 되는 신령한 몸이 부활체가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24:39)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신이 영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으며, “영은 살과 뼈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살과 뼈가 있었으며, 영과 달리 부활체는 신령한 몸(spiritual body)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영과 부활체는 다르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natural body)이 있은즉 또 영의 몸(spiritual body)도 있느니라”(고전 15:42-44)
위 고전 15장 42-44절 본문은 우리의 영혼이 장차 예수가 재림하실 때의 부활체를 말하며, 고전 15:50에도 변화되어질 부활체에 대해서 언급되어진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5:50-53)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영과 신령한 몸의 부활에 대한 구별이 없으며, 영에 대한 지식도 잘못되었고, 부활체에 대한 지식도 성경과 다르다. 성경에서 말하는 신인동형어적인 표현은 사람의 입장에서 보는 관점으로서 영이신 하나님의 인격적인 표현이다. 하나님의 실제 볼륨은 하늘이 보좌이며 땅이 발판이 되신다(사66:1)
스베덴보리가 천사에게 영에 대해서 설명하는 내용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스베덴보리는 천사에게 대답했다. 「사후의 생에 대해 알고 있으나 없으나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알고 있다고 하는 자들도 인간이 죽은 뒤에는 인간이 아니라 영혼이라고 말합니다. 그 영혼은 영으로 살아있다고 생각하고 영이라면 공기나 바람, 에텔같은 기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육신은 썩어 흙이 되었다가 주님이 오시는 날에 다시 한번 기적적으로 피와 살이 되어 인간으로 부활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을 들은 천사들은 기절을 할 정도로 놀랐다. 「아니 스베덴보리씨! 지금 우리가 바람입니까? 공기입니까? 우리가 기체란 말입니까? 우리가 완벽한 몸을 가지고 빛을 발하며 살고 있는데 우리가 기체라구요? 이렇게 완벽한 인간천사로 살고 있는데…」”(위대한 선물, 다산초당, 60쪽)
천사는 보이지 않는 영적존재이다. 물론 천사가 인간에게 가시적으로 나타날 때에는 인간의 모습이나 다른 형태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그것을 천사의 형상이라고 정의할 수 없다. 가시나무 떨기의 불꽃으로 천사가 나타났다고 하여(출3:2) 천사가 불꽃의 모습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온 천계에서 통용되는 하나님의 유일한 개념은 그 분이 사람이시다(He is a Man)는 개념입니다. 이것은 천계가,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나, 그 형체에 있어서 한 사람(a Man)처럼 되어 있기 때문이고, 또 천계를 구성하고 있는 천사들이나, 그리고 사상도 그 천계의 형체에 따라서 생성됨으로, 그리고 그 천사들과 같기 때문에, 천사들은 하나님에 관해서 다른 식으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시다는 사실에서부터 모든 천사들과 영들은 완전한 형체의 사람들이다는 결론이 뒤따릅니다”(스베덴보리의 삼일성, 예수인, 43-44쪽)
“창조주의 천지창조가 모두 인간을 위해서였다는 사실은 무척 놀랍다. 그래서 성서에도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창1장27절)고 되어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 태어났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같이 생긴 분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인간이요, 인간은 볼 수 있는 하나님이다“(위대한 선물, 다산초당, 76쪽)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의 개념은 잘못된 개념이며,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과 같다는 몰몬교의 주장도 이것과 유사하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외형적인 모습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은 영이시며, 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한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요일4:12)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딤전 6:16)
예수는 볼 수 있는 육신으로 오셨지만, 성경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며(골1:15) ‘하나님 본체의 형상’이시고(히1;3) ‘하나님의 형상’(고후4:4)이라고 말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란 일반적으로 예수님이 갖고 계신 영원성, 창의성, 도덕성, 무죄성과 같은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되어질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의 충만이 거하시며(골1:19), 하나님의 본체 안에 선재하셨다(빌2:6) 우리는 흙에 속한 형상이지만, 하늘에 속한 형상과는 다르다(고전 15:49)
“그러나 이것은 아주 큰 오해이다. 사람들은 영계에 가면 지상에서와 너무나 똑같이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기 때문에 영계에 와있다고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거기다 중간영계(죽어서 최초로 가는 곳)의 환경이 지상의 자연계와 너무 흡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스베덴보리는 인간의 영체는 육체와 똑같다고 했다. 그렇다. 완전히 똑같다. 다만 육체보다 훨씬 더 완벽할 따름이다. 육체가 가지고 있는 오관, 즉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만지는 것 모두가 똑같다. 사고하는 것, 생각하는 것, 희로애락의 감정표현도 지상에서 육체를 갖고 살 때와 똑같이 된다”(위대한 선물, 다산초당, 87쪽)
3) 스베덴보리의 비성경적인 천계와 지옥계
스베덴보리는 영계를 3개의 천계와 3개의 지옥계로 분류하며 중간영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중간영계로 간다고 주장한다. 그의 책에서 천국과 지옥에 대한 내용을 보면 너무나 비성경적이며 황당한 개인적인 추측과 공상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황당한 소설책을 보는 것과 같으며, 일일이 그 비성경적인 내용을 글로 옮기는 것조차 거부감이 든다.
스베덴보리는 3개의 천계 중에서 제1천국은 자연적왕국, 제2천국은 영적왕국, 제3천국은 천적왕국이라고 하는데, 제1천국에 대해서 스베덴보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상에서 종교를 갖지 않고 하나님과 주님도 모르고 살았지만, 양심을 지키고 도덕적인 삶을 살아온 선한 사람들이 와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과 주님을 모르는 것은 그들의 죄가 아닙니다. 그들은 영계에 들어옴과 동시에 창조주 하나님과 주님에 대한 천국의 교육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선영으로 제1천국에 받아들여집니다. 따라서 기독교인만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 자연적왕국은 도덕의 왕국이라고도 합니다” (위대한 선물, 다산초당, 112쪽)
몰몬교는 해의 천국, 달의 천국, 별의 천국의 세곳으로 분류하는데, 스베덴보리의 주장과 유사하다. 몰몬교의 복음을 거절한 사람들은 달의 천국과 별의 천국으로 가는데, 의롭게 산 사람들은 달의 천국으로 간다고 주장한다. 특히 사람이 죽으면 천사가 된다는 주장도 유사하다.
“예수께서 지상에 오시어 십자가의 고난을 이기시고 부활 승천한지 200여 년이 지났다. 그 기간 동안에 땅위에서 얼마나 많은 유아들이 사망했는가? 그들이 모두 하나님과 주님의 특별 배려 하에 천국교육을 받고 모두 천국 천사가 되어 있는 것이다. 스베덴보리는 최고 천국, 곧 제3천국의 대부분은 이 유아출신 천사들이라고 했다.” (위대한 선물, 다산초당, 256쪽)
스베덴보리는 일찍 죽은 유아들은 무조건 천국으로 가는데, 천국에 있는 유아생육시설로 가서 교모라고 불리는 여성천사의 아기가 되어 교육을 받는다고 주장하며, 부모로부터 유전된 악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수련과 교육의 과정을 거쳐서, 남자는 18세, 여자는 15세에서 이상적인 상대를 만나 영원한 축복결혼을 하게 되며, 천국에서 중견 천사로 육성된다고 주장한다.(위대한 선물, 다산초당, 252-254쪽) 이들이 세곳의 천국 중에서 가장 높은 제3의 천국에 살고 있다고 스베덴보리는 말한다.
물론 여성 천사가 있다는 주장도 비성경적이지만, 결혼을 한다는 주장은 주님의 말씀과 정면으로 부딪히게 된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마 22:30, 막12:25, 눅20:35-36)
특히 스베덴보리가 주장하는 중간영계는 지옥도 아니고 천국도 아닌 중간단계로서 그 자체가 비성경적인 주장이며, 다음과 같다.
“이 밑으로 내려가면 중간영계가 있습니다. 인간이 사망하면 육신을 벗고 영체가 되어 제일 먼저 들어가는 곳이 바로 이 중간영계입니다. 중간영계는 천계와 지옥의 사이에 있는데, 모든 신참영인들은 중간영계에 와서 영계생활에 적응하며 자기의 진면목을 드러내고, 거기서 최종 거주지인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떠나게 됩니다” (위대한 선물, 다산초당, 113-114쪽)
그러나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스베덴보리는 유일하게 자신만이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고 돌아왔다고 말한다. 스베덴보리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오늘날 천국 지옥 간증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이 될 것이다.
“스베덴보리는 지상사람 중에 천국이나 지옥을 경험하고 돌아와 지상에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 단언했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사명을 받은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위대한 선물, 다산초당, 115쪽)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구름이 사라져 없어짐 같이 음부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 그는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고 자기 처소도 다시 그를 알지 못하리이다”(욥7:9-10)
“그 집은 사망으로, 그 길은 음부로 기울어졌나니 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자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생명길을 얻지 못하느니라”(잠2:17-19)
더욱이 스베덴보리를 안내한 천사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스베덴보리가 받은 사명이 천국의 최상층을 채우게 된다는 뜻이다.
“천국의 최상층은 비어 있습니다. 이 최상층의 천국을 채울 선영들의 출현을 하나님은 아직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마 그것은 주님께서 지상재림한 후가 될 것 같습니다. 지상에 변화가 와야 합니다. 이곳 영계의 실상과 원리를 지상인간에게 알리는 것 이상으로 그들의 마음의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스베덴보리씨, 당신이 받은 사명은 인류구원에 너무나 중요합니다. 꼭 성공하셔야 합니다” (위대한 선물, 다산초당, 128-129쪽)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한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않을 것이며, 모세와 선지자, 즉 성경말씀을 통하여 들을 것을 말씀하셨다.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눅 16:27-31)
중간영계에서 천국으로 가려면 3단계의 교육을 받게 된다고 하는데, 스베덴보리는 “지상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고 예수그리스도가 구세주이신 것을 모르고 살던 사람들”도 천계의 법도와 하나님의 법도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고 주장하며, 그들 중에서 대부분이 아프리카 영인들이라고 하는데, 잘못된 종교에 휩쓸린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프리카 사람들은 스베덴 보리의 주장과 달리, 대부분 무속적이며 토속적인 종교를 갖고 있다. 더욱이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성경이 말하는 내용은 인간이 타락하고 범죄하여 스스로 자력으로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으로 주일학교 학생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즉 예수그리스도가 온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이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카톨릭으로 개혁을 한 종교개혁자들의 구원론은 ‘오직 믿음’과 ‘오직 은혜’였으며 “오직 성경‘이었다. 이러한 내용을 부정하는 스베덴보리는 개신교라고 말할 수 없으며, 구원론에서도 이단일 뿐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17)
스베덴보리는 심판은 없으며,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하여 천국과 지옥의 결정이 난다고 주장하므로서 하나님의 심판도 부정한다.
‘사람이 사람을 심판하지 말고 심판은 하나님께 맡겨라’ 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이것도 틀린 말이다. 하나님도 심판하지 않는다. 결국 심판하는 자는 자기 자신이다. 자기 자신이 지상에서의 삶을 끝마칠 때에 자신을 심판하는 것이다. 그 날이 바로 영계에 가는 임종의 날이다“(위대한 선물, 다산초당, 284쪽)
“천국은 천국대로 지상에 영향을 끼치고, 지옥은 지옥대로 지상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습니다. 천국천사들이나 지옥악마들이나 지상인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야 합니다. 이는 꼭 지옥과 천국의 사람 빼앗기 싸움과 같습니다. 사람을 가운데 두고 한쪽에선 천국의 천사가, 또 한쪽에선 지옥의 악마가 사람 빼앗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가느냐는 중간 위치에 있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달렸습니다”(위대한 선물,127쪽).
심지어 스베덴보리는 인간의 타락에 대해서도 부정을 하며, 천사들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천사의 역할은 사람이 자유를 누리는 선에서, 천사들이 할 수 있는 한 사랑과 믿음을 전하는 것, 그 사람의 희열이 향하는 방향을 알아내고 그 희열을 선한 것으로 고치고 바꾸는 것이다. 사람은 선과 악의 중간에 있지만, 선이나 악에 대해서 의식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중간에 있기 때문에 사람은 어떤 한 방향으로든 전환할 자유가 있다.” (천상여행기 천국편, 다산초당, 2010년, 10쪽)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영계에는 태양도 있으며, 지옥에는 거인도 있고, 천국에서는 모두가 부부 단위로 거한다고 한다. 더욱이 지옥에는 창녀촌이 있다고 주장한다
“거기에 창녀촌이 있었다. 창녀들이 요염한 교태로 지나가는 지옥영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남녀의 괴성이 들리고 이 쫓고 저리 쫓는 영들이 서로에게 가하는 성적인 폭행! 서로 물고, 뜯고, 할퀴고, 딩굴고, 밟고…이곳은 글자 그대로 지옥 중의 상지옥이었다. 그들은 성적욕망에 이성을 잃고 광적으로 날뛰고 있었다.”(위대한 선물, 다산초당, 126쪽)
또한 천국에도 결혼을 한다고 주장하며 성생활을 한다고 주장한다
스웨덴보리는 천국에도 남녀간의 결혼이 있어 자녀를 두고, 지상에서와 똑같은 일들을 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스웨덴보리는 천국에서의 결혼이 마음과 마음의 만남이며 선과 진리의 합일이라는 영적인 주장을 하는 것 같지만, 또한 그 외모는 청춘남녀로 20-30대이고 아름다웠다고 주장하며, 옷 전체에 보석이 빛나고 아름다운 수가 놓아져 있다고 외형적이며 물질적인 주장을 한다.
“나는 천국에서 온 천사입니다. 나는 아내와 천년 이상을 같이 살고 있지만, 그 많은 세월 모두 지금 당신들이 보고 있는 모습 그대로 한창때의 청년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아내와의 사랑으로 얻은 것으로, 내겐 성능력이 끝이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는 사실을 장담할 수 있습니다.” (천상여행기 천국편, 다산초당, 2010년, 87-88쪽)
다음은 천사가 스데벤보리에게 한 말이다. 사후 영혼이 내적 차원을 풀어내 주고 끊임없는 노력을 하면 천년이 지나도 육체적인 성능력을 간직하게 되며, 성능력이 상실되지 않는다는 이상한 주장을 말한다.
“사랑과 지혜의 결혼이 한사람의 영혼으로부터 내적 차원들을 풀어내 주면, 결실을 맺고 유사한 것을 생산하려는 영혼의 끊임없는 노력은 육체적인 됩니다. 결혼한 남녀의 육체적인 행위는 영혼의 이러한 능력에서 오기 때문에 끊임없는 성 능력이 어디에서 오는지 분명합니다…. 나는 그러한 능력과 성적 에너지와 남성다움을 천년동안 간직해 왔다는 사실을, 성능력의 상실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장담할 수 있습니다”(천상여행기 천국편, 다산초당, 2010년, 88-89쪽)
“스베덴보리가 가장 놀란 것은 천국에 노인이 없다는 것이었다. 또 어린이도 없었다. 천국의 영인들은 모두가 청춘 남녀로 20대에서 30대로 보였으며, 집집마다 부부가 한단위가 되어 사랑의 감미로운 환희 속에 살고 있었다” (위대한 선물, 다산초당, 108쪽)
“지상에서 결혼애로 살고 영적으로 하나가 되었으며, 순결을 지켜온 부부는 천국 부부로서 그대로 천계로 직행하지만, 그렇지 못한 부부는 제2단계에 이르러서는 원수지간이 되기도 하고 서로에게 흥미를 잃기도 한다. 이들은 자연히 헤어지게 되어 따로따로 자기 갈 길을 간다. 거기서부터는 이미 부부가 아니다”(위대한 선물, 다산초당, 137쪽).
또 ‘하늘 사람의 춤’이라는 것을 소개하는데, 마치 특별히 선택받은 사람에 국한된 특별한 권한인 것처럼 소개하는 것도 매우 이상하다. 천국에 대해서 구원이나 복음적인 진리와 아무 상관도 없는 이런 불필요한 내용을 왜 기록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지만 스베덴보리 자신이 보게 된 특별한 경우라는 것을 과시하는 것 같다. 스베덴보리의 책에는 이와 같이 우리 신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불필요하고 장황하기만 한 내용들로 가득 차있다.
“상세계의 영 중에서도 특히 높은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고, 새로운 하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경지에 다달은 영들에게는 그것을 축하하는 ‘하늘사람의 춤’이 허용된다. 즉 전체의 영계를 통털어 ‘새로운 하늘사람’의 탄생을 축하해 주는 뜻이며, 이것은 대개 천년에 한번 정도로 대단히 드문 일이며 그 때 ‘하늘사람의 춤’을 추게됨을 허가받은 ‘새로운 하늘사람’도 기껏 수십명 정도인 것이다.”(영의 세계, 도서출판 동암, 96쪽)
최근 한국교회에 천국 지옥의 간증과 영성운동이라고 하는 신비주의가 범람하고 있다. 성경을 벗어난 이같은 스베덴보리와 같은 체험 간증은 결국 신앙을 주관화하며 성경을 부정하는 신비주의로 빠져버리게 된다. 우리는 오직 성경에 기록된 천국과 지옥에 대한 지식으로 충분하다. 그러한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천국관과 지옥관은 불필요한 내용일 뿐이다. 특히 오직 믿음과 오직 은혜를 부정하며, 성경과 전혀 다른 이상한 주장을 따르다가 멸망으로 갈 수도 있음을 주의하여야 한다.
4) 스베덴보리의 다원주의적 사상
스베덴보리는 다원주의와 혼합주의를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다원주의와 혼합주의를 말하지 않는다.
“이슬람교도들은 그들이 흡수할 수 있는 수준에서 가르친다. 이교도들은 그들의 몸에 배어있는 도덕의 원칙을 통해 하늘의 원리로 인도된다. 사람마다 그들의 이성과 이해력에 맞게 배려된다” (위대한 선물, 다산초당, 161쪽)
“천국은 어떤 특정한 종교의 전유물이 아니다. 천국은 전 인류를 위해서 지어졌고, 하나님은 누구나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을 공평하게 제시해 놓았다. 하나님은 만 인류의 아버지이시오, 예수그리스도는 만 인류의 구세주이시다. 천국에 가면 무슨 종교를 믿다가 왔느냐고 묻지 않는다. 얼마나 이웃을 사랑하다 왔느냐, 그 사랑의 저금통장만 가지고 가는 곳이다”(위대한 선물, 다산초당, 282쪽)
“그들과 토론하는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믿음만으로는 천국에 올 수 없다는 중대한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믿음이 있다 하는 단계는 어디까지나 지적단계에 그친다. 그것만 가지고 사랑의 화신체가 될 수 없다. 그 믿음이 의지 속에 작용하여 선한 행동으로 변화될 때, 믿음은 사랑의 열매를 맺는다. 이것을 행동하는 신앙이라 말한다. 사랑과 신앙은 둘이 아니고 하나인 것이다. 아니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위대한 선물, 다산초당, 202쪽)
스베덴보리는 천국적 선을 십계명의 다섯가지 법으로 본다. 즉 살인하지 말라, 강도짓을 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 남의 재산과 아내를 탐내지 말라는 다섯가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왜 스베덴보리는 1계명과 2계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며,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을까?
그는 이 세상의 종교의 계율대로 살면 구원되고, 계율대로 살지 않으면 정죄된다고 주장을 한다.
“이 세상의 종교가 있는 모든 민족에게는 십게명과 흡사한 계율이 있다. 누구든지 종교에 의해 그 계율대로 사는 사람들은 구원되고, 종교에 의해 그 계율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은 정죄된다. 종교에 의해 계율대로 산 사람들은 죽은 후에 천사들의 가르침을 받으면 진리를 받아들이고 주님을 시인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악을 죄로 여겨 기피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그들은 선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대교리, 한국새교회 출판부, 382-383쪽)
5) 스베덴보리의 귀신론
스베덴보리는 베뢰아의 귀신론과 같은 주장을 한다
“자살자는 악령이 된다. 흔히 말하는 귀신이다. 그리고 자살자의 영은 지상을 떠나지 못한다. 그래서 그를 땅에 묶인 지박령이라고 한다. 지박령은 자기가 자살한 부근에 매여 지상을 배회한다”(위대한 선물, 다산초당, 240쪽)
“귀신 영의 속삭임에 속아 귀신공해의 희생자가 되는 것은 항상 그 마음이 악 쪽으로 기울어졌을 때이다. 인간이 악령들에게 상대기준을 허락하였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정신병자, 노이로제 환자, 우울증 환자의 격증도 바로 이와 같은 현상 속에서 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이와 같은 악령들에 의한 피해자들을 무수히 본다”(위대한 선물, 다산초당, 244쪽)
게다가 스베덴보리는 환생에 대해서 그의 책 영의 세계 159-165쪽에서 설명을 하고 있고, 184쪽에서는 유령의 출현이 불가사의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6) 스베덴보리의 성경관
① 영적해석
오늘날 비유풀이를 하는 이단들과 동일한 주장을 스베덴보리가 소위 영적해석이라는 용어로 말하고 있다.
“스베덴보리는 성서에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와 그 문자가 의미하는 영적인 의미가 있다 했다. 지상인간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읽고, 천계에서는 문자의 영적인 의미를 읽는다 했다. 스베덴보리는 ‘천계의 비의’라는 저서에서 구약성서의 영적인 의미를 모두 해석해 놓았다”(위대한 선물, 다산초당, 285쪽)
다음 글은 요즈음 이단 교주들의 주장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어느 누구도 말씀의 순수한 뜻을 이해할 수 없고 다만 깨우친 사람(빛을 받은 사람)만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믿는 사람만이 깨우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내성이 주님에 의해서 천국의 빛 안으로 올려졌기 때문이다”(새교회, 그 신성한 가르침, 한국스베덴보리재단, 112쪽)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스베덴보리의 영적해석에 대한 실제 예를 들어보자. 그는 열처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단어 하나하나마다 비유적인 해석을 한다.
“이것들 하나하나와 모든 것 안에 영적의미가 있으며, 그러므로 신성이 있다는 것은 영적의미가 존재하며 그것의 성격이 어떻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 알 수 있다. 영적의미로 ‘하나님의나라’는 천국과 교회를 뜻하며, ‘신랑’은 주님을, ‘혼인잔치’는 신앙의 선과 사랑의 선을 수단으로 주님과 천국, 주님과 교회가 결혼하는 것을 뜻한다. ‘신부’는 교회에 속한 사람을 뜻하며, ‘열’은 모든 사람을, ‘다섯’은 일부의 사람을, ‘등불’은 신앙의 진리를, ‘기름’은 사랑의 선을, ‘조는 것’과 ‘깨는 것’은 사람은 세상에서는 자연적으로 살지만 사후에는 영적으로 사는 것을, ‘사는 것’은 자신을 위해 획득하는 것을, ‘파는 자에게 기름을 사는 것’은 사후에 자신을 위하여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의 선을 얻는 것을 뜻한다. 그때는 기름을 더 이상 살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들과 구입한 기름을 갖고 혼인잔치 집문까지 갔지만, 신랑은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을 삶을 마치면 이 세상에서 살아온 모습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사대교리, 한국새교회 출판부, 203-204쪽)
열처녀는 그 구절에서 나타나는 모든 단어 하나하나마다 비유풀이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열처녀는 신부가 아니라 들러리이며, 그 가장 중요한 멧세지는 마태복음 25:13이 말하는 것처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이며 주님이 언제 올지 모르니 미리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스베덴보리의 단어 비유풀이는 요즈음 이단들의 비유풀이와 조금도 다름이 없으며, 이런 장황스러운 단어 비유풀이에 대해서 비판할 가치조차 없다.
② 태초에 계신 말씀
“스베덴보리 선생님의 책들을 번역할 때 채택된 낱말 성언(聖言, the Word)은 대부분 ‘태초에 계셨던 말씀’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성언은 만물의 근원을 뜻하고 따라서 말씀 자체를 뜻합니다. 여기사 우리가 믿고 깨달아야 할 내용에서 그 첫째는 이른바 ‘성경책의 말씀’이 있기 전에 ‘그것의 근원이나 출처되는’ 이른바 성언이 있었다는 것이고 그리고 그 성언은 주님나라에서 통용되고, 또는 천사들이 이해하고 그들에게서 통용되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의 삼일성, 예수인, 2014년, 23-24쪽)
“또한 주님은 말씀을 통해 사람과 함께 하시고 사람과 결합하신다. 주님은 말씀이시며 그 속에서 사람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말씀이신 것처럼 또한 신적 진리이시다. 그러므로 사람이 말씀을 이해하는데 따라 주님이 함께 하시고 동시에 그와 결합하시는 것이 분명하다.”(사대교리, 한국새교회 출판부, 272쪽)
성경을 비유풀이하는 이단들이 주장하는 소위 영해라는 것은 스베덴보리의 주장이었으며, 요한복음의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 즉 인격체이신 로고스를 무인격체인 성경말씀으로 간주하는 것도 스데벤보리의 주장이었다.
“사대교리에 기술된 내용의 작은 명제들은 이러합니다.
1. 성경(聖經, the Holy Scripture), 즉 성언(聖言, the word)은 신령 진리 자체이다.
2. 성경말씀에는 영적인 뜻이 있지만,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3. 성경말씀의 문자적인 뜻은 성경말씀의 영적인 뜻과 천적인 뜻의 기초이고 그릇이고 버팀목이다.
4. 성언의 문자적인 뜻 안에 있는 신령진리는 그것의 충만함, 거룩한, 능력 안에 존재한다.
5. 교회에 속한 교리는 성언의 문자적인 뜻에서 생성되어야 하고, 그것은 그 뜻에 의하여 확증되어야 한다.” (스베덴보리의 삼일성, 예수인, 2014년, 24-25쪽)
③ 부분적인 성경만 인정한다
다음은 새예루살렘선교회 https://www.njc.or.kr/에 있는 글이다. 스베덴보리의 주장을 따르자면 성경은 부분적으로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되어지며, 신약의 사도들의 서신은 성경에 포함되지 않는다.
“스베덴보리는 성경의 모든 책들에게 똑같은 정도의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성언의 책들은 속뜻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은 책들은 성언이 아니다. 구약에 있는 성언의 책들은 모세의 오경,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하, 다윗의 시편, 예언서들 , 즉 이사야,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그리고 신약에서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그리고 요한 묵시록이다.” (천계비의 10325항)
“성 바울 그리고 다른 사도들의 문서들에 관해서, 나는 <천계비의>에서 그것들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유는 그들이 단지 교리적인 문서에 지나지 않고 예언서, 다윗의 시편이나 복음서 그리고 요한 묵시록과 같이 성언의 양식으로 쓰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언의 양식은 일관적으로 상응이며, 그것에 의해서 천국과 직접적으로 교통을 이룬다. 그러나 이들 교리적 문서들은 아주 달라서, 천국과 교통은 있으나 오로지 간접적이다. 사도들의 문서들이 이러한 양식으로 쓰여진 이유는 기독교회가 그 때 그들을 통해서 시작되었으며, 성언에서 사용된 양식은 그와 같은 교리의 주의에 적당치 않았고, 차라리 독자들의 역량에 적응된 알기 쉽고 단순한 언어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도들의 문서들은 주님께서 복음서와 요한 묵시록에서 주장하셨던 것처럼 인애와 믿음의 교리를 주장하기 때문에 교회를 위해서는 우수한 책들이다. 이것은 이 문서들을 주의 깊게 읽는 독자들에게 명백할 것이다.” (바이어 박사에게 보낸 편지 ; 천계비의 815항)
조덕영 박사는 스베덴보리가 성경을 일부만 신뢰한다고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성경은 일부만 신뢰할만하다(예를 들면 신약복음서와 요한계시록). 따라서 성경은 일종의 알레고리(allegory)적 해석인 상응(相應, correspondences)의 방식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아담과 노아도 교회의 표상이다.”
7) 삼위일체 신론
스베덴보리는 삼위일체에 대해서 장황스럽게 설명을 하고 있는데, 결국 그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양태론과 유사한 단일신론이다.
“하나님은 한분이시며 주님은 바로 그 하나님이시다”(사대교리, 한국새교회 출판부, 132쪽)
“그러면 교회에서 하나님을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 셋으로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세가지 특성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성부는 태초부터 영으로 계시는 하나님을 말한다. 그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 사람과는 너무나 멀다. 알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즉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며 가까이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나타나셨는데, 그분을 성자라고 한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구원을 위해 활동을 계속하신다. 그렇게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성령이라 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세가지 특성을 개별적으로 말할 때, 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세가지 특성을 각각 독립적인 하나님으로 생각해서, 한 하나님을 셋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천국과 지옥, 한국새교회, 2012년, 14쪽)
위 책에서는 성부와 성령과 성령은 한분 하나님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불려지는 것이며, 하나님을 한분이라고 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고 주장을 한다. 다시 말하면 양태론을 믿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는 뜻이다.
“스베덴보리 선생님은 이 니케야 종교회의에서 두 교리가 제정되면서 기독교는 신관에서 크게 잘못되었고 그리고 기독교회의 구원관에서도 역시 잘못되었기 때문에, 기독교회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던 ‘황폐하게 하는 가증스러운 물건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본다’(단 9:27, 11:31, 마24:15)는 이른바 교회의 종말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순정기독교 760.761항 참조” (스베덴보리의 삼일성, 예수인, 2014년, 12-13쪽)
“이것이(삼위일체 교리) 말씀을 통해 미리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알려졌더라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지막 심판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심판 전에는 지옥의 세력이 천국을 압도하고 있엇고, 사람들은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분명한 것은 지옥의 악마가 사람으로부터 진리를 빼앗고 그것을 더럽혔을 꺼리는 것이다”(사대교리, 한국새교회 출판부, 166쪽)
스베덴교리가 잘못되었다는 두 교리 중에서 하나는 삼위일체인데, 구원관에서 잘못되었다는 또다른 하나는 무엇일까? 그것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소위 이신칭의인데, 스베덴보리의 책에는 의유신득의라고 번역되었다.
특히 지방교회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사용하는 삼일성(三一性)이라는 단어도 스베덴보리에게서 나타나고, God-man이라는 단어도 스베덴보리에게서 나타난다. 지방교회에서 그 용어를 모방하였는지 그것은 잘 모르겠지만, 지방교회의 삼일성과 비슷하며, 또 기독론에서도 아폴로내리우스의 기독론과 유사한 내용이라고 보여지며, 특히 인성과 신성이 십자가에서 연합되었다는 주장도 매우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스베덴보리의 신론은 하나의 인격을 주장하는 명백한 양태론이다.
“이상의 연구에서 얻어지는 결론은 전 삼일성은 주님 안에서 완전하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부, 성자, 성령은 주님 안에서 완전하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 안에는 인격에 관해서 구분되는 셋이 아니고, 한분 신령존재를 이루신다고 말씀하신 한 분 하나님만 계신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에서 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그들이 각각 호칭된 이유는 사람들이 주님을 시인하고 또한 그 분 안에 계신 신령존재를 시인하게 하려는 것입니다.”(스베덴보리의 삼일성, 예수인, 2014년, 158쪽)
“이 모든 것으로부터 기독교인들이 처음에 세 인격의 교리를 받아들였다 해도 그들이 주님은 무한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여호와라는 생각을 동시에 받아들였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 분명하다. 그들이 이것을 함께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기독교회는 끝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대교리, 한국새교회 출판부, 158쪽)
8) 성령
스베덴보그는 여호와의 증인과 같이 성령을 에너지나 활동이라고 표현한다.
“성령은 신령진리이며, 또한 그 분 안에 신령 삼일성(a Devine Trinity)이 존재해 있는 구세주에게서 발출되는 신령 에너지(the Devine energy)이고, 신령활동(the Devine operation)입니다. 순정기독교 138항” (스베덴보리의 삼일성, 예수인, 2014년, 144쪽)
“주님을 영이라고 말할 때, 그 영은 구체적으로 주님의 지혜의 생명, 즉 신적 진리를 뜻한다”(사대교리, 한국새교회 출판부, 146쪽)
“구약의 말씀에서 성령이 언급된 것은 하나도 없고 다만 ‘거룩함의 영(the spirit of holiness)으로 그것도 세 곳에, 즉 한번은 시편서(51:13)에, 두 번은 이사야서(63:10,11)에 언급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말씀에는 즉 사도행전이나 사도들의 서간서에와 꼭같이 복음서에서도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처음으로 성령이 존재하였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아버지로 말미암아 주님에게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순정기독교 158항” (스베덴보리의 삼일성, 예수인, 2014년, 154쪽)
지방교회에서도 구약의 하나님의 신과 신약의 성령(이들은 살려주는 영이라고 한다)은 다르다고 주장한다. 양태론자들은 구약의 하나님의 신을 성령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베덴보리는 본질적인 개념과 인격적인 개념의 삼위일체의 정확한 뜻을 잘 이해 못하는 것 같다.
“성령은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신성의 발현이다. 그리고 이것은 주님 자신이다” (사대교리, 한국새교회 출판부, 135쪽)
스베덴보리의 삼위일체에 대한 개념은 하나의 인격이며, 그가 생각하는 삼위의 개념은 영혼과 몸,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활동을 상징한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세 개의 인격으로 이해하고 그에 따라 세분 하나님이 계시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주님 안에 삼위, 즉 아버지라고 하는 첫 번째와 두 번째인 아들, 그리고 세 번째 성령이 하나로 존재한다는 사상에서 비롯한다. 이 삼위는 말씀 안에서도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데, 그것은 영혼과 몸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다르게 부르지만 함께 모여 하나가 되는 것과 같다”(사대교리, 한국새교회 출판부, 156쪽)
“성부, 성자, 성령 이 셋은 한분 하나님의 세 본질적인 것들인데, 그것은 마치 사람 안에서 영혼, 몸, 활동이 하나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순정기독교 166항” (스베덴보리의 삼일성, 예수인, 2014년, 155쪽)
9) 기독론
스베덴보리는 기독론에서도 문제가 나타나는데,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에 대해서 양태론사상과 함께 아폴로나리우스의 기독론으로 이해하고 있다. 현재 지방교회나 구원파, 다락방, 베뢰아와 같은 양태론자들도 동일한 기독론을 주장한다. 예수는 사람으로 보고, 하나님이신 영이 예수님의 영의 자리에 들어온 것으로 이해한다. 즉 영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또는 쓰고 나타나신 것을 예수님으로 간주한다.
“영원부터 계신 주님, 즉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인성(인성, the Human)을 입으셨다는 것은 앞서의 내용들에서도 확증하였습니다.” (스베덴보리의 삼일성, 예수인, 2014년, 107쪽)
게다가 기독론과 신인합일론도 지방교회와 거의 유사하다.
“이러한 합일(合一, union)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아래의 순서에 따라서 설명하고자 합니다.
1) 영원부터 주님께서는 여호와이시다
2) 영원부터 계신 주님, 즉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성을 입으셨다.
3) 주님께서는 그 분 안에 계신 신령존재로 말미암아 그분의 인성을 신령하게 완성하셨다.
4) 그분은 자신 안에 허용하신 시험을 방편으로 인성을 싱령하게 완성하셨다
5) 그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의 완전한 합일은 마지막 시험을 가리키는 십자가의 고난에 의해 성취되었다.
6) 그분은 계속적인 관계로 어머니에게서 취하신 인성을 벗으시고, 그 분 안에 게신 신성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인간(a Human)을 입으셨는데, 이것이 바로 신령인성(神靈人性, the Devine Human)이시고,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스베덴보리의 삼일성, 예수인, 2014년, 102-103쪽)
스베덴보리는 아버지를 신성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인성으로 이해한다.
“이들 말씀들에서 볼 때 명확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버지(the Father)라 불리우는 주님의 신성과 그리고 아들(the Son)이라고 불리는 신령인성(the divine Human)이 둘이 아니고 한분(one)이시다는 것이다” (스베덴보리의 삼일성, 예수인, 2014년, 128쪽)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인성과 신성이 십자가에서 합일하셨다고 주장한다
“신성이 인성에 합일하셨고, 인성이 신성에 합일하셨다는 것에 대해서…” (스베덴보리의 삼일성, 예수인, 2014년, 111쪽)
“따라서 하나님은 사람이 되셨는데, 그것은 제일 원리에서나 또 긍극적인 것에서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이 한 사람(원인간, a Man)이시고, 모든 천사나 영(spirit)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사람(a Man)이다라는 것은 천계와 지옥이라는 저서에서 이미 부분적으로 설명하였으며, 그리고 천사적 지혜라는 책명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제일 원리로 사람이셨으나 궁극적으로는 아니셨습니다. 그러나 그 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인성을 입으신 뒤, 그 분은 역시 궁극적으로도 사람(a Man)이 되셨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은 이미 앞에서 정립된 것에서, 즉 주님께서는 그의 신성에 그의 인성을 결합하시었고, 따라서 그의 인성을 신령하게 완성하셨다는 것을 결론에서 뒤이어집니다.”(스베덴보리의 삼일성, 예수인, 2014년, 142-143쪽)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의해서 신성과 인성을 합일하셨다. 주님 안에서 신성과 인성의 완전한 합일은 마지막 시험을 가리키는 십자가의 고난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은 앞서의 관계되는 설명 내용들에서 입증하였습니다… 여기서 뒤이어지는 것은 주님께서는 신성과 인성의 측면에서 여호와이시고,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입니다”(스베덴보리의 삼일성, 예수인, 2014년, 122-123쪽)
지방교회도 십자가에서 부활하심으로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이 연합되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성육신 안에서는 신성이 인성 안으로 들어왔고, 인성에 더해졌다. 이 하나님–사람의 부활 안에서는 인성이 신성 안으로 가져가졌고 신성에 더해졌다. 이것을 놀라운 왕복교통이다. 사람의 본성과 신성한 본성, 이 두 본성이 서로 더해졌을 뿐 아니라, 한 실제, 한 인격으로 제삼의 성분을 산출하지 않고 서로 연합되었다.”(새 예루살렘, 위트니스 리, 237쪽)
결론
스베덴보리의 책은 모두 주관적이며 자의적인 황당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더욱이 신론, 기독론, 구원론, 성경론, 교회론, 종말론등 전반적인 기독교의 정통신학을 모두 부정하며 비성경적인 이단사상을 주장하고 있다. 그의 주장을 인정하려면 우리는 성경을 부정하여야만 한다. 더욱이 스베덴보리의 주장은 많은 이단들에게 영향을 끼쳤으며, 요즈음 천국 지옥 간증을 하는 적지 않은 거짓 체험에도 많은 영향을 제공하여 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결코 신령한 사람이 아니며, 영능자가 아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의 책의 구독을 금지시켜야 할 것이다.
참고서적
영의 세계(도서출판 동암, 1992년)
천국과 지옥(한국새교회, 김지우 초역, 2012년)
위대한 선물(다산초당, 스웨덴보리연구회, 2009년)
천상여행기 지옥편(다산초당, 도널드 로즈 엮음, 2010년)
천상여행기 천국편(다산초당, 레너드 폭스, 도널드 로즈 엮음, 2010년)
스베덴보리의 삼일성(예수인, 이영근, 2014년)
새교회, 그 신성한 가르침(한국스베덴보리재단, 진용진 옮김, 2004년)
사대교리(한국새교회 출판부, 이순철, 김은경 옮김)
우주 안의 지구들(한국스베덴보리재단, 김요안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