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과 집단최면
이인규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이단집단에 빠져 있으면서 자신들이 마치 진리를 전하다가 이단으로 핍박을 당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자들이다.
이단에 빠졌다가 그곳을 나온 사람들의 공통적인 간증을 들어보면 “그 문제점과 오류들이 눈에 전혀 보이지 않았고 귀로 전혀 들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의이든 타의이든, 그곳이 이단이라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고 나왔든지, 혹은 개인적인 상처나 감정적인 싸움으로 그곳을 나왔든지, 일단 그곳을 빠져나온 다음에는 그곳의 문제점들과 오류들이 점차적으로 눈으로 보이고 귀로 들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독일의 히틀러가 독일국민을 선동한 것, 북한의 김일성, 김성일의 우상화등이 집단최면의 대표적인 케이스이고, 소위 이스람교에서 폭탄을 몸에 두르고 자살하는 특공대, 신풍(神風)이라고 불리웠던 일본의 가미가제 사건, 중국의 인해전술등은 대표적인 집단최면의 실례가 되는데, 자기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일방적인 지지와 신뢰를 갖고 있다면, 그 문제점들이 전혀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자신을 포함한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어떤 특정한 행위를 ‘최선의 진리’라고 생각한다면, 자기를 희생하는 무모한 행위. 다른 사람을 해치게 되는 행위가 모두 잘못된 것으로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집단최면이라고 한다.
이단에 빠지는 것도 일종의 집단최면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언어를 통하여 인간 저자에게 성령으로 감동을 주셔서 기록하게 하신 책이다. 하나님이 성경을 기록하게 하시고, 보존하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멧세지를 인간에게 전달하고자 한 목적이었다. ‘계시’라는 것은 감추었다는 뜻이 아니라, 감추인 것을 드러내게 한다는 뜻이며 그래서 성경은 특별계시가 된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이단들은 성경은 모두 비유로만 기록되어 있고, 성경은 비밀로 감추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부분적인 몇몇 성경구절을 엉터리로 해석하여 교인들을 미혹시킨다. 오직 교주나 지도자만이 특별한 영적능력을 갖고 있어서 성경을 해석할 수 있으며, 기록된 성경과 다르게 해석을 하는 것이 영적인 해석이고, 그러한 해석이 하늘의 신령한 비밀을 깨달은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 종교단체에서 행하여지는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인 행위도 모두 정당하게 생각이 되어지며, 기록된 내용과 전혀 다른 해석, 그리고 성경과 전혀 다른 종말론적인 해석도 감추어진 진리로 생각이 들게 된다. 비정상적인 자신의 헌금과 시간 투자, 무조건적인 헌신, 순종이 정상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이단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신들만이 2000년 기독교교회사에서 진리를 가르치고 있으며, 종말적으로 자신들만이 구원을 받게 된다고 가르친다.
이단이라고 불리우는 곳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은 현재 자기의 위치에서 한 발자국만 옆으로 비켜 서서 자신을 스스로 돌이켜 보기 바란다. 그리고 내가 지금 따르고 지지하는 일련의 행동들이 과연 성경적이며, 도덕적이며, 사회적인지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어보기 바란다. 친구들과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학교나 직장에서의 사회적인 관계에서 내가 과연 정상적이며 상식적인 위치에서 적응하고 있는가?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위치에 내가 있는가를 돌이켜 보아야만 할 것이다. 과연 나는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이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가? 라고 스스로 반문을 하여 보기 바란다.
그리고 왜 다른 기독교인들은 우리를 이단이라고 비판하는가? 그 이유에 대해서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세워서 한번 경청하여 들어보는 시간을 갖기 바란다. 그러한 비판적인 견해는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고, 서점에서도 찾을 수 있으며, 각 교단의 이대위보고서에서도, 또 기독교 신문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더 구체적인 것을 원한다면 가까운 상담소를 찾아 보라.
잠깐 한쪽 옆으로 비켜 서서 다시 한번 생각한다면, 그동안 배웠던 내용들이 잘못임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